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베유
비극적 감수성
나의 시련이 쓸모 있기에 사랑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나의 시련은 존재하기에 사랑해야 한다.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Gravity and Grace) - P44
불가사의한 매력
1951년과 1952년에 어느 프랑스 여성이 쓴 세 권의 책이 영어로 번역되었다. 이 여성은 작가이자 교사이자 철학자이자 노동운동가이자 기독교 신비주의로 개종한 유대인이었다. - P45
매카시는 훗날 베유의 에세이와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우한 경험을 통해 "이항대립적 사유" 에 종지부를 찍었다고말했다. 《폴리틱스》의 편집장이었던 드와이트 맥도널드는 "<힘의 시, 《일리아드》>는 잡지 역사상 최고의 기고문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³
3 Carol Brightman, Writing Dangerously: Mary McCarthy and HerWorld (New York: Harcourt, Brace, 1992). - P46
엘리자베스 하드윅은 1970년대 초반 출간된 시몬 페트르망의 베유 전기를 평하면서, 하드윅이 당시 어울리던 친구들, 소위 "뉴욕 지식인 그룹" 과 《파르티잔 리뷰》의 편집진들에게 베유가 끼친 심오한 영향에 주목했다.⁴
4 Elizabeth Hardwock, Bartleby in Manhattan and Other Essays (New York: Random House, 1983). - P46
《하느님을 기다리며》와 《중력과 은총》은 각각 라 콜롬브와 플론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는데, 모두 성녀와 같은 베유의 면모를 우러러보았던 가톨릭의 친우들이 모아 편집했다. 이 저작들을 비롯해 갈리마르의 임프린트에서 시리즈로 출간된 《뿌리내림 Need for Roots》은 베유의 문학을 대리로 집행하고 있던 알베르 카뮈가 재량껏 편집권을행사한 결과를 보여준다. - P48
데이비드 맥렐런 David McLellan의 주장대로, 베유는 대중에게 정치적 급진주의자가 아니라 종교적 신비주의자로 소개되었지만, 실제로 이 두 가지 면모는 공존했다.¹⁰
10 베유전기로는 훌륭한 저서들이 다수 있으며 그녀의 작품에 대한 논문에도 개략적인 생애가 거의 항상 기술되곤 한다. 베유의 친구였던 시몬 페트르망Simonc Pétrement이 최초의 공인된 전기 Simone Weil: A Life(NewYork: Pantheon Books, 1976)를 출간했다. David McLellan의 Utopian Pes-simist: The Life and Thought of Simone Weil (New York: Simon & Schuster, 1990)가 아마 현재로서는 결정판일 것이다. Francine du Plessix Gray가펭귄의 라이브즈Lives 시리즈의 일환으로 쓴 짧은 전기 Simone Weil(New York: Penguin Group, 2001)는 가장 널리 유통되었다. Robert Cole의 평전Simone Weil: A Modern Pilgrimage (Woodstock, VT: Skylight Paths, 2001) 또한 언급할 가치가 있다. Sylvie Courtine-Denamy의 Three Women in DarkTimes, trans. G. M. Goshgarian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2000)는 그녀의 작품과 삶을 다른 두 인물 이디스 스타인 Edith Stein과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맥락에서 고찰한다. 기본적인 베유의 경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견이 없지만, 그녀의 저작이 사후에 수용된 역사를 고찰한 평자는 한 명도 없다. Sisela Bok은 베유의 유산에 대한 논문을 한 편썼으나 소수의 저명한 독자들을 다루었을 뿐이다. Sisela Bok, "No Oneto Receive It? Simone Weil‘s Unforeseen Legacy", Common Knowledge 12, no.2(Spring 2006), 252-260쪽. - P49
파리외곽의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베유는 자신의 입으로또 베유의 모든 전기 작가가 표현한 대로 "노예의 낙인"을 얻었고, 이는 수난을 바라보는 관점을 영원히 변화시키고 개종의 동기에 불을 붙였다. 허약한 육체와 끝없이 달고 살았던 편두통 덕분에 공장노동은 그녀에게 유달리 끔찍한 고통일 수밖에 없었고 수난의 주제에 대한 강박적 집착과 명료한 사고에 큰 영향을 미쳤다. - P50
나는 베유의 성자다운 태도와 마조히즘에 대해 불가지론적 관점을 취하면서, 이 장에서는 베유가 종교적·정치적전통 양면에 비극을 주입하는 수단으로서 수난을 몹시 강조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베유의 작업이 기독교와 좌파 정치운동 양측을 분개하게 만든 건, 수난 그 자체가 아니라 베유가 견지한 수난에 관한 비극적 관점이었다. - P51
베유의 가장특징적이며 충격적인 에세이인 <하느님의 사랑과 천형L‘amour de Dieu et le Malheur>은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과 천형 TheLove of God and Affliction>으로 번역되었으나 <하느님의 사랑과 비극 The Love of God and Tragedy>이라고 번역해도 좋았을 것이다. 비극에 대한 사랑이 베유의 독특한 신학과 정치성에 부합할뿐 아니라 세속적 근대성 비판을 훨씬 명료하게 해명해주기 때문이다. - P52
종교적 저작의 출간은 프랑스와 미국 양쪽에서 전후의 종교 부흥으로 한껏 자극된 독자들의 입맛을 충족시켰지만, 미국의 비평가들은 베유가 어째서인기를 얻었는지 모르겠다고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시몬 베유처럼 수난을 기꺼이 포용하는 작가가 어째서 대중적 독자의 인기를 얻는지 그 이유를, 특히나 그 시대의 종교적 분위기를 고려할 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 P52
일부 역사가에 의하면 전후의 미국 문화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과 유사한 데가 있었다.¹²
12 David CastronovoBeyond the Gray Flannel Suit: Books from the1950s That Made American Culture (New York: Bloomsbury Academic, 2004)는 이런 식의 설명을 발전시킨다. 그의 요약을 살펴보면 The Man in the Gray Flannel Suit는 전쟁의 트라우마로부터 감정적으로 회복하는 탄력성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평화 시에 왜 이렇게 두려움을 느끼는지 알수 없어 괴로워하는" 남자를 나타내는 패러다임이다.(11, 강조는 필자)Castronovo는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는 걱정할 만한 신문물이 놀랍게 많이 등장한" 시기라는 대답을 제시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공산당 간첩과 원자폭탄으로 인한 종말을 꼽았다. 이는 우리를 익숙한 영역으로 되돌려 놓는다. - P53
이런 생각의 한 가지 관점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내면을 지향하며 가장 인습적인 형태의 가정생활로 돌아갔다. 이러한 정신 상태를 엘레인 타일러 메이Elaine Tyler May는 공습대피소 정신상태 bomb shelter mentality¹³라는 그럴싸한 명칭으로 설명하고 있다.
13 Elaine Tyler May, Homeward Bound: American Families in the Cold WarEra (New York: Basic Books, 1988). - P53
미국인들은 제도화된 종교의 요새로 퇴각했고, 성전은 이상화된 50년대의 가정과 같은 미덕을 제시해주었다. 강력한 아버지(목사), 위로를 주는 어머니(반가이 맞아주는 신도들)는 위험한 외부인들을 막아주고 적대적이고 낯선 전후의 세계로부터 그들을 지켜주었다. - P54
그런데 로버트 엘우드 Robert Ellwood의 가설대로 50년대의 종교적 부흥은 "고급문화"와 "하급문화" (아니 정확하게말하면 "중급문화"라고 해야겠다)의 형태로 양분되었고, 대중종교는 라인홀트 니부어, 폴 틸리히, 토머스 머튼, 그리고 손꼽지 않을 수 없는 시몬 베유와 같은 학문적 신학자와 비교해 훨씬 달콤한 사카린 범벅의 종교를 팔았다. - P54
조직화된 종교가 위로와 위안을 주려 했음을 고려하면 베유의 신학은 당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개인적인 금욕뿐 아니라 수난을 고집하고, 인간의 개입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천형을 포용하고, 정의라는 의무를 타협할 수 없는 비전으로 바라보며, 어떤 형태의 보상과 위로도거부하는 입장 모두가 총체적으로 종교적 사상의 주류로부터 베유를 배제했다. - P55
1951년 <타임>지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발췌된 피들러의 에세이는어째서 베유가 미국에서 호의적인 독자들을 찾을 수 없을지를 정확히 짚어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난해한 교리이지만, 고뇌가 막연히 비- 미국적이라고 간주되는 현대 미국에서는 특히 생경하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어 극복하거나 분석하고 넘어가야 하거나 심지어검열을 통해 추방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게다가 우리는 교회가 천형의 효용을 설교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 종교가 경쟁적인 시장에서 제공하는 건 위로이며 ‘마음의 평화‘와 ‘영혼의 평화‘다."¹⁷
19 John Cogley, "Sister to All Sufferers", review of Waiting for God, by Si-mone Weil, New York Times, September 16, 1951, Sunday Book Review. John Cogley는 Commonweal의 편집진이었다. - P56
베유의 매력을 설명할 수 없었던 비평가들은 그녀의전기로 눈을 돌렸는데, 이는 20세기의 여성 작가들에 관한한 전혀 놀랍지 않은 반응이다. 강렬한 감정으로 파격적인공감능력을 보여준 순간들을 지목하며, 비평가들은 베유의 "유행"이 일부 전문가 그룹을 벗어나 퍼져나간 이유를 그 공감능력과 삶의 이야기에서 찾으려 했다. - P57
게다가 베유가 수난과 맺는, 가끔 극단적인 형태를 띠기까지 하는 관계는 19세기 도덕철학의 유산으로서 미국의 감상적 전통에서 부활한 감상과 공감의 인습적 테두리를 너무나 훌쩍 벗어나 있어서, 20세기 중반에서 현재까지, 작금의 독자들에게는 철저히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 P57
독자가 베유를 처음 만나게 된 계기가 <타임> 지나 《뉴욕타임스 북리뷰》 같은 대량 판매 시장을 겨냥하는 매체든, 《코멘터리》나 《파르티잔 리뷰》 같은 소규모 잡지든, 《커먼월》이나 《가톨릭 워커》 같은 천주교의 간행물이건, 일단 처음에는 베유의 전기적 사실을 접할 테고, 그다음에는 문체, 세 번째로는 신학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베유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 요소다. - P58
"다수의척도로 볼 때"라는 <타임>의 표현은 비평가의 회의주의와반감이 잡지가 표적으로 삼는 독자층을 대변한다는 사실을은근히 드러낸다. 소위 영적 비관주의의 "유행" 이나 "열광적 반응" 에 면역이 되어 있는 독자층을 상정하는 것이다. 그런 못생긴 여자가 이토록 설득력이 있다니 터무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이 매력 없고 몸도 약한 여자가 이토록 강고한 권위를 각인하며 자기표현을 했다는 사실이 혼란과 짜증을 유발했다 - P59
《파르티잔 리뷰》의 아이작 로젠펠트Issac Rosenfeld는 베유의 ‘고집‘이신념의 소산일 뿐 아니라 일종의 추파라고 보았다. 그는 베유가 세례에 관해 페랭 신부와 나눈 서한을 한마디로 요약하면서 "구애를 받고 추종의 대상이 되기를 원했으며" "구애의 과정을 종료하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고 썼다. - P60
그러나 베유의 매력을 생각할 때 우리가 이러한 맥락을 기억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이 책이 다루는 여성들이 받아들여진 수용의 조건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늘 이처럼 극적이고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여성 작가들이 수용되는 맥락과 조건도 잘 보여준다. - P60
피들러는 심지어베유의 글쓰기가 "자기 자신을 거스르는 매력을 발산한다" 고까지 표현했으나, 그녀의 사적인 삶은 이를 결연히 부정한다.²³
23 Fiedler, introduction to Weil, Waiting for God, xvii. - P61
스물아홉 살의 수전 손택이 1963년 《뉴욕 리뷰 오브북스》의 창간호에 베유의 에세이 선집에 대한 비평을 기고했을 때, 냉전 초기의 종교적 부흥은 끝물에 다다라 있었다. 수난에 대한 베유의 헌신은 손택에게 지독한 괴벽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그녀로서는 사상가로서 베유의 힘을 설명하기위해 스타일을 참조하는 수밖에 없었다. - P61
. 베유의 초기 평자들과 달리 손택은 베유가 인간삶의 중심에 수난을 두었다는 사실 자체를 숭모하지 않고 그진지함을 높이 평가했다. 후에 《해석에 반대한다》 (진지한 여성지식인으로서 손택 자신의 도래를 알린 획기적 저작)에 포함된이 베유에 관한 에세이는 손택이 이해한 전후의 감수성에서가장 중요한 차원 한 가지를 공표했다. - P62
요약하자면, 손택은 베유의 난해한 주제 목록에 붙어 있던 경고 딱지를 없애버리면서 난해한 주제 자체를 폐기해버린다. 베유의 매력을 유일하게 설명할 수 있는 건 문체뿐이며, 그 문체는 매력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고 무례하며 성마르고 광신적이다. - P63
미국 비평가들이 결국 아무도 베유의 매력이 어디서나오는지 원천을 찾아내지 못했던 반면, 이탈리아 무정부주의자이자 지식인인 니콜라키아로몬테 Nicola Chiaromonte는 베유의 사상이 살아온 삶이나 아름다운 산문이 아니라어째서 그토록 사람의 마음을, 아니 적어도 지식인의 마음을 열렬하게 사로잡는지 이해한다고 믿었다. - P63
(전략). 그리하여 이 세계에서 인간의 운명이란 무엇인지 어째서 운명이 인간의 욕망과 의지와 대담무쌍한 투지에도 끄떡없는지를 다루었다.²⁵ "키아로몬테는이 에세이가 "안락한 허구도, 불멸의 전망이라는 위안도 없이" 인간이 운명에 개입할 수 있는 한계를 대면한다고 이해했다." 비록 정확한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키아로몬테는베유의 비극적 감수성을 가리키고 있었다.
25 Nicola Chiaromonte, The Worm of Consciousness and Other Essays (New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1976), 184-186쪽. - P64
베유는 《중력과 은총》에서 "우리는 가상의 낙원보다 실재하는 지옥을 선호해야만 한다"고 썼다.²⁹ 당대의 공습대피소 혹은 요새 심리도 매한가지로, 맹목적 필연은 물론이고 우연과 예측불가능성이라는 위험성을 좀처럼 시인하려 들지 않았다.
29 Simone Weil, Gravity and Grace (Lincoln: University of Nebraska Press, 1997), 53; 앞으로는 GG로 쓰고 쪽수를 병기함. - P65
전후 시기의 문화적 풍광을 보면 국가, 정신과 몸을 담으려 했던 얇은 막이 새거나 터지는 은유를 사방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이 20세기 후반을 파악하려 씨름하던 최초의 학자들이 냉전 시대의 외교정책에서 "봉쇄"라는 어휘를 빌려와 예술과 대중문화를 묘사하는 빌미를 주었다. - P66
우리가 지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의 시민이실감한 역할의 위기를 고려한다면, 인간의 개입 능력에 대한베유의 비판을 이해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한편으로 더 쉬워지기도 한다. - P66
(전략). 그러나 인간의 개입이 불가피하게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베유의 주장이 그런 낙인을 지운다는 추정을 해볼 수는 있다. 심지어 인간의 취약성이 지니는 범상함을 숙고하는 데서 - 싸늘한 위로일지 모르나 일말의 역설적 위안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 P66
트라우마의 시대에 비극적으로 사유하기
양차 대전 이후로 인간의 한계와 지배력, 완벽가능성, 사회적 유토피아주의 미학적·지적·정치적 삶에 편재했다. 각종 "현실주의"를 비롯해 변화보다는 한계, 혁명보다는 수정을 강조하는 현실주의적 방향 전환은 1930년대 진보주의에대한 반동이자, 나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에서 전체주의의씨앗을 내포하고 있었던 유토피아적 기획 (한나 아렌트의 표현대로)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 - P67
30 그리스 비극의 번안 작품들이 물밀 듯 쏟아져 나왔고 새로운 양식의 비극이라 할 만한 작품도 등장했다. 아서 밀러가 한 축을 맡았다면 사무엘 베케트가 다른 축을 맡아 썼다. 사무엘 모인 Samuel Moyn은 그리스인과 그리스 비극을 인권의 전통을 상상하는 방식으로 삼은 독일 고전주의자들사이의 대화에 주목한다. Moyn,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Rights of 1948 in the History of Cosmopolitanism" (2011년 11월 29일 시카고 대학의 소여 세미나 "1948년경의 일환으로 했던 강의)을 참조할 것. 참고서적 목록을 보면 카뮈와 스타이너뿐 아니라 H. D. F. Kitto와 G. Wilson Knight를 비롯해 1950년대와 60년대에 비극에 관해 글을 썼던 여러 고전주의자와 셰익스피어 학자들의 저작이 수록되어 있다. - P68
인간의 완벽가능성을 전제로 한 근대성은 인간역할의 한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근대세계는 종말을 맞을 운명인가? 근대 사회는 적국이나 자국의 시민들에게 야만적인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지 않고도 수난이 온전히 치유되거나 도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드라마로서의 비극은흘러간 시대가 지닌 우월한 도덕성을 반추하는 동시에 그도덕성의 원천이라는 함의가 있었다. ㅣ - P69
베유의 후기 저작은 비극에 관한 사색으로 간주될 수있으며 비극을 포용하기 위해 도덕적·영적으로 요구되는 바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실제로 베유는 극적 비극을 쓰려고시도하기도 했다. 《구원받은 베니스 Venice Saved》는 베유의 창작중에서 가장 야심만만한 작품으로,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한‘ 몇 편의 시도 수록되어 있다. - P70
예컨대 카타르시스, 프로타고니스트의 자기분열, 도덕적으로 동등한 가치들의 경쟁과 같은 장르의 다른 면들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비극에 대해 글을 쓴 대다수 작가가 입을 모아 말하듯, 유대-기독교 전통은 맹목적 필연의 비합리성과 무의미에 호의적일수 없었다. - P72
이 비극,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가 절망하는 순간의 비극은 <하느님의 사랑과 천형>의 주제이다. 베유의 사후 이 에세이 전반부는 《하느님을 기다리며 Waiting for God》에 수록되었고, 후반부는 베유가 세상을 떠나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발견되어 1962년 《신의 사랑에 관한 두서없는 생각들 Pensées sans ordre concernant lamour deDict》에 실려 출간되었다. - P74
극단적 고통, 슬픔, 상실, 가난이나 공포 대신 천형/비극은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삶을 움켜쥐고 뿌리를 뽑은 사건이 직접적, 간접적으로 모든 면에서, 즉 사회적·심리적·육체적 면으로 공격해오지 않는다면 진정한 천형이라 할 수 없다."(SWR, 440-441) - P76
천형이 "기독교의 중심" (SWR, 471)이라고 주장하며베유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한 인류의 구원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번뇌 그 자체가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베유가 보기에 구원은 도저히 견딜 수 없어야만 하는 천형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보상이다. - P76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 교회의 복음주의가 닿은 범위 밖의 사람들, 다른 종교를 믿는 신도들, 특히 유럽의 식민지 사람들이 모두 포함된다. 베유가 주목한 이단성은 구원이 아니라 ‘비극‘이 하느님의 신성한 사랑의 증거라는 주장에서 나온다. - P77
비극과 함께 살아가기
비극적 기독교는 베유 정치학을 다듬었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는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로 평생 좌파 작가이자 운동가로 살아간 베유는 개종이전 자신의 삶을 헌신했던 명분들을 버리지 않았지만, 당연히 이런 노력의 방향은 필연적으로 전쟁 중에 재조정되었다. - P78
베유 본인도 마르크스의 유명한 경구를 "종교가 아니라 혁명이 대중의 아편"이라고 바꿔 썼다. 혁명은 맹목적 필연에서 해방된 세계를 약속하기 때문에 진통제의 역할을 한다.
42Miles, Simone Weil: An Anthology, 16. - P79
근대성은 힘을 제어할 수 없는 인간의 무능력을 은폐했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타자의 지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세계가 완벽해질 수 있다는 믿음은 여러 가지심각한 함의를 지닌 착오다. 이 믿음은 궁극의 비극적 결함인 휴브리스Hubris⁴³로 귀결되고, 수많은 기독교 현실주의자는 2차대전 후에 오만한 선포를 했다.
43 지나친 자신감, 오만에서 생겨나는 폭력. 그리스어 Hybris가 어원으로서, 당대에도 타자에게 굴욕감을 주면서 느끼는 만족감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쓴 말. (옮긴이) - P79
맹목적 필연성의 신학에 다다라 극단적 무력감, 고뇌와 굴욕을인간이 은총을 누리는 순간이라고 주장하고 나서야, 베유는 비극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계획을 고안하는 정치적 영역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 P80
《뿌리내림》 첫머리에서 베유는 1940년 말 정의와 사회적 진보를 상징하게 된 조건인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를 폐기했다. 그 대신 인간과 인간의 사회적·정치적 기관이 다른인간을 위해 짊어질 "당위"를 주장했다. 훗날 아렌트의 주장과 흡사하게 베유 역시, 권리란 언제나 그 권리를 인정할 삼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P81
이런 판타지는 온갖 종류의 자기망상, 과대망상, 그리고 압제를 낳는 휴브리스로만 유지된다. 당위에 구속된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의 주권 부재를 인정하고 신학적 작업의 조건을 창출하여 고통과 수난을 가속하거나 불필요하게 가중하지 않는 것이다. - P81
탈랄 아사드가 《세속의 형성》에서 논했듯 "수난이라는 의미에서, 고통은 세속적 주체가 보편적으로제거해야만 하는 인간의 조건으로 간주된다".⁴⁵ 베유에게 고통은 인간의 힘과 인간의 주권이라는 환상이 박살 나는 근거다. 고통은 야만적 물질성의 세계가, 그 세계의 ‘내가 아닌것‘이 사람에게 틈입하는 장소다.
45 Talal Asad, Formations of the Secular: Christianity, Islam, Modernity (PaloAlto,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3), 67. - P82
베유는 수난이란 지극히 보기 힘들고 (엘레인 스캐리 Elaine Scarry에게서 익히 들은 바대로) 소통할수 없는 것이라고 믿었다. 스캐리에 따르면 "고통이 있는 자에게는 확신이 있다. 고통을 풍문으로 듣는 자에게는 의구심이 깃든다."⁴⁶
46 Elain Scarry, The Body in Pain: The Making and Unmaking of theWorld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8), 4. - P83
베유의 사유가 의존하는 미학적·도덕적 근거를 이해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중략). 나는 이를 "선명성 clarity" 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선명성은베유의 정치적 목적에 부합했고, "고통스러운 선명성"은 20세기에 비극적 감수성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베유의 목표에 봉사했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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