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평점 :
SF 소설인 멋진 신세계는 저자인 올더스 헉슬리가 1931년에 쓰고 1932년에 출판되었다. 그가 그리는 신세계는 안정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세계이다. 사회의 안정, 개인의 안정이 가장 중요한 세상이다. 그래서 계급이 존재하고 계급의 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정해지고 그 계급에 맞는 가치관을 세뇌시킨다. 이를 습성 훈련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하급 계층의 반란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사회는 안정적으로 돌아간다. 다음의 대화는 이런 신세계를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개의치 않죠. 그럴 리가 있겠어요? 그들은 다른 신분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도 못하는데요. 우리들이라면 물론 못마땅해하겠지만요. 하지만 우리들은 다른 습성 훈련을 받았잖아요. 그뿐 아니라 우리들은 조상도 달라요."
"난 내가 엡실론이 아니어서 기뻐요." 레니나가 확신을 얻었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엡실론이라면 당신이 받은 조건반사 습성 훈련 때문에 자신이 베타나 알파가 아니라는 데 대해서 마찬가지로 감사하게 생각했을 거예요."
하급 신분 계층은 책과 꽃에 대해 본능적으로 증오하는 반응을 보이도록 성장시킨다. 책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일해야 되는데 일하지 않고 책을 보는 것은 낭비이기 때문이다. 또한 책을 통해 새로운 생각이나 사상이 주입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런데 왜 꽃을 넣었을까? 자연에 대한 사랑도 낭비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시간도 하급 신분 계층에게는 사치라고 보았다.
신세계에서는 엄마를 통해 아기가 출생되지 않는다. 인공수정에 의해 대량 생산되고 집단적으로 양육 교육받는다. 또한 신세계는 성생활에 개방적이다.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불안정을 야기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그들은 '오늘 누려도 되는 즐거움을 절대 내일로 미루지 말라'라고 교육받는다. '안정'이라는 최고 가치 앞에 모든 가치가 종속되는 신세계이다.
SF 소설이지만 여전히 미래에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소설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다. 같은 일을 해도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 했을 때 더 뛰어나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체구가 작은 사람보다 큰 사람 앞에서 더 기죽는 경우도 많다. 사람의 본성이 그렇다. 책에서는 신세계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리면서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준다.
"감마들과 델타들과 엡실론들은 사회적인 우월성을 어느 정도까지는 육체의 크기와 결부 지어 연상하도록 길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큰 체구를 중요시하는 최면 학습의 편견은 미약하게나마 만인이 지니게 된 속성이었다."
이 신세계에서 최고 신분인 알파 플러스로 살고 있는 버나드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세상에서 '진정한 나'를 찾고 싶어 한다. 버나드는 다들 복용하는 환각제 비슷한 소마도 복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난 차라리 나 자신 그대로 남아 있고 싶어요."
"불쾌하더라도 나 자신 그대로요. 아무리 즐겁더라도 남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버나드는 거대한 집단의 의미 없는 부품 하나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부품이 아니라 자유를 원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는 신세계의 안정 추구와 반대되는 것이었다. 신세계는 '개인이 감정을 느끼면 집단생활이 비틀거린다'라고 가르치는 세계였다. 이 세계에서 버나드는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버나드가 성공을 하게 되자 그는 소마가 아닌 성공에 도취되어 '진정한 나'를 잃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는 그동안 불만이 가득했던 신세계와 타협하게 된다. 또한 성공을 잃을 두려움에 소마를 복용하게 된다. 책에서 이런 버나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때까지는 꽤나 못마땅하다고 느꼈던 세계와 완전히 타협하기에 이르렀다. 그를 중요하다고 인정해주는 한 세상의 모든 질서는 한없이 좋기만 했다. 하지만 성공으로 인해 타협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기존 질서를 비판하는 특권을 포기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비판한다는 행위 자체가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인식을 드높였으며 그로 하여금 훨씬 큰 인물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게 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진다. 이런 사례가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가? 현 체제를 비판하던 자가 권력의 자리에 오른 다음, 그 체제를 유지하려고 변하는 경우도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여전히 체제에 대한 비판을 하는데 이는 자신이 중요한 인물이라는 인식을 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렇게 연약한 존재인 것이다. 이런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알고 늘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그 어느 누구라도 같은 흐름에 빠질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책을 읽다가 다음 대목에서 깜짝 놀랐는데 최근에 했던 생각과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친구 관계, 그리고 편하고 가까운 관계를 이용한다는 생각을 최근에 했었는데 그 부분을 콕 집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버나드는 야만인이라면 희생자로 삼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무척 만만해 보였고, 다루기가 아주 쉬운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지닌 한 가지 중요한 기능이란, 적들에게 가하고 싶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보복들을(보다 온건하고 상징적인 형태로) 기꺼이 감수한다는 것이다."
이 신세계에서 안정을 추구하며 새롭게 교육시키는 것이 또한 바로 '죽음'이다.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울부짖는 야만인을 향해 간호사가 이 야만인이 얼마나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지적하는 하는 것이다. 야만인의 행동이 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한 위험한 편견을 불어넣고 그들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멋진 신세계>는 '진정한 나'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중심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것이다. 그리고 불안한 생각, 걱정, 근심도 진정한 나의 감정이고 나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 누려야 되는 진정한 자유이다. 책을 읽을 자유, 아름다움을 감상할 자유, 죽음을 슬퍼할 자유, 고독을 느낄 자유, 체제에 대해 비판할 자유, 심지어 불행해질 자유 등 이 모든 것이 나의 존재를 드러내는 자유이다.
물론 그 진정한 나를 추구하는 야만인의 모습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 욕망과 절제 사이에서 분열되는 자아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렇지만 야만인은 신세계로 돌아가지 않는다. 마지막 그의 결정은 아쉽기는 하지만 그는 그런 자아분열까지 자신의 모습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