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기사단장 죽이기 - 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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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이후, 7년 만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이다. 1,2권 합쳐 1,2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7년이라는 시간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책에는 일본의 중국 난징 대학살이 언급되는데 이로 인해 출간 당시 저자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의 우익 세력으로부터 맹비난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에도 이슈가 되었다. 이 기사를 접하며 <기사단장 죽이기>에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현실과 또 다른 세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러 관점으로 이야기를 해석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시간'과 '고리(관계)'를 중심으로 풀어가고자 한다.

 

먼저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전부 해결해줄 것이다', '시간이란 위대한 존재이다' 등 강박적으로 시간에 대한 여러 표현들이 다양한 인물을 통해 내뱉어진다. 저자는 왜 그렇게 '시간'에 집착하는가?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간과 관련된 중요한 특징은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가고 흘러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주인공이 아마모토 도히코를 병문안 갔다가 또 다른 세계로 사라졌을 때이다. 보통은 다른 세상, 미지의 세계, 내세 등을 경험하는 경우, 그 경험을 다 하고 돌아왔을 때 현실의 시간은 멈추어 있는데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는 현실의 시간도 여전히 흘러간 상태였다.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는 것을 책에서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로 보이는 강에 대한 묘사를 통해 다시 한 번 드러내고 있다.

 

"이 강은 '나는 강물이며, 쉼 없이 흐른다'라는 한 가지 사실에만 너무 많은 의식을 집중한 듯 보였다."

 

이 강은 시간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과 비현실의 관계가 단순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준다. 경계로 보이는 강은 다르게 보면 현실과 비현실이 공유하는 강인 것이다. 즉, 현실과 비현실은 연결되어 있으며 시간은 여전히 그 양쪽에서 동시에 흐르고 있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영적인 세상, 혹은 관념의 비현실적 세상과 현실이 단순히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저자의 관점이다. 이 관점은 소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주인공의 아내인 유즈의 임신도 같은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결국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현실과 비현실은 알 수 없는 통로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두 세계는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다. 주인공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사람은 무언가를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 나는 생각했다. 어떤 특수한 채널을 통해 현실이 비현실이 될 수 있다. 혹은 비현실이 현실이 될 수 있다."

 

현실과 비현실의 연결은 다음으로 이야기하려는 고리(관계)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개념이다. 고리(관계)는 사람 간의 관계이기도 하고 현실과 비현실의 관계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그림의 발견이 바로 현실과 비현실과의 관계의 시작이다. 주인공은 책의 말미에 자신이 그 그림을 발견하여 고리를 열었다고 회상한다.

 

"실제로 나는 그 그림을 발견함으로써 하나의 고리를 열어버렸다."

 

고리(관계)를 설명할 때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빚'이라는 개념이다.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저자는 '빚진 마음'을 나름 강조하고 있다. 먼저 <기사단장 죽이기>를 그린 아마모토 도히코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음을 책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세계의 거대한 흐름에 역행하기는 불가능하다는 무력감, 절망감, 그리고 또 자기 혼자 살아남았다는 정신적인 빚도 있었어."

 

즉, 아마모토 도히코에게는 그 시대에 대한 빚이 있었던 것이다. 흡사, 이 빚은 일본이 그 당시 침략한 나라(한국, 중국 등)에 대한 빚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으로 주인공과 멘시키의 관계에서도 빚이라는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주인공은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더 이상 멘시키와의 관계에서 빚이 없음을 덧붙인다.

 

"멘시키와 나 사이에 더는 빚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좁은 골짜기 너머에 사는 이웃일 뿐이었고, 가능하면 계속 그 관계에 머물고 싶었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이데아와 메타포라는 부제목을 달고 있는데, 주인공이 현실과 이데아를 통해 경험했던 것들이 결국 메타포로 작용해서 그의 길을 안내했던 것처럼 메타포는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현실에서 만났던 멘시키라는 인물에 대한 느낌이 비현실에서의 길을 안내하는 것이다.

 

"색이 없는 멘시키 씨의 무의식적 교시에 따라, 냄새도 맛도 없는 물이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 내려간다 - 그것은 뭔가를 암시하는 지도 모른다. 혹은 아무것도 암시하지 않는지 모른다."

 

또한 주인공도 책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나에게는 믿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좁고 어두운 장소에 갇힌다 해도, 황량한 황야에 버려진다 해도, 어딘가에 나를 이끌어줄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순순히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시간과 관계, 그리고 빚과 메타포라는 개념을 연결하여 주관적으로 정리하면 국가 간이든 개인 간이든 관계 가운데 존재하는 빚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만, 시간이 직접적으로 해결해주기보다는 (주인공과 멘시키의 관계처럼) 시간이 흐르는 동안 누군가가 그 빚을 갚음으로 문제가 해결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빚을 갚을 때 계속해서 이 좁은 세상에서 저 너머에 있는 이웃으로 계속 머물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저자는 책 전체 이야기를 통해 하나의 세계와 메타포를 형성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책이라는 비현실과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사이의 메타포. 그리고 결국은 책에서 담고 있는 이야기와 메시지를 통해 현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즉, 빚진 일본이 사과해야 한다고.

 

뭐 이건 어디까지나 아주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다. 현대 사회는 포스트모던 사회이고 개인의 해석은 존중받아 마땅하니깐. 덧붙이면, 주인공 이름을 기억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생각이 안 나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책에서 주인공 이름은 끝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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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17-11-28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메타포-. :-)

데굴데굴 2017-11-28 22:07   좋아요 1 | URL
단순한 소설은 아닌 것 같아요! 그게 하루키의 묘미 같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