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명문의 조건


정보화 시대,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글쓰기 기준도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글은 무언가 품위 있고 무게 있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반대가 됐다. 요즘은 쉽고 재미있는 글이 아니면 아예 읽으려 하지 않는다. SNS 글쓰기만 그런 것이 아니다. - P12

쉬워야 한다

글은 무게 있게 써야 하고 특별한 재주가 있는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던 것은 옛날 얘기다. 오늘날 명문이란 멋진단어나 미사여구를 아로새긴 문장이 아니다. 무엇보다 자기 생각을 상대방에게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글이 현대 명문이다. - P13

특히 요즘은 딱딱한 것을 싫어하는 시대라 몇 줄 읽어 내려가다 어렵다 싶으면 더 이상 읽지 않는다. 아무리 열심히 써도 읽히지 않는 글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굳이 미사여구를 동원해 미문을 쓰거나 생소한 단어를 들이대면서 어렵게 쓸 필요가 없어졌다. - P13

재미가 있어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재미가 없으면 잘 읽으려 하지 않는다. 무언가 재미가 있겠구나 싶으면 그 글을 읽지만 별로 재미가 없다 싶으면 읽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기와 관련이 있거나 꼭 필요한 내용이어서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글이라면 몰라도 대부분은 읽다가 별재미가 없으면 도중에 그만둔다. - P14

가능하면 짧아야 한다

요즘은 글을 읽기 전에 전체 분량이 얼마인지를 보고 읽는 습성이 있다. 한눈에 들어오는 정도의 양이면 흔쾌히 읽어 보지만 페이지가 넘어가는 긴 글은 잘 읽으려 하지 않는다. 속도의 시대,
축약의 시대에 긴 글은 맞지 않는다. 긴 글은 읽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아예 읽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 P15

읽는 사람의 인내심이나 가벼움을 탓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시대의 흐름이고 정서인데 어찌하랴. 아무리 공을 들여 길게 써봐야 읽지 않는 글은 의미가 없다. 특히 블로그 · 페이스북 등 인터넷에 올리는 글은 500자 이내가 적당하다. - P15

05

단어
중복

글쓰기 훈련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사람의 글일수록 단어의중복이 눈에 많이 띈다. "어떤 경우에는 ~한 경우가 있으며, 이 경우~한다"는 식으로 같은 단어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문장을 볼품없이 만든다. - P45

우리 학교는 이 지역에서 역사와 전통이 가장 오래된 학교이며, 훌륭한 인재를 많이 배출한 학교다.

‘학교‘가 세 번이나 나온다. 주어의 ‘학교‘만 남기고 나머지는 적당히 다른 말로 바꿔 주어야 한다.

→우리 학교는 이 지역에서 역사와 전통이 가장 오래됐으며, 훌륭한인재를 많이 배출한 곳이다. - P46

아직은 고객이 많지 않지만 문의가 많아지고 찾아오는 손님도 많아지고 있어 전망이 밝다.

‘많지 않지만‘ ‘많아지고‘ ‘많아지고‘ 등 ‘많다‘를 활용한 표현이 반복해 나온다. 비슷한 단어인 ‘늘어나다‘ ‘증가하다‘로 바꾸어 주면중복을 피할 수 있다. 우리말은 어휘가 풍부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아직은 고객이 많지 않지만 문의가 늘어나고 찾아오는 손님도 증가하고 있어 전망이 밝다. - P47

현재 1만5000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프랑스 전업 매춘부 중 60%가 외국인이며, 그중 절반 이상이 파리에서 활동 중이다.

‘매춘부 중‘ ‘그중‘ ‘활동 중이다‘ 등 ‘중‘이 계속해 나온다. 요즘 ‘-하고 있다‘ 대신 어떤 상태에 있는 동안을 나타내는 ‘중이다‘를많이 쓰고 있지만 이처럼 중복을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하고 있다‘가 겹치는 경우에만 ‘중이다‘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이다‘는 영어의 ‘ing‘를 단순 번역하면서 늘어난 현상이다.

→현재 1만5000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프랑스 전업 매춘부 중 60%가 외국인이며,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 P48

아파트에 입주하기 일주일 전쯤 보일러를 30도 정도로 가동시켜 실내유독가스를 배출시키고 집 안을 환기시켜야 한다.

‘가동시켜‘ ‘배출시키고‘ ‘환기시켜야‘ 등 불필요하게‘-시키다‘를 반복하고 있다. ‘하다‘로도 충분히 뜻이 통하는 단어이므로 ‘가동해‘ ‘배출하고‘ ‘환기해야‘로 고쳐야 한다.

→ 아파트에 입주하기 일주일 전쯤 보일러를 30도 정도로 가동해 실내유독가스를 배출하고 집 안을 환기해야 한다. - P49

눈물 젖은 빵을 먹었다며 우스개를 늘어놓으며 승부처에서 마운드에 오르면 더 짜릿하다며 두둑한 배짱을 과시했다.

‘먹었다며‘ ‘늘어놓으며‘ ‘짜릿하다며‘ 등 ‘-‘가 세 번이나 나와읽기 불편하다. 연결어미나 접속사를 사용할 때도 가능하면 같은말을 피해야 한다. ‘-‘ ‘-면서‘ ‘-고‘를 적당히 섞어 쓰면 된다.

→ 눈물 젖은 빵을 먹었다고 우스개를 늘어놓으면서 승부처에서 마운드에 오르면 더 짜릿하다며 두둑한 배짱을 과시했다. - P49

장기 기증 행사가 각계각층으로 널리 확산돼 장기 기증을 통한 이웃 사랑 실천이 범국민적 행사로 널리 확산되고, 이를 실천해 나가는 일련의 아름다운 행사로 확산되었으면 한다.

‘널리‘가 두 번 나오고, ‘행사‘와 ‘확산‘이 세 번씩 나온다. 요령이없거나 어휘력이 부족함을 보여 준다. ‘확산‘이 널리 퍼진다는 뜻이므로 ‘널리‘는 빼야 한다. 불필요한 ‘행사‘는 줄이고, ‘확산‘은 적당히 다른 말로 바꾸어 주면 된다.

→장기 기증 운동이 각계각층으로 확산돼 장기 기증을 통한 이웃 사랑 실천이 범국민적으로 퍼지고, 이를 실천해 나가는 일련의 아름다운 행사로 발전했으면 한다. - P50

07

의미
중복


(전략).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잊어선 안 된다"에서처럼 의미를 부여하거나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중략).
물론 말할 때는 강조하기 위해 이러한 표현을 쓸 수도 있지만 글이란 말보다 완전하고 체계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 P56

행복해지려면 우선 자신의 건강부터 먼저 신경 써야 한다.

‘우선‘과 ‘먼저‘는 같은 뜻이므로 하나만 있으면 된다.

→1. 행복해지려면 우선 자신의 건강부터 신경 써야 한다2. 행복해지려면 자신의 건강부터 먼저 신경 써야 한다. - P56

지난해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국내총생산 증가율은 겨우 3.1%에불과했다.

‘겨우 -다‘와 ‘불과하다‘는 같은 뜻이므로 둘 중 한 가지로 표현해야 한다.

→1. 지난해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실질국내총생산 증가율은 겨우3.1%였다.
2. 지난해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실질국내총생산 증가율은 3.1%에 불과했다. - P57

연일 비가 오거나 흐린 장마철에는 무기력하게 늘어져 활력이 떨어지고 우울해지기 쉽다.

‘무기력하게 늘어지는 것‘과 ‘활력이 떨어지는 것‘은 같은 뜻이므로 하나만 있으면 된다.

→1. 연일 비가 오거나 흐린 장마철에는 무기력하게 늘어지고 우울해지기 쉽다.
2. 연일 비가 오거나 흐린 장마철에는 활력이 떨어지고 우울해지기 쉽다. - P58

아울러 부유층에게는 세금을 아무리 많이 물려도 괜찮다는 쪽으로 사회 분위기가 몰리는 것도 문제다.

‘아울러‘와 ‘몰리는 것도‘의 ‘도‘는 의미상 중복되는 말이므로 ‘아울러‘를 없애야 한다. ‘아울러‘ 대신 ‘또한‘이 와도 마찬가지다.

→부유층에게는 세금을 아무리 많이 물려도 괜찮다는 쪽으로 사회분위기가 몰리는 것도 문제다. - P59

불쾌지수가 높은 날엔 누구나 불쾌지수가 높아져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가급적 대인 관계를 줄이는 게 좋다.


‘불쾌지수가 높은‘과 ‘불쾌지수가 높아져‘는 구절 중복이며,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과 ‘가급적‘은 의미 중복이다.


→1. 불쾌지수가 높은 날엔 누구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대인 관계를 줄이는 게 좋다.
2. 불쾌지수가 높은 날엔 이 같은 사실을 인식하고 가급적 대인 관계를줄이는 게 좋다. - P60

08

겹말

겹말은 대부분 한자어와 우리말이 어울리는 형태를 띤다. 한자어만으론 무언가 의미 표현이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에생겨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중략).
하지만 겹말 역시 비효율적인 군더더기 표현으로 언어의 경제성을 떨어뜨리므로 피해야 한다. - P62

남북 관계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기로(岐路)‘가 중대한 고비를 의미하므로 ‘중대한‘은 겹말이다.

→남북 관계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 P63

북한은 아직도 선군(先軍) 제일주의를 앞세우고 있다.

군을 앞세우는 것이 ‘선군‘이므로 ‘앞세우다‘는 필요 없다.

→북한은 아직도 선군(先軍) 제일주의를 취하고 있다. - P64

각 표준별로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선호도에 의해 시장에서 승부가 날 때까지는 한 기술에만 집착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

‘-별(別)‘이 ‘각각‘을 뜻하므로 ‘각‘은 겹말이다.

→표준별로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선호도에 의해 시장에서 승부가 날 때까지는 한 기술에만 집착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 - P64

외국인의 매수세로 주가는 나흘 연속 상한가 행진을 이어 갔다.


‘이어 가다‘와 ‘연속하다‘는 같은 뜻이므로 ‘연속‘과 ‘이어 갔다‘는겹말이다.


→1. 외국인의 매수세로 주가는 나흘간 상한가 행진을 이어 갔다.
2. 외국인의 매수세로 주가는 나흘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 P65

자주 쓰이는 겹말

복합어처럼 쓰이는 겹말


과반수 이상→ 과반수
수십여 명 → 수십 명
(중략)
그때 당시 → 그때, 당시
(중략)
내면(面)속→ 내면
농사(農事)일 → 농사
뇌리(腦裡)속 → 뇌리, 머릿속
뇌성(雷聲)소리 → 뇌성, 우렛소리 - P68

주성분에서의 겹말


주어가 겹말인 경우

낙엽이 떨어지는->•낙엽이 지는, 잎이 지는
(후략)


→목적어가 겹말인 경우


관상을 보다→ 상을 보다
(중략)
책을 읽는 독자 → 독자, 책을 읽는 사람
(후략)


서술어가 겹말인 경우

방치해 두다 → 방치하다
(중략)
결론을 맺다 → 결론을 내다, 결론짓다
(중략)
공감을 느끼다 → 공감하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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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게 비치는 빛


1969년 7월 21일,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과 에드윈 앨드린은 달 표면에 반사체가 배열된 작은 판을 지구를 향해 설치했다. 같은 시간 달에서38만 킬로미터 떨어진 지구에서는 천체물리학자 두 팀이 캘리포니아 릭 천문대와 텍사스 맥도널드 천문대에서 두 대의 천체망원경에 각각 작은 장치를 설치했다. 이 천문학자들은 인류가 최초로 달에 착륙한 위치를 세심하게 탐색했다. - P9

이 실험에 사용된 광원인 루비 레이저는 겨우 9년 전인 1960년에 처음 선보인 장치였다. 사실은 사람이 달에 도착하기 전인 1968년 1월에 무인우주선이 달에 착륙했고, 이 우주선에 장착된 텔레비전 카메라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이후 칼텍으로 표기한다. 옮긴이]의 제트추진연구소가 로스앤젤레스 근처에서 발사한 레이저 광선을 감지했다. 이 레이저의 출력은 겨우 1와트에 불과했다. - P10

레이저 광선의 반사로 달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것은 레이저의 놀라운성질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레이저는 일상에서 수많은 곳에 쓰일 뿐만 아니라 특수한 용도로도 널리 쓰인다 - P10

사물의 본질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에서 얼마나 큰 성과가 나올지를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연구에서 어떤 길이 기술적으로 막다른 골목으로 이어지는지 알아내기도 매우 어렵다.) 여기에서 단순한 진리가 나온다. 연구에서 나온 새로운 아이디어는 정말로 새롭기 때문에 그것이 어떻게 발전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 P10

 리버모어 연구팀은 오염물질이나 방사성 폐기물을 거의 남기지 않고 전기를 효율적으로 생산하는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 팀은 또한 국립점화시설(National Ignition Facility)에서 훨씬 더 강력한 레이저를 연구하고 있다. 그들은 레이저 출력을 세계 기록보다 10배 높은 1,000조 와트로 높였고, 이것을 다시 작은 점으로 집속시켰다. 이 펄스는 1조분의 1초도 지속하지 못하지만, 작동하는동안에는 지구 전체가 그 순간에 사용하는 것보다 어마어마하게 더 큰 출력을 낸다. - P12

리버모어 연구소의 레이저 핵융합 계획은 레이저 빔으로 물질을 변화시키는 꽤 특별한 사례이며, 조금 더 평범하게 물질을 가공하는 방법은 수백가지가 있다. - P12

과학자들은 엄청나게 강력한 출력의 레이저 빔을 만들어냈지만, 반면에현미경으로 초점을 맞춘 약한 레이저 빔으로 작은 입자들을 부드럽게 이리저리 옮길 수 있고, 살아 있는 세포의 기관도 이동시킬 수 있다. - P13

대기 오염을 감시하는 기관들은 도시 상공의 공기가 얼마나 더러운지를 여러 가지 색의 레이저 빔이 흡수되는 정도를 비교해서 현장에서 곧바로알 수 있다. 굴뚝 위의 공기를 검사해서 그 굴뚝에서 나오는 오염물의 양을 측정할 수 있다. 또한 성층권의 특정 화학물질을 바로 측정할 수도 있다. - P13

레이저가 발명되자 사람들은 군대에서 살인광선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상상했고, 실제로도 레이저를 이용한 미사일 격추 시도에 엄청난 돈이 쓰였다. 이런 시스템이 얼마나 실용성이 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이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미사일 공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축복이 될것이다. - P14

실제로 살인광선으로서의 군사용 레이저는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매우 드물고 특수한 예일 듯하다. 그러나 레이저에는 실제로 중요한 군사적 응용이 있다. 통신이 그렇다. 물론 이런 용도는 군대에 국한되지않는다. 현대의 탱크, 폭탄, 미사일이 과녁을 몇 미터 차이로 정확하게 때리는 능력은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를 위해 주로 레이저를 이용한다. - P15

레이저는 실용적인 일을 해낼 뿐만 아니라 다재다능한 연구 도구가 되기도 한다. 과학 연구에서 레이저의 장점은 높은 정밀도이다. 레이저는 극단적으로 순수한, 거의 균일한 파장과 비범한 지향성을 가진 광파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광파를 ‘결맞다(coherent)‘고 한다. 결맞다는 말은 모든 파동들이 서로 보조가 맞는 것을 일컫는 전문 용어이다. 결맞는 빛과 전자기파는 매우 정밀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레이저와 메이저가 나오기 전까지는 실현할 수 없었다. - P16

광파는 전자기파의 한 형태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전자기파는 서로 얽혀서 이동하는 전기장과 자기장이다. 작은 점으로 집속한 레이저 빔은 태양 표면보다 수십억 배 강한 빛이 될 수 있고, 따라서 레이저가 쬐는점에는 강한 전기장과 자기장이 형성된다. 이 특별한 능력을 바탕으로 물리학과 공학에서 비선형 광학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분야가 생겨났다.  - P17

과학에서 레이저는 거리를 정밀하게 측정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달까지의 거리를 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험실이나 기계공작실에서 두 점 사이의 거리를 정밀하게 측정할 때도 레이저를 이용한다. 이제 거리 단위는 표준화된 레이저의 파장으로 정의된다. - P17

이제는 중력파 탐지에 레이저를 사용하는 실험이 준비되고 있어서, 우리 은하와 다른 은하의 초신성이 폭발하는 동안에 별의 핵이 붕괴하는 것처럼 거대한 질량이 갑작스럽게 움직일 때 공간과 시간의 구조에서 일어날수 있는 미약한 파문을 탐지하려고 한다. [중력파 탐지는 2016년에 성공했다.- 옮긴이] 중력파를 탐지하려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원자 지름의 10억분의 1 정도의 정밀도로 측정해야 하는데, 레이저를 사용하지 않고는 이처럼 정밀한 측정을 해낼 방법이 없다. - P18

적응광학(adaptive optics)은 대기를 통해 전달되면서어쩔 수 없이 번지는 이미지를 레이저를 이용해 훨씬 또렷하게 볼 수 있다.
밤하늘을 쳐다보면, 별은 늘 조금씩 깜빡거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낭만적이기는 하지만, 천문학자들은 이 효과를 좋아하지 않는다. - P18

레이저의 개발이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마도1945년쯤부터 물리학자들이 레이저로 향하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할 수있을 것이다. 오늘날 레이저는 엄청나게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지만, 1945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이런 뛰어난 기술을 실험에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19

지금까지 메이저와 레이저에 대해 노벨 물리학상이 여섯 번 주어졌고,
그중 하나는 레이저의 발명에 주어졌다(1964년 니콜라이 바소프, 알렉산드르 프로호로프, 찰스 타운스, 1971년 데니스 가보르, 1978년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 1981년 니콜라스 블룸베르헌과 아서 숄로, 1989년 노먼 램지, 1997년 스티븐 추, 클로드 코엔타누지, 윌리엄 필립스). 나는 메이저와 레이저에 주어지는 노벨상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특히 화학과 생물학 분야가 유망하다고 본다. - P20

레이저의 원리


레이저는 복사의 유도 방출에 의한 빛의 증폭(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의 약자이다. (메이저는 복사의 유도 방출에 의한 마이크로파 증폭microwave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radiation의 약자이다.) 레이저는 빛이 분자.원자·전자와 상호작용하는기본적인 방식에 따라 작동한다. - P21

20세기 초부터 닐스 보어, 루이 V. 드브로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같은 물리학자들이 분자와 원자가 빛(또는 다른 전자기파)을 어떻게 흡수하고 방출하는지를 알아냈다. 이렇게 해서 새롭게 생겨난 수학적인 물리학을 양자역학이라고 부른다. 원자나 분자가 빛을 흡수하면, 증가된 에너지에 의해 원자의 일부가 앞뒤로 흔들리거나 빙빙 돈다고 말할 수 있다. - P21

<그림 1>(위)은 원자(굵은 점으로 표시된다)에흡수되는 광자(구불구불한 선으로 표시된다)를 보여준다. 원자 또는 분자가 높은 에너지 준위에서 낮은 에너지 준위로 떨어질 때, 그것들이 흡수할 수 있는 딱 그만큼의 파장을 가진 광자를 방출한다. 이것은 대개 자발적으로일어나고 형광등이나 네온등처럼 보통의 상황에서 분자나 원자가 반짝일때 방출하는 빛이다. - P23

레이저의 원리를 기본적인 열역학의 언어로 명료하게 밝힌 사람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 P23

흡수와 자극 방출이 한꺼번에 일어날 수 있다. 빛이 들어오면서 낮은 에너지 상태의 원자를 높은 에너지 상태로 들뜨게 하고, 동시에 높은 상태의 원자를 낮은 상태로 떨어지게 한다. 낮은 상태에 있는 원자보다 높은 상태의 원자가 더 많으면 흡수되는 것보다 더 많은 빛이 방출된다. 즉, 빛이 더 강해진다. 빛이 들어갈 때보다 더 밝아지는 것이다. - P23

레이저를 만드는 비결은 물질 속의 분자 또는 원자의 에너지를 아주 비정상적인 조건으로, 즉 들뜬상태가 바닥상태(또는 더 낮은 상태)보다 더 많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물질 속에서 적절한 진동수를 가진 전자기 파동이 지나가면 에너지를 잃는 게 아니라 얻게 된다. 광자의 증가가바로 증폭이며, 다시 말해 자극 방출에 의한 빛의 증폭이다. 파동이 물질을 한 번 통과할 때 일어나는 증폭이 그리 크지 않으면, 더 크게 증폭할 수있다. - P25

이 책에서는 물리 법칙을 이렇게 다루는 방법이 발견된 과정, 시작 단계에서의 수많은 시행착오, 실현 과정에서의 막다른 골목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과학자로서 나의 모험과, 예측할 수 없었지만 어쩌면 자연스럽게메이저와 레이저로 연결된 길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이것은 여러 중요한기여자들이 협력하기도 하고 경쟁하기도 하면서 이 분야가 빠르게 성장하는 놀라운 이야기이며, 이것을 과학사회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 P25

2

물리학, 퍼먼 대학교, 분자, 그리고 나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은 주로 아버지가 구입한 시골 농장을 무대로 펼쳐진다. 나의 아버지 헨리 키스 타운스는 사우스캐롤라이나 북서쪽 구석에있는 블루리지산맥 근처 그린빌 변두리에 8만 제곱미터 넓이의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집안은 대대로 이 지역에서 목화와 옥수수를 비롯한 곡물과 사과, 복숭아, 고구마 등을 재배했다. - P27

나는 자연에서 처음 얻었던 영감과 함께, 과학은 대략 우주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친구는 주로 형 헨리와 사촌들, 그리고 집 주변의 도마뱀, 새, 바위, 곤충 등이었다. 형은 천성적으로 생물학을 좋아해서 푹 빠져 있었고, 나도 형의 열정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우리는 집밖의 창살에서 뱀을 키웠고, 애벌레 먹이인 나뭇잎을 침실에 숨겨두었다. 부모님도 결국 이런 일에 익숙해졌다. - P28

우리의 놀이는 대부분이 실용적인 물건을 만들거나 탐구하는 것이었다.
나는 또한 사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내기를 좋아했다. - P29

나는 가끔 해안에 있는 찰스턴까지 가서 그 지역 박물관의 자연사 전시물을 구경했다. 평평한 해안과 만에서 본 동식물과 내가 살고 있는 피드몬트 지역 동식물의 차이에 매료되었다. 두 지역의 지질학적 차이도 인상적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형과 나는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새와 물고기 등을 언제나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리고 돌을 뒤집어서 밑에 어떤 생명체가있는지 알아봤는데, 이런 생물들은 돌을 뒤집어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게 된다. 우리는 야외뿐만 아니라 실내에서 즐기는 취미도 있었다. - P29

어느 해 여름 산속에 있는 할머니의 피서지에 갔을 때 잊지 못할 일이일어났다. 나는 살루다강의 지류에서 그물로 작고 화려한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았다. 피라미의 일종 같아 보였지만, 표준어류도감에는 이 물고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그림이 없었다. 나는 이 물고기를 포름알데히드에 넣어서 이 물고기의 종이 무엇인지 문의하는 편지와 함께 워싱턴 D.C. 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연구소로 보냈다. 답장이 왔는데, 이 물고기가 새로운 종이거나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잡종으로, 같은 물고기를 더 많이 잡아서 보내달라는 말도 적혀 있었다. - P30

아버지는 아마추어 자연학자였다. 어쩌면 아버지는 과학자가 될 수도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젊었을 때 과학은 현실적인 진로가 아니어서, 아버지는 법학을 공부했다. 부모님은 교회, 바른 행동, 학교에 대해엄격했다. 학교에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어려운 일을 겪었다면, 부모님은 그 일을 더 익히도록 해서 우리가 더 잘하도록 했다. - P30

우리는 돈이 많지는 않았지만, 우리 가족은 뿌리와 전통을 자랑스러워했다. 남북전쟁에서 남군의 패배는 20세기 초에도 여전히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나라의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전쟁이 끝난 뒤에 생겨난 여러가지 영향들 중 하나는 사회적 지위의 원천으로서 부를 외면하는 문화였다. 어쨌든 가질 수 있는 부 자체가 많지 않았다. - P31

이 모든 일을 생각할 때, 우리가 이러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교육을 자연스럽고 자동적인 의무로 여기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나는 꽤 열정적인 학생이었고, 부모님은 내가 공부를 따분해하자 7학년을 월반하도록 해주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11학년까지만 있었다. 열여섯 살 여름이 지나고, 나는 당연히 우리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 P32

퍼먼 대학교는 내가 교수님들을 대부분 잘 알 수 있을 정도로 작았고,
어떤 학과에서든 특별히 뛰어난 강의는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학사 운영도유연했다. 나는 개설된 강좌들 중에서 정말로 좋은 과목들을 거의 다 들었다. 그래서 나는 물리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현대 언어에서도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형 헨리는 생물학에서 수석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 - P33

진로에 대한 계획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형과 공유한 자연사에 대한 취미 덕분에 생물학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 P34

생물학 다음으로, 처음에는 수학을 가장 선택하고 싶었다. 수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은 나의 먼 친척이자 훌륭한 선생님인 마셜 얼이었다. 그러나 2학년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물리학 수업을 받으면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그 수업을 담당한 교수는 퍼먼 대학교 물리학과 하이든 토이 콕스 교수였다. 물리학은 풍부한 수학적 논리를 가지고 있었고, 수학보다 현실과 더 잘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서 매력적이었다. - P34

3학년 물리학 수업은 교과서를 모두 다루지 못했고, 나는 나머지 부분을 여름방학 동안에 스스로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그 여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블루리지산맥에 있는 할머니의 작은 별장 근처에서 개울이내려다보이는 이끼로 덮인 바위에 앉아 무릎 위에 특수상대성에 관한 부분을 펼쳐 놓고, 아인슈타인의 논리에 실수가 있다는 놀라운 확신에 도달했다. 나는 점심을 먹으러 갔고, 몇 시간 뒤에 돌아와서 책을 펼쳤다.  - P35

나는 대학 시절에 물리학과 언어만 배우지는 않았다. 물리학 전공의 필수과목은 네 개뿐이었고, 그중 상당 부분은 교과서 공부였다. 나는 또 대학 박물관을 새롭게 꾸미고, 생물학 수집품을 다시 정리하고, 수영 팀에서400미터를 수영하고, 미식축구 응원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했다. 한번은 로즈 장학금을 신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동의했지만 합격하지 못해도 실망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그 장학금은 받지 못했다. - P36

콘스턴트 교수는 기계를 만지면서 손이 더러워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않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는 밴더그래프 가속기 운용에 서툴렀다. 그래서이것이 내가 한 일이었다. 아직 완전히 인지되지 않고 자세하게 알려지지않은 사실의 물리학 이론을 밝혀내고 정리한 것이다. - P37

나는 1936년 봄에 밴더그래프 연구를 마쳤고, 이것으로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 콘스턴트 교수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그의 말은 분명 크게 잘못되었다. "음. 자네는이제 학위 논문을 끝냈어. 하지만 사실 우리 학교에서 1년 만에 석사를 끝낸 사람은 아무도 없네, 그게 무조건 좋아 보이지는 않아. - P38

칼텍 - 낮은 점부터 높은 점까지


내가 듀크 대학교를 그렇게 빨리 떠난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물리학과의 전일제 펠로십에 지원했지만 선택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는 내가 아니라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즉 칼텍에서 온 대학원생에게 돌아갔다. 이것은 나름대로 합당한 일이었다. - P39

어떤 의미에서 나는 실패했다. 내가 처음에 지원한 대학원에서 재정 지원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칼텍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것은 내가 언제나고마워할 만한 실패였고, 운이 좋은 실패였다. 이 일로 말미암아 내가 정말로 원한 것을 바로 추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39

패서디나까지 가는 길은 긴 버스 여행이었고, 공원과 버스에서 잠을 잤다. 나는 앨라배마에서 친척 아주머니 한 분을 방문했고, 텍사스를 관광했고, 뉴멕시코에서 칼즈배드 동굴을 구경했다. 그리고 사막의 뜨거운 더위와 갈증을 겪으면서 그랜드캐니언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올라왔다. 그때나는 초콜릿바 두 개만 가져갔고, 초보의 무지함으로 물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때는 여름이어서 나는 협곡의 꼭대기로 돌아오며 선인장의 과육을 빨아먹고 있었다. - P40

당시에 좋은 물리학과 대학원에 입학하기는 오늘날만큼 어렵지 않았기때문에, 물리학과 학생들은 정말로 각양각색이었다. 진짜 문제는 비용이었다. (나는 칼텍에서 한 학기를 마친 뒤부터 조교가 되었고, 남은 대학원 공부를위한 비용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함께 지내기에 흥미로웠다. 그들은 좋은 이야기를했고, 삶에 대해 흥미롭고 다양한 태도를 가졌지만, 몇몇은 그리 좋은 물리학자는 아니었다. - P41

칼텍은 학생 수도 많지 않고 캠퍼스도 크지 않았으며 격식에 얽매이지않아 학문들 사이에 흥미롭고 건강한 교류도 활발했다. 예를 들어 이미 화학과 학과장이 된 라이너스 폴링은 내가 듣고 있던 리처드 톨먼의 통계역학 강좌를 청강했다. - P42

그 시절 정부는 물리학 연구 지원에 매우 인색했으며, 리서치 코퍼레이션과 같은 민간단체나 개인이 연구비를 대고 있었다. - P43

나는 이런 태도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과거에 나는 물리학을 포기하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은 적이 있지만, 그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의 눈이 자꾸 말썽을 부려 전문가와 상담했다. 그는 내가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그러니 다른 진로를 알아보라고 했다. - P43

그 시절 칼텍에는 여성이 없어서 (내가 입학하기 몇 년 전에 한 여학생이 착오로 입학한 적은 있었다) 수도원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주 좋은 곳이었다. 나는 패서디나 바흐 협회라는 합창단에 가입했는데, 그 모임에는 몇명의 여성들이 있었다. 나는 그 도시가 좋았다. 그 시절에는 스모그도 없었고, 지역 주민들은 칼텍 학생들에게 매우 우호적이었다. - P44

물론 우리는 모두 당시의 세계 정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전쟁이 다가오고 있고 우리도 징집될지 모른다는 느낌이 있었다. 몇몇 학생들은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그들의 표현에 따라 "평화의 행진을 벌이며,
그들이 보기에 전쟁광들과 전쟁으로 돈을 벌려는 사기업들에 항의하고 있었다. - P44

나의 연구실 겸 사무실은 물리학과 건물 지하에 있었다. 벽토를 바른 크고 튼튼한 이 건물은 밀리컨이 시카고에서 온 후에 지어졌고, 칼텍에 지어진 주요 사각형 건물의 일부였다. - P45

동위원소를 분리하려면 이 장치를 약 3주 동안 밤낮으로 쉬지 않고 고장 없이 계속 끓여야 했다. 그래서 나는 장치의 작동을 감시하느라 자주밤을 지새웠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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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성이란 의미 있는 잡음과 의미 없는 잡음 모두에서 의미있는 패턴을 찾아내는 경향임을 상기하라.³⁸ 우리의 사고에서 이 특징이 진화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사고 실험을 해보자. - P120

38 Michael Shermer, The Believing Brain: From Ghosts and Gods to Politics and Conspiracies-how We Construct Beliefs and Reinforce Them as Truths (New York: Henry Holt, 2011, 59-86. - P374

음모 탐지 능력이 진화했다는 증거는 복잡성, 보편성, 영역 특이성, 상호 작용성, 효율성, 기능성 등 모든 심리적 적응에 필요한 요건을 충족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⁴² 음모론은 패턴 및 행위자 탐지, 동맹 탐지, 위협 관리 같은 복잡한 소인을 포함하고, 보편적이며 인간의 삶과 사고 영역에 특화되어 있고, 다른 인지 영역과 상호 작용하며, 탐지 단서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촉발한다. - P122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위험한 세상에 살며 건설적 음모주의를 기본 태도로 여길 수 있다. 위험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면 해를 입지 않은 것에 더해 약간의 편집증 정도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아도 된다. 위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 건설적 편집증을 갖는 것은 보상을 받는다. 다시 말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라! 이 모델에서 건설적 음모주의는 일종의 패턴으로 우리 조상들이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에 더 집중함으로써 이득을 얻었던 세상에 대한 믿음이다. - P122

42 David P. Schmitt and June J. Pilcher, "Evaluating Evidence of Psychological Adaptation:How Do We Know One When We See One?," Psychological Science, 15, no. 10 (2004),
643-649. - P375

그러므로 건설적 음모주의는 패턴성의 형태로 - 뇌에 깊은 진화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만 그 외에도 더 많은 것이 있다. 음모론은 보통 사악한 일을 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다른 사람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 패턴에 의미, 의도, 행위자를 불어넣는 경향인-행위자성 개념을 설명 모델에 추가할 필요가 있다. - P123

예를 들어 어두운 방에서 빛을 반사하는 점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피험자는 특히 점이 두 다리와 두 팔 모양을 하고 있다면 그 점이 사람이나 의도적인 행위자를 나타낸다고 추론한다.⁴⁴ 아이들은 태양이 생각을 하며 자신을 따라다닌다고 믿는다. 태양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종종 웃는 얼굴을 추가하여 태양에 행위자성을 부여한다.⁴⁵ - P123

44 Bruce M. Hood, Supersense: Why We Believe in the Unbelievable (New York: Harper Collins,
2009), 213.

45 Hood, Supersense, 183. - P375

음모론을 믿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은 "컴퓨터 화면에서 움직이는 삼각형 모양 같은, 인간이 아닌 물체가 마치 생각과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행동한다고 말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즉 다른 사람이보지 못한 곳에서 의미와 동기를 추론해 낸다."⁴⁸ - P124

마지막으로 음모론 신봉자는 얼마나 편집증적일까? 이 질문은롤랜드 임호프 Roland Imhoff와 피아 램버티 Pia Lamberty가 ‘편집증과 음모론 믿음 사이의 연결과 단절에 대한 더 세분화된 이해‘를 위해던진 질문이다. 이 연구자들은 한 건의 메타 분석과 두 건의 상관관계 연구를 조사하여 둘 사이의 연관성을 추정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둘 다 타인의 불길한 의도를 가정하지만 음모론에 대한 믿음은 편집증(모든 사람)보다 타인이 누구인지(권력 집단)에 대해 더 구체적이다. 반대로 편집증은 음모론(사회 전체)보다 부정적인 의도의 대상이누구(자기 자신)인지에 대해 더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점과 음모 믿음이 편집증 같은) 개인 (간의) 통제 및 신뢰가 아니라 정치적 통제및 신뢰와 뚜렷한 연관성을 보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음모믿음이 정치적 태도를 반영하는 반면 편집증은 자기 관련 믿음이라는 점에서 두 가지를 서로 다른(비록 상관관계는 있지만) 구성으로 취급할 것을 제안한다.⁴⁹ - P125

49 Roland Imhoff and Pia Lamberty, "How Paranoid Are Conspiracy Believers? Toward aMore Fine-Grained Understanding of the Connect and Disconnect Between Paranoiasand Belief in Conspiracy Theories," 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48, no. 7 (2018),
909-926. - P375

2장

음모론과 음모주의자의간략한 역사

음모주의의 과학을 향하여


2019년 3월 15일 금요일, 총기 다섯 정을 소지한 28세의 호주남성이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모스크 두 곳에 난입해총기를 난사하여 50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 P59

범인이 2012년 프랑스 작가 르노 카뮈 Renaud Camus가 출간한 같은 제목의 책에서 영감을 받아 쓴, 74페이지 분량의 장황한 선언문 《거대한 대체 The Great Replacement》에서 한 가지 해답을 찾을 수있을 것이다.² - P59

2장 음모론과 음모주의자의 간략한 역사



2 Norimitsu Onishi, "The Man Behind a Toxic Slogan Promoting White Supremacy,"
New York Times, September 20, 2019, https://nyti.ms/2Q9WVBu/.
Dicht - P365

뉴질랜드 살인범의 이름은 브렌튼 해리슨 태런트Brenton HarrisonTarrant이며 그의 선언문은 세 번 반복되는 "그것은 출산율이다"라는 첫 문장을 시작으로 이 음모론에 초점을 맞춘 백인 우월주의적 비유로 가득하다.⁴ - P60

4ㅍBrenton Harrison Tarrant, "The Great Replacement: Towards a New Society, 74-pagemanifesto, https://bit.ly/3sse/iT/. - P365

레인은 음모론에 빠져 쓴, 나치 총통이 으르렁대는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서 영감을 받았다.


우리가 싸우는 목적은 우리 민족과 인민의 존립 및 번식, 자녀의 부양과 피의 순수성,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여 우리 민족이 우주 창조주가 부여한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성숙하게 하려는 것이다. 모든 생각과 사상, 모든 교리와 지식은 이러한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 검토되고 그 유용성에따라 사용되거나 거부되어야 한다.¹⁰ - P61

10 Barry Balleck, Modern American Extremism and Domestic Terrorism: An Encyclopedia ofExtremists and Extremist Groups (Santa Barbara, CA: ABC-CLIO, 2018), 40 - P365

앞 장에서 음모를 두 명 이상의 사람 또는 집단이 비도덕적, 불법적으로 이득을 얻거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비밀리에 모의, 행동하는 것으로, 음모론을 실제 여부와 관계없이 음모에 대한 구조화된 믿음으로, 음모론자 또는 음모주의자를 실제 여부와관계없이 가능한 음모에 대한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으로 정의한 것을 상기하라. - P62

역사학자 앤드루 맥켄지 - 맥하그Andrew McKenzie-McHarg는 1967년 CIA 긴급 문건 1035-906를 토대로 ‘음모론‘이라는 꼬리표가처음 사용된 시기를 추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단어는 존 F.
케네디 암살을 둘러싼 의심이 커지면서 《워런위원회 보고서 WarrenCommission Report (케네디 대통령 암살은 리 하비 오즈월드의 단독 범행이며 다른 어떤 인물이나 단체가 개입되지 않았음을 천명한 보고서. 이 보고서가 오히려 불신을 촉발했다. 옮긴이)에 ‘음모론이라는 경멸적인 꼬리표‘
를 붙이기 위해 사용됐다.¹⁵ - P63

15 Andrew McKenzie-McHarg, "Conspiracy Theory: The Nineteenth-Century Prehistoryof a Twentieth-Century Concept," in Joseph Uscinski (ed.), Conspiracy Theories and thePeople Who Believe Them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9), 62-81. - P366

정치학자 랜스 드헤이븐스미스 Lance deHaven-Smith는 "오늘날 음모 믿음에 대한 전면적 비난은 정의상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말하며 196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와 《워런위원회 보고서》를 의심하는 사람들을 망신 주려는 시도를 예로 들었다.¹⁹ - P64

19 Lance deHaven-Smith, Conspiracy Theory in America (Austin: University of Texas Press,
2013), 25-27.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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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출간 준비를 하면서 글을 추가하거나 수정하면서 구성을 약간 바꾸었다. 추가한 내용은 현대미술을 둘러싼 상황 리포트, 수정한 것은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이다. ‘가십‘과 ‘견해‘라고 대치해도 좋을 듯싶다. - P9

견해는 말할 것도 없고, 가십거리도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현대미술이 ‘미술(美術)‘이 아닌 ‘지술(知術)‘인 이상(6장 참조), 미술계의 움직임이나 미술을 둘러싼 상황의 변화는 작품의 가치를 크게 좌우하며, 작품의 감상법을 바꾸기까지 한다. 시장에서 - P9

연재가 끝난 2017년, 현대미술은 아니지만 <살바토르 문디(구세주)>가 큰 화제가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예수그리스도의 초상화로, 그해 11월 15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수수료포함 4억 5,031만 2,500달러(약 5,000억 원)에 낙찰되었다. 미술품 낙찰가로는 (그 당시) 사상 최고가다.
정말로 다빈치의 손으로 그린 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지만, 여기에서는 작품의 진위는 따지지 않고자 한다. 문제는누가 이런 고액의 미술품을 손에 넣었느냐인데, 주요 언론 보도로 유추해보면, 아무래도 무함마드 빈 살만인 듯하다. - P11

그러나 왕세자는 부를 쌓는 데에 열을 올려, 비밀리에 개인적인 물욕을 만족시키고 있었다. 「뉴욕타임스」의 잇따른 특종에 의하면, 20151년에는 한눈에 반한 중고 요트를 약 6,500억 원에, 파리 교외에 있는 루이 14세의 성이라 불리는 대저택을 약 3,900억 원에 사들였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와 합치면 1조 5,000억 원에 가까운 엄청난 재산이다. 전 인구의 2~3%를 차지하는 외국인 노동자에게일을 시켜, 그로 인해 생긴 불로소득으로 한 쇼핑이다. - P12

"선택하고, 이름을 붙이고,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마르셀 뒤샹이정한 ‘현대미술의 규칙‘은 항상 그 기저에 있으며 이는 변함이 없다. 감상자가 작품을 해독하고 해석하는 행위가 있어야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는 구도도 거의 정착되었다. - P12

2017년에 개최된 제57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테마는 「Viva Arte Viva」였다. 지난 회와는 확연히 달라진 다소 가벼운 주제에, 미술계의 식견있는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 반면, 「도큐멘타 14」는 그 어느 때보다 급진적이었고(7장 참조),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2017에도, 베니스의 각국 파빌리온의 일부에도 뛰어난 정치적인 작품은 있었다. - P13

『뉴스위크』(일본판)의 연재에 쓴 「중국의 검열에 가담한 히로시마시 현대미술관」도 표현의 자유를 침범한 한 예이다. 일본의 공립 미술관에서도 이런 추악한 행태가 은밀히 벌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언론이나 아트 저널리즘은 그에 관한 후속 기사를 한 줄도 쓰지 않는다. - P13

미술은 훨씬 자유롭고 유연한 것이어야 한다.
8장에서 언급할 현대미술의 일곱 가지 창작 동기 중 하나만 돌출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 P14

한마디로 말하면, 이 시대는 광기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2002년에 간행한 졸저(편저) 『백 년의 우행』은 20세기에 인류가 범한 우행에 대한책인데, 2014년에 속편 속 · 백 년의 우행을 내면서, 영문 제목을 『OneHundred Years of Idiocy』에서 『One Hundred Years of Lunacy』로 변경했다. 속편은 2001년의 미국 9.11 테러 사건부터 2011년의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까지를 다루고 있다.  - P14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6장에서 다룰 사뮈엘 베케트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죽은 상상력을 상상하라." 외람될지 모르나 이 말을 모든 미술애호가들에게 선사하고 싶다. 상상력의 죽음은 현대미술의 죽음일뿐더러, 인간성의 죽음임에 다름 아니다.


마르셀 뒤샹 서거 50주년, 교토에서
오자키 테츠야 - P15

3장 비평가

비평과 이론의 위기


. 이리하여 동아시아에서는 21세기 초에 우선 일본, 이어서 한국. 그리고 중국에 영어 혹은 2개 국어로된 현대미술 잡지들이 잇달아생겨났고, 경제 침체와 함께 조용히 사라져 갔다. 일본에서 내가 창간한 『아트 잇』(Art iT)은 현재는 온라인에서만 볼 수 있다.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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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날 밤은 하마마쓰초의 호텔이었다. 전혀 내키지 않았지만 교코는 기운을 쥐어짜서 출근했다. 막판에 못 간다고 하는 일이 많으면 블랙리스트에 올라간다. 게다가 다른 컴패니언들을 만나면 뭐든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 P56

고통의 2시간이 지나가고 대기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아야코가 곁으로 다가왔다.
"그 얘기 들었어? 에리하고 사장이 사귀는 사이였다는거."
교코는 놀라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누구한테 들었어?"
"다들 알고 있어. 진짜 굉장한 뉴스지?" - P57

"뭔 소리야? 사장이랑 관계가 틀어지는 바람에 자살한 게틀림없잖아."
여기서 아야코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 P57

호텔을 나와 지하철역까지 교코는 아야코와 함께 가기로했다.
"아까 그 얘기 말인데."
아야코는 사건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교코로서도 바라는 바였다.
"에리가 실은 삼각관계로 고민하다가 자살했다. 진짜 바보 같아."
"삼각관계?" - P58

"사장과 요코 팀장은 상당히 깊은 사이야. 그러니까 에리와는 잠시 잠깐 불장난이었어. 근데 에리는 진지하게 좋아했고 혼자 속을 끓이다가 결국 자살까지 한 거겠지."
"에리가?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그거 말고는 자살할 이유가 없잖아."
그런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 P60

4


본인들은 알지 못했지만 그날 밤 교코와 시바타는 호텔앞에서 서로 스쳐 지나갔다. 시바타가 에자키 요코의 진술을 듣기 위해 호텔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에자키 요코가 대기실에서 받은 전화는 시바타가 건 것이었다. - P61

"몇 가지 확인할 게 있어서요."
가토가 운을 떼자 마루모토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다 교코가 말했던 대로 긴 얼굴이 기름기로 번들거렸다. 어딘지 기복이 부족한 밋밋한 얼굴이어서 기품 없는옛 귀족 같은 풍모였다. 37세라고 했지만 그보다 나이 들어보이는 건 구부정한 어깨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신과 에리 씨의 교제가 시작된 게 언제부터죠?" - P62

"오늘 아침에 여기 소속 컴패니언 몇 명을 만나봤는데 그중 한 사람이 당신에게 꽤 오래전부터 사귀던 여자가 있을거라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같은 컴패니언 동료라던데요?
그 여자의 이름까지는 묻지 말아 달라고 손사래를 치긴 했지만."
말을 하면서 가토는 핥듯이 마루모토를 지켜보았다. - P63

"에리 씨는 당신과 요코 씨의 관계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
시바타가 물었지만 마루모토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비밀로 하긴 했지만 어쩌면 눈치를챘는지도 모르죠."
"당신, 에리 씨를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요? 단순히 장난삼아 만났어요?"
"아뇨, 장난삼아 만난 건 아니었어요. 진심이었습니다."
"그럼 요코 씨 쪽이 장난이었나?" - P64

에자키 요코는 약속한 8시 40분에 딱 맞춰서 나타났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긴 머리가 검은 스웨터 어깨까지 흘러내렸다. 오다 교코나 죽은 마키무라 에리를 생각해보면 컴패니언은 대부분 그 비슷한 체형의 여성을 뽑는 모양이다.
"아직도 물어볼 게 있으신가요?"
요코는 약간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낮에도 다른 수사원이다녀갔기 때문일 것이다. - P65

요코의 차가운 말투는 변함이 없었다.
"당신은 마루모토 사장과 에리 씨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다던데, 맞습니까?"
"네."
그녀는 새침한 얼굴로 턱을 쓰윽 치켜들었다.
"그 일로 마루모토 사장과 얘기한 적은 없었어요?"
"얘기라니, 뭘요?"
"그러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라든가, 그런 얘기로 다툰 적은 없어요?" - P66

"마루모토 사장은 당신과도 에리 씨와도 헤어질 생각이었다고 하던데요?"
"네, 그랬나 봐요. 하지만 나한테는 아직 헤어지자는 말은안 했어요."
"이제 곧 할지도 모르죠."
"그럴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뭐, 그것도 괜찮아요."
"그것도 괜찮다니, 헤어져도 된다는 말입니까?"
"네." - P67

5


(중략). 에리에 대한 소식은 그날 이후로는 더 이상 신문에 실리는 일도 없었다. 장례식이 어딘가에서 치러졌을 테지만그녀의 유해를 누가 인수해갔는지도 교코는 알지 못했다.
에리의 원룸에 전화를 해봤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게다가 옆집 형사는 계속 집에 돌아오는 기척이 없었다. - P68

"며칠째 경찰서에서 잤더니만, 꼴이 말이 아니죠? 밤늦게이런 집에 들어와봤자 편히 쉴 수도 없고."
얼핏 들여다보니 현관 앞까지 이사 박스와 비닐 봉투가 그대로 쌓여있었다. 아직도 이삿짐 정리를 못한 모양이었다.
"여태 밥도 못 먹었어요?"
시바타의 손에 들린 컵라면을 보고 교코가 물었다. 그는아랫입술을 툭 내밀고 지긋지긋하다는 얼굴이었다. - P69

"교코 씨가 클래식 팬이라는 건 예상을 못 했는데요?"
그가 감탄한 듯 말했다.
"아니에요, 이제부터 팬이 될 생각이죠." 교코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건 아까 레코드 대여점에서 빌려온 거예요."
"왜 갑자기 클래식 팬이 될 생각을 하셨을까?"
"신데렐라의 조건이거든요. 내가 찍은 왕자님이 클래식을좋아하셔서." - P70

"그 사건 말인데요. 아무래도 자살로 결론이 날 것 같아요."
교코는 카펫에 자리를 잡고 그를 올려다봤다.
"뭔가 밝혀진 거예요?" - P71

"에리가 어떻게 그런 걸 갖고 있었죠?"
교코가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며 캐물었다.
"바로 그게 문제였어요. 조사해보니 본가에서 가져왔더라고요."
"본가라뇨?" - P72

"에리 씨가 사건 발생 사흘 전에 본가에 갔었어요. 청산화합물은 그때 가져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죠."
"청산화합물을 본가에서? 에리의 본가가 도금공장 같은곳이에요?"
교코의 말에 스파게티를 먹던 시바타가 켁 하고 사레들린소리를 냈다. 서둘러 물을 마시더니 교코 쪽을 보았다.
"도금공장에서 청산화합물을 사용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 P73

"아니, 약간 다른 의견이 있긴 해요."
시바타의 말에 교코는 얼굴을 들었다.
"다른 의견이라면, 자살이 아니라는?"
"아뇨, 결과적으로 자살이라는 건 다름이 없지만, 독극물을 입수한 시점에는 동반자살을 할 계획이었던 게 아니냐는 의견이에요. 하지만 결국 자기 혼자 죽기로 했다. 뭐, 그런 설이죠." - P74

"그래서 결국 범죄 혐의는 없다는 거네요?"
교코가 말했을 때, 시바타 옆에 놓인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교코는 그쪽 의자에 앉아 수화기를 귀에 댔다. 그리고 네, 라는 대답만 했다. 장난 전화일 경우를 대비해 먼저이쪽 이름을 밝히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오다 교코 씨입니까?"
남자 목소리였다. 어딘지 귀에 익었다.
"네, 그런데요."
"지난번에 만난 다카미라고 합니다만, 기억나십니까?" - P75

"왕자님이 전화해주신 모양이죠?"
"네, 그래서 말인데, 형사님께 부탁이 있어요."
교코는 오른손으로 시바타의 무릎을 잡고 왼손으로는 공손히 손 인사를 했다.
"내일 우리 회사에 전화해서 저녁에 오다 교코를 조사할게 있으니 일을 좀 빼달라고 말해주세요."
시바타는 어엇, 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 P76

"에리하고도 자주 얘기했었어요. 꼭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하자고 돈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당연히 더 좋잖아요?"
"그건 흠, 글쎄요."
시바타는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친구가 죽은 참에 불경스럽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가행운의 기회를 잡으면 에리도 기뻐해줄 거예요. 어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글쎄요, 난 모르겠네요." - P78

"단정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요."
시바타는 옆에 있던 컵을 움켜쥐며 말을 이어갔다.
"그 호텔방에는 원래 유리컵 두 개가 비치되었어요. 그중하나를 에리 씨가 사용했는데, 자세히 보니까 또 다른 컵에도 살짝 물기가 있더라고요. 그렇다면 누군가 또 한 사람이썼다는 얘기가 되겠죠."
"그 방이라면 우리 컴패니언들이 먼저 이용했어요. 그러니까 컴패니언 중의 누군가가 컵을 썼는지도 모르죠. - P79

"자, 문제는 여기서부터예요. 교코 씨라면 이 컵에 독을어느 정도나 넣을까요?"
"(중략)."
"이 물을 어떻게 마시죠? 단숨에 마실까요, 아니면 조금씩 홀짝홀짝 마실까요?"
"물론 단숨에 마시겠죠. 찔끔찔끔 마시면 괜히 더 고통스러울 것 같아요." - P80

"여기서 의문이 생겨요. 자살자의 심리를 살펴보면 대개는 단숨에 마실 수 있는 음료를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에요.
그렇다면 에리 씨가 맥주를 선택한 건 이상하죠. 지난번에교코 씨에게도 물어봤지만, 에리 씨는 술이 그리 세지 않아서 맥주 한 잔이 적정량이라고 했어요. 즉 그녀에게 맥주는 결코 마시기 쉬운 음료가 아니었어요. 실제로 죽을 생각이었다면 역시 물이나 주스 쪽을 선택하지 않겠어요?"
(중략). 아닌 게 아니라 이승의 마지막 음료로 그리 좋아하지도않는 맥주를 선택한 것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 P81

3장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1

다음날 오후, 시바타는 퀸호텔에 찾아가 사체 발견 당사자인 지배인을 만났다. 도쿠라라는 이름의 지배인은 마흔이넘은 마른 체형의 남자였다.
"그 사건은 이미 해결된 거 아닌가요?"
도쿠라는 명백히 영업에 방해가 된다는 눈치였다.
"잠깐 몇 가지만 확인하면 돼요." - P84

시바타는 그 사슬 하나하나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예전에 사슬 한 개를 펜치로 벌려서 풀고 외부로 탈출한 뒤에 다시 이어놓는 트릭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그런조작을 한 흔적은 없었다.
(중략).
이름은 모리노라고 했었다.
"처음에 마루모토 씨와 함께 이 방에 왔을 때, 분명 도어체인이 걸려있었던가요?"
"네, 확실합니다." - P86

"그 펜치 말인데요, 그걸 항상 비치해두는 거예요?"
"그건 말이죠." 도쿠라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뒤를 이었다.
"이번 같은 경우가 있기 때문에 우리 호텔에서는 미리 철저히 준비해둔 겁니다."
"그렇군요. 도어체인을 절단하고 안에 들어간 다음에는어떻게 했는지, 얘기해주세요."
"그 얘기라면 지난번에도......."
"아, 다시 한번 듣고 싶어서요." - P87

"그렇습니다. 마루모토 씨가 밤비 뱅큇 사람이 아직 호텔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찾아봐달라고 해서……………."
그렇다면 그 시점에 이 방에 남아있던 사람은 마루모토와도쿠라뿐이다. 게다가 도쿠라는 전화를 걸고 있었다. 시바타의 시선이 욕실로 향했다. 그곳에 범인이 숨어있었고 마루모토가 그를 도주하게 해줬을 가능성은 없을까. - P88

"도쿠라 씨, 체인을 자를 때 나온 파편이 없는데요? 그건어디 있죠?"
"어디냐니, 그야 경찰에서 가져갔죠. 조사한다면서."
"아 참, 그렇지."
시바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도 몇 번이나 고개가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래, 알겠네. 그렇게 된 건가. 그런 수법을 쓰다니 대단하네…....... - P89

범인, 마루모토 본인이거나 마루모토의 공범은 역시 아까생각했던 대로 펜치 등을 사용해 사슬 하나를 벌려 밖으로나가고 그다음에 다시 한번 그 사슬을 이어둔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는 펜치의 흔적이 남아버린다. 그래서 나중에 펜치를 쓸 때 그 사슬 부분부터 절단했다. - P90

다만 이 추리에도 문제점이 있었다. 그런 상황이 되었을때, 이 호텔에서는 반드시 펜치를 사용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어야 한다.
"도쿠라 씨, 펜치를 항상 준비해둔다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그걸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까?"
"있었죠." 도쿠라가 대답했다. - P90

"절단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셨는데, 이 사슬하나를 펜치 같은 것으로 벌린다는 방법도 있지 않나요?"
(중략).
"그것도 가능하긴 한데, 오히려 손이 더 많이 갑니다."
"왜죠?"
"현재 거기에는 없지만 도어체인에 가죽커버가 씌워져 있어요. 사슬 하나를 풀기 전에 우선 그 가죽커버부터 벗겨내야 합니다. 그러느니 아예 한꺼번에 잘라내는 게 빠르죠." - P91

가죽커버가 씌워져 있었다면 사슬 하나를 벌리고 탈출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 아무도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할 텐데……."
"그래서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습니까." 도쿠라가 내뱉듯이 말했다.
"도어체인은 안쪽에서가 아니면 걸 수도 풀 수도 없어요.
더구나 바깥쪽에서는 절대로 풀 수가 없다니까요." - P92

 2

(중략).
"너무 일찍 왔나요?"
"아뇨, 딱 좋았어요."
교코의 말에 그는 다시 하얀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오늘 타고 온 차는 소어러였다. 교코가 조수석에 앉고 그가 핸들을 잡았다. - P93

프랑스 요리와 이탈리아 요리 중에 어느 쪽이 좋으냐고물어서 교코는 이탈리아라고 대답했다.
"이탈리아 요리를 좋아해요?"
"네, 《장미의 이름》을 보고 이탈리아 팬이 됐어요."
"아, 숀 코넬리? 나도 그 영화 봤어요. 아주 재미있던데요."
그런 식당이라면 아마도 아오야마 근처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소어러는 세타가야의 주택가 한복판을 달려갔다. - P94

그렇게 다카미가 적당히 주문을 했다. 와인도 시켰는데 음주운전을 하게 되는 게 아닌지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지난번 일은 그 뒤에 어떻게 됐어요?"
웨이터가 나간 뒤, 다카미가 물었다. 지난번 일이라니, 하고 어리둥절했지만 곧바로 에리 얘기라는 걸 알았다.
"잘은 모르지만, 자살일 가능성이 높은 모양이에요." - P95

"교코 씨는 컴패니언 일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됐어요?"
"대략 말하면......" 교코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헤아려봤다. "3년 정도?"
"계속 지금 그 회사였어요?"
"아뇨, 1년 전에 다른 곳에서 옮겨왔어요. 지금 회사는 설립한 지 아직 1년 반밖에 안 됐거든요."
웨이터가 와인을 가져와 두 사람의 잔에 따라주었다. - P95

"상당히 재미있는 사업인 것 같아서…………. 어떤 사람이 운영하는지 궁금했어요."
"별로 재미있는 일도 아니에요."
"그래요? 하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오르되브르가 나와서 대화가 끊겼다. 굴을 입에 넣으며교코는 다카미의 표정을 관찰했다. 이 사람은 오늘 무엇 때문에 나를 만나자고 한 걸까………….. - P96

"프리마돈나 모리시타 요코 씨는 역시 대단해요. 요즘 한창 궤도에 올랐다고 할까. 완성 단계라고 할까. 지난번에《백조의 호수》를 보고 왔는데 정말 훌륭했어요. 제3막의 흑조에서 서른두 번의 턴을 발끝 위치가 거의 밀리는 일 없이 해내더군요."
잘 알지 못하는 이런 화제가 나올 때, 교코는 방실방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준다. 머릿속에서는 발레 책도 사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가 다시 사건에 대한 얘기를 꺼낸 것은 식후의 에스프레소 커피가 나왔을 때였다. - P97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올 때, 다카미는 그녀에게 자동차 키를 건넸다.
"미안하지만 먼저 타고 있을래요? 점장에게 인사하고 올테니까 금방 끝나요."
소어러 조수석에 앉아 교코는 한 차례 심호흡을 했다. 많이 먹었는데도 그리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카미는 왜 그렇게 에리의 죽음을 궁금해하는 걸까. - P98

교코는 괜히 원망스러워서 그 전화를 흘겨보았다. 하필이럴 때 울릴 게 뭐람.
하지만…………….
만일 그의 가족의 급한 전화라면 어쩌지? 교코가 전화를받지 않은 것을 나중에 알고서 센스 없는 여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 여자라면 다카미 슌스케의 아내가 될 자격이 없다고 할지도 모르는데... - P99

교코의 귀에 뭔가 들려왔다. 소음인가? 사람 소리인가? 교코는 수화기에 귀를 바짝 댔다.
그것은 흐느껴 우는 소리였다. 전화 너머에서 누군가 울고있었다. 그것은 깊고 음울한 슬픔에 휘감긴 듯한 소리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것은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 P99

그때 톡톡 소리가 나서 그녀는 작은 비명을 올렸다. 돌아보니 다카미가 창유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후우 안도하며그녀는 도어록을 풀었다.
"미안해요." 그가 사과하면서 차에 올랐다.
"어때요. 제법 괜찮은 레스토랑이었죠?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고....... 아, 내 얼굴에 뭔가 묻었습니까?"
"아, 아뇨." 교코는 고개를 저었다. "저녁,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는 프랑스 요리를 잘하는 곳을 소개하죠. 맛있는와인을 종류별로 구비한......."
말을 끊은 것은 다시 전화가 울렸기 때문이다. - P100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화기를내려놓고 차의 엔진을 켰다. 하지만 사이드브레이크를 풀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것처럼 교코 쪽을 보았다.
"혹시 전화・・・・・・ 받았어요?"
나지막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아뇨."
교코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한심할 만큼 서툰 연기였다.
다카미는 시선을 앞으로 돌리고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그리고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 P101

3


수많은 차량이 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교코는 조금 전의전화에 대해 생각했다. 그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먼저 그 얘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물어보면 안 될 듯한 뭔가가 다카미의 옆얼굴에서 배어 나왔기 때문이다.
"다음에 또 만나고 싶군요."
교코의 원룸에 도착했을 때, 그가 말했다. 무슨 목적으로만나려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교코는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목적이 어떻든 상관없다.
(중략).
일단 자주 만나다 보면 기회도 생길 것이다.
"네, 다음에는 제가 직접 요리해서 대접해드릴게요."
마음먹고 말을 꺼냈다. - P102

집에 들어가기 전에 시바타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부루퉁한 굵은 목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다.
"어떻게, 왕자님과의 만남은 잘됐어요?"
그는 교코의 얼굴을 보자마자 말했다.
"무승부라고나 할까요."
그런 영문 모를 대답을 하고 교코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늘 미안해요. 덕분에 아주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려고 잠깐 들렀어요." - P103

"실은 오늘 교코 씨 회사에 다녀왔어요."
시바타가 캔의 마개를 치익 당겼다.
"어머, 나 때문에 일부러 간 거예요?"
"교코 씨의 땡땡이만을 위해 내가 거기까지 갔겠어요? 마루모토 사장의 평판을 다른 직원들에게 넌지시 물어보러갔죠."
"사장을 의심하는 거네요?"
"발견자를 의심하는 건 수사의 기본이에요. 덕분에 딱 두가지, 마음에 걸리는 걸 발견했죠." - P104

"첫째로 마루모토와 에리 씨의 관계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에요. 에자키 요코와의 관계는 아는 사람이 꽤 많았는데."
(중략).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마루모토의 출신지예요. 그자도 나고야 사람이더라고요." - P105

시바타가 맥주를 풋 하고 뿜었다.
"교코 씨가 왜 거길?"
"아니, 나도 갈 수 있죠. 에리의 장례식에도 못 갔는데 이참에 향불이라도 올려주고 싶어요. 게다가 내가 함께 가면 형사님도 말하기가 훨씬 수월하잖아요."
"회사는 또 땡땡이?"
"그건 괜찮아요. 내일은 다행히 일이 없거든요. 어때요. 정해졌죠?"
"허참." 시바타가 쓴웃음을 지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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