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출퇴근길에 <살인자의 기억법> 영화 광고를 보며, 소설이 원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일단 제목이 흥미로워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알쓸신잡>을 보게 되었는데 김영하라는 소설가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유명한 소설가 같은데, 사실 나는 처음 들었다. <알쓸신잡>을 여러 편 보면서 그의 박학다식함에 놀랐고 목소리도 좋았다. 그리고 그가 <살인자의 기억법> 저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바로 책을 읽게 되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살인자의 이야기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떠오른 영화가 한 편 있었다. 바로 <아이덴티티>라는 영화였다. 지금까지 본 최고의 반전 영화 중 하나였고 그 당시 영화를 보고 나서도 몇 달 동안 내 머릿속에서 마지막 장면이 떠나지를 않았다. 물론,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두 개의 차이점은, <아이덴티티>의 경우는 모든 사건과 이야기, 인물들이 결국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반면, <살인자의 기억법>은 살인자의 상상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살인자는 책의 처음과 끝에서 반야심경의 한 구절을 되뇐다. 그 구절은 공空에 대한 것이다. 공空 가운데는 물질도 없고 의식도 없다. 따라서 공空 가운데서는 대상도 없고 경계선도 없다. 괴로움도 없다. 물론, 즐거움도 없다. 그야말로 공空이다. 책을 읽으며, 기억이라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떠올릴 때 우리는 기억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마치 우리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실체도 없고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다. 즐거운 기억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순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잡힐 듯한 대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진다. 그 경계선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결국, 인간의 기억은 이렇게 연약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 기억에 의존하여 많은 일들을 판단하고 수행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그 기억이 공空 인지도 모르고.

 

장편소설이라고 하지만, 200페이지도 채 안되는 분량과 숨 막히는 전개로 인하여 빠르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문학평론가 권희철의 해설을 읽는데 그가 김영하의 말을 인용한 부분을 보고 뜨끔하였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그가 <빛의 제국>이 출간된 직후에 한 말인데, 권희철씨는 이 문장을 <살인자의 기억법>을 위해 아껴두었어도 좋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술술 읽힌다고 막 내려가기보다는 곳곳에 흩어져 있는 복선들을 파악하며 읽는 것이 더 흥미진진하다는 것이다. 

 

김영하씨가 책 뒷부분에서 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가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라고 고백할 만큼, <살인자의 기억법>은 주옥같은 문장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 문장들을 정리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살인을 멈춘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전문가는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말할 때까지만 전문가로 보인다."

 

"아무리 치매 환자라도 감정은 남아 있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쓰는 '우연히'라는 말을 믿지 않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웃는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자기를 무방비로 내준다는 뜻이다. 자신을 먹이로 내주겠다는 신호다."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숨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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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12-13 0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필력에 비해 그닥 대중적이지 않은 작가였던 것 같은데
알쓸신잡에 출연하면서 대중도를 높이고 때마침 영화
까지 개봉하면서,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역시 타이밍이라는.

경장편 소설로 예전에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데굴데굴 2017-12-13 09:56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에 알쓸신잡 통해서 알게 되었네요 말씀대로 영화의 가장 큰 수혜자인 것 같습니다

저도 역주행까지는 아니지만 다른 책도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데미안 2017-12-13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영하 작가님은 단편이 더 재미나는 것같아요. 그리고 에세이가 더 김영하 작가를 잘 말해주는 듯해요

데굴데굴 2017-12-13 17:4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이번에 처음 읽어봤는데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