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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집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고요한 집』을 다 읽고 책을 덮고서 가만히 앉아 소설을 다시 느껴보니 일종의 거리감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그건 소설을 막 읽기 시작한 시점보단 덜한 느낌이지만, 소설을 다 읽었다고 해서 그 간격이 크게 줄어든 것도 아닙니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은 느낌이라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불만 섞인 혼잣말이 불쑥 튀어나옵니다. 너무 고요했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나와 전혀 관련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 사실은 조금 묘한 느낌입니다.
『고요한 집』은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이후에 발표한 오르한 파묵의 소설입니다. 그래서 인지 『고요한 집』은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의 이야기 뒤에 남겨진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 같아 보입니다. 물론 완전히 동일한 인물들이 나오며 그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소설 중에서 조명 상인 제브데트 씨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하고 소설가 파묵이라는 인물을 언급하고 있기도 해서 내가 잘 모르는 어떤 세상에는 소설과 같은 세상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거나 소설 속의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합니다. 어쩌면 작가가 이러한 설정을 통해 소설이 묘한 리얼리티를 갖도록 의도했던 것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소설은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에서 제브데트 씨의 손자 세대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1980년대 터키의 이야기. 신구의 대립, 변화에 대한 거부감, 세대 간의 격차, 이상주의와 공산주의, 민족주의 등에 대한 터키 사회의 갈등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소설 속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대립과 분열의 관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소설을 읽으며 거의가 그렇듯, 소설 속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무한한 공감을 했습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고, 도저히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것들. 불쑥 솟아오르는 뜻밖의 생각과 행동들. 약간의 우월감과 권태로움, 그리고 미리 설정해둔 인생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나태한 감정들. 어리숙한 자아. 허망한 이상주의. 공상과 망상. 술에 술 타고 물에 물 탄 듯한 일상. 미적거림. 깊이가 부족하다는 자책. 우울을 동반한 절망. 정체된 현실. 이상과의 괴리감. 결국 이 모든 것은 청춘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점점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런 인물들 안에 내가 없음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너는 너이기 때문에 너는 나일 수 없다는 느낌입니다.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조금씩 소설 속의 인물들에게서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이 부분이 참으로 묘합니다. 물론 당신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합니다만, 당신은 당신이고 당신의 이야기는 소설 안에 있을 뿐이라는 생각. 그 말이 그 말 같아 보이지만 미묘하게 다른 느낌입니다.
그런 거리감은, 아마도 소설의 줄거리가 소설이 말하고자 했던 주제와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소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소설 속 인물들 안에 있던 이야기들인데, 막상 이야기가 흘러간 방향은 인물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것이라 거리감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저 어떤 세상에는 이런 식의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단한 상징을 품고 있는 어떤 일이라 하더라도 그건 마치 ‘베스트 오브 엘비스’와 같은 느낌인 것입니다. 그것이 엄청 대단한 의미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나와 무관한 세상이기 때문에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역사를 빼곡히 기록해둔 공책보다 플라스틱 빗이 더 가치 있는 물건이 될 수 있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소설이 완전히 무가치한 이야기였던 것은 아닙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며 느낄 수 있었던 비슷한 감정이 울컥하며 솟아오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의미가 없을지 모를 어떤 사건들이 ‘파룩의 공책’처럼 무심하게 뜯긴 채 흘러가지만, 무심하게 흐르는 사건들을 통해 괜한 동질감 같은 것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아직까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못한 채 방황하는 나날을 보내는 이팔청춘이란 증거일지 모릅니다.
선 베드에 누운 의미 없고 벌거벗은 다리 사이, 그리고 콘크리트 위에 놓인 시계를 상상했다. 그 시계는 생기 없는 콘크리트에 등을 대고, 시작과 처음, 중간과 끝, 깊이와 표면마저 없는 우리의 침묵과 단어, 우울 그리고 멋없는 음악 사이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태양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는, 시침과 분침을 혼동하고 있었고, 이제는 시간을 잴 수 없고, 한때 쟀던 것이 무엇인지도 잊고, 시간을 잃었다는 것을 자백해야만 했다. 이렇게 해서 시계의 생각도,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 하는 생각 없는 사람의 생각과 별 다를 것이 없게 되었다. (1권, 149쪽)
그러다 다시 조금 더 공부를 했다, 하지만 아무 쓸모가 없었다. 조금 더 생각하자 이런 것까지 떠올랐다. 이 모든 대수와 √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아는 게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 예를 들면, 언젠가 대수와 제곱근을 사용해서 돈 계산을 할 정도로 부자가 된다 치자, 혹은 정부 일을 한다고 치자. 그러면 나를 위해 이런 계산을 해 줄 비서를 고용할 생각도 못할 정도로 바보가 될 거란 말인가? (1권, 172쪽)
내가 제일란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독할 수 없는 이 감정이 그녀를 내게서 멀어지게 하고 있었다. 아침까지 침대에서 생각했던 것처럼, 그녀에게 나 자신에 대해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설명해야 하는 ‘나’는 생각할수록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라고 하는 것은 상자들 속의 상자 같았다. 내게는 항상 다른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 다른 것 다음에 진정한 나를 찾아 보여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상자마다, 제일란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줄 진정하고 고유한 메틴이 아니라, 그것을 감추고 있는 다른 상자가 나왔다. 나는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사랑은 사람을 위선으로 이끌고 간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사랑에 빠졌다고 믿었기 때문에, 계속되는 이 위선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 이 기다림이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내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의 우월성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이것도 나를 위로하지는 못했다. (1권, 207쪽)
그녀는 내 옆에 있었지만 다다를 수 없는 존재 같았다, 물장난을 치며 이야기를 할 때, 그녀가 거칠고, 매력적이고, 무심하고, 압도적이며, 평범하고, 놀랍고, 치명적인 존재 같았다. 사랑스러운 물고기처럼 물을 일렁이는 발 말고 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이제는 유럽인들처럼 살고 싶다고 말할 때, 나는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더위, 이끼와 바다 냄새, 그녀 피부의 향기를 느꼈고, 우리의 외로움을 생각하며, 물속에서는 상아처럼 빛나는 탄탄하고, 생기발랄하고, 육감적인 다리를 보다가, 신발을 신은 채 물속으로 들어가 너를 껴안았다. 제일란, 난 너를 너무나 사랑해, 라고 말했다. (2권, 49쪽)
나도 그처럼 될 수는 없는 걸까, 나의 생각과 뇌의 구조를 그와 같게 만들 수는 없는 걸까, 그처럼 나도 세상을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묘사할 수는 없는 걸까?
책을 덮고 방 한구석에 던져 버렸다. (2권, 101쪽)
나의 모든 의식이 지워지기를, 나의 과거에서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기를, 미래와 기대에 대한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기를 바랐다. 내 이성의 상상에서 벗어나, 이성 밖에 존재하는 세계에서 자유롭게 거닐고 싶었다. 하지만 나 자신을 놔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여느 때처럼 두 사람으로 남을 것임을, 이성의 상상과 망상 속에서 돌고 돌아, 빌어먹을, 이 더러운 곳에서, 이 추한 음악 속에서 한동안 앉아 있을 것임을 이제는 알고 있다. (2권, 205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