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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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장편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단은 책의 두께가 현실적으로 무겁죠. 전자책의 발달이 이러한 문제를 경감시켜주고 있다고 해도 책장을 넘기는 기쁨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전자책이 완전한 대체품이 될 수 없으니까요. 또한, 장편의 두터움은 단순히 들고 다니기 힘들다는 사실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읽기 힘들기도 하지요. 읽는 시간이 물리적으로 오래 걸리고, 온전히 책만 읽고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재개와 중단을 오가며 노력해야 하죠. 그럼에도 그러한 노력을 하는 이유는 굳이 어렵게 말하지 않아도 자명합니다. 재미있으니까!

 

  오늘 떠들어 볼 작품 역시 장편입니다. 만만치 않은 무게의 500쪽이 넘는 책이죠. 하지만 점점 손에서 놓기 힘들 정도로 흡입력이 뛰어나고, 서사는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너무 진부한 표현이지만, 확실히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바로 이언 매큐언 Ian McEwan'속죄 Atonement입니다.

  줄거리를 장황하게 떠들지는 않겠습니다. 흥미로운 서사를 읽는 즐거움을 빼앗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다만 읽을 때 조금 더 눈여겨보면 재미를 더해줄 몇 가지 부분을 살펴보려 합니다.

 

  『속죄는 총 네 파트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주된 서사가 되는 1, 2, 3부와 에필로그 형식의 ‘1999년 런던이 있죠. 그중 1부는 브리오니가 화자로 등장합니다. 이 사춘기의 어린 소녀는 상상력이 매우 풍부하죠. 시시각각 변하는 브리오니의 생각과 소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1부의 큰 줄기입니다.

 

의식의 흐름 Stream of consciousness

 

  ‘의식의 흐름 기법어쩐지 국어 시간에 많이 들어봤던 말 아닌가요? 인간의 시시각각 변하는 의식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서술하는 기법이지요. 상상력이 풍부한 사춘기 소녀의 급변하는 생각은 다소 뜬금없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욱 생생하게 전달이 되기도 합니다. 몇 장면을 꼽아보자면 브리오니가 자신의 손가락을 보며 생각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한 손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다 굽혀보면서 이것이, 사물을 쥐는 용도로 쓰이는 이 기계가, 팔 끝에 달린 이 살 붙은 거미다리 같은 것이 어떻게 전적으로 그녀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그녀만의 소유물이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예전에도 몇 번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이 손가락들에도 나름의 생명이 있는 것일까? 손가락 하나를 굽혔다가 다시 펴보았다. 비밀은 손가락이 움직이기 직전의 순간에, 움직임이 없다가 그녀의 의도가 효력을 발휘하여 움직임이 나타나는 바로 그 순간에 있었다. 그것은 마치 부서지는 파도와 같았다.

 

  상상해보세요. 소녀가 방 안에서 홀로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 겉으로 보기에 어떤 일도 없고, 아무것도 아닐 그 순간에 소녀의 의식은 파도와 같이 흐르고 있는 것이죠. 이 부분에서 버지니아 울프 Virginia Woolf'의 작품이 떠오릅니다. 울프 역시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유명했고, 실제로 그녀 작품 중에 파도 The Waves라는 작품이 있기도 하고요.

  사실 이러한 연상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3부에 나오는 브리오니의 생각을 보시죠.

 

지금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생각과 인식 그리고 마음이었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과 같은 의식의 흐름, 그 강물의 흐름과 갑자기 한데 모여 잔잔한 강에 동요를 일으키는 지류, 그리고 강물의 방향을 바꾸게 될 예기치 않은 장애들. 이런 것들을 어떻게 잘 표현하는가가 그녀의 유일한 관심사이자 바람이었다. 여름날 아침의 청명한 햇살을 글로 살려낼 수만 있다면, 창가에 서 있는 아이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낼 수만 있다면, 물 위를 나는 제비의 유연한 움직임과 갑작스레 물에 뛰어들어 목을 축이는 동작을 생생하게 그려낼 수만 있다면. 앞으로 나올 소설은 과거의 그 어떤 것과도 같지 않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파도를 세 번이나 읽은 그녀는 인간 본성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종류의 소설만이 그 변화의 본질을 잡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브리오니의 의식이 그녀의 상상력에 힘입어 흐르는 장면을 하나 더 꼽아보자면, 브리오니가 애먼 쐐기풀을 막대기로 치는 장면도 있습니다.

 

  쐐기풀을 쳐내는 데 몰두하던 브리오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쐐기풀 쳐내기 종목의 최우수 선수인 그녀를 다룬 특집 신문기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내년 베를린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딸 것이 확실시되는 브리오니 탈리스를 능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기술을 갖추었고 특히 맨발을 선호했다.

 

  참으로 터무니없는 상상이지요. 그녀의 상상은 곧이어 들리는 마차 소리에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이런 순간적으로 피어오르는 상상들. 그리고 갑작스런 소리 하나에 깨어져버리고 마는 상상들.

  이렇게 속죄1부를 감상하실 때 각 인물들의 의식의 흐름에 집중해 보신다면 그들의 성격과 이후 생기는 미묘한 갈등에 더 가까이 다가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이나모 작전 Operation Dynamo

 

  『속죄2부와 3부를 거치면서 빠르게 사건이 전개됩니다. 시간도 훅훅 지나가고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는 나아가죠. 2부와 3부를 조금 더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라면 당시의 역사를 조금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난데없는 역사라니. 다소 딱딱하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2부와 3부는 인류 역사의 특별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참혹한 시기, 2차 세계 대전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 대해 세세히 알아야 속죄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소한 2부의 로비가 겪는 이야기 다이나모 작전에 대해서 알면 좋겠죠. 생소한 이름인가요? 이를 다룬 영화도 있습니다.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 Christopher Nolan' 감독의 덩케르크 Dunkirk입니다.

  기적과도 같은 대탈출. 이 탈출에 대하여 인터넷을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혹은 아예 바로 위에 언급한 영화를 보는 것도 좋겠죠. 그러면 작중 인물이 처한 상황이 마음에 더욱 와 닿을 거라 확신합니다. 알면 더 많이 보이고, 더 재미있다는 말이 이런 것을 말하는 거겠죠.

 

단절과 연결의 서사

 

  오늘 소개할 속죄를 재미있게 읽는 마지막 방법은 사실 모든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적용되는 방법이겠습니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설정의 상징성을 유추해 보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볼까요? 브리오니와 사촌들이 그녀의 창작극 아라벨라의 시련을 연습하는 장소가 원래 유아실이라는 점은 상징적인 부분이겠죠. 실제로 브리오니의 그 유아기적인 상상력 때문에 모든 일이 그릇되고 마니까요.

  『속죄를 연결과 단절의 싸움이라고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 작품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되거나 부정적인 일이 발생하게 되는 배경을 보면 대부분 단절의 이미지에 근접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혼, 사건이 일어나던 그날 밤의 어둠, 갑작스런 극의 중지와 포스터를 찢는 행위, 도자기가 깨지는 것 등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작품 내에 연결의 이미지는 무엇이 있을까요? 조부모가 걸어놓은 초상화, 에필로그, 세실리아와 로비의 관계 등.

  작품을 읽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틀로 작품을 관망해보는 것. 분명 문학을 즐기는 기본적인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어디가 맞고, 어디가 설명되지 않는지. 그렇다면 가정을 어떻게 바꾸어보면 될지.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속죄의 재미가 창조되는 것이겠지요.

 

속죄 Atonement

 

  모르고 보아도 재미있고, 알면 더욱 재미있는 이언 매큐언속죄. 추가적으로 속죄는 영화화 되기도 하였습니다. 어톤먼트 Atonement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역시 함께 즐기면 더욱 재미있겠네요.

  『속죄는 장편입니다. 삶이 바빠 책 읽기에는 시간이 빠듯한 현대인들에게 소화하기 힘든 분량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예상 외로 순식간에 읽어 내려가실 수도 있어요. 그러니 속죄가 던져주는 갖가지 질문들을 함께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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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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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운 방 문풍지 구멍을 통해 들어오던 작은 빛, 지난밤의 달을 보셨나요? 어둑해진 길을 걷다 고개를 드는 것만으로도 볼 수 있던 달인데, 누군가 달을 빤히 바라보는 모습을 본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제의 달은 부드러운 반달이었어요. 내일이면 달라질 달에 한 번뿐 볼 수 없는 반달이요.

  바닥에 무엔가 떨어뜨려서 눈을 부릅뜨고 찾으려는 것도 아니건만, 왜 그리 우리는 바닥을 보게 될까요. 알고 있어요. 당신의 어깨와 등에 올려진 고민의 무게가 너무 무거운 탓이겠죠. 조금만 짐을 덜 수 있다면, 매일 밤 달라지는 밤하늘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을 텐데요.

 

"If you look on the ground in search of a sixpence, you don't look up, and so miss the moon."

 

  다소 감상적인 소리를 했네요. 문득 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것은 오늘 이야기할 작품 제목에 달이 들어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위의 영어문장을 보셨다면, 어떤 작품을 이야기할지 예상하신분도 계시겠죠. ‘서머싯 몸 W. Somerset Maugham’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입니다.

 

  『달과 6펜스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입니다. 많은 분들이 알다시피 찰스 스트릭랜드는 화가 폴 고갱 Paul Gauguin'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큰 틀에서는 비슷한 부분도 있고, 세세한 부분에서는 다른 부분도 많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폴 고갱과 스트릭랜드의 삶을 비교하며 읽는 것도 하나의 재미입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작품에 집중해보겠습니다.

  젊은 작가인 화자가 스트릭랜드를 만나게 되는 건 그다지 대단치 않은 사교모임을 통한 일이었고, 그의 첫 인상도 특별할 것이 없었죠.

 

그저 선량하고 따분하고 정직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의 높은 인품을 존경할 수는 있을지언정 아무도 그를 사귀려 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돌연 이 평범하고 특징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처자식을 내팽개치고 파리로 훌쩍 떠나버립니다. 주변에서는 스트릭랜드가 바람이 났다는 소문이 흉흉했고, 무책임한 인간이라는 평이 입에 오르내립니다.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이 예고도 없이 사라져버렸으니 말이죠. 찰스 스트릭랜드는 정말 무책임한 인간일까요? 이제부터 우리는 화자가 기술하는 스트릭랜드의 삶을 보며 판단해보려 합니다. 끝까지 미친 인간이 아닐까 싶은 기이한 남자를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찰스 스트릭랜드?

 

  스트릭랜드를 무책임하다 말하려면, 그가 갑작스러운 도피를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봐야합니다. 젊은 여자? 풍족한 생활? 이를 확인하러 간 화자가 정작 마주한 것은 비참한 40대 남자의 모습뿐입니다. 여자는 없었습니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었고, 스트릭랜드는 오히려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젊은 여성에게 거리낌 없이 불쾌감을 드러내죠. 부유한 생활도 없습니다. 스트릭랜드는 허름하기 그지없는 호텔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당장 그는 가진 것도 없습니다.

 

  「법이라 한들 아무것도 없는 데서 뭘 뺏어낼 수 있겠소? 난 한푼도 없어요. 있어봐야 백 파운드나 될까

 

  그럼 도대체 이 미친 40대 남자는 왜 파리로 떠난 걸까요? 프랑스어도 못하면서 말이죠. 그는 간단하게 대답합니다.

 

  「나는 그려야 해요

 

광기에 휩싸인 예술혼

 

  작품의 끝까지 광기에 가까워지는 스트릭랜드의 예술욕구. 그는 정말 그리는 일 외에는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인간관계, , 명예, 그리고 자신의 건강까지. 화자는 생각합니다.

 

그의 마음속에서 들끓고 있는 어떤 격렬한 힘이 내게도 전해 오는 것 같았다. 매우 강렬하고 압도적인 어떤 힘이, 말하자면 저항을 무력하게 하면서 꼼짝할 수 없도록 그를 사로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화자가 느낀 인상이 정확하다면, 스트릭랜드는 선택했던 것이 아닙니다.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면의 악마적 광기가 그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의 영혼 깊숙한 곳에 어떤 창조의 본능 같은 것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 창조 본능은 그 동안 삶의 여러 정황 때문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마치 암이 생체 조직 속에서 자라듯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서 마침내 존재 모두를 정복하여 급기야는 어쩔 수 없는 행동으로까지 몰아간 것이 아니었을까.

 

  선택 가능한 것과 선택 불가능한 것.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스트릭랜드가 마주했던 충동은 선택 불가능한 것이었죠. 그의 충동은 그 자체로 방향성을 갖고, 강제적으로 그의 삶을 끌어갑니다. 스트릭랜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충동에 내몰려 그리는 것. 끝없이 내면의 욕구에 따라 그리는 것. 그것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무책임할 수 없습니다. 그것조차 선택할 수 없었으니까요. 실제로 스트릭랜드가 예상한 대로 그의 처자식은 그 없이도 잘살아갑니다. 오직 자신만이 비참하게 정체모를 힘에 휘둘리며 살죠.

 

  스트릭랜드는 거지가 되어서도 그림을 그리려 이리저리 노력하다가 한 섬에 정착하게 됩니다. 남태평양 중부 프랑스령 타히티 Tahiti'. 스트릭랜드는 아타라는 여자아이와 숲속 깊숙이 들어가 살기 시작합니다. 그는 오지 속에 들어가 나병에 걸려 죽기 전까지 오두막 벽면에 그림을 그립니다.

  멀쩡한 직업을 가지고, 모자란 것 없이 중산층의 삶을 살던 한 중년의 남성. 그는 갑자기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것을 쫒아가고, 그 끝은 오지에서의 고통스러운 죽음입니다. 그는 인생을 망친 걸까요?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허무와 완성, 죽음과 구원

 

  경이로운 삶이지만, 부러워할만한 삶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습니다. 화자가 말한 대로 그는 어떤 면에서 분명 위대한인간이지만, 동시에 괴팍하고 미친 인간이지요. 스트릭랜드는 어땠을까요? 본인은 본인의 삶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마지막에 자신의 존재를 바쳐 그린 그림을 불태워달라던 스트릭랜드. 악마 같던 예술혼에 휘둘리던 그는 마침내 죽음과 맞바꿔 그린 그림에서 삶의 완성을, 구원을 얻은 것일까요. 

  솔직히 스트릭랜드의 재능은 너무나 부럽지만, 그의 비참한 삶은 거부하고 싶네요. 참 이율배반적이지만요.

 

이제 그는 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온통 야릇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 그림들엔 이상하게도 그를 감동시키는 무엇이 있었다. 방바닥에서 천정에 이르기까지 사방의 벽이 기이하고 정교하게 구성된 그림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이 기이하고 신비로웠다. 그는 숨이 막혔다. 이해할 수도, 분석할 수도 없는 감정이 그를 가득 채웠다. 창세(創世)의 순간을 목격할 때 느낄 법한 기쁨과 외경을 느꼈다고 할까. 무섭고도 관능적이고 열정적인 것, 그러면서 또한 공포스러운 어떤 것, 그를 두렵게 만드는 어떤 것이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감추어진 자연의 심연을 파헤치고 들어가, 아름답고도 무서운 비밀을 보고 만 사람의 작품이었다. 그것은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신성한 것을 알아버린 이의 작품이었다. 거기에는 원시적인 무엇, 무서운 어떤 것이 있었다. 인간 세계의 것이 아니었다. 악마의 마법이 어렴풋이 연상되었다. 그것은 아름답고도 음란했다.

  「맙소사, 이건 천재다

  이 말이 입에서 절로 튀어나왔다.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몰랐다.

© saffu,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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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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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인간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타자를 치는 존재도, 그렇게 쓰여진 글을 읽는 화면을 마주한 존재 역시 인간이지요. 미래에는 AI가 읽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세세한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죠. 인간이라는 이름아래 우리는 같아요. 한데 묶여있다고도 볼 수 있죠. 외양이 다를지라도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우리는 서로 부대끼며 살아갑니다. 싫든 좋든 이러한 조건에 내던져진 우리는 그래도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찌어찌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요.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오늘 이야기할 것은 그 예외적인 존재겠지요.

 


한 존재의 고백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첫 고백부터 단도직입적입니다. 이 존재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부끄럼 많은 생을 살았다고 고백하는 것일까요? 정말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내서일까요? 아니면, 겸손의 측면에서 이야기한 것일까요? 이런 첫 고백보다 더 아찔하게 다가오는 것은 다음 고백입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는 두 번째 고백. 단순히 피상적으로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생애를 걸쳐 노력도 해보았지만 인간의 삶을 도무지이해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솔직히 말하여 삶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은 거의 없습니다. 삶을 이해하였다는 말을 태연하게 하는 사람은 먼저 이상한 인간이 아닌지 의심해보아도 좋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상기의 고백도 당연한 것일까요? 그런데 이 존재는 그 정도에 있어서 일반적인 수준과는 격을 달리 합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이란 것이 알 수가 없어졌고, 저 혼자 별난 놈인 것 같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뿐이었습니다.

 

도깨비에 둘러싸인 요조

 

  이름은 요조’, 머리가 좋고, 잘생기고,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요조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인간들이 불가해한 존재로 여겨집니다. 요조에게는 정의니 도덕이니 따위를 부르짖으면서 서로를 등쳐먹는 인간들이 인간이라는 도깨비로 보일 정도지요. 그래서 요조는 어릴 때부터 필사적으로 익살을 연기합니다. 거짓 웃음을 짓고, 부러 익살을 부려 자신도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요. 이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둡니다. 어딜 가나 요조는 장난꾸러기이지만 인기가 많은 존재로 여겨집니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겉보기에 불과합니다. 요조는 그런 외양을 유지하기 위해 사실 필사적으로 익살을 노력합니다.

 

  온힘을 다해 연기를 하는 요조였지만, 모두가 속아 넘어가지는 않습니다. 요조의 연기를 알아채는 인간들도 있지요. 그럴 때면, 요조는 극심한 공포에 다시 휩싸여 얼어붙습니다. 인간에 대한 공포와 자신의 정체를 들킬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 요조가 다른 수단을 동원하기 시작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그 수단들이 음지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는 것이 안타깝네요.

 

  술, 담배, 창녀, 그런 것들이 인간에 대한 공포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상당히 괜찮은 수단이라는 사실을 저도 이윽고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방법도 있었겠지만, 요조는 이미 평생을 공포 속에서 힘들게 살아왔던 존재였습니다. 그를 조금 감싸주자면 요조에게는 술, 담배, 창녀 같은 방법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공포를 잊게 해주는 마취제였죠.

 

순수가 무너지는 세 번의 순간

 

  불쌍하고 연약한 요조. 요조의 삶은 세 번 크게 무너집니다. 유일하게 함께해서 행복했다 말할 수 있었고, 사랑을 느꼈던 여자, 쓰네코가 호리키에게 무시당했을 때.

 

소위 속물들의 눈으로 보면 쓰네코는 취한의 키스를 받을 가치조차도 없는, 그저 초라하고 궁상맞은 여자였던 것입니다. 의외였지만 뜻밖에도 저는 청천벽력에 박살 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시즈코와의 동거 생활을 통해 그림으로 돈을 벌며 그나마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도중 시즈코의 딸 시게코의 한 마디에서.

 

  “시게코는 말이야, 진짜 아빠가 갖고 싶어.”

  화들짝 놀라고 아찔하게 현기증이 났습니다. (). 내가 시게코의 적인지, 시게코가 나의 적인지. 어쨌든 여기에도 나를 위협하는 끔찍한 인간이 있었구나. 타인. 불가사의한 타인. 비밀투성이 타인. 시게코의 얼굴이 갑자기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무한정으로 믿어주고 보살펴주던 요시코가 겪은 비극적인 순간.

 

  신에게 묻겠습니다. 신뢰는 죄인가요?

  요시코가 더럽혀졌다는 사실보다도 요시코의 신뢰가 더럽혀졌다는 사실이 그 뒤에도 오래오래, 저한테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큰 고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후로 요조는 마약에 손대기 시작합니다. 마약이 아니면 자신의 무너진 세상과 공포를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요. 끝없는 자기파멸의 길에 요조가 이른 곳은 정신병원입니다. 그는 단 한순간도 미친 적이 없었건만, 인간들에게 자신은 치료가 필요한 미친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인간 실격

 

  이것이 요조가 고백했던 부끄럼 많은 생애의 전말입니다. 술과 여자, 자살 시도, 마약으로 점철된 생애지요. 어쩐지 제게는 이 모든 요조의 이야기가 고통의 절규처럼 들렸습니다. 정말 요조라는 이 존재는 인간 실격인 걸까요? 인간이라는 도깨비에 둘러싸여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삶을 살았던 요조.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었습니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 kellepics,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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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 마카롱 에디션
생텍쥐페리 지음, 허희정 옮김, 윌리엄 리스 해설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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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요? 무엇이 삶을 계속하게 하는 것일까요? 잠시 생각해보세요. 어떤 대답이 떠오르시나요? 그야말로 다양한 대답이 나오겠지요. 사랑. 아름다움. 행복. 쾌락. 어떠신가요? 이 중에 있을까요? 혹은 다른 답을 생각하고 계신가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삶이 가치 있는 것인지 확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 어느 하나에 온몸의 끝자락까지는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고, 다른 이들이 말하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게는 충분히 납득이 되지 않을 뿐입니다. 어쩌면 제가 삶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여기 한 의견을 소개하려 합니다. 어느 조종사의 의견이지요. 그는 갖은 비행의 경험과 사막 한복판에 떨어져 조난을 당했던 경험을 생생히 전합니다. 그로부터 무엇이 삶을 가치 있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합니다. 제가 비록 그의 결론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하지만, 그의 말은 분명 가슴에 울리는 바가 있습니다. 그의 꾸며내지 않은 열정적이고 순수한 목소리 때문일까요. 가슴 벅차오르는 생의 고백과 통찰.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입니다.

 

 

회색빛 파멸 앞에서의 자문

 

  인간의 증오, 우정, 기쁨이라는 위대한 연극은 얼마나 보잘것없는 무대 위에서 상연되는가! 아직도 식지 않은 용암 위에선 듯이 위태롭고, 후일 덮쳐 올 모래와 눈보라에 여전히 위협받는 사람들이 대체 어디에서 이 영원의 맛을 찾아낸 것일까? 인간의 문명은 부서지기 쉬운 금박에 지나지 않는다. 화산이, 새로운 바다가, 모래바람이 그 금박을 지워 없애 버리니까.

 

  ‘우리 인간이 이루어놓은 모든 것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가?’ 이 외침은 질문이 아니라 깨달음입니다. 20세기 초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인류는 이를 뼈저리게 깨달았죠. 우리가 쌓아놓은 공든 탑이 순식간에 폐허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요. 위시하던 하나의 주된 가치가 무너지고, 수많은 새로운 가치가 떠올랐습니다. 그 결과가 처참한 폐허였고요. 인간은 회색빛 파멸 앞에서 자문합니다. 도대체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이제 인간은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는가?

 

 

그러니 걷지 않는다면 내가 나쁜 놈인 거야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했지만 희망 같은 건 어디에도 없어. 그런데 난 왜 이런 순교에 집착하는 것일까?”

  자네가 세상에서 평온해지려면 눈을 감기만 하면 되었지. 이 세상에서 바위, 얼음, 눈을 지워버리려면 말이야. 그 기적 같은 눈꺼풀을 감자마자 타격도, 추락도, 갈기갈기 찢긴 근육도, 타는 듯한 동상도, 황소처럼 끌고 가야 할 수레보다 무거운 그 삶의 무게도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테지.

 

  생텍쥐페리의 동료 기요메는 비행 중 안데스산맥에서 조난을 당합니다. 험난한 지역에서의 조난은 지금도 처리하기 어려운 일인데 당시의 조난은 죽음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죠. 냉혹한 추위에서 그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짧았고, 애당초 그는 등산하러 갔던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손발을 비롯한 온몸이 얼어붙고, 한 걸음 한 걸음은 고통이었습니다. 구조의 가능성은 너무나 희박했죠. 눈을 감아 잠에 빠지면 모든 고통이 사라졌을 그 순간에. 기요메는 어째서 사력을 다해 걸었던 걸까요?

 

  자네는 유혹을 견뎠네. 자네는 내게 말했지.

  “눈 속에서는 생존 본능이라는 게 사라진다네. 이틀, 사흘, 나흘을 걷고 나면 자고 싶은 생각만 간절해지거든. 나도 그랬어.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지. ‘내 아내는 생각하겠지. 만약 내가 살아 있다면 걸을 거라고. 동료들도 내가 걸을 거라고 믿을 거야. 그들은 모두 나를 믿고 있어. 그러니 걷지 않는다면 내가 나쁜 놈인 거야.’ 이렇게 말이야.”

 

  기요메는 죽음의 순간에 아내를 떠올립니다. 아내가 받게 될 보험금을 떠올리죠. 그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으면, 아내가 보험금을 지급받는 시일이 상당히 느려지게 됨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자신의 시체가 그나마 잘 보일 수 있는 곳을 향해 기요메는 걷습니다. 아내를 위해, 자신을 믿는 동료들을 생각하며.

 

 

납덩어리를 허리띠에 꿰맨 천사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보죠. 사막의 비행장에서 노예로 잡혀 일하는 바르크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생텍쥐페리에게 자신을 탈출시켜달라고 부탁하죠. 그의 끈질긴 부탁은 생텍쥐페리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는 모금으로 거금을 모아 바르크인의 몸값을 지불하고 그를 탈출 시킵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고향에 갈 수 있도록 적당한 지역에 내려주고, 여비를 지급하죠. 바르크인은 자유를 느낍니다. 이제 그를 구속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는 자유롭습니다. 그러던 바르크인은 갑작스레 자신이 받은 여비를 모두 털어 선물을 사고 몰려드는 꼬맹이들에게 나누어줍니다. 적지 않은 돈이었음에도 모두 털어 다시 빈털터리가 되죠. 왜일까요? 그가 돈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일까요? 그렇지 않겠죠.

 

하지만 그 자유가 그에게는 씁쓸하게 느껴졌다. 다름 아닌 바로 그 자유로 인해 그는 자신과 세상을 이어주던 끈이 없어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 한 아이가 지나갔고 바르크는 아이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가 방긋 웃었다. 그 아이는 사람들이 아부를 해대는 주인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그저 바르크가 쓰다듬는 연약한 아이, 방긋 미소 짓는 한 아이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바르크를 일깨웠다.

 

  지난날이 노예 생활이었다고 하지만, 당시의 바르크인은 다른 이들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었지요. 그런데 막상 자유의 몸이 되고 낯선 타지에 오니 누구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고, 완전한 타인이 된 스스로를 발견합니다. 씁쓸한 자유. 바르크인은 고독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가 낯선 아이의 볼을 쓰다듬고, 그 아이가 바르크인에게 방긋 웃어주는 순간, 바르크인의 고독은 사라집니다. 낯선 아이의 미소로 바르크인은 그 아이와 연결됨을 느끼죠. 깃털처럼 가벼운 몸을 이끌고 천사가 되어 날아가던 바르크인은 그렇게 스스로를 끌어내려 고된 몸을 이끌고 아이들과 연결됩니다.

 

 

이제 세상에 적은 단 한 명도 없다

 

  벵가지로 비행하던 생텍쥐페리와 프레보는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땅에 부딪힙니다. 큰 충돌에도 둘은 가까스로 살아남죠. 하지만 진정한 절망은 그들이 살아남음으로 시작됩니다. 그들은 살아남았지만, 그곳이 사막 한복판이었고, 그들이 가진 것은 포도주 조금과 오렌지 두 개뿐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조난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쯤에서 조난당했는지 알 길이 없었고, 멀리 있는 그들의 동료들 또한 알 리 만무했죠. 더구나 사막 한복판이라니! 생텍쥐페리와 프레보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걷습니다.


  한 번 더, 우리는 깨닫는다. 조난자는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조난당한 이들은 바로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침묵으로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끔찍한 실수로 인해 마음이 갈기갈기 찢긴 듯 고통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기요메 역시 안데스산맥에서 돌아오면서 나에게 그렇게 얘기했다. 자신은 조난자들을 향해 달려갔노라고! 그것이야말로 보편적인 진리이다.

  “만약 내가 이 세상에 혼자였다면 나는 그냥 뻗어버렸을 거야.”

  프레보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기루와 온갖 환영을 보며, 갈증과 피로로 죽음의 문턱에서 헤매이고 있을 때, 그들은 기적적으로 한 아랍인을 발견합니다. 정말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요. 이후 생텍쥐페리에게 그 아랍인은 개인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총체로서 생텍쥐페리에게 다가오죠.

 

  당신은 고귀하고 친절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마실 물을 줄 권능을 지닌 대영주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내 모든 친구들, 내 모든 적들이 당신을 통해 나에게로 걸어온다. 그러니 이제 세상에 적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니 이제 세상에 적은 단 한 명도 없다.’ 이것이 극한의 절망을 헤쳐 나온 그가 깨달은 것입니다. 강력한 유대감’, 생텍쥐페리는 생명을 사랑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그에게 삶을 가치 있게 만들고, 계속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하늘의 별, 땅의 별


  여러분이 생각하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혹시 찾으셨나요? 아니면 아직 찾지 못하셨나요? 생텍쥐페리의 대답은 어떠신가요? 칠흑 같은 어둠 속 하늘을 비행하며 보게 되는 반짝이는 하늘과 땅의 모든 별들. 지상의 별 하나에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조종사의 충족감. 어쩌면 같은 하늘의 별을 보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의 존재. 느껴지시나요?

 

  우리 외부에 있는 공동의 목적에 의해서 형제들과 이어질 때, 오직 그때에만 우리는 숨을 쉴 수 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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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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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플 거라고 예상은 했었더랬다. 소재가 소재인지라 슬프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나의 준비된 마음을 너무나 간단히 무너뜨렸다. 책을 붙잡은 채로 흐르는 눈물을 숨죽여 닦은 적이 얼마 만이던가. 독서 모임과 서평을 위해 다시 읽을 때마다 속절없이 차오르는 감정을 막을 길이 없었다. 그리고 실로 아름다웠다. 달리 표현할 길을 찾지 못하여 아름답다고 말하련다. 그날 그 기간 어린 새의 날갯짓처럼 연약하게, 작은 촛불처럼 파르르 떨렸을 이들의 영혼, 그 죽음이 아름다웠다는 말이 아니다. 죽음이 어찌 아름답겠는가.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 다만 진정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그들의 삶이었다. 생전의 평범한 일상과 그들이 누리지 못한, 누릴 수 있었던 평범한 일상들.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까. 동호. 동호 이야기를 먼저 해본다. 중학생의 동호. 짧게 깎은 상고머리에 앳된 얼굴의 동호. 친구 정대를 찾아 상무관에 왔던 동호.

 

  혼자 남은 너는 상무관 출입계단에 걸터앉았다. 검은색 마분지로 앞뒤 표지를 댄 장부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연한 하늘색 체육복 바지 아래로 느껴지는 시멘트 계단이 차가웠다. 체육복 위에 걸친 교련복 단추를 끝까지 잠그고 단단히 팔짱을 꼈다.

 

  은숙 누나가 쥐여준 카스텔라와 요구르트를 허겁지겁 먹던 동호. 원래대로라면,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중간고사를 봤을 너였다. 그리고 정대와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을 너였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너는 알고 있다. 앞으로 더 이상 정대와 배드민턴을 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는 정대를 떠올린다.

 

  정적 속에서 너는 정대의 얼굴을 떠올렸다. 연한 하늘색 체육복 바지가 꿈틀거리던 모습을 기억한 순간, 불덩어리가 명치를 막은 것같이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숨을 쉬려고 너는 평소의 정대를 생각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대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정대를 생각했다. 여태 초등학생같이 키가 안 자란 정대. 그래서 정미 누나가 빠듯한 형편에도 우유를 배달시켜 먹이는 정대. 정미 누나와 친남매가 맞나 싶게 못생긴 정대. 단춧구멍 같은 눈에 콧잔등이 번번한 정대. 그런데도 귀염성이 있어서, 그 코를 찡그리며 웃는 모습만으로 누구든 웃겨버리는 정대. 소풍날 장기자랑에선 복어같이 뺨을 부풀리며 디스코를 춰서, 무서운 담임까지 폭소를 터뜨리게 한 정대. 공부보다 돈을 벌고 싶어하는 정대. 누나 때문에 할 수 없이 인문계고 입시 준비를 하는 정대. 누나 몰래 신문 수금 일을 하는 정대. 초겨울부터 볼이 빨갛게 트고 손등에 흉한 사마귀가 돋는 정대. 너와 마당에서 배드민턴을 칠 때, 제가 무슨 국가 대표라고 스매싱만 하던 정대.

 

  너는 어째서 상무관에 남았던 걸까? 엄마에게 정대를 찾으면 돌아가겠다고 말하던 너인데. 해지기 전에 돌아오라고, 다 같이 저녁밥 묵자고 엄마와 약속도 했으면서, 아니 그것보다 사실은 정대가 이미 죽었다는 걸 네 두 눈으로 봤음에도, 어째서 정대를 찾겠다고 말하며 너는 상무관에 남았던 걸까. 넌 도망칠 수도 있었는데. 정미 누나가 너를 때리면, 너는 얻어맞으며 용서를 빌고, 그 언젠가 정미 누나와 스스로에게 용서를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너를 때리며 원망해줄, 언젠가 용서해줄 정미 누나는 이미 없었고, 그리고 너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래서 너는 남았던 것일까. 엄마와 약속을 하고도 죽은 정대를 찾아 상무관에. 그해 여름을 건너오지 못한 채.

 

  너에게 카스텔라와 요구르트를 쥐어주던 은숙 누나는 그해 여름을 건너왔다. 하지만 그해 여름을 건너왔다고 하여 전과 같은 일상이 펼쳐질 수는 없었다. 가까스로 건너왔건만, 그 날의 기억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 기억은 이후 그녀가 형사에게 맞은 일곱 대의 뺨처럼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그래, 그녀는 너의 마지막을 잊지 못한다.

 

  그녀에게 영혼이 있었다면 그때 부서졌다. 땀에 젖은 셔츠에 카빈 소총을 멘 진수 오빠가 여자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웃어 보였을 때. 어두운 길을 되밟아 도청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얼어붙은 듯 지켜보았을 때. 아니, 도청을 나오기 전 너를 봤을 때 이미 부서졌다. 하늘색 체육복 위에 교련 점퍼를 걸친, 아직 어린애 같은 좁은 어깨에 총을 메고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너를 발견하고 그녀는 놀라며 물었다. 동호야, 왜 집에 안 갔어? 장전하는 법을 설명하고 있던 청년 앞으로 그녀는 끼어들었다. 이 애는 중학생이에요. 집에 보내야 돼요.

 

  불현듯 떠오르는 너에 대한 기억은 광장에서 솟구쳐 오르는 분수대의 물 같기도 하다. 그녀는 그 솟구치는 푸른 물길을 볼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직 다 잊지도 못하였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다고, 벌써 분수대에 허연 물길이 솟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역시 그녀가 너를 잊을 수 없는 것처럼, 그녀를 때리던 형사의 손바닥을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물이 나오는 분수대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물을 잠가주세요. 손바닥에서 배어나온 땀으로 수화기가 끈적끈적했다. 예에, 의논해보겠습니다. 민원실 직원들은 인내심 있게 그녀를 응대했다. 꼭 한번 나이 든 여사무원이 말했다. 그만 전화해요, 학생. 학생 같은데 맞지요. 물이 나오는 분수대를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요. 다 잊고 이젠 공부를 해요.

 

  동호야. 너를 비롯한 이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한발 나아갈 수 있었다. 희생. 아니다, 너를 포함한 이들의 죽음을 희생이라고 말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희생이었나.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것이기에 네가 여름을 건너오지 못한 것일까. 그게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을까. 진수 형에 대해 증언하던 그 사람이 말하듯 나도 잘 모르겠다. 너의 중간고사보다, 정대와의 배드민턴 한판보다 중요한 것이었을까.

 

  어쩌끄나, 젖먹이 적에 너는 유난히 방긋 웃기를 잘했는디. 향긋한 노란 똥을 베 기저귀에 누었는디. 어린 짐승같이 네발로 기어댕기고 아무거나 입속에 집어넣었는디. 그러다 열이 나면 얼굴이 푸레지고, 경기를 함스로 시큼한 젖을 내 가슴에다 토했는디. 어쩌끄나, 젖을 뗄 적에 너는 손톱이 종이맨이로 얇아질 때까지 엄지손가락을 빨았는디. 온나, 이리 온나, 손뼉 치는 내 앞으로 한발 두발 걸음마를 떼었는디. 웃음을 물고 일곱걸음을 걸어 나헌테 안겼는디.

  여덟살 묵었을 때 네가 그랬는디. 난 여름은 싫지만 여름방이 좋아. 암것도 아닌 그 말이 듣기 좋아서 나는 네가 시인이 될라는가, 속으로 생각했는디. 여름밤 마당 평상에서 느이 아부지하고 삼형제하고 같이 수박을 먹을 적에. 입가에 묻은 끈끈하고 다디단 수박물을 네가 혀로 더듬어 핥을 적에.

 

  다시 말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너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너를 언제고 기억하는 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내가 느끼는 것은 가슴 저릿한 슬픔이다. 우리가 그토록 긴 시공간을 떨어져 있건만, 네가 지나오지 못한 그해 여름에 누렸을지도 모르는 삶과 결과적으로 네 어머니가 느끼는 슬픔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눈물이 되어 우리 마음을 적신다. 그래, 정말이지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안 됐었다. 그런 끔찍한 일은, 네가 당한 그 고통은 정말 언제고 온몸을 다해 반대해야 할 그런 것이다. 나는 다만 그런 고통에 반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여름날의 중간고사, 배드민턴 한판, 늘어지는 낮잠, 이런 것들이 무사히 여름을 지나올 수 있도록.

 

 


  • 개인적 서사로 보여주는 비극의 무게

 

  한강의 소년이 온다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5.18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진실이 묻혔던 시대는 이미 지났고, 5.18 민주화 운동은 더 이상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손쉽게 해당 사건의 참혹함과 규모, 과정 등을 상세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소년이 온다는 마음을 울립니다. 미리 찾아보고, 마음을 먹어도, 그래도 마음을 울립니다.

 

  어째서일까요?

 

  그 사건의 참혹함을 여과 없이 세세히 묘사해서일까요? 그들이 겪은 폭력, 고문 등을 이전의 다른 작품보다 잘 표현해서일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울리는 것은 동호, 정대, 은숙, 진수, 선주 등을 비롯한 평범한 이들의 삶이 정말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삶이 특별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실은 우리의 삶과 다를 게 없었죠. 그러나 그 다를 것 없는 삶이 정말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었다는 것, 그러한 삶이 그해 여름을 지나오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것. 우리와 다를 것 없던 평범한 삶이 그렇게 사라졌다는 사실이 마음을 울립니다.

  인간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기 쉽습니다. 반복적으로 티비에서 생중계되는 다른 나라의 고난에 채널을 돌리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든 타인의 고통을 접할 수 있지만, 객관적이고 거리가 느껴지는 화면 속의 고통은 타인의 고통이지 나의 고통이 아니니까요. 그러한 고통에 진정으로 공감하고, 그들의 고통에 대해 무언가 행동을 취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소년이 온다에서 보여지는 고통은 위와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비행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그런 곳에서 일어나는 고통이 아니죠. 지금도 우리 곁에 그 후유증이 남아있는 고통입니다. 위치뿐만 아닙니다. 책을 읽노라면 이들의 삶에 거리를 두기 힘듭니다. 때로는 1인칭으로 때로는 2인칭으로 책을 읽는 독자는 그들의 삶에 밀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그들이 겪은 고통은 우리의 고통으로, 그들만의 슬픔이 아니라 우리의 슬픔이 되는 것이죠. 개인적 서사로 보여주는 고통의 무게는 어찌나 무거운지요. 고발하는 글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을 증언하는 글. 스스로도 집필하면서 정말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했던 한강 작가. 큰 소음,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작은 목소리, 그 가냘픈 숨결에 집중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 작가에게 감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해 여름은 건너오지 못한 이들의 아름다웠던, 아름다웠을 삶에 조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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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굴데굴 2017-11-21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슬플 거라고 예상하고 읽었는데 읽고나서 힘이 쭉 빠졌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