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트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와 나쁨의 미덕에 관하여 마크 T. 코너드
지금은 현존재의 희극이 아직 스스로를 ‘의식하는 데 이르지‘ 못했다. 지금 우리는 아직 비극의 시대에, 도덕과 종교의 시대에 살고 있다.¹ - 니체 - P87
그럼 이제 또 다른 악동, 철학계의 악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뭐라고? 여러분은 철학계에 악동이 없다고 생각했는가?). 그의 이름은 프리드리히 니체, 그는 철학적으로-더없이 못된 사람이었다. 또 시건방진 말만 내뱉는 철학적 비행 소년이기도 했다. 그는 권위에 대들었고, 훼방꾼이었다. 그리고 사탄의 졸개라?말도 마시라, 그는 『안티크리스트』라는 제목의 책까지 썼다! 그는 모든 것을, 사람들이 사랑하고 아끼는 모든 이상을 혐오하는 듯 보였다. - P88
희극의 탄생: 가상 대 실재
(중략) 니체의 초기 저작에는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영향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쇼펜하우어는 재미라고는 한 톨도 없는 사람이었다. - P89
첫 번째 저서인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가상과 실재, 의지와 표상을 구분하는 쇼펜하우어의 이원론적 관점을 뚜렷이 채택하지만, 흥미롭게도 ‘의지‘라는 말을 의인화하여 의식적인 행위자처럼 취급하며 ‘근원적인 일자‘⁴라고 일컫는다. 예술과 미에 대한 연구를 가리키는 ‘미학aesthetics‘ 이라는 말은 감각적 자질 또는 사물의 외양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아이스테티코스 aisthetikos‘에서 파생되었다. - P90
우리가 아는 세계, 일상적인 세계,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단지 가상에 불과하며, ‘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 자리 잡은 실재부단하고, 맹목적이고, 강력하고, 궁극적으로 목적이 없고, 따라서 충족되지 못하며 고통받는 의지는 너무나 끔찍하기에 그 중심을 들여다보는 일, 존재의 진짜 본질을 이해하는 일은 진이 빠지는 일이다. - P91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일단 진리를 보고 그것을 인식하게 된인간은 이제 어디서나 존재의 공포와 부조리를 보게 된다."⁷ 니체에 따르면, 예술이, 오로지 예술만이 우리의 유일한 은총이다. - P92
『비극의 탄생』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존재의 공포와 부조리를 다룬방식에 대한 책이다. 예술, 특히 아티카 비극*을 통해 그들은 공포스러운 진리를 극복하고 구원을 찾을 수 있었다. 니체에 따르면 이는 혼돈스럽고 무의미한 존재와 대면하는 건전하고 정직한 방법이다. 하지만 불건전하고 부정직한 방법도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아테네를 포함하는 아티카 지방의 시인들이 쓴 비극 니체는 아티카비극이 아폴론적인 힘과 디오니소스적인 힘을 조화시켰다고 말한다. - P92
소크라테스는 세계의 진정한 특성을 인식하고 혼돈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대신, 사유로 세계를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세계를 뜯어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계속해서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론적 낙천주의자의 원형이다. 이론적 낙천주의자는 사물의 본성을 규명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지식과 인식에 만병통치약의 힘을 부여하며, 오류를 악덕 그 자체로 생각하는 사람이다.¹⁰ - P93
여기서 내가 말하려는 건, 나라 없는 도시인 스프링필드에서는 리사가 소크라테스, 즉 이론적 낙천주의자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리사는 자신을 둘러싼 혼돈스럽고 부조리한 세계와 충돌하면서도, 이성이세계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뜯어고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고집스럽게 믿는다. 그는 동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앞장선다. 번스 사장의 탐욕과 호머의 무식을 치료하려 한다. 또 바트에게 덕성을 가르쳐서 그의 성품을 고치려 든다. 말도 할 줄 모르는 매기에게 플래시카드로 ‘credenza‘* 같은 단어를 가르치려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식기 진열장 - P94
하지만 정말 그렇다 할지라도-우리가 리사를 이런 식으로 보는 게옳다고 할지라도, 반항아에 훼방꾼이고 방귀쟁이인 데다 주일학교 교사와 베이비시터의 악몽인 바트를 우리가 존경해야 한다는 뜻이 되는건 아니다. - P95
예술로서의-아니 최소한 만화영화로서의-삶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경험 저편, ‘이‘ 세계의 저편에 무언가가 있다고 믿었을까? 왜 애초에 가상과 실재 사이의 구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을까? 니체의 말에 따르면 그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언어의 구조때문이다. - P95
우리는 "번개가 번쩍인다"라고 말하지만, 여기에 실제로 번개와 번쩍임이라는 두 가지 것이 존재할까?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물을 파악하고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인 듯하다. 경험한 것을 표현하려면주어인 ‘번개‘와 동사인 ‘번쩍이다‘를 사용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는 그만 깜빡 속아 활동의 배후에 그 활동의 실제 원인이 되는 어떤 안정적인 것이 존재한다고 믿게 된다. - P96
니체의 말에 따르면 언어 속에 화석화된 활동하는 자와 활동 사이의 구분은 가상과 실재가 분리되는 시발점이며, 이는 플라톤의 형상/개별자 이원론, 쇼펜하우어의 의지/표상 구분, 기독교의 천상과 지상, 신과 인간의 분리 등으로 변형된다. 니체는 "우리가 문법을 여전히 믿고 있기 때문에 신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 아닌가 염려된다"라고 말한다.¹³ - P97
니체의 이상
다시 말하자면, 초기 저작에서 니체는 세계가 가상과 실재, 의지와 표상으로 분리된다고 보았지만, 곧 혼돈을 가리고 있는 무엇은 없으며행위 뒤에는 아무런 존재도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이 관점을 부인하게된다. 여기에 그의 입장 변화가 낳은 정말로 흥미로운 결과가 있다. 우리가 단지 근원적 의지에서 파생된 현상, 예술적 투영, 진정한 예술가이자 관객인 근원적 일자를 위한 예술작품에 불과하다는 초기의 관점과 반대로, 이제 우리는 의지인 동시에 현상이 된다. 아니, 이 두 가지는 같은 것이 된다.
니체는 예술과 삶의 구분을 없앴다. 그 결과 현존재는 미적 현상으로서, 예술적 노력으로서 정당화되거나 구원받으므로, 니체는 세계의 정당화에 대한 이야기에서 개인적 정당화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간다. - P99
하지만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 P99
이러한 니체의 이상은 위버멘슈Ubermensch, 혹은 초인이라는 인물상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는 자신의 삶으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이 매우 어려운 기획을 성취한 사람, 스스로를 창조한 존재다. 네하마스는 이렇게 말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스스로의 자아를 창조한다는 관념, 혹은 결국 이와 같은 의미인 위버멘슈라는 관념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¹⁹ - P100
물론 악동이 되는 건 재미있지만, 어쩌면 그것 말고도...
니체에 따르면 그들의 공통적 경향은지금 여기에 대한, 즉 흐름에 대한 부인으로서 허구적인 피안, 초월적인 무엇을 상정하여 스스로를 위안하려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플라톤은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개별자들로 이루어진 이 세계 너머에 영원하고 변치 않는 형상의 영역이 있다고 믿는다. 기독교인들은 신과 천국과 영혼을 인간과 지상과 육체의 반대편에 선 다른 무엇으로 상정한다. - P101
이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지만, 니체에 따르면 몇 가지 대단히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문제가 있다. 첫째로, 무한한 가치를 띤 세계를 상정하면 지금 여기에 있는 현실은 가능한 일체의 가치를 박탈당하고 만다. - P101
둘째로, 이런 식의 생각은 개인적인 위안에만 그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피안을 믿는 이들은 남들에게도, 아니 실제로 대개의 경우 온세계에 이 믿음을 강요하고자 했다. - P102
이런 유형의 가치 평가는 단순히 자신들을 구분하고자신들과 닮지 않은 부류를 규정하는 하나의 방법이었을 뿐이다. 니체는 이런 유형의 가치 평가를 ‘주인 도덕‘이라고 지칭하며, 이 최초의 ‘주인들‘ 혹은 ‘귀족들‘을 가차없이 묘사한다. 실로 그들은 강하고 건강하고 능동적이었지만, 또한 교양이 없고 자기성찰이 결여되어있고 폭력적이기도 했다.
그들은 맞서서 자신을 지킬 만큼 강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들 내면에는 귀족들을 향한 깊은 증오와응어리진 원한이 쌓였다. 이 응어리진 분노가 바로 ‘노예 도덕‘의 기원이다. - P103
니체는 이 사람들이 실제로 말 그대로 노예였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약하고 병든 유형의 사람들, 원한에서 도덕이 샘솟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를 쓰고 있다. 이 약자들, ‘노예‘들은 무엇보다도자신이 강해지기를, 건강해지기를, 능동적이 되기를, 획득하고 정복하고 지배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귀족처럼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럴수 없기 때문에 강하고 건강한 이들에게 복수를 가한다. - P104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무리 짓는 동물들이 가장순수한 덕의 광영으로 빛날 때, 예외적인 인간은 악으로 폄하될 수밖에 없다."²⁵ 노예 도덕이 승리를 거두었음은 물론이다. 약자들은 약함, 순종, 연민 등이 미덕이고 힘, 능동, 활력 등은 악덕이라고 우둔한 귀족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 니체에 따르면 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나큰 재앙이었다. - P105
그 결과로 우리는 무가치하고 평가절하된 현존재와 더불어 남겨졌으며, 여기에 새로운 의미와 생명력과 가치를 부여하지 못할 만큼 무기력해졌다. 바로 이것이 니체의 ‘악동‘ 페르소나의 뿌리이자, 그가 전통과 도덕에 반항한 이유다. 또 나약한 우리 대다수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대부분의 것들이 실은 삶을 부정하고 중상하는 위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가 가차 없이 이를 매도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선악의 저편‘으로 가라고, ‘노예의 도덕‘을 넘어서라고, (후략) - P106
바르는 초인인가? 좋다. 니체는 철학계의 악동이고, 바트는 스프링필드의 악동이다. 확실히 바트는 권위에 반항하며 전통적 도덕을 부정했다(혹은, 실제로 받아들인 적이 없다). - P106
오히려 니체의 이상은 예술가, 자신을 극복하고 자신을 창조하는개인, 새로운 가치를 빚어내는 사람, 자기 삶을 가지고 예술작품을 만드는 사람에 더 가깝다. 바트를 이런 식으로 묘사하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 P107
바트의 모든 정체성은 권위에 대한 반항과 거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권위가 사라지면 바트는 자기 정체성을 잃는다. 더는 자기가 누군지도 뭔지도 모르게 된다. 흥미롭게도 리사는 바트에게마음씨 좋은 발매트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보라는 현명한 제안을 한다. - P110
사실 바트는 니체 이후의 세계에서 우리가 딛고 선 위태로운 자리를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 P110
하지만 우리는 다른 세계, 피안을 저버리면서 허무주의로 빠져들 위험이 크다.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허무주의는 진짜세계라는 것이 그야말로 부재하기 때문에 모든 믿음, 무엇이 진짜라는일체의 생각 자체가 필연적으로 거짓이라는 관점일 것이다."³⁰ 계속해서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한 해석이 붕괴했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해석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제 현존재에 의미가 없는 것처럼, 마치 모든 게 헛된 것처럼 보인다.³¹ - P111
바트 새파란 바지를 입은 이 소년은 실은 이런 허무주의적 위험을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덕을 (거의) 갖추지 못했고, 창조적 정신도 없다. 그는 현존재의 혼돈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에 형태를 부여하고 그것으로아름다운 무엇을 빚어내지는 못한다. 그가 혼돈을 수용하고 그것에 대처하는 방식에는 일종의 체념적 정서가 깔려 있다. - P112
스스로를 의식하게 된 희극
하지만 좀더 희망적인 어조로 글을 끝맺어보자. 비록 바트가 우리의 니체적 영웅이 아니며 허무주의적 퇴보의 본보기일지는 몰라도, «심슨 가족이라는 작품 전체는 더 나은 무엇을 보여준다. 현대의 삶과 세계는 고대 그리스 못지않게 혼돈스럽고 부조리하며, 니체의 말대로 고대 그리스 희극이 "부조리의 구토로부터의 예술적 해방"³²이었다면, 어쩌면 «심슨 가족»도 우리에게 그런 기능을 해줄 수있을지 모른다. - P113
5_바트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와 나쁨의 미덕에 관하여
1Friedrich Nietzsche, The Gay Science, trans. Walter Kaufmann (New York:Vintage, 1974), section 1, p. 74(한국어판은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안성찬·홍사현옮김, 즐거운 학문· 메시나에서의 전원시·유고, 책세상, 2005, 「즐거운 학문). - P414
4 Friedrich Nietzsche, The Birth of Tragedy, trans. Walter Kaufmann (NewYork: Vintage, 1967), section 4, p. 45김,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 책세상, 2005, 비극의 탄생]
13 Friedrich Nietzsche, Twilight of the Idols, "Reason in Philosophy," from ThePortable Nietzsche, section 5, p.483.
19 Alexander Nehamas, Nietzsche: Life as Literature, p. 174.
25 Friedrich Nietzsche, Ecce Homo, "Why I Am a Destiny" (New York: Vintage, 1967), section 5, p. 330.
30 The Will to Power, section 15, p. 14. 31, section 55, p. 35.
32 The Birth of Tragedy, section 7, p. 60.
12 스프링필드의 위선
제이슨 홀트
종교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도 그를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이 쇼는 이를테면 실존주의 문학이 철학적인 식으로 ‘철학적‘인것을 의도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괜찮다. 작가나 프로듀서의 의도와상관없이 «심슨 가족》은 철학자를 위한 펄떡이는 먹잇감을, 많은 경우 구체적인 사례의 형태로 풍성하게 제공한다. - P258
물론 이것은 벅찬 질문이다. 나는 이 질문에 답을 제시하려는 것이아니고 하물며 «심슨 가족»에 호소해서 해결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실존주의자들이 그러했듯이, 설령 객관적인 도덕이 부재하더라도 우리가 유의미한 방식으로 가치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지적할 수 있다. - P259
내가 말하고 싶은 주제는 위선hypocrisy이다. «심슨 가족》이 이 도덕적 악덕의 여러 중요한 특징을 예시해줄 뿐만 아니라, 위선에 대한 철학자들의 어떤 말들이 거짓임을 폭로해주기 때문이다. - P260
가치의 진술이란 세상이 어떠한지가 아니라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을 진술하지 않고 행동을 지시한다. 내가 고양이가 매트 위에 있다고 말한 다음 고양이가 매트 위에 없거나 아예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나는 위선자가 아니라 거짓말쟁이거나 재담꾼이거나 기억력이 굉장히 나쁘거나 그 밖의 인지 장애가 있는 것이다. - P261
내 목표는 «심슨 가족을 활용해 위선의 중요한 특징들을 보여주고 위선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나아가 이러한 상대적인 소홀함을 바로잡는 것이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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