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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테이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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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험에서 우러난 이상한 상상을 하고 짧은 글을 쓰며 혼자 놀던 때가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바라며 어떤 목적을 갖고서 썼던 글은 아닙니다. 그저 그런 글쓰기가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글을 읽어준 사람들과 글을 놓고 대화하며 노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제가 쓴 어떤 글이 누군가의 소설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작가였고 소설의 제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래에 비슷한 내용의 덧글이 계속해서 달렸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표절.


 

    소설에서 시나리오 작가 데이비드 아미티지는 갑작스런 부와 명성을 얻습니다. 작업 의뢰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과거에 써둔 시나리오는 영화 협상에 들어가고, 웬 아리따운 아가씨, 개인전용 비행기, 초호화 요트, 카리브 해의 외딴 섬, 그리고 대저택……. 아무튼 우리가 흔히 ‘할리우드’라는 단어에서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꿈을 이룬 듯한 삶이 데이비드의 눈앞에 펼쳐집니다. 성공한 인생.

 

 

    데이비드가 맞이한 인생의 전성기는 흥미로운 모습을 보입니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그의 소설에서 흔히 보였던 일탈에 대한 욕망을 『템테이션』에서도 자연스럽게 담아냅니다. 그것은 독자들의 로망을 자극하는 전개로 묘한 재미를 끌어내기도 합니다. 소설 속의 세상이 신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단 느낌이 들 정도로 다소 작위적인 모양이긴 합니다만, 한 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도록 휘몰아치듯 정신없이 이어지는 전개가 무척 좋습니다. 그래서 성공 이후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혜택들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다 하더라도 단지 소설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용서할 수 있단 생각을 자연스레 갖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굳이 따지려 한다면 어쩌면 조금 부도덕할지 모른다는 생각과 만나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 냅니다. 또한 금기하는 무언가를 몰래 한번 건드리게 하고, 그래서 얻게 된 묘한 쾌감까지 전합니다. 그래서 얻는 일종의 대리만족……. 아무튼 이 모든 것들이 흥미진진합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한 통의 전화 이후, 그러니까 소설이 딱 절반을 지났을 때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부터 성공한 그의 인생은 그대로 곤두박질칩니다. 이보다 더 심할 수 없다고 여길 정도로 처참한 신세가 됩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참으로 묘한 경험을 했습니다. 과연 나는 누구의 편일까 하는 생각. 악마보다 더한 악마가 되어서 데이비드가 처절하게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고 은근히 즐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 잘되는 꼴은 배알이 꼬여서 못 본다고. 데이비드가 갑자기 얻은 부와 명성이 그토록 부러웠던 것일까요. 아무튼 데이비드는 바닥을 치고 박는 우여곡절 속 값진 인생 경험을 통해 한 가지 이상의 대단히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그리고 소설을 읽던 제게도 그 교훈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위기가 없는 이야기에서 재미가 느껴지지 않듯이, 이야기가 있는 인생에서 위기가 없다면 재미없는 인생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 그건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겠죠.

 

 

    한편 저는 375달러짜리 몽블랑 만년필에서 시작한 감사의 표시에 주목했습니다. 데이비드의 파란만장한 시절에서 은인이 되어준 엘리슨의 존재, 인생의 위기에서 이런 사람 한 명이 옆에 있어 준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뭐가 어떻게 되든 간에 키다리 아저씨처럼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끊임없이 지지해주고 옳은 말을 해준 사람의 존재. 한 편으론 부럽고, 또 한 편으론 괜히 고맙기까지 합니다. '사랑'을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 하는 것도 좋지만, '람'을 통해 무언가를 얻고, 그런 사람이 옆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마음의 위안. 그것이야말로 성공한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의 소중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이건 소설 『템테이션』의 히든트랙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돈과 여자 앞에서는 바보가 되지 않나? (104쪽)

 

 

    사람들은 흔히 성공하면 삶이 편해질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성공하면 삶은 어쩔 수 없이 더 복잡해진다. 아니, 더욱 복잡해지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더 큰 성공을 거두기 위한 갈증에 자극을 받으며 더욱 매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바라던 걸 성취하면 또 다른 바람이 홀연히 나타난다. 그 바람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우린 또 다시 결핍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다시 완벽한 만족감을 얻기 위해 모든 걸 걸고 달려든다. 그때껏 이룬 것들을 모두 뒤엎더라도 새로운 성취와 변화를 찾아 매진한다. (121쪽)

 

 

    “모르시겠어요? 보세요. 저, 이 섬, 이 바다, 이 하늘, 이 밤. 그저 하룻밤이 아니에요. ‘이 밤’이에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한 번뿐인 밤.”

    “알아요, 알아. 하지만…….”

    나는 마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마사는 그 손을 꽉 잡았다.

    마사가 말했다.

    “너무 마음이 여리시군요.”

    “아니, 저도…….”

    마사가 내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말했다.

    “이제 말은 그만…….” (185쪽)

 

 

    그러나 무엇보다 기분 나쁜 생각은 ‘사실은 이 모든 상황을 내가 바란 건 아니었을까?’였다. 나는 내 성공이 못 미더워 스스로 실패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311쪽)

 

 

    인생은 그런 겁니다. 누구나 선택을 하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상황이 바뀌고요. 그게 바로 ‘인과율’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내린 결정 때문에 나쁜 일이 생기면 늘 남 탓을 하는 버릇이 있어요. 상황이 안 좋았다거나 사악한 사람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근본적으로 조목조목 따져보면 진정 탓할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라는 걸 알게 되죠. (426쪽)

 

 

    우리 모두가 필사적으로 추구하는 건 자기 존재에 대한 확인이다. 그러나 그 확인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4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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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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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강한 현실성을 갖고 시작합니다. 『고요한 집』에서 역사학자로 등장했던 파룩이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과거 기록을 들려준다는 식의 이야기로 소설의 서문을 열기 때문입니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에서부터 시작된 오르한 파묵의 소설 세계가 뿌리를 내리며 더욱 견고한 어떤 왕국을 이루어 가는 모습. 결국 그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거대한 제국이 하나의 ‘박물관’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독자들에겐 즐거운 일이 될 것입니다.

 

 

    17세기 터키. 오스만 제국 함선의 공격을 받고 이탈리아 학자 한 명이 터키의 노예 신세가 됩니다. 그리고 그 노예는 호자라는 이름의 터키 학자의 눈에 띄어 부름을 받습니다. 호자는 자신과 쌍둥이처럼 꼭 닮은 노예로부터 서양의 지식과 지혜를 얻고 함께 토론하며 학문을 연구하길 바랍니다. 또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포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길 요구합니다. 그 둘은 세상의 모든 원리를 알아야만 하고 증명해야 한다는 열정을 품고, 유별난 학구열을 불태우며 오랜 시간을 함께 지냅니다.

 

 

    외모가 쌍둥이처럼 완전히 똑같고, 그들이 공유한 지식과 사고가 동일하다 하더라도 그들의 신분은 주인과 노예의 관계. 이런 설정이 소설에서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 냅니다. 게다가 어린 왕 파디샤에게 새로운 지식을 가르치고 전수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어린 왕이 변덕을 부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묘한 긴장감을 만듭니다. 또한 터키에 만연한 흑사병에 대한 이야기, 새로 개발한 무기로 폴란드 원정에 오르는 이야기 등, 소설은 너무 ‘고요’하지만은 않고, 묘한 긴장감을 품은 채 흥미로운 전개를 보입니다.

 

 

    오르한 파묵의 다른 소설들처럼 『하얀 성』 역시 터키 사회와 동서양의 분리에서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외모가 완전히 닮은 두 학자의 모습을 통해 결국 동양과 서양은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있으며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터키도 혼돈의 문화 속에서 분명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암시를 보입니다. 두 학자가 서로 경쟁하듯 연구하는 모습과 번갈아가며 진보와 퇴보를 반복하는 모습을 통해 서로가 무언가를 깨닫고 반성하고 용서하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또한 학문에 대한 열의가 불타올랐다 가라앉는 모습에서 동서양이 서로 화합을 이루었을 때 서로의 뮤즈가 될 수 있으며 열정을 유지하고 꾸준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나는 왜 나인가’라며 호자와 노예가 거울을 보고 대화하는 장면은, 마치 자신 앞에 놓인 거울을 보듯 굉장히 닮은 서로를 바라보는 일 자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일일 수 있으며, 결국 본질적으론 다르지만 닮음을 인정해야 하는 터키 사회의 정체성을 찾는 질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정학적으로 애매한 위치, 종교와 이념에 의한 민족의 분리, 외세에 의한 급격한 변화, 계속되는 사회의 위기. 그 안에서 진정한 터키를 찾으려는 의지가 소설에 녹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얀 성』은 ‘터키는 왜 터키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합니다.

 

 



 

    호자가 자정까지 방에 틀어박혀 있으면, 나는 언제 내 나라에 돌아갈 수 있을지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바보 같은 아이처럼 창 앞에 앉아 그저 공상을 하곤 했다. 책상 앞에서 공부하는 사람은 호자가 아니고 나 자신이며,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상상. (51쪽)

 

 

    그날 밤을 그렇게 보냈다. 그는 병과 두려움을 나에게 전염시키려고 하면서 내가 그이며, 그가 나라고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가 자신에게서 벗어나 자신을 바라보는 희열을 느끼는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꿈에서 깨어나고 싶은 사람처럼 혼잣말을 했다. 그는 게임을 하고 있다, 자신도 ‘게임’이라는 이 단어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는 서서히 땀을 흘렸다. 더운 방에서 숨이 막히는 말들이 두려워 호흡이 곤란해진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몸에 이상이 있는 환자처럼. (109쪽)

 

 

    내 마음 속에는 아주 다른 감정이 있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내가 호자 그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자주 꾸던 악몽처럼, 나는 나 자신과 분리되어 밖에서 보고 있었다. 나 자신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것으로 봐서 나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나의 정체를 뒤집어쓴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내 앞에서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나 자신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가능한 빨리 그와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우악스러운 병사가 온 힘으로 나를 뒤쪽으로, 군중 속으로 밀쳐 버렸다. (126쪽)

 

 

    나의 시선은 그날 아침 화가가 가져와 벽에 기대어 놓았던 나의 초상화에 머물렀다. 나는 변해 있었다. 잔치 마당에서 끝없이 음식을 먹어 대서 살이 쪘고 목살도 늘어졌다. 몸은 펑퍼짐했고 행동도 둔했다. 게다가 얼굴도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 세계에서 마시고 입맞춤을 하느라 내 입술 주위는 저속함으로 물들어 이었다. 아무 때나 잠을 자고 술에 취해 곯아떨어졌기 때문에 나의 눈은 흐리멍덩해져 있었다. 인생과 세상 그리고 자신에게 만족해하는 바보들처럼, 나의 눈빛에는 평범한 안위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나의 이 모습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입을 다물었다. (158쪽)

 

 

    그러나 이상하고 놀라운 것을 마음속이 아니라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마음속에 있는 것을 찾다 보면, 자신에 대해 그렇게 오랫동안 생각하다 보면 불행해진다고 했다. 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하고, 그래서 항당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는 “이 이야기에서 일어난 일들이 사실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소러의 삶을 바꾼 그 사람들이 새로운 인생에서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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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집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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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한 집』을 다 읽고 책을 덮고서 가만히 앉아 소설을 다시 느껴보니 일종의 거리감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그건 소설을 막 읽기 시작한 시점보단 덜한 느낌이지만, 소설을 다 읽었다고 해서 그 간격이 크게 줄어든 것도 아닙니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은 느낌이라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불만 섞인 혼잣말이 불쑥 튀어나옵니다. 너무 고요했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나와 전혀 관련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 사실은 조금 묘한 느낌입니다.

 

 

    『고요한 집』은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 이후에 발표한 오르한 파묵의 소설입니다. 그래서 인지 『고요한 집』은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의 이야기 뒤에 남겨진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 같아 보입니다. 물론 완전히 동일한 인물들이 나오며 그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소설 중에서 조명 상인 제브데트 씨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하고 소설가 파묵이라는 인물을 언급하고 있기도 해서 내가 잘 모르는 어떤 세상에는 소설과 같은 세상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거나 소설 속의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합니다. 어쩌면 작가가 이러한 설정을 통해 소설이 묘한 리얼리티를 갖도록 의도했던 것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소설은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에서 제브데트 씨의 손자 세대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1980년대 터키의 이야기. 신구의 대립, 변화에 대한 거부감, 세대 간의 격차, 이상주의와 공산주의, 민족주의 등에 대한 터키 사회의 갈등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소설 속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대립과 분열의 관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소설을 읽으며 거의가 그렇듯, 소설 속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무한한 공감을 했습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고, 도저히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것들. 불쑥 솟아오르는 뜻밖의 생각과 행동들. 약간의 우월감과 권태로움, 그리고 미리 설정해둔 인생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나태한 감정들. 어리숙한 자아. 허망한 이상주의. 공상과 망상. 술에 술 타고 물에 물 탄 듯한 일상. 미적거림. 깊이가 부족하다는 자책. 우울을 동반한 절망. 정체된 현실. 이상과의 괴리감. 결국 모든 것은 청춘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점점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런 인물들 안에 내가 없음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너는 너이기 때문에 너는 나일 수 없다는 느낌입니다.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조금씩 소설 속의 인물들에게서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이 부분이 참으로 묘합니다. 물론 당신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합니다만, 당신은 당신이고 당신의 이야기는 소설 안에 있을 뿐이라는 생각. 그 말이 그 말 같아 보이지만 미묘하게 다른 느낌입니다.

 

 

    그런 거리감은, 아마도 소설의 줄거리가 소설이 말하고자 했던 주제와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소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소설 속 인물들 안에 있던 이야기들인데, 막상 이야기가 흘러간 방향은 인물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것이라 거리감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저 어떤 세상에는 이런 식의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단한 상징을 품고 있는 어떤 일이라 하더라도 그건 마치 ‘베스트 오브 엘비스’와 같은 느낌인 것입니다. 그것이 엄청 대단한 의미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나와 무관한 세상이기 때문에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역사를 빼곡히 기록해둔 공책보다 플라스틱 빗이 더 가치 있는 물건이 될 수 있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소설이 완전히 무가치한 이야기였던 것은 아닙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며 느낄 수 있었던 비슷한 감정이 울컥하며 솟아오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의미가 없을지 모를 어떤 사건들이 ‘파룩의 공책’처럼 무심하게 뜯긴 채 흘러가지만, 무심하게 흐르는 사건들을 통해 괜한 동질감 같은 것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아직까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못한 채 방황하는 나날을 보내는 이팔청춘이란 증거일지 모릅니다.

 

 


 

 

    선 베드에 누운 의미 없고 벌거벗은 다리 사이, 그리고 콘크리트 위에 놓인 시계를 상상했다. 그 시계는 생기 없는 콘크리트에 등을 대고, 시작과 처음, 중간과 끝, 깊이와 표면마저 없는 우리의 침묵과 단어, 우울 그리고 멋없는 음악 사이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태양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는, 시침과 분침을 혼동하고 있었고, 이제는 시간을 잴 수 없고, 한때 쟀던 것이 무엇인지도 잊고, 시간을 잃었다는 것을 자백해야만 했다. 이렇게 해서 시계의 생각도,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 하는 생각 없는 사람의 생각과 별 다를 것이 없게 되었다. (1권, 149쪽)

 

 

    그러다 다시 조금 더 공부를 했다, 하지만 아무 쓸모가 없었다. 조금 더 생각하자 이런 것까지 떠올랐다. 이 모든 대수와 √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아는 게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 예를 들면, 언젠가 대수와 제곱근을 사용해서 돈 계산을 할 정도로 부자가 된다 치자, 혹은 정부 일을 한다고 치자. 그러면 나를 위해 이런 계산을 해 줄 비서를 고용할 생각도 못할 정도로 바보가 될 거란 말인가? (1권, 172쪽)

 

 

    내가 제일란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독할 수 없는 이 감정이 그녀를 내게서 멀어지게 하고 있었다. 아침까지 침대에서 생각했던 것처럼, 그녀에게 나 자신에 대해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설명해야 하는 ‘나’는 생각할수록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라고 하는 것은 상자들 속의 상자 같았다. 내게는 항상 다른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 다른 것 다음에 진정한 나를 찾아 보여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상자마다, 제일란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줄 진정하고 고유한 메틴이 아니라, 그것을 감추고 있는 다른 상자가 나왔다. 나는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사랑은 사람을 위선으로 이끌고 간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사랑에 빠졌다고 믿었기 때문에, 계속되는 이 위선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 이 기다림이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내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의 우월성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이것도 나를 위로하지는 못했다. (1권, 207쪽)

 

 

    그녀는 내 옆에 있었지만 다다를 수 없는 존재 같았다, 물장난을 치며 이야기를 할 때, 그녀가 거칠고, 매력적이고, 무심하고, 압도적이며, 평범하고, 놀랍고, 치명적인 존재 같았다. 사랑스러운 물고기처럼 물을 일렁이는 발 말고 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이제는 유럽인들처럼 살고 싶다고 말할 때, 나는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더위, 이끼와 바다 냄새, 그녀 피부의 향기를 느꼈고, 우리의 외로움을 생각하며, 물속에서는 상아처럼 빛나는 탄탄하고, 생기발랄하고, 육감적인 다리를 보다가, 신발을 신은 채 물속으로 들어가 너를 껴안았다. 제일란, 난 너를 너무나 사랑해, 라고 말했다. (2권, 49쪽)

 

 

    나도 그처럼 될 수는 없는 걸까, 나의 생각과 뇌의 구조를 그와 같게 만들 수는 없는 걸까, 그처럼 나도 세상을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묘사할 수는 없는 걸까?

책을 덮고 방 한구석에 던져 버렸다. (2권, 101쪽)

 

 

    나의 모든 의식이 지워지기를, 나의 과거에서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기를, 미래와 기대에 대한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기를 바랐다. 내 이성의 상상에서 벗어나, 이성 밖에 존재하는 세계에서 자유롭게 거닐고 싶었다. 하지만 나 자신을 놔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여느 때처럼 두 사람으로 남을 것임을, 이성의 상상과 망상 속에서 돌고 돌아, 빌어먹을, 이 더러운 곳에서, 이 추한 음악 속에서 한동안 앉아 있을 것임을 이제는 알고 있다. (2권,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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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부인 - 상 - 마님과 점년이의 환타스틱 신문물 체험기 자유부인 1
데니코 글 그림 / 세미콜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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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이야기할 서적은 개화기 시대의 딱지본 표지 같은 느낌의 웹툰『자유부인』이로다. 이 웹툰으로 말할 것 같으면 현대 사회의 떼끄놀로지, 컬처, 라이쁘스타일, 홧숑과 비유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신문물 체험기라 하렷다. 요즘의 시대가 아무리 좋아졌다고는 하나 급속한 변화에 적응하는 것도 스트레스로다. 그래서 외세의 압박으로 조선 후기 새로운 문화가 급속히 들어왔던 개화기를 시대상으로 한 환타스틱 신문물 웹툰이 탄생하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이렷다.

 

 

    마님은 항상 고상하고 기품있는 느낌의 시집을 읽고 있는 듯해 보이오나 읽던 책의 제목을 가만히 살펴보면 파워레인저. 마님 옆에서 시중드는 점년이는 직장 상사인 마님의 눈치를 보는 듯 하오나 오히려 주객이 전도하여 마님을 컨트로올. 이 두 인물의 대화가 무릇 기품 있어 보이는 듯 하나 한편으론 저급하게 느껴질 수 있을 터. 개그 코드를 찾아내 웃음의 적절한 타이밍을 포착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인고. 무릇 인간이란, 고급스럽고 예쁘고 비싼 것에 마음이 가기 마련인 것을. 허나 『자유부인』은 가히 문화적 충격이라 할 수 있어 차마 무어라 뒷말을 잊도록 허받지 못할 정도로고. 그저 과거와 미래의 코오드가 적절히 믹씽되어 한데 어우러진 명품 컬쳐쇼오라 하렷다.

 

 

    웹툰의 종이 여럿 있는 것이 당연지사건만, 『자유부인』은 시대를 반영하는 코오미디 웹툰이라 칭할 수 있는 것이로다. 시대를 다룬 여러 에피소오드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기억될 에피소오드는 언어오염의 실태를 이야기한 것이렷다. 수동태란 주어를 타인이나 사물로 돌려 자신은 마치 책임이 없이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듯한 뉘앙스를 주는 양인들의 언어적 습성. 그것을 이용해 점년은 마님에게 수동태를 사용하여 자신의 책임을 다른 곳으로 떠넘기려 하는데, 그 느낌이 마치 개화기의 언어가 내 안으로 잠시 들어오게 되었사옵는 멜랑콜리한 양인의 느낌이렷다.

 

 

    이야기는 점점 현대 사회 직장인의 라이쁘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렸다. 그래서 비정규직의 설움을 딛고 일어서려는 쁘롤레타리아 계급의 점년과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고 무한 착취를 일삼는 부르쥬우아 계급의 마님 간의 대립이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었도다. 이토록 시대상을 잘 반영한 이야기를 웹툰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사회 생활로 지친 우리의 심신을 맑게 정화시켜 줄 코올라와 같은 것이렷다. 또한 유익하고 건전한 진취적 유희가 되렷다. 에스프레소 다섯 잔을 연거푸 마신 것과 같은 효능을 가진 듯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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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민음사 모던 클래식 58
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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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경하는 관모예 선생님께

 

 

    선생님,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소설 『개구리』는 매우 잘 받아 보았습니다. 받는 즉시 자리에서 다 읽어 버릴 정도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선생님께서 인물을 만들기 위해 심어놓은 장치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소설이라면 기본적으로 보여야할 힘있는 인물이 소설의 서사, 공간과 함께 잘 어우러졌다고 봅니다. 그래서 더욱 단단하고 촘촘한 모습의 소설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안에서 우뚝 솟은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국가와 역사, 인류와 인간의 삶에 대한 보편적인 주제를 다각적으로 그려냈단 점에서 무척이나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나약한 개인의 힘으로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순 없었던 것이겠죠. 그래서 소설 속의 인물, 고모도 노년기에 들어 인성이 유연하게 변했던 것이라고 봅니다. 나약한 모습으로, 혹은 처참한 모습으로.

 

 

    선생님의 나라에서 있었던 산아제한정책, 즉 ‘계획생육’에 대한 이야기는 국제뉴스를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에겐 전부였습니다. 선생님께 이런 이야기를 꺼내도 괜찮을까 모르겠습니다만 아는 것이 하나 없는 소인이 별 소리를 다 하는구나 여기시어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제 생각을 조심스레 꺼내어 보자면, 선생님의 나라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졌던 수많은 사건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드러난 미개한 국민성에 저는 치를 떨어야만 했습니다. 요즘에도 간혹 끔찍하고 해괴한 소식을 전해 듣곤 합니다. 같은 하늘 아래에 살고, 같은 땅 위에 발을 디디고 사는 인간으로서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물론 남 말 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마땅히 갖고 있어야 할 소중한 가치들이 무자비한 무지로 인해 짓밟히고 더렵혀지는 느낌이 저는 너무나 싫습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물론 개인에게 잘못은 없습니다. 잘못은 국가에게 있고, 국가의 계획에 있고, 그래서 만들어진 역사에 있을 테니까요. 선생님의 소설을 읽고 나서 그 누가 고모를 향해 돌을 던지겠습니까. 사실은 소설을 읽던 저는 돌 하나를 집어 들긴 했습니다. 인간의 기본 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인간이라면 당연하다 여길 기본을 갖추지 않은 인물들, 소설 속의 그런 인물을 향해 던지기 위한 돌 하나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돌멩이를 손안에 꽉 움켜쥐고 잠시 머뭇거리고 스스로를 돌아봤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그들에게 던질 힘이 차마 생겨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던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불편한 감정을 끌어안고 펑펑 울 어야만 했습니다.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만듭니다. 곪을 대로 곪아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더 이상 손 쓸 방법이 없어서 방치된 상처. 선생님의 지독한 소설은 어린 커더우의 순한 시선을 통해 한 번 걸러진 상태라 조금은 유쾌한 느낌이기도 합니다. 픽션이지만 픽션이라 할 수 없고, 논픽션이지만 논픽션이라 할 수 없는 이야기. 서신체라는 독특한 형태로 허구와 사실을 순화시켜 섞어 놓아, 아닌 척하며 태연한 표정으로 비극을 말하는 희극. 하지만 소설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오는 것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소설은 너무나 지독한 상처를 품고 있습니다.

 

 

    평생 만 명의 생명을 받았던 산부인과 의사 고모. 그리고 그 손으로 만 명 이상의 아기를 죽여야만 했던 보건당원 고모. 국가의 원칙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개인의 인권은 얼마나 나약하며 하찮은 것일까요. 언제나 당당한 모습이었던 고모 역시 역사의 피해자였단 생각을 합니다. 고모의 양 손에 검붉게 얼룩진 아기들의 피는, 고모가 흘린 아픔의 눈물이고 평생 지녀야 할 고통의 상처이기도 할 것입니다.

 

 

    선생님의 소설을 읽으며 저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화풀이할 대상을 찾지 못해 더욱 화가 났습니다. 그러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장이라도 어딘가를 향해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사회 문제를 들쑤시고, 국가의 반성을 요구하고, 역사에 일침을 가하여, 더욱 역한 냄새가 올라오도록 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한 사람의 문인으로써, 혼란한 시대의 흐름 속에 그래도 살아남아야 할 우리들의 이야기, 가야할 길을 나아했던 인류의 모습을 그리려 했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글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끝으로 ‘개구리’라는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선생님, 도대체 개구리라는 단어는 어떤 생각으로 떠오른 단어입니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중의적 표현을 갖고 있는 단어란 말입니까. 소설을 읽을 이후로 개구리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굉장히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올라옵니다. 개골개골. 상처 입은 아기 정령들이 호소하는 소리. 개골개골. 굴욕에 대한 원한의 소리. 개골개골. 원천적인 고통을 향한 절규의 소리. 개골개골. 올챙이의 움직임처럼 강한 생명력의 소리. 그동안 이런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한 제 자신의 부주의함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전하고 싶은 소식이 굉장히 많이 있었지만, 제 능력이 부족하여 이 정도의 이야기를 전한 것으로 만족해야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소식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관모예 선생님, 아무쪼록 건강 잘 살피셔서 개구리처럼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진짜 그랬겠지? 하지만 설사 1만 량을 받았다 해도 별 가치가 없어. 샹췬, 넌 절대 그런 걸 부러워하면 안 돼. 돈이니 미인이니 하는 건 그저 스쳐가는 연기 같은 거야. 우리에게 소중한 건 조국과 명예, 갖고 같은 거야.

    조카가 말했습니다. 셋째 삼촌 정말 재미있으시네요.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그런 말을 하세요? (84쪽)

 

 

    선생님이 이렇듯 죄책감을 갖고 계신 건 가슴 아픈 일이지만 또한 이러한 정신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에게 많이 부족한 부분이니까요. 누구나 생각의 틀을 깨야 역사를 되짚고 자아를 반성할 수 있다면 인류는 수없이 많은 어리석은 행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138쪽)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일 같지만 위대한 이치 앞에서 이런 작은 희생은 어쩔 수 없습니다. 위대한 이치란 무엇이냐? 계획생육, 인구 통제가 바로 위대한 이치입니다. 악당 역할을 하는 건 두렵지 않습니다. 언제나 악당 역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죽어 지옥에나 가라고 저를 욕하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공산당은 이런 걸 믿지 않습니다. 철저한 유물론자들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설사 정말 지옥이 있다 해도 난 두렵지 않습니다.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가겠습니까! 철사 줄 풀어 샤오상춘 대문에 걸어요! (222쪽)

 

 

    하지만 그건 역사였어요. 역사는 결과를 중시할 뿐, 수단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잖아요. 마치 사람들이 중국의 만리장성, 이집트의 피라미드 같은 위대한 건축물을 볼 때 건축 이면에 자리한 수많은 백골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요. (243쪽)

 

 

    난 젊은 시절 사랑을 통해 세상 이치에 통달한 사람이야. 명예나 이익 같은 건 나에겐 뜬구름 같은 거야.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너희들에게 기적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야. 꿈과 예술 창작은 불가분의 관계이고 실연이란 어마어마한 재산이며, 특히 예술 창작을 하는 사람은 실연의 고통을 통해 자신을 담금질하지 않으면 예술 창작의 최고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알려 주고 싶어서야. (336쪽)

 

 

    모든 아이는 저마다 유일한 존재이며 다른 무엇으로 대체될 수 없습니다. 손에 묻힌 피를 영원히 씻을 수 없는 걸까요? 죄의식에 얽매인 영혼을 벗어던질 방법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선생님,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444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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