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67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즘 세대들에게는 홍콩이라는 곳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세대에게 홍콩은 80,90년도의 영화적 감각이 지배적입니다.. 어떻게보면 일본이라는 나라보다 홍콩이라는 도시가 더욱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죠.. 지금도 눈을 감고 홍콩을 떠올리면 대다수의 저희 세대들은 비슷한 영상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붉은색이나 축축한 서민적 느낌이 가득한 홍콩의 뒷골목과 화약냄새 풍기는 좁은 빌딩숲사이에서 인적이 드문 늦은 밤이나 새벽의 감각같은 차가움이 공존하는 느와르적 이미지 말이죠, 외롭게 죽어가는 정의로운(?!) 조폭의 모습들과 그가 죽음으로 보호하려는 한 여인에 대한 사랑등이 그시절 저희들에게 어필되던 홍콩의 느낌입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오우삼 형님이 떡하니 자리잡았고 장학우, 양조위, 임달화, 여명, 유덕화, 그리고 그남자 장국영이 있었죠.. 아니 잠깐, 그시절 주성치도 있었습니다.. 분명 주성치가 있었습니다.. 확실히 주성치가 있었습니다.. 전 그가 만든 영화를 거의 모두 보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홍콩 느와르 이야기하는데 주성치가 결론이 되어버렸습니다.. 광둥어의 맛깔스러움이 가득한 홍콩의 밤거리, 절대 잊을 수 없는 각인같은 것이죠..
2. 그렇게 홍콩은 1997년 영국령에서 중국으로 반환됩니다.. 이전 아시아에서 영국적 냄새를 가장 많이 풍기던 홍콩은 이제는 중국스러운 특별행정구역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불확실성으로 인해 홍콩은 어느순간 조금씩 머리속에서 지워져가고 있었죠.. 말 끝이 질질 끌리던 광둥어는 북경 표준어로 딱딱 끊기는 맛의 느낌으로 변해버렸고 이전에 제가 느꼈던 감성은 어느순간 조금씩 그 세대의 감독들이 교체가 되면서 제가 알고 느꼈던 홍콩의 감성은 젊은 감각의 신세대의 느낌으로 나아가버린거죠.. 홍콩의 삶은 그대로이지만 홍콩의 모습은 이전과는 다른 감성으로 비춰지게 됩니다.. 제가 아는 홍콩은 인간적인 냄새가 밑바닥에 깔려있는 곳입니다.. 언제나 영화속에서 보여주었던 홍콩의 모습은 너무나도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파괴적이고 느와르의 느낌 그대로 죽음이 한순간에도 떨어지지 않는 곳이지만 결국 그 죽음속에는 인간이라는 느낌이 가득했습니다.. 거기에는 언제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역시 홍콩은 조금은 자유로웠던 영국적 느낌이던게 조금은 부자유스러운 중국적 이미지가 되어버린거죠, 뭐 전 그랬던 것 같습니다..
3. "13.67"은 홍콩을 배경으로 하는 경찰소설입니다.. 그리고 추리소설입죠.. 그리고 홍콩이라는 특별한 지역을 대상으로 한 한 경찰인의 연대기소설이기도 합니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2013년부터 1967년이라는 시간을 설정한 것입니다.. 시간적 개념이 거꾸로 정리가 된거죠.. 소설도 2013년을 중심으로 과거로 회귀하는 이야기입니다.. 한 남자인 "관전둬"라는 인물의 삶을 되짚어가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말씀드린 한 시대의 시점속에는 그 당시의 사건사고와 이를 해결하는 관전둬와 그의 제자 뤄샤오밍의 추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실은 뤄샤오밍은 추임새를 맞춰줄 뿐이고 모든 이야기의 중심은 관전둬라는 특출한 천재적 추리능력을 지닌 경찰의 이야기입죠.. 그가 해결했던 수많은 사건들중 하나의 특정시점에 벌어진 이야기를 중심으로 단편은 연대기적 방식으로 총 6편으로 나뉘어 독자들에개 다가옵니다.. 그 시작이 2013년도의 관전둬의 죽음을 앞둔 시점의 이야기입니다..
4. 관전둬는 2013년을 배경으로 한 첫 단편인 "흑과 백 사이의 진실"에서 간신히 의식만 살아있는 혼수상태의 상황에서 뤄샤오밍과 함께 사건을 해결합니다.. 죽음이 다할때까지 관전둬는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어지는 "죄수의 도의"라는 작품에서는 경찰을 은퇴한 후 2003년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뤄샤오밍이 주체가 되는 시점이죠.. 관전둬는 은퇴를 한후 사건의 외곽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세번째 단편은 "가장 긴 하루"라는 단편으로 1997년 홍콩 반환의 시점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관전둬가 은퇴를 하루 남겨놓은 시점에서 사건이 발생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네번째 단편은 "테미스의 천칭"이라는 작품입니다.. 1989년 관전둬가 CIB의 조장으로서 잔혹한 범죄자의 현장을 바라보는 입장과 그 중심에 놓인 경찰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섯번째 단편은 "빌려온 공간"이라는 작품이네요, 어떻게 보면 가장 동떨어져보이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1977년 한 영국공무원의 아이가 유괴된 사건을 수사하는 이야기입니다.. 유괴상황에서 발생하는 급박함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빌려온 시간"은 제목의 끝인 1967년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대적으로 홍콩의 혼란기를 기준으로 경찰의 모습과 그들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테러의 상황을 담고 있죠.. 그리고 마지막편은 첫 편과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2013년과 1967년은 맞닿아 있다는 이야기입죠.. 참 대단한 구성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꽤나 묵직한 이야기들입니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느낌과는 사뭇 다릅니다.. 상당히 진중하면서도 진도가 느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읽는 동안이나 읽고 난 후의 여파가 장난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이런 작품은 처음입니다.. 전 이 작품을 상당히 오랫동안 읽었습니다.. 그러니 읽는동안 상당히 지루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읽는 동안 아주 좋았습니다.. 딱히 꼼꼼시럽게 읽은 것도 아닌데 하나하나 읽어나가는게 여느 대중추리소설과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추리적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물론 한 상황을 천재적 추리능력을 가진 인물이 그 상황을 설명하면서 추리적 이해를 돕는 것은 확실한데 그 추리의 감성이 단순한 사건의 해결의 목적이 아니라는거죠.. 이 인물들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상황에 집중합니다.. 단순한 경찰의 사건해결기가 아닌 사람이기에, 그리고 동료이기에, 무엇보다 정의의 심판자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관전둬라는 인물에게 만들어진 성향이 너무나도 멋집니다.. 드러내놓고 내가 이런 인물이요라고 떠들어대지 않아도 되는 관전둬라는 인물의 모습은 정말 대단히 멋스러운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작가는 그를 대단하지만 흔히 볼 수있는 일반적인 경찰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죠.. 무엇보다 인간적이고 생명과 정의의 개념이 가슴 속 깊이 새겨져있는 그런 사람을 말이죠, 이 소설은 우리 세대가 알던 홍콩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이 작품속의 이야기는 슬픕니다.. 인물들도 슬픔이 배여있습니다.. 무엇보다 홍콩이라는 배경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제법 좋습니다..
6. 이 작품은 본격추리소설의 형식입니다.. 게다가 책 두께만큼이나 내용도 묵직합니다.. 그리고 단순한 추리적 기능보다는 홍콩이라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문제를 다룬 사회파 추리소설입니다.. 모든 이야기는 그 상황의 사건에 대한 추리적 역량을 펼치는 관전둬에 집중되어 있지만 이 소설의 지향점은 홍콩이라는 도시를 겨냥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제목에서 비롯된 홍콩의 역사를 표현한 부분이 그러하지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작품의 추리속에 인간을 꼭 담고 있습니다.. 단순한 경찰의 사건을 다루기 보다는 사건이 발생한 시점과 그 주변상황과 경찰이 겪는 수많은 비애와 배신과 음모를 작품속에 축약하고 있죠, 그속에 작가는 정말 꼼꼼스럽게 작가가 추리에 사용할 트릭을 배치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단편들마다 나름의 추리들속에 대중적 속도감이나 상황적 급박감들도 골고루 주입하고 있어서 더디지만 정말 집중해서 즐겁게 읽은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읽은 작품이 이렇게 만족스러운 경우도 드문일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7. 일단은 제가 알고 있는 그 시대의 홍콩의 모습에서 이 작품의 느낌을 찾을 수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뭔가 비장하면서도 정형화되지 못하고 불안한 홍콩이라는 특수한 도시의 삶속에 자리잡은 경찰들의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이 너무 공감이 가더군요.. 그들은 제가 알던 그 시절 영화속에서 보았던 홍콩의 경찰들에 대한 현실적 단상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더욱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보여주고자한 추리적 기법의 즐거움은 작가의 꼼꼼한 구성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상황과 배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방식이 허투루 던져놓은 문장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단지 추리만으로 이렇게 장대한 작품을 집필하다보면 독자의 입장에서 독서에 지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중적 취향의 스릴러적 감각을 무시하지 않고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극으로 중간중간 포진시켜놓은 작가 찬호께이의 집필능력은 과히 최고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순한 추리스릴러소설로서 읽고 단숨에 잊어버리는 느낌이 아닌 오래 읽은만큼 그 잔상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그런 작품이 아닌가 싶어서 전 무척 만족스럽네요, 여러분도 긴호흡으로 읽어보시면 상당히 좋으시지 않을까 지레 짐작해봅니다.. 땡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