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말
이 책은 마치 나 혼자 쓴 것처럼 내 목소리로 작업했고, 내 삶의많은 이야기를 다루었다. 하지만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테드TED 강연을 비롯해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돌며 진행한 많은 강연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나 한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의 작품임을 밝힌다. - P6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은 ‘천재 한 사람‘의 발명품이 아니다. 재능도 다르고, 지식도 다르고, 관점도 다른 세 사람의 끊임없는 토론과 논쟁 그리고 협력의 결과다. 기존과 다른, 종종 화를 돋우는, 그러나 대단히 생산적인 이런 작업 방식 덕에 세상을 소개하는법과 세상을 생각하는 법을 개발할 수 있었다. 나 혼자서는 절대불가능했을 일이다. - P7
1장 간극 본능
도와줘요! 다수가 사라졌어요
다수가 저소득 국가에 살지 않는다면 어디에 사는 걸까? 다수가고소득 국가에 살지 않는 건 확실할까? 목욕물은 어느 정도가 좋은가? 얼음처럼 차갑게? 아니면 김이나도록 뜨겁게? 물이 두 종류만 있는 건 결코 아니다. 얼음장같이차가운 물, 미지근한 물, 델 것같이 뜨거운 물, 그리고 그 사이에 해당하는 다양한 온도의 물이 있어 선택 대상은 많다. - P51
중간층에 사는 50억 인구가 잠재적 소비자로서 삶의 질을 높이며, 샴푸 · 오토바이 · 생리대·스마트폰 등을 소비한다. 그런 사람들을 그저 ‘가난한‘ 사람으로 치부한다면 큰 시장을 쉽게 놓쳐버리는 꼴이다. - P52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네 단계 명명법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러 나라를 두 집단으로 나누는 행위를멈추는 것이다. 그런 구분은 이제 말이 안 된다. 세상을 현실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업인이 사업 기회를 찾는데도 도움이 안 되고, 가장 가난한 사람을 찾아 경제적 지원을 하는 데도 도움이 안 된다. 하지만 세상을 이해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분류를 해야 한다. 우리는 과거에 붙인 이름을 포기할 수 없으며, 그걸 대체할 말도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 P53
인간에게 필요한 기본 요소를 충족하며 사는 단계다. 흥분되지 않는가? 흥분해야 맞다. 네 단계 소득수준은 사실에근거한 새로운 사고의 틀에서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까 장담하건대 세상을 좀 더 정확하게 추측하는 단순한 생각 도구 중 하나다. 앞으로 이 책 전반에 걸쳐 이 네 단계가 어떻게 테러부터 성교육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을 이해하는 단순한 도구가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각 단계별로 삶이어떤 모습인지 설명해보겠다. - P55
1단계: 1단계는 하루 1달러로 출발한다. 5명의 자녀가 걸어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더러운 진흙 구덩이에서 물을 길어 오기 위해 하나뿐인 플라스틱 양동이를 들고 맨발로 몇시간씩 왔다 갔다 해야 한다. (중략). 그래도 살아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운이 좋아 작황이 좋으면, 남는 작물을 팔아 하루에 가까스로 2달러 남짓 번다. 그러면 다음 단계로 올라간다. 행운이 함께하길! (오늘날 약10억 인구가 이런 식으로 산다.) - P55
2단계: 드디어 2단계다! 소득은 4배가 되어이제 하루에 4달러를 번다. 날마다 3달러가남는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하겠는가? 이제는 먹을거리를 직접 기르지 않고, 돈으로 살수 있다. (중략). 삶은 이제 훨씬 나아졌지만, 아직도 매우 불확실하다. 어디가 아프기라도 하면 가진 것을 거의 다팔아 약을 구입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다시 1단계로 추락한다. 하루에 여윳돈 3달러만 생겨도 좋지만, 삶을 극적으로 개선하려면 소득이 다시 4배가 되어야 한다. 동네의류업체에 취직할 수 있다면, 집에 급여를 가져오는 첫 번째 식구가 될 것이다. (오늘날 약30억 인구가 이런 식으로 산다.) - P56
3단계: 와, 해냈다! 투잡, 스리 잡을 뛰면서하루 16시간, 주 7일을 일해 어렵게 소득을다시 4배로 올려 하루 16달러를 번다. 저축도 제법 하고, 수도도 설치한다. 이제 물을길러 다니지 않아도 된다. (중략). 어느 날 공장에 출근하다 사고를 당해 그동안 모아둔 아이들 교육비를 치료비로 쓴다. 다행히 몸은 회복되고, 모아둔 돈이 있어 2단계로 추락하지는 않는다. 아이들 중 둘이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어떻게든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면 부모가 경험한 적 없는 높은 급여를 받는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P57
4단계: 이제 하루에 32달러 넘게 번다. 부유한 소비자이고, 여기에 다시 하루 3달러를더 번다고 해서 일상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극도로 빈곤한 삶을 바꿀 수있는 3달러가 큰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중략). 하지만 이런 고소득층의삶을 사는 사람은 다른 세 단계 삶 사이의큰 차이를 이해하기 어렵다. 4단계 사람이다른 60억 인구의 현실을 오해하지 않으려면 큰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약 10억 인구가 이런 식으로 산다.) - P58
인간의 역사는 1단계에서 출발했다. 10만 년이 넘도록 누구도 1단계를 넘어서지 못했고, 아이들은 부모가 될 때까지 살아 남지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200년 전만 해도 세계 인구의 85%가여전히 극도로 빈곤한 1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오늘날에는 절대다수가 중간층인 2단계와 3단계에 분산되어있는데, 1950년대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에 해당하는 생활수준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여러 해 지속되었다. - P59
간극 본능
간극 본능은 아주 강렬하다. 내가 세계은행 직원들 앞에서 처음강의를 한 때가 1999년이다. 그때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이라는 명칭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했고, 곧이어 검을 삼켰다. - P59
그렇다면 부자와 빈자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는 오해는 왜그토록 바뀌기 어려운 것일까? 내 생각에 인간에게는 이분법적 사고를 추구하는 강력하고 극적인 본능이 있는 것 같다. - P60
언론인도 이를 잘 안다. 이들은 전달하려는 이야기를 서로 반대되는 두 부류 사람들, 반대되는 두 시각, 반대되는 두 집단 사이의 갈등으로 구성한다. 이들은 절대다수 사람들이 서서히 더 나은 삶으로 편입되는 이야기보다 극빈층과 억만장자의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 P60
간극 본능을 어떻게 억제할까?
누군가 내게(또는 내가 나 자신에게) 지금 과도하게 극적인 간극 이야기를 하거나, 간극 본능을 자극하려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신호가 세 가지 있다. 이를 각각 ‘평균 비교‘, ‘극단 비교‘,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이라 부르자. - P61
평균 비교
세상의 모든 평균이여,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에 부디 기분상하지 않기를 바란다. (중략). 이 책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는 많은 평균이 나온다. 그러나 정보를 단순화하다 보면 오판하기 쉬운데, 평균도 예외는 아니다. - P61
두 가지 평균을 비교할 때, 숫자 둘을 놓고 그 간극에만 주목한채 평균을 구성하는 서로 겹치는 분산을 무시하면 더 큰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간극을 보는셈이다. - P62
숫자 이면의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우선, 세로축 눈금을바꿔보자. 숫자는 같은데, 도표에서 받는 느낌이 확 달라진다. 이제 간극이 거의 없어 보인다. - P63
보라, 남학생과 여학생의 수학 점수가 거의 겹치지 않는가! 다수의 여학생이 남학생과 똑같은 점수를 받았다. 멕시코와 미국의 소득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일부에 그친다. 어쨌거나 데이터를 이런 식으로 보니 무엇보다도분명한 점은 남학생과 여학생, 멕시코와 미국이라는 두 집단이완전히 별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두 집단은 겹치며, 둘 사이에 간극도 없다. - P64
극단 비교우리는 극단적 예에 끌리게 마련이다. 그런 예는 회상하기도 쉽다. (중략). 서로 다른 정부 체제를 생각해보라고 하면 한편으로는 부패하고 억압적인 독재 체제를, 한편으로는 스웨덴 같은 훌륭한 복지 체계와 시민의 권리 수호에 삶을 헌신하는호의적 관료를 떠올리기 쉽다. - P65
불평등이 매우 심한 브라질을 보자. 브라질에서는 상위 10%의부유층이 전체 소득의 41%를 벌어들인다. 당혹스럽지 않은가? 너무하다 싶다. (중략). 맞다. 부유층 관련 수치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너무 높다. 하지만동시에 지난 여러 해 동안 그 반대편의 수치도 그리 낮지는 않았다. - P65
브라질 사람 대부분은 극빈층에서 탈출했다. 가운데에 불룩 솟은 부분은 3단계다. 3단계에서는 오토바이와 돋보기안경을 구입하고, 고등학교 학비를 대기 위해 은행에 저축을 하고, 언젠가는세탁기도 산다.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매우 심한 나라도 현실에서두드러진 간극은 없으며, 대부분이 중간층에 속한다. - P67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
앞에서도 말했듯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4단계 삶을 살게 거의 분명하다. (중략). 그리고 독자가 사는 나라에서 가난이라고 하면 ‘극도의 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을 뜻한다. - P67
4단계 사람에게는 1, 2, 3단계 사람이 모두 똑같이 가난해 보일 수 있고, ‘가난하다‘는 말이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심지어 4단계 사람도 집 벽에 페인트칠이 벗겨졌다거나 중고차를 몬다거나 해서 가난해 보일 수 있다. 높은 건물 꼭대기에서아래를 내려다보면 땅에 가까운 자그마한 건물들의 높이 차이를 제대로 식별하기 어렵다. 모두 작게 보일 뿐이다. - P68
세계를 과도하게 극적으로 나누지 않고 네 단계로 구분하는방식은 이 책에서 독자가 배울, 사실에 근거한 사고의 틀 중 첫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독자는 이제 그 부분을 배웠다.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 안 그런가? - P69
오해를 추적해 찾아내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데이터다. 데이터를 보여주고 그 이면의 현실을 설명해야한다. 그러니 유니세프 데이터 표도 고맙고, 물방울 도표도 고맙고, 인터넷도 고마울밖에.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 P69
사실충실성
사실충실성은 지금 저 이야기는 간극을 말한다는 걸 알아보는 것이고, 그런 이야기는 별개의 두 집단이 서로 간극을 두고 존재하는 그림을 가정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현실은 그렇게 극과 극으로 갈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간극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그곳에 사실은 인구 대다수가 존재한다. - P70
4장 공포 본능
바닥에 흥건한 피
(전략). 나는 남자의 눈을 들여다보며 러시아어로 또박또박 말했다. "모두 진정됐습니다, 동지, 스웨덴 병원." 나는 그 말이 불러일으킨 공포의 표정을 절대 잊을 수 없다. 환자는 겁에 질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바브드포 파프라타르젠지 리쓰캬메멤제예…………." 나는 겁에 질린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깨달았다. 그는 격추당해 스웨덴 영토에 떨어진 러시아 공군 조종사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우리를 공격했다는 뜻 아닌가. 아,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구나! - P146
그때 다행히 수간호사 비르기타Birgitta가 점심 식사를 마치고돌아왔다. 비르기타는 내 손에서 깁스 절단기를 빼앗더니 "쉿" 소리를 냈다. "찢지 말아요. 공군 전투복 ‘G 슈트‘예요. 잘못하면최소 1만 스웨덴 크로나krona를 물어내야 해요." 수간호사는 호통을 친 뒤 이렇게 말했다. "구명조끼에서 발 좀 떼어줄래요? 컬러 카트리지를 밟고 있어 바닥 전체가 시뻘게졌잖아요." - P147
몇 년 전 그 조종사에게 연락을 한 적이 있는데, 1975년 응급실에서의 처음 몇 분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의 엉터리 판단을 두고두고 잊지 못했다. 모든 게 내 판단과는 정반대였다. 러시아 사람이 아니라 스웨덴사람이었고, 전쟁이 아니라 평화로운 시기였으며, 간질 발작이아니라 추위에 몸을 떨었고, 피는 구명조끼 안에 들어 있던 컬러앰플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모든 판단이 그럴듯했다. 공포에 떨면 상황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법이다. - P147
주목 필터
세상의 온갖 정보를 모두 흡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 어떤 부분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어떻게 선택했는가, 그리고 지금 어떤 부분을 무시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받아들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이야기가 있는 정보, 즉 극적으로 들리는 정보다. - P148
주목 필터
세상의 온갖 정보를 모두 흡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 어떤 부분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어떻게 선택했는가, 그리고 지금 어떤 부분을 무시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받아들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이야기가 있는 정보, 즉 극적으로 들리는 정보다. - P148
언론은 우리의 주목 필터를 통과하지 못할 이야기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주목 필터를 통과할 것 같지 않아 편집장의 승낙을 얻지 못한 기사 제목을 2개만 살펴보자. "말라리아 지속적으로 감소" "오늘 런던 날씨가 포근하겠다던 기상청의 예측 적중." 반면 우리의 필터를 쉽게 통과하는 주제를 나열해보자. 지진, 전쟁, 난민, 질병, 화재, 홍수, 상어 공격, 테러, 이런 드문 사건은일상적 사건보다 뉴스로서 더 가치가 있다. 그리고 언론에서 꾸준히 봐온 드문 이야기가 우리 머릿속에 큰 그림을 그린다. - P149
공포 본능
(중략). 이런 두려움은 우리 뇌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진화와 관련한 명백한 이유가 있어서, 우리 조상은 신체 손상, 감금, 독에 대한 두려움 덕분에 생존율이 높아졌다. 이런 위험 감지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공포 본능을 일깨우고, 뉴스에서도 그런 본능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날마다 볼 수 있다. - P150
몸이 덜 고되고 자연에서 자신을 보호할 형편이 되는 3, 4단계삶에서는 그런 생물학적 기억이 이익보다는 해가 많을 것이다. 특히 4단계에서는 우리를 보호하도록 진화한 그 두려움이 이제는 해가 되는 게 분명하다. 4단계 사람 중에는 소수인 3%만이 일상생활에 방해를 받을 정도로 그런 공포를 강하게 느낀다. 그 외공포에 방해받지 않는 절대다수의 사람에게는 공포 본능이 세계관을 왜곡하는 탓에 해롭다. - P152
언론은 사람들의 공포 본능을 이용하려는 욕구를 억제하기 어렵다. 주의를 사로잡는 데는 공포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주목을 끄는 이야기는 여러 종류의 공포를 동시에 촉발하는것일 때가 많다. - P152
그러나 여기에는 모순이 있다. ‘위험한 세계‘라는 이미지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효과적으로 방송을 타지만, 실제 세계는 다른 어느 때보다 덜 폭력적이고 더 안전하다. - P152
자연재해: 이런 시대에
아시아에서 1단계 삶을 사는 거의 마지막 나라인 네팔이 2015년에 지진 피해를 입었다. 1단계 나라에 재난이 닥치면 사망률은더 높아지는데, 건물이며 기반 시설 그리고 의료 시설이 모두 열악한 탓이다. 당시 네팔의 지진 사망자는 약 9,000명이었다. - P153
오늘날 자연재해 사망자가 크게 줄어든 이유는 자연이 변해서가 아니다. 다수가 더 이상 1단계에 살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재해는 소득수준을 가리지 않고 닥치지만, 피해 정도는 매우 다르다. 부유할수록 철저히 대비한다. 다음 도표는 소득 단계별로 지난 25년 동안 인구 100만 명당 자연재해 사망자를 나타낸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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