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큄비는 단지 위선자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거짓말쟁이에사기꾼이며, 의지가 약하고, 편견이 심하고, 성차별적이고, 잘 속아 넘어가고, 야비하고, 비록 약간의 정치적 감각을 갖추었을지언정 기본적으로 멍청하다. 그의 위선을 이러한 다른 도덕적·성격적·지적 결함과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 P263

정치에서 위선은 필요악이므로 정치인인 큄비 시장을 너무 비난하는 건 심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이는 냉소적인 시각이다.  - P263

사이드쇼밥 옆에 붙여놓으면 그나마 나은 시장 후보이지만, 그의 위선은 사이드쇼 못지않게 지독하다.
정치적 위선은 취임 선서나 좀더 협소하게는) 당의 노선에서 표명하는 내용을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 - P263

번스 사장도 복잡한 사례다. 그는 흔히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갖가지 부도덕을 드러낸다. 이윤 동기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많은 결과자체는 잘못도 아니고 크게 칭찬할 일도 아니지만, 위선적인 홍보는그렇지 않다. 특히 번스는 전혀 환경주의자가 아님에도 자신을 환경주의자로 여러 번이나-포장함으로써, 이러한 위선적 홍보의 예를 그허약한 육체만큼이나 강인한 의지로 보여준다. 물론 이는 훌륭한 홍보이지만 여기서 번스의 위선은 너무나 명백하다. - P264

‘꼬마 리사의 특허 동물 슬러리‘의 예는 더없이 훌륭한 사례로 비칠수 있지만, 여기서의 번스는 자신이 내세운 대외적 겉치레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다른 에피소드에서 그가 보여주는 계산된 홍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 P265

문학적 관점에서 아마도 가장 두드러진 종류의 위선은 종교적 위선일 것이다. 그 가장 유명한 예인 몰리에르의 타르튀프는 한 부유한 가족의 환심을 사기 위해 대단히 경건한 종교인 행세를 한다. 그는 가난의 가치를 내세워 그들의 집에서 공짜로 숙식하며 결국 가족의 모든재산에 대한 통제권을 교묘히 갈취한다. - P265

 그렇다고 러브조이가 (이해가 가는 염세적태도와 다소 체념적인 신앙에도 불구하고) 위선자임을 가리키는 모종의 암시들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 P265

지금까지 스프링필드와 기타 사례들을 통해 위선의 중요한 특징들을 많이 예시했다. 위선적인 사람은 자신이 옹호하는 원칙에 고의로위배되는 행동을 한다. 혹은 번스 사장이 잘하는 것처럼, 자기가 명백히 행한 일을 축소하거나 은밀히 행한 일을 은폐할 목적으로 과거의행동이나 장래에 계획한 행동에 고의로 위배되는 원칙을 주장한다. 여기서의 핵심은 비일관성이다. 흥미롭게도,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심슨 가족 중 누구도 그렇게 위선자는 아니다. - P267

위검 서장의 예

많은 철학자가 위선을 이해하는 방식은 일상의 개념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있다. 이는 이해할 만하고 심지어 자연스러운 착오라도 어찌됐건 착오임에는 분명하며, 위검 서장의 유머러스한 사례들은 그 이유를보여준다.
여기서의 착오는 위선의 본질이 기만적 deceptive 성격을 띠며, 일종의 가식이나 눈속임만으로도 위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² - P267

나는 많은 위선자가 이 설명에 부합하며 위선의 목적이 기만이나 변명일 때가 많다는 데 동의하지만, 이 설명이 위선의 본질을 포착했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의도가 뭔지를 의식적으로알지 못할 때도 있고, 우리 자신이 겉으로 내세우는 가치를 망각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다. - P268

현대적 개념의 위선자는 거짓 전달할 내면의 가치를 품고 있을 필요도 없다. 따라서 위선이 본질적으로 기만이라는 관념은 시대착오이자,
이제는 통용되지 않는 말뜻으로의 퇴행이다. 현재의 언어 용법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상식에서 불필요하게 벗어나는 일이다.
또 다른 이유는, 역사적·문학적으로 두드러진 특정 사례들이 지금은 통용되지 않는 위선의 옛 말뜻을 외견상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 P269

위선의 요점이 기만에 있다면, 무익한 위선은 기만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일상적인 개념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지능이 떨어지고 남을 기만하려는 목적이 작용하지 않는 사례가 필요하다. «심슨》 가족은 위검 서장의 뚱뚱한 모습을 통해 그 이상적인 사례를 제공한다. 위검 서장의 행동은 그가 스프링필드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내세우는 원칙을 위반한다. - P270

 경찰들이 한 벌씩 챙긴 청바지를 입으며 지퍼를 올리고 서장이 "보기 좋은데 제군들!"이라고 고전적인 클로징 멘트를 날릴 때 그의 자가당착은 중인환시리에 훤히 펼쳐진다. 여기에 기만은 없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굳이 기만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위검은 별로 그럴 생각도 없다.
위검의 벌거벗은 위선을 보면, 그의 악덕은 좀더 지능적인 사례들과는 달리 일상적으로 이해되는 개념과 훨씬 더 잘 맞아떨어짐을 알수 있다. - P273

스프링필드의 위선이 그토록 웃기는 건 그 위선이 (좀더 지적인 사례들과는 달리) 무익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이걸 동시대 문화에 대한정교한 탐구로 인정하지만, 실은 독한 약에 더 가깝다. 웃느라 바빠서그 쓴맛을 거의 느낄 수는 없지만. - P273

쉿!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혁은 한 노예의 탈출을 교사하는데, 그의 행동은 칭찬할 만하지만 그는 이것이 비도덕적인 행동이라고 믿는다. 좀더 대규모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신들러는 자신을 나치로 여기면서도 속임수와 기타 술책을 동원하여 많은 유대인의 목숨을 구한다. 핀과 신들러의 사례처럼 위선이 가치 있는 도덕적 목표를 위해 필요한 수단일 때 그 위선은 칭찬할만하다. - P274

바트가 "분필을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반성문을 칠판에 반복해서 적는 장면은(<내 아들이 천재라고>) 공감은 못하더라도 용납할 만한 위선의 예로 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건 벌이고, 분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걸 배우기 위해 분필을 낭비하는일에는 명백한 모순이 존재한다.  - P274

호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여기서 건드리지 않은 먹음직스러운철학적 이슈가 많이 있다. 그래도 몇 가지 간단한 언급을 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자신이 옹호하는 이상에 못 미친다면 위선자가 되는가? - P276

. 위선은 항상 나쁜가?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거나, 도덕적 행동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 아니라면 그러하다. 진실성integrity은 위선의 반대인가? - P278

(전략),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위선자로서 진실성을 띠는 일도 가능하다.⁴ 그렇다면 다시금 위선은 무엇인가? 형식적 악덕, 의도적 행동과 암묵적 혹은 명시적으로 신봉하는 가치 사이의 의도된 혹은 의도치 않은 불일치. 음...... 먹음직스럽군.⁵ - P276

12. 스프링필드의 위선

2 이 주제에 의한 변주는 다음의 문헌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Gilbert Ryle,
The Concept of Mind (London: Hutchinson, 1949), p. 173, Jonathan Robinson,
Duty and Hypocrisy in Hegel‘s Phenomenology of Mind (Toronto: University ofToronto Press, 1977), p. 116, Béla Szabados, "Hypocrisy," Canadian Journalof Philosophy 9 (1979), p. 197, Eva Kittay, "On Hypocrisy," Metaphilosophy13 (1982), p. 278, Judith Shklar, Ordinary Vices (1984), p. 47(1012디스 슈클라 지음, 사공일 옮김, 『일상의 악덕』, 나남출판, 2011), Jay Newman,
Fanatics and Hypocrites (Buffalo: Prometheus Books, 1986), p. 109, ChristineMcKinnon, "Hypocrisy, With a Note on Integrity," American PhilosophicalQuarterly 28 (1991), p. 321, Ruth Grant, Hypocrisy and Integrity (Chicago: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7), p. 67, Béla Szabados and Eldon Soifer,
"Hypocrisy After Aristotle," Dialogue 37 (1998), p. 563. 이상은 완정한 목록이 아니라 대표적인 글 몇 개만 추린 것이다. - P427

4 진실성이 항상 선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하라,
Robert A. Epperson, "Seinfeld and the Moral Life," in William Irwin, ed.,
Seinfeld and Philosophy. A Book about Everything and Nothing (La Salle: Open Court, 2000), pp. 165-166. - P427


5 초고를 읽고 논평해준 론다 마텐스와 편집자들께 감사드린다. 또한 함께 활발한 토론을 나누고 바 이탈리아‘에 잠입해준 칼 매시선과 애덤 멀러에게 뒤늦게나마 감사를 표한다. - P428

4. 마지와 훌륭한 인간의 기준
제럴드 J. 어리언, 조지프 A. 제커디

 바트는 자기가 옳고 그름의 차이를 모른다는 걸 인정하고 악마와 서로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며 거래하는 사이다. 호머는 이기적이고 충동적인 계획에 줄줄이 뛰어들며, 심지어 주일날 교회를 빠지고 미식축구를 보는 일의 가치를 하느님에게 납득시키려 들기까지 한다. 한편 플랜더스는 도덕과 윤리에 대한 것부터 패션과 아침식사 시리얼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직면하는 모든 딜레마를종교적 권위와 성서에 의지하여 해결한다. - P70

 마지와 플랜더스가 다른 점은,
플랜더스는 그렇게 하는 게 실제로 자기한테 옳은지 여부와 상관없이 종교가 명하는 대로 따른다는 데 있다. 마지도 신앙심이 있지만 그가 품위 있고 합리적인 사람이 할 만한 일만을 하게끔 이끌어주는 건그의 잘 발달된 양심이며 심지어 그것이 종교적 권위의 지침과 충돌할 때도 있다. - P71

(전략). 따라서, 바니 검블이 술이여 안녕에서 이따금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였고 <스프링필드 영화제>에서 예술작품을 만들어냈으며 <우주비행사 호머>에서 우주비행사 훈련을 받기도 했지만 알코올의존증 환자임에는 변함이 없는 것처럼, 마지의 전반적 행동 패턴 또한 아리스토텔레스 도덕철학의 특별히 생생한 입뮨서 구실을 할 수 있다.² - P71

덕과 성품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이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공헌 중 하나다. 이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덕한 성격 특질의 긴 목록을 작성했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덕을 두 극단 사이의 중용으로서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게다가 그는 유덕한 삶을 정당화하려 시도하며 나아가 자신의 삶을 더 유덕하게 만드는 데 관심 있는 이들에게 제안을 하기까지 한다. - P72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열거한 많은 덕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용기 2. 절제 3. 통 큼(특히 대규모의 지출과 관련하여) 4. 자신의 가치에 대한 적절한 자부심 5. 온유함 6. 우애 7.
진실성 8. 재치 9. 수치심.⁴ 물론 이것이 목록의 전부는 아니며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철학자들도 여기에 다른 덕들을 추가했지만, 이것으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좋은 성품에 필요하다고 생각한 성격 특질의 종류를 잠정정으로 파악하시에는 부족함이 없다. - P72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열거하면서, 각각의 덕을 지나침과 모자람이라는 두 악덕한 극단 사이의 중간 또는 균형으로 설명했다.⁵ 일례로 유덕한 용기는 호머의 앞뒤 재지 않는 무모함과 그의 악덕한 비겁함사이 어딘가에 있다. 마찬가지로 유덕하게 자제하는 사람은 바니의 방종도, 플랜더스의 육체적 쾌락에 대한 무관심도 아닌 그 둘 사이의 무언가를 지녔다. - P73

절제에 관해 말하자면 마지는 방종하기보다 검소한 경향을 보인다.
툭하면 실직하고 유치장에 갇히고 4차원으로 빠져버리는 남편을 둔아내로서 마지의 경제적 여력은 빠듯한 편이다. 그는 할인 상품이 있을 만한 곳에서만 쇼핑하고, <심슨 가족, 뉴욕에 가다>에서는 "내가 이미 구두 한 켤레를 가지고 있지만 않았어도"라고 살짝 한탄하면서도 불필요한 새 구두에 가족의 현금을 낭비하지 않으려 한다. - P74

심슨 가족의 널뛰는 가계소득을 감안하면 마지가 가족의 돈을 자선기관에 기부하기를 주저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심지어 <바트의 우상>에서는 리사가 상속받은 100달러를 공영방송국에 기부하는 것을 ‘낭비‘라며 불허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썼듯이 "가진 재산이 적은 사람은 [남보다] 적게 주어도 더 후할 수 있"으며, 마지는 가족의 불규칙한 재정 상황이 허락하는 선에서는 후하다고 볼 수 있다.⁷ - P75

덕 있는 삶을 정당화하기

덕은 좀처럼 달성하기 힘든 자질일 수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찾는 이에게 상당한 보상이 주어진다고 믿는다. 이는 덕이 성공한 삶의 본질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 P76

 아리스토텔레스는 호머가 삶의 그토록 많은 부분을 할애해가며 좇는 일종의 단순한 육체적 만족이 인간 삶의 목표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염두에 둔 것은 좀더 장기적인 행복 내지는 전반적인 번성이다. 테런스 어윈은 ‘잘 행하는doing well‘을 ‘에우다이모니아‘의 좀더 나은 번역어로 제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종류의 행복을 인간 삶의 궁극적 목표로 확립하면서, 덕이 바람직한 것은 덕을 지닌 사람의 장기적 행복을 증진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 P77

 확실히 마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자와 자녀들의 안녕이며, 그것은 실로 마지가 그 자체로서 중시하는가치다. 마지의 말을 빌리면, "내가 중독된 게 있다면 그건 아들딸에 대한 사랑 Love for my Son and Daughters뿐이에요. 그래요, 내게 필요한 건약간의 LSD *뿐이라고요(심슨 가족의 위기)." 따라서 마지는 가족의행복을 통해 자신의 에우다이모니아를 성취한다. 빨래를 하고, 미트로프를 사람 모양으로 빚어서 굽고(리사, 워싱턴에 가다), 집에서 제작한 자동차에 안전벨트를 뜨개질해서 다는 등의 심슨 가족, 뉴욕에 가다) 단순한 살림 과제도 그에게는 달갑잖은 집안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일들은 마지가 그토록 아끼는 가족의 좋음에 기여하기 때문에 그에게 행복을 준다.¹¹

*LSD는 리세르그산 디에틸아마이드 Lysergic Acid Diethylamide의 준말로 맥각균에서 합성한 무색 무취의 환각제를 이르기도 한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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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소리지?

따사로운 오후, 이곳은 어반시티의 작은 휴양도시라 불리는 6구역.
6구역에서도 이름난 골드코스트 해변에서 사람들이 한가로이 휴식을취하고 있다. 골드코스트 해변은 인공적으로 기온과 습도를 따뜻하게 통제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휴양을 즐기고자 하는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곳이다. - P75

준은 너츠가 짖는 쪽을 유심히 바라보고는 스마트워치에서 다타이스와 와이드를 소환했다.
"준! 모처럼 쉬러 6구역까지 왔는데 무슨 일이야?"
"다타이스! 지금 어디선가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는데…아마도 너츠가 짖고 있는 쪽인 것 같아. 네 센서로 소리 확인이 가능해?" - P76

튜브가 노인이 편안하게 떠 있을 수 있도록 몸을 잡아주었고, 상황이 안정되자 스피드가 자신의 몸체 위로 노인을 태우고 돌아왔다. 그 모습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사람들은 안도와 기쁨의 환호를 질렀다.
"콜록콜록. 날 구해줘서 고맙네."
할아버지가 어쩔 줄 모르면서 고마움을 표현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으세요?" - P77

노인이 준과 AI 히어로 일행들을 쳐다보며 고개를 숙였다.
"다행이군요. 안전 감시 드론의 신호를 받고 달려왔는데... 조금만 늦었더라도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어요."
"저는 어반시티 소년 탐정 준입니다. 저와 함께 하는 AI 히어로들이 위험을 잘 감지해서 사람이 물에 빠진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어요."
준의 말을 들은 안전요원은 놀란 듯 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 P78

"참, 인명구조 로봇의 안면인식 기능을 이용하면 구조자의 신상에 대해서 알 수 있어요. 할아버지 잠시 여기 서보시겠어요?"
안전요원이 손목의 스마트 밴드로 할아버지의 얼굴을 스캔한다.
"삐--- 신원 파악 불가. 신원 파악 불가."
"응? 또 오작동이네. 요즘 따라 자주 그러는 것 같은데 왜 이러지?" - P79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사람들이 마커스 할아버지와 직원들에게 따지고 있어."
와이드가 커다란 눈을 굴리며 상황을 전달해주었다.
"아니 도대체 왜 입장이 안 된다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손님! 그게… 저희도 알아보고 있습니다만, AI 키오스크 로봇이 예약자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분명히 저는 예약을 했다고요. 여기 제게 온 예약 메시지를 보면 아시잖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AI 키오스크 로봇의 이미지 인식이 현재 먹통이 된상태입니다. 그래서 예약자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예요." - P81

소피 상식 팁!

키오스크: 신문, 담배 등을 파는 작은 매점. 요즘은 가게나 공공장소에 설치된 터치스크린 방식의 정보전달 시스템인 무인 단말기를 가리켜. - P81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예약확인이 안 되어도 현장에서 확인하고 바로 식사하는 게 가능했을 텐데… 모든 것이 디지털로 기록되니 편리한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어.‘
"그런데 AI 키오스크 로봇들이 왜 사람들을 못 알아보는 거지?"
준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 P81

"... 준!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해. AI 키오스크 로봇들이 사람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
"그렇다면 지문 같은 다른 생체인식도 안 된다는 거네?!"
"맞아"
‘왜 갑자기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거지...?‘
준은 그 이유가 뭘지 매우 궁금해졌다. 이내 습관처럼 파란노트에다 펜으로 이 상황들을 정리해보았다. - P83

지니어스 IT 팁!

생체인식: 사람마다 다른 지문, 홍채, 땀샘구조, 혈관 등 생체정보를 정보화해서 마치 암호를 입력하듯 인증하는 방식을 가리켜.

클라우드: 영어로 ‘구름‘이란 뜻으로, 데이터를 인터넷과 연결된 중앙컴퓨터에 저장해서 인터넷에 접속하기만하면 언제 어디서든 데이터를 이용할수 있게 만든 기술이야. - P83

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

"아, 참! 내 정신 좀 보게. 간단히 얘기할게. 어반시티가 세워지고 나서는알다시피 지폐나 동전이 모두 없어졌어. 대신 AI 인식 기술을 활용한 전자결제 시스템으로 모두 바뀌었지."
"네, 그렇죠."
바토우 형사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AI가 우리 생활 속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상황 중 하나가 예약한 손님이 식당에 입장할 때 이미지나 생체인식을 통해서 예약자를 확인하는것과 같은 방식으로 비용을 자동 결제하는 것이지." - P84

"그나마 천만다행이네요. 어반시티 내의 AI 키오스크 로봇들은 클라우드에 연결된 AI 시스템의 기능을 그대로 가져와서 쓰고 있어요. 즉, 이건 단순히 개별 단말기들의 고장이 아니라, 클라우드 상의 AI 시스템이 작동하는 과정 중에 문제가 생긴 거로 추정할 수 있어요. 지금은 AI 키오스크 로봇들만 먹통이지만 이대로 방치하면 ・・・ 모든 AI 로봇에게 인식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서둘러야 해요." - P85

준은 잠시 말을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바토우를 향했다.
"형사님!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현장 조사를 더 하고 가야 할 것같아요."
"알았어."
"소피, 지니어스! 나 좀 도와줘."
준의 호출에 소피와 지니어스가 등장했다.
"준! 혼자만 맛있는 것 먹고! 힘든 일할 때만 부르기냐?"
쾌활한 소피가 준을 향해 익살스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었다. - P86

바토우 형사는 민망한지 유난히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할아버지! 키오스크 AI 로봇은 언제부터예약자를 인식하지 못하게 된 거예요?"
"내가 우리 홀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최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된뒤 문제가 생겼다고 하더구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된 게 언제쯤인데요?"
"지난주에 업데이트되었는데 자꾸 예약자들의 얼굴 인식과 결제가 되지 않아서 당황했단다. (후략)." - P88

바토우 형사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지니어스! 이번 AI 업데이트 내역을 좀 확인해줄래?"
준의 물음에 지니어스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방금 바로 확인을 했어. 그런데 여기를 좀 봐! 이 부분에좀 특이한 내용이 있어." - P89

지니어스IT팁!

GPU 그래픽 처리 장치(graphics processing unit): 컴퓨터에서 그래픽 연산을 빠르게 처리한 값을 모니터로 출력해주는 장치야. - P89

"아! 준. AI가 아무리 똑똑해도 기본적으로는 컴퓨터야. 컴퓨커에 인간의 지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넣어준 것이지. 결국,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컴퓨터 안에서는 연산이 계속 이뤄지고 있어. 쉬지 않고계속 작동하는 컴퓨터를 만져본 적이 있니?"
"물론이죠. 뜨거워지죠! 그래서 냉각 팬이 장착되어서 기기에서 발생한 열을 식혀주죠." - P91

"박사님! 이번 AI 업데이트는 어찌 보면 좋은 의도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심쩍은 부분들이 보여요."
"아... 그러니? 한번 주요 내용을 보여줄 수 있겠어?"
준이 루카스 박사에게 주요 내용을 전송해주었다. 루카스 박사는 내용을 천천히 살펴보고는 입을 열었다.
"GPU의 기능을 제한한다고...? 이거 성능이 저하될 수밖에 없겠는걸?!" - P91

‘그래! AI 로봇들의 이미지 인식 성능이 떨어지게 된 건・・・ 이번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에 포함된 절전 최적화 서비스 때문이야. AI의 절전을 위해GPU의 기능이 일부 제한되었고... 그래서 AI 키오스크 로봇들의 이미지 인식에 문제가 발생한 거야. 문제가 발생해서 사람들에게 문의가 들어오면GPU 교체 주기가 지났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하겠지. 이렇게 됐을 때, 결국가장 이득을 보는 쪽은 누구일까..?‘ - P92

"준! 에너지가 여전히 넘쳐서 보기 좋아. 그래,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보면・・・ 일단 AI 키오스크 로봇들의 이미지 인식 기능 저하는 GPU 기능의 일부 제한 때문인 것이 맞아. AI가 데이터를 처리하거나 학습해서 판단까지하는 모든 과정은 병렬 연산이라 할 수 있는데 GPU는 이 병렬 연산을 직접담당하는 부품이거든..."
"병렬 연산이라 좀 어려운데요? 컴퓨터에는 CPU라고 하는 것도 있다들었는데… 이름이 비슷한데 어떻게 다른건가요?" - P93

"일단 CPU는 중앙처리장치라고도 부르고, 컴퓨터의 두뇌를 담당해. 그래픽처리장치라고 불리는 GPU는 CPU와는 달리 단독으로는 아무것도 처리할 수 없어. 즉, GPU를 제어하는 건 여전히 CPU의 역할이라 볼 수 있지,
CPU는 컴퓨터의 두뇌로 태어났기 때문에 복잡한 순서를 가진 알고리즘을 가진 프로그램을 순서대로 하나씩 작동시키는데 아주 좋은 성능을 보인단다. 반면 GPU는 비디오나 영상 등의 그래픽을 처리하는 용도로 탄생했기때문에 비슷하면서도 반복적인 대량의 연산을 수행하는데 좋은 성능을 보여. 왜냐하면, GPU는 나눠서 함께 일을 하거든." - P94

"고마워. 지니어스, 특히 여기 알렉스 크리체프스키는 딥러닝의 창시자라고도 불리는 토론토 대학의 제프리 힌튼 교수와 함께 딥러닝을 연구실 밖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한 엔지니어이지. 현재 우리가 이룩한 어반시티도 초창기 이분들의 노력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이분들께 큰 빚을 지고있는 셈이야." - P95

지니어스 IT 팁!

딥러닝: 인간의 뇌 속 신경망을 본뜬 인공 신경망을 활용하는 머신러닝의한 방법을 뜻해. - P95

"박사님, 그런데 자이로스콥에서 정말 절전을 위해서 이런 것들을 감수하는 걸까요?"
"성능을 떨어뜨리면 일정 부분에서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도 있겠지.
이건… 내가 발견했다고 했던 재밌는 기사야. 한번 봐봐." - P96

"박사님! 수상한 느낌이 나지 않으세요? GPU의 교체 주기를 짧게 2년으로 권한다는 내용이 계속 찝찝했었는데… 이 기사를 보니까 더더욱.. 검은 속이 보이네요."
루카스 박사는 자신의 연구실 창밖을 바라보다 준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었다.
"준, 네 생각처럼… 어쩌면 GPU의 교체 주기를 짧게 변경해서 GPU의 수요를 일부러 늘리고, 새로 개발한 GPU 매출을 올리려고 했을지도 몰라." - P97

나무보다는 숲을 먼저 봐야 해

"자이로스콥의 자이로 회장이 이 모든 일을 꾸민 게 분명해요." - P98


"일단 고장 난 기기들이 제대로 잘 작동하도록 고치는 게 급선무겠어요."
"박사님! 다행히 지금은 AI 키오스크 로봇들의 이미지 인식 기능에만 문제가 발생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 두면 모든 AI 로봇들에게 동일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서둘러야 해요." - P99

준이 워치를 터치하자, AI 히어로들을 통솔하는 최고의 AI인 빈센트 특유의 느릿한 말투가 흘러나온다.
"나는 모든 것을 보고 있다. 지금 자이로스콥의 자이로 회장이 이 도시를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
"뭐?! 빈센트! 그게 사실이야? 지금 자이로 회장의 위치는 어디야?"
"나는… 모든 것을 보고 있지만, 모든 것을 다 알려줄 수는 없다.... 이것은 개인정보이기 때문이다." - P100

"이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자이로를 찾아야 하는데 꼼꼼하게 보지 말라니... 처음에는 무슨 얘기인지 이해가 잘 안되었는데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큰 눈을 가진 와이드가 준의 말에 동의해주었다.
"좋아! 그럼 자이로 회장의 인상착의를 다시 한번 확인해보자고. 와이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자이로회장의 특징을 뽑아봐 줘!" - P103

바토우가 자이로 회장과 실랑이를 벌이며 시간을 버는 사이, 경찰국에서는 자이로 회장의 출국을 금지하고, 긴급 체포 영장을 청구하였다. 바토우 형사가 노련한 솜씨로 영장을 홀로그램으로 자이로의 눈앞에 갖다 대자, 자이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다.
"오늘 융숭한 대접은 잘 받았으니... 다음에 어디 한번 지켜보도록 합시다. 바토우 형사님, 꼬마 탐정님, 루카스 박사님 그리고・・・ AI 히어로 친구들?!" - P104

뭣 모르고 덤벼라 정신

준이 홀로그램의 2번을 가리키며 다급하게 얘기했다.
‘AI가 이미지를 인식하는 원리를 알아야 해. 그래야 기기들을 고칠 수있어?
순간 준은 자신이 루카스 박사에게 AI가 이미지를 인식하는 원리에 대해 질문했던 것이 기억났다. - P105

"준! AI가 이미지를 인식하는 원리를 다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내가 원한 결과를 내줄 수 있는도구들이 세상에는 이미 있어! 지금 필요한 건 내가 다 이해하고, 문제를해결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뭣 모르고 덤벼라> 라는 정신이야!"
"박사님 말씀은... AI가 이미지를 인식하는 원리를 잘 알지 못해도 도구들을 활용해 문제를 일단 해결해내는 게 먼저란 거죠?"
루카스 박사는 대답 대신 준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 P106

"그렇다면 코딩을 해야겠네요... 저는 텍스트 코딩 경험이 없으니,
블록 코딩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루카스 박사는 준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미지를 인식하는 원리가 담긴 블록을 제공하는 엠블록(mBlock)을 활용해 보도록 하자. 준!" - P106

지니어스 IT 팁!

텍스트 코딩, 블록 코딩: 컴퓨터가이해할 수 있는 언어인 코드를 문자로 입력하는 방식을 텍스트 코딩이라고하고, 이와는 달리 장난감 블록을 조립하듯, 블록을 조합해서 코드를 작성하는 방식을 블록 코딩이라고 해. - P106

39차 AI 업데이트 그리고 풀려난 자이로

자이로스콥의 절전 최적화 모드 정책의 내막을 알게 된 어반시티 시민들은 분노하며, 38차 AI 업데이트에 대한 철회를 요구했다. 자이로스콥은여론이 나빠지자, 사건 발생 4일 만에 39차 AI 업데이트를 실시하였다. 업데이트 내역에는 논란이 되었던 절전 최적화 서비스 모드에 관한 내용과함께 GPU 기능의 일부 제한에 관한 내용, GPU 교체 권장 주기 2년 변동에관한 내용 등이 삭제되었다. - P108

루카스 박사의 일•타•강•사

사람에게는 눈에서 얻은 정보를 처리하고 해석해서 우리 눈에 이미지로 보여주는 뇌가 있지요.
컴퓨터에게 보는 것을 가르치려면 뇌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필요해요. 이를 위해CNN이라 불리는 알고리즘이 탄생합니다. CNN은 Convolutional Neural Network의 줄임말로우리말로는 합성곱 신경망이에요. - P109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도 이런 비슷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시각 정보가우리 눈에 있는 망막으로 들어와요. 망막에는 여러 성분이 있는데 이 성분들이 대뇌의 표면을감싼 신경 세포들을 자극하게 됩니다. 뇌는 이런 자극 신호를 분석해서 정보를 합칩니다. 이 합친 결과가 우리 눈에 맺히게 되는 거죠. (중략)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도 무언가를 볼 때, 일단 쪼개서 본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전체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죠. 먼저 쪼개서 특징을 파악한 다음, 쪼개서 파악한 특징들을 다시 합칩니다.
그 합친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이죠. - P110

준은 예약시스템을 어떻게 복구시켰을까?

1. 엠블록 사이트(https://mblock.makeblock.com/en-us/)에 접속하여 로그인하여 <Code with Blocks> 클릭하기 (로그인해야 이용 가능) - P111

고정관념은 언제나 위험하다

준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2년 전, 준이 맡았던 첫 번째 사건을 떠올렸다. 하마터면 만난 지 얼마 안 된 AI 히어로들과 영영 헤어질 뻔한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어두컴컴한 공장,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안드로이드 로봇. 다시 떠올리는 기억의 아찔함에 준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 P116

"루카스 박사님, 2년 전 벌어진 자유로 사건과 요즘 벌어지는 일들이 왜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 P116

화염에 휩싸인 위기의 어반시티

 정확하게 이틀 뒤 3km 떨어진 자유 6로에서 흡사한 폭발이 일어났다. 범인은 허술한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건을 다시 일으켰으며, 시민들은 언제 또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어반시티를 향한 알 수 없는 테러‘ 라는 제목의 뉴스가 보도되었다. 경찰은 범인에 대한 단서는 없지만, 비슷한 사건이 연속하여 발생하자 누군가가 벌인 분명한 테러로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 P117

누구에게나 새내기 시절이 있지

"됐어. 이제 준, 너도 CCTV를 확인할 수 있을 거야."
영상의 접속 권한을 받은 준은 증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준의 스마트워치 위에 홀로그램 영상이 떠올랐고,
준은 날렵한 손놀림으로 조작하기 시작했다. 준이 반시계방향으로 손가락을 움직이자, CCTV에 찍힌 영상이 거꾸로 흐르며 폭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 P119

수면 위로 드러나는 어둠

준은 와이드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홀로그램의 자료를 살펴보았다. 슥슥 넘기며 살펴보는 용의자들… 사건이 있기 전, 24시간 이내에 자유 5로의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린 사람들은 10명이다. 준은 자유 6로의 쓰레기통에 접촉한 사람의 정보도 살피기 시작했다. 4명의 사람이 검색되었다.
"이 사람들은 이미 경찰에서도 조사 중이겠지? 자유 5로와 자유 6로의쓰레기통을 동시에 접촉했던 사람이 있다면 분명 범인일 텐데, 겹치는 사람이 없네"
"맞아, 이미 경찰에서도 이 사람들은 용의자 목록에 올려놓고 조사 중이라고 해. 하지만 아직 별다른 성과는 없는 것 같아." - P121

 빈센트는 스마트 시티의 눈이자, 귀나 마찬가지인 AI이다. 조금 전에 나눈 와이드와의 대화조차도 빈센트는 알고 있었다.
"빈센트, 혹시 다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너도 모르는 게 있는거 아냐?" - P121

"준! 뭐 좀 알아낸 게 있어?"
"네, 쓰레기통에 접촉한 사람 중에 범인이 있을 거라는 가정 자체가 틀렸어요. 예를 들어 애초에 폭탄이 쓰레기통에 들어 있었다면 어떨까요?"
"음... 그렇다는 말은?"
"매일 쓰레기통을 수거하는 일은 누가 하죠?"
"요즘은 사람이 하지 않고 안드로이드가 하지. 오호라・・・ 그렇구나! 안드로이드가 매일 새벽에 쓰레기를 수거하면서 폭탄을 설치한 거로군!" - P122

소년 탐정, 호랑이 소굴로 들어가다

준은 결정적 증거를 찾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위험을 무릅쓰고, 스피드와 먼저 가서 범인을 잡기로 한 것이다.
클리너 안드로이드 공장.
이 도시의 모든 쓰레기 청소 안드로이드는 이곳에 모인다. 공장은 이미 오래전에 자동화되어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유일한 자연적 존재는 준뿐이었다. - P123

준은 급히 문을 향해 되돌아갔지만, 이미 문은 굳게 닫힌 상태였다.
"오호, 날 잡으려 하다니…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군... 미안하지만 난 너에게 얌전히 잡혀줄 생각이 없어. 네가 오기 전에 이미 네 얼굴을 학습한상태이지. 너를 발견한 즉시 해치울 거다."
무감각하고 감정이 전혀 실려있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여기에 온 것을 어떻게 미리 알았을까? 너무 성급했어. 아냐, 자책하지 말자. 지금은 실수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 어떻게 이 위기를 빠져나갈까를 생각해야 해.‘ - P124

준이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A702의 습격을 피해 숨을 곳이 없어 보였다.
어설프게 안드로이드 사이에 숨어있다가 자칫 들키는 순간, 무거운 무쇠덩어리가 휘두르는 주먹에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준의 마음속에는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을 A702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슴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고 이제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호흡이 가빠졌다. - P125

‘분명 안드로이드는 내 얼굴 사진을 입수해 학습했을 거야.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학습해서 분류해낼 수 있다면 분명 약점이 있어...
그래! 내 얼굴 사진을 모든 안드로이드에 입력하자. 그러면 100대 모두 내 얼굴을 가진 안드로이드로 설정이 되겠지.‘ - P126

‘똑같은 얼굴 설정을 여러 대의 안드로이드에 동시에 입력하면 해킹인줄 알고 자동으로 막는구나. 어쩐지 쉽게 풀린다 했더니만.‘
준의 마음속에는 실망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계속 좌절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냐, 똑같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보안을 통과할 수 있을 거야. 비슷하지만 아주 조금씩만 다른 얼굴을 전송한다면 해킹으로 의심받지 않을 수도 있어. 가만. 어떻게 비슷한 사진을 새로 만들어 낸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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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은 자에 대한 응징

가장 빈번히 거론되는 대중문화의 소재이자 흔히 떠올리는 시체 발굴의 중심 대상은 아마도 뱀파이어일 것이다. 
(중략)
사실 드라큘라 백작이 동유럽권을 배경으로 탄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8세기 초 세르비아와 왈라키아 일부 지역이 오스트리아에 합병되면서 해당 지역에 새롭게 파견된 담당 관리들은, 유해를 발굴해 예리한 나무 말뚝으로 찔러보는 기괴하고도 거북살스러운 지역 관습을 접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 P66

 이처럼 섬뜩한 일련의 의식에 겁을 집어먹은 담당 관리는 상관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혹여 착오가 발생한다고 해도 본인의 책임 사항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고 날뛴 저 폭도들을 탓해야할 일입니다."³⁶

36 뱀파이어와 매장, 그리고 죽음: 민속과 생활 (Vampires, Burial and Death: Folklore and Reality), 폴 바버 저, pp.309 - P68

실제로 특이한 환경 조건이 한 가지만 존재하더라도 부패는 지체될 수있다. 사체의 부패 정도는 공기, 습도, 온도, 미생물과 곤충의 존재 여부에 따라 달라질 뿐만 아니라 매장되는 장소의 온도가 매우 낮은 경우 등 기타 변수도 작용한다. - P68

플로고요히츠의 사례 역시 이 경우에 해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겹의 목판과 함석으로 제작된 관을 점토에 묻거나 시신을 석회로 덮어두면(생석회와 달리) 시신의 영구 보존이 가능하다. 플로고요히츠의 피부가 생장하는 듯 보이는 현상 역시 뱀파이어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매도될 필요는 없었다. - P68

키실로바 주민들이 ‘생존‘의 징표로 오인한 또 다른 현상 중 시신의 손톱이 자라나고 ‘새살‘이 돋는 듯한 모습 역시 탈수로 유발되는 수축 때문에 느껴지는 환상에 불과하다. 정상적 부패 과정의 일부로 피부 상피가 분리되면 아래쪽의 불그스름한 속살이 드러난다.  - P69

플로고요히츠가 뱀파이어로 탈바꿈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또 다른 증거로 간주된 발기 현상은 박테리아가 발생시키는 가스가 활성화됨에 따라 성기가 비대하게 부풀어 오른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 P69

그러나 이러한 사례가 18세기 유럽 슬라브족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다. 뱀파이어 발굴과 관련된 내용이 마지막으로 기록된 시기는 20세기 직전으로, 뉴욕과 고작 240킬로미터 떨어진 로드아일랜드 엑서터 Exeter 지역이 그 배경이다. - P70

이후 엑서터에서 일어난 일은 170여 년 전 키실로바 마을에서 벌어진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체스트넛 힐 Chestnut Hill 묘지 지하 납골당에 머시가 잠시 매장된 후(묘터의 땅이 너무 얼어 있어서 그녀를 묻어두기에 적합하지 않았으므로)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조지 브라운은 몇몇 지인을 대동하고 묘지로 찾아가 딸의 유해를 발굴했다. 당시, 냉동고처럼 얼어붙은납골당 내부 조건을 고려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부패의 흔적을 찾아볼 수없을 정도로 멀쩡한 머시의 시신은 뱀파이어에 관한 소문을 사실로 증명하는 듯했다. - P70

유럽 이주민들 사이에 전해오는 설에 따르면 머시처럼사후에 심장이나 간에서 혈액이 발견되면 해당 장기를 태워 환자(본 사례의 경우 에드윈)에게 먹임으로써 뱀파이어를 무력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믿음에 따르면 에드윈은 목숨을 부지했어야 하지만, 이 청년은누이의 유골을 태워 마셨는데도 두 달 만에 사망했고 묘지에서 자행된 이같은 만행은 모두 헛된 소동인 듯했다. - P71

진상 파악

. 근대에 들어 시신은 장례 후 수년이 지나 흔하게 발굴되기도 한다. 대개 관 속에 안치된 이가 묘석에 기재된 실제 사망자인지 확인하기위함이다.
인간은 본래부터 베일에 싸인 수수께끼를 그냥 내버려두지 못한다. 고인이 된 영웅이나 정치가, 범법자 혹은 성인이라면 으레 사망의 경위나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에 관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발굴되어 엑스레이, DNA 검사, CAT 스캔 및 각종 독극물 검사가 잇따르는 이른바 ‘CSI 조사‘를 거치게 된다. - P71

 미국 대통령도 이런 첨단 조사를 피하지 못했다. 취임한 지 16개월 만에 집무실에서 사망한 제12대 대통령 재커리 테일러Zachary Taylor는 독극물 테스트를 위해 1991년 시신이 발굴되었다. 조사 결과 거친 풍파를 이겨낸 준비된 장군‘이라 불리던 그의 사망 원인은 단순한 위장 질환으로 판명되었다.

2004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착수된 메디치가 Medici 49인의 유해 발굴작업은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야심차게 진행되었다. 각국 고생물병리학자와 인류학자, 고고학자, 사학자들이 산 로렌초 교회 묘지로 몰려들어 발굴작업에 참여했다. 발굴단은 당시의 생활상과 사인 규명을 위해 대공 8인을 비롯한 시신 여러 구를 대상으로 다양한 첨단 수사를 진행했다. - P72

어린 아이의 유해 8구가 발견됨에 따라 작업은 난항을 겪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부 관 속에 있는 시신과 묘석에 새겨진 인명이 일치하지않았다. 마치 수세기 동안 휴식을 취하던 중 무료해진 시신들이 걸어 나와 돌아다니다가 서로 자리를 바꾸기라도 한 듯했다. - P72

1998년 이탈리아 파도바 Padova에서는 수세기 동안 성 누가 St. Luke로 알려진 인물을 검증하기 위해 해당 시신을 발굴했다. 미토콘드리아 DNA 검사를통해 채취된 39개 서열은 현대 그리스 및 시리아인과 비교 조사했다(성서에는 누가가 본래 시리아 안디옥Antioch 출신이라 기록되어 있다). 조사 결과 파도바에서 발굴된 시신은 실제로 시리아인의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 전설적 무법자 제시 제임스Jesse James의 무덤만큼이나 의문에 가려진 경우도 드물다. 남북 전쟁 당시 연합군 소속으로 활동한 제시와 그의남동생 프랭크는 결탁하여 ‘제임스-영거 James-Younger‘라는 이름으로 악명을 떨치며 미주리, 미네소타, 테네시 주 등지에서 16년 동안 은행털이와열차 절도를 일삼았다.

사후에 그의 유해는 미주리 주키니 Kearney에 있는 가족 농장으로 반환되었고, 사체의 절도나 훼손을 우려하여 앞뜰에 매장되었다. 이후 1902년에 제시의 유해는 키니의 마운트올리벳Mount Olivet 가족 묘지로 옮겨져 재매장되었는데, 생전에 악명 높았던 그에게 사후의 평화로운 휴식이 허락되지 않는 듯했다.
재매장되고 나서 약 50년이 지난 1951년, 텍사스 그랜베리Granbury에서 사망한 103세 노인의 신원 확인을 위해 호출된 보안관 오런 C. 베이커Oran C. Baker는 이 사체가 제시 제임스의 것이라는 데 대해 조금의 의심도품지 않았다.

 제임스의 친족들과 유해의 DNA 조사 결과가 99퍼센트 일치함에 따라 발굴된 유해가 전설적 악당의 것임은 거의 확실시된다. 한편 텍사스 출신이었던 프랭크 돌턴의 유해는 2000년에 발굴되었는데, 시신의 팔이 한쪽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생전에 돌턴의 양팔이모두 성했다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묘석에 적힌 이름의 주인공과 발굴된사체가 다를 가능성이 크다.

 그토록 긴 세월 동안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위장하려 한 사람이 정작 저승에서는 외팔이 사기꾼에게 당한 꼴이 되어버렸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예기치 않게 공개되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유해 발굴을 통해서 알아내고자 한 진실이 반드시 드러난다거나 항상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유해가 보존되지만은 않는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 P74

7
지상에서 우주까지

추모의 다각화


예를 들면 유해를 우주로 쏘아 올리는가 하면, 인공 산호초로 에워싸기도 하고, 망자가 응원하던 축구팀을 대표하는 색으로 맞춤 제작한 관에 시신을 안치하는 등 오늘날 장례식은 실로 다채롭게 진행되고 있다. 성가조차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우니 Abide with Me>와 <나 같은죄인 살리신mazing Grace> 등의 기존 인기곡이 빌보드 차트 40위에 드는 곡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추세이다. - P161

한때 중국에서는 파격적인 분위기의 장례식이 시도된 바 있다. 2006년8월 중국 장쑤 성에서는 장례식에 스트립쇼 공연단을 보낸 혐의로 5명이 체포되었다. 장례식 참가자들은 영국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에로틱한 공연의 관객으로 대우받았고, 이러한 분위기는 마치 남성들의 술자리(총각파티)를 연상케 했다.  - P162

 물론 지역 주민들은 불만스러워했는데, 그들은 장례식 참석 인원과 고인의 명예는 비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슬아슬한 옷차림과 풍만한 가슴을 뽐내는 젊은 여성 공연단을 투입하는것보다 장례식 규모를 부풀릴 효과적인 방법이 또 있을까?

엄숙히 슬퍼해야 할 때

 19세기 영국 사회에서는 요크 공작과 같은 왕족은 물론 남편이나 부친 등 친족에 이르기까지 대상의 신분 계층을 막론하고 무척 진지한 태도로 애도의 예를 갖추었다. <월간 여성Ladies Monthly》과 같은 패션 잡지는 애도 기간에 바람직한복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애도 의식이 진정한 예술로 승화된 시점은 이로부터 수년 후인 빅토리아 여왕 시대부터이다.

일례로 1860년대 후반, 영국에서 과부는 사실상 사회와 단절된 존재였다. 남편의 사후 첫해 동안 이들은 어떠한 초청도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공공장소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과부들은 또한 꼬박 일 년 하루 동안 깊은 애도에 임해야 하고 반사광기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검은색 크레이프만 착용할 수 있었다. - P163

 패니 더글러스 부인Fanny Douglas은 1890년에 발행된 숙녀의 복장 규범서 Gentlewoman‘s Book of Dress」에서 마침내 외출을 허락받은 과부의 자세를 다음과 같이 심각한 어조로 기술했다. "거리의 오물이 묻는 것을 피하도록 치마를 들어 올릴 때는 주름 장식이 달린 검은색 페티코트와 무늬 없는 검은색 스타킹을 살짝 드러내어 남편을 잃은 슬픔이 자신의 가장 은밀한 성역에까지 침투했음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양산을 펼치는 것은 지극히 경박한 행위로,
과부에게는 상복 소맷자락으로 햇빛을 가리는 것조차 사치가 아닐 수 없다." - P163

일 년간의 애도를 마친 과부들은 이제 약식 애도 단계로 들어가며, 이때부터는 검은색 크레이프 대신 비단 옷을 입을 수 있었다. 그렇게 12개월이 지나면 자주색이나 연한 자주색 옷을 입는 것이 허락되었다. 또1850년대 아닐린 염료가 개발되면서부터는 보라색이나 청자색, 엷은 자색, 체꽃색, 엷은 자줏빛 의상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약식 애도 기간에는 특정 보석류를 착용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일반적으로 진주와 자수정 등을 지닐 수 있었으나 가장 인기를 끈 것은 흑옥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남편이 사망한 지 25주년이 되는 1887년에 마침내 상복을 벗고 은 장신구를 착용한 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애도 규범을 완화하는 데 동의했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과도한 애도의 형식이 막을 내리고, 애도를 대표하는 색으로 검은색 대신 은색이 성행하기시작했다. - P164

빅토리아 시대에는 장례를 치르고 나면 으레 ‘애도 카드‘를 발송하여 망자의 죽음을 주변에 알렸다. 처음에는 고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줄 것을 부탁하는 의미로 주변에 카드를 나눠주었으나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러서는 카드 발송이 장례 절차로 굳어졌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다소 과장되고 지루할 만큼 길던 영국식 애도 풍습도 차츰 사라졌다. 74만 5천 명이라는 유례없이 많은 전사자를 낸전쟁이 끝나자 영국 정부는 기존의 빅토리아 시대 상복 대신 검은색 완장을 착용하도록 장려했고, (후략)

그렇더라도 여전히 일부 문화권에서는 애도 의식에 관해 고집스럽게 전통을 고수하기도 한다. 그리스 정교회 중심의 사회에서 과부들은 2년동안 검은색 옷만 입어야 한다. 힌두교에서는 애도 기간에 흰색 복장을 입는 것만 허락되고, 과부는 평생 사별한 남편을 기리며 살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과부는 한 달에 한 번씩 머리카락을 잘라야 함은 물론 장신구를 착용하지 못하며, 결혼 피로연과 같은 축제에 참석할 수 없다. - P166

그런가 하면 힌두교의 사티sati 제도는 무척이나 잔인한 애도 풍습으로 손꼽힌다. 힌두교 사회에서 과부가 된 기혼 여성은 남편에 대한 사랑과 충성을 입증하는 의미로 장례 당일에 죽은 남편과 함께 화장되어야 했다(자의든 타의든 간에). - P166

그중 가장 유명한 일화는 1987년 9월에 사망한 루프 칸와르Roop Kanwar에 관한것으로, 당시 18세였던 그녀는 미모와 지성을 겸비했다고 전해진다. 혼인한 지 8개월째에 접어들던 어느 날 남편이 맹장 파열로 사망하자 칸와르 부인은 결혼 당시 착용했던 예식 사리를 두른 채 남편을 화장하기 위해 쌓아놓은 장작더미로 기어 올라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시동생에게 점화할 것을 재촉했다. - P167

머리카락의 소장 가치

엄격한 규범과 크레이프는 자취를 감추었으나 빅토리아 시대를 풍미한 애도 의식은 여전히 21세기 영미권 사회에 남아 있다. 예를 들면, 유족들은 고인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잘라내어 유품으로 소중히 간직함으로써 떠나간 이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두고자 했다.  - P168

고인의 머리카락으로 장신구를 제작하고자 모발을 땋고 가공하는 작업의 수요가 급증하자 헤어 아티스트라는 직종이 생기기에 이르렀고,
이들의 기술은 높이 평가되었다. 거금을 들여 헤어 아티스트의 손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은 알렉사나 스파이트Alexanna Speight의 안내서 모발의 취급Lock of Hair (1891) 등을 참고해 스스로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물론 이경우에는 결과물의 완성도를 장담할 수 없었다. - P168

오늘날에도 브로치나 팔찌, 목걸이 등에 고인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넣어 봉한 다음 평소에 지니고 다닐 수 있다. - P168

코네티컷 주 웨스트포트에 거주하는 존 레지니코프John Reznikoff는 가장 왕성히 활동하며 높은 수익을 올리는 수집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며, 백여 점이 넘는 다양한 머리카락을 소장하고 있다.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e, 나폴레옹, 웰링턴 공작 Duke ofWellington, 에이브러햄 링컨(거래가 75만 달러), 헨리 포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군대식 헤어스타일이었을 당시)의 머리카락이 모두 그의 소장품이다.
최근 레지니코프는 고인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매입해 논란에 휩싸였다. 머리카락의 주인은 바로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으로 당시 3,000달러에 매매되어 현재 레지니코프의 컬렉션에 포함되어 있다. - P169

손톱이나 혈액을 대상으로 성행한 중세 시대의 유물 거래가 다소 역겹거나 끔찍하게 여겨지는가? 그렇다면 오늘날의 유물 거래도 과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봄 직하다.

다이아몬드, 여성의 로망

 그러나 실제로 미국과 스위스의 한 업체가 각기 고인을 화장하고 나서 남은재를 이용하여 다이아몬드로 변모시키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리고 최대2만 2,000달러에 달하는 거금을 들여 연간 수백 점에 달하는 ‘인간 다이아몬드 diamond geezers‘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 P170

한편, 스위스업체 알고르단자Algordanza 측은 자사의 다이아몬드 제품은 철저하게 자연소재로 제작되며 일절 첨가물이 더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업체가 발표한 바로는 다이아몬드의 색은 고인이 생전에 섭취한 음식물에 따라자연적으로 결정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고인이 채식주의자였다면 다이아몬드는 옅은 푸른색을 띤다. - P171

오브제, 예술과의 접목

목걸이나 반지 등에 고인의 유해를 넣어 다니는 데 그치지 않고 유해 자체를 빛나는 보석으로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크리스털은 영원히 Crystal Eternity‘
라는 한 업체는 인체를 태워서 나온 재와 액체 상태로 녹인 유리를 혼합한 유리 기념품을 제작하기도 한다. 유리 제품은 제각기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하면서 오래도록 고인을 기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P172

이즈음에서 더 실제적인 유물의 예를 들어보자. 1967년에 프리스비(원반 던지기 놀이에 쓰이는 플라스틱 원반, 고유 상표명)로 특허를 획득한 에드헤드릭 Ed Headrick은 친구와 친족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프리스비에자신의 모습을 찍어 넣었다. - P172

그런가 하면 친환경적 기념품도 있다. 1998년에 사망한 칼턴 글렌 파머 Carleton Glen Palmer는 자신의 유골이 환경 보호와 관련된 분야에 사용되기를 희망했다. 당시 열성적인 환경 운동가이기도 했던 파머의 사위 돈브롤리 Don Brawley는 ‘리프 베리어 개발 그룹‘이라는 업체를 운영했는데, 이곳에서는 친환경 소재의 콘크리트 볼을 해저에 가라앉혀서 파괴된 산호초를 대체하게 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 P173

그러나 화장이 반드시 가장 친환경적인 시신 처리 방식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물론 화장을 택하면 토양과 지하수 오염의 우려가 있는 유독방부 처리 용액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산이나 바다에 유골을 뿌릴 필요도 없으며, 묘지 정돈에 사용되는 제초제나 휘발유를 연료로 하는 잔디 다듬는 기계를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 P173

화려한 최후

 억만장자들은 2,500만 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우주여행을 하기도 하는데, 단 995달러면 자신의 유골을 우주로쏘아 보낼 수 있다. 실례로 텍사스 주 휴스턴에 있는 셀레스틱스 사Celestics Inc에서는 추모 우주 비행 편을 제공한다. 1~7그램 정도의 유골을 립스틱 용기 크기의 개별 캡슐에 넣은 다음 인공위성에 부착된 추모 우주선에 실어 우주로 보내는 원리이다.

그런가 하면 그중에는 LSD 주창론의 권위자 티모시 리어리Timothy Leary의 유골도 있었다. 그 역시 《워싱턴 포스트》의 표현처럼 ‘처음이자 마지막, 그러나 혁신적 여행‘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들의 유골을 담은 캡슐이 5년간 지구를 선회하다가 대기권으로 재진입하면 유골은 2차 소각의 순간을 맞이한다. - P176

아무리 아끼던 사람이라지만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장례 비용이 다소 부담스럽다면 더 저렴한 방법도 있다. 에식스에 있는 ‘폭죽 천국 Heavens.
Above Fireworks‘이라는 업체는 1,470~2,950달러 선에서 유골을 넣은 폭죽을 제작해준다. 이렇게 맞춤 제작된 폭죽이 터질 때 업체에서 서비스로 고인이 선호하던 곡을 배경 음악으로 틀어주기도 한다. 베스트셀러 3부작 소설 『다크머티리얼즈Dark Materials』 (인기 판타지 영화 <황금 나침반>의 원작)의 저자 필립 풀먼Philip Pullman 역시 폭죽을 통해 양아버지를 기리고자 했다. - P177

 2002년 5월 세스너Cessna 사의 경비행기 한 대가 시애틀 매리너스Seattle Mariners 구단의 홈구장인 세이프코필드 상공을 선회하다 비행기에 탑재된 컨테이너 틈으로 회색 가루를 살포하자 야구장에 온 관중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 P178

관계자들의 과장된 반응에 놀란 조종사는 자신은 단지 유골 살포를 위해 고용된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사실이 밝혀지자 미 연방항공국 소속 데이브 밀러 Dave Miller는 "유골 살포 위치를 경솔하게 택한 경우"라고 무덤덤하게 언급했다."⁷² - P178

차별화된 나만의 공간

뉴캐슬 지역에 거주하는 레슬리 맥기네스Lesley McGuiness는 30대에 요절한 남편을 기리며 생전에 그가 가장 아낀 축구팀의 셔츠 모양과 색상을 본떠 묘석을 제작했다. 이 묘석은 가업을 이어받아 조셉 리치먼드 앤드 선Joseph Richmondand Son 사에서 근무하던 사이먼 리처드Simon Richard가 제작한 것으로, 화강암재질에 뉴캐슬 유나이티드Newcastle United 팀을 대표하는 검은색과 흰색이칠해졌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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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트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와 나쁨의 미덕에 관하여
마크 T. 코너드


지금은 현존재의 희극이 아직 스스로를 ‘의식하는 데 이르지‘ 못했다. 지금 우리는 아직 비극의 시대에, 도덕과 종교의 시대에 살고 있다.¹ - 니체 - P87

그럼 이제 또 다른 악동, 철학계의 악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뭐라고? 여러분은 철학계에 악동이 없다고 생각했는가?). 그의 이름은 프리드리히 니체, 그는 철학적으로-더없이 못된 사람이었다. 또 시건방진 말만 내뱉는 철학적 비행 소년이기도 했다. 그는 권위에 대들었고,
훼방꾼이었다. 그리고 사탄의 졸개라?말도 마시라, 그는 『안티크리스트』라는 제목의 책까지 썼다! 그는 모든 것을, 사람들이 사랑하고 아끼는 모든 이상을 혐오하는 듯 보였다.  - P88

희극의 탄생: 가상 대 실재

(중략)
니체의 초기 저작에는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영향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쇼펜하우어는 재미라고는 한 톨도 없는 사람이었다. - P89

첫 번째 저서인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가상과 실재, 의지와 표상을 구분하는 쇼펜하우어의 이원론적 관점을 뚜렷이 채택하지만, 흥미롭게도 ‘의지‘라는 말을 의인화하여 의식적인 행위자처럼 취급하며
‘근원적인 일자‘⁴라고 일컫는다. 예술과 미에 대한 연구를 가리키는 ‘미학aesthetics‘ 이라는 말은 감각적 자질 또는 사물의 외양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아이스테티코스 aisthetikos‘에서 파생되었다. - P90

우리가 아는 세계, 일상적인 세계,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단지 가상에 불과하며, ‘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 자리 잡은 실재부단하고, 맹목적이고, 강력하고, 궁극적으로 목적이 없고,
따라서 충족되지 못하며 고통받는 의지는 너무나 끔찍하기에 그 중심을 들여다보는 일, 존재의 진짜 본질을 이해하는 일은 진이 빠지는 일이다.  - P91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일단 진리를 보고 그것을 인식하게 된인간은 이제 어디서나 존재의 공포와 부조리를 보게 된다."⁷
니체에 따르면, 예술이, 오로지 예술만이 우리의 유일한 은총이다. - P92

『비극의 탄생』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존재의 공포와 부조리를 다룬방식에 대한 책이다. 예술, 특히 아티카 비극*을 통해 그들은 공포스러운 진리를 극복하고 구원을 찾을 수 있었다. 니체에 따르면 이는 혼돈스럽고 무의미한 존재와 대면하는 건전하고 정직한 방법이다. 하지만 불건전하고 부정직한 방법도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아테네를 포함하는 아티카 지방의 시인들이 쓴 비극 니체는 아티카비극이 아폴론적인 힘과 디오니소스적인 힘을 조화시켰다고 말한다. - P92

소크라테스는 세계의 진정한 특성을 인식하고 혼돈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대신, 사유로 세계를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세계를 뜯어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계속해서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론적 낙천주의자의 원형이다. 이론적 낙천주의자는 사물의 본성을 규명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지식과 인식에 만병통치약의 힘을 부여하며, 오류를 악덕 그 자체로 생각하는 사람이다.¹⁰ - P93

여기서 내가 말하려는 건, 나라 없는 도시인 스프링필드에서는 리사가 소크라테스, 즉 이론적 낙천주의자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리사는 자신을 둘러싼 혼돈스럽고 부조리한 세계와 충돌하면서도, 이성이세계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뜯어고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고집스럽게 믿는다. 그는 동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앞장선다. 번스 사장의 탐욕과 호머의 무식을 치료하려 한다. 또 바트에게 덕성을 가르쳐서 그의 성품을 고치려 든다. 말도 할 줄 모르는 매기에게 플래시카드로 ‘credenza‘* 같은 단어를 가르치려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식기 진열장 - P94

하지만 정말 그렇다 할지라도-우리가 리사를 이런 식으로 보는 게옳다고 할지라도, 반항아에 훼방꾼이고 방귀쟁이인 데다 주일학교 교사와 베이비시터의 악몽인 바트를 우리가 존경해야 한다는 뜻이 되는건 아니다. - P95

예술로서의-아니 최소한 만화영화로서의-삶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경험 저편, ‘이‘ 세계의 저편에 무언가가 있다고 믿었을까? 왜 애초에 가상과 실재 사이의 구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을까? 니체의 말에 따르면 그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언어의 구조때문이다. - P95

우리는 "번개가 번쩍인다"라고 말하지만, 여기에 실제로 번개와 번쩍임이라는 두 가지 것이 존재할까?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물을 파악하고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인 듯하다. 경험한 것을 표현하려면주어인 ‘번개‘와 동사인 ‘번쩍이다‘를 사용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는 그만 깜빡 속아 활동의 배후에 그 활동의 실제 원인이 되는 어떤 안정적인 것이 존재한다고 믿게 된다. - P96

니체의 말에 따르면 언어 속에 화석화된 활동하는 자와 활동 사이의 구분은 가상과 실재가 분리되는 시발점이며, 이는 플라톤의 형상/개별자 이원론, 쇼펜하우어의 의지/표상 구분, 기독교의 천상과 지상,
신과 인간의 분리 등으로 변형된다. 니체는 "우리가 문법을 여전히 믿고 있기 때문에 신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 아닌가 염려된다"라고 말한다.¹³ - P97

니체의 이상

다시 말하자면, 초기 저작에서 니체는 세계가 가상과 실재, 의지와 표상으로 분리된다고 보았지만, 곧 혼돈을 가리고 있는 무엇은 없으며행위 뒤에는 아무런 존재도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이 관점을 부인하게된다. 여기에 그의 입장 변화가 낳은 정말로 흥미로운 결과가 있다. 우리가 단지 근원적 의지에서 파생된 현상, 예술적 투영, 진정한 예술가이자 관객인 근원적 일자를 위한 예술작품에 불과하다는 초기의 관점과 반대로, 이제 우리는 의지인 동시에 현상이 된다. 아니, 이 두 가지는 같은 것이 된다.

 니체는 예술과 삶의 구분을 없앴다. 그 결과 현존재는 미적 현상으로서, 예술적 노력으로서 정당화되거나 구원받으므로, 니체는 세계의 정당화에 대한 이야기에서 개인적 정당화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간다.  - P99

하지만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 P99

이러한 니체의 이상은 위버멘슈Ubermensch, 혹은 초인이라는 인물상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는 자신의 삶으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이 매우 어려운 기획을 성취한 사람, 스스로를 창조한 존재다. 네하마스는 이렇게 말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스스로의 자아를 창조한다는 관념, 혹은 결국 이와 같은 의미인 위버멘슈라는 관념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¹⁹ - P100

물론 악동이 되는 건 재미있지만, 어쩌면 그것 말고도...

니체에 따르면 그들의 공통적 경향은지금 여기에 대한, 즉 흐름에 대한 부인으로서 허구적인 피안, 초월적인 무엇을 상정하여 스스로를 위안하려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플라톤은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개별자들로 이루어진 이 세계 너머에 영원하고 변치 않는 형상의 영역이 있다고 믿는다. 기독교인들은 신과 천국과 영혼을 인간과 지상과 육체의 반대편에 선 다른 무엇으로 상정한다. - P101

이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지만, 니체에 따르면 몇 가지 대단히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문제가 있다. 첫째로, 무한한 가치를 띤 세계를 상정하면 지금 여기에 있는 현실은 가능한 일체의 가치를 박탈당하고 만다.  - P101

둘째로, 이런 식의 생각은 개인적인 위안에만 그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피안을 믿는 이들은 남들에게도, 아니 실제로 대개의 경우 온세계에 이 믿음을 강요하고자 했다. - P102

이런 유형의 가치 평가는 단순히 자신들을 구분하고자신들과 닮지 않은 부류를 규정하는 하나의 방법이었을 뿐이다.
니체는 이런 유형의 가치 평가를 ‘주인 도덕‘이라고 지칭하며, 이 최초의 ‘주인들‘ 혹은 ‘귀족들‘을 가차없이 묘사한다. 실로 그들은 강하고 건강하고 능동적이었지만, 또한 교양이 없고 자기성찰이 결여되어있고 폭력적이기도 했다. 

 그들은 맞서서 자신을 지킬 만큼 강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들 내면에는 귀족들을 향한 깊은 증오와응어리진 원한이 쌓였다. 이 응어리진 분노가 바로 ‘노예 도덕‘의 기원이다. - P103

니체는 이 사람들이 실제로 말 그대로 노예였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약하고 병든 유형의 사람들, 원한에서 도덕이 샘솟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를 쓰고 있다. 이 약자들, ‘노예‘들은 무엇보다도자신이 강해지기를, 건강해지기를, 능동적이 되기를, 획득하고 정복하고 지배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귀족처럼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럴수 없기 때문에 강하고 건강한 이들에게 복수를 가한다. - P104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무리 짓는 동물들이 가장순수한 덕의 광영으로 빛날 때, 예외적인 인간은 악으로 폄하될 수밖에 없다."²⁵
노예 도덕이 승리를 거두었음은 물론이다. 약자들은 약함, 순종, 연민 등이 미덕이고 힘, 능동, 활력 등은 악덕이라고 우둔한 귀족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 니체에 따르면 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나큰 재앙이었다. - P105

 그 결과로 우리는 무가치하고 평가절하된 현존재와 더불어 남겨졌으며, 여기에 새로운 의미와 생명력과 가치를 부여하지 못할 만큼 무기력해졌다.
바로 이것이 니체의 ‘악동‘ 페르소나의 뿌리이자, 그가 전통과 도덕에 반항한 이유다. 또 나약한 우리 대다수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대부분의 것들이 실은 삶을 부정하고 중상하는 위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가 가차 없이 이를 매도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선악의 저편‘으로 가라고, ‘노예의 도덕‘을 넘어서라고, (후략) - P106

바르는 초인인가?
좋다. 니체는 철학계의 악동이고, 바트는 스프링필드의 악동이다. 확실히 바트는 권위에 반항하며 전통적 도덕을 부정했다(혹은, 실제로 받아들인 적이 없다). - P106

오히려 니체의 이상은 예술가, 자신을 극복하고 자신을 창조하는개인, 새로운 가치를 빚어내는 사람, 자기 삶을 가지고 예술작품을 만드는 사람에 더 가깝다. 바트를 이런 식으로 묘사하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 P107

바트의 모든 정체성은 권위에 대한 반항과 거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권위가 사라지면 바트는 자기 정체성을 잃는다. 더는 자기가 누군지도 뭔지도 모르게 된다. 흥미롭게도 리사는 바트에게마음씨 좋은 발매트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보라는 현명한 제안을 한다. - P110

사실 바트는 니체 이후의 세계에서 우리가 딛고 선 위태로운 자리를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 P110

하지만 우리는 다른 세계, 피안을 저버리면서 허무주의로 빠져들 위험이 크다.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허무주의는 진짜세계라는 것이 그야말로 부재하기 때문에 모든 믿음, 무엇이 진짜라는일체의 생각 자체가 필연적으로 거짓이라는 관점일 것이다."³⁰ 계속해서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한 해석이 붕괴했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해석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제 현존재에 의미가 없는 것처럼, 마치 모든 게 헛된 것처럼 보인다.³¹ - P111

 바트 새파란 바지를 입은 이 소년은 실은 이런 허무주의적 위험을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덕을 (거의) 갖추지 못했고, 창조적 정신도 없다. 그는 현존재의 혼돈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에 형태를 부여하고 그것으로아름다운 무엇을 빚어내지는 못한다. 그가 혼돈을 수용하고 그것에 대처하는 방식에는 일종의 체념적 정서가 깔려 있다. - P112

스스로를 의식하게 된 희극

 하지만 좀더 희망적인 어조로 글을 끝맺어보자. 비록 바트가 우리의 니체적 영웅이 아니며 허무주의적 퇴보의 본보기일지는 몰라도, «심슨 가족이라는 작품 전체는 더 나은 무엇을 보여준다. 현대의 삶과 세계는 고대 그리스 못지않게 혼돈스럽고 부조리하며,
니체의 말대로 고대 그리스 희극이 "부조리의 구토로부터의 예술적 해방"³²이었다면, 어쩌면 «심슨 가족»도 우리에게 그런 기능을 해줄 수있을지 모른다. - P113

5_바트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와 나쁨의 미덕에 관하여

1Friedrich Nietzsche, The Gay Science, trans. Walter Kaufmann (New York:Vintage, 1974), section 1, p. 74(한국어판은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안성찬·홍사현옮김, 즐거운 학문· 메시나에서의 전원시·유고, 책세상, 2005, 「즐거운 학문). - P414

4 Friedrich Nietzsche, The Birth of Tragedy, trans. Walter Kaufmann (NewYork: Vintage, 1967), section 4, p. 45김,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 책세상, 2005, 비극의 탄생]

7, section 7, p. 60.

13 Friedrich Nietzsche, Twilight of the Idols, "Reason in Philosophy," from ThePortable Nietzsche, section 5, p.483.

19 Alexander Nehamas, Nietzsche: Life as Literature, p. 174.

25 Friedrich Nietzsche, Ecce Homo, "Why I Am a Destiny" (New York: Vintage,
1967), section 5, p. 330.

30 The Will to Power, section 15, p. 14.
31, section 55, p. 35.

32 The Birth of Tragedy, section 7, p. 60.

12 스프링필드의 위선

제이슨 홀트

종교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도 그를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이 쇼는 이를테면 실존주의 문학이 철학적인 식으로 ‘철학적‘인것을 의도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괜찮다. 작가나 프로듀서의 의도와상관없이 «심슨 가족》은 철학자를 위한 펄떡이는 먹잇감을, 많은 경우 구체적인 사례의 형태로 풍성하게 제공한다. - P258

물론 이것은 벅찬 질문이다. 나는 이 질문에 답을 제시하려는 것이아니고 하물며 «심슨 가족»에 호소해서 해결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실존주의자들이 그러했듯이, 설령 객관적인 도덕이 부재하더라도 우리가 유의미한 방식으로 가치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지적할 수 있다. - P259

내가 말하고 싶은 주제는 위선hypocrisy이다. «심슨 가족》이 이 도덕적 악덕의 여러 중요한 특징을 예시해줄 뿐만 아니라, 위선에 대한 철학자들의 어떤 말들이 거짓임을 폭로해주기 때문이다.  - P260

가치의 진술이란 세상이 어떠한지가 아니라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을 진술하지 않고 행동을 지시한다. 내가 고양이가 매트 위에 있다고 말한 다음 고양이가 매트 위에 없거나 아예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나는 위선자가 아니라 거짓말쟁이거나 재담꾼이거나 기억력이 굉장히 나쁘거나 그 밖의 인지 장애가 있는 것이다.  - P261

내 목표는 «심슨 가족을 활용해 위선의 중요한 특징들을 보여주고 위선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나아가 이러한 상대적인 소홀함을 바로잡는 것이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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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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