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사람들』은 총 열다섯 편의 단편소설을 모아 놓은책이다. 이 책은 저마다 다른 주제와 소재, 그리고 문체와 서술 기법들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 P323
그는 서구 문학에서 별로 다루어지지도 않고 크게 알려지지도 않았던 이 도시를 처음으로 알린다는 데에 큰 자부심을 느꼈던 듯하다. - P323
조이스에게 더블린은 대체로 밝고 활발하고 건전하기보다는 어둡고 무기력하고 타락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조이스가 『더블린 사람들』에서 다룬 삶의 양상이 비교적 부정적인 쪽에 치우쳐 있고, 또한 이를 표현하는 데 걸맞게 언뜻 구질구질하거나 상스럽게 비칠 만한 언어를 구사했다는 것은처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문제로 대두했다. - P324
그럼에도 출판사 측의 압박이 계속되자, 이에 맞서 조이스는 이렇게 소신을 밝혔다.
내가 양보하지 않은 사항들이야말로 바로 책을 단단히 응집시키는 사항들입니다. 내가 그 사항들을 견지하기 위해 싸우는 것은 내 도덕사의 장을 내가 쓴 방식 그대로 씀으로써 우리나라의 정신적 해방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P325
작가적 소신이 담긴 위의 진술들에는 『더블린 사람들』의 주요한 문학적 요소들, 즉 소재, 주제, 구조, 분위기 및 문체 따위에 대한 그의 철저한 구상이 담겨 있다. - P325
1. ‘마비‘라는 주제
(전략).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정치적인 차원에서 당시 아일랜드는 수백 년에 걸친 영국의 제국주의적 압박과 이와 관련한 정치적 부패, 그리고 감자 기근 등으로 인한 경제적 빈곤과 이로 인한 미국 등지로의 이민 물결이라는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일랜드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해야 할 가톨릭교회는 올바른 가치관의 지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집단 이기주의와 세태 영합의 모습을 보이기도했다. - P328
아닌 게 아니라, 『더블린 사람들』에 등장하는 많은 작중인물들은 이렇게 빈곤과 무지와 환상과 이기심에 의해 고정된 자리에 갇혀 지낸다. - P328
(전략), 설혹 현실 타개의 엄두를 낸다 하더라도 판단력과 의지 부족으로 말미암아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아 패배주의에 빠지는 경우가 보통이다. - P329
청년기에 해당하는 네 작품은 경제적, 사회적인 신분 상승의 꿈이 허망하게 좌절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P330
「경주가 끝난 후」와 「두 건달」은 자신보다 우월한 입장에 있는 친구에게 아부하며 기생하다시피 하는 종속적인 관계를 통해 이득을 꾀하려는 청년들의 속물성과 허영심을 다룬다. - P331
(전략), 후자에서 레너헌은 그의롤 모델인 콜리에게 빌붙는 자신의 비굴한 태도와 황새를 따르려는 뱁새 꼴에 불과한 자신의 실제 처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둘 다 마지막에 참담한 패배감과 자기모멸감 속에서 후회할 수밖에 없다. - P331
「담쟁이 날의 위원회실」에서는 시의원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위원회실에 모인 사람들의 불성실하고 야비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중략). 과거의 추억에 대한 감상적인 향수, 그리고 타락과 배신이 지배하는 위원회실의 분위기는 파넬이 죽은 후 아일랜드 정치가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음을 잘 나타낸다. - P334
「은총」에서는 술 마시고 넘어지는 봉변을 통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위신이 추락한 상태임을 여실히 보여 주는 커넌이라는 인물을 구제하기 위해 주변 친구들이 공모하여 그를 피정에 데려가고 거기서 퍼든 신부의 설교를 듣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진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부의 설교는 하느님과 함께 돈을 섬기라는 취지를 담고 있다. - P335
여기까지 『더블린 사람들』에 실린 단편 열다섯 편을 ‘마비‘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다양한 인물형들의 다양한 생활 모습이 그려져 있지만 전반적으로 갑갑하고 어두운 색채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마비라는 한마디 단어만으로이 책에 그려진 더블린 사람들의 이야기 전체를 단순화한다면 과연 온당한 평가라고 할 수 있을까? - P337
마비라는 단어가 조이스 자신이 이 책에 대해서 사용한말이고 또 실제로 이 책 도처에 마비의 증상이 짙게 감지된다는 점은 물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마비의 증상에 대해서 조이스가 그만큼 안타까워했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 P338
2 꼼꼼한 비속의 문체
(전략). 그런데 조이스 학자들의 입에 ‘마비‘에 버금가게 자주 회자되는 이 어구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종종 엇갈린다. - P338
꼼꼼한 문체는 조이스의 철저한 자연주의적 작품을 나타낸다.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읽어 본 사람은 더블린을 직접 가보지 않아도 더블린 시가를 머릿속에 훤히 재현해 낼 수 있을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는 『더블린 사람들』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 P339
그러나 조이스는 자연주의적 수법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사실주의나 자연주의라는 사조가 인생을 있는 그대로 담는다 - P340
즉 어떤 사물이나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그 안에 내재해 있는 특수한 성질이나 본질이 순간적으로 빛을 발하듯이 강렬한 인상을 통해 드러나게끔 하는 것이다. - P340
그러나 더블린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드러내고 보여 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특히 끝부분에서 점강법, 불완전, 감추기를 보여 주기도 한다. - P341
사물의 절대적인 객관성에 대한회의에서 출발하여 사물을 바라보는 다각적인 시각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이피퍼니도 그러한 착상의 산물이거니와, 조이스는 작중인물과 독자에게 공히 사물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시각보다는 상대적인 시각에 비중을 두도록 했다. - P342
3 네 양상의 구조
조이스가 더블린 사람들의 생활 양상을 최대한 폭넓게 재현하고자 한 노력은 그것을 유년기, 청년기, 성년기, 공공 생활의 네 단계로 나누어 다룬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 P342
『더블린 사람들』을 형식과 구조의 측면에서 상호 관련성없이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들의 부조화적인 묶음으로 봐서는 곤란할 것이다. 조이스는 그가 양보하지 않은 사항들을 견지하려고 애쓴 이유가 그것이 바로 "책을 단단히 응집시키는 사항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P343
이런 견지에서 전체 이야기들의 구조를 꼼꼼하게 비교·분석해 보면 놀랍게도 그것들 사이에 내용상 서로 관련을 이루는 일정한 패턴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P344
이 표에 나타난 바와 같이 조이스는 대칭, 평행, 대조 등의 형태적 패턴을 바탕으로 『더블린 사람들』에 실린 이야기들 사이에 표면에 드러나는 것보다 밀접한 상관관계를 구성하고 있다. - P344
번역 대본으로는 국제적인 제임스 조이스 학술지인 《제임스 조이스 쿼털리 (James Joyce Quarterly)》가 표준판으로 정한책 (Dubliners: Text, Criticism, and Notes, ed. Robert Scholes and A.Walton Litz. New York: Viking Press, 1969)을 사용했다. - P345
가령 딱딱한 한자어보다는 순 우리말을 선택하되, 원본의 어휘가 라틴어 어간을 지니고 있고, 문맥상 그 말에 무게를 실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는 한자어를 사용하고자 했다. - P345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안내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이상옥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아울러 역자의 게으름 탓으로 번역이 지연되는데도 참고 기다려 준 민음사, 그리고 편집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편집부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이 번역은 2008년도 세종대학교 교내 연구비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것임을 밝힌다.
2012년 12월 이종일 - P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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