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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독점계약 번역 개정판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15년 3월
평점 :
꾸준히 책을 읽다 보면 만나고 싶지 않은 재미없는 사회과학 이론서와 수도 없이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기겁하면서 책을 덮곤 한다. 재미없는 사회과학 이론서는 굉장히 재미없다. '굉장히'에 악센트를 두고 싶다. 의미 없이 글자 수를 늘리는 이유가 뭔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걸 무릅쓰고도 이렇게 적고 싶다.
나는 이 책이 바로 그런 부류가 아닌가 잠시 의심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인가 아닌가는 저자의 격렬함과 유머에 대한 독자의 평가를 보면 판별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was the age of innocence, and historians walked in the Garden of Eden, without a scrap of philosophy to cover them, naked and unashamed before the god of history. Since then, we have known Sin and experienced a Fall; and those historians who today pretend to dispense with a philosophy of history Pre :merely trying, vainly and self-consciously, like members of a nudist colony, to recreate the Garden of Eden in their garden suburb. Today the awkward question can no longer be evaded.
굳이 원전의 표현을 적어두고 싶었다. 해석은 아래와 같다.
당시는 천진난만한 시대였으며 그래서 역사가들은 자신들을 가려줄 한 조각의 철학도 걸치지 않고 역사의 신 앞에서 벌거벗은 채로 부끄러움도 없이 에덴 동산을 돌아다녔다. 그때 이후 우리는 죄를 알게 되었고 타락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역사철학이 필요 없는 척하는 역사가들이 나체촌의 주민들처럼 교외의 전원주택지에 에덴 동산을 재건해보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것은 남의 눈을 끌어보려는 쓸모없는 짓일 뿐이다. 오늘날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그 거북한 질문은 더 이상 회피될 수 없다.(p.33)
나는 저자가 마이네케의 사례를 보여준 뒤 덧붙인 깜찍한 조롱을 읽고 실컷 웃었다. 감탄했으며,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저자가 '좀더 실감나는 뚜렷한 사례'를 또 보여준다기에 잠시 갸우뚱했다. 그것을 읽고 나니 이 즐거움을 나만 알기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 적어둔다.
혹은 좀더 실감나는 하나의 뚜렷한 사례를 들어보자. 1930년대에 자유당 (주– '휘그'라고도 불림)은 영국 정치의 실세로서는 막 궤멸했는데, 그 무렵 버터필드 교수는 <휘그적 역사해석>이라는 책을 써서 굉장한 그리고 그럴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책은 여러 가지 면에서 남다른 책이었다. 그러나 치밀함과 정확성에서 무엇인가 부족했던 그 책의 결함은 재기 넘치는 독설로 메워졌다. 독자들은 휘그적 해석이 나쁜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그 휘그적 해석에 반대하여 제기된 비난들 중의 하나는 그 해석이 '현재와 관련하여 과거를 연구한다'는 것이었다. 이 점에 관한 버터필드 교수의 입장은 단호하고 신랄했다.
"한 눈 (eye)을, 말하자면, 현재 위에 올려놓고 과거를 연구하는 것은 역사에서의 모든 죄악과 궤변의 원천이다. 그런 연구야말로 '비역사적'이라는 말의 본질적인 의미를 보여준다."
12년이 흘렀다. 버터필드 교수의 조국은 '한 눈을, 말하자면, 현재 위에 올려놓고' 끊임없이 과거를 불러냈던 한 위대한 지도자 (주– 처칠) 밑에서, 흔히 휘그적 전통 속에 체현 (體現)되어 있는 입헌적인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 치러졌다고들 하는 그런 전쟁에 돌입했다. 1944년에 출간된 <영국인과 그들의 역사>라는 한 작은 책에서 버터필드 교수는 휘그적 역사해석은 '영국적인' 해석이라고 단정했을 뿐만 아니라, '영국인과 그들 역사의 동맹'을 그리고 '현재와 과거의 결합'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버터필드의 세계관이 이렇게 뒤바뀐 것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은 악의적인 비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의 의도는 제2의 버터필드로 제1의 버터필드를 비판하거나, 술 취한 버터필드 교수를 맑은 정신의 버터필드 교수와 대결시키려는 데에 있지 않다.(pp.60-62)
저자의 유명한 아포리즘 때문에 이렇게 즐거움을 주는 창작물이 되레 묻히는 상황은 아쉽기 짝이 없다. 한편으로는 유머와 지적 유희가 아닌 다른 요소로도, 다른 저자, 예컨대 수많은 유명한 철학자의 저서에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나는 독특하다면 또 그러한 사람이라 이렇게 전체를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또한 평범한 사람이라서 그들의 집약된 표현도 아낀다. 하지만 숲을 본 뒤 나무를 보면 한층 더 대단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경험적으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