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다
빅토르 로다토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일단 마틸다하면 떠오르는거는 솔직히 레옹이다.. 영화속 어린소녀의 이미지 그대로 각인되어버린듯한 느낌...그러니까 이 작품을 펼치기전에는 딱 그 마틸다를 연상했더랬다..물론 읽어면서도 영화속 이미지의 나탈리 포트만의 이미지를 버릴수가 없었다...마틸다 우찌보면 참 흔한 이름이 아닌가?..그래서 소설속 마틸다도 자기 이름을 그다지 좋아하는것 같지는 않더라..


 

그시절의 어린소녀들과는 조금 다른 성장통을 겪는 한 아이가 있다..아이라고 하기에는 되바라진 느낌이 조금 강한 우찌보면 좀 귀엽기도 하지만 부모의 입장에서는 골치아픈 다루기 힘든 아이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이 마틸다라는 아이의 가정은 부모가 마틸다만 생각하기에는 아픔이 너무 많다..1년전 마틸다의 언뉘 헬렌이 기차에 부딪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거쥐..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을 우찌 알겠나만은 자신의 죽음보다 더한 아픔을 간직한 부모의 느낌이 절실히 다가오더라.. 마틸다가 엄마!!~나 여기 있어요,.,.난 죽지 않았다구요!!!라고 외쳐대도 엄마는 여전히 언니를 잊지 못한다는거쥐.. 그런 엄마가 마틸다는 너무 싫다..그리고 기차에 뛰어든 언니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그녀와 연관된 수많은 남자들의 내막을 캐고 마지막 그녀의 죽음과 관계가 있어 보이는 데스먼드의 루이스를 찾아가게 되는데...마틸다가 알게되는 숨겨진 진실은??...

 

뭐 대강의 내용은 이런식인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익히 읽고 보고 느껴오던 수많은 성장통을 다룬 내용과는 조금 차별화된 느낌이 든다..일단 마틸다라는 애가 좀 똑똑타..감성이 풍부하다고 해야되나?.. 생각이 조금은 4차원적인면도 있지만 아무래도 그나이의 그또래의 성장감성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뭔가가 있다고 보면 어떨까?..게다가 사랑하던 언니가 삶을 버린 시점의 사춘기적 감성은 어찌보면 지옥과도 같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가장 엄마의 이해와 사랑과 공감이 필요한 시기에 엄마가 가장 사랑하던 언니의 죽음으로 자신은 투명인간이 되어버린듯한 느낌이 든다면 더욱더 사춘기로 살아간다는게 쉽지만은 아닐 것이다..괜히 마음이 짠하다..늘 혼자서 자신만이 자신의 모든것을 다 추스릴 수 있다고 믿는 연약한 한 여자아이의 아픔을 아이들의 아버지의 입장에서 심히 찐하게 느꼈다..

 

1인칭 시점에서 마틸다라는 아이의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습가족과 생각의 관념을 그대로 드러낸 소설이라 더 편안하게 와닿는 느낌이 있는 반면에 쉽게 마틸다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뭐 난 부모의 입장이므로 있는 그대로 그아이의 감성과 아픔과 고통과 외로움을 모두 이해하고 포용하고 감싸줄 입장이 되면 좋은데 말이야...사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입장이 더 먼저 와닿아버리더라는거쥐...특히 마틸다의 엄마가 세상을 살아가야할 이유에 대한 회의 비슷한것을 느끼는것과 함께 마틸다에게 관심을 제대로 주지 않는 분노가 동시에 발현되더라는거쥐...그리고 착하기만 한 아빠의 모습은 영판 내모습 아닌가.. 와이프 추스릴랴.. 이젠 하나밖에 없는 갈수록 자기생각에 잠긴 딸아이의 성장통을 받아주랴, 힘들게 사회생활을 하랴, 나의 고통은 밖으로 드러내놓지도 못하는 아픔...뭐 이런 감정이 쏟아져나오더만...그러니까 난 마틸다라는 아이의 관점을 읽었지만 마틸다의 아빠의 관점이 더 중요했던거쥐....쉽게 말해서 내가 울 딸아이의 아픔을 적어놓은 일기를 몰래 읽어내려가는 듯한 느낌?...그러면서 내가 가진 아픔 또한 새록새록 되새겨지는 느낌..뭐 이런 전반적인 감정이 든다는거쥐...

 

귀엽고 앙증맞고 즐거운 소설이라는 문구가 어디 보이는듯한데 내가 보는 이작품은 절대적으로 외롭고 쓸쓸하고 가슴 아픈 부조리와 얽힌 소설이라는 점이다. 마틸다가 하는 행동들과 생각들이 우찌보면 귀엽기도 하고 앙증맞은 악마적 감성이 깃들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행동의 중심에는 관심이라는 요소가 배제되어 있는게 아닌가 싶다. 늘 사랑스러워야 하고 이해를 받고 싶은 나이인데 자신만의 정체성만으로도 성장통이 수없이 많은 나이인데 주위의 환경이 자신의 사춘기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게 어떻게 귀엽고 즐거운 소설이 될 수 있겠는가?... 언니의 자살, 엄마의 무관심, 사회적 혼란(테러리즘) - 이건 왜 나왔는지 솔직히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뭔가 한 가족의 구성원을 중심으로 사회적 공감을 함께 처리하고자한 의도가 보이긴 하나 거의 따로국밥 수준이었다.- 이런 것들로 인해서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겪어야할 사춘기적 감수성과는 다른 어떻게 보면 지옥처럼 끔찍한 아픔을 겪는거라는거..그래서 마틸다는 자신을 루프와라고 불러달라 그랬다..ㅋ

 

마지막으로 한가족의 아버지의 입장에서 마무리를 해본다면 마틸다의 존재성은 언니인 헬렌이 살아있을 당시의  둘째아이로서의 까부댐이 더 컸을 것이다.. 모든것이 귀여움의 대상이고 즐거움과 행복함의 정의가 되었던 시절. 자신의 되바라짐조차 언니에게는 동생으로 감싸줄 수 있는 포용이 될 수 밖에 없는 시절.. 언니의 아픔이나 엄마의 힘듬과는 거리가 먼 자신의 모습만 바라보고 귀여운 이기주의자가 될 수 있었던 시절.... 그러나 언니의 죽음은 자신의 탓이라는 죄책감과 엄마의 무관심에 대한 배신감이 이젠 여자가 되어가는 귀여운 앙마에겐 크나큰 성장통으로 다가오는게 아닐까?... 아빠가 뭘 해줄수는 없겠지만 그아이의 아픔을 옆에서 나무처럼 편안하게 지켜줄 수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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