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따지자면 난 산울림 세대는 아니다.
산울림이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절, 난 음악을 듣기엔 너무 어렸다.
하지만 사람이 꼭 동시대 가수만을 좋아해야 하는 법은 없는지라
우연히 라디오에서 산울림의 노래를 듣고 팬이 된 이래
그의 노래는 내 삶에 커다란 위안이 되어 주었다.
내가 처음 좋아했던 노래는 김민우의 '사랑일 뿐야'다.
김민우의 힘찬 창법이 빛을 발한 그 노래는 감수성이 한창 예민했던 날 뒤흔들었다.
돌이켜보니 변진섭과 이문세의 노래들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난 발라드 노래는 죄다 사랑을 말해야 하는 줄 알았었다.
김민우의 사랑일 뿐야의 일부다.
"언젠가 너의 집앞을 비추던 골목길 외등 바라보며/
길었던 나의 외로움의 끝을 비로소 느꼈던 거야"
하지만 산울림이 내게 가르쳐 준 건, 꼭 사랑 노래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거였다.
예를 들어 내가 산울림에게 매료된 계기를 제공한 산할아버지를 보자.
"산할아버지가 쓴 구름모자를 벗겨오려다 걸리는 바람에 뒤로 자빠졌다,
산할아버지는 허허허허 웃었다"
세상에나, 이런 게 노래로 만들어 전국민의 애창곡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산울림 노래를 듣기 전엔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우리 세대가 열광했던 서태지 역시 '난 알아요'에서 애잔한 사랑의 슬픔을 노래한 걸 보면
산울림은 시대를 훨씬 앞서간-사랑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고 꼭 앞서간 건 아니지만-
그룹이었다.
나로 하여금 고등어를 좋아하게 만든 어머니와 고등어를 보자.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고등어가 있더라.
어머니가 내일 고등어 반찬을 준비하고 계셨나보다'
이 노래를 산울림은 특유의 유쾌한 창법으로 부른다.
어머니와 고등어는 한동안 내 애창곡이었다.
난 산울림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산울림의 업적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와 배우보다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는 것 이외에
내 영혼을 달래 준 또 하나의 위대한 그룹 '동물원'도
사실은 김창완에 의해 만들어졌단다.
중학교 때 '거리에서'를 얼마나 많이 따라 불렀는지
지금도 그 노래만 나오면 중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고
시청앞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가 떠오른다.
외화를 버는 국가적 사업은 아닐지 몰라도
음악은 이렇듯 사람의 마음을 아련하게 한다.
자발적 백수가 되어 눈치를 보며 살게 된 지금사 생각해 보면
그의 음반들을 사서 듣던 그때가 참 행복했던 것 같다.
요즘도 난 눈을 감고 그때 열심히 불렀던 산울림의 노래들,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나 '안녕 귀여운 내 친구야' 같은 노래를 불러 볼 때가 있다.
김장훈이 '혼잣말'이란 노래에서 잘 지적했듯이
그때의 느낌은 가질 수 있지만,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회상은, 그래서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