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그런데 이 모티프는 셰익스피어가 쓴 가장 충격적인 비극인 또다른 작품에서도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 물론 이번에는 한 약혼녀의 선택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모티프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많은 유사점을 가진 채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상자의 선택이라는 모티프와 연결되어 있다.  - P278

이로 인해 단지 그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불행해진다.
이것 역시 세 여인 사이에서의 선택이라고 볼 수 없을까? 세 여인중 가장 젊은 여인이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고, 따라서 그 누구보다도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여인이 아닐까? - P278

이제 똑같은 상황을 소재로 하는 신화와 민담과 문학 작품들의많은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목동파리스도 세 여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번째 여인을 선택했다. 신데렐라 역시 같은 방식으로 두 언니를 물리치고 왕자님에게 가장 사랑을 받았던 셋째였다. - P278

코델리아, 아프로디테, 신데렐라 그리고 프시케의 경우로 한정해서 이야기해 보자. 세 여인이 자매 사이인 것으로 보아, 비록 그중 한 여인만이 선택된다고 해도 이들이 동일한 가계의 구성원으로 구상되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 P279

이 특징들은 또 어떤 통일성을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이 특징들이 모든 예에서 똑같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코델리아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또 납처럼 광채를 발하지도 않는 벙어리처럼 <사랑하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⁵ - P280

「아름다운 헬렌이라는 멜락과 할레비의 대본 속에서는 미의 경연에서 다른 두 여신이 어떤 제안을 해왔는지 파리스가 상세히열거한 다음 아프로디테가 어떻게 처신했는지를 전하고 있다.

세 번째 여인, 아! 세 번째 여인이여...……….
세 번째 여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구나.
상을 받는 자는 그러나 바로 그녀…….

만일 우리가 <침묵>에서 위의 요약된 인용 속에 들어 있는 특이점을 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정신분석이 우리에게 <침묵은 꿈속에서 일반적인 죽음의 표상>임을 일러 주기 때문이다.⁸ - P281

마찬가지로 몸을 숨긴다거나, 신데렐라를 찾아 나선 매력적인왕자가 경험했던 것처럼 찾을 수 없는 환경에 있다거나 하는 것은 꿈속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죽음의 상징이다. 이 사실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속에 들어 있는 한 교훈에서 납의 그 <창백함>이 연상시키는 분명한 창백함만큼이나 명료한 것이다.  - P282

나는 여기서 그림의 민간 설화 중에서 「열두 형제」¹⁰라는 이야기를 이용해 보려고 한다. 옛날 한 왕과 왕비가 살았는데, 그들은 딸을 낳지 못한 채 아들 열두 형제를 낳아 기르고 있었다. 어느 날 왕이 말했다. <만일 열세 번째 아이가 딸이면 아들들은 모두 죽을것이다. 열세 번째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며 왕은 열두 개의 관을 준비시켰다. 그러자 열두 형제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깊은 산속으로 몸을 피했고, 그들은 만나는 모든 소녀들을 다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했다. - P282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여섯 마리 백조」¹¹에서도 새로 변해 버린 형제들이 구원을 받는다. 다시 말해 그들의 누이가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들은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젊은 처녀는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형제들을 구하기 위해 굳은 결심을 하고, 급기야 왕과 결혼함으로써 생명의 위협을 받게된다. 온갖 악의적인 험구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내 입을 열지않은 채 침묵을 지켰던 것이다. - P283

다시 말해 그녀는 죽음 그 자체이자 죽음의 여신이기도 한 것이다.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전위 덕분에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속성들이 다시 신에게 돌아간다. 이러한 전위 중 우리를 가장 덜놀라게 하는 것이 바로 죽음의 여신이라는 경우다. 왜냐하면 현대적으로 번안되어 제시될 이러한 이야기들 속에서 죽음 자체는죽은 사람을 의미하는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 P284

2

호메로스가 기록한 가장 오래된 그리스 신화에서는 오직 모이라 한 신만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의인화하고 있었다. 이 유일한 여신 모이라가 세 명의 자매로 이루어진 무리로(드물게는 두 명의 여신으로 이루어진 무리로) 변모하는 과정은 아마도 모이라의 여신들과 근접해 있던 다른 신들, 즉 미의 세 여신이나 시간의 여신들과 유사성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 P285

세 여신은 계절을 대표하는 신들이 되었고,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3이라는 숫자로는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여신을 표현하는 데 3이라는 성스러운 숫자가 쓰이게 된 것 같다. 실제로 고대인들은 초기에는 겨울, 봄, 여름 세 계절만을 구분했었다. 가을은 훗날 그리스-로마 시대에 와서야 추가된다. 예술에서 자주 시간의 네 여신을 형상화해 낸 것도 이때다. - P286

호라이라고 불리는 계절의 여신들은 시간과 관계를 유지하고있었다. 그들은 이 관계를 우선 1년의 사계절을 통해 나타냈고,
훗날에는 하루의 시간대를 나타내는 데까지 배려하게 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계절의 여신들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을 지칭하는 선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다.¹⁴

14 프로이트는 독일어로 시간을 뜻하는 Zeit를 쓴 다음에 괄호를 하고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로 시간을 뜻하는 heure와 ora를 첨가해 놓았다. - P286

이러한 자연 인식은 인간의 삶에 대한 개념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자연의 신화가 인간의 신화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기상의 변화를 주도한다고 생각되었던 여신들이 운명의 여신들이 되는 것이다.  - P287

자, 이제 다시 우리의 관심사인 세 자매 사이의 선택이라는 모티프로 돌아갈 시간이 된 것 같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여러 상황을 우리가 행했던 해석에 삽입시키려고 할 때, 이 상황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말 뿐이며, 또 우리가 시도했던 해석들의 분명해 보이던 내용과도 모순된다는 사실을 참담한 기분으로 깨닫게 된다. - P287

(전략), 아퓔레의 이야기 속에서는 사랑의 여신과 비견될 만한 미의 여신이기도 했다. 반면에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총명한 여인이었고, 『리어왕』에서는 단 하나 남은 충직한 딸이었다. 이보다 더 분명한 모순을 다른 어떤 곳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 P288

어떤 유형의 모순들이나 완전히 상반된 것들이 서로를 대체하는 현상들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행하는 분석 작업에 심각한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P288

우리가 행하는 작업의 성과도 이렇게 숨어 있는 모티프들을 찾아 드러냄으로써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모이라의 세 여신은 인간 역시 자연의 작은 일부분이고, 따라서 죽음이라는 고정불변의 법칙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을인간에게 깨닫게 하는 인식의 결과다.  - P288

신화 속에서는 죽음의 여신이 사랑의 여신이나 인간적 형상을 띤 그 외의 다른 등가물들로 대체된다. - P289

 그리스의 아프로디테조차도, 비록 이미 오래전부터 페르세포네, 아르테미스, 그리고 세 개의 몸을 갖고 있는 헤카테와 같은 다른 신들에게 음부의 역할을 양보하기는했어도, 여전히 지옥과 일정한 관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동 지역 사람들이 숭배하던 모성의 대여신들은 모두 생산자일뿐만 아니라 파괴자이기도 했고, 또 생명의 여신이자 죽음의 여신이기도 했다. - P289

물론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몇 가지 부차적인 현상들에 의해 상태가 훼손되지 않을 만큼 최초의 신화에 가해진 변화들이 심각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 자매 사이에서 자유롭게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쩔 수없이 세 번째 여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P290

 작가들에게서는 우리가 다룬 모티프가 탄생 신화로 수렴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신화가 변형되면서 약화되었던 탄생신화의 강렬한 느낌을 우리는 다시 경험하게 된다. 문학 창조자들이 우리의 가슴속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신화에 가해진 변화들을 그들이 다시 회복시키기 때문인데, 다시 말해 우리는 부분적으로나마 기원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 P291

 이 사실로 인해 이야기의 전제를 이루고 있는 유산 배분이라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은 황당하다는 느낌을 배제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황당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눈앞에 둔 한 인간이 여인의 사랑을 단념하지 못한 채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었는지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P292

대대로 전해 내려온신화 속에는 영원한 진리가 휘장에 가려진 채 숨어 있었고, 늙은왕에게 사랑을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하라고, 그래서 임종의 거부할 수 없는 필연성과 친숙해지라고 충고하고 있다.
작가는 죽어 가는 한 늙은 사내로 하여금 세 여인 중에서 한 여인을 선택하도록 해서, 이 오래된 선택의 모티프를 좀 더 우리 가까이에 다가오도록 했다. 작가는 욕망의 변화에 의해 훼손된 신화에 의지함으로써 과거를 거슬러 올라갔고, 그러면서 다시 훼손된 부분을 손질했다. - P295

도스토옙스키와 아버지 살해¹

도스토옙스키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인간적 면모들 속에서 우리는 네 가지 모습을 구별해 낼 수 있다. 즉 그는 작가였고, 신경증 환자였고,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자로서 윤리주의자였으며,
또 죄인이기도 했다. 우리를 당황케 하는 이 다양성 속에서 과연어떻게 길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인가?

1 이 글은 분명하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도스토옙스키의 전반적인 성격에 관한 것으로, 그의 마조히즘, 죄의식, 간질병,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이중적 태도 등이 논의된다. 두 번째 부분은 도박에 탐닉한 도스토옙스키의 심리에 초점을맞추고 있으며, 뒤이어 그와 같은 도박에 대한 탐닉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주를 이룬다. - P541

실제로도 의문이 생긴다. 자신 속에도 유혹이 있음을 깨달으면서 그 유혹에지지 않은 채 저항하는 사람이 윤리적이리라. 매번 죄를 지은후 매우 윤리적인 덕목들을 앞세우며 뉘우치지만 반복해서 죄를짓고 후회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사람은 도덕성의 본질이 단념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 P542

도스토옙스키가 치렀던 윤리적인 싸움들의 결과 역시 결코 영광스러운 것들이 아니다. 한 개인의 충동이 요구하는 것과 그것을 막아서는 사회 공동체의 제약을 화해시키기 위해 격렬한 싸움을 치른 후 그는 뒤로 물러서고 만다. 그는 이러한 물러서는 자세 속에서 세속적인 권력과 영적인 권위에 동시에 굴복했다. - P542

인류의 문화가 그에게 빚진 것은 거의 전무하다. 그래서 그가 신경증 때문에 이런 실패에서 벗어날수 없었다는 사실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의 높은 지성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은 신경증이 없었다면 그에게 사도들이 걸었던 생명의 길과 같은, 다른 길을 열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 P543

그에게는 실제로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 두 가지 심리적인 동기가 있었고, 이 두 가지 동기는 범죄자들에게서 가장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끝이없는 자아 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있었고, 강한 파괴 욕구를 갖고있었다. 이 두 가지 동기 사이의 공통점이자 외부로 나타나는 표현의 조건이 되는 것은 사랑의 부재, 즉 다시 말해 다른 인간을 사랑함으로써 사랑의 대상을 가치 있게 여겨야 했는데 이러한 과정이 그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지적은 그가사랑받고자 하는 대단한 욕구를 갖고 있었고, 또 사랑할 수 있는엄청난 능력도 소유하고 있었다는 상반된 그의 모습을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 P543

그를 쉽게 범죄자로 만들 수도 있었던 도스토옙스키가갖고 있던 매우 강한 파괴 충동은 그의 삶 속에서 주로 자기 자신에게로 향했고, (외부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내부로 향했고) 그렇게 해서 피학대 음란증과 죄의식의 형태를 띠고 표현되었던 것이다. 이 점을 통해 언뜻 보아 모순처럼 보이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여전히 학대 음란증적 특징들이 남아있었고, 이러한 특징들은 그의 신경과민과, 남에게 고통을 주고자 하는 강한 성향과, 심지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조차 용서하지 못하는 편협함들을 통해 드러나기도 하며, 또 그가 작가로서 독자들을 대하는 방식 속에서도 나타난다. - P544

도스토옙스키의 복잡한 인성 속에서 우리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를 끌어냈는데, 하나는 양적인 것이었고 나머지 둘은 질적인 것이었다. - P545

그렇다면 엄밀한 의미에서의 신경증은 어떤 방법을 통해 드러나는가?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을 간질 환자로 여기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인정했다. 이는 졸도와 근육 경련과 그 결과로 찾아오는 갑작스러운 무기력 증상 등을 수반하곤 했던 신경증의 가혹한 발작 등에 근거해 자신이 내린 판단이었다. - P545

우선 두 번째 문제부터 다루어 보자. 여기서 간질과 관련된 모든 질환들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어떤 결정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P546

하지만 이 모든 특징들은 불분명하고 불확실한 것들이다. 혀를 깨물거나 요실금을 수반하기도 하는 이 갑작스러운 발작은 심각한 부상을 초래하는 위험한 간질 상태에까지 이를 수도 있지만,
어떤 때에는 잠시 동안의 의식 불명이나 단순한 현기증으로 끝날수도 있고, 때로는 마치 무의식의 지배에 들어간 것처럼 잠시 동안 자신이 모르는 행동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 P546

 다른 경우들에 대해서도 흔히 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이고, 도스토옙스키의 경우와 똑같은 의혹을 자아내고 있다). 간질에 걸린 사람은 마비되고억압되었다는 인상을 주게 되고, 이 병에는 또한 비록 병의 중요한 구성 요소는 아니지만, 쉽게 알 수 있는 지능 저하와 심각한 두뇌 손상이 수반된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발작은 정신이 완벽하게 발달한 사람들이 충분히 통제되지 못한 과도한 감정 상태를 보일 때에도 나타난다.  - P547

도스토옙스키의 간질은 두 번째 종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것을 확실하게 입증해 낼 수는 없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첫번째로 일어난 발작과 그 이후의 진행 과정을 그의 정신 활동 전체 속에 위치시킬 수 있어야만 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알려진것이 거의 없다. 발작에 대한 묘사들도 거의 아무것도 일러 주지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발작과 그의 생활 사이의 관계에 대한정보들도 군데군데 빠진 것이 많고 자주 상호 모순되는 것들이기도 하다. - P548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나오는 아버지 살해 Vatetötung와도스토옙스키의 아버지가 겪어야 했던 운명 사이에는 분명한 관계가 있었고, 이 관계는 많은 전기 작가들을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현대 심리학의 새로운 경향>을 참고하도록 인도하기도 했다.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보면 이 사건 속에서 가장 가혹한 정신적 충격을 읽어 낼 수 있을 것만 같고, 나아가 이 사건에대한 도스토옙스키의 반응 속에서 신경증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가 보고 싶어진다. - P549

6 이와는 반대로 도스토옙스키 자신의 설명을 포함한 대부분의 설명에서는 시베리아 유배 중에 간질병이 거의 중단된 상태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신경발작증에 대한 그와 같은 자전적 설명을 믿지 못할 이유가 있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대개 그런 환자들의 기억은 그 불쾌했던 연관관계를 중단하고 싶은 심리로 허위의 기억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 감옥에 투옥되었던 그 기간 동안 그의 병리적 상태가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으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원주 - P549

우리는 죽음과 관련된 이러한 발작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고, 그 의도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⁷ 이 발작들은 죽은 자와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죽은 자와 동일시하는것일 수도 있고, 아직 살아 있지만 죽기를 원하는 자와 동일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7 프로이트는 1897년 2월 8일 플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미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프로이트 편지 58). - P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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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하는 사람들

욕구 불만이 심해지면 인간은 신경증 환자가 된다는 명제를 우리는 정신분석적 작업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문제가 되는 욕구불만은 물론 리비도와 관련된 것이고, 이 명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긴 논의가 요구된다. - P366

스스로 근거가 있다고 생각했고, 또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어떤 욕망이 충족되는 순간 병에 걸리는 일이 종종 사람들에게 일어난다는 것을 의사처럼 목격할 때면, 사람들은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P366

(전략)

위의 두 경우는 상이한 것이긴 하지만, 욕망이 충족되는 것과 함께 기쁨이 사라지면서 병이 나타났다는 점에 있어서는 서로 일치한다.
이러한 사례들과 인간은 욕구 불만에 의해 신경증 환자가 된다는 명제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은 풀 수 없는 모순이 아니다. 욕구불만을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으로 구분해서 생각하면 모순은 해결된다. - P368

갈등은 바로 이때 신경증의 가능성과 함께, 다시 말해 억압된 무의식에의한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얻어지는 대리 만족과 함께 발생한다.
내적인 욕구 불만은 모든 경우에 고려의 대상이 되지만, 이렇게 실제로 일어나는 외적인 욕구 불만이 미리 자리를 준비해 놓기 이전에는 작용하지 않는다. 성공했기 때문에 병에 걸리는 예외적 - P368

신경증의 형성 과정이 보여 주는 잘 알려진 상황들과 이러한 경우의 차이점은 일반적인 경우에는 리비도 집중의 내적 강화를 통하여 이제까지는 용납되었고 거의 고려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던 환상이 두려운 상대로 바뀌는 반면, 우리가 지적한 경우들에서는 갈등을 촉발시킨 계기가 외부 현실의 변화에 있다는 점뿐이다. - P369

성공을 위해 강인하고도 냉정하게 싸워 왔지만 성공을 거둔 후쓰러지고 마는 인물이 있다면, 아마도 셰익스피어의 레이디 맥베스일 것이다. - P369

무엇이 강철과도 같은 그녀의 성격을 이렇게 꺾어 놓았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일의 성공 뒤에 오는 환멸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여기에서, 원래는 착하고 여느 여성들처럼 부드러웠던레이디 맥베스였는데 일부러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끝에 그토록 긴장된 상태에서 한 가지 일에 몰두할 수 있었고, 또 원래 오래 견딜 수 없는 이런 상태 속에서 쉽게 무너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러한 급격한 파멸을 인간적인 측면에서 우리에게친숙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더욱 깊은 어떤 동기들이 있다고 가정해야만 할 것인가? - P372

셰익스피어의 연극 속에서 단지 야망의 비극만을 보려고 한다면 위에서 지적한 점은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살 수 없는 존재인 맥베스에게 자신의 뜻에 반대되는 예언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이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 P373

그에게는 아이들이 없다.
-『맥베스』, 제4막 3장

이 선언은 이미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또 맥베스의 변화를 헤아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선언이 뜻하는 바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가 내 아이들을 죽일 수 있었다면 그것은 오직 그 자신이 아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 P374

맥베스에게 아이가 없었다는 것과그의 아내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인이었다는 것은 대를 이어간다는 성스러운 일에서 그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응징이었다. - P375

 홀린셰드가 보기에는 맥베스를 왕위에오르게 했던 덩컨의 살해와 그가 그 후에 저지른 다른 범죄들 사이에는 <10년>이라는 시간적 간격이 있는데, 이 10년 동안 맥베스는 가혹했지만 정의로운 왕으로 통치를 한 것으로 보였다. 그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이 10년의 시간이 지난 이후, 뱅쿼와 자기 자신의 운명에 관계되는 예언들이 실제로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괴로운 염려가 깊어 가면서였다. - P376

계속 좌절되기만하는 아이를 낳겠다는 희망이 한 여인을 망가뜨리고 한 남자를광포하게 만들기에는 일주일 동안이라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² 이것은 모순이다.

2 다메스테터J. Damesteter의 『맥베스 Macbeth』(1881)-원주. - P377

그렇다면 의심 많은 야심가와 철가면을 쓴 채 선동을 일삼던 여인을 이렇게 짧은 시간에 두려움 없는 광포한 자로, 또 회한에 짓눌려 병이 든 여인으로 변모시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 P377

작품이 공연되는 동안 작가는 물론 그의 예술을 통해 우리를 사로잡을 수 있고, 또 우리의 사고를 마비시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받았던 감동을 연극이 끝난 후에 작품의 심리적인 메커니즘에 근거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 P377

왜냐하면 이렇게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 합리화할 수있는 것은 그것이 논리적인 수미일관성을 훼손하는 경우가 아니라 현실의 개연성을 혼란에 빠뜨리는 경우에 한해서이기 때문이고,³ 또 만일 사건들이 전개되는 시간이 극 속의 분명한 지적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단 며칠로 축소되지 않고 불분명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해도 극적 효과는 여전히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3 가령 리처드 3세가 자신이 죽인 왕의 관을 앞에 놓고 앤에게 청혼하는 경우를예로 들 수 있겠다-원주 - P378

그에 의하면 셰익스피어는 한 성격을 빈번하게 두 인물로 나누어서 표현했고, 이 두 인물을 서로 합쳐 하나로만들지 않는 한 각각의 인물에 대한 이해는 완전해질 수 없다. 맥베스와 그의 아내인 레이디 맥베스의 경우도 여기에 해당될 수있고, 따라서 레이디 맥베스를 자율성을 지닌 하나의 독립된 인물로 간주하면서 그의 반쪽인 맥베스를 고려하지 않은 채 그녀의 성격에 일어난 변화를 살피려고 한다면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 P378

(전략)

만일 이러한 레이디 맥베스의 모습 앞에서도 왜 그녀가 성공을거두었으면서도 낙담을 했고, 급기야 병에 걸려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밝힐 수 없다면, 이제 우리는 또 다른 한위대한 극작가가 제공하는 좀 더 나은 기회를 이용해야 할 것이다. 이 또 다른 극작가는 시종 엄밀함을 유지한 채 인물들의 심리적인 움직임을 정확하게 이끌어 갔다. - P380

 남편의 도덕관에 대한 부인의 믿음을 이렇게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은 후 레베카는 부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목사와 은밀한 불륜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집을 떠나야겠다는 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교묘하게 암시를 준다. - P381

이렇게 해서 레베카와 로스메르 두 사람은 함께 살게 된다. 목사는 레베카와의 관계를 순수하게 정신적이고 이상적인 우정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외부에서 중상과 비방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로스메르의 마음속에서도 부인의 자살 동기에 대한 괴로운 의혹들이 점점 고개를 든다. - P381

그녀 스스로 4막에서 이 질문에대해 답을 하고 있다.

끔찍한 것은 행복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모든기쁨을 내게 허락했다. 그런데 나 지금 있는 그대로의 바로 이 나는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

그녀는 그동안 다른 사람으로 변했고, 윤리 의식이 다시 깨어나 죄의식을 느꼈던 것이며, 그래서 기쁨을 맛볼 수 없었던 것이다. - P382

이 말을 하기 얼마 전에 그녀는 이 변화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로스메르스홀름이 내게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이 집은 나의 성격과 힘을 잘라 내고 있었어요.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고요! 망설이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은 이제 영원히 지나가 버렸어요. 나는 움직일 힘을 잃어버렸다고요. 로스메르, 아시겠어요.

레베카는 로스메르와 신학교 교장이자 그녀가 쫓아낸 부인의 남동생이었던 크롤에게 고백함으로써 자신이 죄인임을 만천하에 드러낸 후에 이렇게 설명한다. - P383

물론 그녀가 로스메르스홀름의 분위기와 덕망 있는 로스메르와의 관계에 영향을 받아 자신도 변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모든 존재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고 선언할 때 그녀의 이러한 증언을 의심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 P383

막이 내리기 직전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그녀의 고백이 끝났을 때, 로스메르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자기 아내가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저질렀던 죄악을 용서한다. - P384

물론 그녀는 자신이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녀가 자유스럽게 세상을 떠돌 때 저질렀고, 그래서 누구에게도 책임질 이유가 없는 이 관계가 그녀에게는 로스메르의 아내에 대한 범죄보다도 더 그와의 결합을 방해하는 요소로 생각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384

그러나 크롤은 그녀의 이런 반박을 보기 좋게 꺾어 버린다.

당신 말이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내 계산은 정확한 것입니다. 베스트 박사는 임명받기 한 해 전에 이곳에 잠시 들른 적이 있습니다. - P386

수수께끼 같은 레베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한 가지밖에는 없다. 베스트 박사가 자신의 아버지였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을 때, 이것은 그녀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충격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박사의 의붓딸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내의 정부(情婦)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크롤이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고백했음에 틀림없는 이 관계들을 빗대어 말하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짐작하고 있었다. - P387

이제 우리는 어쨌든 이 과거가 그녀에게는 결혼을 결심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로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은 가장 큰 죄악으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 P387

지금까지 우리는 레베카 베스트를, 날카로운 이성의 통제를 받는 것이긴 해도 입센이라는 한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상상.
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살아 있는 현실의 인간인 것처럼다루어 왔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위에서 제기되었던 이의에대해 답하려고 한다. 이의 제기는 정당한 것이다. - P388

문학 창조의 피할 수 없는 규약들로 인해 이런 경우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을것이다. 드러내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동기가 아니었던, 이보다깊이 숨어 있는 동기는 관객들 혹은 독자들의 안락한 지각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은 채 가려져 있어야만 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관객들과 독자들은 견디기 힘든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또강력하게 저항했을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는 끝내 훼손되고 말았을 것이다. - P389

(전략)
이런 이유로 해서 로스메르의 청혼을 거부하도록 했던 죄의식은 크롤의 폭로를 들었을 때 레베카로 하여금 고백하게 한 것보다 훨씬 더 강했던 죄의식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었다. - P391

정신분석 작업을 하는 의사는 하녀든 가정 교사든, 아니면 간호사든 젊은 처녀가 한 집에 들어오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이 여인이 얼마나 자주 또 얼마나 강렬하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근거를 둔 공상을 하는지 알게 된다. 이 공상의 결론은 늘 이런저런 식으로 여주인을 사라지게 하고, 대신 그녀의 남편을 차지하는 것이다. - P391

(전략), 단지 문학과 의학의 완벽한 일치를 간략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 작업을 통해 우리는흔히 그렇듯이 욕구 불만의 결과로 병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성공의 결과로 병을 일으키는 윤리 의식의 힘은 거의 모든 죄의식의 경우에서처럼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관계, 즉 오이디푸스콤플렉스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P392

세 상자의 모티프

Das Motiv der Kästchenwahl(1913)프로이트의 편지에 의하면 이 글의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은1912년 6월이었기에 결국 이 글이 발표된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의 일인 셈이다. 1913년 7월 7일 페렌치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로이트는 이 글을 쓰면서 자신의 세 딸을 염두에 두었음을 밝히고있다. - P373

1

셰익스피어의 극작품에 나오는 즐거운 장면 하나와 비극적인장면 하나를 통해 나는 최근 한 작은 문제에 봉착하여 그 문제를풀 수가 있었다.
즐거운 장면이란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장면으로 구혼자들이 세 개의 작은 상자들을 앞에 놓고 선택하는 장면이다.  - P275

(전략). 이렇게 해서 그는 약혼자를 얻게 되었는데, 운명이 걸린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젊은 처녀의 마음은이미 납으로 만든 함을 선택한 구혼자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두구혼자는 각자 자신이 선택한 금속을 칭찬하고 다른 두 금속은깎아내리면서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해 설명했다. - P275

상자들의 선택이라는 신탁 이야기를 만들어 낸 사람은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단지 그는 이 이야기를 『게스타 로마노룸GestaRomanorum』¹이라는 여러 이야기 중에서 하나를 다시 따왔을 뿐인데, 이 텍스트의 이야기 속에서는 황제의 아들을 차지하기 위해한 처녀가 같은 선택을 하게 된다.²

1 작자 미상의 중세 이야기 모음.
2 브라네스G. Brandes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896) 참조-원주.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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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성에 근거한 관용 옹호론의 문제점은 그것의 호소력과 한 쌍이다. 그것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견해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견해들을 합리적으로 다룰 수 없다면, 동성애자들에게 우호적인법원 판결이라고 해도 동성애자들에 대한 약간의 관용을 얻어내는 데 그치고말 것이다. 동성애자들의 삶을 찬양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올바로 이해하고 충분히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자율권에 의거해서만 이루어지는 법적·정치적 담론은 그러한 이해를 함양시키기 어려워 보인다. - P162

. 결혼 제도와가족 제도조차도 갈수록 자발주의적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그러한 제도들이 가능하게 만드는 인간의 선보다는 그것들이 표현하는 자율적 선택 때문에 그러한 제도들이 높은 평가를 받는 쪽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중립성의 이상과 그것이 수반하는 자아상은 헌법률에만국한되어 있지 않다. 가족법에서 일어난 최근의 변화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들은 미국의 도덕문화에서 일어나고 있는 보다 일반적 변화들도 반영한다. - P162

언론의 자유에 대한 중립성

정부가 좋음에 관한 경쟁적 견해들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은미국의 헌법률에서 종교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립성 원칙은 표현의자유에도 적용된다. 정부가 특정 종교의 믿음을 기타 종교들의 믿음보다 우선시하지 않듯이, 정부는 시민들이 지지하는 다양한 견해들을 다룰 때도 중립을 지켜야 한다. 설사 정부가 공공장소에서 표현의 시간, 장소, 방식에 관해 "내용 중립적인" 제한을 한다고 해도, 그러한 규제는 "표현되는 관점에 대한 공감이나 반감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⁷⁵ - P111

75 Young v. American Mini Theatres, Inc., 427 U.S. 50, 67(1976). - P480

종교와 마찬가지로 표현의 경우에도 중립성의 요구는 지난 수십 년간의발전의 결과이다. 최근에는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헌법적 논쟁이 많지만(대표적인 헌법률 판례집의 경우 전체의 1/4 이상이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것이다⁷⁸), 제1차 세계대전⁷⁹ 때까지만 해도 연방대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다룬 적이 거의없었다. - P111

78 Gerald Gunther, Constitutional Law, 11th ed.(Mineola, N.Y.: Foundation Press,
1985)의 전체 1633쪽 가운데 491쪽이 표현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
79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사건들에 대한 논의는 David M.
Rabban, "The First Amendment in Its Forgotten Years", Yale Law Journal,
90(1981), 514-596을 보라. - P480

연방대법원이 표현의 자유에 진지하게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이로부터100년 이상 뒤였다. 1917년에 방첩법Espionage and Sedition Acts이 통과됨으로써 미국의 정치 논쟁에서 시민적 자유가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⁸² - P112

82 Paul L. Murphy, World War I and the Origin of Civil Liberties in the UnitedStates (New York: W. W. Norton, 1979), pp. 30-31 - P480

다시 말해 "높은 가치의 표현과 "낮은가치의 표현을 구분했다. 이러한 "표현의 자유에 관한 이중기준론two-level
"theory of free speech"⁸⁶ 을 가장 뚜렷이 보여준 것은 채플린스키 대 뉴햄프셔 주Chaplinsky v. New Hampshire 사건(1942)이었다. - P113

86 017 Harry Kalven, "Metaphysics of the Law of Obscenity", Supreme Court Review, 1960, p.1

이중기준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 이론 덕분에 연방대법원이 무차별적인 접근법보다 품위 있는 표현을 더 잘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한다.⁹¹
반면에 비판자들은 표현의 범주를 구분하는 것이 연방대법원으로 하여금
"표현 내용과 관련이 있는 가치 판단들, 즉 수정헌법 1조의 기본 이론에 따라연방대법원에게 금지된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반박한다.⁹² - P113

92 Thomas Emerson, The System of Freedom of Expression(New York: Random House,
1970), p. 326.
93 New York Times Co. v. Sullivan, 376 U.S. 254(1964). - P481

연방대법원은 스탠리 대 조지아 주stanley v. Georgia 사건(1969)에서도 음란물의 사적 소유를 보호하면서 "그것들을 제공받을 권리는 정보와 사상의 사회적 가치와 상관없이 자유사회에 기본적인 것이다"⁹⁴라고 주장했다. - P114

94 Stanley v. Georgia, 394 U.S. 557, 564(1969). - P481

내용 중립성의 원칙은 일찍이 에이브럼스 사건에서 홈스가 작성한 반대97의견서에서 그 싹을 찾아볼 수 있지만,⁹⁷ 이 원칙이 처음으로 분명하게 표현된 것은 시카고 시경 대 모슬리 Police Department of the City of Chicago v. Mosley 사건(1972)에서였다. 시카고 시는 노동쟁의와 관련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교 앞 피켓 시위를 금지했는데, 연방대법원은 그 조례가 표현 내용에 근거해 차별을 하고 있다고 판결했다. - P114

뉴욕 주 공공사업위원회 New York Public Service Commission가 광고 봉투 안에 컨솔리데이티드 에디슨 사Consolidated Edison Company가 핵발전을 옹호하는 성명서를 집어넣는 것을 금지하자 연방대법원은 그러한 제한은 그 공익사업체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주제에 따라 표현을 규제하는정부의 조치는 ‘시간, 장소‘ 상황의 중립성으로부터 내용에 대한 관심 쪽으로 일탈하는 것이다." 공공사업위원회는 소비자에게 정보를 주는 삽입물은허용했지만 정치적 의견을 전달하는 삽입물은 금지했다. 연방대법원에 따르면, 이러한 구별은 내용 중립성의 기준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제한은 "표현의 내용이나 주제에 기초해서는 안 되기"¹⁰¹ 때문이다. - P115

101 Consolidated Edison Company of New York v. Public Service Commission of NewYork, 447 U.S. 530, 536-537(1980). - P481

음란물 규제법 판결로 본 표현의 중립성

정부가 좋음에 관한 견해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가정은 정부가 제한하고자 하는 표현을 연방대법원이 보호하는 사건들에서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의 위력은 연방대법원이 표현에 대한 제한을 지지한 사건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음란물 사건이다.
그동안 연방대법원은 수정헌법 1조에 따라 마지못해 음란물을 보호해왔지만, 최근의 음란물 사건들에서 연방대법원이 전개한 논증는 중립성 가정들이 헌법률에 미치고 있는 강력한 영향을 보여준다. - P116

음란물에 대한 제한들이 도덕적 이유로 정당화되는 한, 그러한 제한들은법이 좋음에 관한 특정한 견해를 표명해서는 안 된다는 자유주의의 원리를훼손한다. 자유주의적 견해에 따르면, 도덕과 부도덕에 대한 판단을 법률의토대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 그것은 정부가 목적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 P117

 연방대법원은 로스 사건에서는 전통적인 도덕적 이유에 기초해 판결을 내렸다. 즉 음란물은 "그 흠결을 벌충할 만한 사회적 중요성이 전혀 없고, 따라서 완전히 헌법이 보호하는 범위 밖에 있다는것이다.¹⁰⁶ - P117

106 Roth, 354 U.S. at 476. - P482

연방대법원은 파리성인극장  대슬레이튼 Paris Adult Theatre IV. Slaton 사건(1973)*에서, 하드코어 포르노 영화의 상업적 상영을 금지하는 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연방대법원의 의견에는 전통적으로 그러한 제한들의 기초가 되는 도덕적 이유들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반영되어 있었다. 버거연방대법원장은 다수 의견서에서 "상업적 음란물의 범람 방지에 걸려 있는정당한 국익에는 "삶의 질, 전체 공동체의 환경, 대도시 도심의 상업적 분위기 그리고 어쩌면 치안도" 포함된다¹⁰⁷고 주장했다. 그는 음란물과 범죄 간에연관이 있든 없든 간에, "일반적으로 읽고 보고 듣고 행하는 것들은 원하든원치 않든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¹⁰⁸고 덧붙였다.

*지방검사 슬레이튼을 비롯한 조지아 주의 관리들은 파리성인극장과 파리성인극장에서 각기 상영되고 있는 두 편의 음란 영화의 상영 금지를 요청하는 시민 소원을 제기했다. 그런데 두 극장은 각기 상영하는 영화가 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최소 21세 이상 성인만 관람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게시해놓고있었다. 1심 판사는 "공중에게 필요한 경고"와 "미성년자의 입장을 막는 합리적인 보호 조치"가 있는 경우에는 음란 영화라도 상영될 수 있다며 조지아 주의 소원을 기각했다. 하지만 조지아 주 법원은 그 영화들이 수정헌법 1조가 보호하는 표현의 자유의 범위 내에 있지 않은 "하드코어" 포르노그래피라는 이유로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이에 피고인 파리성인극장은 이 사건을 연방대법원으로 가지고 갔다. - P118

107 Paris Adult Theatre I v. Slaton, 413 U.S. 49, 57-58(1973).
108 Ibid. at 59. Alexander Bickel, The Public Interest, 22-(Winter 1971), 25-260인용. - P482

버거의 주장은 음란물 규제에 대한 주들의 권리를 옹호하면서도 음란물자체에 대한 도덕적 반대는 인정하기 곤란한 듯한 논조를 띠고 있다. 하지만도덕적 판단을 피하려 한 결과, 버거의 논증은 일관성을 잃고 있다. 음란물거래가 "전체로서의 공동체에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주들의 권한을 허용한다는 것은 공통의 도덕적 기준에 위배되는 것이 공동체에 대한 해악에 포함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다. - P119

만일 도덕적타락이 공동체적 해악에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면, 범죄율과 치안만이 아니라 "사회 기풍까지 거론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만일 공동체적 복지가 도덕적 차원을 포함하는 것이라면, 왜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판단이 공동체적복지를 보호할 수 있는 듯이 말하는가? 파리성인극장 사건에서 나타난 버거의 의견은 단지 애매모호함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애매모호함이 도덕적 판단에 대해 괄호 칠 것을 요구하는 압력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 P119

1986년에 연방대법원은 비슷한 이유를 들어 또 다른 구역 지정 조례를 지지했다. 렌퀴스트 연방대법관에 따르면, "성인극장의 설치를 제한하는 워싱턴 주 렌턴 시의 조례는 "성인 극장들‘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의 내용이 아니라 그 극장들이 주변 지역에 미치는 부수적 효과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부수적 효과에는 범죄 예방, 소매업 보호, 부동산 가치의 유지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이 도시 주민과 상업 지구의 질과 도시 생활의 질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것" 등이 포함되었다. - P120

이 사건들에서 볼 수 있듯이, "부차적 효과" 에 대한 "도덕적으로 중립적인판단만으로는 음란물과 포르노그래피를 제한하는 법률을 정당화하기 어렵다. 놀라운 것은 그런데도 연방대법원은 그 법률들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도덕적 고려들을 괄호 치고자 대단히 애썼다는 사실이다. - P121

중립을 지키려는 열망

정부가 좋은 삶이라는 문제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현대 정치사상에 특유한 것이다. 고대의 정치 이론은 정치의 목적이 시민들의 덕이나도덕적 탁월성을 함양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모든 결사체는 선을 추구하며 폴리스polis 혹은 정치적 결사체는 가장 포괄적인 최고의 선을 추구한다고 썼다. - P20

고대의 견해와 달리 자유주의적 정치 이론은 정치 생활을 최상의 목적이나 시민들의 도덕적 탁월성과 관련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자유주의적 정치이론은 좋은 삶에 대한 특정한 견해를 고취시키는 것이 아니라 관용, 공정한절차, 가치 선택의 자유라는 개인권의 존중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어려운문제를 초래한다. 최고의 인간적 선을 바탕으로 자유주의적 이상들을 옹호하지 않는다면, 자유주의적 이상들의 도덕적 토대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 P21

관용과 자유와 공정성도 가치이다. 어떠한 가치도 옹호될 수 없다면 그러한 가치들도 옹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모든 가치가 단지 주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자유주의적 가치들을 주장하는 것은 오류이다. 상대주의에 근거해 자유주의를옹호하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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