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생각과 꿈, 기억과 경험이 모두 이 이상한 신경물질에서 발생한다. 뇌의 전기화학적 펄스들의 복잡한 점화 패턴 속에 우리가 누구인지가 들어 있다. 그 점화 활동이 종결되면, 당신도 종결된다. - P13

우리는 걷지 못하는 상태로 약 1년, 자기 생각을 말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게 되기까지 또 2년,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까지 또 여러해를 보낸다. 우리는생존을 위해 주위 사람들에게 철저히 의존한다. - P14

새끼 동물들이 빨리 발달하는 것은 녀석들의 뇌가 주로 미리 정해진 절차에 따라 회로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준비가 갖춰져 있다는 것은 융통성이 없음을 의미한다. - P14

대조적으로 인간은 얼어붙은 툰드라부터 고산지대와 번잡한 도심까지 온갖 다양한 환경에서 번성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뇌가 상당히 미완성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P15

어린 뇌가 발휘하는 융통성의 배후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그 융통성은 새로운 세포들의 성장과 무관하다. 실제로 뇌세포의 개수는 아이나 어른이나 똑같다.  - P15

두 살이 된 아기는 100조 개가 넘는 시냅스를 지녔다. 이 개수는 성인이 가진 시냅스의 두 배다.
이제 아기의 시냅스 개수는 최대치에 도달했으며, 그 개수는 앞으로 아기에게 필요한 개수보다 훨씬 더 많다. - P16

어떤 시냅스들이 제거되고, 어떤 시냅스들이 남을까? 회로에 성공적으로 참여하는 시냅스는 강화된다. 반대로 불필요한 시냅스는 약화되고 결국 제거된다. - P16

한 예로 당신이 유아기에 접한 언어 (이를테면 영어나 일본어)는거기에 포함된 특정한 소리들을 듣는 능력을 향상시키고 다른 언어들에 포함된 소리들을 듣는 능력을 약화시킨다. - P16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본에서 양육되는 아기는 예컨대 R 발음과 L 발음을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할 것이다. 일본어는 그 두 발음을 구별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 P18

자연의 도박

긴 유년기 내내 뇌는 연결들을 꾸준히 감축하면서 자신을 특수한 환경에 맞춘다. 이것은 뇌와 환경을 조화시키는 영리한전략이다. 그러나 위험 요소들도 동반한다. - P18

젠슨 부부가 아이들을 인계받아 택시를 타고 루마니아를 벗어났을 때, 캐럴 젠슨은 운전사에게 아이들이 하는 말을 통역해달라고 부탁했다. 운전사는 아이들이 횡설수설한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어떤 언어도 아니었다. 정상적인 상호작용에 굶주린 상태에서 아이들은 이상한 잡종 언어를 개발했던 것이다. 성장한 뒤에도 그 아이들은 학습 장애에 시달려야했다. 그것은 그들이 유년기에 겪은 결핍의 흉터였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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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언제나 손 가는 대로.


저는 그리스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필로(philo-)‘라는 말에 꽂혔습니다. 그리스어에서 ‘친구‘를 ‘필로스(philos)‘라고 하는데, ‘사랑하는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 P5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막연히 철학을 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은 대학에 들어가 철학개론을 들으면서 꼭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굳어졌습니다. 철학을 부전공으로 삼아 공부하면서 철학으로 번역된 ‘필로소피아‘라는 말을만들어 낸 그리스 사람들에게 가장 강렬하게 끌렸고, 그래서 대학원을 철학과로 들어갔을 때는 큰 고민 없이 고대 그리스 철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 P5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Apologia Sökratous)」에서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합니다. ‘어떻게하면 인간이 덕 (aret)을 실현해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 P6

지혜에 관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이름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다른 말로 ‘철학자‘라는 뜻이지요. - P7

참된 것들을 가장 많이 본 영혼은 장차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또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philokalos)‘ 또는 ‘음악적 재능이있는 사람(mousikos)‘ 또는 ‘사랑에 충만한 사람(erotikos)의 종족에 깃들 것입니다.

ἀλλὰ τὴν μὲν πλεῖστα ἰδοῦσαν εἰς γονὴν ἀνδρὸς γενησομένουφιλοσόφου ἢ φιλοκάλου ἢ μουσικοῦ τινος καὶ ἐρωτικοῦ,
(『파이드로스』 248d2-3)

이 구절을 읽던 저의 가슴에는 특히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 즉 ‘필로칼로스‘가 깊게 새겨졌습니다. - P7

그리고 또 하나, 바로 신화입니다. 그리스어로 신화는 ‘뮈토스(muthos)‘라고 합니다. 단순하게 그냥 ‘이야기‘라는 뜻이지만, 그 옛날 그리스인들이 즐겼던 이야기에는 신과 영웅이 워낙에 많이 등장했기에 이야기는 곧 신화이기도 했습니다. - P8

그렇다면 신화는 어떤가요? 신들의 놀라운 세계와 영웅들의 기상천외한 활약이 그려져 있죠.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현상들에대해 궁금해하며 던진 질문들에 신비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로 답을 만들어 가며 세상을 설명하는 가운데 신화가 등장한 겁니다. - P9

과학은 물론,
신화와 시, 음악, 미술, 조각, 수사학까지도 모두, 그것이 단순히 유용성이나 돈벌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앎을 추구하는것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전부가 지혜에 대한 사랑, 즉 ‘철학‘이라고 보았던 겁니다. - P9

즉, 지금 여기 우리를 둘러싼 그 어떤 문제들에 대해서라도, 그것이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놀라움과 호기심을 느끼며 그 문제를 풀어 보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을 철학자라 부를수 있고, 그들의 작지만 진지한 노력 모두가 철학으로 인정되어야하는 이유를 우린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 P10

이제 여러분을 신화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대부분 신과 영웅의 이야기입니다. 영웅은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의존재로서 신적인 능력과 신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려는 강렬한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인간이기에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신과 인간의 경계선에서 추락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영웅이든 신이든 모두 인간의 본성을 비춰 주는 거울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 P10

마지막으로 표기법에 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저는 신과 영웅, 인간, 지역, 작품의 이름을 쓸 때,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지 않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표기법, 즉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표기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 P11

가이아,
최초의 질서를 세우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땅에 시신을 묻는 장면을 보거나, 화장터로 들어간 시신이 희고 따뜻한 몇 줌의 재로 남는 걸 보면, 우리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실감하지않을 수 없습니다. - P36

모든 것을 지배하는 원리라는 뜻도 있지요.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의 아르케를 탐구하는데서 철학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만물의 아르케는 무엇인가?"
이 질문을 처음으로 던지고 "그것은 물이다."라고 주장한 탈레스를 철학의 시조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지요. - P36

그런데 이런 철학자들에 앞서 활동한 시인 헤시오도스는 신들의 계보를 노래하는 「신통기」에서 다른 이야기를 해 줍니다. "태초에 가장 먼저 카오스가 생겼고, 그다음에 가이아가 생겼다."라고 했는데, 가이아는 땅, 대지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만물의 아르케는 흙이라고 본 것이 아닐까요? - P37

 그런데 앞서 보았듯이 카오스의 자손들은 눈에 보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모습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 P37

그렇다면 가이아, 땅의 여신이야말로 만물의 아르케로 제격입니다. 카오스가 모든 것들을 품어 안는 공간이라면, 물질로서 가장 먼저 생겨난 것은 땅이니까요. 카오스가 생기면서 텅 비어 있던 세상은 곧이어 땅이 생기면서 가장 먼저 흙으로 가득 차게 되었죠. - P37

어쨌든 가이아가 태어났을때 세상에는 카오스와 가이아, 즉 빈 공간과 땅만 있었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카오스가 가이아를 낳은 것은 아니니까, 맨처음에 공간의 신 카오스가 저절로 생겨난 것처럼 카오스를 채우며 태어난 대지의 여신 가이아도 혼자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 P37

 매우 생산력이 왕성한 여신이죠. 그녀는 맨 처음에 우라노스(Ouranos)라는 아들을 낳습니다. 세포분열을 하듯이 혼자서낳은 건데요, 그렇게 태어난 우라노스는 하늘입니다. 땅의 여신 가이아는 하늘의 남신 우라노스를 낳아서 "자기 주위를 완전히 감싸도록(iva uv teQi távra nakutol)" 했지요(신통기] 127행). - P38

 물론 대부분의 학자는 땅 위에 하늘이 펼쳐진 것으로 그리지만, 헤시오도스의 상상력은 훨씬 더 과감했을 수 있고,
저는 개인적으로 계란의 노른자와 흰자의 관계로 땅과 하늘이 자리 잡았을 거라는 해석에 한 표를 던집니다. - P38

하늘을 낳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그다음으로 ‘우레아(Ourea)‘를 낳는데, 산을 뜻합니다. 땅에서 울퉁불퉁 솟아난 산들은 땅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땅이 혼자서 낳은 자식들이기도 하지요. - P38

 가이아가 거대한 대지의여신이듯이, 그녀가 낳은 하늘의 남신 우라노스도, 산들의 신 우레아도, 바다의 남신 폰토스도 모두 단순히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처럼 살아 숨 쉬는 생명체, 즉 영원한 생명을 가진 불멸의 신입니다. - P38

1979년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은 「가이아 : 지구 위의 생명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Gaia: A New Look at Life on Earth)」이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는데,
마치 헤시오도스의 이야기를 과학으로 입증하려는 것 같은 책입니다. 그에 따르면 이 지구는 그저 거대한 흙덩어리가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 같은 유기체로서 움직입니다.  - P39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이 거대한 유기체인 지구 안에서 어떤 존재로 살고 있을까요?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숲을 훼손하고 강과 바다, 대기를 오염시키는 모습은 흡사 우리 몸을 망치는 병균이나 바이러스처럼 보이진 않나요? - P39

참다못한 가이아 여신은 제우스에게 인간들을 쓸어 버리라고 부탁하지요. 제우스는 거대한 홍수를 일으켜 인간을 파멸시켰다고 합니다. 다행히 한 쌍의 착한 부부가 살아남아 인류가 멸종되지는 않았지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 P40

타르타로스,
지하 세계를 지배하다

사람들은 언젠가는 죽습니다. 죽으면 우리는 흙으로 돌아가겠지요? 그런데 영혼이나 혼백, 넋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우리가 죽어서 흙이 되는 것은 몸뿐이고, 정신은 혼백으로 남아 어딘가에서 계속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러다가 새로운 몸을 입고 환생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 P41

그리스·로마 신화에도 어둠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신입니다. 어둠의 신은태초에 카오스가 생기고,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생겼을 때, 함께 생겼다고 합니다. - P41

그리스·로마 신화가 그려 주는 태초의 우주는 이런 모습이었지요. 우주의 한가운데 두툼한 땅이 있고,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표면에 울퉁불퉁한 산들의 신 우레아가 솟아나 있고요. 그녀의 주위를 바다의 신 폰토스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다와 대지주위를 온통 감싸면서 하늘의 신 우라노스가 군림합니다. 대지 깊은 곳에 어둠의 구렁, 지하의 신 타르타로스가 자리를 잡고 있지요.  - P42

이 원초적인 시기에는 아직 인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지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사후 세계가 아니었지요. 신들은 죽지 않으니까요. 처음에 그곳은 신들을 가두는 감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 P42

신들은 또 다른 이유로 타르타로스에 갇히게 됩니다. 땅 위의 세상과 타르타로스의 경계를 이루는 강이 있는데, 그 강의 이름은 스틱스강입니다. 신들은 이 강에 대고 맹세를 하는데, 만약 그 맹세를 어기면 거짓말에 대한 엄중한 벌을 받습니다. - P42

 이런 이야기를 통해 그리스·로마인들은 말과 약속, 맹세와 신의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말을 한 것은 반드시 지켜라 약속을 어기면 신들조차도 끔찍한 벌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이죠. - P43

타르타로스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상상력은 신약성서에도 반영이 되었습니다. 예수의 제자였던 베드로는 천사들이 범죄를 저지르자, 여호와가 그들을 용서하지 않고 지옥의 어두운 구덩이에두어 심판 때까지 가두었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그는 "타르타로스에 던졌다"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 P43

그러나 나중에 인간들이 생겨났을 때, 신들이 갇히는 타르타로스와 구별하기 위해 그 위쪽에 죽은 인간들을 위한 하데스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 P43

 하데스는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뜻인데, 이 또한 죽은 사람들의 혼백이 갇히는 지하 세계이면서 동시에 그곳을 지배하는 신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 P43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이 죽으면 타르타로스의 입구 앞에서 최후의 심판을 받은 다음 그곳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했고,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도 죽은 자들의 혼백이 머무는 저승 세계를 타르타로스라고 노래했습니다. - P44

 어두컴컴한 타르타로스가 존재하는지는모르겠지만, 그것을 상상한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이 땅 위의 우리 인생은 짧다는 것, 그리고 이곳에서의부귀영화를 위해 약속과 의리를 저버리고 범죄의 길을 가지 말라는 것, 정의롭고 올바르게 행동하되, 그 어떤 경쟁에서도 이겨 내는 강한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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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탕은 특별한 방식으로 연결된 탄소, 수소, 산소원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설탕을 화학적으로는 탄수화물로 알고 있다. 설탕을 자르고 잘라 더 이상 자를 수 없는 작은크기에 도달해보면, 설탕은 탄소, 산소 원자 각각 여섯 개와 수소원자 열두 개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 P29

동물이 갖고 있는 글리코겐이나 식물이 갖고 있는 전분, 또는 섬유질은 수백, 수천 개의 탄소, 산소, 수소 분자들이 길게 연결된 설탕의 사슬이다.⁴ - P30

체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물질이 그렇듯이, 혈중 포도당 수치도 매우 제한적인 범위 안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포도당 수치가이 범위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면 심각한 합병증이 나타나고 심지어는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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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의 책.

다시 보니 도입부, 이상야릇하네요.



"그건 그렇다 쳐도 역시 고냥귀고냥, 설마 그런 일로 죽을줄이야. 금세기 최고의 망게임이란 별명도 헛것이 아니라니까!" - P9

지금 생각해보면 숍 점원이 여성이었던 것이 마음에 안들었던 모양이다.
.....질투심을 얼마나 강하게 설정해놓은 거야. - P10

VR 게임의 좋은 점은 게임을 하면서도 현실세계의 전화나 메일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VR 공간이라 딱히 기계를 들고 있지 않아도 핸즈프리로 통화가 가능하니 현실세계보다도 편리한 것 같다. - P10

『우씽, 잊어버리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윽, 그건・・・・・・ 미안."
『됐거든. 어차피 그럴 줄 알고 혼자서 이미 시작했거든..』
"어, 응. 그렇구나. 미안해."
마키는 나보다도 두 살 어린 사촌동생인데, 그런 주제에나를 이름으로 막 부르는 건방진 녀석이다. - P11

"일곱 개? …………… 일곱 개의 오렌지색 공?! 어, 야, 그거 설마, 안에 별이 들어 있거나 하진 않냐?"
아니, 그런 바보 같은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 P12

"응? 안에 뭐 안 들었느냐고 해서, 일단 깨뜨려 봤는데…………..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대답하는 마기. 이러니까 이 녀석은 방심할 수가 없다. - P12

『있어. 이건∙∙∙∙∙∙ 뭘까. 미라 손? 게다가 쬐끄매, 인간 게아닌가 봐. 혹시 원숭이일까?』
"그, 그거 혹시, 소원을 세 개까지 들어준다는 유명한 원숭이 손......." - P13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거 설마,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마신이 잠들어 있다는 마법의 램—."
「생각났다아! 카레 포트야!』 - P14

『또 찾았어! 이건・・・・…… 뭘까? 그냥 가늘고 긴 종이 같은데.』
"가늘고 긴 종이?"
가늘고 긴 종이인데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면 뭐였더라……… 아, 맞아.
"야, 그거 탄자쿠 아냐? 그 왜 칠석날에 소원을 적어넣는."
『탄자쿠? 아, 응, 그러네. 비슷한 것 같아!』 - P15

"당연하지. 그런 걸로 퍽이나 소원이 이루어지겠다.
근데 뭐라고 썼어?"
「공주님이 되게 해달라고
"・・・・・ 넌 나이를 먹어도 꿈이 많아서 참 좋겠다."
『그치?』 - P16

내가 VR 세계에서 귀를 막은 것과, 온 세상이 뒤흔들리는듯한 고함이 터져나온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렇게 게임이 좋으면 게임 세계에나 가버리면 될거아냐, 바보야아아아!』 - P18

다시 말해 그건 뽕망치가 아니라……
"야, 너. 그거 혹시 도깨비"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끝까지 마키에게 들려주지 못했다. - P18

대체 그 한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아무리 버그백화점이라 불리는 <고냥고냥>, 즉 〈New CommunicateOnline>이라 해도 마을에 서있다가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는 버그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는데. - P20

전화까지 쓸 수 없게 됐다는 건 이상하다. 그건 게임에 포함된 기능이 아니라 VR 공간에 공통적으로 갖춰진 기능일텐데. 게임 내의 버그에 영향을 받다니, 말도 안 된다.
‘그럼 VR 머신 자체에 이상이 생겼나……?? - P20

내 모습에 시선을 떨궈보니,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맞춰놓은장비가 온데간데없었다. 지금 내가 입은 것은 그야말로 당장에라도 부서질 것 같은 가죽갑옷과 가죽부츠, 그리고 허리에는 검이 들어 있을 것이 분명한 남루한 가죽 칼집과 조그만 파우치가 달렸을 뿐이었다. - P21

스탯은 메뉴가열리지 않아 확인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몸의 감각이 아까하고는 전혀 다른 것 같았다. 이것도 레벨 1로 돌아가고 만것일지도 모른다.
‘설마 세이브 데이터가 초기화된………… 건가??‘ - P21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주위의 경치에 무언가 위화감이느껴지는 것이다. 뭐라고 해야 하나, 눈에 비치는 것들이 모두 여느 때와 미묘하게 다르달까………. - P22

실루엣은 다섯. 우선 눈에 들어온 것이 이쪽에 등을 돌린검을 든 여성의 뒷모습.
그리고 마차를 등지고 그녀를 에워싸듯 무기를 든 네 명의 도마뱀 인간이었다.
그 광경에 나는 확신했다.
틀림없다. 저건 이 게임의 첫 이벤트.
뉴비 플레이어의 무려 90퍼센트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부조리한 스타트 이벤트, 악명 높은 <리저드맨의 함정>이 시작되고 있었다! - P24

초견필살(初見必殺)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벤트, 통칭 <리저드맨의 함정> 정식 이벤트명은 분명 상인을 지켜라>였던가. 초견필살이라는 별명이 보여주듯, 처음이 이벤트와맞닥뜨린 플레이어는 대부분 이곳에서 첫 죽음을 경험한다고 전해진다. - P25

이 이벤트의 무엇이 그토록 어려운가 하면, 출현하는 적이 강한 것은 물론, 무엇보다도 한 번 봐서는 상황파악이 어렵다는 것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 P26

이 상황은 언뜻 보기에 리저드맨이 떼로 달려들어 인간 여자를 습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리저드맨들은 마차를 등지고 싸우는 것‘이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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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대개 어떤 것을 떠올릴까? 독성 식물에서 뽑아낸 추출물, 독사에게서 뽑아낸 독, 아니면어느 미친 과학자가 음침한 지하실에서 만들어낸 치명적인 화학물질? 모든 독약이 그렇게 특이한 유래를 갖고 있지는 않다. - P21

16세기에 살았던 연금술사이자 의사인 필리푸스 아우레올루스 테오프라스투스 봄바스투스 폰 호헨하임 (다행히도 파라켈수스Paracelsus라는 훨씬 짧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은 이렇게 경고했다. "(약을) 독으로 만드는 것은 투여량Jose 이다." - P21

문제의 화학 물질은 바로 ‘인슐린‘이다. 체내에 인슐린이 부족하거나 몸이 이 물질에 적절히 반응하지 못하면 당뇨병에 걸린다.¹ - P21

당뇨병은 행복하고 활동적이어야 할 아동기를 먹어도 먹어도 채울 수 없는 허기와 마셔도 마셔도사라지지 않는 갈증으로 얼룩지게 만들었다. 인슐린이 발견되기 십여 년 전, 미국의 의사 프레더릭 앨런Frederick Allen과 엘리엇 조슬린 Elliott Joslin은 당뇨병 환자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엄격한 단식을 권장했다. - P22

그러다가 캐나다의 한 연구진이 동물의 췌장에서 인슐린을 분리, 정제하는 데 성공한 1921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인슐린으로 치료를 받은 최초의 환자는 열네 살 소년 레너드 톰슨이었다. 몸무게가 겨우 30킬로그램이던 이 소년은 당뇨 혼수로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상태였다.  - P22

모든 당뇨병 환자가 조심해야 할 유일한 것은 자기 몸에 인슐린이 지나치게 많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적을 때 나타나는 증상을 제때에 감지하는 것이었다. - P23

처음 인슐린을 발견하고 정제해서 당뇨병 환자들에게 실제로 쓰이기까지 걸린 시간은 매우 짧았다. 1923년부터 상업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으니, 처음 발견한 때로부터 겨우 2년 후였다.³ - P23

1957년 5월 4일 토요일, 잉글랜드 브래드포드. 존 네일러 경사는 이른 시간에 호출 전화를 받고 손버리 크레센트 주택가의 사건 현장을 찾았다. 
(중략)
네일러는정복 경관의 안내를 받아 곧장 2층으로 올라갔고, 욕조 안에 나체로 축 늘어진 채 죽어 있는 희생자의 시신을 보았다. - P23

이웃들은 남편의 슬픔을 진심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그러나 네일러는 남편의 진심을 그다지 믿지 않았다. - P24

 두 사람은 지극히 행복한 부부 같았다. 부부싸움 한번 한 적이 없었다. 케네스보다 아홉 살 연하인 엘리자베스는 사실케네스 발로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첫 부인과 사별한 후 1956년에 엘리자베스와 재혼해서 살고 있었다. - P24

엘리자베스는 보조 간호사였고, 케네스는 정식 간호사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도 직장에서였다. - P24

결혼 후에도 케네스는 브래드포드 왕립 진료소에서 계속 간호사로 일했지만, 엘리자베스는 병원을 떠나 동네 세탁소에서 다림질 담당으로 일하고 있었다. - P24

금요일에눈 반나절만 일했는데, 금요일이었던 1957년 5월 3일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다. 정오가다가오자 퇴근을 하기 위해 소지품을 챙기면서 엘리자베스는 동료들에게 어서 퇴근해서 머리를 감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 P25

점심 식사가 끝나자 엘리자베스는 집안일과 가족들이 내놓은 옷가지들을 세탁하느라 바빴고, 그사이에 케네스는 차고 안에있던 자동차를 자랑스럽게 바깥으로 내놓고 꼼꼼하게 세차를 했다. - P25

 나중에 스키너 부인은 그때의 엘리자베스는 활기차고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고 진술했다. "사실은요, 나한테 새로 산 까만색 속옷을 보여주면서 우스갯소리도 하고 그랬다니까요." 스키너 부인은 그렇게 회상했다. - P25

그날 오후, 엘리자베스의 가족들은 거실에 모여 한가하게 휴식을 즐겼다. 그런데 소파에 누워 있던 엘리자베스가 웬일인지 점점 불편한 기색을 보이더니 결국은 잠깐 눈을 붙여야겠다며 2층으로 올라갔다. - P25

엘리자베스는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였고, 몹시 피곤해 보였다. 그는 나중에, 아내가 "너무 피곤해서 아들한테 굿나잇 인사도 못 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 P26

9시 30분쯤 케네스는 엘리자베스가 침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2층으로 올라갔다. 침대에서 구토를 한 아내의 모습을 보고 케네스는 깜짝 놀랐다. 부부는 침대보를 갈았고, 케네스는 더러워진 침대보를 아래층으로 가지고 내려와 주방에 있던 빨래통에 넣었다. - P26

케네스도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로 들어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10시경, 엘리자베스는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았고, 이제는 땀을 비 오듯이 흘리고 있었다. - P26

사이드 테이블에 놓인 알람 시계를 보니 밤 11시 20분이었다. 아내는 아직도 목욕이 끝나지 않았는지, 침대에서 아내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이상했다. - P27

놀랍게도 엘리자베스는 온몸이 물에 푹 잠긴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공포에 사로잡힌 케네스는 아내가 익사하겠다는 생각에 얼른 욕조의 물마개를 뽑고 아내를 욕조에서 끌어내 욕실 바닥에 눕히려고 버둥거렸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봐도 아내를 욕조에서 끌어낼 수가 없었다. - P27

 하지만 얄궂게도 의사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받은 스키너 부부는 즉시 앰뷸런스를 부르는 대신 무슨 일인지 직접 확인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옆집으로 들어가 계단을 통해 욕실까지 다가간 스키너 부부는 아직 욕조에 누워 있는 엘리자베스의 나체를 보고 크게 놀랐다. 케네스는 아내의 어깨를 문지르고 있었다. - P28

죽음은 언제나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젊은 아내이자 엄마, 늘 건강하던 사람이라면 더욱 애석하고 슬픈 법이다. - P28

처음에는 욕조 속에서 익사한 것으로 보였지만, 동공이 눈에 띄게 확대되어 있었다. 처음 엘리자베스를 검진했던 의사의 경험상 익사 환자에게서는 본 적이 없는 현상이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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