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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 - 다섯 남매 태어나서 한글 배울 때까지
박정희 지음 / 걷는책 / 2011년 6월
평점 :
현재도 생존해 계시는 올해로 아흔이 되시는 박정희 할머님...
일제시대부터 6.25까지, 고스란히 겪어내신 분의 육아일기라니...
그것두 무려 다섯남매의 육아일기를 말이다.
어찌나 궁금하고 또 과연 어떤 내용일는지 가늠할 수 없어 책을 받자마자 바로 펼쳐들었다.
1, 2부로 구성되어 있는 본 책의 1부에는 다섯 남매의 육아일기가
그리고 2부에서는 박정희 할머님의가족이야기가 담겨있다.
또 하나의 덤은 할머니와 첫째 따님이 함께 쓰고 그린 '깨끗한 손'이란 동화책.
지금은 수채화 화가로 여생을 보내고 계신 할머니와 역시 화가의 삶을 살고 있는 첫째 딸의 솜씨가 여실히 보여진다.
실제 딸의 이야기를 재미있고 또 여러가지 생활 속 교훈도 얻을 수 있게 쓰신 것이 퍽 흥미로웠다.
늘 글을 잊지 않기 위해 쓰고 그저 그리는 것이 좋아 그림을 그리신다는 그 철학이 배어있단 느낌.
이런 활동 자체가 자라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지적 자극이고 본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첫째 딸의 육아 일기부터 차례로 시작된다.
각각의 내용은 일기 원문의 사진과 함께 풀어 쓴 내용을 함께 실어 놓고 있다.
구성은 다섯 남매의 것이 거의 흡사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어나서부터 초등학생이 되기 전까지의 모습들을 담고 있는데,
그 내용과 그림 등등 따스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참 좋았던 것 같다.
일기 시작에 여는 글을 쓰고, 태어난 시와 날짜, 태어난 당시의 가족들 이야기며 당시 세계 정세까지..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담고 있는 점에 조금은 놀랐지만, 할머니의 성장배경을 보면 이해불가한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직접 쓰신 글과 그림들, 그리고 간간히 포함되어 있는 사진까지,
당시의 느낌들을 생생히 전해주고 있어 그때의 모습들을 상상해 보며
또 우리 부모 세대의 어릴 적 모습을 함께 그려보며 읽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한 시대의 육아일기가 이제는 지난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가 되었나보다.
거의 비슷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마지막 다섯째로 낳은 아들 제룡의 일기와 비교해 보면..
내용이나 구성은 비슷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달라진 내용들과
좀 더 세분화 되고 자세한 묘사를 한 예쁜 색채의 그림들이 눈에 띈다.
백일과 돌잔치 때 잊지않고 선물 등으로 축하해 주신 분들의 자료까지 남겨놓은 점이 재미있다.
딸과는 전혀 다른 성향의 아들을 키우며 새로이 겪는 일들을 재미나게 풀어놓고 있다.
특히 장난감이나 놀이기구 등에 대한 묘사는 어렴풋하게나마 내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육아일기도 그랬지만 내 주의를 확 사로잡은 건 바로 가족 이야기, 그 중에서도 결혼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옛날 내가, 우리 엄마가 태어나기도 더 전인 그 시대의 여자가 과연 정말 이리 했을까 싶을 정도다.
본인 스스로도 대담하다 이르고 있지만, 정말 대담 아니 대범하기 짝이 없다.
자신을 소개하는 조사서를 보낸 것도 또 상대방에게 요구한 것도 말이다.
그 당시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신여성답단 생각이 들기도 했고 적지않이 부럽기도 했다.
특히 시어머니와 가족들 앞에서 남편과 다투다 밥상을 엎은 에피소드는 정말 속시원해하며 읽었던 듯..^^
마지막 추천사를 쓴 박정희 할머니의 첫째 사위가 썼듯이
엘리트에 속하는 할머니의 특별한 삶은 자칫 먼나라 이야기처럼 들릴수도 있지만
그 속에 배어있는 소박하고 겸손함, 타인을 배려하고 아낄줄 아는 그 진실한 마음을 보았기에
모두가 공감하게 되는 것을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엄마로서의 내 모습을 잠시 뒤돌아 보았다.
처음의 열의는 어디로 갔을까... 늘 사랑을 주기만 해도 모자른 시간이건만 지금 나는 무얼 하고 있나..
여러가지 생각들이 교차되었다. 어쩌면 육아일기에 할애할 시간을 내는 것이 바쁜 일상 속에서 그리 녹녹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할머니가 머릿말에 쓰셨듯 '너희 일생을 통해 큰 힘'이 될것이기에
또 그일기를 통해 '자기의 존재가 퍽 고맙고 귀하다고 생각하고 기쁘겠기에' 쓸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여겨진다.
굳이 매일 남기고 많이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칫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
생각날 때마다 혹은 한 해가 갈 때마다 조금씩 쓰고 남겨두어도 그 마음만은 충분히 전달되지 않을까.
쓸 종이가 없어 교회에서 버리는 악보를 가져다 쓰셨던 할머니와 비교하면 얼마나 좋은 재료가 넘쳐나는지..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면 어떨까 싶다.
나중에 우리 아이가 보고 즐거워할 모습을 상상하며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인천의 평안의원 지금의 수채화의 집이 몹시 궁금해진다.
늘 열려있다는 그곳으로 마실이라도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