퇴원이 사고로부터 꼭 일주일 뒤였으니, 그 다음다음 날이라고 하면 4월 29일이 되는 걸까?
겐지의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말하자면 한동안-어도 내 신분이 밝혀질 때까지는 겐지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겐지가 사는 집은 하쿠산의 한적한 주택가에 있었다. - P137

1.
이렇게 큰 집에 혼자 살고 있다니, 가족을 한꺼번에 잃었다거나 하는 사정이 있는 것일까? 그런 상상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금방 알게 되었다. - P137

듣자하니, 겐지는 올 여름에 만 27세가 되는데, 아직도 신분은 대학생이라고 했다. (중략)
"왜 의사가 되지 않았느냐?"는 나의 소박한 질문에 겐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겐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 P137

겐지는 내게 넓은 정원이 내다보이는 네 평 남짓한 방을 쓰라고했다.
정원은 전혀 손길이 가지 않은 걸로 보였다. 폐가처럼 어수선한 모습이었지만, 실내는 무척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 P138

날씨가 좋고 나쁘고 관계가 없었다. 외출하기 위한 문단속도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늘 덧창은 닫혀 있었고, 하루 중 잠깐만 열어두기 때문에 집안은 낮에도 어두컴컴하고, 공기는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환한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 P138

식사는 아침과 저녁 두번, 도미에登美江중년 가정부가 와서는 지어주었다. 방 청소나 다른 일들도 그 여자가 하는 모양이었다. - P138

겐지가 도미에에게 말했다.
"당분간 여기서 살게 되었으니 식사는 두 사람 몫을 준비해줘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겐지가 나를 보며 말했다.
"무슨 불편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이야기하게. 내가 없을 땐 도미에 씨에게 뭐든 부탁하면 돼." - P139


"글쎄요. - 누구 시인가요?"
"츄야. 나카하라 츄야."
이름을 듣고도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내가 기억을 잃은 것은 기본적으로 나 자신에 관해서일 뿐, 다른일반적인 지식까지 모두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카하라츄야 라는 요절한 시인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 P140

기억이란
이제 전혀 없다

나를 바라보면서 겐지는 시의 한 구절을 반복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아니야, 아닐세. 내가 자네를 놀리려는 건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말아줘" - P141

"지금 자네 상태하고는 또 다르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점은 같아. 어린 시절-아홉 살인가, 열 살 때인가. 그 즈음부터 이전의 기억이 내겐 전혀 없어."
"아홉 살이나 열 살 ・・・・・・ 그렇지만, 그것은"
"누구나 어린 시절 기억은 희미하겠지. 하지만 내 경우에는 극단적일세. 그야말로 무엇 하나 기억나는 것이 없어. 마치 - " - P142

겐지는 그때까지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던 왼손을 꺼내 테이블 위에 얹었다. 그리고 그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 보여주었다.
"아니 ・・・・・・ 아아, 그 상처는?"
겐지의 왼쪽 손목 주위 - 시계 밴드로 가려지는 부분에 오래된 상처자국이 있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보았다. 꽤 심한 상처였다. 톱날처럼 수축해, 변색된 피부의 모양이 참혹했다. - P142

"뭐라 해야 좋을까? 자네가 이런 사고를 당하게 된 책임과는 별도로 나는 자네가 걱정이 되는 걸세. 자네 모습에서 나 자신의 일부를 발견하게 된다고나 해야 할까?"
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잠깐 뜸을 들였다가 툭 내뱉었다.
"괜찮습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조만간 기억이 전부 날 테니까요."
내가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 P143

"그런데 말이야. 그 복장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군."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옷, 말입니까?"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보며 겐지는 유쾌하다는 듯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역시 그래. 검은 망토에 중절모 중절모는 위를 찌부러뜨려 써야하지. 어울릴 거야, 분명히."
"망토에 모자?"
"그리고 자네를 당분간 츄야 라고 부르기로 하지." - P144

"츄야 - 흠. 멋있잖아? 좋았어. 내일 당장 옷을 사러 가세. 아무래도 요즘은 망토 같은 건 없을 테니까, 비슷한 느낌이 드는 걸 찾아보다고."
이렇게 해서 겐지는 나를 ‘츄야‘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병원 담당의사 말대로 내가 사고 발생 전후를 제외한 나머지 기억을 무사히 되찾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3주 뒤의 일이었다. 하지만 내원래 이름을 알게 된 뒤에도 겐지는 나를 계속 ‘츄야‘ 라고 불렀다. - P145

5장
진홍빛 축제

1

겐지는 "선생님" 하고 부르며 검은 기왓장이 깔린 바닥 위를 빠른걸음으로 다가갔다. 홀 안 벽 쪽에 놓여 있던 추시계 사람 키 정도되는 긴 케이스를 지닌 중후한 시계다-가 그 발소리와 함께 천천히울리기 시작했다. 밤 10시를 알리는 종소리였다.
"그 청년, 상태가 어떻습니까?"
종소리가 그치기를 기다려 겐지가 물었다.
"잠들었네." - P146

"그나저나 저 탑에서 떨어졌는데 저정도로 멀쩡하다면 그야말로 행운이로군."
"그렇죠. 의식은 아직?"
"아까 눈을 한 번 뜨기는 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던가요?"
노구치 선생은 빨갛게 물든 둥근 코에 주름을 잡으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 P147

"여기가 어딘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가로젓더군."
"누구냐고 물어보았습니까?"
"그 질문에도."
노구치 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사정 설명은 했나요?"
"하지 않았네. 이 상태에서 이것저것 이야기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같더군. 큰 부상은 없지만 체력이 상당히 소모된 것 같고, 우선 푹 쉬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네. 영양제와 진정제를 줬으니 내일 아침까지는 푹 자겠지." - P148

"하지만 아주 위급한 상태는 아니라서 ・・・・・・ 좀 더 상태를 지켜보고 어떻게 할 건지를 결정해도 괜찮을 것 같네."
"경우에 따라서는 경찰을 부를 필요가 생길지도 모르겠군요."
"흐음. 경찰이라?"
노구치 선생이 약간 당혹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말하며 흰 털이 섞인 눈썹을 찌푸렸다. - P149

"아버진 심기가 어떠신가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지."
노구치 선생은 목소리 톤을 약간 낮췄다.
"날 만나도 말도 별로 없고, 술도 함께 마시지 않네."
"불만이십니까?"
넉넉한 볼살을 흔들며 노구치 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 P149

"어쨌든, 그 청년 문제는 내일, 그 사람 입으로 설명을 듣는 게 우선이겠군요. 선생님은 그 청년에 대해 정말로 짐작 가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까?"
"없네."
"시노부 씨는 아무 말 없었나요?"
"아무 말도, 알고 있다면 이야기했겠지."
"흠, 아무도 그를 모른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뭐 그것도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 P150

"그 청년이 추락할 때에 떨어뜨린 것 같은데요. 뒤에 T. E 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고……………."
"TE?....그런데?" - P150

"무라노村野라고 합니다."
"무라노?"
나는 무심코 되물었다.
"저어, 노구치 선생님 - 아니신가요?"
그러자 그는 "아하" 하며 활짝 웃었다.
"무라노라고 하네. 본명은 무라노 히데요. 우연히 우리 아버지가 훌륭한 사람 이름을 붙여줘서." - P151

"뭐 이름 같은 건 단순한 식별 기호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불리건 별로 신경 쓰지 않네. 겐지 군 덕분에 이 집에서는 이제 완전히 노구치로 통하고 있으니까. 자네도 그렇게 부르면 되네." - P152

"그런 증개축 때는 당연히 전문가에게 일을 맡기게 되는데, 그런사람 가운데 좀 괴팍한 건축가가 있었네. 그 건축가가 처음 이 집에왔을 때 우연히 나도 만나게 되었지. 그때 그 사람이......"
마음이 설렌다. 그런 감상을 이야기했다는 건가?
그런데 괴팍한 건축가‘라니, 어떤 의미에서 괴팍하다‘는 걸까 당연히 나는 그 부분이 궁금했다. - P153

"제법 배가 고픈걸. 츄야도 점심을 차안에서 빵으로만 때워서.
선생님은? 뭘 좀 드시겠습니까?"
"아닐세. 난 아까부터 홀짝홀짝 했기 때문에."
노구치 선생은 술잔을 들이키는 시늉을 했다.
"이사오伊佐夫군이 북관 살롱에서 기다리다 지쳤을지도 모르겠군.
그쪽에서 술이나 한잔 더."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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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 칼 폰 린네 (1707~1778) 가 창안한 생물 분류 체계에서 우리 인류의 학명(學名)은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다.¹ 과학자들이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나 ‘호모 에렉투스‘와 같은 이름을 붙인 인간 종이 여럿 있었지만 모두 멸종했다. - P13

‘역사(歷史)‘부터 시작한다. 국어사전에서는 역사를 ‘인간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이라고 한다. 사전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긴 해도 크게 보면 다 비슷하다. - P13

역사는 단순히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사실로 엮어 만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P14

. 예컨대 "우리 민족의 역사는 자랑스럽고 위대하다"거나 "시민을 학살하고 부정부패를 저지른 독재자에게 역사의 심판이 내렸다"고 할 때의 역사는 첫 번째 뜻인 ‘사회의변화 과정 그 자체‘를 가리킨다.  - P14

 그러나 자연과 우주의 변화에 대해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찬탄하지만 자랑스럽다거나 부끄럽다는 도덕적 감정을 느끼지는 않으며 자연과우주가 누군가를 심판했다고 하지도 않는다. 인간사회의 역사는 다른 것의 역사와 다르다. - P14

"역사는 사실과 역사가의 대화"라거나 "모든 역사는 현대사"
라고 할 때, 역사는 사회가 시간의 흐름 안에서 변화해 온 과정을 서술한 문자 텍스트를 말한다.  - P14

역사를 반드시 문자로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무엇이 생겨나 변화하고 소멸한 과정을 문자로 이야기하는 것을 ‘역사 서술‘이라고 하자. 우리는 모든 것의 역사를 쓸 수 있다. 개인, 민족, 사회, 국가, 음악, 미술, 옷, 건축, 과학을 비롯해 인간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은 ‘변화 과정 그 자체로서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 P15

그렇다면 ‘역사의 역사‘는 무엇인가? ‘인간과 사회의 과거에 대해 문자 텍스트로 서술하는 내용과 방법이 변화해 온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더 정확하게는 ‘역사서술의 역사‘라고 해야 하겠지만 편의상 간단하게 ‘역사의 역사‘라고 하자. - P15

역사분야만이 아니라 미술, 음악, 사진, 영화를 포함하여 ‘해석이 필요한 텍스트‘를 생산하는 예술의 모든 분야에 창작자와 연구자가 있다. 예를 들어 소설 창작과 문학 비평 둘 다 하는 작가도 있지만 둘중 하나만 하는 경우도 많은데, 소설만 쓰면 소설가라 하고 문학비평만 쓰면 문예비평가 또는 문학평론가라고 한다. - P16

성실한 역사가는 사실을 수집해 검증하고 평가하며 중요한 역사의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한다. 뛰어난 역사가는 사실들 사이의 관계를 탐색해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혀내며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과 역사 변화의 패턴 또는 역사법칙을 찾아낸다.  - P16

역사의 사실과 논리적 해석에 덧입혀 둔 희망, 놀라움, 기쁨, 슬픔, 분노,
원망, 절망감 같은 인간적·도덕적 감정이었다. 역사의 매력은 사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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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거시제

강연자인 알트나이 교수는 며칠 전 이즈미르에서 있었던 친구 결혼식에서 만난 젊은 언어학자였다. 알트나이라는 성이 ‘앓던 아이‘처럼 들리는 게 재미있어서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은 것을계기로 뜻하지 않게 가까워진 사람이었다. - P89

알트나이의 강연은 1930년대 튀르키예 어느 지역에서 사용된 특이한 어미(語尾)에 관한내용이었다. 강연은 영어로 진행됐고, 앞부분은 튀르키예어의 시제 어미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그것은 이 강연이 포함된 전체 학술행사의청중 상당수가 유럽어권 역사학자였던 탓이었다.  - P90

 한국어에도 있는 시제 선어말어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트나이 교수도 강연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라며 시간이 나면 들어볼 것을 권했다. - P90

강연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기록물이 발견된 동네에서 직접 겪은 재미난 에피소드와 유머 감각 넘치는 마을 풍경 사진덕분에, 강연이 본론으로 접어들기도 전에 객석은 이미 웃음바다였다. - P90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고 말았다. 강연을 듣기전, 알트나이 박사가 어쩌면 조금 지루할지도 모른다고 했던 바로 그 내용 때문이었다. 강연의 본론, 즉 앞에 나온 모음에 따라
‘-아닥-(-adak-)‘ 혹은 ‘-에덱-(-edek)‘으로 모음조화를 일으키며 활용되는 독특한 시제 어미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지점부터였다. - P91

그런데 이 어미가 사용된 텍스트들을 면밀히 검토해보니 미래시제라고 할 만큼 애매한 용법으로 사용된 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국어의 ‘-겠-‘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용된 말이 아니라, 화자가 과거시제로 말할때만큼의 경험적인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경우에만 한정적으로 사용된 어미라는 것. 그것이 알트나이의 설명이었다. - P91

 그 대신 이 말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미래의 일을 마치 과거에 직접 겪은 것처럼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
그러자 머릿속에 봉인되어 있던 기억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쏟아져나왔다. - P92

벌써 15년도 더 된 일이었다. 그를 만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길을 잃지 않았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었으니까. - P92

(전략)
그 결과, 건물 왼쪽과 오른쪽이 층수조차 맞지 않는 이상한 구조가 되고 말았다. 예를들면 건물 오른쪽 1층 정문으로 들어가 왼쪽 복도 끝까지 쭉 걸어가면 어느 순간 H301, H302 같은 번호가 붙은 방들로 가득한복도에 다다르게 되는 식이었다. 분명히 1층으로 들어가 계단이라고는 단 한 칸도 오르지 않았는데, 어느새 3층 어딘가를 헤매게 되는 것이다. - P93

그러니 은경이 3년이나 다닌 학교 안에 있는 건물에서 길을잃어버린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음대나 미대 재학생들조차 본과 학부에서 시작해 박사 논문이 통과할 때쯤 돼야 비로소 건물 안에 있는 모든 방과 방 사이를 최단 경로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는 전설의 미궁이었으니까. - P93

계단에는 자연광이 들지 않았다. 형광등 조명은 어둡지 않았지만, 오히려 형광등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창백함에 그림자가 바짝 오그라든 느낌이었다. 은경은 자신 없는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내려가야 할지 올라가야 할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 P94

"여기 아니구나."
당황한 은경이 말끝을 흐렸다.
"어디 찾으세요? 아는 데면 가르쳐드릴게요."
"저기, 그러니까..."
그의 안내를 받아 사람이 많이 다니는 복도로 나왔다. 그는 은경과 또래거나 기껏해야 한두 살 많아 보일 뿐이었는데도 건물구조를 잘 아는 듯 자신 있는 걸음걸이였다.
"저기 첫 번째 통로에서 왼쪽으로 가시면 돼요. 그럼." - P95

그로부터 일주일 뒤, 그를 처음 만난 날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은경은 다시 예술대학 건물을 찾아갔다. 그와 ‘우연히‘ 마주치기 위해서였다. 일주일 전 헤맸던 그 계단은 일부러 찾아가기도 쉽지 않았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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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니 ‘생각에 관한 생각‘ 혹은 같은 저자의 ‘노이즈‘가 생각난다.







귀납적 추론은 관찰을 통해서 예측하는 추론 행위다. 우리는 이를 ‘상향식bottom up‘ 양식의 추론이라고 부르는데, 귀납은 구체적인 것(관찰)로부터 일반적인 것(증거에 기반을 둔 결론)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귀납에 의존할 때우리는 참일 가능성이 높은, 아마도 참인, 또는 우리가 어느 정도 확신하는 결론을 내린다. 달리 말해서, 결과는 확률적이다.  - P444

추론의 이 두 종류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의 사고에서귀납과 연역을 둘 다 사용한다. 둘 다를 너무 자주 사용하는지라, 귀납 추론을 사용하는지 연역 추론을 사용하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 P444

그렇다면 연역적 논리는 위의 과정과 어떻게 다른가? 연역적 논리는 결론의 속성, 그리고 전제와 결론 사이의 관련성의 속성과 관계가 있다. - P445

이것이 바로 타당한 연역의 정의다. 타당한 결론은 전제들로부터 필연적으로 나오는 결론으로서, 다른 결론이 있을 수없는 결론이다. 만약 참인 전제들이 대안적인 결론을 허용한다면, 그 연역은 타당하지 않을 것이다. 전제들이 이와 같은 단일 결론에 이를 때, 이는체스에서의 체크메이트(외통 장군) 내지 퍼즐에서 마지막 조각 끼우기와 비슷하다. - P446

타당성과 더불어 우리는 삼단논법의 건전성 soundness에도 유의해야 한다. 우리는 연역논증의 건전성을 살펴야 한다. 건전한 논증(sound argument)이란 (전제들로부터 오직 한 결론만 도출될 수 있기에 타당한 데다 전제들이 참이라고 알려진 논증이다. 이 두 요소, 즉 타당성과 건전성은 연역적 결론을 내리는 데 중요하다. 건전하지않은 타당한 결론을 내리는 것도 가능하다. - P446

하지만 종종 우리는 논증의 건전성과 타당성을 검증하는 작업을 따라가는데 실패하고, 대신에 상황을 둘러싼 일반직 지식과 친숙성에 기대고 만다. 달리 말해서 우리는 휴리스틱, 편향 그리고 우리의 사고방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빠른 ‘시스템 1 ‘ 사고에 의지하고 만다. - P447

논리 과제의 구조

 이미 보았듯이, 연역 논리를 사용해한 범주의 구성원에 관한 결론(스타벅스에서 파는 뜨거운 커피)에 다다를 수 있다. 만약 그것이 건전한 논증이라면,
여러분은 확신할 만한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 P447

 전제는 다른 전제에 의해 옳다고(또는 틀리다고)확인될 수 있는 기본적인 사실들을 알려준다. 다르게 들은 말이 없다면,
우리는 전제가 참이라고 가정한다. 이는 연역 논리의 중대한 측면인데, 대체로 연역 논리의 어려움은 과제의 타당성 구조를 평가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전제를 어떻게 만드는가?  - P448

전제는 사실 fact 연산자operator로 만들어진다. 사실은 참이거나 거짓인 진술이다. 사실은 한 대상의 속성에 관한 기술이거나 진술이다. 연산자는 사실과 다른 사실과의 관계를 알려준다. - P448

 결론이 타당하려면 전제들이 참일 때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어야 한다. 전제들의 동일한 집합이 하나 이상의 결론을 내놓을 수 있는 경우에는 결론이 타당하지 않다. 타당한 연역 논증은 정말로강력하다. 이런 방식의 사고는 확실하고 확신할 수 있는 결론을 낼 수 있게 해준다. - P449

 하지만 종종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데 실패하기도 한다. 대신에 우리는 기억과 휴리스틱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에서 나는 줄곧 그 점을 지적했다. 우리가 휴리스틱을 사용하는 까닭은 그게 더 빠르고 대체로 옳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쉽기 때문에 시스템 1 에 의존한다. - P449

범주적 추론

우리는 ‘모든 스타벅스 커피가매우 뜨겁다‘라는 가정에서 시작했다. 이것이 중요한 까닭은 그런 진술을할 때 해당 범주의 모든 구성원 각각이 그 속성을 지닌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범주적 추론이며, 내가 앞서 논의했던 범주화와 지식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 P450

 범주적 추론은 때로는 ‘부류적 추론classical reasoning‘이라고도 부르는데, 사물들의 한 부류class에 관한 추론이기때문이다. 두 용어는 서로 바꾸어 사용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이를 전제로 삼아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모든 부류적 추론은 범주적이다.‘ 만약 어떤 것이 한 부류나 범주에 속한다면, 우리는 그것에 관한 범주적 진술을 할 수 있다. - P450

또 하나의 예를 살펴보자. ‘뜨거운 스타벅스 커피‘ 사례와 동일한 형식의 예다.
.
• 첫째 전제: 모든 인간은 죽는다.
• 둘째 전제 :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결론: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이 고전적인 삼단논법에서 첫째 전제는 일반적 진술이다. 이것은 범주에 관한 진술이다. 이 경우 우리는 범주(인간)가 또 하나의 범주(죽는 것에 포함되거나 등가라고 제시한다. - P451

이는 단순한 사례로, 두 범주 사이의 관계에 대한 보편적인 진술을 한다. 하지만 두 범주 사이의 관계의 본질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인간‘
이 ‘죽는 것‘의 부분집합인지, 또는 두 범주가 완전히 동일한지 우리는 모른다. - P451

전칭 긍정universal affirmative 은 모든 구성원에 보편적인 두 범주 사이의 긍정 관계에 관한 진술이다. - P452

이 전칭 긍정 진술의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재귀적reflexive이지 않다는것이다. 전칭 긍정 진술은 2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한 가지 해석으로서, 모든 A는 B이고 모든 B 또한 A이다. (중략)
하지만 이런 진술들은 딱히 유익하지 않은데, 이런 동의어적인 사례들 말고는 생각하시 어렵다.
(중략)
또 다른 해석으로서, 범주 A의 모든 구성원은 범주 B의 구성원이긴 하지만 범주 B의 하나의 부분집합인 경우다. - P452

논리적 연역에 관해 생각할 때마다 나는 개념과 범주를 원 다이어그램으로 상상하길 좋아한다. 그림 12.1에서 나는 전칭 긍정에 대한 가능한 2가지 다른 배치를 그렸다. 보통 이것을 ‘원 다이어그램‘이라고 부르지만, 더 적절한 용어는 ‘오일러 다이어그램‘이다. - P453

특칭 긍정

만약 내가 ‘어떤 고양이는 다정하다‘라고 말하면, 특칭 긍정 Particularaffirmative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셈이다. (중략) 특칭 긍정은 한 범주의 어떤 구성원이 다른 범주의 구성원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그림 12.1 에 나오듯이, 이 진술에는 4가지 버전이 가능하다. - P454

그다음 두 다이어그램은 개념적으로 더 어렵다. 우리가 ‘어떤 A는 B다‘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떤‘이라는 단어는 적어도 하나 그리고 최대일 경우 모두라는 뜻임을 아는 게 중요하다.  - P455

여기서 짐작할 수 있듯이, 특징 긍정은 평가하기가 더 어려운 진술이다.
이 진술은 범주 A 의 적어도 하나 그리고 최대일 경우 모든 구성원의 상태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를 알려준다. 하지만 범주 B의 상태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주지 않으며, 범주 A와 범주 B 사이의 전체 관계에 대해서도 거의알려주지 않는다. 일부가 특칭 긍정인 일련의 진술을 평가할 때에는, 타당하지 않은 결론을 피하기 위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 P455

전칭 부정

‘어떤 고양이도 개가 아니다‘라고 말하면, 우리는 전칭 부정universal negative이라는 진술을 사용한 셈이다. - P455

맨 아래 오른쪽 다이어그램은 두 범주가 전혀 겹치지 않는 경우다. 이 다이어그램은 전칭 부정 관계를 표현하긴 하지만,
‘어떤 A는 B가 아니다‘ 진술은 이 경우에도 기술적으로 보자면 여전히 참이다. 만약 어디에도 다정한 고양이가 없는 경우인데도(사실은 내 고양이 페퍼민트에 의해 쉽게 반박되는 내용이지만) 내가 ‘어떤 고양이는 다정하지 않다‘고말한다면 이 진술은 다정한-고양이-없음 우주에서 여전히 참일 것이다. - P457

범주적 추론에서의 오류

범주와 개념에 관한 추론은 꽤 흔한 행위지만, 이런 부류적 관계에서 가끔씩 보이는 모호성과 복잡성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오류를 저지른다.
게다가 우리가 저지르는 많은 오류는 개인적 믿음과 지식을 논리적 타당성의 개념과 뒤섞은 결과다. - P457

(전략) 이 연역의 문제점은 결론이 우리의 믿음에 부합하지만 그 믿음이 우리가 논리적으로 추론할 능력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결론이 익숙한 믿음에 부합한다면, 우리는 시스템 2와 논리 대신에 시스템 1과 기존 지식에 의존하기 쉽다.  - P458

분명 여러분은한두 명의 부자 의사를 알고 있고 적어도 한두 명의 부자 의사가 있다는말을 듣기도 했을 테다. 결론에 반대함으로써 여러분은 믿음 편향을 보이게 된다. 이것은 연역 논리의 어려움 중 하나다. 타당한 논증이 아닌데도, 결론이 여전히 참일 수가 있다.  - P460

 비록 우리는 꾸준히 추론하고 결론을 도출하고 무언가에 대해 예측을 하고 있지만, 연역 논리는 종종 우리가 참이라고 믿는 바와 일치하지 않으면 반직관적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실제로는 아닌데도 한 결론에 종종 동의하고 그것이 타당하다고 여긴다. 대신에 타당한 결론을 거부할 수 있다. 이는 편향인데, 타당성은 논리적 과제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지 믿을 만한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 P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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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의 장기적 효과

 그러던 어느날, 그의 멘토였던 키스 오틀리 Keith Oatley 교수가 그에게 생각 하나를 심어주었다. 우리는 소설을 읽을 때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경험에 푹 빠져든다. 사회적 상황을 그려보고, 깊고 복잡하게 타인과 그들의 경험을 상상한다. 키스 오틀리 교수는 그러므로 소설을 많이 읽으면 책 밖에서도 실제로 타인을 더욱 잘 이해할 수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 P133

이 주제는 연구하기가 까다롭다. 과학자들은 사람들에게 읽을거리를 준 다음 바로 그들의 공감 능력을 검사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그러나 레이먼드가 보기에 이 기법에는 결함이 있었다. - P134

레이먼드는 동료들과 함께 독서의 장기적 효과가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기발한 3단계 실험을 고안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연구실로 이동해 여러 이름으로 된 목록을 보았다. 이름 중 일부는 유명한 소설가였고 일부는 유명한 비소설 작가였으며, 일부는 작가가 아닌 무작위 인물이었다.  - P134

레이먼드는 모두에게 두 가지 검사를 실시했다. 그가 처음 사용한 기법은 때때로 자폐를 진단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참가자들은 사람들의 눈 주변을 찍은 사진을 보고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하고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는 타인의 감정 상태를 드러내는 미묘한 신호를 얼마나 잘 읽는지 측정하는 방법이다. - P134

실험 결과는 명확했다. 소설을 많이 읽을수록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읽어냈다. 막대한 영향이었다. 이것은 그저 교육을 잘 받았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 P135

레이먼드는 우리 각자가 오늘날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작은 일부만을 경험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설을 읽으면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 경험은 소설을 내려놓은 뒤에도사라지지 않는다. 나중에 현실에서 사람을 만나면 그들의 삶을 더욱 잘 상상할 수 있다. - P136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전 중 다수가 곧 공감 능력의 발전이었다. 다른 인종 집단도 자신들처럼 감정과 능력, 꿈이있다는, 적어도 일부 백인의 깨달음. 그동안 자신들이 여성에게행사한 권력이 불합리하고 심각한 고통을 낳는다는 일부 남성의깨달음. 동성애가 이성애와 다르지 않다는 많은 이성애자의 깨달음. 공감은 발전을 가능케 하고, 인간적인 공감의 폭을 넓힐 때마다 우리는 우주를 조금씩 더 열어젖히게 된다. - P136

소설 읽기가 오랜 기간에 걸쳐 공감 능력을 키우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미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소설 읽기에 더 끌리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가능성 때문에 그의 연구는 논란과 반박이 많다. 레이먼드는 소설 읽기가 공감 능력을 강화한다는 점과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소설 읽기에끌린다는 점이 둘 다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설 읽기가 실제로 큰 영향을 미친다는 단서가 있다고 덧붙였다. - P137

레이먼드는 잘난 체하며 소셜미디어를 비웃고 도덕적 공황 상태 (어떤 유해한 요소가 사회의 가치와 안녕을 위협한다는 믿음 때문에 사회 전반이 두려움을 느끼는 상태 - 옮긴이)에 빠지기 쉽지만, 자신은 그러한 사고방식을 어리석게 여긴다고 말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에도 장점이 많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 P137

또 다른 그의 연구는 동화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아이들이 공감 능력이 더 좋지만, 길이가 짧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발견했다.¹⁴ 내가 보기에 이 연구 결과는 우리가 소셜미디어에서 목격하는 현상과 일치하는 듯보인다. - P138

 반면 소셜미디어를 장악한 단절된 비명과 분노의 파편에 하루에 몇 시간씩 노출되면 우리의 사고 역시 그렇게 될것이다. 내면의 목소리는 더 상스럽고 시끄러워질 것이며, 부드럽고 온화한 생각에 전만큼 귀 기울이지 못할 것이다.  - P138

 이 질문을 하기 전까지 그는 자기 연구 방법을 상세히 설명하는 데이터 긱geek 이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답할 때는 그의 얼굴에서 딱딱함이 사라졌다. "우리는 모두 파국적 종말로 향하고 있는 물과 진흙으로 된 행성에 살고 있잖아요. 이 문제들은 혼자서 해결할 수 없어요." 그가 말했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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