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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싱 ㅣ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8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12월
평점 :

1. 늦은 오후 석양이 내리쬐던 날 그야말로 옛날식 베란다에 앉아 버번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재즈 음률을 들으며 새빨간 석양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선셋 스티릿과 천천히 짙어가는 LA의 야경을 바라보며 탁자에 놓여진 사건일지를 바라보는 사이로 짙은 재즈 소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제와 새삼 그 나이에 퇴직의 후련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중년의 남자의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떠올려 본다..
2. 여차저차해서 경찰 내부의 기득권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경찰로서의 업무에서 벗어나 퇴직을 한 보슈는 그동안 가지지못했던 시간적 여유를 클래식한 할리 오토바이의 조립에 할애하는 중입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동생인 미키 할러에게서 연락이 옵니다.. 한 여성이 살해되었고 그 여성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현재 구속중인 한 남자의 변호를 맡은 할러는 재판이 시작되는 시점까지 현재 범죄 피의자로 지목된 디콴 포스터의 무죄를 밝힐 업무를 같이 하자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보슈는 그렇게 경찰과 관련된 피의자의 사건을 수사하게 되면 경찰조직 전체와 맞서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탐탁찮게 생각하죠, 그가 평생을 바친 경찰조직속에서 그가 경험했던 것들이 그대로 그에게 몰아부칠 것을 그는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살해된 유명인 여성 렉시 파크스의 진범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그는 오로지 정의만 바라보고 모든 경찰조직의 적이 될 위험을 감수하고 사건을 수사해나가기 시작합니다...
3. 보슈가 갈수록 나이를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국내 신작이긴 하지만 해리 보슈의 18번째 작품이자 2015년 발간된 작품이니 10년이나 이전에 나온 작품입니다.. 여전히 국내 번역작은 보슈의 나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죠, 여하튼 그동안 보슈는 경찰로서 그리고 탐정으로서 부침이 많았던 세월을 뒤로하고 이젠 퇴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본성은 언제나 정의를 갈구하는 사람이죠, 언제나 그렇듯 이 작품 또한 하나의 사건속에서 발생한 작은 단서로 진실을 찾아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조금씩 틈이 보이는 사건의 내막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천천히 그리고 확실한 의도가 눈에 띄는 법이니까요.. 그렇게 보슈는 대단히 단단해보이는 사건의 틈속에 약간의 균열속에서 하나하나 그 균열을 건드려보기 시작하니까요.. '모두가 중요하거나 아무도 중요하지 않다'를 찾아나가는 그런 묘미가 있죠,
4. 이 작품은 말그대로 보슈와 할러가 함께하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할러는 미미한 영향력을 발휘하죠, 그래서 보슈 시리즈인겝니다.. 제가 수사기법이나 경찰조직의 전문적 영역을 전혀 알지못하는 일반인이지만 코넬리횽아의 소설속 수사기법과 서사만으로도 경찰대학 수준의 능력을 보여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매우 치밀하고 틈새없이 수사라는 기본적 뼈대속에서 주변의 이야기라는 혈관과 소설의 심장인 캐릭터의 심리를 비롯한 모든 창조를 그동안 이어져온 역사의 몸통속에서 숨쉬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가장 큰 의도는 그동안 보슈가 평생을 속했던 사회속의 존재감이었던 경찰이라는 조직과 대치되는 홀로 떨어진 진실과의 대면이라는 영역을 보여주며 독자들로 하여금 사회 정의의 원칙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려고 한다는 것이죠, 그동안의 시리즈를 통해 조직의 부당성과 조직의 부패와 조직의 이중성을 끊임없이 보여주었던 코넬리횽아이기에 이 작품 '크로싱'에서도 이러한 그의 명분은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5. 솔직히 전 코넬리횽아의 작품에서 큰 단점을 발견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찾으려면 찾을 수 있겠지만 딱히 어떤 작품을 비교해서도 모자란 부분을 끄집어내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독후감이랍시고 뭔가 단점을 찾으려고 하진 않습니다.. 그만큼 개인적으론 충분히 만족하는 작품들이라고 해두죠, 그럼에도 불구하고..ㅋ 이 작품은 시리즈를 이어져오며 제가 느꼈던 부분들과 비교해서 조금은 밋밋한 느낌이 있다 정도.. 이유인즉슨 많은 작품들이 여러가지 얽히고 설킨 구조와 서사의 틀속에서 많은 반전과 주변 상황들의 변화를 주는 매력이 있는 반면 이 작품은 하나의 서사속에서 끝까지 변함없이 이어지는 직선적 구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 단점이라고 보진 않습니다만 혹자에 따라서는 그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구요, 물론 꾸준히 이어져온 시리즈의 영역속에서 제가 드리는 말씀인만큼, 따로 떼어내 이 작품만 접해보신 분들이시라면 오히려 더 매력적인 가독성을 가져다줄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하겠습니다.. 여하튼 대단히 빠르고 다이렉트적인 결말까지 이어지는 작품이니만큼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후련함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아님 말고,
6. 항상 느끼고 하는 말이지만 어떻게 이렇게 딱딱하고 건조한 수사기법과 내용과 서사로 독자들에게 긴장감과 상황적 스릴감을 끝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 궁금해하는 독자입니다.. 소설속에서 작가는 시대의 흐름속에서 고독하게 홀로 선 주인공의 삶이 대단히 구시대적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드러냅니다.. 보슈가 자신의 딸 매디와 나누는 이야기와 그가 받아들여하는 신문물의 정보들이 끊임없이 그를 혼란시키기도 하니까요, 그런 공감적 재미까지 중년을 함께하며 수십년동안 저와 함께했던 보슈는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제가 해리보슈의 첫 작품인 '블랙 에코'를 처음 접했던 시점이 거의 30년이 다된 시점이니 그때 코넬리의 모습은 파마머리를 길게 기른 젊은 작가였고 보슈 역시 베트남에서 땅굴쥐로서 그가 가진 트라우마와 그의 정의를 경찰로서 진행하던 시절을 함께 했고, 이제는 같이 지긋한 나이에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지나간 시절보다는 남은 날에 대한 삶을 그려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땡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