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에게는 모든 날이 휴일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지만

백수 역시 다른 이들처럼 일주일을 단위로 살아간다.

평일에는 눈치를 보며 살지만

주말과 휴일에는 집에 있는 게 그래도 덜 눈치가 보인다.

하지만 난 적극적인 백수인지라

다른 백수들이 모두 느긋하게 주말을 즐기는 오늘같은 토요일에도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나왔다.

늘 가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고

만두라면에 밥을 말아 먹었으며

지금은 피씨방에서 글을 쓴다.

 

도서관에 다니는 게 좋은 이유는 공짜로 많은 책을 볼 수 있다는 거지만

신간이 자주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고

공부를 빌미로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분위기를 흐리는 게 짜증난다.

물론 후자의 짜증은 내게 섬싱이 하나도 생기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

하지만 진짜로 썸싱이 생긴다면 그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서 이런 일이 생긴다고 치자.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여자가 접근해서 묻는다.

"김훈의 책을 읽으시는군요. 저와 취향이 같으신데요."

나: 아...네....

여자: 저도 커피 한잔 뽑아 주시겠어요.

나: (동전을 찾으며) 아...네...

여자, 커피를 한모금 마신다.

여자: 무슨 일 하세요?

나: 백숩니다.

여자: 네? 무슨 시험 준비 하시는 건가요 그럼?

나: 아니요 그냥 놀아요.

여자는 필경 나와 한시라도 빨리 헤어지기 위해 커피를 원샷할 거다.

"아이 커피가 왜 이리 뜨거워. 화장실 좀 가볼께요. 책 잘 읽으세요."

이런 게 내게 생길 수 있는 유일한 썸싱,

그러고보면 안생기는 게 차라리 낫다.

집에 가서 엊그제 산 책이나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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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07-04-22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요. 직업을 묻지 않고 책에 대해서만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는 미녀분이 접근하실지도 모르는 일인데. ^^

오뚜기진라면 2007-05-02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나이트님/네 그런 분을 찾아야죠...^^
 

가끔씩 책을 사러 숨어있는 책방이란 헌책방을 간다.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서점만 가면 보물창고에 간 기분이지만,

헌책방에 가면 한층 더 즐겁다.

반값도 안되는 가격의 책들이 즐비하게 꽂혀 있고

옷가지와 달리 책은 헌책이라고 재미가 덜한 건 아니니까.

그 "싸다"는 생각 때문에 본의 아니게 충동구매를 하게 되긴 해도,

책방을 나와 집으로 갈 때의 마음은 풍성하기만 하다.

 

-성석제의 <새가 되었네>를 샀다. 성석제의 책은 거의 다 읽었지만, 초기작은 아직 못읽었다.

그가 과연 어떻게 날 즐겁게 해줄지 기대된다.

-농촌작가로 알려진 이문구의 <암소>를 샀다. 이문구의 책은 한권도 못읽었는데

이번이 첫 만남이다. 이윤기 씨가 이문구의 책을 붙잡는 바람에 원고 마감일을 못지켰다는

얘기가 생각나서 골랐다.

-나보코프의 <롤리타>, 명성만 자자한 이 책을 드디어 내 손에 쥐었다.

그 당시엔 충격을 주었을 이 소설이 지금도 내게 놀라움을 선사할 수 있을까?

사건만 벌어지면 책이나 영화 탓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유아 성폭행이 늘어난 것에 대해 이 책 탓을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듯하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은 이 책을 읽지 않아서겠지?

-<붉은 폭풍>은 톰 클랜시의 이름값 때문에 샀다. <붉은 10월>을 영화로 보긴 했지만

저자의 책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화를 염두에 둔 듯한 그의 소설들은

문학성 면에서는 그다지 평가받고 있지 못한 느낌이나, 재미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지금 찾아보니 나온 지가 벌써 15년, 하지만 책의 보존상태는 꽤 좋다.

-<KAL 858, 무너진 수사발표>는 책방을 나오려다 눈에 띄어 샀다.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왜 이 사건이 쟁점화되는지 몰랐던 내게

새로운 식견을 제시해 주리라 기대한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 사기라는 설이 나온 적 있다.

무척이나 그럴듯한 이론으로 무장한 그 설을 반박할 능력이 내겐 없었다.

그렇긴 해도 여전히 난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걸 믿는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칼기가 폭파되었다는 수사발표를 계속 믿을 수 있을런지.

 

이렇게 7권을 비닐봉지에 담아 왔다.

19,000원이란다.

이로 인해 한 3주는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헌책방에서 즐거움을 얻는다면, 나도 읽은 책을 거기다 갖다줘야 옳은 것일까?

하지만 이상하게 난 내 품에 들어온 책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그 바람에 방이 좁아 죽겠지만, 책 때문에 좁은 방이 책 없이 넓은 방보다 훨씬 더 좋다.

별로 많이 읽지도 않으면서 책벌레 흉내는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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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따지자면 난 산울림 세대는 아니다.

산울림이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절, 난 음악을 듣기엔 너무 어렸다.

하지만 사람이 꼭 동시대 가수만을 좋아해야 하는 법은 없는지라

우연히 라디오에서 산울림의 노래를 듣고 팬이 된 이래

그의 노래는 내 삶에 커다란 위안이 되어 주었다.

 

내가 처음 좋아했던 노래는 김민우의 '사랑일 뿐야'다.

김민우의 힘찬 창법이 빛을 발한 그 노래는 감수성이 한창 예민했던 날 뒤흔들었다.

돌이켜보니 변진섭과 이문세의 노래들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난 발라드 노래는 죄다 사랑을 말해야 하는 줄 알았었다.

김민우의 사랑일 뿐야의 일부다.

"언젠가 너의 집앞을 비추던 골목길 외등 바라보며/

길었던 나의 외로움의 끝을 비로소 느꼈던 거야"

하지만 산울림이 내게 가르쳐 준 건, 꼭 사랑 노래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거였다.

예를 들어 내가 산울림에게 매료된 계기를 제공한 산할아버지를 보자.

"산할아버지가 쓴 구름모자를 벗겨오려다 걸리는 바람에 뒤로 자빠졌다,

산할아버지는 허허허허 웃었다"

세상에나, 이런 게 노래로 만들어 전국민의 애창곡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산울림 노래를 듣기 전엔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우리 세대가 열광했던 서태지 역시 '난 알아요'에서 애잔한 사랑의 슬픔을 노래한 걸 보면

산울림은 시대를 훨씬 앞서간-사랑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고 꼭 앞서간 건 아니지만-

그룹이었다.

 

나로 하여금 고등어를 좋아하게 만든 어머니와 고등어를 보자.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고등어가 있더라.

어머니가 내일 고등어 반찬을 준비하고 계셨나보다'

이 노래를 산울림은 특유의 유쾌한 창법으로 부른다.

어머니와 고등어는 한동안 내 애창곡이었다.

난 산울림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산울림의 업적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와 배우보다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는 것 이외에

내 영혼을 달래 준 또 하나의 위대한 그룹 '동물원'도

사실은 김창완에 의해 만들어졌단다.

중학교 때 '거리에서'를 얼마나 많이 따라 불렀는지

지금도 그 노래만 나오면 중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고

시청앞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가 떠오른다.

외화를 버는 국가적 사업은 아닐지 몰라도

음악은 이렇듯 사람의 마음을 아련하게 한다.

 

자발적 백수가 되어 눈치를 보며 살게 된 지금사 생각해 보면

그의 음반들을 사서 듣던 그때가 참 행복했던 것 같다.

요즘도 난 눈을 감고 그때 열심히 불렀던 산울림의 노래들,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나 '안녕 귀여운 내 친구야' 같은 노래를 불러 볼 때가 있다.

김장훈이 '혼잣말'이란 노래에서 잘 지적했듯이

그때의 느낌은 가질 수 있지만,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회상은, 그래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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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7-04-10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때로 갈 수가 없어서 더 애잔하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요? 저도 가끔 중,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노래를 들으면 그 때 생각이 나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때로 갈 수 없어서 더 마음이 진하게 울리는 것 같더라구요....
 

일요일 저녁, 간만에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TV가 틀어져 있는 게 어색함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일밤의 몰래카메라를 한다.

과거의 프로를 가져다가 재탕하는 거, 그리 좋진 않아 보인다.

하지만 장나라 편을 보니까 시대의 변화에 맞게 머리를 무진장 쓰는 모습을 보여줘

이번 것도 기대를 했는데

백지영과 장나라가 싸우는 척하며 이기찬을 속이는 게 어찌나 재미있는지

밥을 뜨다 말고 계속 TV만 봤다.

프로가 재미있는 것보다 더 감동적이었던 게 백지영의 등장이었다.

난 가수 백지영을 그 비디오 사건 때까지로 기억한다.

그 이후의 백지영은 내게 있어서 세상의 폭력에 희생된 가련한 여인이었을 뿐이다.

백지영은 끊임없이 연예계 복귀를 시도했지만

아무 잘못 없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계속 돌을 던졌다.

아니, 마약 한 애들도 다 잘만 돌아가던데 아무 잘못 없는 백지영이 왜 자숙을 해야 하지?

그 사람들의 폭력에 소름이 끼쳤지만 그게 우리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백지영의 도전은 계속 이어졌나보다.

작년 언제쯤 백지영이 가요톱텐에서 1위를 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 기사 밑에도 수없이 악플이 달렸고

난 그 악플들을 읽으며 가슴아파했다.

내가 네이버 관리자가 아닌 게, 혹은 사이버수사대가 아닌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백지영 말야, <사랑 안해> 부른 그 백지영이냐?"

어머니가 내게 물으셨을 때, 난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사랑안해>는 내 귀에도 익은 유명한 노래였고

가수는 백지영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백지영이 이제 드디어 진정한 가수가 되었구나.

기억하기 싫은 과거를 모두 이겨내고 홀로 섰구나.

내 우려와 달리 엠비시 일밤 게시판이나 네이버에 백지영을 탓하는 댓글은 거의 없었다.

원래부터 그녀를 좋아했지만

당당히 선 그녀의 미소가 유난히 이뻐 보인다.

나도 남들이 뭐라고 하건 굴하지 않는 당당한 백수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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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보니 손학규가 기자 회견 중에 울고 있다.

계산된 눈물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말한다면

그렇게 슬퍼할 일을 왜 저지르는지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떠한 말로 자신을 치장한다 해도

사람들은, 지지율이 낮아 어차피 안될 거니까 탈당한 거라고 생각할 거다.

그리고 사람들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정치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여권의 환영 논평이야 존재하지도 않는 반사이익을 기대한 거겠지만

시대가 옹호하는 명분 운운한 이인제의 찬사가 유난히 눈에 띈다.

그런 그를 보고 있노라면 동병상련이란 단어가 떠오르지만

정작 이인제 본인은 손학규를 제2의 이인제로 칭하는 게 불쾌한 기색이다.

자신은 경선에서 완주한 뒤 탈당을 한 반면

손학규는 경선을 해보지도 않고 탈당했기 때문이라나.

제대로 된 사람이면 경선 완주 뒤 탈당하는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할 텐데

이인제는 그런 것도 아니니, 정치인의 뇌 구조는 참으로 희한한가 보다.

 

이인제의 요구대로 그를 제2의 이인제로 칭하는 대신 다른 모델을 찾아보면

92년의 이종찬이 떠오른다.

3김으로 대표되던 정치판의 세대교체에 대한 열망을 품게 했던 그는

지지율에서 뒤지자 당을 나가고

이름도 기억 안나는 조그만 당을 만든다.

한때 종로의 단골 당선자였고

야당 총재인 이민우에게 승리하기도 했던 그는

"3김씨와 붙어도 자신있다"고 호언했었다.

하지만 당을 떠난 뒤 행보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 걸로 보아

별반 일이 잘 풀리지 못한 건 확실한 것 같다.

 

제2의 이인제건 이종찬이건

중요한 건 탈당해서 잘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두 유력주자를 견제해 줄 것을 기대했던 비교적 괜찮은 후보의 어지러운 선택이

그래서 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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