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학력 보장 해법 경쟁만이 능사가 아니다 - P40
논란의 중심에 선 기초학력평가란 ‘기초학력 진단-보정 시스템‘을 활용한 진단검사 결과를 의미한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매년 3월은 ‘진단의 달‘이다. 담임교사는 각 학생의 학업 수준을 평가하고, 기초학력 수준에 미달하는 학생을 선별한다. 2학기에 실시되는 학업성취도평가와는 차이가 있다. 학업성취도평가는 국가 교육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 수집을 목표로 하며, 학생의 학업 수준을 4단계 (우수·보통·기초·기초 미달)로 나누어 평가한다. 반면 기초학력 진단검사는 학생이 기초학력 이상인지 미달인지 여부만을 가르며, 기초학력 미달 학생에게 맞춤형 교육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실시된다. - P40
경쟁이 심해지고 서열화가 발생하더라도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줄어들면 좋은 것 아닐까?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이렇게 반박했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비율을 줄이려면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착시일뿐이며, 미달 비율을 급격히 줄이려는 것 자체가 기초학력보장에 악영향을 끼친다." - P41
실제로 이명박 정부 시절 기초학력미달 학생 비율은 현격히 감소했다. 학교별 학생 수준(보통 이상·기초·기초 미달학생 비율)과 개선 정도를 공개하고, 이에 따라 학교에 인센티브를 차등 지급한 결과였다. - P41
그러나 이 시기, 지표가 개선된 것과반대로 교육 현장에선 갖가지 부작용이 발생했다. 교육과정을 무시한 채 학업성취도 평가 시기에 맞춰 문제 풀이 수업을 반복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을 통계에서 제외시키자, 학습부진 경계선에 있는 아이들을 대거 특수교육 대상자로 편입시키는 해프닝도 일어났다. - P41
기초학력 미달 경계선에 놓여있는 아이를 교사의 판단에 따라 기초학력 이상으로 진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적절한 지원을 통해 기초학력을 다질수 있는 학생이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 P41
이명박 정부의 ‘뒤처지는 학생 없는 학교 만들기‘라는 슬로건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그러나 교원단체들은 "뒤처지는 학생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한다. - P41
이 경우 핵심은 비율을 줄여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초학력에 미달한 학생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지원하는지다. 지원 결과 미달 비율이 감소할 수는 있지만, 미달 학생비율 ‘제로화‘ 따위의 목표는 불가능하고 불필요한 것이 된다. - P41
일각에서는 학교별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이 학부모의 ‘알권리‘를 충족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교원단체 ‘좋은교사운동‘의 한성준 공동대표는 "학부모가 알아야 할 것은 그 학교 학생들의 수준이아니다"라고 반박한다. 오히려 각 학교가 제공하는 기초학력 보장 지원책에 대한정보를 공개해야 학부모가 학교에 더 나은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 한 대표는 "학교별 기초학력 미달 비율을 공개하자는 것은 그 학교와 지역에 대한 낙인찍기밖에 되지 않는다. 기초학력 보장이 발전하기 위해선 ‘학생이 얼마나 우수한지‘가 아니라 ‘학교 지원제도가 얼마나 우수한지‘ 로 경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 P41
프랑스를 뒤흔든 페인트 테러 사건
전시 중이던 한 예술품에 극우 정치인이 페인트를 뿌렸다. 표적이 된 그림은 프랑스 사회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던 작품이다. ‘표현의자유‘ 문제에 대한 논란이 프랑스 정치권까지 번지고 있다. - P48
2월17일부터 5월14일까지 열린 스위스 작가 미리암 칸의 ‘내 일련의 생각 (Mapensée sérielle)‘ 전시에서 작품에 불만을 품은 한 80대 남성이 해당 작품을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 P48
이 사건은 프랑스 문화·예술계뿐 아니라 정치·사회 분야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라디오 채널 프랑스앵포 보도에 따르면, 미술관 측은 "(훼손된) 작품을 어떻게할지 작가와 협상할 때까지 전시관을 닫겠다"라고 전했으며 리마 압둘 말라크 문화부 장관은 즉시 현장을 찾아 "(이 사건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며 꽤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 P48
문제가 된 작품은 등 뒤로 손이 묶인작은 사람이 한 남자에게 강제로 구강성교를 당하는 듯한 장면을 담고 있다. - P48
지난 3월부터 ‘아동을 위한 법률가들(Juristes pourl‘enfance)‘을 포함한 여러 아동인권 보호단체들은 해당 작품 속 피해자로 보이는작고 마른 사람이 아동 포르노로 비칠 수있다면서 작품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단체 ‘콩트르어택 (Contre-Attack)‘은 "아동이 소비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며 미리암 칸의 작품들이 "비슷한 내용의 예술을 수용하고 대중화시키려 한다"라고 비판하는 내용의 인터넷 청원을 올렸다. - P48
미리암 칸은 공식서한에서 "(해당 작품의 사람은) 아이가 아니며, 이그림은 반인륜적 범죄이자 전쟁무기처럼사용되는 강간을 표현하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덧붙여 그림 속 두 인물의 체격차이로 아동 포르노라는 해석 문제가 제기된 점에 대해 "두 인물의 신체 대조는 억압자의 신체적 힘과 전쟁에 의해 무릎끓려진 야윈 피억압자의 허약함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 P49
미리암 칸은 이 작품을 러시아 군이자행한 우크라이나 부차 지역 민간인 학살 및 성폭행 사건 보도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라고 말한다. - P49
3월17일 극우 성향 국민연합(RN) 의원 카롤린 파르망티에는 트위터에 해당 작품 앞에서 찍은 영상을 올리고, 3월21일 국회에서 "전쟁범죄를 고발한다는 이유일지라도 이런 작품을 전시하는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라며 문화부 장관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 P49
리마 압둘 말라크장관은 미리암 칸 작가가 40년 전부터 "전쟁의 참혹함을 고증하고 고발해왔다" 라며 "예술이 충격을 주고, 의문을 제기하며, 때로는 불편함과 반감까지도 야기할 수 있지만 예술은 합의에 의한 것이아니다"라고 답했다. - P49
같은 날 ‘창작의 자유 연구소(L‘Obser-vatoire de la liberte de creation)는 "예술가들은 자유롭게 범죄를 고발할 수 있어야 한다. 조르주 상드(프랑스 낭만주의작가)가 문학에 대해 말했듯, ‘작가는 반사하는 거울이자 모방하는 기계로, 그의 흔적이 정확하고 반영이 충실하다면 그어떤 것에 대해서도 사과할 필요가 없다‘. 그림도 마찬가지고, 이미 2세기를 지나온이 논쟁은 여전히 비판자들의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라며 미리암 칸작가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 P49
사건이 일어난 5월7일 팔레 드 도쿄는 ‘재물 파손 및 표현의 자유 침해죄‘로 페인트 테러를 저지른 관객을 고소하기로 했다. 5월8일 일간지 <르몽드> 보도에 따르면, 이 관객은 국민전선(국민연합 이전 당명) 의원인 피에르 샤생인 것으로 밝혀졌다. - P49
재의요구권보다는 거부권이라는 표현이 더 직관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지난 4월4일 양국관리법에 대해, 5월16일 간호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 P3
한국은 윤석열 정부 이전까지 역대 대통령이 총 66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45건으로 가장 많다. ‘1987년 직선제‘ 대통령 이후로는 노태우 7건, 노무현 6건, 이명박 1건, 박근혜 2건이다. 김영삼·김대중·문재인 정부 때는 거부권 행사가 없었다. - P3
돌봄을 ‘거부한‘ 정치 간호사들이 싸우는 이유 - P12
당장 불거진 것은 이른바 ‘PA 간호사‘ 문제다. PA(Physical Assistant) 즉 진료보조 간호사는 공식적으로는 없는 직종이다. 초음파 및 심전도 검사, 채혈, 봉합, 대리수술, 기관 삽관 등 의료행위는 의사가 하지 않으면 불법임에도 이들 PA 간호사가 해왔다. - P12
대한간호협회(간협)는 대통령 거부권 직후 불법진료신고센터를 개설하고 회원들로 하여금 병원에서 일어난 불법행위를 신고하게끔 했다. PA간호사들의 신고가 폭주하면서 5월18일부터 운영된이 사이트는 한때 트래픽 초과로 접속이 막히기도 했다. 5월24일 간협은 ‘준법투쟁 1차 결과‘를 발표해 총 1만2189건의 불법 진료 사례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 P12
간호사의 준법투쟁은 그동안 은폐돼온 병원 내 불법을 폭로한다는 취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확대하려는 간호법 제정 문제와도 맞닿아있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행위와 관련한 간호사의 임무를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 정의하고 있다. 보조를 넘어서는 의료행위는 간호사 단독으로 할 수 없다. - P12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듯 이런 불법은 수시로 일어난다. ‘진료의 보조‘라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모호하고 추상적이다보니 만성적으로 의사 수가 부족한 병원에서는 간호사가 의사의 일부 업무를 대신하는 관행이 굳어졌다. - P12
더욱이 의료행위를 하다 보면 무자르듯 의사와 간호사의 업무를 나누기 쉽지 않다. 결국 실제 업무 구분은 법원 판례나 당국의 유권해석을 통해 이뤄진다. - P13
2017년에는 음주운전 교통사고 가해자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하기 위해 피를 뽑은 간호사가 의료법 위반 소송에휘말리기도 했다. 당시 응급실에서 근무했던 간호사는 경찰 입회하에 의사 없이 채혈했다가 낭패를 겪었다. 이 사건은 결국 헌법재판소까지 간 끝에 ‘의사의 포괄적인 지도·감독‘이 있었다고 봐야 하므로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 P13
간협은 의료법이 초고령사회 돌봄 확대에도 걸림돌이라고 주장한다. 의료법 제33조는 보건소 등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하여야한다‘라고 규정한다. 이렇다 보니 병원 밖에서 의사의 지시 없이 간호사가 혈압과 혈당을 측정하는 것도 불법이다. - P13
간호인력의 업무 범위, 공간, 처우 개선 등을 체계적으로 규율하는 새로운 간호법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간호법 반대단체와 정부는 현행 의료법 틀 안에서도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 P14
간협은 간호사들의 최대 이익단체다. 현직 간호사대다수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2022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의료기관·학교 등에서 활동하는 간호사 수는 약 39만명이다. 여기에 면허를 가진 전직 간호사와 간호대 학생까지 합치면 포괄하는 인원이 약 62만명에 달한다. - P14
게다가 간협은 거부권 행사 나흘 전인 5월12일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로 ‘세‘를 과시했다. 주최 측추산 10만명, 경찰 추산으로 2만5000명이 참석했다. - P14
익히 알려졌듯 간호법 제정은 윤석열대통령과 여당이 대선 때 약속한 사항이다. 약속 파기 논란이 불거지자 정부·여당은 말만 꺼냈을 뿐 공약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 P14
간호법 추진의 역사는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한간호협회는 ‘요양상의 간호와 진료의 보조‘라는 문구가 전부인 의료법의 한계를 지적하며 독자적인 간호법의 필요성을 처음 제기했다. - P15
간호법 제정이 급물살을 탄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다. 간호사들의 헌신이 널리 알려지면서 간호·돌봄 시스템 구축과 간호사 처우 개선에 대한 공감대가커졌다. 2021년 여야 모두에서 간호 법안이 발의됐다. - P15
세법안의 공통점은 간호사의 임무에서 기존 의료법에 있는 ‘진료의 보조‘라는 문구를 들어냈다는 점이다. 대신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 같은 문구로 바꿨다. ‘보조‘ 의 기준이 불명확한 데다가 의사와 간호사 사이 관계를 협력보다는 종속적으로 규정한다는 이유에서였다. - P15
2022년 대선 때까지만 해도 간호법제정을 공언했던 국민의힘 입장은 대선이후 드라마틱하게 바뀐다. - P15
진료의 보조가 삭제될 경우 간호사들이 의사의 지시를 떠나 독자적인 의료행위를 일삼을 것이라는 간호법 반대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의사의 지도하에‘라는 문구가 남아 있음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 P15
간호사의 임무를 ‘의사의 지도하에‘ ‘진료의 보조‘로 묶어둔 채 활동공간을 의료기관과 함께 ‘지역사회‘로 넓힌 것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이마저도 반대 측에서는 간호사들이지역사회에서 단독으로 의원을 열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우려했다. 현행 의료법상의사가 아닌 간호사는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 - P15
윤석열 대통령은 5월16일 국무회의에서 간호법이 직역 간갈등을 일으키고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 P15
4월27일 국회 본회의에서 당론을 거스르고 간호법에 찬성표를 던진 국민의 힘 의원이 두 명 있었다. - P16
윤석열 대통령은 5월16일 거부권 행사 당일 국무회의에서 이들 여당 정치인의 말과 상반되는 발언을 내놓았다. "이번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간호 업무탈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5월24일국회 운영위원회에서는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통해 "공약한 바 없다"라고 재차 확인했다. - P16
보건복지부는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후 ‘간호법안, 국회 본회의의결 그 후‘라는 카드뉴스를 만들어 배포했다(오른쪽 그림 참조). 이 카드뉴스는 정부의 공보물이라기엔 놀랄 만큼 편파적인 데다 부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다. 우선 정부가 간호법에 우려를 표하는 이유에 대해 ‘간호사 혼자 환자를 돌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간호법 어디에도 간호사 혼자 환자를 돌볼 수 있게 하는 조항은 없다. 보건복지부는 간호조무사 등 다른 직역 단체가 반발하기 때문에 협업 체계가 깨지고, 결국 간호사 혼자환자를 보게 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가정법을 내세운다. - P16
심지어 이 조항은 기존 의료법에서그대로 가져왔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이 내용을 확대·재생산하면서 논란이 커졌음에도 보건복지부는 명쾌한 설명을 내놓고 있지 않다. - P16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의료현안협의체를 열고 논의를 시작했다. 전격적인 의대 정원 확대가능성에 온갖 추측이 무성하다. 일각에서는 간호법 거부권과 의대 정원 확대를 맞바꾼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 P17
다시 말하지만, 이번 간호법은 차·포를 뗀 법이었다. 간호인력 전체의 처우 개선과 돌봄 시스템 구축에 턱없이 모자란법이다. 진보 성향인 ‘행동하는 간호사회‘ 의 경우 거부권 행사 직후 성명을 통해윤 대통령의 ‘행정독재‘를 비판하면서도 이번 법안에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 같은 실질 내용이 빠졌다고 지적했다. - P17
실제로 이번 간호법 정국의 키워드는 ‘돌봄‘이었다. - P17
일부 정치세력과 대통령, 그리고 행정 당국이 이를 직역 간 갈등‘ 프레임으로 변질시켰지만, 서로 충돌하는가운데서도 사회적 논의는 진전될 수밖에 없다. 2023년 한국 사회가 드디어 ‘돌봄의 미래‘를 향한 여정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 P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