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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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최근 저작인 <호모 데우스>이다. 책을 읽는 내내, 유발 하라리는 뛰어난 이야기꾼이란 생각이 들었다. 온갖 분야를 넘나들며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뒷받침한다. 그의 예측이 얼마나 타당하고 실현 가능한지 여부를 떠나서 방대한 자료 수집 능력과 그것을 풀어내는 능력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듯하다.

 

저자는 먼저 인간이 해결한 것들을 언급한다. 대표적으로 기아, 역병, 전쟁이다. 과거에는 이 세 요인으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이제는 '관리할 수 있는 난제'가 되었다고 정리한다. 특히,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과거에는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해결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어 신에게 기도하였던 문제들을 인간이 바로 해결하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제 인간의 그다음 목표는 '불멸, 행복, 신성'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성공은 야망을 낳는다. 인류는 지금까지 이룩한 성취를 딛고 더 과감함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전례 없는 수준의 번영, 건강, 평화를 얻은 인류의 다음 목표는,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가치들을 고려할 때, 불멸, 행복, 신성이 될 것이다. 굶주림, 질병,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인 다음에 할 일은 노화와 죽음 그 자체를 극복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극도의 비참함에서 구한 다음에 할 일은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짐승 수준의 생존투쟁에서 인류를 건져올린 다음 할 일은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바꾸는 것이다."

 

인간과 신을 구분하는 대표적인 단어 중 하나가 바로 'mortal' 과 'immortal'이다. 즉, 죽음이다. 그 경계선을 허무는 작업을 이제 인간이 시도하고 도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그 경계선이 허물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인간이 신이 되는 즉, 호모 데우스가 되는 것이다.

 

이 경계선을 허무는 작업은 과학으로부터 시작된다. 과학은 죽음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 문제로 본다. 저자는 2200년 혹은 2100년에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여러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한다. 그러나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죽음을 극복한다고 해서 죽은 이를 살린다는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자동차의 부품을 교체하는 것처럼, 노화되는 몸의 일부를 교체하는 개념이다. 즉, 이미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다.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신을 믿는 이유 중 하나는 행복한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대부분의 종교가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준다. 그런데 이런 행복을 생화학적 약물을 통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신성은 앞에 나오는 두 개념을 포함한다. 이런 놀라운 능력을 가진 인간이 또 어떤 일을 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미지의 세계가 열리는 셈이다. 즉, 상상하지도 못한 일을 하게 되는 세상, 바로 신성을 가진 인간, 즉 호모 데우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세상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 좀 심하게 말하면, '아니면 그만'이라는 태도로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다. 앞에 멋들어지고 장황하게 인간이 드디어 신이 되었다고 말해놓고는 자신의 예측이 빗나갈 수 있다고 여지를 두는 건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가볍게 읽으라는 뜻인지, 아니면 빗나갈 경우에 비난을 회피하려는 것인지. 어쨌든 여기서도 그의 천재적인 이야기꾼 기질이 드러난다.

 

"가장 중요한 점인데, 이 책의 예측은 예언이라기보다 현재 우리 앞에 놓인 선택들에 대해 논의하는 한 가지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 논의로 인해 우리가 전혀 다른 선택을 하고 그래서 내 예측이 빗나간다면 오히려 잘 된 일이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데 무엇 하러 예측을 하겠는가?"

 

"이것이 역사 지식의 역설이다 행동을 바꾸지 못하는 지식은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행동을 바꾼 지식도 곧 용도 폐기된다. 우리가 데이터를 더 많이 보유할수록, 역사를 더 잘 이해할수록 역사는 그 경로를 빠르게 변경하고, 우리의 지식은 더 빨리 낡은 것이 된다."

 

저자는 인간을 해체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먼저 감정이다. 감정은 인간뿐만 아니라 포유류도 가지고 있다. 물론, 연민, 잔인함, 경이감 등은 인간만 가지고 있는 듯하다.(그렇지만 반대로 동물들만 가지고 있는 감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감정은 특정 알고리즘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다음으로 '영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저자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영혼을 가졌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전혀 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또한, '영혼이라는 개념 자체가 진화의 기본 원리에 모순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추가로 설명하면, 영혼은 분리되지 않고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인데, 이러한 성질의 것은 단계적 진화를 통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영혼이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 

 

재밌는 것은 저자도 과학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점이다. 단, 현재의 과학이라고 단서를 붙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현재 과학이 마음과 의식, 감정(고통, 분노, 사랑 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는 10년 내지 50년 안에는 확실한 설명이 나올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건 순전히 그의 추측(예측이 아니라)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는 설명할 수 없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 모른다면 '마음'이라는 개념을 폐기하자고 이야기한다. 마음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그저 사회적, 법적 관습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과감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놀랍다. 저자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 진위 여부를 떠나서 정말 저자의 사고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어미 코끼리는 사자가 자기 새끼를 해치려 하면 곧장 달려가 목숨을 걸고 새끼를 구하는데, 그런 행동 역시 그 새끼 코끼리가 자신이 몇 달 동안 애지중지 기른 자기 새끼임을 기억해서가 아니라, 사자를 향한 알 수 없는 어떤 적개심 때문이다. 주인이 돌아오면 개가 좋아서 팔짝팔짝 뛰는 것은 새끼 때부터 자신을 먹이고 보살핀 사람을 알아보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설명할 수 없는 황홀감에 휩싸인 것뿐이다. 우리는 이런 주장들을 증명할 수도 반증할 수도 없는데, 이것이 이른바 '다른 마음의 문제'의 변형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것은 감정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영혼도 아니라고 단호히 이야기한다. 그는 여럿이 소통하는 의사 소통 능력과 유연한 협력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사피엔스만이 비현실적인 것을 상상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의 논리에 따르면 동물들도 비현실적인 것을 상상할 수 있지만 인간이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여간, 이런 사피엔스의 능력으로 인해 새로운 것들을 창조할 수 있게 된다.

 

그는 무신론자답게 종교를 창조한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며 단지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도구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기독교를 대놓고 공격하고 비판한다. 기독교인들이 죽는 날까지 망상을 붙들고 산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성경을 허구, 신화, 오류가 넘쳐나는 책이라고 말한다. 종교가 단순히 윤리적 판단을 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실적 진술을 주장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지성인답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구가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첨언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그의 천재적인 이야기꾼 기질을 발휘한다. 허구는 사회가 돌아가는데 꼭 필요하다고 말하며, 돈, 국가, 기업, 규칙 등을 예로 든다. 하지만 이들은 단지 도구이기 때문에 도구를 위해 우리의 생명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고 선을 긋는다.

 

그는 자본주의를 찬미하는데, 자본주의가 오히려 종교보다 훨씬 더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생산이 증가하고 치료제가 만들어져서 기아와 질병으로부터 극복하였기 때문에 그 공을 자본주의에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의 폐해도 존재한다. 그래서 유발 하라리는 자본주의에 이어 새롭게 나타난 종교가 바로 인본주의라고 말한다. 그는 인본주의는 한 마디로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자신에게 충실해라. 자신을 믿어라.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라. 자신이 좋다고 느끼는 것을 해라'라고 장 자크 루소의 말을 인용한다. 즉, 남에게 피해만 안 준다면 아무 문제없다는 것이다. 이 논리로 동성애도 사적인 문제이고 개인적 감정이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부연 설명한다.

 

이 인본주의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사회주의적 인본주의(공산주의), 진화론적 인본주의(파시스트)이다. 그리고 이 분파들에 대해 저자는 인본주의 종교전쟁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914년부터 1989년까지 인본주의 세 분파 사이의 살벌한 종교전쟁이 맹렬하게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자유주의가 연거푸 패배를 당했다. 공산주의 정권과 파시스트 정권이 수많은 나라를 장악했을 뿐 아니라, 자유주의의 핵심 사상들은 매우 위험한 생각까지는 아니더라도 기껏해야 순진한 발상으로 보였다. 개인들에게 자유를 주면 세계가 평화와 번영을 누릴 거라고? 설마, 그럴 리가."

 

"자유주의는 여전히 개인의 자유를 다른 무엇보다 신성시하고, 유권자와 고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어쨌거나 21세기 초에 우리가 선택할 만한 것은 자유주의뿐이다."

 

"현재 개인주의, 인권, 민주주의, 자유시장이라는 자유주의 패키지를 대신할 이렇다 할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불멸, 행복, 신성은 결국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의 전통적 이상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인본주의의 결과로 이룬 발전들이 도리어 인본주의의 해체와 붕괴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인본주의의 근본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바로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에게 집중하는 것인데, 과학의 발달로 인해, 나의 사고 체계에 대한 알고리즘이 생기면 이 알고리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투표를 해야 하는데 나는 A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컴퓨터로 나의 모든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B를 선택해야 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나의 자유의지 판단이 틀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유의지의 붕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는 기술 인본주의와 데이터 종교가 신흥 기술 종교라고 결론 내린다. 특히, 그는 데이터교가 흥미롭다고 말한다. 즉, 이 종교는 정보의 흐름을 떠받든다. 그래서 결국 인간 중심에서 데이터 중심으로 이동하여 인간을 밀어낼 것이라고 예언한다. 

 

정리하면, 책 <호모 데우스>는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결국은 고대 종교로부터 시작된 흐름은 자본주의, 자유주의 인본주의, 기술 인본주의를 거쳐 데이터 종교로 이어질 것이고 인본주의를 통해 신이 되고자 한 인간은 결국 데이터교로 인해 지구 상에서의 인간의 절대적 위치를 빼앗길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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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11-23 2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상적인 서평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유발 하라리가 다루는 여러 개념들에 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한데 윗글 인용문 중 《우리는 이런 주장들을 증명할 수도 반증할 수도 없는데, 이것이 이른바 ‘다른 사람의 문제‘의 변형된 형태이기 때문이다.》에서 ‘다른 사람의 문제’는 ‘다른 마음의 문제’가 아닌가요? 혹시 오타가 아닌가 해서요. ^^

데굴데굴 2017-11-23 22:56   좋아요 2 | URL
그렇네요 저도 읽어보니 문맥상 마음이 맞는 것 같아서 다시 찾아보니 ‘다른 마음의 문제’가 맞네요!! 감사합니다^^

책을 읽고 처음에 정리하는데 정리가 잘 안 되서 꾸역꾸역 글을 썼는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