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음모

리라와 그녀의 데몬은 부엌 쪽에서 보이지 않게 한쪽 벽으로 바싹 붙어 어두워지고 있는 홀을 지나갔다. 홀에는 커다란 식탁 세 개가 한 줄로 놓여 있었다. 식탁 위에는 반짝거리는 은식기와 유리잔들이 놓였고,
손님들이 앉을 기다란 의자들도 얌전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벽에는 전임 총장들의 초상화가 높다랗게 걸려 있었다. - P13

리라는 총장석에 놓인 가장 큰 유리잔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튕겼다. 쨍하는 맑은 소리가 홀 전체에 울려 퍼졌다.
"혼날 짓이란 걸 모르는 모양이군. 조신하게 행동해."
리라의 데몸인 판탈라이몬이 말했다 - P13

판탈라이몬이 리라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이젠 됐지? 나갈까?"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이제부터 둘러볼 거야."
넓은 귀빈실에는 윤이 나는 자단(紫檀)으로 만든 타원형 탁자가 놓여있었고, 그 위에는 다양한 크기의 유리병과 유리잔, 그리고 파이프 걸이가 부착된 은제 끽연대(臺煙臺) 등이 있었다. 탁자 근처에 놓인 선반에는 작은 식탁용 보온 냄비와 양귀비가 담긴 바구니도 있었다. - P14

 홀에 걸려 있던 인물들보다 더 오래전 사람들 같았다. 수염을 기르고 예복을 입고 있는 사진 속의 인물들은이곳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듯 엄숙한 눈빛으로 리라를 쏘아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기서 무슨 얘기들을 할까?"
리라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문밖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의자 뒤로 숨어, 얼른!"
리라는 재빨리 안락의자 뒤로 가 몸을 웅크렸다. 그러나 방 한가운데놓인 안락의자 뒤라는 장소는 숨기에 그다지 좋은 곳이 못 되었다. 만일 작은 소리라도 내 들키기라도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 P15

"아스리엘 경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
총장이었다. 숨을 죽인 리라의 눈에 집사의 데몬이 보였다. 대부분의 하인처럼 그의 데몬도 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데몬은 총총걸음으로 따라 들어와서는 집사의 발 옆에 조용히 웅크리고 앉았다. 그때 총장의 발도 보였다. 그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낡은 검은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예,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비행선 선착장에서도 아무 전갈이없었고요." - P15

총장은 호주머니에서 여러 번 접은 종이를 하나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그러고는 황금빛 포도주가 담긴 유리병의 마개를 열고 종이 안에담겨 있던 하얀 가루를 안으로 쏟아 부었다. 그런 다음 종이를 구겨서벽난로에 던져 넣은 뒤 주머니에서 연필을 꺼내 하얀 가루가 다 녹을때까지 포도주를 젓고는 다시 유리 마개를 닫았다.
(중략)
리라가 속삭였다.
"판, 너도 봤지?"
"물론이지. 이제 사무장이 오기 전에 어서 빠져나가자." - P17

만약 총장이 포도주에 하얀 가루를 넣는 것을 목격하지 않았더라면리라는 사무장에게 들켜 꾸중을 듣거나 말거나 밖으로 나가려고 했을것이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복도를 이용하면 요행히 들키지 않을 수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리라는 혼란스러웠고, 그래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 P17

리라는 사무장의 헐떡이는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살짝 열린 문틈으로 사무장이 은제 끽연대 옆의 파이프들을 나란히 정리하는모습을 보았다. 사무장은 포도주병과 유리잔을 한번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손바닥으로 옆머리를 매만진 다음 자신의 데몬에게 뭐라고 말했다. 그의 데몬 역시 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P18

"밖으로 나가지 않은 건 잘한 일이야."
리라가 속삭였다.
"아니면 총장이 포도주에 독약 타는 걸 못 봤을 거야. 너도 총장이 집사에게 토케이에 대해 물어보는 것 들었지? 분명 삼촌을 죽이려는 거야." - P18

"틀림없이 독약이야. 총장은 집사를 내보낸 뒤에 그 일을 했어. 만일 나쁜 짓이 아니라면 집사가 봐도 상관없잖아. 뭔가 정치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어. 벌써 며칠 동안 하인들이 그런 얘길 하고 있었거든. 판, 우리는 살인을 막아야 해!" - P19

"그래, 난 겁쟁이야. 그러는 넌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뛰쳐나가 손에 쥔 유리잔을 빼앗기라도 하겠단 말이야?"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내 눈으로 다 봤는걸. 그러니 어쩔 수 없잖아.
너도 양심이란 말은 들어 봤겠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히 알면서 도서관 같은 데 앉아 볼펜이나 돌리고 있을 순 없어. 절대 그런 짓은 하지않을 거야. 알겠니?" - P20

"하지만 그 문제는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그들이 자신들만의 비밀을 즐기고 싶다면 넌 그저 네가 더 잘났다고 생각하며 그냥 내버려두면 되는 거야. 숨어서 엿보는 행동은 정말 어리석어."
"알고 있어. 그러니 잔소리 좀 그만 해.."
둘은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리라는 옷장의 딱딱한 바닥에 불편한 자세로 앉아 있었고, 판탈라이몬은 예복에 닿은 더듬이를 신경질적으로 휙 잡아당겼다. 리라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 P20

리라는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 그녀가 정작 걱정하는 사람은 삼촌 아스리엘 경이었다.  - P20

아스리엘 경과 총장은 모두 수상의 특별자문기구인
‘각료회의‘의 위원이었다. 그러니 오늘 그가 이곳을 방문하는 이유도 각료회의 일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각료 회의라면 마땅히 이곳 조던 대학의 귀빈실이 아닌 궁전에서 열려야 했다.
요즘 대학 내에는 여러 날째 수상한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소문인즉 타타르족이 모스크바 대공국을 침입했고,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북진했다는 것이었다. - P21

집사는 서둘러 호주머니에 양귀비 잎을 쑤셔 넣고는 방에 들어온 사람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아스리엘 경이시군요!"
집사의 말에 리라는 등줄기가 오싹했다. 그녀가 앉은 자리에서는 아스리엘 경이 잘 보이지 않았다. 리라는 몸을 돌려 삼촌을 보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오랜만이네, 렌."
아스리엘 경이 말했다. 리라는 삼촌의 걸걸한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 - P22

. 이제 눈에 띄지 않게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조용히숨죽이고 앉아 들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아스리엘 경의 데몬인 흰 표범이 그의 뒤에 서 있었다.
"이곳에서 그 영상들을 보여 주시려고요?"
표범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강당으로 옮겨 가는 것보다 덜 번잡스러우니까. 게다가 학자들은 표본도 보고 싶어 할 거야. 곧 짐꾼을 보내야지. 지금은 어려운 때야, 스텔마리아."
"당신에겐 휴식이 필요해요."
그는 안락의자에 앉아 몸을 쭉 뻗었다. 리라는 더 이상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 P23

"총장님께서 특별히 아스리엘 경을 위해 준비하신 겁니다. 1898년산은 서른여섯 병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좋은 것은 모두 사라지는 법이지. 쟁반은 내 옆에 놓아주게. 그리고 짐꾼에게 내가 별장에 놓아둔 가방 두 개를 이곳으로 가져오란다고 전해 주겠나?"
"여기에 말입니까. 아스리엘 경?" - P23

"렌, 자네는 본분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군."
아스리엘 경이 나무랐다.
"내게 질문할 생각 말고 시키는 대로나 하게."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코슨 씨에겐 알리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알겠네. 그렇다면 말하도록 해."
코슨 씨란 다름 아닌 사무장이었다. - P24

아스리엘 경은 벽난로에서 몸을 돌렸다. 리라는 이제 그를 완전히 볼수 있었다. 그리고 삼촌이 뚱뚱한 집사나 허리가 굽고 기력이 쇠한 학자들과 대조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데에 새삼 놀랐다. 아스리엘 경은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거무스름한 얼굴은 사나워 보였고, 큰 소리로 웃을 때조차 눈초리는 번득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도전적 내지 호전적인 분위기를 풍겼으며, 결코 동정이나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 아니었다.  - P24

아스리엘 경이 토케이가 든 유리병 마개를 열고 포도주를 따르는 것을 보자 리라는 갑자기 위장이 뒤틀리는듯했다.
"안 돼요!"
미처 깨닫기도 전에 리라의 입에서 조용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아스리엘 경은 즉시 몸을 돌렸다.
"거기 누구냐?"
리라는 비틀거리며 옷장 밖으로 걸어 나와서는 이스라엘 경의 손에서 술잔을 낚아챘다. 술이 넘쳐 탁자 가장자리와 카펫으로 튀는 동시에 유리잔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 P25

"전 방금 삼촌의 생명을 구한 거라고요."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노려보았다. 아스리엘 경은 무섭게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고, 리라는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니?"
아스리엘 경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포도주엔 독이 들어 있어요."
리라가 앙다문 이 사이로 말했다.
"총장님이 그 안에 하얀 가루를 넣는 걸 제가 봤다고요." - P25

 아스리엘 경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참는 듯했다. 리라는 감히 그의 얼굴을 쳐다볼엄두도 내지 못했다.
"전 그냥 방이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들어왔어요. 저도 잘못했다는건 알아요. 하지만 누군가 들어오기 전에 빠져나가려고 했어요. 바로 그때 총장님이 오는 소리가 들렸고, 저는 도망갈 데가 없었어요. 옷장이 유일하게 숨을 수 있는 곳이었고요. 그래서 그가 포도주에 하얀 가루를 넣는 것을 보게 된 거예요. 만일 제가.....!" - P26

"그래, 슈터. 둘 다 이 탁자 옆에 두면 돼."
리라는 긴장을 풀었다. 어깨와 손목이 아팠다. 평범한 소녀라면 큰소리로 울고도 남을 만한 통증이었다. 하지만 리라는 이를 악물고 아픔이 가라앉을 때까지 팔을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때 유리잔 깨지는 소리가 났다.
"이런, 슈터 조심해야지. 자네가 한 짓을 좀 보라고." - P26

삼촌은 토케이가 든 유리병을 탁자 가장자리에 놓아 떨어뜨리고는 마치 짐꾼이 실수한 것처럼 꾸며 대고 있었다. 노인은 조심스럽게 상자를 내려놓고는 용서를 빌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생각보다 탁자에 가까이 있었나 봅니다."
"어서 닦을 것을 가져와 카펫이 젖기 전에 빨리!" - P27

노인이 카펫에 걸레질을 하고 있을 때 집사가 아스리엘 경의 하인 소롤드와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놋쇠 손잡이가 달린 묵직한 나무상자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짐꾼이 하는 일을 보고는 제자리에 멈춰섰다.
"그래, 토케이가 담긴 유리병이 깨졌어. 안타깝지만 말일세. 그게 환등기인가? 소롤드, 옷장 옆에 세우게. 내가 다른 쪽 끝에 스크린을 걸겠네."
리라는 옷장 문틈으로 스크린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삼촌이 일부러 그곳에다 스크린을 거는 것인지 궁금했다. - P27

리라는 삼촌의 시선이 마치 화살이나 창이라도 되는 듯한느낌을 받았다. 그때 그는 시선을 돌려 자신의 데몬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데몬은 조용히 아스리엘 경의 옆으로 다가갔다. 민첩하면서도 우아하게, 그리고 조금은 위협적으로 보이는 흰 표범은 초록색 눈으로 방을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때 홀 쪽으로 통하는 문의 손잡이가 돌아갔다. - P28

"총장님, 드디어 제가 돌아왔습니다. 손님들을 들어오게 하세요. 아주 흥미로운 것을 보여 드릴 테니까요."
아스리엘 경이 말했다. - P29

알 수 없는 북극

옷장 속의 리라는 총장의 눈을 볼 수 있었다. 과연 총장은 토케이가 있었던 탁자쪽을 흘끗 돌아보았다.
"총장님, 제가 너무 늦게 도착했습니다. 공연히 식사하시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아 이곳에 먼저 와 있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부총장님. 무척 좋아 보이십니다. 제 차림새를 양해해 주십시오. 지금 막 도착해서 그렇습니다. 아! 총장님, 알아차리셨군요. 토케이는 사라졌습니다. 짐꾼이 탁자에 몸을 부딪히는 바람에 그만…………. 하지만 다 제 불찰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사제. 최근 논문은 정말 흥미롭던데요." - P30

그녀는 그곳에 있는 학자들을 잘 알았다. 사서, 부총장, 조사 담당자들은 리라와 함께 생활하며 그녀를 가르치고, 꾸짖고, 달래 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리라에게 가족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리라는 하인들에게 더 친밀감을 느꼈다. 학자들에겐 우연히 그들에게 떠넘겨진 선머슴같은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으니까. - P31

리라는 매우 조심스럽게 모피가 달린 기다란 옷을 옷걸이에서 빼내 바닥에 깔고 앉았다.
"낡고 따끔거리는 옷을 깔아야지. 너무 편안하면 잠이 올 텐데."
판탈라이몬이 걱정했다.
"네가 깨워 주면 되잖아."
리라는 가만히 앉아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 P32

아스리엘 경이 말을 이었다.
"우선 여러분께 보여 드릴 슬라이드가 몇 개 있습니다. 부총장님, 이리로 오시죠. 이곳에서 슬라이드가 가장 잘 보일 겁니다. 총장님께서도의자를 옷장 가까이 옮겨 주시겠습니까?"
나이가 많은 부총장은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스크린 근처로 자리를 옮기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총장은 사서 옆에 앉게 되었다.
총장과 사서가 앉은 곳 바로 곁에 리라가 웅크리고 있는 옷장이 있었다. - P33

 총장은 안락의자에 몸을 기대자마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교활한 놈! 포도주에 대해 분명 알고 있었어."
이번에는 사서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기금을 요구할 겁니다. 만일 투표라도 하자고 하면..………….
"그러면 당연히 반대해야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이야."
아스리엘 경이 펌프를 이용해 공기를 밀어 넣자 환등기에서 쉿 하는소리가 났다.  - P33

아스리엘 경은 첫 번째 슬라이드를 집어넣고 렌즈 뒤로 미끄러지게 했다. 검은색과 하얀색이 강하게 대비되는 둥그런 포토그램 (Photogram,
렌즈를 사용하지 않고 감광지 위에 직접 피사체를 놓고 찍는 실루엣 사진)이스크린에 나타났다. 사진은 보름달이 뜬 밤에 찍은 것으로 중간쯤에 통나무집이 있었다. - P33

"이 사진은 보통 쓰이는 질산은 감광유제로 찍은 것입니다. 이제 다른 사진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1분 후에 찍은 것으로 특별히 준비된 새로운 감광유제를 사용했습니다."
아스리엘 경은 첫 번째 슬라이드를 꺼내고 다른 것을 넣었다. 이번 사진은 훨씬 더 어두웠다. 마치 달빛을 걸러 낸 듯 보였다. 여전히 지평선과 오두막집, 눈으로 덮인 지붕은 볼 수 있었지만 복잡한 도구들은어둠 속에 가려진 상태였다. 특이한 점은 남자의 모습이 전혀 달라인다는 사실이었다. - P34

"내려가는 겁니다. 하지만 빛은 아닙니다. ‘더스트‘라 불리는 거죠."
아스리엘 경이 그 단어를 입 밖에 낼 때의 분위기 때문에 리라는 그것이 평범한 ‘먼지‘가 아님을 직감했다. 학자들의 반응은 그녀의 생각이 옳았음을 증명해 주었다.  - P34

"저 남자의 데몬 아닌가?"
조사담당이 물었다.
"아닙니다. 그 당시 데몬은 뱀의 형체로 그의 목을 감고 있었습니다.
희미하게 보이는 저 형체는 어린아이입니다."
"분리된 아이?"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말을 갑자기 중단한 것으로 보아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될 말인 것 같았다.
방 안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 P35

"하늘에서 내려와 빛처럼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겁니다. 원하신다면이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셔도 됩니다. 떠날 때 두고 갈 테니까요. 이새로운 감광유제의 효과를 알려 드리기 위해 이 사진을 보여 드린 겁니다. 이제 다른 사진을 보시죠."
아스리엘 경은 슬라이드를 교체했다. 다음 사진 역시 밤에 찍은 것이었다. 하지만 달은 없었다. 낮은 지평선에 대비되어 희미하게 윤곽이 드러난 몇 개의 텐트가 가장 눈에 띄었다. 
- P36

"저게 뭐요?"
부총장이 물었다.
"오로라 사진입니다."
"아주 잘 찍었군요. 지금까지 본 것들 중 최곱니다."
파머리언 교수가 말했다.
"무지해서 죄송합니다만, 저것이 혹 북극광이란 겁니까?"
늙은 성가대 지휘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 P36

아스리엘 경은 슬라이드를 꺼냈다. 리라는 총장이 나지막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가 투표를 강요하면 주재 기간 조항을 들어 반대하자고. 그는 지난 52주 중 30주를 대학에서 보내지 못하지 않았나?"
"그는 벌써 사제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게다가......"
사서가 우물거렸다.
아스리엘 경은 새로운 슬라이드를 환등기 틀에 넣었다. 그것은 같은장면을 보여 주고 있었다. 바로 전의 사진과는 달리 많은 물체가 훨씬더 희미하게 보였고, 하늘에 나타난 오로라도 마찬가지였다. - P37

왜냐하면 하늘에 떠 있는 것은 분명 도시였기 때문이다. 탑과 둥근 지붕, 벽, 건물, 길 등이 공중에 떠 있는 게 아닌가!
캐싱턴 학자가 말했다.
"저건・・・・・・ 도시 같은데?"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아스리엘 경이 말했다.
"분명 다른 세계의 도시겠지?"
학장이 경멸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스리엘 경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몇몇 학자는 흥분한 듯 보였다.
마치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이론상으로는 유니콘의 존재를 인정한 사람들에게 지금 막 잡아 온 유니콘을 보여 준 것 같았다. - P37

"저도 사실이 아니길 바랐습니다만・・・・・・ 여기 증거를 가지고 왔습니다."
갑자기 귀빈실 안은 흥분과 걱정이 뒤섞여 술렁거렸다. 아스리엘 경의 지시에 따라 두세 명의 젊은 학자가 나무상자를 앞으로 옮겼다. 아스리엘 경은 마지막 슬라이드를 꺼냈지만 환등기는 그대로 켜 두었다.
그는 강렬한 불빛을 받은 채 상자를 열기 위해 몸을 구부렸다. 리라는 습기 찬 나무에서 못이 빠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P38

방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잠시 후리라는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공포에 찬 외침이자, 크게 항의하는 소리이자, 분노와 두려움에 떠는 음성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설마 저게 사람......."
"대체 어떻게 된 거요?"
총장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스리엘 경, 대체 그게 뭐요?"
"이것은 슈타니슬라우스 그루만의 머리입니다." - P39

"스발바르 지역의 빙하 속에서 그의 시체를 찾아냈습니다. 그루만을죽인 자들이 머리를 이렇게 해 놓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머리 가죽을 벗기는 의식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부총장님께서 특히 이런 의식에 정통하시리라고 생각하는데요."
부총장이 천천히 설명했다.
"타타르족의 풍습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시베리아와 퉁그스카 지역 원주민들이 시행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점차 스크렐링까지 퍼져 나간 것입니다. 비록 뉴 덴마크에서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말이죠. 좀 더 자세히 살펴봐도 될까요, 아스리엘 경?" - P40

"그런데 타타르족의 손에 넘어가다니......."
"하지만 그 먼 북극에서?"
"그들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깊숙이 침입했던 게 분명하오!"
"분명 스발바르 근처에서 발견했다고 했습니까?"
학장이 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판제르비에르네가 이 사건과 관계 있다고 보십니까?"
리라는 그 단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 P41

리라는 다시 삼촌을 바라보았다. 그는 냉소를 띠고 말없이 학자들을바라보고 있었다.
"이오푸르 락니손이 대관절 누굽니까?"
누군가가 물었다.
"스발바르의 왕이죠."
파머리언 교수가 말을 이었다. - P41

리라는 학자들의 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파머리언 교수의말도 전혀 논리에 맞지 않은 것처럼 들렸다. 게다가 머리 가죽을 벗기는 풍습과 북극광, 신비한 더스트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아스리엘 경이 자신의 수집품과 사진 설명을 끝내자 다른 탐험대 조성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었다. - P42

누군가 어깨를 흔들자 리라는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조용히 해!"
삼촌이었다. 옷장 문은 열려 있었고 그는 빛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학자들은 모두 갔다. 하지만 아직 하인들이 주위에 있을 거야. 이제네 방으로 가거라. 그리고 오늘 본 것에 대해서는 아무한테도 말해서는 안 돼, 알았지?" - P42

판탈라이몬의 하얀 털이 곤두섰다. 리라는 목이 간지러웠다. 아스리엘 경이 잠시 웃었다.
"철없이 굴지 마라. 총장의 얼굴은 봤니?"
그는 슬라이드와 표본 상자를 포장하며 물었다.
"네, 그는 제일 먼저 포도주병을 찾았어요."
"잘했다. 지금쯤 무척 화가 나 있을 거야. 이제 가서 자거라."
"삼촌은 뭐 하실 건데요?"
"북극으로 떠날 거야. 10분 뒤에 출발할 거다." - P43

"왜요? 왜 전 이곳에 있어야 하죠? 왜 삼촌과 북극에 가면 안 되나요? 저도 북극광, 곰, 빙하 같은 것을 보고 싶어요. 더스트에 대해서도알고 싶고요. 공중에 뜬 도시에 대해서도요. 그것은 또 다른 세계인가요?"
"얘야, 넌 가면 안 돼. 그런 생각은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 버려라.
지금은 아주 위험한 시기야. 내가 시키는 대로 어서 침실로 가. 착하게행동한다면 에스키모인들이 조각한 바다코끼리 엄니를 가져다주마.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면 삼촌이 화낼 거야." - P44

총장과 사서는 오랜 친구이자 동맹자 관계였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끝난 뒤에는 브랜튄을 한 잔씩 마시며 서로를 위로하는 것이 버릇처럼되어 있었다. 따라서 두 사람은 아스리엘 경을 떠나보낸 후에도 총장의서재에 앉아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벽난로에는 새로 지핀 불이 활활 타올랐고 커튼도 내려져 있었다. 두 사람의 데몬들도 편한 장소에 엎드려 있었다.
"총장님께서는 아스리엘 경이 그 포도주에 무언가 섞였다는 사실을 정말 알고 있었다고 믿으십니까?"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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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칙과 체제

1 20세기 이데올로기 · 윌리톰슨.
2 강철 혁명 - 데보라 캐드버리
3 개념어 사전 · 남경태
4 광고는 어떻게 세상을 유혹하는가? 공병훈
5 권력의 법칙 · 로버트 그린
6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전성원
7 당선, 합격, 계급·장강명
8.둘의 힘 - 창조적 성과를 이끌어내는 협력의 법칙 · 조슈아 울프씽크
9 루시퍼 원리 · 하워드
10 마인드웨어 리처드니스벳
11 매드 사이언스 북 · 레토 슈나이더
12 메시 MESSY - 혼돈에서 탄생하는 극적인 결과 팀 포트
13 부의 제국 존스틸 고든 - P186

법칙과 체제

19 세계를 바꾼 아이디어 •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20 세대 게임 • 전상진
21 세상에서 가장 기발한 우연학 입문 • 빈스에버트

23세상의 모든 법칙 · 이재영

25 숫자의 비밀 · 오토베츠.
26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로렌 슬레이터.
27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핸드
28에디톨로지 • 김정운 - P187

감각과 감정

1 20세기 성의 역사. 앵거스 맥래런
2 감각의 박물학 · 다이엔 매커먼
3 감정을 읽는 시간. 클라우스 페터지몬
4 감정의 재발견. 조반니 프라체토
5 게으름뱅이 학자, 정신분석을 말하다. 기시다 슈
6 고통받는 몸의 역사 · 자크르고프
7 고통받는 인간 • 손봉호
8 공감의 진화 · 폴 에일리, 로버트 몬스타인
9 나는 왜 너를 미워하는가? . 러시W. 도지어주니어
10 냄새의 심리학 · 베티나파우제
11 눈의 황홀 - 마쓰다 유키마사
12 러브온톨로지 • 조중걸
13 멘탈싸인 • 제임스 휘트니 힉스 - P181

감각과 감정

35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 마이클 셔머

37 욕망의 진화 • 데이비드 버스

40 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 • 리처드 스티븐슨

44 정신의학의 탄생 • 하지현
45 중독 • 로너 크로지어, 패트릭 레인
46 즐거움의 가치사전 ·박민영
47 착한사람이 왜 고통을 받습니까. 헤롤드 S.쿠스너
48 천개의 사랑 • 다이앤 애커먼
49 철학적으로 널 사랑해 • 올리비아가쟐레
50 추의 역사 • 움베르토 에코
51 커플 • 바르바라지히터만
52 타인의 고통 • 수전 손택
53 통증 연대기 • 멜러니 선스트럼 - P183

대화와 독백
1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 • 악셀하케, 조반니 디 로렌초
2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 데이비드 실베스터

9 작가란 무엇인가 • 파리 리뷰 인터뷰
10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 조던 피터슨, 스티븐 프라이, 마이클 에릭 다이슨, 미셸 골드버그

13 쿠엔틴 타란티노 • 제럴드 피어리 엮음 - P184

법칙과 체제

41 자본주의자들의 바이블 • 그렌첸 모겐슨

45 지능의 역사 • 호세 안토니유 마리나

50 타인의 해석 • 말콤 글래드웰

54 평면의 역사 • B.W. 힉맨

56 학문의 구조 사건 • 발리스 듀스
57 한국 현대문화의 형성 • 주창윤
58 현대의 탄생 • 스콧 L. 몽고메리, 대니얼 치롯 - P188

시간과 공간

20 중세의 밤 • 장 베르동
21집은 어떻게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나 • 존S. 앨런
22 출퇴근의 역사 • 이언 게이틀리 - P192

악과 부조리

7 나쁜 초콜릿 • 캐럴 오프
8 나쁜 페미니스트 • 록산 게이
9노예선 • 마커스 레디커
10논쟁 • 크리스토퍼 히친스
11 대통령의 오판 • 토머스 J. 크라우프웰, M. 윌리엄 펠프스
12 더 나은 세상 • 피터 싱어
13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 로랑 베그
14 독재자가 되는 법 · 프랑크 디쾨터 - P193

악과 부조리

20 미궁에 빠진 세계사의 100대 음모론 • 데이비드 사우스웰
21 배고픔에 관하여 • 샤먼 앱트 러셀
22 범죄의 해부학 ㆍ 마이클스톤
23 범죄의 현장 • 리처드 플랫
24 부동산, 설계된 절망 • 리처드로스스타인
25 불안의 시대 • 기디언래치먼
26 불평등 트라우마 • 리처드 윌킨슨, 케이트 피킷

33 슈퍼 히어로 미국을 말하다 • 톰 모리스 외

39 어느 날 당신이 눈을 뜬 곡이 교도소라면 • 잭 자페 - P194

악과 부조리

4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장 지글러
42 왜 우리는 악에 끌리는가 • 프란츠 부케티츠
43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 데이비드 베레비44 월마트 이펙트 • 찰스피시
45 위대한 독재자가 되는 법? • 미칼헴
46 유신 - 오직 한사람을 위한 시대 · 한홍구

48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엄기호

55 자기계발의 덫 • 미키 맥기

60 전쟁의 역설 • 이언 모리스 - P195

언어와 일상

1HOLY SHIT - 욕설, 악담, 상소리가 만들어낸 세계 • 멀리사 모어
2 가짜 논리. 줄리언 바지니
3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 빌 브라이슨.
4 굿모닝 사이언스 • 피터 벤틀리

8 농담 따먹기에 대한 철학적 고찰. 테드코어
9 단어의 사생활 · 제임스 W. 페니베이커
10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 이재문 외

16 왜 우리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까 • 위르겐 슈미더 - P197

역사의 그 순간


2 고양이 대학살 • 로버트 단턴
3교수와 광인 • 사이먼 윈체스터.
4 구경꾼의 탄생 • 바네사 슈와르츠

7만들어진 승리자들 • 블프 슈나이더
8 만약에 • 스티븐 앰브로스

10 문명 건설 가이드 • 라이언 노스
11 문명의 붕괴 • 재레드 다이아몬드 - P199

죽음이라는 미스터리

1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 · 멜라니킹

4 만약은 없다. 남궁인
5 불멸화위원회 . 존 그레이
6 살인의 심리학 · 데이브 그로스먼.
7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 로버트 K. 레슬러

18 자살의 연구 • 알프레드 알바레즈

18 죽음이란 무엇인가 • 셸리 케이건 - P213

한국 소설

1 7년의 밤 • 정유정
2 가정법 • 오한기.
3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6 고래 • 천명관
7 관촌수필 ㆍ이문구
8 구경꾼들 • 윤성희

18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 김경욱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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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
이동진 추천 800

일평생 제가 읽어온 책들 중 권하고 싶은
800권의 추천서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특정 분야의 전문적인 서적들은 가급적 배제하고,
난이도가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일반 독자들이 큰 어려움 없이 오락과 교양과 사색을 위해
읽을 수 있는 책 위주로 골랐습니다.
이미 고전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작품들을 재추천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한국 소설과 한국시는 1980년 이후,
외국 소설은 1960년 이후에 발표된 작품들로 골랐습니다.
소설과 시 외에는 분야보다는 그 책들이 담고 있는
주제나 문제의식 13가지로 분류했는데,
평소 관심있거나 알아보고 싶은 내용 위주로
살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 P180

외국 소설

10공중그네 • 오쿠다 히데오
11권태 • 알베르토 모라비아

13그들의 노동에 함께 하였느니라 • 존버거

15 금색 공책 • 도리스 레싱. - P215

외국 소설

22 나를 찾아줘 • 길리언 플린

24 나의 미카엘 • 아모스 오즈
25 나이트메어 앨리 · 윌리엄 린지 그레셤

30 눈먼 암살자 • 마그릿 애트우드

38 독일어 시간 • 지크프리트 렌츠 - P216

외국 소설

48 모래의 여자 • 아베 코보
49 몸의 일기 • 다니엘 페나크
50 무의미의 축제 · 밀란쿤데라
51 미저리 • 스티븐 킹.
52 바보들의 결탁 • 존 케네디 툴

62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앤드루 포터 - P217

와국 소설

64 사탄탱고 •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73 속죄 • 이언 매큐언
74 순교자 • 김은국
75 숨 • 테드 창

84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쑤는가? • 필립 K.딕 - P218

외국 소설

86 앵무새 죽이기 • 하퍼 리
87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파트릭 모디아노

89 언더 더 스킨 • 미헬 파버르

106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 P218

외국 소설

108 잘려진 머리 • 아이리스 머독.
109 장미의 이름 • 움베르토 에코
110 저수지 13. 존 맥그리거
111 제49호 품목의 경매 • 토머스 핀천
112 제5도살장 • 커트 보니것

115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아고타 크리스토프 - P220

외국 소설

138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 존 르 카레.
139 파워 오브 도그 • 토머스 새비지.
140 파이 이야기 • 얀 마텔
141 포트노이의 불평 · 필립 로스

148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 무라카미 류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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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학에서 문학교육으로

실은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부터가 자명하지가 않다. 테리 이글턴(Eagleton, T.)의 명저 『문학이론입문』의 서론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읽어 보라. 문학에 대한 기존의 정의들, 가령 상상적인 글, 허구적인 글, 일상 언어의 규범에서 일탈한 언어의 조직체, 비실용적인 자기 지시적 담론이라는 등의 정의들은 문학의 본질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다. 아니, 이글턴에 따르면, 문학의 본질이란 것은 결코 없다.  - P16

 그래서 이글턴은 엘리스(Ellis, J. M.)의 비유를 인용한다.
엘리스에 의하면, ‘문학‘이라는 용어는 ‘잡초‘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방식과유사하게 쓰인다. ‘잡초‘는 특정 종류의 식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정원사가 원하지 않는 식물이면 다 잡초에 해당하는 것처럼, 문학은 그와 반대로 이런저런 이유로 가치 있게 평가하는 글의 종류 전부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 P16

(2) 문학교육에서 문학으로

문학이 존재하고 그 결과로서 문학교육이 존재하는 측면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문학교육의 결과로 ‘문학이 존재하는 측면에 주목해 보자. 전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사람들이 문학이라 배우고 그래서 문학이라 생각하는 것이 문학이라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P17

(전략). 이러한 비판의 근저에 혹시 문학교육이라고 하면 그저 문학이라는독립 변수의 종속 변수로만 이해하는 인식의 미망이 있지는 아니할까.
과연 문학에는 본질이 존재하고 문학교육은 그것을 전달하기 위한 교수 방법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문학교육은 학습자 독자로 하여금 문학이라는 본질을 주체적으로 구성하게 해 주는 적극적 활동이다. 그리하여 문학교육이 문학을 살리고 인류를 살린다. 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위기가 인류 정신의 위기로 받아들여진다면, 그 위기에서 인류를 구원해 줄 존재는 문학 그 자체가 아니라 문학교육이기 때문이다. - P18

(1) 분석 위주의 문학교육

먼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⁴의 한 장면. 키팅(Keating:Robin Williams) 선생은 학생들에게 교과서 『시의 이해』 서문을 읽도록 한다.
(중략)
정말 쉬울까? 『시의 이해』는 이렇게 이어진다.
"시의 완성도를 나타내는 점을 그래프의 가로축에 놓고, 중요도를 세로축에 그린 다음, 그시의 면적을 계산하면 그 시가 지닌 위대성의 정도를 산출할 수가 있게 된다." - P19

"바이런(Byron, B.)의 소네트는 세로축에서는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지만, 가로축에서는평균 점수에 불과하다. 반면에 셰익스피어(Shakespeare, W.)의 소네트라면 가로, 세로 모두 높은 점수를 받아 큰 면적을차지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이 시야말로 진정 위대한 작품임을 알 수 있게되는 것이다. (후략)" - P20

 사각형의면적을 구하는 공식처럼, 시 작품의 위대성(Greatness)은 완성도(Perfection)와 중요도(Importance)의 곱, 즉 {G = P×I}라는 도식으로 정리된다. 이에 따르면,
셰익스피어 시(5)는 바이런 시(B)보다 면적이 더 넓으므로({S≥B}) 셰익스피어가 바이런보다 더 위대하다는 결론이 자명하게 내려진다! - P20

■ 신비평(New Criticism)

신비평은 60년대까지 비평계를 휩쓸었던 문학 사상이다. 기존의 비평 이론들이 작가 · 사회 · 독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반성하며, 텍스트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꼼꼼하고 분석적인 읽기를 요구했으며, 이에 따라 작품 안에서 언어의 함축성을 찾고 비유적 의미를 밝히는 것을 중요한 독서 방법으로 삼았다. - P21

신비평가들은 산업사회에서의 과학을 혐오하면서도 동시에 인상주의 비평을 배격하며 과학적인 비평의 수립을 추구하는 이중적이고 이질적인 것의결합을 추구했다. 요컨대 시는 과학적 진술과 다른 것이지만, 비평 방법은그 자체가 의사 과학적(科學的) 행위로 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신비평의 본질적 가정이었던 것이다. - P21

사실, 신비평의 분석주의적 독해 방법은 비판적이거나 창조적인 독자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관점에 일치하는 이상적인 독자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신비평에 입각한 문학교육은 한편으로는 신비평적 관점에 유순한 텍스트와 다른 한편으로는텍스트를 정해진 방식에 따라 꼼꼼하게 읽는 유순한 독자들의 결합을 가져왔다. - P22

(전략) 그러기에 학생들에게 각자의 인생을 남다르게(extraordinary) 살 것을 주문한키팅의 입장에서 이처럼 보편적인(ordinary) 읽기를 강조하는 신비평적 문학교육은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술적 완성도와 역사적 중요도를 고루 갖춘 작품을 높이 평가하며, 그 기준에 따라 객관적으로 작품을 평가하라는 서문의 요구를 따르게 되면 개인의 개성과 주관과 낭만은 설 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 P22

문학이 지닌 역사적, 인문적 가치도 소중하다. 하지만 고통스럽다. 특히 시대적 의의만 강조하고 도무지 향유하기 힘든 작품을 읽고 분석하고 감상하도록 하는 것은 고문일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읽기로 일관하는 교육은 기존의 권위에 복속하라는 명령에 지나지 않는다. - P22

(전략) 문학교육을 문학적 주체의 형성으로 보는 관점에서 키팅의 이러한 지적은 옳다. 이런 점에서, 특히 객관식 선다형 시험이라는 체제에서 벌어지는 문학교육의 왜곡상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신비평을 비판하기는 쉽고, 문학교육의 현실을 개탄하는 것 역시 어렵지 않지만, 교사의 분석과 해설 없이 문학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주체로 학생들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 P23

3. 문학교육의 개념과 의의
(1) 문학교육의 개념

(중략) 이 과정에서 문학교육은 문학의교육 그 이상이며, 문학교육에서 말하는 문학이라는 것이 좁은 의미의 문학의 실체나 속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도 짐작할 수 있었다. - P31

문학교육학의 기념비적인 저서인 『문학교육론』(구인환 외)에서 이미 문학교육을 "문학 현상이바람직하게 이루어지기 위한 일체의 의도적 과정 및 결과라 정의하였던것이다. 왜 굳이 ‘문학‘이 아니라 ‘문학 현상‘이라는, 당시로서는 생소하기까지한 용어를 동원해야 했을까?  - P31

하지만 『문학교육론』의 공저자였던 우한용은 문학 현상이 작가 작품-독자 그리고 그러한 구조가 실제로 운영되는 실천이라는 측면이 동시에 문제되는 것이라면 문학교육현상은 그러한 구조를 역동화시키는 한 단계 상위적인 구조라고 하면서, 문제는 문학 현상이 아니라 문학교육현상이라는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 P31

이와 상통하는 관점에서 문학교육은 "문학 능력의 향상을 통하여 인간다움을 성취하는 교육활동"⁹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문학교육이란 문학을 체질화하고 그에 기반하여 활동하는 능력의 교육이며, 문학 능력의 함양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인격의 성장에 이르고, 사회적으로는 문화 계승과 창달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9) 김대행 외, 「문학교육원론」,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5면, - P32

그렇다면 ‘문학 능력‘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며, 그러한 능력의 소유자로서의 학습자상은 어떤 주체로 설정해야 할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눈여겨볼 논의는 다음과 같다. "바람직한 문학 주체란 문학에 대해 긍정적인 가치관을 지니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풍부한 문학 지식과 경험을 지니고 있고,
문학의 발화 특성과 한국 문학의 관례에 정통한 주체이다. 그는 또 문학적상상력이 뛰어나고, 문학적 언어를 유창하게 사용한다. 이러한 특성들을 문학 능력이라 부른다. (…) 한편으로는 그것은 고정적이고 완성된, 이미 소여된 대상이 아니라 가변적이고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앞으로 채워질 자질로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문학 능력은 문학을 배울 수 있는 능력과 문학 행위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의 두 범주를 포괄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학교육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문학 능력을 바탕으로 그것을 확충하는 동시에 구체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¹⁰

10) 김창원, 『문학교육론 제도화와 탈제도화』, 한국문화사, 2011, 145면, - P33

 문학에서 문학 현상으로, 거기서 다시 문학교육현상으로 넘어오면서 이처럼 문학 그 자체보다는 인간다운 삶을 강조하게 되는 것은 문학교육을 문학이 아닌 교육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때 매우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가르치다‘라는 뜻의 영어 ‘teach‘는 이른바 4형식 문장, 예컨대 "I teach mystudents literature."에서처럼 두 개의 목적어를 동시에 수반한다. - P33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교육의 개념에 관한 여러 진술을 듣다 보면 은근히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오르곤 한다. 도대체 그런 능력이 왜 필요한가? 그런 능력이 인간다운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문학이라는 언어 예술을 향유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인류의 일원으로서 굳이 지녀야 할 능력인가? 이에 대한 답은 아마도 문학교육의 의의에 대해 생각하면서 찾아야 할것이다. - P34

(2) 문학교육의 의의

그 동안 문학교육계는, 그것을 작품 중심이라 부르든, 정전 혹은 실체 중심이라 부르든, 문화적 유산으로서 문학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교사에 의해전수하는 전통적 교육 방식에 대해 비판과 회의를 거듭해 왔다. 그것은 곧교사가 주도하는 정전의 섭렵(coverage)과 주해(exegesis)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훌륭한 작품에 대한 훌륭한 교사의 훌륭한 해설에 바탕을 둔 훌륭한 수업이 없을 리 없다. - P34

입시교육 때문만은 아니다. 입시에서조차 그런 학습은 별로 도움이 되질 않는다. 가령,
교사와 학생 모두 열심히 『진달래꽃』을 가르치고 배웠건만, 정작 시험에 동일한 시인의 다른 작품 『산유화』만 나와도 학생의 편에선 배우지 않은 것을출제한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 P35

문학이 재미없고, 문학 능력도 길러지지 않았으니, 학생들이 평생 문학을 동반자로 삼아 인간다운 삶, 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길 기대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 되고 말았다. 이에 문학교육계는 작품 중심보다는 텍스트 중심, 교사 중심보다는 학습자 중심, 해설 중심보다는 활동 중심으로 문학교육의 방향을 취해 나가자는 데 대략 합의를 해 온 것으로 보인다. - P35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비판과 지적이 있었으므로¹² 여기서는 상론은 피하되, 다만 한 가지만 예로 들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문학의 특수한 언어 용법이라 불리는 비유나 이미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물론 그것들은 시의 중요한 속성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기교따위가 아니며, 그저 모호하기만 한 말이 아니다. 우리가 감정과 사상의 섬세한 결에 주목하게 될 때, 가령 천차만별 각양각색으로 존재하는 ‘배고픔‘,
우리 둘만의 특별한 ‘사랑‘, 그 느낌 하나하나에 주목해 볼 때, ‘배고프다‘,
‘사랑하다‘ 같은 일상 언어야말로 뭉툭하기 그지없는 모호한 말이기 때문이다. 막상 사랑에 빠지게 되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사랑이란 말처럼 부정확하고 답답한 말도 없다.

12) 대표적으로 김대행, 『국어교과학의 지평』, 서울대학교출판부, 1995를 들 수 있다. - P36

언어 예술이란 그런 것이다. 현실의 언어로 절망하기에 분투노력하여 새로운 언어를 찾고 또 창조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 비평가는 문학의 성격을 이렇게 묘파했다.
말은 미끄러지고 행동은 엇나간다. 말에 배반당하기 때문에 다른 말들을 찾아 헤매는 것이 시인이다. 시인들은 말들이 실패하는 지점에서 그 실패를 한없이 곱씹는다. 그 치열함이 시인의 시적 발화를 독려한다. 한편 행동이 통제 불능이라 그 밑바닥을 들여다보려는 자들이 소설가다. 소설가들은 법과 금기의틀을 위협하는 선택과 결단의 순간들을 창조하고 그 순간이 요구하는 진실을 오래 되새긴다. 그것이 소설가의 서사 구성을 추동한다.¹⁴

14)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문학동네, 2008, 13면. - P37

다음으로 문학교육의 인문 교육적 의의에 대해 살펴보자. 문학은 예술적,
미학적 성격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교육은 "문학이 지니고 있는 인간 이해의 미학적 경험"만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생겨 나오는 인문 가치를 교육적 경험으로 제공해 주는 역할"¹⁵도 하는 것이다.
실제로 문학교육에서 제공하는 교육적 경험은 매우 다양하다. 문학의 언어를 일상적 경험을 통해 제공하기도 하고, 구체적인 문학 작품을 읽는 경험을제공하기도 하며, 그와 관련한 맥락적 경험도 제공하고, 다른 문학 텍스트나문화·예술 텍스트에 확장하거나 적용하는 경험도 제공하며, 실제로 문학텍스트를 생산하는 경험도 제공한다.

15) 국어교육 미래 열기 편, 국어교육학개론」(제3판), 삼지원, 2009, 438면. - P38

부분성의 패러다임 속에서는 그 질문에 대답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각자 맡은 부분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이 부분성의 물신화는 심미적 감수성을 파괴하고 전체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킨다. 그리하여 인간은 파편화되고 왜소해지며, 이것은 다시 자기 증오를 촉발하고, 자기 증오는 타인에 대한 증오, 생명경시, 사회적 파괴 행위 등으로 그 표출 형식을 구한다. - P38

이는 궁극적으로 앞으로의 문학교육이 텍스트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 학문탐구 방식의 문학교육을 넘어서서, 문학 텍스트가 사회적 문화적 예술적 공간에서 작용하고 변이하는 현상에 대해서 이해하고 참여하고 소통하는 능력과 안목을 길러 주는 데에로 나아가야 할 것을 암시한다.¹⁷ - P39

왜 문학을 통한 교육인가? 총체성 또는 전체성에 대한 정확한 인지를 위해서는 지적인 활동만큼이나 정서적 활동과 상상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서는 윤리적 사회적 삶 속에서 인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정보 제공 기능을 수행하며, 상상력은 사회성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 P39

문학적 상상력
문학은 상상력 향상의 매개이자 결과물이기도 하다. 인간은 문학을 통하여 기존의 것들을 재해석하고 참신하게 바꾸어 새롭게 정의해낸다. 문학적 상상력은 사회뿐만 아니라 자아탐색에도 적용되는 바, ‘나‘를 보다 정확하게이해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도록 돕는 자아성찰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P40

따라서 교육을 통해 인류가 공통적으로 기대하고 기획한 결실을 맺기 위해 문학은 기꺼이 활용되어야 한다. 역사를 돌이켜본다면,
문학은 이러한 사회적 기대와 오랜 연관을 맺어왔음을 알 수 있다. 문학의 태생이 그러하였고 본질이 그러한 한, 지금도 문학은 인류의 가치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학의 힘을 활성화한다는 것이 문학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은 아니며, 문학을 활용한다는 것이 문학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것도 아니다. - P40

(전략) 이러한 목적에 맞추어 각 급 학교에서 환경 교육이 추진되고 있으나 그 효과는 별로 뚜렷하지못하다. 이에 필요한 것이 바로 생태학적 상상력이다. 생태학적 상상력이란자연과 인간 그리고 문화가 어우러져 자연 속의 인간다운 문화적 삶의 결을누릴 수 있는 녹색 유토피아를 그리는 사고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같은사고 활동이 적극화될 수 있는 계기를 우리는 또한 문학적 상상력 활동에 찾을 수 있다. - P40

오늘날 문학교육이 죽은 교육 취급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문학이라는 교과의 테두리 내부에 갇힌 나머지 문학교육의 이러한 인문학적 의의를 몰각한 데 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문학을 전수하고, 아름다운 지구를 전해 주는 일은 별개의 일이 아니다. 문학과 문학교육의 참된 의의 가운데 하나는바로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지키는 것이다. - P41

제2장
문학교육의 목적과 목표


 문학교육 목적에 대한 이해는 문학교육의 가치와 철학, 이상적인 문학교육의 모습에 대한 성찰을 선제로지속적으로 새롭게 변모되어 나간다. 따라서 사실 차원에서 단순 암기하기보다는 목적 설정의 논리와 기본 개념을 익혀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이해,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을 획득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 P45

1. 문학교육 목적/ 목표 설정의 전제

문학교육의 목적과 목표에는 가장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문학 현상과 경험,
지식에 대한 교육적 판단과 가치 발굴 과정이 전제된다. 곧, 현실의 여러 문학 현상 속에서 어떤 것이 가장 의미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이념적 가치 탐색이 이루어지는 것이다.³ 또한 여기에는 지식관, 인간관, 교육관, 문학관,
문학교육관 등의 특정 관점이 추구하는 가치 지향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3) 우한용, 『문학교육의 목표이자 내용으로서 문학 능력의 개념, 교육 방향』, 「문학능력』, 역락,
2010. 또한 구인환 외에서는 문학교육의 철학적 지향으로 현대 도구적 이성 사회과 과학 문화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서 대화 문화, 상상력, 삶의 총체성 이해 등을 제안한 바 있다. 구인환 - P46

이는 이른바 문학교육 생성의 발생적 구조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문학교육의 변화가 사회 문화적 환경과의생태적 연관 속에서 이루어짐을 시사하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 정보화 사회,
지식 기반 사회에서의 문학 현상의 변화상을 들 수 있다. 다매체 시대 문학은 문학 그 자체로만 존재하기보다는 사회적 소통의 큰 틀 속에서 자리 잡고있으며, 문학 활동도 개인적 차원의 수용과 생산을 넘어서 사회 문화적 실천의 넓은 맥락으로 규정되고 있다. - P47

문학의 본질적 속성은 다면적이어서 다양한 영역과 연계된다. 곧, 문학은 언어 예술이자 문화이며, 사고이자 소통이다.⁶ 먼저 문학은 예술의 하위 양식이다. 한 편의 문학 작품은 형상적 언어로 구축된 미적 자율성의 세계로 미적 경험을 가능하도록 한다.


6) 우한용, 「문학교육과 문화론』, 서울대학교출판부, 1997, 제1장~2장, 김창원, 「문학교육과정 설계의 절차와 원리」, 「국어교육」 77, 한국어교육학회, 1992. - P47

 문학은 공동체가 구성하는 삶의 방식의 총체로 개인과 공동체의 삶의 방식을 형상화하며 나아가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문화적 실천을 수행한다. 문학은 폐쇄된 개인의 개별적 활동이 아니라 작가,
독자, 현실 속에서 소통하면서 역동적으로 실천, 변모되어 나가는 것이다. - P48

2. 문학교육의 목적

(1) 언어능력의 향상

문학 언어는 일상어와 존재론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일상어를 질료로 하여 일상어의 용법을밀도 있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학은 언어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고 창조적인언어문화를 생산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⁹
문학어와 일상어는 당연히 차이가 있다. 일상어는 현실 맥락에서 구체적 사물을 지시함에 반해 문학은 허구라는 자족적 맥락에서 상징적 의미를 함축한다. 일상어는 실질적인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반면, 문학어는 상대적으로 자기 완결적인 세계에서 존재하기에 표현 자체를 자기 목적성으로 중시한다.


9) 김대행,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사상사, 1992. - P49

그러나 두 언어가 서로 다른 용법을 가진 별개의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호 교섭 관계 속에 있다. 소설 속의 언어는작가의 머릿속 실험실에서 존재하는 개인의 언어가 아니다. 삶의 감각과 경험,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사회적 현실 속에서의 언어이다.¹¹

11) 박인기 외, 앞의 책, 2005 - P49

일상어와 문학어의 상호연관성을 고려할 때, 문학교육에서는 언어적 창의성, 민감성, 효율성, 그리고 언어문화에 대한 성찰 능력 등을 기를 수 있다.¹³
첫째, 문학어를 통해 언어적 창의성을 기를 수 있다. 문학 언어는 일상 언어의 창의적 혁신을 보여줌으로써 언어가 지닌 또 다른 잠재적 가능성을 실현해 준다. 문학 언어는 일상 언어를 낯설게 한다고 한다. 낯설게 하기를 통해 문학의 세계는 일상의 실용적 세계에서 굳어진 언어에 생기와 새로움을 더하게 된다.


13) 김대행 외, 앞의 책, 2000 - P50

둘째, 문학어는 언어에 대한 민감성을 기를 수 있다. 문학어는 감각적 이미지를 전달하는 형상이기에 소리, 색채, 맛, 냄새 등을 기술적으로 다루거나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 함축이 풍부한 말을 활용한다.  - P51

또 한 편의 소설에는 인물 군상의 직업, 계급, 문화적 정체성에 따라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더라고 그 함축적 의미는 무수히 달라지는 사회적 방언들이재현되어 있다. (중략). 그런 점에서 소설은 타자의 언어적 차이에 대한 민감도를 높이고, 언어의 다성적 의미망을 경험하기에 매우 좋은자료이다. - P51

셋째, 문학어는 언어 사용의 효율적 양상을 통찰할 수 있도록 한다. 문학언어는 지극히 간결하고, 경제적이며, 군더더기가 없다. 또, 언어 능력의 기반을 이루는 방법적 원리를 정제해서 보여준다. 시의 운율, 수필의 기-승-전-결의 구조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만족시키며, 감정을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말하기 방식의 원리를 담고 있다.  - P51

넷째, 문학어는 언어문화의 관습성을 통찰하고 비평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일상 언어가 실용적 상황 맥락 때문에 성찰적 거리를 확보할 수 없음에 반해 문학어는 그것이 작동되는 문화적 기반과 전제를 충분히 성찰할 수있다. 가령,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의 작품에서는 서로를 소외시키는이른바 ‘집단 독백‘이라는 도시 언어의 단상을 성찰할 수 있다. 일상 언어생활에서는 무심코 지나갈 수 있었던 장면이지만 소설에서는 의도적인 ‘낯설게하기‘를 통해 대도시의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언어문화 양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 P52

현대는 소통의 시대다. 소통이 단순히 표면적인 의사 전달을 넘어서는 것이라면 문학어는 일상어의 창의적, 심미적, 문화적 측면을 이끌어 냄으로써 심도 깊은 의미 공유를 이끌어 낼 수 있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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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어스 IT 팁!
메타버스(metaverse) 3차원의 가상세계를 뜻해, 무엇을 뛰어넘거나 초월한다는 뜻의 ‘메타(meta)‘와 우주,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친 단어야.

소피 상식 팁!
유토피아(utopia) 16세기 영국의 토마스 모어의 소설 이름을 딴 단어. 어디에도 없는 세상이란 뜻으로 천국같이 살기 좋은 최상의 사회를 가리켜,
반대말이 암울한 미래를 가리키는 ‘디스토피아(distopia)‘야. - P15

 이제 현실 세계는 물론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에서도 AI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어찌 보면 ‘AI가 없이 이 세계가 잘 작동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확신할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은 AI에 크게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 P15

준이 사는 이 도시는 20년 전만 하더라도 범죄 도시라 불리던 곳이었다. 60여 년 전에는 자동차 산업이 매우 발달하여 부유한 도시였지만, AI의 등장과 발달로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다. AI가 사람들을대체하면서 일자리가 사라지게 되자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도시로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 P15

소피 상식 팁!

기본소득 토마스 모어 소설 『유토피아」에 처음 나온 말이야, 재산, 일에상관없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무조건 균등하게 지급하는 소득을 가리켜. - P16

지니어스 IT 팁!

퍼셉트론(perceptron): 1957년 뇌의기능을 모델 삼아 만든 인류 최초의 인공 신경망으로 미국 코넬 항공 연구소의 프랑크 로젠블라트가 고안했어.

대화형 AI: 스마트폰의 시리, 빅스비처럼 음성을 인식해 인간과 같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 챗GPT도 대규모 언어모델에 기반한 대화형 인공지능 시스템이야

강한 인공지능: 영화 「아이언맨」 속자비스와 같이 인간의 지능 수준인 AI를 가리켜. 반대로 호텔 예약을 해주거나 영화를 추천해주는 등 어떤 특정한기능만 하는 AI를 약한 인공지능이라부르지. - P17

레논 박사가 만들고 싶은 어반시티는 자신의 최종 연구 성과가 될 강한인공지능이 있는 스마트 AI 도시였다. 하지만 투자자와 연구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AI가 너무 똑똑해도 문제라고. 그저 사람 대신 특정한 기능만 수행해줘도 충분한데 말이지..."
"강한 인공지능이 제어하는 도시라 말이야 좋긴 한데, 강한 인공지능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그 피해는 어쩌라는 거야? 젊은 풋내기 박사 녀석이 책임진다고 해결될 문제인 건가?" - P17

자이로와 레논,
둘의 어긋나버린 우정

많은 사람은 어반시티의 부활을 알린 사람으로 레논 박사를 꼽았다. 하지만 순전히 레논 박사의 역량만으로 지금의 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고 말할 순 없다. 레논 박사의 연구에 자이로의 자본력이 모여 이루게 된 열매라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 P19

사실 레논 박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존의 AI 로봇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AI 로봇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의 AI 로봇은 마치 사람처럼 생각하고말하며 행동했다. 감정이 있었고, 질문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고, 자기 생각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레논 박사는 자이로의 탐욕이 어반시티에 미치게 되었을 때 이 AI 로봇들을 세상에 공개하기로 마음먹는다. 바로 AI 히어로들이었다. - P22

명탐정과 소녀

반대편 거리에서 걸어오고 있는 준을 발견한 루시는 손을 흔들었다. 준은 평소 루시를 자신의 동생 같다고 생각한다. 루시는 다른 AI 히어로들과는 달리 유독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리라.
"박사님, 루시는 왜 저런 모습인가요?"
(중략)
준은 고개를 내저으며 혼잣말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아뇨, 박사님. 루시의 모습은 엄청 주의를 끈다고요? - P27

루시는 언어에 특화된 AI 로봇이다. 루시를 처음본 사람들은 루시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루시와 몇번 대화를 해보면 로봇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중략).
"준, 정말 약속을 잘 지키는구나. 단,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어!! 카르페 디엠, 쾀 미니뭄 크레둘라 포스테로!"
"탐정 활동 중에는 바깥에서 이목을 끌 필요 없잖아. 나이에 어울리는말을 쓰라고." - P28

 반짝이는 유리 상자 안에는 동물의 깃털이 들어있었다.
"루시, 제법인데? 이걸 어디서 찾았어?"
"희망로 주변에서 병에 걸린 사람들의 주소를 조회해 봤어. 특히 집 주변에서 이 깃털을 주로 발견할 수 있었어. 어때? 내 조사 실력이?"
"좋아, 이 깃털을 조사하면 좀 더 사건이 명확해질 거야." - P30

루시가 생각에 잠긴 준에게 말했다.
"일단 범인을 잡는 일도 중요하지만,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것이 우선일 것 같아."
"동감이야. 일단 희망로 주변 까마귀들을 잡아서 바이러스를 옮기는 걸 막아야겠어." - P31

"박사님! 빠르고 날쌘 까마귀를 사람이 잡는 것은 어려워요! 사람이 일일이 까마귀를 잡는 것이 어렵다면 AI 로봇을 활용해야만 해요..."
준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AI 로봇의 카메라 센서에 비친 영상에서 ‘까마귀‘가 인식되면 로봇이까마귀를 잡게 하고, ‘까마귀가 아닌 새‘들은 잡지 않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 P31

"그러니 AI 로봇을 포획 작전에 쓰기 전에 학습을 시켜야만 한단다. AI히어로의 도움을 빌리도록 하려무나! 히어로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학습시키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거야. 이런 상황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알고리즘에는 K-NN이 있지."
"k-NN 알고리즘이라고요?"
"그래. 특정 대상과 그 대상이 아닌 것을 간단하게 구별해야 할 때 가장 유용하게 쓸 수 있단다."
"그렇군요. 그러면 K-NN을 와이드에게 부탁하면 되겠어요!" - P32

멋진 광경의 까마귀 포획 작전

AI에 달린 카메라가 야생 동물의 눈동자마냥 회전하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떼의 새 무리와 AI 로봇 무리가 서로 마주쳤다. 날아가는새 무리는 V자를 그리며 이동하는 기러기 떼였다. ‘과연 AI 로봇은 어떻게 행동할까?‘ 준은 이 장면을 숨죽이며 쳐다보았다.
AI 로봇은 쏜살같이 기러기 떼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곧 멈추고 선회하여 다른 방향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 P33

이윽고, 한 무리의 AI 로봇이 까마귀를 그물에 포획한 채 이동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준! 네가 재빠르게 만든 알고리즘 덕분에 주변의 모든 까마귀만을 포획할 수 있었어. 물론 와이드도 실력 발휘를 했지! 그나저나 불쌍한 까마귀들 본의 아니게 악당에게 이용당해 버렸네. 잘 치료해주고 다시 풀어주자." - P33

‘까마귀… 까마귀 왜 하필 까마귀일까? 다른 새들을 이용하면 더 많이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었을 텐데. 가만, 까마귀의 습성이 뭐였더라?‘ - P34

친구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

그러면 K-NN 알고리즘은 무엇일까요?
K-NN 알고리즘은 특정 사물을 분류해야 할 때, 그리고 그 대상이 맞는지 아닌지 구별해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합니다. 준의 문제처럼 까마귀인가 까마귀가 아닌가를 구별하는 단순한 문제에도 K-NN이 적합하지요.
필요한 준비물은 데이터인 새들의 사진입니다. 새로운 사진이 입력됐을 때, 학습한 까마귀와 비슷한 사진일수록 학습한 까마귀 사진과 가까운 위치에 놓이게 돼요.  - P36

분류하려는 데이터에서 가장 가까운 K개의 데이터를 찾아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데이터를 판별해야 하므로, K(=이웃 개수)는 홀수로 정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만약 K(=이웃 개수)를 짝수로 설정한다면 동점이 나왔을 경우, 판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점일 경우, 임의의 값을 따르거나 추가로가장 가까운 값을 따르도록 설정해주어야 해요. 그래서 보통 K(=이웃 개수)는 홀수로 정합니다. - P36

K-NN은 우리말로 ‘최근접 이웃‘
이라고 해. ‘가장 가까운 이웃‘이란 뜻이지. 실제 알고리즘도 가장 가까운 이웃에 위치하는 대상을 같은 것으로 판단해주는 일을 해. - P36

아니,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지?

"준! 바토우 형사네!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잠깐 경찰국으로 와줄 수 있겠어?"
"네, 지금 바로 갈게요!"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준은 황급히 경찰국으로 향하기 위해 택시를 호출했다. 1분쯤 지나자 자율주행 택시가 준의 집 앞에 도착해있었다. - P45

 7구역은 준의 집 외에도 어반시티의 경찰국과 AI 로봇 회사인 자이로스콥이 있는 곳인데 그곳의 AI 로봇들이 길거리의 시민들과 대치 중이었다. 한편으로 몇몇 AI 로봇들은 경찰국의 정문 앞으로 서서히 모여들고 있었다. - P46

말도 안 돼!
AI 로봇들이 사람들을 해치고 있다니

 반가움도 잠시, 바토우 형사는 사태의 시급함 때문인지 심각한 눈빛을 하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준, 지금 뭔가 문제가 생겼어. 7구역의 AI 로봇들이 사람들을 안전상의이유로 통제하기 시작했어. 오늘 20주년 축하 행사 때 풀어놓은 경찰국 AI로봇들도 마찬가지야. 경찰국의 명령을 듣지 않고, 계속 안전을 이유로 사람들을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있어. 통제에 따르지 않는▮시민들은 AI 로봇들과 대치 중인데... 뭔가 이상해."
준은 바토우 형사에게 다급히 물었다. - P46

"안 그래도 자이로스콥 측에 연락을 취해보고 있긴 한데 AI 로봇들은 기본적으로 로봇 3원칙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어." - P47

소피 상식 팁!
로봇 3원칙: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가리켜. 1. 로봇은 인간에게 해가 되는 행위를 할수 없고, 2.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되 1원칙을 위배할 수 없으며, 3. 로봇은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되, 1, 2 원칙을 위배할 수 없어.

엄마와 해본 스무고개로도 세상을 구할 수 있어

아까 호출해 놓아 곁에서 서성이는 소피에게 물어보았다.
"소피, 스무고개를 할 수 있는 웹사이트 알아?"
"아키네이터가 있지. https://kr.akinator.com/ 주소로 들어가 봐."
소피가 알려준 대로 접속하니 다음과 같은 화면이 나왔다. - P48

AI 히어로들 중 박사로 불리는 지니어스가 대답했다. "내 추론에 따르면 스무고개와 비슷한 원리로 범인의 존재를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은 92%야."
대답을 들은 준의 눈망울이 더 또렷해지고 밝게 빛나기 시작한다. 이에지니어스는 준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을 하였다.
"그럼 스무고개와 관련한 공부를 더 해볼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 P50

"맞아, 이렇게 데이터의 상태나 흐름을 눈에 보이게 그래프나 그림으로나타내면 데이터에 숨겨져 있던 의미나 보이지 않던 정보를 알아낼 수 있어! AI는 많은 양의 데이터를 가지고 학습하는 과정을 거쳐, 이때, 사용하는 데이터를 학습 데이터 또는 훈련 데이터라고 하지. 학습이 끝나면 학습이 잘 죄었는지를 평가하게 되는데 이때 사용하는 데이터를 시험 데이터라고 해!" - P52

"학습 데이터에 포함되지 않은 시험 데이터로 평가해야 진짜 AI 성능을잘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지! AI는 사람이 알려준 것 이상의 일을 할 수 있어야 해. 가르쳐 주지 않은 데이터를 보고 이것이 무엇인지 분류하거나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하거든. 여기 학습 데이터가 있어! 이번에는 보기 좋게 표의 형태로 보여줄게!" - P52

준은 눈망울을 초롱초롱 빛내며 대답했다.
"학습시킨 AI가 무엇을 예측할지 잘 알 수있을 뿐 아니라, 왜 그렇게 예측했는지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 P53

범인을 찾으려면
용의자 후보부터 추려봐야 해

준은 범인을 찾기 위해 범인 후보군 목록을 작성하기로 마음먹었다. 범인 후보군 목록을 작성하고 단계마다 특성이나 질문을 ‘기준‘으로 삼아 통과해 나간다면 최종적으로 범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신감이 붙은 준이었지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임을 절감했다. 평소 같으면 레논 박사에게 물어보면 되지만 레논 박사님도행방불명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 P54

"나도 AI 로봇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어. 하지만 준! 내 생각엔 누군가 AI 로봇들에게 잘못된 명령을 의도적으로 내린것 같아! 로봇 3원칙을 일부러 깨서 행동하도록 말이야...."
"제가 루카스 박사님을 이곳에 모셔온 이유는 저 AI 로봇들에게 잘못된 명령을 의도적으로 내린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예요. 박사님! 범인 후보군의 목록을 만드는 일을 도와주세요. 그중에서 단계별로 기준을 잘 설정해서 분류해나간다면 범인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 P55

루카스 박사의 질문에 준은 턱을 괴며 생각했다.
‘에드몬드 경찰국장... 어반시티의 치안을 담당하는 총 책임자. 과거에는도시와 시민들을 위하는 인물이었으나 경찰국장이 된 후로, 자이로스콥과비리 사건에 연루되었었지. 자이로스콥의 회장인 자이로는 자신의 탐욕을위해서는 어떠한 일도 벌일 수 있는 인물이지.....‘
"음, 에드몬드 경찰국장과 자이로 회장이요" - P56

제대로 된 질문이 우리에기 범인을 알려줄 거야

지니어스가 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준, 지금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아! 지금쯤이면 어떤 질문을할지 고민할 차례인데 혹시 그 생각이 맞니?"
"맞아, 지니어스.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범인을 쉽게 찾을 수도 있고, 영영 못 찾거나 엉뚱한 누군가를 지목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네…" - P57

"여기 각각의 후보들이 AI 로봇을 제어할 권한이 있는지 없는지를 한 번따져볼까요? 먼저 일곱의 AI 히어로들은 AI 로봇을 제어하고 조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레논 박사님께서는 제게 AI 히어로들을 작동시키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죠. 저는 AI 히어로들에게 자이로스콥의 AI로봇들을 제어하라고 명령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AI 히어로들은 AI 로봇을 제어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P60

게슴츠레한 눈빛을 한 에드몬드 국장이 준을 쳐다보며 말했지만, 준은 별 개의치 않은 눈치였다.
"저 또한 자이로스콥의 AI 로봇을 제어할 권한이나 힘을 가지고 있지않습니다. 있었다면 진작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겠죠. 바토우 형사님과 에드몬드 경찰 국장님 또한 저와 마찬가지이실 거고요. 안 그러신가요, 국장님?" - P61

"두 번째 질문은 AI 로봇들이 로봇 3원칙을 지키는 것을 원하는지 여부입니다. 범인은 분명 AI 로봇들에게 로봇 3원칙을 깨는 행동을 하게 했어요. 평소 공공연하게 또는 드러나지 않게 AI 로봇들이 로봇 3원칙을 깨는것에 찬성하는 용의자가 있다면 그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차례차례 살펴볼까요? 음.. 누굴 먼저 할까요?" - P62

"자이로 회장은 더 많은 AI 로봇들을 판매하길 원하는 기업가입니다. AI로봇들이 로봇 3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즉시 폐기되기 때문에 경제적 손실을 감내하고 원칙을 어기도록 한다는 건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남는 것은 마지막으로 어반스인데… 어반스가 AI 로봇들이 로봇 3원칙을 지키는 것을 원하지 않을 이유가 대체 뭐가 있겠나?"
에드몬드 경찰국장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계속해서 질문을던졌다. - P63

"아시다시피 어반스는 스마트 AI 시티의 모든 시스템을 통제하여 관할하고 있습니다. AI 로봇들이 각자 판단하여 행동한다고 하더라도 어반스는 각기 AI 로봇들의 판단을 뒤집을 수가 있죠. (후략)." - P64

"국장님. 여기에 어반스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어반스는 다른 AI 로봇들에게 자신의 판단을 전달하고 내릴 수 있어요. 스마트 시티 곳곳의 고장이나 오류를 찾아내고,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이 어반스에게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반스가 로봇 3원칙을 어길 수는 없을까요? 루카스 박사님! (후략)" - P64

어반시티의 지혜로운 시민들, 도와주세요

"현재 어반시티의 길거리와 도로에는 어떤 시민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밤 AI 로봇들과 대치하였던 대다수 시민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상황까지 발생했는데요, 방금 들어온 속보에 의하면 AI 로봇들이 현재 어반시티 내의 AI 통제센터로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시민 여러분은외출을 자제해주시고, 방송을 시청하시면서 만일에 발생할지 모를 사태에대비하시기 바랍니다."
‘AI 통제센터라니.. 앗, 그곳은?!‘
"AI 통제센터는 어반스가 있는 곳입니다!" 준의 외침에 루카스 박사가고개를 끄덕였다. - P66

스스로 스무고개를 하는 인공지능

준과 여러분이 최종 범인을 어반스로 지목할 수 있도록 도운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그것은바로 AI 속 숨어있는 스무고개의 원리였습니다. 이 Al 속 스무고개의 원리를 의사결정트리(Decision Tree)라 합니다. 왜 의사결정트리라고 부를까요? - P70

AI를 만드는 방법인 머신러닝에는 굉장히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의사결정트리입니다. 의사결정트리는 데이터의 분류와 예측 모두에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이라 할 수 있죠. - P70

사실 답을 맞히는 처지에서는 적은 개수의 질문으로 정답을 맞히는 것이 좋습니다. 답을 맞히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덜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의미 있는 질문은 먼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정답에 관해 많은 정보를 가진 질문을 먼저 하게 되면 정답이 아닌 특성을 가진 데이터를 단번에 많이 제외할 수 있게 되고, 그만큼 정답에 빠르고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 P71

의사결정트리는 컴퓨터가 스무고개를 스스로 하게끔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스무고개는 판단의과정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으므로 분류 및 예측 결과에 대한 이유나 설명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환자가 어떤 병에 걸렸을 때 이러이러한 조건에 부합하기 때문에 어떠한 질병이 의심된다고 설명을 해줄 수 있죠. 또 이 이야기에서와 같이 어반스를 범인이라고 판단한 과정과 이유를 상세히 설명해 줄 수 있답니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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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흉악범의 사형은
당연한 수순?

법원 판결로 본 사형제도 논란

2004년 20여 명의 노인 여성이 희생된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2009년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살인사건, 2012년 무고한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한오원춘 살인사건, 2014년 총기 난사로 군인 5명이 피살된 임병장 살인사건, 2016년 여성 혐오 범죄 논란을 불러온 서울 강남역 인근 살해사건, 2017년 ‘어금니 아빠‘ 이영학살인사건. - P332

 그뿐 아니다. 1997년 이후사형이 한차례도 집행되지 않은 현실을 지적하면서 "이번 기회에 사형을집행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등장한다.
그렇다면 법원에서 흉악범에 대한 판결은 어떻게 날까? - P332

보성 어부 살인사건. 임병장 사건 등 사형선고

사례 1 저녁 8시 강원도의 전방 부대 안에서 적막을 깨고 난데없는 수류탄 폭발음과 총성이 들렸다. 전역 3개월을 앞둔 병장A씨가 초소에 수류탄을 던지고 부대원들을향해 소총으로 무차별 난사한 것이었다. 평소 인격장애가 있던 A씨는 부대원들이자신을 무시하고 따돌림한다고 생각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 사망자 5명, 부상자 7명, 희생자 중에는 A씨를 평소 ‘형‘이라 부르며 따르던 후임병들도 있었다. - P333

사례 4 동네 선후배 사이인 D씨 등 4명은 돈이 필요해 범죄를 모의했다. 먼저 그들은 한동네에 사는 여인이 남편의 교통사고 사망보험금을 받은 사실을 알아내고 납치를감행했다. D씨 등은 다시 피해자의 딸을 인질로 잡아놓고 돈 1억 원을 찾아오게했다. 돈을 손에 쥔 그들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모녀를 차례로 살해했다. 범행은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D씨 등은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이복동생이 말을 잘 듣지않는다는 이유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살해 후에는 가족에게 협박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하는 대범함까지 보였다. - P334

모두 법원이 사형을 선고한 사건들이다. 위의 사례 중 A씨· B씨· C씨는 사형이 확정됐고, D씨는 상급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을 받았다. 법원은
"사형이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범행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죄형의 균형, 사회방위 및 범죄의 일반 예방적 견지에서 피고인을 이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취지로 사형을 선고했다. - P334

이른바 ‘임병장 살인사건‘
으로 알려진 A씨 재판에서 사형을 확정한 201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을 보자.

"사형선고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범인의 연령, 직업과 경력, 성행, 지능, 교육정도 성장과정, 가족관계, 전과의 유무,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 사전계획의 유무, 준비의 정도, 수단과 방법, 잔인하고 포악한 정도, 결과의 중대성, 피해자의 수와 피해감정, 범행 후의 심정과 태도, 반성과 가책의 유무, 피해회복의 정도, 재범의 우려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모든 사항을 철저히 심리하여야 하고, 그런 심리를 거쳐 사형의 선고가 정당화될 수 있는 사정이 밝혀진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대법원 2016. 2. 19. 선고 2015도12980 전원합의체판결)

다소 장황하고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한마디로 사형은 한번 선고하면 돌이킬 수 없는 형벌이니 심사숙고하란뜻이다. 이 판결에서 13명의 대법관중 4명은 소수의견을 통해 A씨의 사형선고에 의문을 제기했다.  - P335

"악을 악으로 갚을 수 없는 일"... 고심 끝 무기징역 선고

흉악살인범에 대해 법원이 고심 끝에 무기징역을 선고한 경우도 있다. (중략)
법원은 판결문에서 "함부로 남의 생을 접어버린 피고인들의 행위는 인간이 행사할 수 없는 신의 권력을 탐한 것으로 도저히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법률이 인간의 생명을 영구히 박탈하는 사형을과할수 있는 권한을 판사에게 허여했다 하여 함부로 피고인들을 재단할수는 없고, 피해자 유족들이 악을 악으로 갚을 수 없는 일이라며 종신형에 처하여줄것을 원하고 있다"면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 P336

법원 ‘사형판결‘ 선고도 감소 추세

판결을 통해 볼 때 법원은 대체로 사형제가 극히 예외적이나마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생명을 박탈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1997년을 끝으로 사형 집행이 중단되면서, 사형선고가 상당히 감소했고 무기징역 선고 비율이 높아진 것도 최근의 판결 경향이다.  - P337

2014년 이후 사라졌던 사형판결이 다시 등장한건 2018년이다. 이른바
‘어금니 아빠‘로 불리던 이영학이 중학생 딸의 친구를 유괴한 후 엽기적으로 살해한 사건에서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으로 볼 때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사형이라는 극형의 선택은 불가피하다"고 판결했다(이영학은 2심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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