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해서 떠났다 - 220일간의 직립보행기
최경윤 지음 / 지식노마드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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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사람들은 답답해서 어디론가 떠나곤 한다. 주로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 '내가 뭘하고 있나?' 너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모든것을 버리고 훌쩍 떠나는 여행에세이는 많이 읽어보았는데 학생이 떠나는 이야기는 처음 읽어보는것 같다. 물론 학생도 어느순간 '내가 뭘하고 있나' 라는 생각을 안하는건 아니겠지만 답답한게 없는건 아니겠지만.. 학생때 떠나는 여행은 답답하기보다는 그 나이에 배울 수 있는것들을 찾기 위해 많은 경험을 위해 떠난다는 생각으로 떠나는게 더 좋지 않나 생각해본다.

 

 

 

무튼 그녀는 학교를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았다. 그리고 그 돈을 모아 인도와 남미를 여행하기로 한다. 처음 여행한 곳은 인도였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떠난 여행이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준비를 안하고 떠나는 무계획에 또 다른 재미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계획을 세우는것에 있어서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들 다 가는곳을 보면서 하나하나 준비해가는 것이 실수가 적고 더 많은 정보로 실속있게 여행을 할 수도 있지만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에서의 뜻밖의 재미를 만나는것도 나쁘지 않을거란 생각이 든다. 그만큼 많은 추억을 담아올 수 있을것 같기도 하다.

 

 

 

처음 떠난 인도라는 곳에서는 많은 실수를 하게 되고 사람들에게 많은 실망을 하기도 했다. 적응하기 힘들어서 많이 아프기도 했지만 또 그만큼의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신기함을 느끼고 처음 해보는 것들도 많았다. 사기꾼 같은 사람들을 만날때는 너무 실망스럽고 그 순간은 여기있는 사람들이 다 싫고 누군가가 자기에게 말만 걸어도 뭔가 바라는게 아닌가 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사람을 경계하고 무서워하면 뭔가 하려고해도 뭔가 받아들이려해도 아무것도 받을 수 없고 스스로도 좋은 여행이 될 수 없다는걸 안다. 그렇기에 겁을 먹지 않고 사람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이해하기로 한다. 잃은게 있으면 얻을것도 있는 법이니깐.

 

 

 

인도에서 고생해서 여행을 해서인지 남미여행은 좀 더 수월한 여행이고 재밌는 여행, 더 알찬 사람들을 만나는 여행이 되었다. 고생을 많이 한 만큼 조금 나은 곳에서 여행을 하니 더 신나고 재밌음을 느낀다. 그런만큼 인도 여행의 소중함도 느낀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지만 이렇게 저렇게 몸짓으로도 대화가 통하는걸 느끼고 그로인해 재밌는 사람들을 만난다. 낯선 여행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른 어느곳에서 만나는 사람들보다 기억에 남고 또 자기랑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만큼 더 기쁘다. '다음에 다시보자', '다음에 우리나라로 여행오면 꼭 연락해라. 안내해주겠다'는 인사들을 하면서 다음을 기약해보기도 한다. 그 다음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는 것도 지금 헤어짐이 아니기에 슬프지 않다.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그곳에서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걸 배우고.. 길에서 배우는건 다른 어느곳에서 배우는 것보다 내 몸으로 실천하기에 더 많은 추억을 남긴다. 그리고 또 언제 올지 모르는 시간들이다. 그 한순간 너무 힘들어서 다시 돌아가고 싶기도 했다. 특히 아픈 순간. 아무것도 못할것 같은 순간 집이 그립고 가족이 그리워진다. 그래도 다시 돌아올 시간들이 아니라는걸 안다. 그래서 그 한 순간들도 소중히 생각하며 그 시간을 견디고 새로운 모험을 찾아 떠난다. 길에서 배우는 시간에서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그녀는 떠났다 다시 돌아온다. 답답해서 떠났던 여행이지만 그 답답함을 버리고 또 새로운 것을 채워가지고 돌아온다. 만났던 사람들, 많은 추억들을 담아서 돌아온다. 그리고 또 다음을 기약해본다. 활력을 얻고 또 현재와 미래를 준비해본다. 내가 겪은 여행이야기는 아니지만 나도 어린 친구가 다녀온 여행을 통해서 내안에 있던 답답함을 해소해본다. 비록 내가 담아오지 못한 추억들과 시간이지만 짧은 순간이라도 그 답답함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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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나는 나에게로 돌아간다 - 신현림 시인의 흔들리는 청춘들을 위한 힐링 응원 에세이
신현림 지음 / 예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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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서른 이야기를 들어본다. 시인 신현림. 이제 조금 그녀의 책을 접하기 시작했다. 시인인데 아직 그녀의 시를 접해보지 못했다. 시는 다른 책을 읽는것보다 더 깊이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고, 아직 나에게 시는 어렵기만 한 문학인 것 같다. 학교 다닐때부터 이 시에서 느껴지는 감성이라든가 말하고 싶은것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난 머리속에 물음표를 그려가며 뭘 말하고 싶은것일까? 혼자 골똘이 생각하곤 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항상 함축적으로 무언가를 담고 있는 시는 그렇게 나에게 여전히 어려운 작품이다.

 

 

 

아쉬운데로 그녀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짧게나마 소개해주는 그녀의 시를 듣곤 한다. 그리고 이번에 <서른, 나는 나에게로 돌아간다>를 통해 그녀의 서른을 보게 되고 지난 나의 서른도 생각해본다. 서른하고 이제 두해를 맞이하고 있다. 처음 서른이 나에게 찾아왔을때도 남들처럼 유난을 떨거나 설레하거나 우울하진 않았다. 다만 삼십년이란 세월동안 많이 성숙하지 못한것, 남들만큼 열심히 살지 못했던 나 자신.. 그리고 남들만큼 해놓아야 할 일들을 해놓지 못하고 뒤쳐진 그 모습이 싫었다. 하지만 그건 많은걸 이루어 놓은 다른 누군가도 다 똑같이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마흔이 되면 또 그때까지 남들만큼 열심히 해 놓은게 없다고 투정부리고 여전히 어른스럽지 못한 모습으로 살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철들면 금방 나이들지 모른다. 오히려 철들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도.. 부족한걸 알기에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도 인생을 살면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녀의 서른은 나보다 더 암담한 현실인듯 보였다. 그때까지 번듯하게 취업을 해본적도 없고 부모님이 벌어다 주신 돈을 받아쓰며 그녀는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우울하고 잠못드는 날들로 힘들어하고 그렇게 힘들어하는 딸을 위해 부모님은 그녀를 도와주고 다른 그녀의 자매들도 그녀를 도와준다. 물론 미안하고 고맙다. 하지만 그만큼 맘이 편치 않기도 한다. 그녀가 시집 <세기말 블루스>를 내기까지는 힘들었던 나날들의 서른을 보냈다. 고통스러웠던만큼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로인해 그녀는 그녀의 이름을 알리는 시집을 낼 수 있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불면증에 힘들어하고 가족모두 힘들게 했고, 스스로도 하루 하루 먹고 살기 힘들었던 나날이었다. 그런 서른쯤은 그녀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날들이지만 그 시간만큼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었다. 지나고나면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었던 날들이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려가지만 여전히 그녀는 다른 친구들처럼 한발 먼저 가지못하고 제자리에서 끙끙 대는 날들이 많았다. 때로는 죽음을 생각했던 순간도 있었다. 만약 그때 그런 나쁜 생각을 했다면 지금의 행복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남편과는 헤어졌지만 사랑하는 딸을 얻었다. 힘들었던 시기, 이제 엄마에게 갚아주고 싶었지만 그땐 이미 엄마는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많을걸 해주지 못했지만 그만큼 엄마의 존재를 알기에 딸에게 친구같은 엄마가 되어주기 위해 더 노력한다.

 

 

 

 

인생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사랑. 결혼의 실패로 사랑은 두려울지 모르지만 사랑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걸 알기에 젊었을적의 그녀는 사랑하는 순간은 많이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의 서른쯔음의 청춘들에게 말한다. 열심히 사랑하라고.. 그때 할 수 있는 사랑이 있기에.. 그리고 아프면 아픈데로 성숙할 수 있고 좋으면 좋은데로 행복할 수 있다는걸 알기에 사랑하라고 말한다. 서른,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내 마음가짐에 따라 나의 서른은 또 다른 삼십대의 시작이 될 수 있지만 벌써 서른이구나.. 라는 생각은 또 다른 좌절과 걱정만을 가지고 올지도 모른다. 서른을 달려오는 동안 많은 실패를 한사람들도, 많은걸 잃었던 사람들도, 많은걸 이룬 사람들도 그 시절을 잊지않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면 앞으로는 그 실패가 줄 것이고, 잃었던 만큼 많은걸 다시 얻을 수 있을것이고, 더 많은걸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가짐으로 인생은 바뀔 수 있다. 내가  열심히 내 인생을 사랑한만큼. 그녀는 <서른, 나는 나에게로 돌아간다>를 통해 다시 감성의 나이 서른으로 돌아가본다. 늘 깊고 진하게 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때 힘들고 지쳤어도 그렇게 외롭고 힘든만큼 열심히 책을 읽고 열심히 사랑하며 살았다고 말한다. 지금의 청춘들에게도 그런 말을 하고 싶은건지 모르겠다. 자신의 서른으로 돌아가 지금의 서른에게 말하고 싶은것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걱정한다고 서른이 찾아오지 않는것도 아니다. 그렇게 신현림은 자신의 서른쯤의 이야기로 서른의 청춘들을 위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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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 하버드대 종신교수 석지영의 예술.인생.법
석지영 지음, 송연수 옮김 / 북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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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만났다. 나와 다르게 많은 이들이 하버드법대의 종신교수로 알고 있었다. 역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책을 통해 만나는 일이 반갑다는 사실을 새삼 또 한번 느끼게 된다. 무튼 나는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를 통해서 그녀를 알게 되었다. 이 책속에서는 그녀의 인생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녀의 어린시절, 가족,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되기까지, 그녀의 삶이 묻어나있는 책이다. 아시아 여성 최초로 하버드법대의 종신교수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대단하다. 그곳에서 그녀가 강단에 올라 학생들을 가르친다.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의사였던 아버지, 약사였던 어머니. 어린시절의 그녀는 어머니의 판단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된다. 그녀가 한국에서 자라던 당시에는 많이들 미국으로 이민을 가던때였다. 지금이야 우리나라가 빠르게 성장해서 살기 좋은 나라가 됐지만 그녀가 자라오던 시절만해도 힘든시절이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한국은 통금 시간이 존재하던 때였다. 할머니는 아들을 못 낳은 어머니를 원망하는 때이기도 했다. 무튼 그녀는 어머니의 빠른 판단으로 가족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의사였던 아버지는 원치 않았지만 그곳에서 커야 한다는 아내의 생각을 저버릴수 없어 함께 움직이게 된다. 물론 그녀의 아버지도 미국에서의 삶이 쉬웠던 것은 아니였다. 처음 그녀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닐때 언어를 따라갈 수 없어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그녀의 동생은 말길을 못 알아듣는다며 청력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만큼 어린나이에 어른도 적응하기 힘든 미국이라는 땅에서 그녀도 쉬울리가 없었다. 많은 차별이 있기도 한때였고 가난했기에 좋은 집에서 살기 힘들어 여러번 이사를 가기도 했다. 하지만 차츰 적응해 가기 시작한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어느정도 말귀를 알아듣고 읽을 수 있게 된 것도 책을 통해서이다. 읽을 수 있는 순간부터는 정말 닥치는데로 책을 읽었다. 밥을 먹을때도 화장실을 갈때도 어디서나 빠지지 않고 책을 읽었다. 책을 살 수 없었기에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데리고 도서관을 갔다. 그리고 그녀가 원하는만큼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자주 책을 읽게 해주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와 남달랐다. 자식들을 교육 시키는 방식이 방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녀들에게 신경을 크게 써주는것도 아니였다. 그 덕에 학생때부터 그녀는 많은 것을 배웠다. 무용도 배웠고 악기도 배웠다. 결국에는 그녀가 하버드에 가서 법을 공부하면서 진짜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되고 지금 법대 교수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다른 것에 흥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였다. 아주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녀 나름대로 모든 것에 열심히 따라하려고 최선을 다해왔다.

 

 

 

특히 그녀가 무용을 배우고 그 무용을 그만하게 되었을때는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더 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더이상 그녀가 무용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무용을 그만두고 악기를 배우고 연주도 하고 대회에도 나가보고 그렇게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다양한 것을 배울 기회를 제공해 주셨다. 다른 엄마들처럼 붙어다니면서 계속 신경 써주지는 못했지만 항상 옆에서 그녀가 모든 배우길 바랬고 칭찬을 하진 않았지만 그녀가 항상 긴장할 수 있게끔 채찍질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칭찬으로 성장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에게는 그런 어머니의 교육방식이 더 그녀를 강하게 만들었들지도 모르겠다. 공부를 아주 썩 잘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그녀가 예일대에 들어가려고 했을때는 조금의 좌절을 겪기도 했다. 다들 뛰어났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공부를 잘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수업시간에 글을 쓰는 수업이 있었을때 글을 써보았지만 그녀는 글 쓰 는것에는 흥미가 없었다고 한다. 스스로 글쓰는 것에는 취미가 없다는걸 깨닫게 된다.

 

 

 

 

그러다 그녀는 법을 만나게 된다. 법에 관한 글을 쓸때는 다른 논문을 쓸때와는 다르다는걸 느낀다. 하버드 법대에 가게 되고 그때부터는 진짜 자신이 원하는 그 무언가임을 깨닫게 되고 다른 것을 배웠을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그녀가 만난 진짜 인생이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래서 지금까지 법을 공부해오고 하버드 법대의 종신교수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가르치는것에 흥미를 느끼고 도움을 준다. 책 읽기를 통해서 많은걸 알게 되고 그것이 지금 그녀에게는 피와 살이 된다. 이민오면서 많은 힘들었던 일도 있었을 것이고 공부하면서 많이 괴로웠던 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극복해 나갔고 지금의 삶을 소중히 생각하며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녀의 인생, 예술, 법에 대한 이야기로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는 채워져있다. 여전히 공부하고 여전히 열정적으로 일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신교수로 많은 이들이 그녀를 알고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한국인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해가 되지 않게 그곳에서 열심히 일할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이들이 그녀에게 도움을 주었고 그녀또한 그들에게 감사해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고마움을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더 많은 좋은 사회인을 만들어갈꺼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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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서서 먹는 반찬가게
사토 게이지 지음, 김경은 옮김 / 김영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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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찾아 올것 같지 않은 곳에 식당이 있다. 어떻게 여기까지 사람이 올까 싶은 곳에 맛집이 숨겨 있다. 정말 맛있는 집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에 있어도 줄을 서서 먹고 대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럴때보면 여기까지 와서 이걸 먹고 싶을까? 라는 생각을 하곤했다. 물론 그런 집에 가면 특별한 맛이 있긴하다. 전부 그런건 아니지만 왠만하면 그렇게 외진 곳에 있어도 잘 되는 집은 정말 잘되더라. 하지만 이유없이 그런집이 잘 되진 않는다. 분명 그 집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일본에는 그런 반찬가게가 있다. 산골에 위치한 작은 가게. 종업원은 열명 좀 넘고 파트타임까지 합쳐도 그리 많은 직원이 있는건 아니지만 연매출이 82억원이 된다고 한다. 일본의 경단이라고 할 수 있는 오하기와 반찬이 전 매출의 60%를 차지한다. 처음 사이치에가 반찬가게를 경영하기 전에는 매출이 높지 않았다. 처음 힘든 고비를 넘기고 사이치에를 도와주는 경영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받은 후 조금씩 그의 가게는 성장할 수 있었다. 반찬의 개수도 많다. 그렇게 많은 가지수를 하고도 손익이 생길 수 있는것은 여기저기 물가가 올라가도 사이치에는 고객들의 수입이 오르지 않는 이상 왠만하면 반찬가격을 올리지 않았기때문이다. 손실을 줄였기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손실을 줄이는 것이 쉽진 않지만 맛있게 만들면서 재료를 버리지 않게끔 만드는 것이 사이치에 성장의 비결이다.
 
 
 
 
사이치에는 가족이 운영하는 가족가게이다. 아내는 전무로 일하고 아들은 상무이다. 반찬은 대부분 아내가 맡아서 일을보고 있다. 오하기를 만들기 시작할때만해도 사이치에도 같이 오하기를 만들었다. 지금은 직접 만드는 일을 하진 않지만 오래도록 만들어 왔기 때문에 사이치에의 오하기는 어떤 모양이며 어떤 맛을 내야하는지 그는 알고 있다. 조미료없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날 꼭 먹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혹 선물 받은 사람들에게서 상했다는 말이 들려올때도 있다. 그럴때는 그날 바로 먹지 않으면 팔 수 없다는 단호한 말을 하면서 손님들에게 그날 그날 먹을 것을 강조한다. 처음 오하기를 만들때 누군가 부탁해서 만들기 시작했는데 많이 달지 않으면서 두개는 먹을 수 있는 옛날 오하기의 맛이 살아있는 그런 오하기를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재료비를 아끼기 위해 달지 않게 만들었냐고 하기도 했단다. 그래도 사이치에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자기네 방식의 옛날식 오하기를 만들어 지금의 맛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오하기는 많은 손님이 일부러 사러 산골까지 오는 상품 중 하나가 되었다.
 
 
 
 
가정식 반찬을 만드는 것 또한 전무가 맡아서 관리하고 있다. 요리를 처음부터 해왔던 사람도 아니었고 어떻게 하면 맛있게 만들수 있을까 실패를 거듭하면서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게끔 하는 반찬을 만들어 갔다. 항상 고객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요리를 했기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반찬을 만들어 온 것이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만든 반찬이 사람들에게 맛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직접 손님에게 데려가서 '이 사람이 만들었어요'라고 그 자리에서 바로 칭찬을 해준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 특별한 레시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여러번 반복해서 그 맛을 찾아낸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물어보면 어떻게 만들었는지 바로 알려주기도 한다.
 
 
 
 
물가는 올라도 사이치에의 반찬값은 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손실을 줄이려고 애쓴다. 그래서 먼곳까지 이 반찬과 오하기를 먹으러 찾으러 오는것 같다. 사이치에는 매일, 매주, 매달, 매년의 매출현황을 도표로 만들어서 어떤 반찬이 언제 많이 나가는지 언제 조금 나가는지 분석하면서 그때 맞는 반찬을 만들어오고 있다. 그래서 더 손실이 줄 수 밖에 없다. 반찬이라고 하는 것이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사람들이 먹는 것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항상 사이치에만의 보고서를 보고 그 날의 반찬의 수와 양을 결정한다.
 
 
 
 
작은 가게이다. 그렇지만 많은 손님들이 일부러 이곳을 찾는다. 그만큼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가게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반찬과 오하기는 영업이 종료되기 전에 다 팔린다. 간혹 다 못 판 상품은 정확히 5시 45분에 반값세일을 한다고 한다. 반찬에 따라 할인율이 다른것도 아니고 무조건 반값 세일이다. 그렇게라도 팔면 적어도 손해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해서 재고를 남기지 않게 반찬을 다 판다. 작은가게이기때문에 다른 가게와 경쟁력을 달리해야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여러가지 방법을 고안해내어 지금의 사이치에를 이어오게 되었다. 전무는 새벽 1시반부터 일어나 반찬을 만든다. 잠은 4~5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한다. 그래도 그들은 좋아서 그리고 고객이 찾아주어 열심히 일한다. 그들의 인생은 고객들에게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주기로 결정했다.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사이치에도 그의 아내도 아들도 고객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일을하고 자신의 직원들도 가족처럼 생각하며 아끼며 일할 것이다. 앞으로도 줄을 서서라도 먹고 싶게끔 만드는 반찬을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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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셰프 샘 킴의 소울 푸드
샘 킴 지음 / 담소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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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킴. 이름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드라마 '파스타' 최현욱의 룰모델이었다고 하니 누구인지 알 것 같다. 드라마'파스타'를 참 재밌게 봤다. 뜨겁고 불꽃튀는 주방의 현장. 스텝하나가 꼬이면 모든 것이 꼬여버리는 현장, 누군가 그 상황을 지시하지 않으면 모든게 엉망이 되어버릴것만 같았다. 누군가는 그 주방을 휘어 잡아야 맛있는 요리가 완성되는 곳이었다. 요리사라고 하면 요리만 잘 하면 되는거라고 생각했는데 나 하나 잘 한다고 주방은 돌아가는 현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드라마를 통해 그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크림 파스타와 토마토 파스타만 즐겨 먹던 나에게 '알리오올리오'라는 오일 파스타의 매니아가 되게 만들어 주었다. 바로 그 현장에 샘킴이 있었다.

 

 

 

 

어린시절부터 요리하는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집안이 좋았지만 갑자기 아버지 사업에 부도가 나고 어머니는 하숙을 하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아끼기위해 직접 요리를 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밖에서 밥을 먹고 들어오곤 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면 해결하기 위해 그때부터 어머니는 하숙생들의 불만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그런 세세한 부분을 하나 꼼꼼히 체크하며 어머니는 요리를 배워갔다. 누군가에게 배운것도 아니었지만 스스로 생계를 위한 요리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를 통해 그도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누군가 그에게 소울푸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이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오랜 식당생활로 인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요리에 대한 상식과 이론에서 벗어나 정말 그 상황에 맞게 양을 조절하고 없는 재료가 있으면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아내어 누구보다 맛깔나게 요리하신다. 그리고 그 방법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 그가 알고 있는 상식에서 벗어날지 모르지만 그에게 있어 그 맛은 그의 소울푸드가 된다. 누구에게나 그런 음식이 있다. 꼭 맛있는 음식가 아니여도 누가 만들어주냐에 따라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주냐에 따라 그 음식은 그들에게 마음을 울리는 소울푸드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요리하는 어머니를 통해 그는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머니를 대신에 장을 보고 요리에 흥미를 가지고 하숙집에서 가끔은 자신이 만든 반찬을 내 놓으며 하숙생들의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 어려운 형편이없지만 진짜 요리를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누구 하나 의지할 곳 없이 돈을벌어서 생활비를 충당해야했다. 처음에는 먼친척의 떡집에서 그리고 자신에게 요리를 알려주신 일식집에서 그는 자신만의 요리 세계를 펼치게 되었다. 일식집에서는 주로 칼질을 하면서 요리를 배웠고 그런 가르침으로 자신이 개발한 퓨전 요리도 선보이면서 요리에 대한 열정을 더해갔다. 하지만 불을 사용하지 않는 일식요리에 대한 열정이 줄어들고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고 싶어 또 새로운 배움의 문을 열고 이탈리아 요리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의 생활도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그는 열심히 배웠다. 공부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직접 부딪혀 배우는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이론을 알고 있으면 더 도움이 될것 같아 열심히 돈을 벌어 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미국에서 어느정도 자리잡아 갔지만 가족들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그리고 진짜 이탈리아 요리를 소개해주러 한국을 오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에게 냉혹했다. 그가 일했던 미국에서의 경력을 그 당시에 한국사람이 알아줄리 없었다. 이곳저곳 이력서를 내보지만 취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주방의 총괄셰프를 뽑는다는 보나세라의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그의 이력에 비해 젊은 나이여서 5번의 면접끝에 그곳에 채용되었다. 그의 이력을 믿지 못해 직접 요리를 만들어서 평가를 받아 그의 자존심이 상했지만 훗날 생각보다 젊었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여서 자신의 레스토랑과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신중하게 면접을 보게 되었다고 말해주어 마음을 풀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드라마 '파스타'가 탄생되었다. 어느날 작가에게서 섭외가 오고 그는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드라마에 많은 도움을 주고 그로인해 그도 이제 스타셰프가 될 수 있었다.

 

 

 

 

지금도 보나세라의 총괄셰프이고 여기저기 방송에서도 만날 수 있고 라디오에도 출연하고 있다. 아직 젊은 나이라 그에게는 기회가 많다.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열정을 다해 주방에서 일을 한다. 그의 지휘하에 음식들은 차례대로 손님들에게 내어진다. 자신이 어려웠을때 도움을 받은 만큼 이젠 그도 다른 사람들에게 배풀어 주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요리이기때문에 요리로써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에 도움을 주고 평생 요리를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먹는 사람을 생각하여 만드는 정성이 들어간 그의 요리. 언젠가 한번쯤 보나세라에 찾아가 그가 만든 열정적인 요리를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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