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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비지테이션 거리에서
아이비 포코다 지음, 엄일녀 옮김 / 책세상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1. 올해 여름은 근래 몇년중 가장 시원한(?) 여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끈적끈적하고 습기가 가득한 한여름 열대야가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까요, 아무래도 늦여름에 자주 찾아오던 태풍이 여름의 정점에 우리를 찾아오기도 했고 여름의 초입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 장마가 올해에는 거의 전무할 정도로 비가 오지않았다가 역시 여름의 막바지에 엄청 쏟아내는 부분도 어느정도 열기를 식혀주는 역할을 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수많은 한철 장사를 하시는 여름 성수기를 기다리시던 분들에게는 악몽같은 시간이었을테고 여름이 끔찍히도 싫은 분들에게는 그나마 육체적으로 견딜만한 계절이 아니엤겠나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여름철 저녁시간 열대야를 피해 동네 곳곳에 자리를 펴시고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모습은 예전보다 덜했던 것 같습니다.. 동네 골목길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시원한 수박화채나 얼음 동동 띄운 미숫가루를 나눠 마시며 누구네 자식이 어떠니, 이번에는 내가 곗돈 탈 차례니 한턱 쏘겠다는 뭐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밤 늦게까지 피워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아파트 단지가 아닌 오래된 주택들의 골목길은 여전합디다.. 괜히 자리 옆에 소용돌이 모양의 모기향 냄새가 문득 그리워지는군요... 그 편안한 시간, 가만히 누워 하늘을 올려다 보던 시간, 조용히 엄마의 허벅지에 머리를 누이고 아줌마들끼리 나누는 정담 어린 이야기들...
2. 뭔가 살아가는 주변의 이야기를 끌어내기에는 여름의 끈적끈적함 속에 묻어나는 인간들의 관계가 제법 그 모양새를 갖추기에 적합한 계절적 배경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여름이라는 계절은 어쩔 수 없이 뭔가를 숨기기 보다는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그런 감성이 많은 시기이니까요, 아님 할 수 엄꼬, 여하튼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에서는 특히나 이런 여름이라는 계절이 주는 인간들의 모습들은 제법 이야기꺼리가 있어 보입니다.. 미국도 마찬가진가 봅니다.. 특히나 화려한 불빛이 맨하튼의 야경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 건너 그 곳을 바라보며 침을 뱉고 동경하고 속하고 싶어하는 지역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익히 들은 브루클린의 지역들은 그런 맨하튼 섬을 동경하죠, 아님 증오하든지... 그 곳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이야기를 이번에 읽었습니다.. 제목은 "여름, 비지테이션 거리에서"입니다.
3. 아이비 포코다라는 작가님의 작품인데 말이죠, 스릴러 소설 독자라믄 거의 대부분 아실 데니스 르헤인 작가가 출판사 임프런트를 내면서 자신이 선택한 작품입니다.. 어떻게보면 데니스 르헤인의 "미스틱 리버"같은 조금은 비루한 삶이 배경이 되는 지역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관계속에 묻어나는 스산한 감성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마도 해인이 횽의 감성과도 많이 닮아 있을 수도 있구요, 그러니까 이 작품은 뉴욕의 외곽지역인 브루클린의 레드훗이라는 비루하고 평범한 삶이 지배적으로 많은 조금은 범죄적 위험과 사회적 빈민계층으로 여겨지는 곳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곳도 시대가 변하고 어떠한 계기로 조금씩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바껴나가고는 있죠.. 그 곳에서 살아가는 두 여자아이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소방관인 밸러리는 백인 중산층의 가정입니다.. 그리고 준이라는 아이는 할머니와 함께 살아갑니다.. 여름의 어느날 두 아이는 무료한 열대야속에서 자신들만의 보트를 타고 나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4. 바다 건너 거버너스 섬을 지나 맨하튼이 바라보이고 두 여자아이 밸러리와 준은 열여섯의 일탈을 시작합니다.. 그들만의 작으마한 고무보트를 한밤중에 바다에 띄우죠.. 그렇게 바다로 나선 밸러리와 준은 어둠속에서 사라집니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한 흑인아이 크리는 그들의 행동에 대해 불안과 함께 동경의 느낌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녀들이 나선 곳을 눈에 보일때까지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 고무보트로 수영을 하지만 결국 파도에 밀려 다시금 레드훗 해안으로 되돌아오고 맙니다.. 돌아온 해안가에서 바라본 바다에서는 금방까지 보이던 보트가 사라집니다..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었던 크리는 다시 자신만의 공간으로 돌아가죠.. 그리고 다음날 맨하튼에서부터 조금씩 절망과 함께 삶이 피폐해져 이곳 레드훗까지 흘러들어온 음악선생 조너선은 더이상 삶에 대한 큰 희망을 붙잡지 못한 체 아침 일찍 해안가로 나서지만 그 곳에서 쓰러져있는 밸러리를 발견하게 되고 그녀를 살리기 위해 바레인인인 파디의 슈퍼마켓으로 데려와서 구급차를 부르죠.. 그렇게 밸러리와 준의 고무보트 여행은 사고로 레드훗의 비지테이션 거리 주변 곳곳에 소문이 퍼지게 됩니다.. 준은 어디로 사라졌으며 레드훗의 비지테이션 거리의 모습은 어떻게 이 사건을 바라보고 이 인간들의 모습과 삶이 세상에 비쳐질까요, 홀로 살아남은 - 준이 살았는지, 죽은는지조차 확인이 안되는 - 밸러리와 그녀를 살린 절망속에서 살아가는 조너선과 여전히 미국속에서 이방인 취급을 당하고 살아가는 중동인 파디와 무엇보다 그녀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바라본 크리라는 흑인아이의 삶에 이 사건은 어떠한 모습으로 보여질까요, 그리고 그들과 함께 등장하는 의문의 사나이 "렌"은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요,
5. 이 작품은 단순 스릴러 소설의 느낌보다는 아직은 덜 여물은 청소년시기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보면 어떨까 싶네요.. 그리고 그 주변의 성인들의 모습들과 이들을 감싸고 있는 한 브루클린의 빈민가 레드훗의 삶과 아픔이 작품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제목처럼 이 작품은 한 지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비지테이션이라는 거리를 끼고 있는 한동네의 이야기죠.. 그 곳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무척 섬세하고 자세한 지리적 묘사와 상황적 표현이 지배적입니다.. 그 속에 이 작품이 지향하는 감성이나 의도가 진하게 묻어남은 말할 것도 없는거구요, 속내를 드러내며 살아가는 레드훗의 인간들의 내면을 그 하늘 위에서 자연스럽게 내려다보는 느낌입니다.. 아픔과 절망과 희망과 구속과 자유와 사랑과 집착이 영화처럼 이곳저곳에서 펼쳐지는거죠.. 크리를 통해서, 조너선의 삶을 통해서, 밸러리의 아픔을 통해서, 파디의 희망을 통해서 그리고 레드훗의 비지테이션 거리에서 벌어졌고 펼쳐지고 있는 수많은 과거와 현재의 절망과 아픔과 또다른 희망을 통해서...
6. 일종의 대중적 감성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그런 삶을 다룬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순문학적 기능을 많이 보여주더군요.. 하지만 문체나 내용적 측면은 스릴러의 중심을 잡고 가니 그럭저럭 읽는 재미는 놓치지 않더라구요, 저처럼 순문학적 의도가 강한 작품의 내용에 조금은 지루할 것이라고 미리 설레발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작품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 즐겁게 읽었습니다.. 데니스 르헤인이 선택한 작품의 느낌이라서 편견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조금은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 미국의 저소득층의 지역의 모습을 자연스럽고 현실감있게 그려내는 느낌은 상당히 좋았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인간들의 모습들, 그리고 이로 인해 또한 변해가는 그 지역의 희망적 모습들(이로 인해 또다시 불행해질지도 모를 인간들의 모습들)을 바라보는 독자의 감성은 책을 덮고난 후에도 제법 오랫동안 남아있게 되더군요.. 일단은 이런 작가의 작품을 몇 권 더 읽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땡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