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책을 사러 숨어있는 책방이란 헌책방을 간다.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서점만 가면 보물창고에 간 기분이지만,
헌책방에 가면 한층 더 즐겁다.
반값도 안되는 가격의 책들이 즐비하게 꽂혀 있고
옷가지와 달리 책은 헌책이라고 재미가 덜한 건 아니니까.
그 "싸다"는 생각 때문에 본의 아니게 충동구매를 하게 되긴 해도,
책방을 나와 집으로 갈 때의 마음은 풍성하기만 하다.
-성석제의 <새가 되었네>를 샀다. 성석제의 책은 거의 다 읽었지만, 초기작은 아직 못읽었다.
그가 과연 어떻게 날 즐겁게 해줄지 기대된다.
-농촌작가로 알려진 이문구의 <암소>를 샀다. 이문구의 책은 한권도 못읽었는데
이번이 첫 만남이다. 이윤기 씨가 이문구의 책을 붙잡는 바람에 원고 마감일을 못지켰다는
얘기가 생각나서 골랐다.
-나보코프의 <롤리타>, 명성만 자자한 이 책을 드디어 내 손에 쥐었다.
그 당시엔 충격을 주었을 이 소설이 지금도 내게 놀라움을 선사할 수 있을까?
사건만 벌어지면 책이나 영화 탓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유아 성폭행이 늘어난 것에 대해 이 책 탓을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듯하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은 이 책을 읽지 않아서겠지?
-<붉은 폭풍>은 톰 클랜시의 이름값 때문에 샀다. <붉은 10월>을 영화로 보긴 했지만
저자의 책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화를 염두에 둔 듯한 그의 소설들은
문학성 면에서는 그다지 평가받고 있지 못한 느낌이나, 재미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지금 찾아보니 나온 지가 벌써 15년, 하지만 책의 보존상태는 꽤 좋다.
-<KAL 858, 무너진 수사발표>는 책방을 나오려다 눈에 띄어 샀다.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왜 이 사건이 쟁점화되는지 몰랐던 내게
새로운 식견을 제시해 주리라 기대한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 사기라는 설이 나온 적 있다.
무척이나 그럴듯한 이론으로 무장한 그 설을 반박할 능력이 내겐 없었다.
그렇긴 해도 여전히 난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걸 믿는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칼기가 폭파되었다는 수사발표를 계속 믿을 수 있을런지.
이렇게 7권을 비닐봉지에 담아 왔다.
19,000원이란다.
이로 인해 한 3주는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헌책방에서 즐거움을 얻는다면, 나도 읽은 책을 거기다 갖다줘야 옳은 것일까?
하지만 이상하게 난 내 품에 들어온 책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그 바람에 방이 좁아 죽겠지만, 책 때문에 좁은 방이 책 없이 넓은 방보다 훨씬 더 좋다.
별로 많이 읽지도 않으면서 책벌레 흉내는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