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한일관계와 『일본서기』 - 『일본서기』의 허상과 실상 동북아역사재단 교양총서 15
이재석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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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원전 660년부터 시작한다고 설정하여 697년까지 약 1350년간의 역사를 정리하고자 하여 이를 720년에 완성했는데 그 과정을 상식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아마도 7세기, 즉 600년대의 역사는 『일본서기』에서도 가장 ‘현대사’에 해당하며, 당시 편찬자 입장에서 보아도 자신의 당대 또는 부친이나 조부 세대의 역사이므로, 비교적 기억도 선명하고, 역사 기술에 참고할 자료도 잘 남아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시대의 역사는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P50

물론 그렇다고 하여 6~7세기의 서술이 모두 사실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등장하는 인물이 실존 인물이라고 해도 특수 목적에 따라 왜곡, 윤색해 기술되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실적’의 의미는 이전 시기의 전승적 차원의 기술 부분에 비해 그나마 6세기 이후는 전승 속의 인물이 아닌 실존했던 인물이나 사건이 기사에 반영되어 있을 확율이 높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 P52

『일본서기』 속 일본 역사의 전개과정은 신화의 세계와 인간 지상의 세계로 구분되어 있다. 신화의 세계에서 일본의 국토와 여러 신이 탄생하였으며 그 뒤에 비로소 지상(일본열도)에서 천황이 일본을 건국해 지배하기 시작한 인간의 역사가 이어져 갔다는 것이다. (…중략…) 그럼 왜 일본의 역사가 신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고 설정된 것일까? 그것은 일본을 건국하고 천황으로서 통치하기 시작하는 천황가가 바로 하늘의 천상계에서 내려온 천손의 후손이라고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 P42

일본은 석기시대에서 곧장 청동기+철기의 혼용 시대로 이행하였으므로 매우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중략…) 이러한 특이성은 일본 열도 내부의 내재적 발전의 결과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이식 문화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즉 농경과 철기 문화 단계의 금속에 익숙한 사람들이 일본열도로 이주함으로써 그러한 문화가 전수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주역은 한반도 사람들이었다. - P64

농경과 금속문화로 상징되는 야요이 문화는 당시 일본열도 최고의 선진 문화였으며 이것이 사회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야요이 문화를 주도한다는 것은 곧 일본열도의 패권을 장악할 가능성을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서일본 지역이 이러한 우위성을 갖게 된 것은 한반도와 중국 대륙으로부터 문물을 받기 쉬운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 P68

『일본서기』의 신공황후와 응신청황기의 한일관계 기사의 연대는 대게 2주갑(120년)을 더해보면 『삼국사기』의 연대와 정확하게 일치하므로…. - P86

무령왕 시기를 포함해 6세기의 왜국 관계는 주로 『일본서기』의 기사를 통해 엿볼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현존하는 한국의 역사서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내용이 『일본서기』에 집중적으로 수록되어있기 때문이다. 무령왕과 성왕의 치세기간에 해당하는 왜국의 계체천황~흠명천황 기간의 『일본서기』 기술내용은 그 상당수가 백제를 위시한 한반도 관계기사로 채워져 있어 『일본서기』 안에서도 특히 계체/흠명천황기는 백제의 역사서를 보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 P148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차치하고라도 그럼 무령왕의 아버지는 누구였을까? 사실 이 부분도 난해하다. 위의 사료에 따르면 무령왕은 개로왕의 아들이다. 하지만 어떤 사료에는 곤지의 아들, 또 어떤 사료에는 동성왕의 아들이라고 되어있다. 『삼국사기』는 동성왕의 둘째아들설을 취하고 있다. 동성왕이 곤지의 아들인 점은 분명하고, 연령에서 볼 때 무령이 동성보다 연장자였음 또한 분명한데 그런 무령이 동성왕의 아들일 리는 만무하다. 무언가 전승의 과정에서 상당한 착오가 생겼음을 알 수 있다. - P120

그런데 이 기사를 자세히 검토해보면 주어(행위의 주체)가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바로 여기에 기사의 비밀을 푸는 담서가 감추어져있다고 생각한다.(…중략…) 따라서 목라근자 등을 파견한 주체도 응당 신공황후가 되어야한다. 흥미로운 점은 목라근자는 백제의 장군이라고 특별히 주기가 붙어있다. 즉 목라근자를 파견한 사람은 신공황후가 아니라 백제 근초고왕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구저는 백제의 사신으로 이미 <사료11>에서도 나온 인물이며 사백/개로도 전형적인 백제인의 인명이지 왜인은 아니다. 또한 목라근자의 군대는 나중에 백제왕 부자가 이끄는 부대와 합류해 4읍의 항복을 받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렇게 보면 상기 군사 행동은 백제군이 주체가 되어 움직인 작전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 P91

그렇다면 『일본서기』에서 기술된 임나일본부라는 용어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런 실체도 없는데 『일본서기』 편자가 무리하게 만든 가공의 존재일까? 아니면 어떠한 실체가 있었는데 그것을 『일본서기』가 임나지배의 기구인 양 임나일본부라고 명명하며 기술한것에 불과한것일까?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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