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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미시시피
톰 프랭클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한 트위터리안께서 sns에 올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내용인즉슨 이렇습디다.. 두명의 여학생이 수다를 떠는데 이야기중에 욕설이 태만이더라.. 정말 한심하기도 하고 도대체가 커서 뭐가 될지 참 걱정스럽다..라는 뭐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어지면서 그런 여학생이 지하철에서 내려서 가다가 추운 곳에서 힘들게 구걸을 하고 있는 노인에게 자신이 가진 돈을 거리낌없이 적선하는 모습을 보면서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보여지는 아주 작은 한 부분만으로 전체인 양 판단해버린 자기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대강 이러한 내용이었죠.. 한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뭔지, 단편적으로 파악한 인물에 대해 그 사람의 전체를 알 수있다는 인간의 편협된 시선이 어떤 것인지, 그 트위터를 보면서 저 역시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게 나만의 잣대로, 아니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잣대로 평가를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인간이라면 자신의 방식으로 타인에 대해 판단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판단 과정에 수많은 주변의 시선이 영향을 주게 되어 있죠.. 그런 걸러내지 않은 일방적인 주변의 판단이 언제나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면서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나름의 변명으로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내 잘못이 아냐, 다들 그렇게 생각했어... 라고 말이죠..
아, 감정이 상당히 짜릿합니다.. 오래간만에 이런 느낌을 겪어보게 되는군요.. 인물에 동화되는 느낌 역시 간만입니다.. 가장 미국적인 지역의 가장 미국적인 이야기를 들고 나와서 저에게 감정이입을 시키는 것도 나쁘질 않네요.. 어떻게 보면 상당히 소소한 이야기입니다.. 드문드문 사람이 살아가는 미국의 전형적인 시골의 이야기입니다.. 미시시피주의 한 조용한 시골지역인 풀섬지역에서 일어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원제는 크룩커드 레터, 크룩커드 레드(일명 꼬부랑 글씨, 꼬부랑 글씨)라는데 국내 제목은 "미시시피 미시시피"입니다.. 미국 남부지방의 애들이 미시시피의 단어를 파악할때 에스(S) 철자를 파악하는 것을 꼬부랑 글씨라 한다는군요, 이러한 제목이 만들어진 연유가 아마도 이 작품은 어린 아이시절부터 만들어진 과거의 아픔이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진데서 나온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도시처럼 쉴새없이 사건이 이어지고 만들어지고 잊혀지는 곳이 아닌 시간은 흐르지만 언제나 과거에 머문 듯 정체되어버린 남부지역의 시골을 배경으로 한 남자의 일생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이거덩요... 그의 이름은 래리 오트입니다..
래리는 판에 박힌 듯한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의 아버지는 사고로 돌아가시고 현재는 요양원에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를 모셔둔 체 미시시피의 남부의 광활한 대지에 주변에 아무도 살지 않는 잊혀진 곳에서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자동차 정비소에서는 더이상 손님이 오질 않습니다.. 그 어느 시점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자신의 주변에서 여대생이 실종된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에게 총을 발사하죠.. 그는 자신의 집에서 쓰러집니다.. 그리고 또 다른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흑인입니다.. 현재 사일러스 존스는 풀섬지역의 샤봇에서 경찰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역시 어린시절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 야구선수로 활약을 했었죠.. 누구나가 그를 압니다.. 그는 흑인과 백인의 비율이 거의 대등한 지역에서 인종 차별이라는 집단적 최면이 여전히 정체되어 있는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린시절 래리와 거의 유일하게 서로의 속을 터놓는 이야기를 나눈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친구라 부르기에는 래리의 인생이 너무 아픕니다.. 그런 그가 외면하려고 했던 래리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래리가 총에 맞기 전이죠.. 그러나 그는 래리를 예전과 같이 외면합니다.. 하지만 죽어가는 래리를 사일러스는 발견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이 됩니다.. 래리와 사일러스와 미시시피 샤봇지역의 과거가 그들과 함께 조금씩 드러나게 되죠..
일반적인 범죄사건을 중심으로 한 단순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추리스릴러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밋밋한 면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어떻게보면 추리적 기법을 가미한 성장소설로 파악을 하면 더 좋을 듯 싶네요.. 물론 추리적 범죄사실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을 관통하고 있긴 합니다만 무엇보다 래리 오트라는 한 인물에 대해 집중하게 되는게 더 큰 관점인거죠.. 이러한 인물적 집중은 사일러스라는 인물을 통해서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게 되지만 어쨌든 래리 오트에게 동화되어가는 독자가 되어있음을 읽다보면 알게 되실겝니다.. 너무나도 짜릿한 아픔과 고독을 가진 인물이니까요, 그가 행한 또는 하지 않은 과거의 숨겨진 진실로 인해 현재의 래리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었는가와 과거에 그에게 벌어졌던 수많은 모습들이 얼마나 많은 상처와 아픈 기억으로 남겨졌는가를 지역적 현실과 일반적으로 판단해버리는 인간적 모멸감들을 상상하게 되니 무척이나 아파오더군요.. 내가 만약 그라면 어떠했을지, 아님 제가 누군가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배척적 모멸감을 준 적은 없었는지, 아님 또 다른 누군가를 알지도 못하면서 나름의 잣대로 판단해버리지는 않았는지,,
재미지게 읽힙니다.. 말씀드린바와 같이 범죄적 사실을 밝혀내는 추리적 기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가독성을 전달해주기도 하구요, 무엇보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공감적 이입이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에 집중하기가 좋습니다.. 어디까지나 미국적 현실과 상황적 묘사가 중점이지만 익히 접해본 내용들이기에 낯설지가 않습니다.. 흑인과 백인의 인종차별적 지역 성향과 주변의 상황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모습도 그렇구요, 누군가가 아무렇지도 않게 배척하고 외면하고 소통을 단절시키는 모습 역시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다르질 않습니다.. 래리 오트라는 인물이 저지른 일과 저지르지 않은 일들을 판단하기 이전에 과거에 그에게 행한 모든 주변의 모습들은 상당히 아픈 것들이었죠.. 아무래도 이 이야기에 래리 오트를 중심으로 쭉 따라가시다보면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느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품을 보다보면 이야기속에 스티븐 킹의 작품이 많이 등장하고 주인공인 래리 오트는 킹쌤의 팬임을 보여주죠.. 아마도 작가 역시 그런 스티븐 킹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언듯 스티븐 킹의 성장소설적 느낌도 상당히 자연스럽게 풍겨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작가가 보여주는 래리 오트라는 인물의 상황적, 심리적 묘사방식이나 이야기의 줄거리도 지역적 배경속에 자연스럽게 묻어나게 하는 방식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여느 추리소설의 감성보다는 인물들의 관계와 상황적인 묘사들이 문학적 느낌으로 상당히 고급스럽게 적용된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단순한 줄거리지만 그 속에 느껴지는 감성이 아주 치열한 아픔을 동반하는 느낌이라서요, 아무래도 추리스릴러소설의 가면을 쓴 성장소설이 더 잘 어울릴 듯 싶네요.. 마지막 결말도 개인적으로는 무척 좋았습니다.. 닭들이 계란을 스무개씩이나 낳을 수 있다니 말이죠.. 땡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