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자키 히루코에게
(전략) 변함없이 하는 일 다 잘되고 건강하리라고 믿는다. 인사말을 늘어놓는 건 성미에 맞지 않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 일전에 마다라메 기관이라는 조직에 관해 조사해달라고 의뢰했잖아. 그 보고서를 보낸다. - P11
이 보고서를 복제해서는 안 되고 남에게 발설해서도 안 된다고 너도 내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으니까. - P12
001
기묘한 거래
1
"카레우동은 본격 추리가 아니에요." 나는 그렇게 주장했다. 당연히 카레우동은 우동의 아종이며 본격 추리는커녕 본격 중화요리도 아니다. 그건 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서 카레우동의 이름을 꺼내는 것이 비논리적이라는 것이다. - P15
(전략). "즉, 저 사람은 강의실과 학생식당 냉방이 너무 강해서 추운거야. 특히 학생식당은 통유리라 햇빛이 잘 드니까 냉방도 강하게 설정했겠지. 그러므로 추위를 타는 저 사람이 따뜻한 음식을 찾으리라고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아.‘ - P16
"그래. 저 사람은 친구 두 명과 함께 들어왔어. 친구들은벌써 음식을 받아서 계산하는 중이야. 저 사람은 친구들이 기다릴까 봐 마음이 급하겠지. 여기서 문제, 라면하고 우동 중에 빨리 나오는 건 뭘까?" - P17
하지만 우동과 달리 라면에는 애착이 없는지 맛이 형편없어서 인기가 없다. (중략). 덧붙이자면 라면을 담당하는 (아마도) 필리핀 아저씨도 맛을 떨어뜨리는 원흉 중 하나다. - P18
"저 사람이 입은 카디건요. 하얀색이잖아요. 저런 걸 입었는데 카레우동을 주문할까요?" 카레 얼룩은 흰옷의 천적이다. 한창 꾸밀 나이의 여학생이 무신경하게 넘어갈 리 없다. (중략). "카디건은 벗으면 되잖아, 어리석기는!" - P19
여학생의 점심은 학생식당 직원의 추천 메뉴인 간 무와 통조림 참치를 올린 간장 소스 냉우동이었다. 왜!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점심으로 먹기에 딱 좋은 메뉴지만, 당신 추운거 아니었어? - P20
밥을 먹는 학생들의 표정은 환하다. 이 주에 걸친 기말시험도 오늘 오전부로 거의 다 끝났으니 여름방학 계획을 세우느라 마음이 설레는 거겠지. 부러울 따름이다. (중략). 그 원인의 대부분이 눈앞에 앉은 이학부 3학년 선배 아케치 교스케에게 있지만, 가위표를 친 종이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움켜쥐는 표정으로 보건대 본인은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모양이다. - P21
나는 처음에 미스터리 연구회, 소위 미스연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 P23
좋아하는 작품을 화제로 삼아도 돌아오는 대답은 "모르겠다", "안 읽어봤다"뿐이라 밴 다인과 쓰즈키 미치오를 일일이 설명해야 했다. - P24
"이학부 3학년, 아케치 교스케라고 해. 미스터리 애호회의 회장을 맡고 있지." 미스터리 애호회? 미스연하고는 다른 건가. "그러니까 미스연의 아류?" "절대 아니야!" - P25
미스연 회원들이 즐겨읽는 소설은 요즘 유행에 따라 캐릭터의 개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연애와 청춘소설 요소도 듬뿍 담은 작품들, 이른바 라이트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불러야 할 작품들이었다. - P26
그리하여 나는 그의 조수로서 학교 비공인 동아리에 소속되어 생산성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재 다른 가입 예정자는 없다. - P26
2
(전략). "물론 비어 있는데요. 또 고양이라도 찾으시려고요?" (중략). 고양이 찾기는 그가 가끔 학교 근처 다누마 탐정 사무소에서 맡아 오는 아르바이트다. - P27
하지만 교내에서 일어난 사건을 그가 몇 번 해결한 실적이있으므로 꼭 무시할 수만은 없다. - P28
아케치 씨는 교내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해 근처 탐정 사무소와 파출소에도 쳐들어가 명함을 돌렸고, 그 일을 계기로 다누마 탐정 사무소와도 안면을 텄다. - P28
"실은 영화 연구부가 여름방학 때 재미있을 것 같은 합숙을 한다는 말을 들었거든." - P28
(전략). "음. 하지만 심령현상이 일어나는 장소에서 아이돌 연예인의 몸 상태가 안 좋아지는 콘셉트는 이제 질색이야. 김이 확샌다고." "격하게 동의해요." 개인적으로는 외국의 엑소시즘도 많이 써먹은 소재라 이제좀 지겹다. - P29
"그래서 우리도 합숙에 낄까 했거든.‘ "뭐라고요?" 갑작스러운 전개에 목소리가 뒤집어졌다. "그런데 영화 연구부 부장한테 가서 부탁하니까 거절하더라." "그렇겠죠." "지난달부터 벌써 세 번이나 부탁했는데, 아무래도 안 될것 같아." - P30
하지만 하무라, 펜션이라고, 여름 펜션. 거기에 또래 학생이 모여 뭔가 사건이 터질 법한 상황이잖아." 무슨 리라장*도 아니고. - P31
3
(전략). "또 거절당했어." 아케치 씨는 세월이 느껴지는 커피색 의자에 앉아 나지막한 테이블 밑으로 긴 다리를 쑤셔넣으며 그렇게 말했다. - P32
"나는 그저 머리를 숙일 뿐이야. 아무 폐도 안 끼쳤어." "그게 제일 골치 아픈 사고방식이라니까요." "아무 사건도 없이 여름을 보낼 수는 없잖아. 어떻게든 해야지." - P33
"처음 뵙겠습니다. 문학부 2학년 겐자키 히루코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이학부인 아케치 씨와도 경제학부인 나와도 접점은 없을듯하다. 아케치 씨는 그렇다 치더라도 내 이름까지 알다니 도대체 누구일까. - P34
"아케치 씨, 영화 연구부 합숙에 동행하고 싶으시죠?" (중략). "영연에 소속된 친구에게 언뜻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주열심히 부탁하신다고요." "예, 매정한 대답이 돌아올 뿐이지만요." (중략). 매정할 것도 많다. 질리지도 않고 끈덕지게 치근거렸으니얻어맞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 여겨야 마땅하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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