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의 꽃
김옥숙 지음 / 새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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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고통중의 하나가 아이의 아픔이죠, 부모가 되지 않으면 제대로 알지 못할 고통이기도 합니다.. 저역시 그러했습니다.. 첫딸이 태어나 어느날 고열에 경기를 일으킬때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게 없다는 사실에 좌절과 함께 아이의 아픔을 부모인 저희들이 대신 받을 수있다면 그순간 모든 것을 다 할 수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더군요, 첫 아이는 보통 그렇습니다.. 조금만이라도 아픈 낌새가 보이면 철부지 부모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정신이 나갈 정도로 힘든 경우가 더러 있죠, 그렇게 경험해보면 아이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과 내리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부모 역시 그러했을진데 사실 제가 부모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제 부모의 내리사랑에 대해서는 간과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둘째가 태어나고 몇개월 되지 않은 아이가 아주 힘든 아픔을 겪는 상황에서 믿음이라고는 없던 제가 수술 전날 새벽 병원 밖에서 끊임없이 담배를 태우며 세상에 제가 아는 신들에게 기도하던 때 저희 모친께서 나와서 "걱정하지마라, 갠찮을끼다"라는 한마디 말씀과 손을 꼭 쥐어주던 기억이 나네요, 다행히 수술 후 전혀 문제가 없이 잘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달 받았을때의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죠, 뒤늦게 알았지만 전날 새벽 제가 들어가고 나서도 울 모친은 밤새 염주를 돌리시며 기도를 하셨다더군요, 부모는 그렇습니다..


    2. 내리사랑은 한계가 없죠, 세상에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만큼 무한한 것도 없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치사랑은 그렇지 않죠, 늘 한계치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계산되기도 하죠, 저 역시 그러합니다.. 여전히 드리는 것보다 얻는게 많은 삶을 살아가고 있고 또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주심을 또다시 아이에게 주고자하죠, 하지만 어른들은 주심에 대한 계산을 하시지 않습니다.. 늘 더 못줘서 미안하고 아쉽다고만 하시죠, 받는데 익숙해져버린 삶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드려야되는 시간인데 다시금 전 저의 아이에게 주기에 급급합니다.. 그래서 치사랑은 늘 모자라기만 합니다.. 그리고 늘 죄송스럽죠, 내리사랑 역시 늘 부족함에 미안하듯이 치사랑은 늘 모자름에 죄송한 우리네 인생입니다.. 가족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늘 주고도 모자르고 그래서 미안하고 늘 드리는 것이 모잘라 죄송하고 그게 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가족의 사랑과 애증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생각이 깊게 드는 작품입니다.. 만약 이들의 삶에 뼈아픈 식민시대의 역사의 아픔이 없었다면, 그래서 히로시마로 가서 원폭이라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흉터의 꽃"입니다..


    3. 작가 정현재는 원폭 피해자의 2세로서 히로시마 원폭과 관련한 소설을 쓰고자 합천으로 향합니다.. 알려진 바 대다수의 원폭피해자의 고향이 합천인 이유는 과거 식민치하에서 가장 경제적 어려움과 힘든 삶을 살던 곳이 합천이었고 이런저런 이유로 일본으로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위해 떠나던 사람들과 강제 징용을 당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죠, 정현재는 합천의 원폭피해복지관에서 한 할머니를 만납니다. 얼굴의 대부분이 화상으로 인한 흉터로 덮힌 강분희 할머니를 보고 그녀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자하지만 할머니는 거부를 합니다.. 그리고 어느날 걸려온 전화에서 강분희 할머니가 살아온 생에 대해 정현재는 개인의 아픈 역사를 되짚어가게 됩니다.. 강분희의 아버지는 강순구라는 아주 억척같은 뿌리가 깊은 농민임에도 자신의 가족이 살길이 없어 임신한 부인과 함께 장인의 이야기대로 일본 히로시마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린 분희를 낳고 힘겹게 살아가죠, 그러던 어느날 화창한 8월 6일 오전 8시경 한순간에 세상은 지옥으로 변해버립니다.. 힘겹게 살아남은 그들은 전쟁의 상흔을 입은 체 한국으로 돌아오죠, 원폭의 피해를 직접 당한 분희는 온몸에 화상을 입었고 특히 얼굴의 대부분이 화상으로 일그러져버린 고통을 당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닥친 세상의 배척은 대를 이어 지옥과도 같은 고통으로 점철된 삶으로 연결됩니다... 하지만,


    4. 우리의 근대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지만 들을수록 화딱지가 나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역사의 후유증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후대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속에서 천불이 올라오려고 합니다.. 사실 전 이런 말 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여즉 이런 역사에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뭔지 구체적으로 알지도 못했던 인물입죠, 그러니 제가 뭔 잘한게 있다고 화를 내냐라고 하신다면 할 말이 없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우리나라는 차치해두고라도 오랫동안 일본이라는 나라의 지랄맞은 인물들이 그동안 쏟아놓고 퍼질러놓은 똥덩어리들은 입에 담기도 더러울 정도로 심각하고 미국이라는 저 나라는 정말 얍삽하다못해 세상에서 가장 못믿을 나라라는 믿음이 한층 더 심해집니다.. 근대사에서 우리나라가 당한 수많은 아픔중에서도 유독 저 역시 히로시마 원폭피해에 대한 관심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일본에 가한 원폭의 행동은 일부분 당연시 했던 경향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이었기 때문이죠, 전쟁을 저지른 전범의 위치에 있던 일본이 당한 보복이니 우리와는 무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핵의 위험함을 경각심을 일깨워줄 조친 경험이지만 당연히 일본으로서는 당할 만큼 당한 조치라는 생각을 일부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소설이긴 하지만 그동안 가져왔던 생각의 많은 부분이 스스로 왜곡시켰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히로시마에서 비롯된 원폭의 피해는 일본인만큼 우리나라의 아픔도 존재해왔던 것이니까요,


    5.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벌어진 원폭으로 인한 우리나라 원폭 피해자가 4만명이 넘는다는군요, 우린 핵위험의 경각심을 현실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던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핵발전소의 노후화로 인한 사고 위험과 함께 일본 내에서 벌어졌던 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현실이었으니 말입니다.. 조금만 더 되짚어가면 과거의 체르노빌도 우리나라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진 대단히 지옥같은 참상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직접적인 관여와는 무관하죠, 무섭긴 하지만 아직 핵으로 인한 직접적 피해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처음 핵이 등장하여 참혹한 전쟁의 상흔을 드러낸 곳에서 이어진 지옥의 흉터는 여전히 우리의 내부에서 아직까지 진물과 고름을 닦아내고 있습니다.. 그 상처는 전혀 아물지 않고 덧나고 있는 것이죠, 합천에 있는 원폭의 피해자의 모임에서는 단순한 방사능의 피폭이 원폭 피해의 1세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이들에게까지 유전되고 이어진다는 것이 더 큰 아픔의 상흔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이죠, 그들이 살아온 삶의 아픔은 그들의 대에서 끝나기를 얼마나 간절기 기원했을까요, 자신들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서는 오롯이 그 자체로 세상의 모든 행복을 가질 수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을 했을까요, 아무리 힘들지언정 자신들의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이 당한 세상의 고통을 전해주지 않을려고 노력을 했을까요, 하지만 아무 잘못도 없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그곳에서 있었을뿐인 그들에게 내려진 재앙의 흉터는 어떤 방식으로든 치유가 되지않고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죠,


    6. 사실 이 소설은 대단히 드라마틱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과할 정도의 지옥과도 같은 상황적 설정이 끝까지 이어집니다.. 삼대에 걸쳐 벌어지는 삶의 무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합니다.. 그게 상상이든 실재의 삶이든 상관없이 우리가 바라보는 그들의 삶은 그만큼 지옥같도 같은 시간을 보내온 것이겠죠, 무척이나 짜증이 납니다.. 이 소설이 만들어낸 상황의 처참함도 짜증이 나고 여전히 변하지않은 시대의 보상도 짜증이 납니다.. 여전히 일본이라는 나라는 자신들의 역사를 합리화시키고 거짓으로 꾸며대는데 급급하고 우리나라를 둘러싼 빌어먹을 강대국이라는 나라들은 변함없이 자신들의 배속만 따숩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라고 다르진 않겠죠, 다만 그런 세상이긴 하지만 과거에 벌어졌던 지저분한 역사의 반성과 후회와 이에 대한 인륜적 가치에 대한 판단과 책임을 어떻게해서든 짊어져야할 부분이라는 것이죠, 쉽개 잊혀지고 무시하면 어느순간 사라질거라는 어설픈 믿음은 언제나 역사의 판단에서 그 나라의 가치를 깍아버리는 결과가 될 뿐이죠, 역사는 언제나 힘센자의 몫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의 역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늘 보잘 것 없는 한사람의 의견이지만 과거와 달리 이 한사람이 보여주는 세상을 보는 한마디는 세월이 흘러 시대가 변해도 사라지지 않은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한마디들이 모여 세상은 변화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촛불처럼 말이죠,


    7. 보통은 말이 많아 6단락까지만 적는데 오늘은 좀 더 적습니다..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안하고 넘어가버려서 말이죠, 소설의 내용은 위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3대의 삶을 다루고 있는데 그 상황이 대단히 드라마틱한 설정입니다.. 그렇다보니 느낌적으로 뭐랄까요, 그동안 익히 경험해온 상황적 자극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이들의 현실에 대해 공감을 얻기보다는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우선시 됩니다..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아오신 분이시라 할지라도 이야기의 흐름은 대단히 극적이라는 것이죠, 그들의 아픔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할 지라도 독자로서 그런 상황이 주는 감성은 공감보다는 답답함과 짜증스러움이 우선되었다는 것입니다.. 시대가 그러했고 삶이 그러했지만 그속에서도 분명 그들의 삶을 공감하고 이해하고 함께했던 분들도 있었을테고 또 그런 동반의 삶도 이들의 역사속에 당연히 존재했을 것 같은데 너무 극적인 의도가 지배적이어서 읽는내내 화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잘 몰랐던 시대적 아픔을 조금이나마 저의 관심속에 끌여들일 수 있어서 무척 즐거운 독서였음에도 원폭피해의 아픔을 가족적 비참함으로 끝없이 연결시키는 상황전개는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아무리 그게 이 소설의 주제를 부각시키는 의도였다손 치더라도 말이죠,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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