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대개 어떤 것을 떠올릴까? 독성 식물에서 뽑아낸 추출물, 독사에게서 뽑아낸 독, 아니면어느 미친 과학자가 음침한 지하실에서 만들어낸 치명적인 화학물질? 모든 독약이 그렇게 특이한 유래를 갖고 있지는 않다. - P21

16세기에 살았던 연금술사이자 의사인 필리푸스 아우레올루스 테오프라스투스 봄바스투스 폰 호헨하임 (다행히도 파라켈수스Paracelsus라는 훨씬 짧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은 이렇게 경고했다. "(약을) 독으로 만드는 것은 투여량Jose 이다." - P21

문제의 화학 물질은 바로 ‘인슐린‘이다. 체내에 인슐린이 부족하거나 몸이 이 물질에 적절히 반응하지 못하면 당뇨병에 걸린다.¹ - P21

당뇨병은 행복하고 활동적이어야 할 아동기를 먹어도 먹어도 채울 수 없는 허기와 마셔도 마셔도사라지지 않는 갈증으로 얼룩지게 만들었다. 인슐린이 발견되기 십여 년 전, 미국의 의사 프레더릭 앨런Frederick Allen과 엘리엇 조슬린 Elliott Joslin은 당뇨병 환자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엄격한 단식을 권장했다. - P22

그러다가 캐나다의 한 연구진이 동물의 췌장에서 인슐린을 분리, 정제하는 데 성공한 1921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인슐린으로 치료를 받은 최초의 환자는 열네 살 소년 레너드 톰슨이었다. 몸무게가 겨우 30킬로그램이던 이 소년은 당뇨 혼수로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상태였다.  - P22

모든 당뇨병 환자가 조심해야 할 유일한 것은 자기 몸에 인슐린이 지나치게 많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적을 때 나타나는 증상을 제때에 감지하는 것이었다. - P23

처음 인슐린을 발견하고 정제해서 당뇨병 환자들에게 실제로 쓰이기까지 걸린 시간은 매우 짧았다. 1923년부터 상업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으니, 처음 발견한 때로부터 겨우 2년 후였다.³ - P23

1957년 5월 4일 토요일, 잉글랜드 브래드포드. 존 네일러 경사는 이른 시간에 호출 전화를 받고 손버리 크레센트 주택가의 사건 현장을 찾았다. 
(중략)
네일러는정복 경관의 안내를 받아 곧장 2층으로 올라갔고, 욕조 안에 나체로 축 늘어진 채 죽어 있는 희생자의 시신을 보았다. - P23

이웃들은 남편의 슬픔을 진심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그러나 네일러는 남편의 진심을 그다지 믿지 않았다. - P24

 두 사람은 지극히 행복한 부부 같았다. 부부싸움 한번 한 적이 없었다. 케네스보다 아홉 살 연하인 엘리자베스는 사실케네스 발로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첫 부인과 사별한 후 1956년에 엘리자베스와 재혼해서 살고 있었다. - P24

엘리자베스는 보조 간호사였고, 케네스는 정식 간호사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도 직장에서였다. - P24

결혼 후에도 케네스는 브래드포드 왕립 진료소에서 계속 간호사로 일했지만, 엘리자베스는 병원을 떠나 동네 세탁소에서 다림질 담당으로 일하고 있었다. - P24

금요일에눈 반나절만 일했는데, 금요일이었던 1957년 5월 3일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다. 정오가다가오자 퇴근을 하기 위해 소지품을 챙기면서 엘리자베스는 동료들에게 어서 퇴근해서 머리를 감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 P25

점심 식사가 끝나자 엘리자베스는 집안일과 가족들이 내놓은 옷가지들을 세탁하느라 바빴고, 그사이에 케네스는 차고 안에있던 자동차를 자랑스럽게 바깥으로 내놓고 꼼꼼하게 세차를 했다. - P25

 나중에 스키너 부인은 그때의 엘리자베스는 활기차고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고 진술했다. "사실은요, 나한테 새로 산 까만색 속옷을 보여주면서 우스갯소리도 하고 그랬다니까요." 스키너 부인은 그렇게 회상했다. - P25

그날 오후, 엘리자베스의 가족들은 거실에 모여 한가하게 휴식을 즐겼다. 그런데 소파에 누워 있던 엘리자베스가 웬일인지 점점 불편한 기색을 보이더니 결국은 잠깐 눈을 붙여야겠다며 2층으로 올라갔다. - P25

엘리자베스는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였고, 몹시 피곤해 보였다. 그는 나중에, 아내가 "너무 피곤해서 아들한테 굿나잇 인사도 못 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 P26

9시 30분쯤 케네스는 엘리자베스가 침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2층으로 올라갔다. 침대에서 구토를 한 아내의 모습을 보고 케네스는 깜짝 놀랐다. 부부는 침대보를 갈았고, 케네스는 더러워진 침대보를 아래층으로 가지고 내려와 주방에 있던 빨래통에 넣었다. - P26

케네스도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로 들어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10시경, 엘리자베스는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았고, 이제는 땀을 비 오듯이 흘리고 있었다. - P26

사이드 테이블에 놓인 알람 시계를 보니 밤 11시 20분이었다. 아내는 아직도 목욕이 끝나지 않았는지, 침대에서 아내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이상했다. - P27

놀랍게도 엘리자베스는 온몸이 물에 푹 잠긴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공포에 사로잡힌 케네스는 아내가 익사하겠다는 생각에 얼른 욕조의 물마개를 뽑고 아내를 욕조에서 끌어내 욕실 바닥에 눕히려고 버둥거렸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봐도 아내를 욕조에서 끌어낼 수가 없었다. - P27

 하지만 얄궂게도 의사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받은 스키너 부부는 즉시 앰뷸런스를 부르는 대신 무슨 일인지 직접 확인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옆집으로 들어가 계단을 통해 욕실까지 다가간 스키너 부부는 아직 욕조에 누워 있는 엘리자베스의 나체를 보고 크게 놀랐다. 케네스는 아내의 어깨를 문지르고 있었다. - P28

죽음은 언제나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젊은 아내이자 엄마, 늘 건강하던 사람이라면 더욱 애석하고 슬픈 법이다. - P28

처음에는 욕조 속에서 익사한 것으로 보였지만, 동공이 눈에 띄게 확대되어 있었다. 처음 엘리자베스를 검진했던 의사의 경험상 익사 환자에게서는 본 적이 없는 현상이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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