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피해자
천지무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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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시대를 살아가는 딸을 둔 아버지로서, 그리고 중년의 남자로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추잡한 남성 위주의 가학적 성폭행과 성추행, 성희롱의 모습들이 수없이 많은 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역겨움과 함께 책임감을 느낍니다.. 단순하게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믿을 순 없겠지만 일반적인 사실적 관점에서 빌어먹을 권위적 남성들이 보여주는 여성적 차별의 시선과 행위들은 처벌받아 마땅하리라 여깁니다.. 몇몇 가해자의 판단은 유보하더라도 수없이 많이 드러난 권력 위에 군림한 남성적 횡포는 굳이 떠들어대지 않아도 우리가 이미 인식하고 느끼고 체험하고 경험하고 겪어본 일들입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여성의 90% 이상이 한번 이상은 느껴본 차별적 모욕이라는 점에 대해서 저 스스로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는 감정으로 대한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지독한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우치지 못했다손 치더라도 뒤늦은 감이 있는 현재의 미투운동의 실천의 방법론은 단순한 시대적 유행이라 치부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당연히 일어나지 말아야할 일들이 앞으로는 자연스럽게 하지 않게 되길 바라는 그들의 아우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시대의 남성의 반성과 인식이 뒤따라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또 하나 현재처럼 번져가는 미투운동의 언론적 보도들이 하나의 사회적 문제의 차원을 넘어서는 자극적이고 소모적인 황색 저널리즘의 소재로 악용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사회적 지위와 공인적 영역에서 밝혀지는 수많은 빌어먹을 남성들의 범죄행위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런 저널리즘의 쏠림으로 인해 대다수의 일반인 여성분들의 수모와 상처가 묻혀버리지 않게 되길 바라며 이를 행한 대다수의 남성들의 차별적 시선들도 충분히 드러나 인식의 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2. 우리의 아이들은 절대 이러한 비이성적이고 권력적 횡포의 대상이 되지 않고 누구나 평등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유로운 영혼의 날개를 펼치며 그들만의 세상속에서 자존감 높은 삶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늘 할 말이 없으면 던져놓은 제 이야기로 아이들이 있습니다.. 많죠, 그렇다보니 하루에도 열 두번씩 아이들의 관계적 행동에 대해 잔소리를 하곤 합니다.. 싫다는 이야기를 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귀찮게 하거나 짜증나게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폭력이고 폭행과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부모로서,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누군가가 정확한 거부의 반응과 인식을 보여주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장난처럼 상대방에 이기적인 행위를 보여주는 것에 대한 가르침과 조언과 옳고 그름을 알려주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쉽게 변하진 않죠, 세상은, 사회는 늘 강자와 약자의 소통과 권위와 복종의 상관관계속에서 수없이 많은 눈물을 쏟아내며 살아가는 공동체이니까요, 특히나 학생과 선생 특히 성인의 영역속의 대학이라는 공간속에서 벌어지는 권위적 굴레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터져나오는 일부 권위적 빌어먹을 교수들의 행위들은 여태껏 우린 이런 미투운동이 터져나오기 이전부터 소설이나 영화나 수많은 드라마적 소재로 사용되어져왔으니까요, 여태껏 몰랐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더러워서 피하는 똥정도로 치부하고 말았던 것이죠, 이번에 제가 읽은 이야기는 그냥 치부하고 넘어간 상황이 극단적 살인의 영역까지 이어지는 대단히 파괴적인 연쇄살인의 모양새로 독자에게 추리를 안겨주는 작품입니다.. 대만 작품인데요, "네 번째 피해자"라는 독특한 방식의 서술적 방법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오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3. 사회적으로 지위를 인정받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는 설치예술가 팡멍위는 얼마 전 여성 3명을 살인한 혐의로 구속됩니다.. 하지만 그가 저지른 연쇄살인과 관련하여 3명의 여성의 시신을 비롯한 사건의 내막에 대해서 일체 함구를 하고 있죠, 여전히 살인사건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한 경찰은 어떻게해서든 그에게서 단서를 찾아내려하나 갑자기 팡멍위는 구치소에서 건전지를 삼켜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잠시 의식이 돌아온 사이 자신이 저지른 사건과 관련된 단서를 남깁니다.. 그가 저지른 세건의 살인사건 외 또 다른 네 번째 피해자가 있다는 의도로 그는 네잔의 물을 떠놓고 제를 올린 것이죠, 언론과 경찰은 이미 발생한 세건의 살인사건의 단서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네 번째 피해자의 단서가 나온 상황에 대해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리고 이 네 번째 피해자와 관련해서는 팡멍위가 체포될 당시 극적으로 구출된 네 번째 피해자인 저우위제에게 단서가 향하게 되죠, 현재 이 팡멍위 사건으로 시사뉴스를 진행중인 인기 아나운서 쉬하이인은 이러한 팡멍위와 관련된 사건으로 인한 특종을 만들어내기 위해 네 번째 피해자인 저우위제와 함께 자신이 직접 사건을 파헤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방송국인 탕런글로벌에서의 경쟁자인 좡징과의 승진 다툼에서 이기고 싶은 욕심이 크죠, 그리고 방송국 사장의 제보자로부터 얻은 단서로 팡멍위가 저지른 살인사건에 대한 단서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조금씩 살인사건의 내막이 드러나고 쉬하이인은 자신이 만들어낼 역할에 대한 특종에 대한 독점에만 침착되어가는데,,,


    4. 이 작품은 일반적인 스릴러소설이나 추리소설적 방식과는 조금 다릅니다.. 누군가가 살인을 저지르고 경찰이나 탐정들이 그 사건의 단서를 찾거나 더이상 살인이 벌어지지 않게 살인자를 찾아 대결하는 일반적인 장르적 구성과는 다릅니다.. 살인을 저지른 연쇄살인마가 살인과 관련된 일체의 내용을 함구한 체 숨져버리는거죠, 유일하게 자신이 택한 네 번째 피해자를 살해하지 못한 상황만이 남은 체 사건은 오리무중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경찰이나 탐정의 영역이 아닌 언론의 보도적 행태를 중심으로 사회적 정의나 범죄적 진실의 목적보다는 언론의 무차별적인 무감각한 자극적 사회적 이슈로 사건을 파헤치는 것을 중점적으로 이어나갑니다.. 이 작품의 중심인물인 쉬하이인은 이러한 언론의 자극적 이슈에 매몰된 무감각적 양심의 대표적 인물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정의보다는 자신의 영욕과 언론적 시청률을 위해 가장 중심이 되는 네 번째 피해자를 자신의 울타리속에 가둬두기도 하죠, 이 소설은 이어지는 동안 옳고 그름의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고 있는 그대로의 자극적 저널리즘의 사회적 딜레마를 여지없이 드러냅니다.. 이 또한 대단히 현실적이기까지 합니다.. 독자들은 매우 긴박감 넘치는 사건의 내막을 쫓아가는 상황속에서 펼쳐지는 방송국 내부의 알력과 사회적 이슈에 집착하는 언론인들의 행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소설의 이야기 중간중간 챕터의 연결처럼 이어져나오는 수많은 언론의 대표적 보도와 루머와 대중의 자극적 대응들은 이러한 언론의 무자비한 병폐를 고스란히 보여주죠, 작가는 이야기를 끊지않고 이야기의 중간중간 수없이 많은 사회적 매체들의 흐름을 끼워놓았습니다.. 아마도 이야기의 맥을 끊기보다는 함께 숨쉬는 언론의 상황을 전달하기 위함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5.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대단히 속도감 넘치고 긴박한 이야기의 진행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보여주고자하는 범죄사실보다는 언론의 모습에 좀 더 치중하는 상황이 펼쳐지죠, 그래서 독자들은 이 작품의 본질적 장르의 영역에 대한 즐거움은 조금 약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초중반에 이어지는 단서찾기와 상황의 연결은 무척이나 신선하고 흥미진진함에도 언론인들의 아귀다툼속에서 범죄사실은 좀처럼 두각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사건의 정의를 찾는 것이 이 작품의 목적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된 세명의 시신에 대한 단서와 그 내막을 끄집어내고 이를 연결하여 특종의 영예를 얻고싶어하는 커리어우먼의 심리는 무척이나 공감이 갑니다.. 그리고 중후반부를 들어서면서 조금씩 새로운 심리적 딜레마와 상황의 혼란스러움에 대한 방법들이 제시되기 시작하죠, 저우위제를 중심으로 새로운 사건의 방향성이 제시되면서 여지껏 보여주었던 언론의 이야기보다는 범죄의 진실에 조금 더 다가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펼쳐지는 후반부의 상황은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죠, 대단히 멋진 후반부와 결말의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까 독자로서 이런 비스므리한 상황이 펼쳐질거라는 예상은 대략하게되지만 실제적으로 보여지는 상황의 반전은 대단히 색달랐습니다.. 저로서는 깜짝 놀랬으니까요, 알면서도 속는 느낌,


    6. 일반적이지 않은 구성과 서사적 방법의 참신함은 이 작품을 읽는 즐거움중에 하나입니다..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언론에 대한 공감과 상황적 인식은 독자들이 이야기를 파악하는데 또 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의 우리의 삶속에서 보여지는 언론의 행태가 그러하니까요, 아무리 무시하고 외면하려고해도 인간의 본능적 자극적 호기심은 이들이 여전히 우리의 삶속에서 거짓으로 포장하는데 거리낌이 없으니 말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장르소설의 범죄적 이야기속에 색다른 서술의 시점과 함께 언론이라는 영역에 보여주는 추악한 모습과 그 속에 아무렇지도 않게 스며든 대중의 심리를 대단히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즐겁고 재미지고 매력적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근래들어 장르소설의 영역이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전 제가 알던 장르소설의 영역은 영미소설 위주와 우리와 성향적 연결이 잘 이루어지는 일본소설이 주를 이루었으나 이제는 북유럽과 세계 곳곳의 장르적 이야기의 독창성과 특히나 중국이나 대만등에서 등장한 새로운 장르적 영역의 발견을 독자로서 알게된 것이 무척이나 좋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문화적 확장에 찬성을 하면서도 여전히 우린 책과 관련된 문화적 인식은 경직되고 외면당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가지게 됩니다.. 책의 종류와 장르를 구분짓기 보다는 책을 읽어서 즐겁고 재미지고 그것으로도 삶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진다면 되는거 아닌가 싶은데,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가려 읽을려고하는 경향이, 없음말고,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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