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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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는 우리나라로 치면 시골 촌놈이랑 비슷하려나. 힐빌리는 책의 서두에서 설명하듯, 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냥 가난한 시골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지역에는 폭력, 살인, 낙태, 마약, 이혼, 자살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시골이라고 해서 단순히 평화롭고 조용한 들판에서 순진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보다는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슬럼가, 혹은 그 이상의 지역으로 봐야 한다.

 

책의 저자인 J.D. 밴스는 바로 이런 지역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약물 중독자였고 자살을 시도하였으며 그의 아버지는 이미 법적인 아버지가 아닌 상태였다. 아버지란 의미가 어머니의 남편 혹은 남자친구를 의미했다면 그는 여러 명의 아버지가 있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그러한 불우하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예일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자신이 자랐던 지역에 대해 쓴 <힐빌리의 노래>라는 책을 낸 것이다. 

 

책의 서두에 그는 다음과 같이 이 책을 쓴 이유를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내가 책을 쓴 건 특별한 일을 이뤄내서가 아니다. 내가 해냈다고 할 만한 일이라야 지극히 평범한 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대부분의 아이에게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됐다."

 

<라이프 프로젝트>에서도 코호트 연구를 통해 밝혀졌지만 이혼한 가정,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불리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성공하기 힘들 뿐 아니라 실패의 삶을 살 가능성이 매우 높다.  J.D. 밴스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가 자란 환경에서는 "운이 좋으면 수급자 신세를 면하는 정도고 운이 나쁘면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은 복제되고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라며 이런 상황을 묘사한다. 그의 할머니도 경제적 빈곤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정서적 빈곤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수백만 명이 이런 상황을 되풀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운명에서 벗어난 저자는 사람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의 인생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알리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 

 

먼저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은 백인들이라고 해서 다 월스트리트나 맨허튼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공략했던 백인 노동자 계층이 바로, 저자가 속한 계층이었다. 특히 저자는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의 핏줄인데 이들은 대부분 대학 교육을 못 받고, 기계공이나 육체노동자로 살아간다.

 

저자의 어린 시절, 아버지가 너무나 자주 바뀌는 상황에서, 그의 가정은 하루가 멀다 하고 어른들이 다투는 일이 많았다고 이야기한다. 욕하고 고함치고 치고받고 싸우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어린아이가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났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자주 심한 복통을 겪었다고 회상한다. 이런 복통이 스트레스 표출의 일종이었던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음이 아픈 대목이 많다. 어머니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를 죽이려고 해서 저자는 다른 집에 도망가여 경찰을 불러야 했던 적도 있었다. 또한 동시에, 마약과 불륜을 하면서도 자식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지 계속해서 사과를 했다고 한다. 문제는 사과를 하고 안 해야 되는데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해서 저질렀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엄마의 사과가 진심이었다고 믿는다고 말하는데, 이 부분도 가슴이 뭉클한 장면이다. 

 

"결국 나는 그전에도 수없이 들어봤던 사과를 또다시 들었다. 엄마는 언제나 사과를 잘했다.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미안하다'라는 말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린지 누나와 나는 두 번 다시 엄마와 말을 섞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엄마의 사과가 진심이었으리라고 믿는다. 엄마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항상 자기가 초래한 일에 죄책감을 느끼고, 본인의 약속처럼 '다시는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항상 되풀이됐다"

 

저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여러 이야기를 하는데, 곳곳에 자신이 어떻게 통계를 이겨냈는지에 대한 힌트를 알려준다. 그는 크게 두 가지가 자신을 구원했다고 이야기하는데 바로 '교육에 대한 열정'과 '가족'이다.

 

그의 어머니는 평생 수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저자를 도서관에 데려다주고 책을 빌려올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주변에 도서관이 널려 있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게 뭐 대단한 거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산속에 살고 주변에 도서관이 없는 지역에 산다고 가정해보면 다르게 보일 것이다. 마치, 차로 1시간 이상 가야 도서관이 나오는 지역에 살면서 아이가 꾸준히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서관을 다니는 부모처럼, 저자의 어머니와 할머니도 교육의 중요성을 믿고 자녀의 교육에 열정과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가족에 있어서 그의 할머니와 아버지는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하였다.

 

할머니는 저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었다. 먼저 할머니는 저자가 교육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모든 정성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다. 값비싼 계산기도 사주고 숙제를 잘 해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혹독하게 야단을 치셨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할머니의 마음과 사랑을 이해하고 깨닫게 된다. 그래서 더 학업에 매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래서 저자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던 3년을 '터닝포인트'로 보고 있다. 그 기간 동안 평화롭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에서 숙제도 하고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여기서 아버지는 혈육의 아버지를 의미하는데, 아버지는 이혼 후,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살았는데, 저자는 아버지를 초등학생이 되어서야 직접 만나게 되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기독교를 통해 많이 변화가 일어난 상태였고 이는 저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주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을 걱정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어릴 때의 많은 상처가 치유되었다고 저자는 책에서 고백한다. 

 

그는 책에서 어린 시절만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신분 상승을 하며 발견한 새로운 세계에 대해서도 이이갸하고 있다. 로스쿨 졸업생들의 어마어마한 연봉, 그들만의 면접 방식, 인맥 등 그들의 리그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자본의 불평등이 가난한 이들을 더 고립시키고 가진 자들의 담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정부 정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난한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실재'를 제대로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탁상공론 식으로 정책을 만들고 혜택을 주려고 하지 말고 실제 그곳의 빈곤한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목도하고 들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하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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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12-12 14: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부터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기 시작했습니다.
예상한 대로 재밌어서 진도가 쑥쑥 나가네요...

힐빌리 출신으로 예일대 로스쿨 졸업생이라니 대단하
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레이터 애팔래치아 전역이 카터 행정부 이후 공화당
으로 넘어갔다는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데굴데굴 2017-12-12 15:35   좋아요 0 | URL
저도 재미있어서 마지막에 조금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렇죠. 지방에 살다가 서울에 와보니, 지방에 있는 아이들은 여러 측면에서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보다 in서울 대학에 들어가기가 정말 쉽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미국은 오죽할까 싶네요. 미국 예일대 로스쿨은 전세계 학생들이 경쟁하는 곳이니깐요.
그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위치를 되새기는 과정이 좋았습니다.


조승욱 2017-12-12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난은 대물림된다는 말이 떠 오르네요.
이 말대로만 된다면 세상사는 재미가 없겠죠. 이런분도 세상에는 있지 싶어
위안과 희망을 얻으면서 한사람의 인생에서 주변환경의 영향이 성공에 미치는 정도는 얼마나될까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좋은글 읽을 수 있어서..고맙습니다

데굴데굴 2017-12-12 15:3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라이프 프로젝트>에서도 나오지만, 가난한 사람은 이미 불리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코호트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 야심 찬 학교, 거주지, 가정환경, 그리고 바로 개인의 의욕(의지)에 의해 극복할 수 있다고 하니...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승욱 2017-12-12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라이프 프로젝트란 책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저 책의 저자는 아마도 불리한 조건을 극복한 사례로 보면 좋겠다 싶네요. 도움주셔서 감사합니다

데굴데굴 2017-12-12 17:26   좋아요 0 | URL
네 통계적으로 불리한 경쟁을 어머니와 할머니의 교육열, 할머니의 애정과 사랑, 저자의 의지 등으로 이겨낸 사례를 너무나 잘 풀어낸 책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