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회학자 스콧 펠드Scott Feld가 1991년에 처음 연구한 주제로,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친구들보다 평균적으로 친구 수가 더 적다는 현상. 이는 친구 수가 많은 사람이 자신의 친구 그룹에 속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일종의 표집 편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 P63

SNS를 보다가 울적함을 느끼는 이유는 대개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를 많이 보게 되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SNS에서는 다른 사람의 즐거운 모습, 성공한 장면, 화려한 순간, 누가 멋진 일에 기뻐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된다. 그런데 그 기분 좋은 이야기들이 쏟아지는 장면을 계속보면 오히려 나는 울적한 기분에 빠질 때가 생긴다. - P64

 신문에서 "요즘 고급 승용차가 많이 팔린다."라는 기사를 보면, ‘세상에는 부유한 사람도 많나 보구나.‘ 하고 그저 넘어갈 만한 이야기지만, 중학교 때 친구가 고금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사진을 보면 ‘‘중학교 때 비슷비슷하게 어울렸던 저 친구는 저렇게 잘살고 있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이지?‘하는 상각이 더 강하게 들 수 있다. - P65

사진을 찍는 사람, 본인은 그 사진 속의 멋진 순간이 내인생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SNS에서 여러 사람의 계정을 구독하며 사진을 보는 사람 입장은 다르다. 여러사람의 사진, 여러 인생의 좋은 순간이 한데 모여서 자기 눈앞에 보인다. - P65

요즘에는 SNS를 하면서 너무 남을 부러워하지 말고, 함부로 시기하거나 질투하지도 말고, SNS에서 너무 서로 자랑하려고 애쓰지도 말자는 이야기가 격언처럼 돌게 되었다 - P66

내 친구들의 평균적인 친구 숫자에 비해 나는 친구 숫자가 더 적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실제로 증명해 놓은 연구가 있다. 이것을 우정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 P66

펠드는 1991년에 우정의 역설을 언급한 논문을 발표했다.
1991년 이후에 출생한 독자라면, 더 이상한 생각을 품을 것이다. 펠드라는 사회학자는 무슨 방법을 썼길래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이 미래에 친구가 없을 거라는사실을 밝힐 수 있었을까? - P67

 펠드가 제시한 내용은 그보다도 훨씬 놀랍다. 펠드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문화권의 사람이건 대체로 사람은 자기 친구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더 친구가 적다는 사실을 밝혔다. - P67

많은 이들은 대개 평균적인 사람들일 것이다. 나도 평균적인 사람일 확률이 높다. 그러니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친구 수가 보통은 되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의 친구들이 평균보다 더 친구가 많을 수 있단 말인가? - P68

그런데 우정의 역설에는 더 와닿는 사실이 있다. 평균을계산하는 특이한 방법을 굳이 택하지 않고 그냥 내 친구들에게 각자 친구가 몇명있는지 물어보고, 그 숫자를 평균 내어보는 간단한 방법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 숫자가 클 확률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그냥 자연스럽게 이리저리 친구 관계가 생긴다고 치면, 정말로 다수의 사람들은 자기 친구들에 비해 친구 숫자가 적은 경향을 갖게 된다. - P69

마당발은 많은 사람을 알고 있고교류가 활발하여 그 많은 이들을 친구로 사귀고 있을 것이다.
반대로 외톨이는 당연히 친구 숫자가 적다. - P69

이 이야기는 무척 교묘한 논리를 갖고 있다. 그냥 쉽게 생각하면 당연하다 싶지만, 살짝 틀어서 생각하면 그게 말이 되나 싶은 이상한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친구 숫자 평균을 계산해 보면, 그야말로 평균적인 숫자가 나온다. 내가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내가 가진 친구 숫자와 크게다르지 않다. 그 숫자를 보면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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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재미는 있지만 왜 손이 가지 않을까.





"범인들이 과거의 사건을 알고 일부러 이 호텔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죠. 다만 그 목적은 확실치 않습니다. 그래서 여쭤보고 싶은데, 예전 사건에 대해 고객들에게서 뭔가 불만이 들어왔거나 외부에서 문의가 들어온 적은 없습니까?"
후지키는 옆에 있는 구가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 얘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그렇지?" - P52

닛타가 말하자 후지키는 알겠습니다, 라고 답했다.
"그러면 수사에 협조해주시는 것으로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이나가키가 확인했다.
"그건 물론입니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원하시는지요." - P53

 "방범카메라로 감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손님으로 위장한 수사관을 로비 등에 배치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불안하고, 역시 어떤 식으로든 이 세 사람과 접촉해 정보를 캐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 호흡 틈을 둔 뒤에 말을 이어갔다. - P53

"이게 수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총지배인도 잘 아시잖습니까."
"네, 과거 두 번의 경우에는 그렇지요.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이번에는 용의자들이 누구인지 이미 밝혀진 일이고, 따라서 그들의 행동만 감시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 P54

"무슨 말씀이시지요? 각자 원한을 품은 상대가 있는 사람이 네 명이고, 그중 한 명이 알리바이를 만드는 사이에 다른 세명이 그 사람 대신 복수를 한다, 조금 전에 그렇게 얘기하셨던것 같은데?"
"용의자로 우선 밝혀진 게 세 명이기 때문에 알기 쉽게 설명하려고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꼭 네 명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어쩌면 다섯 명이나 여섯 명, 혹은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 P54

"재판 결과에 승복하지 못해 교도소에서 출소한 자를 자신의 손으로 심판하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이번 계획을 세운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참가한 사람이 꼭 네 명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요. 이 호텔에서의 범행조차 계획의 극히 일부이거나 중간단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즉그 세 명 이외의 이용객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P55

"구체적으로는 어떤 수사관이 어떤 스태프로 위장할 예정입니까?"
아무래도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한걸음 전진이다. 옆자리의 이나가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기척이었다. - P56

"하우스키퍼 역할의 형사가 고객의 짐에 손을 대는 일은?" 후지키가 질문을 던졌다.
"절대로 없다고 약속드립니다." 닛타는 즉각 답했다. "짐을 수색했다가 자칫 용의자들이 눈치라도 채버리면 모든 게 끝이니까요." - P56

"지난번 사건 때 벨보이로 위장했던 수사관이에요. 구가 부장님도 기억하실 것 같은데요? 호텔 사정도 잘 알고 있으니까 나름대로 그럴듯할 겁니다. 영어도 좀 할 줄 알고요. 오늘밤 안으로 훈련을 받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벨보이와 프런트 클러크는 하는 일이 전혀 다릅니다. 짧은 영어로는 프런트 클러크를 담당하기가 어려울 텐데요." 구가는 역시나 전 프런트 오피스 매니저인 만큼 신중하게 응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 P57

"그건 그렇지만.…………."
닛타, 라고 이나가키가 옆에서 말했다. "자네가 맡아."
"예?"
"프런트 클러크 말이야. 자네가 하면 돼. 총지배인, 구가 부장, 어떻습니까?"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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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에서 우리는, 의식적인 당신은 당신의 뇌 활동에서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행동,
믿음, 편견은 모두 당신의 뇌 연결망들에 의해 조종되며, 당신은 그 연결망들에 의식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 - P103

그러나 그 행동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잔을 들어 올려 입에 대는 동작은 결코 쉬운 성취가 아니다. 로봇공학에서는 지금도 이런 유형의 과제를 독자적으로 해결하는 로봇을 제작하려고 애쓴다. - P103

내 이마엽 피질은 운동 피질로 신호를 보내고, 운동 피질은몸통, 위팔, 아래팔, 손에 있는 여러 근육이 정확하게 협응된방식으로 수축하도록 만든다. 그 덕분에 나는 잔을 손에 쥘 수있다. 내 손이 잔에 닿으면, 나의 신경들은 잔의 무게, 공간적위치, 온도, 손잡이가 매끄러운 정도 등 수많은 정보를 뇌로 전달한다. - P105

 둘째 정보는 뇌에서 기저핵, 소뇌, 체감각 피질등이 복잡하게 어우러지는 협동의 산물이다. 그리하여 순식간에 잔을 쥐는 힘과 들어올리는 힘이 적절하게 조절된다. 나는잔을 원호 모양의 궤적으로 들어올리면서 커피를 흘리지 않기위해 활발한 계산과 되먹임을 통해 내 근육들을 제어한다. - P105

나의 뉴런 연결망들은 분주하게 작동하느라 비명을 내지를 지경이지만, 나의 의식적 자각은 전혀 다른 경험을 한다. 그 경험은 완벽한 무관심에 가깝다. - P106

 만일 우리가 평소에 당연시하는 동작들, 예컨대 아주 쉽다고 느끼는 걷기 동작을 의식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 나는 이언워터먼 Ian Waterman 이라는 인물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었다. - P107

이언은 열아홉 살 때 심한 장염 후유증으로 드문 유형의 신경 손상을 입었다. 그는 뇌에 촉감을 알려주는 감각신경과 자기 팔다리의 위치를 알려주는 감각(이른바 고유수용성감각) 신경을 잃었다. 그 결과로 이언은 어떤 신체 동작도 자동으로 해낼 수없게 되었다. - P107

이언은 신체 동작 없는 삶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일어나 걷는다. 그러나 깨어 있는 내내 자기 몸의 모든 동작을 의식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자기 팔다리가 어디에 있는지알아채는 감각이 없으므로, 이언은 주의를 집중하여 의식적 결정을 내리면서 몸을 움직여야 한다. - P107

이언은 발이 바닥에 닿는 촉감을 느낄 수 없으므로, 매번 보폭을 정확히 예상하고 다리에 힘을 주면서 발을 디뎌야 한다. 그의 걸음 하나하나는 의식적 정신이 계산하고 조율한 결과물이다. - P109

 이렇게 자신의 근육들이 어떤 상태인지 아는 능력을 일컬어 고유수용성감각이라고 한다. 근육, 힘줄, 관절에 있는 수용기들이 관절의 각도, 근육의 장력과 길이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 P108

당신이 이언과 함께 1~2분만 지내보면, 우리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일상 동작들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즉각 알게 될것이다. 일어나기, 방문을 향해 걷기, 문을 열기,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기가 모두 그런 동작이다. 언뜻 드는 생각과 달리 이 동작들은 전혀 간단하지 않다. - P110

지금까지 제작된 로봇들의 움직임은 인간의 신체동작에 훨씬 못미친다.
게다가 슈퍼컴퓨터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반면에, 우리의 뇌는 놀라운 에너지 효율을 자랑한다. 인간 뇌의 에너지 소비량은 대략 60와트 전구와 같다. - P110

오스틴의 손놀림을 보노라면, 그 복잡한 동작들을 신속하게해내기 위해 그의 뇌가 과도하게 일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중이라는 추측이 절로 든다. 이 추측을 검증하고자 나는 그와 컵 쌓기 대결을 하면서 그의 또한 나의 뇌 활동을 측정해보기로 했다. - P113

결과적으로 이런 노력은 부질없었다. 오스틴이 완승했다. 내가 전체 과정의 8분의 1도 채 마치지 못했을 때, 오스틴은 승리를 선포하듯이 컵들로 바닥을 내리치며 마지막 배열을 완성했다.
패배는 이미 예상했지만, 뇌전도에서 드러난 바는 무엇이었을까? 오스틴이 그 동작들을 8배 빠르게 했다면, 그가 나보다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으리라고 추론하는 것이 합리적일 듯하다. - P114

 실제로 뇌전도를 비교해보니, 과부하가 걸린 쪽은 오스틴의 뇌가 아니라 나의 뇌였다. 나의 뇌는 그 새롭고 복잡한 과제를 수행하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했다. 나의 뇌전도는 베타파 진동수 구역에서 강한 활동을 나타냈다. - P115

그는 말하자면 뉴런의 구조 속에 컵 쌓기 솜씨를 새겨넣은 것이다. 반면에 나의 뇌는 의식적 노력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나는 범용 인지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반면, 오스틴은 그 솜씨를 위해 특화된인지 하드웨어를 갖춰놓은 것이다. - P115

 자전거 타기나 신발끈묶기 같은 일들을 자동으로 할 수 있게 해주는 장기 기억을 일컬어 ‘절차 기억 procedural memory‘이라고 한다. 오스틴에게 컵 쌓기는 뇌의 미시적 하드웨어에 절차 기억으로 새겨졌다. 그래서 그의 동작은 빠르고 에너지 효율이 높다. - P116

새로운 운동 솜씨를 학습하는 초기 단계에는 소뇌가 특히 중요한 구실을 한다. 정확성과 완벽한 때 맞춤을 위해서는 동작들의 협응이 필요한데, 이 협응을 소뇌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 P117

학습이 충분히 진행되면, 솜씨는 하드웨어가 되면서 의식적통제 아래로 가라앉는다. 그러면 우리는 과제를 생각 (의식적 자각) 없이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다. 일부 경우에는 솜씨를 담당하는 회로가 뇌보다 더 낮은 층위인 척수에서 발견될 정도로 솜씨의 하드웨어화가 철저히 이루어진다. - P117

 일단 뇌 회로에 새겨진 솜씨는 생각(의식적 노력) 없이 실행될 수 있다. 따라서 자원이 절약되고, 의식적인 나는 다른 과제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몰두할수 있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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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모토‘가 딸려 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은 자유로이 꾸며낸 것이다. 저널리즘의 실제 묘사중에 <빌트와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한 바도, 우연의 산물도 아닌, 그저불가피한 일일 뿐이다." 이 모토는 뵐이 처음부터 <빌트>를 겨냥했음을 의미한다. - P290

하지만 <빌트>는 인기 여배우의 허니문 같은 말랑말랑한 주제만 다루는 평범한 스포츠 연예 전문지가 아니다. 매일 400만부 넘게 팔리는, 첨예한 정치 사회 이슈도 과감하게 다루는 영향력 막강한 일간신문이다. 그런데 정치 사회 이슈를 다루는 <빌트>의 시각은 매우 보수적이며 왕왕 극우적이다. 보도 스타일은 극도로 선정적이다. - P291

<빌트>가 뵐을 향해 쏜 ‘헤드라인 총탄‘에 맞서 뵐은 <빌트>를 향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라는 폭탄을 던졌다. 헤드라인이 신문의 일상적 무기라면, 작가에게는 때로 소설이 무기가 될 수 있다. - P291

1951년 ‘47그룹 문학상‘이 뵐에게 첫 명성을 안겨주었다. ‘47그룹‘
은 1947년 가을 비판적이고 저항적인 젊은 작가들이 만든 토론 모임이다. 당시 미국과 영국 군정 당국은 점령군의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사회주의 성향의 잡지를 잇달아 폐간시켰다. - P292

뵐은 지식인으로서 현실에 적극 참여했다. 1956년에는 소련의 헝가리 민중봉기 무력 진압을 규탄하고, 수에즈운하 개방에 반대해 이집트를 공격한 프랑스와 영국을 비판한 ‘세계 지식인 105인 선언‘에 참여했다. 유럽 68혁명이 일어났을 때는 독일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에반대하며 수도 본에 결집한 7만 시위대를 앞에 두고 연설했다. - P293

1974년 소련에서 추방당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을 자기 집으로 피신시켰으며, 1978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김지하 시인의 석방을 청원하기도 했다. - P293

뵐의 소설은 어렵지 않다. 문장은 평이하며 등장인물도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다. 작가 자신은 사회민주주의와 생태주의, 평화주의 성향이 뚜렷한데, 작품에서는 전체주의와 군국주의, 물신숭배를 비판하면서 개인의 존엄성과 휴머니즘을 강력하게 옹호한다. - P293

과 <빌트>의 전쟁은 결코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다. 뚜렷한 역사적 배경과 확실한 계기가 있었다. 1968년 서독에서는 대규모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그런데 4월 11일 그 유명한 루디 두취케(Rudi Dutschke) 저격 사건이 터졌다. 요제프바흐만이라는 청년이 반전 학생운동 지도자 두취케를 죽이려고 총 세 발을 쐈다. - P294

특히 <빌트>는 연일 "두취케는 동독의 앞잡이로서 서독 청년들의영혼을 더럽히는 빨갱이며 국가의 적 1호"라는 보도를 내보냈으며, 심지어는 "두취케를 저지하지 않으면 내전이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빌트>와 <디 벨트>는 베트남전쟁과 관련하여 미국 언론보다 더 친미적인 논지를 펼쳤으며, 반전운동을 공산당의 조종을 받는 반체제 투쟁이라고 비난했다. - P295

68혁명은 전후 독일의 기성세대가 이룩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운동으로 치달았다. 청년 학생들은 나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은 전후독일 사회와 기성세대를 도덕적으로 비난했으며, ‘라인 강의 기적‘이라는 경제 부흥에 대한 자부심을 속물적 물신숭배로 간주했다. 그들은 폭력에 대한 기존의 도덕률에도 도전했다. - P295

이런 상황에서 뵐과 <빌트>의 전쟁을 불러온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1971년 12월 독일 남서부 작은 도시의 한 은행에서 강도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빌트>는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이 사건을 바더 마인호프 그룹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그들을 살인자라고 비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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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0장
사후 세계에 대한
플라톤의 상상 - P112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몸에서 혼백이 빠져나와 하데스로 간다고 믿었습니다. 혼백은 그리스어로 ‘프쉬케(Psukhe)‘를 옮긴 말인데, 원래 뜻은 호흡할 때 내쉬고 들이마시는
‘숨, 숨결‘이라는 뜻입니다. - P112

헤르메스가 혼백들을 이끌고 가는 하데스의 세계는 어두침침하고 습기 가득한, 우울하고 생기가 없는 공간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그리로 간다니, 죽고 싶지 않겠지요? - P113

플라톤이 쓴 대표적인작품 『국가(Politeia)』의 마지막 10권에 나오는 내용인데 일명 ‘에르(Er) 신화‘라고 합니다. - P113

에르는 잠시 저승에 갔다 왔다고 했죠. 죽는 순간, 에르의 영혼은 몸에서 쑥 빠져나갔고, 같이 죽었던 사람들의 영혼과 함께 저승으로 갔다는 겁니다. 한참을 가다 보니, 신비스러운 곳에 이르렀죠. 그곳에는 땅으로 두 개의 커다란 구멍이 있었고, 하늘을 향해서도 두 개의 커다란 구멍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멍들의 입구에는 심판자가 있었고, 수많은 영혼들이 심판을 기다리며 줄을 서고 있었답니다. - P114

그런데 좀 다른 게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올바르게 살았는가, 못되게 살았는가를 두고 심판을 받는 건 비슷한데, 최후의 심판은 아니었습니다. 하늘로 올라가고 땅으로 내려가는 것도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 것과 비슷하지만, 그곳으로 올라가거나 내려가서 영원히 지내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 P114

그들은 천 년 동안 각각 하늘과 땅을 여행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던 건데, 완전히 상극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영혼들은 깨끗하고 환하게 빛이 나고 행복해 보였는데, 땅속에서 나오는 영혼들은 오물과 먼지를 뒤집어쓰고 피곤에 찌든 모습이었던 겁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이 세상에서 행한 대로 보상을 받거나 처벌을 받았던 겁니다. - P115

플라톤에 따르면 또 다른 삶을 부여받기 위해서였답니다. 그런데 천 년이 지났다고 모두 제자리로 오는 건 아니었습니다. 권력을 쥔 채 수많은 백성을 괴롭히고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을 죽인 독재자들이나, 요즘 말로 소위 부당한 ‘갑질‘을 일삼아 힘없고 약한사람들을 괴롭혔던 사람들은 지하에서 천 년 동안 고통스러운 여행을 끝내고도 곧바로 지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다시 잡혀서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두들겨 맞고, 가시덤불에 던져져 문질러지다가 땅속 깊은 타르타로스로 처박힌다는 겁니다. - P115

운명의 여신 앞에 다시 서서 새로운 인생을 부여받는다니, 이건 또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와 비슷합니다. - P116

이렇게 보니, 에르 신화는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적절하게 섞인 이야기 같습니다. 영혼들은 심판을 받고 천 년 동안 천국이나지옥을 경험하고 난 다음에 새로운 운명을 선택해서 또 다른 삶을 다시 사는 거니까요. 여러 가지 삶이나 일과 관련된 덕은 주인 없이 놓여 있는데, 영혼들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덕을 갖출 수 있게되며, 그 선택에 따라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역할과 분야가 결정됩니다. - P116

운명의 여신들로부터 새로운 운명과 삶의 수호신인 다이몬을 인정받고 난 다음에 영혼들은 그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확인받은 후에 ‘레테 (Lethe)의 평야‘로 갔답니다. - P116

영혼들은 망각의 평야에서 무심의 강물을 마시고서, 자신의 전생과 자신이 선택한 새로운 운명을 모두 망각하게 되고 깊은 잠에 빠집니다. - P116

특히 우리가 철학자로 알고 있는 플라톤이 이런 종교적인 신화를 이야기해 준다는 게 너무 신기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플라톤은 정말 재미있는 철학자입니다. 딱딱하고 추상적이고 어려운 철학적인 개념이나 논변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신화를 지어내어 자기 생각을 전하기도 하니까요. - P117

그런데 플라톤은 왜 이런 에르 신화를 지어낸 걸까요? 다 아시다시피, 플라톤의 『국가』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답을 찾는 작품입니다. 대화에 참석한 사람들은 정의로운 국가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논의하죠. - P117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법을 무시하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힘으로 약한 자를 억누르니까, 정의는 소용이 없다고 주장한 겁니다. 법에 정한대로 세금을 내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고, 공정하게살면 사람들의 미움을 받기 십상이라고 반박했죠. - P117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없다는 주장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부정을 저질러서 부자가 되고 권력을 획득한 사람은 잠시 성공하는 것 같지만, 결국 망하게 되고반드시 응분의 벌을 받을 거라고 주장했지요. 반대로 정의롭고 선한 사람은, 설령 오해와 모함을 받아 실패하고 고생하는 것 같지만, 결국 보상을 받을 거라고 주장했고요.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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