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날 밤은 하마마쓰초의 호텔이었다. 전혀 내키지 않았지만 교코는 기운을 쥐어짜서 출근했다. 막판에 못 간다고 하는 일이 많으면 블랙리스트에 올라간다. 게다가 다른 컴패니언들을 만나면 뭐든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 P56

고통의 2시간이 지나가고 대기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아야코가 곁으로 다가왔다.
"그 얘기 들었어? 에리하고 사장이 사귀는 사이였다는거."
교코는 놀라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누구한테 들었어?"
"다들 알고 있어. 진짜 굉장한 뉴스지?" - P57

"뭔 소리야? 사장이랑 관계가 틀어지는 바람에 자살한 게틀림없잖아."
여기서 아야코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 P57

호텔을 나와 지하철역까지 교코는 아야코와 함께 가기로했다.
"아까 그 얘기 말인데."
아야코는 사건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교코로서도 바라는 바였다.
"에리가 실은 삼각관계로 고민하다가 자살했다. 진짜 바보 같아."
"삼각관계?" - P58

"사장과 요코 팀장은 상당히 깊은 사이야. 그러니까 에리와는 잠시 잠깐 불장난이었어. 근데 에리는 진지하게 좋아했고 혼자 속을 끓이다가 결국 자살까지 한 거겠지."
"에리가?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그거 말고는 자살할 이유가 없잖아."
그런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 P60

4


본인들은 알지 못했지만 그날 밤 교코와 시바타는 호텔앞에서 서로 스쳐 지나갔다. 시바타가 에자키 요코의 진술을 듣기 위해 호텔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에자키 요코가 대기실에서 받은 전화는 시바타가 건 것이었다. - P61

"몇 가지 확인할 게 있어서요."
가토가 운을 떼자 마루모토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다 교코가 말했던 대로 긴 얼굴이 기름기로 번들거렸다. 어딘지 기복이 부족한 밋밋한 얼굴이어서 기품 없는옛 귀족 같은 풍모였다. 37세라고 했지만 그보다 나이 들어보이는 건 구부정한 어깨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신과 에리 씨의 교제가 시작된 게 언제부터죠?" - P62

"오늘 아침에 여기 소속 컴패니언 몇 명을 만나봤는데 그중 한 사람이 당신에게 꽤 오래전부터 사귀던 여자가 있을거라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같은 컴패니언 동료라던데요?
그 여자의 이름까지는 묻지 말아 달라고 손사래를 치긴 했지만."
말을 하면서 가토는 핥듯이 마루모토를 지켜보았다. - P63

"에리 씨는 당신과 요코 씨의 관계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
시바타가 물었지만 마루모토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비밀로 하긴 했지만 어쩌면 눈치를챘는지도 모르죠."
"당신, 에리 씨를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요? 단순히 장난삼아 만났어요?"
"아뇨, 장난삼아 만난 건 아니었어요. 진심이었습니다."
"그럼 요코 씨 쪽이 장난이었나?" - P64

에자키 요코는 약속한 8시 40분에 딱 맞춰서 나타났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긴 머리가 검은 스웨터 어깨까지 흘러내렸다. 오다 교코나 죽은 마키무라 에리를 생각해보면 컴패니언은 대부분 그 비슷한 체형의 여성을 뽑는 모양이다.
"아직도 물어볼 게 있으신가요?"
요코는 약간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낮에도 다른 수사원이다녀갔기 때문일 것이다. - P65

요코의 차가운 말투는 변함이 없었다.
"당신은 마루모토 사장과 에리 씨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다던데, 맞습니까?"
"네."
그녀는 새침한 얼굴로 턱을 쓰윽 치켜들었다.
"그 일로 마루모토 사장과 얘기한 적은 없었어요?"
"얘기라니, 뭘요?"
"그러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라든가, 그런 얘기로 다툰 적은 없어요?" - P66

"마루모토 사장은 당신과도 에리 씨와도 헤어질 생각이었다고 하던데요?"
"네, 그랬나 봐요. 하지만 나한테는 아직 헤어지자는 말은안 했어요."
"이제 곧 할지도 모르죠."
"그럴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뭐, 그것도 괜찮아요."
"그것도 괜찮다니, 헤어져도 된다는 말입니까?"
"네." - P67

5


(중략). 에리에 대한 소식은 그날 이후로는 더 이상 신문에 실리는 일도 없었다. 장례식이 어딘가에서 치러졌을 테지만그녀의 유해를 누가 인수해갔는지도 교코는 알지 못했다.
에리의 원룸에 전화를 해봤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게다가 옆집 형사는 계속 집에 돌아오는 기척이 없었다. - P68

"며칠째 경찰서에서 잤더니만, 꼴이 말이 아니죠? 밤늦게이런 집에 들어와봤자 편히 쉴 수도 없고."
얼핏 들여다보니 현관 앞까지 이사 박스와 비닐 봉투가 그대로 쌓여있었다. 아직도 이삿짐 정리를 못한 모양이었다.
"여태 밥도 못 먹었어요?"
시바타의 손에 들린 컵라면을 보고 교코가 물었다. 그는아랫입술을 툭 내밀고 지긋지긋하다는 얼굴이었다. - P69

"교코 씨가 클래식 팬이라는 건 예상을 못 했는데요?"
그가 감탄한 듯 말했다.
"아니에요, 이제부터 팬이 될 생각이죠." 교코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건 아까 레코드 대여점에서 빌려온 거예요."
"왜 갑자기 클래식 팬이 될 생각을 하셨을까?"
"신데렐라의 조건이거든요. 내가 찍은 왕자님이 클래식을좋아하셔서." - P70

"그 사건 말인데요. 아무래도 자살로 결론이 날 것 같아요."
교코는 카펫에 자리를 잡고 그를 올려다봤다.
"뭔가 밝혀진 거예요?" - P71

"에리가 어떻게 그런 걸 갖고 있었죠?"
교코가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며 캐물었다.
"바로 그게 문제였어요. 조사해보니 본가에서 가져왔더라고요."
"본가라뇨?" - P72

"에리 씨가 사건 발생 사흘 전에 본가에 갔었어요. 청산화합물은 그때 가져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죠."
"청산화합물을 본가에서? 에리의 본가가 도금공장 같은곳이에요?"
교코의 말에 스파게티를 먹던 시바타가 켁 하고 사레들린소리를 냈다. 서둘러 물을 마시더니 교코 쪽을 보았다.
"도금공장에서 청산화합물을 사용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 P73

"아니, 약간 다른 의견이 있긴 해요."
시바타의 말에 교코는 얼굴을 들었다.
"다른 의견이라면, 자살이 아니라는?"
"아뇨, 결과적으로 자살이라는 건 다름이 없지만, 독극물을 입수한 시점에는 동반자살을 할 계획이었던 게 아니냐는 의견이에요. 하지만 결국 자기 혼자 죽기로 했다. 뭐, 그런 설이죠." - P74

"그래서 결국 범죄 혐의는 없다는 거네요?"
교코가 말했을 때, 시바타 옆에 놓인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교코는 그쪽 의자에 앉아 수화기를 귀에 댔다. 그리고 네, 라는 대답만 했다. 장난 전화일 경우를 대비해 먼저이쪽 이름을 밝히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오다 교코 씨입니까?"
남자 목소리였다. 어딘지 귀에 익었다.
"네, 그런데요."
"지난번에 만난 다카미라고 합니다만, 기억나십니까?" - P75

"왕자님이 전화해주신 모양이죠?"
"네, 그래서 말인데, 형사님께 부탁이 있어요."
교코는 오른손으로 시바타의 무릎을 잡고 왼손으로는 공손히 손 인사를 했다.
"내일 우리 회사에 전화해서 저녁에 오다 교코를 조사할게 있으니 일을 좀 빼달라고 말해주세요."
시바타는 어엇, 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 P76

"에리하고도 자주 얘기했었어요. 꼭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하자고 돈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당연히 더 좋잖아요?"
"그건 흠, 글쎄요."
시바타는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친구가 죽은 참에 불경스럽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가행운의 기회를 잡으면 에리도 기뻐해줄 거예요. 어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글쎄요, 난 모르겠네요." - P78

"단정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요."
시바타는 옆에 있던 컵을 움켜쥐며 말을 이어갔다.
"그 호텔방에는 원래 유리컵 두 개가 비치되었어요. 그중하나를 에리 씨가 사용했는데, 자세히 보니까 또 다른 컵에도 살짝 물기가 있더라고요. 그렇다면 누군가 또 한 사람이썼다는 얘기가 되겠죠."
"그 방이라면 우리 컴패니언들이 먼저 이용했어요. 그러니까 컴패니언 중의 누군가가 컵을 썼는지도 모르죠. - P79

"자, 문제는 여기서부터예요. 교코 씨라면 이 컵에 독을어느 정도나 넣을까요?"
"(중략)."
"이 물을 어떻게 마시죠? 단숨에 마실까요, 아니면 조금씩 홀짝홀짝 마실까요?"
"물론 단숨에 마시겠죠. 찔끔찔끔 마시면 괜히 더 고통스러울 것 같아요." - P80

"여기서 의문이 생겨요. 자살자의 심리를 살펴보면 대개는 단숨에 마실 수 있는 음료를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에요.
그렇다면 에리 씨가 맥주를 선택한 건 이상하죠. 지난번에교코 씨에게도 물어봤지만, 에리 씨는 술이 그리 세지 않아서 맥주 한 잔이 적정량이라고 했어요. 즉 그녀에게 맥주는 결코 마시기 쉬운 음료가 아니었어요. 실제로 죽을 생각이었다면 역시 물이나 주스 쪽을 선택하지 않겠어요?"
(중략). 아닌 게 아니라 이승의 마지막 음료로 그리 좋아하지도않는 맥주를 선택한 것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 P81

3장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1

다음날 오후, 시바타는 퀸호텔에 찾아가 사체 발견 당사자인 지배인을 만났다. 도쿠라라는 이름의 지배인은 마흔이넘은 마른 체형의 남자였다.
"그 사건은 이미 해결된 거 아닌가요?"
도쿠라는 명백히 영업에 방해가 된다는 눈치였다.
"잠깐 몇 가지만 확인하면 돼요." - P84

시바타는 그 사슬 하나하나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예전에 사슬 한 개를 펜치로 벌려서 풀고 외부로 탈출한 뒤에 다시 이어놓는 트릭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그런조작을 한 흔적은 없었다.
(중략).
이름은 모리노라고 했었다.
"처음에 마루모토 씨와 함께 이 방에 왔을 때, 분명 도어체인이 걸려있었던가요?"
"네, 확실합니다." - P86

"그 펜치 말인데요, 그걸 항상 비치해두는 거예요?"
"그건 말이죠." 도쿠라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뒤를 이었다.
"이번 같은 경우가 있기 때문에 우리 호텔에서는 미리 철저히 준비해둔 겁니다."
"그렇군요. 도어체인을 절단하고 안에 들어간 다음에는어떻게 했는지, 얘기해주세요."
"그 얘기라면 지난번에도......."
"아, 다시 한번 듣고 싶어서요." - P87

"그렇습니다. 마루모토 씨가 밤비 뱅큇 사람이 아직 호텔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찾아봐달라고 해서……………."
그렇다면 그 시점에 이 방에 남아있던 사람은 마루모토와도쿠라뿐이다. 게다가 도쿠라는 전화를 걸고 있었다. 시바타의 시선이 욕실로 향했다. 그곳에 범인이 숨어있었고 마루모토가 그를 도주하게 해줬을 가능성은 없을까. - P88

"도쿠라 씨, 체인을 자를 때 나온 파편이 없는데요? 그건어디 있죠?"
"어디냐니, 그야 경찰에서 가져갔죠. 조사한다면서."
"아 참, 그렇지."
시바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도 몇 번이나 고개가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래, 알겠네. 그렇게 된 건가. 그런 수법을 쓰다니 대단하네…....... - P89

범인, 마루모토 본인이거나 마루모토의 공범은 역시 아까생각했던 대로 펜치 등을 사용해 사슬 하나를 벌려 밖으로나가고 그다음에 다시 한번 그 사슬을 이어둔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는 펜치의 흔적이 남아버린다. 그래서 나중에 펜치를 쓸 때 그 사슬 부분부터 절단했다. - P90

다만 이 추리에도 문제점이 있었다. 그런 상황이 되었을때, 이 호텔에서는 반드시 펜치를 사용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어야 한다.
"도쿠라 씨, 펜치를 항상 준비해둔다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그걸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까?"
"있었죠." 도쿠라가 대답했다. - P90

"절단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셨는데, 이 사슬하나를 펜치 같은 것으로 벌린다는 방법도 있지 않나요?"
(중략).
"그것도 가능하긴 한데, 오히려 손이 더 많이 갑니다."
"왜죠?"
"현재 거기에는 없지만 도어체인에 가죽커버가 씌워져 있어요. 사슬 하나를 풀기 전에 우선 그 가죽커버부터 벗겨내야 합니다. 그러느니 아예 한꺼번에 잘라내는 게 빠르죠." - P91

가죽커버가 씌워져 있었다면 사슬 하나를 벌리고 탈출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 아무도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할 텐데……."
"그래서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습니까." 도쿠라가 내뱉듯이 말했다.
"도어체인은 안쪽에서가 아니면 걸 수도 풀 수도 없어요.
더구나 바깥쪽에서는 절대로 풀 수가 없다니까요." - P92

 2

(중략).
"너무 일찍 왔나요?"
"아뇨, 딱 좋았어요."
교코의 말에 그는 다시 하얀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오늘 타고 온 차는 소어러였다. 교코가 조수석에 앉고 그가 핸들을 잡았다. - P93

프랑스 요리와 이탈리아 요리 중에 어느 쪽이 좋으냐고물어서 교코는 이탈리아라고 대답했다.
"이탈리아 요리를 좋아해요?"
"네, 《장미의 이름》을 보고 이탈리아 팬이 됐어요."
"아, 숀 코넬리? 나도 그 영화 봤어요. 아주 재미있던데요."
그런 식당이라면 아마도 아오야마 근처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소어러는 세타가야의 주택가 한복판을 달려갔다. - P94

그렇게 다카미가 적당히 주문을 했다. 와인도 시켰는데 음주운전을 하게 되는 게 아닌지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지난번 일은 그 뒤에 어떻게 됐어요?"
웨이터가 나간 뒤, 다카미가 물었다. 지난번 일이라니, 하고 어리둥절했지만 곧바로 에리 얘기라는 걸 알았다.
"잘은 모르지만, 자살일 가능성이 높은 모양이에요." - P95

"교코 씨는 컴패니언 일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됐어요?"
"대략 말하면......" 교코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헤아려봤다. "3년 정도?"
"계속 지금 그 회사였어요?"
"아뇨, 1년 전에 다른 곳에서 옮겨왔어요. 지금 회사는 설립한 지 아직 1년 반밖에 안 됐거든요."
웨이터가 와인을 가져와 두 사람의 잔에 따라주었다. - P95

"상당히 재미있는 사업인 것 같아서…………. 어떤 사람이 운영하는지 궁금했어요."
"별로 재미있는 일도 아니에요."
"그래요? 하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오르되브르가 나와서 대화가 끊겼다. 굴을 입에 넣으며교코는 다카미의 표정을 관찰했다. 이 사람은 오늘 무엇 때문에 나를 만나자고 한 걸까………….. - P96

"프리마돈나 모리시타 요코 씨는 역시 대단해요. 요즘 한창 궤도에 올랐다고 할까. 완성 단계라고 할까. 지난번에《백조의 호수》를 보고 왔는데 정말 훌륭했어요. 제3막의 흑조에서 서른두 번의 턴을 발끝 위치가 거의 밀리는 일 없이 해내더군요."
잘 알지 못하는 이런 화제가 나올 때, 교코는 방실방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준다. 머릿속에서는 발레 책도 사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가 다시 사건에 대한 얘기를 꺼낸 것은 식후의 에스프레소 커피가 나왔을 때였다. - P97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올 때, 다카미는 그녀에게 자동차 키를 건넸다.
"미안하지만 먼저 타고 있을래요? 점장에게 인사하고 올테니까 금방 끝나요."
소어러 조수석에 앉아 교코는 한 차례 심호흡을 했다. 많이 먹었는데도 그리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카미는 왜 그렇게 에리의 죽음을 궁금해하는 걸까. - P98

교코는 괜히 원망스러워서 그 전화를 흘겨보았다. 하필이럴 때 울릴 게 뭐람.
하지만…………….
만일 그의 가족의 급한 전화라면 어쩌지? 교코가 전화를받지 않은 것을 나중에 알고서 센스 없는 여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 여자라면 다카미 슌스케의 아내가 될 자격이 없다고 할지도 모르는데... - P99

교코의 귀에 뭔가 들려왔다. 소음인가? 사람 소리인가? 교코는 수화기에 귀를 바짝 댔다.
그것은 흐느껴 우는 소리였다. 전화 너머에서 누군가 울고있었다. 그것은 깊고 음울한 슬픔에 휘감긴 듯한 소리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것은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 P99

그때 톡톡 소리가 나서 그녀는 작은 비명을 올렸다. 돌아보니 다카미가 창유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후우 안도하며그녀는 도어록을 풀었다.
"미안해요." 그가 사과하면서 차에 올랐다.
"어때요. 제법 괜찮은 레스토랑이었죠?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고....... 아, 내 얼굴에 뭔가 묻었습니까?"
"아, 아뇨." 교코는 고개를 저었다. "저녁,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는 프랑스 요리를 잘하는 곳을 소개하죠. 맛있는와인을 종류별로 구비한......."
말을 끊은 것은 다시 전화가 울렸기 때문이다. - P100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화기를내려놓고 차의 엔진을 켰다. 하지만 사이드브레이크를 풀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것처럼 교코 쪽을 보았다.
"혹시 전화・・・・・・ 받았어요?"
나지막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아뇨."
교코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한심할 만큼 서툰 연기였다.
다카미는 시선을 앞으로 돌리고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그리고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 P101

3


수많은 차량이 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교코는 조금 전의전화에 대해 생각했다. 그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먼저 그 얘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물어보면 안 될 듯한 뭔가가 다카미의 옆얼굴에서 배어 나왔기 때문이다.
"다음에 또 만나고 싶군요."
교코의 원룸에 도착했을 때, 그가 말했다. 무슨 목적으로만나려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교코는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목적이 어떻든 상관없다.
(중략).
일단 자주 만나다 보면 기회도 생길 것이다.
"네, 다음에는 제가 직접 요리해서 대접해드릴게요."
마음먹고 말을 꺼냈다. - P102

집에 들어가기 전에 시바타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부루퉁한 굵은 목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다.
"어떻게, 왕자님과의 만남은 잘됐어요?"
그는 교코의 얼굴을 보자마자 말했다.
"무승부라고나 할까요."
그런 영문 모를 대답을 하고 교코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늘 미안해요. 덕분에 아주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려고 잠깐 들렀어요." - P103

"실은 오늘 교코 씨 회사에 다녀왔어요."
시바타가 캔의 마개를 치익 당겼다.
"어머, 나 때문에 일부러 간 거예요?"
"교코 씨의 땡땡이만을 위해 내가 거기까지 갔겠어요? 마루모토 사장의 평판을 다른 직원들에게 넌지시 물어보러갔죠."
"사장을 의심하는 거네요?"
"발견자를 의심하는 건 수사의 기본이에요. 덕분에 딱 두가지, 마음에 걸리는 걸 발견했죠." - P104

"첫째로 마루모토와 에리 씨의 관계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에요. 에자키 요코와의 관계는 아는 사람이 꽤 많았는데."
(중략).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마루모토의 출신지예요. 그자도 나고야 사람이더라고요." - P105

시바타가 맥주를 풋 하고 뿜었다.
"교코 씨가 왜 거길?"
"아니, 나도 갈 수 있죠. 에리의 장례식에도 못 갔는데 이참에 향불이라도 올려주고 싶어요. 게다가 내가 함께 가면 형사님도 말하기가 훨씬 수월하잖아요."
"회사는 또 땡땡이?"
"그건 괜찮아요. 내일은 다행히 일이 없거든요. 어때요. 정해졌죠?"
"허참." 시바타가 쓴웃음을 지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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