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하난의 우물 - 장용민

부치하난의 우물
장용민 지음 / 재담 / 2021년 8월

   - 그 건물은 망부석처럼 버티고 있었다. 화장을 고쳐봐야 시커먼 민낯은 여전했고 너저분한 주변 상점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여전히 배 속에 오래전 죽은 한 아이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언젠가 나타날 임자에게 보따라를 풀 심산으로 잔뜩 웅크린 채. 어둑어​둑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덕분에 때 이른 네온사인이 하나둘 들어왔다. 그런데 건물 옥상에 범상치 않은 기척이 있었다. 난간 위에 위태롭게 선 여인. 여인은 아득한 발치를 응시하고 있었다.

    1.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반백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과거 아버지가 지금의 나의 나이땐 어떠했는가 돌이켜본다.. 아, 시대가 바뀌어 지금의 내 나이가 예전 아버지세대의 나이와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나름 위안을 삼아보긴 하지만 그럼에도 난 적은 나이가 아니다.. 문득 이런 세월의 생채기를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아버지의 시간, 그리고 그렇게 이어나가는 나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뭘 잃고 뭘 얻었는가, 참 꼰대같은 말이다.. 사랑, 그런 시절이 있었다.. 모든 것을 다바쳐 나를 희생해도 무관한 사랑이 있었다..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아픔이 있었다.... 아닌가, 누구나 한번쯤은 사랑에 울고 웃고, 철부지 어렸을땐 사랑을 모른다지만 세월이 흘러가니 그게 진정 사랑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사랑, 그게 먼데....

    2. 그동안 알아온 장용민의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감성의 매력이 담긴 작품이네요, "부치하난의 우물"은 대중소설의 전형속에서 조금은 판타지스러운 소재를 가미한 스릴러로맨스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싶습니다.. 세상의 아귀다툼속에서 순수에 머문 한 남성과 온갖 휘둘림과 고통속에서 자신을 지켜가는 아픔을 간직한 한 여성의 로맨스 소설이라고 보면 될 듯, 순수한 남성은 스무살의 성인이지만 어린 정신에서 성장하지 못한 누리라는 한 남자입니다.. 그리고 태경이라는 여성은 어린시절 양아버지의 학대와 성폭행속에서 가출하여 세상의 칼날에 상처를 입고 지옥같은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이죠, 누리는 어린시절 버려져 고물을 주우며 살아가는 한 노파의 손에 길러집니다.. 그리고 유년의 세상에 갇힌체 순수만으로 성장한 사람이죠, 누리는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의 유언을 맹목적으로 믿습니다.. 자신만의 여인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우연히 도움을 준 한 노인에게서 자신이 선택한 운명의 전설을 듣게 됩니다.. '부치하난의 우물'에 관한 사막의 전설을 말입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유언과 합치하는 자신만의 여인 올리를 찾고자 합니다..

    3. 태경은 가정폭력에서 벗어나고자 가출을 하지만 세상의 가혹함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몸을 팔고 소매치기를 하면서 힘겹게 살아가지만 태경에겐 미래나 희망이나 사랑은 쓰레기같은 의미일 뿐입니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꿈을 꾸는건 이 지옥같은 사회에서 벗어나 남태평양의 피지로 떠나는 것이었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조폭 무열이 보여준 다이아몬드를 훔쳐 달아나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쉽지않습니다.. 도망치는 와중에 우연히 누리가 쏘아올린 종이비행기속의 목걸이를 받아들고 누리와 태경은 하나의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들은 있는 그대로 놓아주질 않습니다.. 그들 앞에는 지옥같은 험난함이 놓여져 있으니까요,,, 자, 여기까지 줄거리입니다.. 근데 줄거리가 장황하다 그죠, 이유인즉슨 이 작품은 내용은 아주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드라마틱한 서사에서 크게 벗어나질 않는다는 말씀을 드릴려고 그랬습니다.. 솔직히 누리와 태경의 이야기는 첫 페이지만 읽어봐도 애네들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지 대강 눈치를 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의 제목인 '부치하난의 우물'이라는 전설에 대한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접근할 수 있겠습니다..

    4. 현실의 이야기는 줄거리외에 딱히 감상이랄 것도 없어보이지만 이 전설속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매력적입니다.. 사막의 부족에 대한 이야기속에서 이루어지는 입체감은 아주 뛰어납니다.. 과거 그 흔하디흔한 판타지소설의 이야기마냥 읽는 동안 집중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전설속의 로맨스동화는 아주 장르틱하면서도 매우 거친 감성을 가미하고 있죠, 흔한 전설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후반부에 들어 반전을 표하면서 이야기는 현실의 상황과 합주되어 이루어집니다.. 이런 서사의 흐름은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전설의 맹목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따르는 누리와 지독한 현실의 고통속에서 모든 부정속에서 누리의 진실만 감지한 태경의 세계에 집중하게 만들어주죠, 전형적이고 흔하지만 이러한 변주는 아주 대단한 속도감과 상황적 빠른 전개로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듭니다.. 역시 장용민 작가는 이러한 대중소설적 매력을 놓치진 않습니다.. 전설과 현실의 변주속에서 허접한 개연성을 만들지 않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5. 이러한 전형적인 스토리의 구성속에서도 가장 대비되는 매력은 아마도 캐릭터의 입체감이라고 봐야겠습니다.. 누리라는 아이-신체연령은 성이지만 유년의 사고에서 머문-의 순수함이 보여주는 끝없는 의지는 매우 강합니다.. 태경이라는 캐릭터가 주는 현실적 피폐함의 전형은 누리로 인해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깨우는 서사의 중심에 놓이죠, 이 둘의 인물적 구성은 로맨스라는 감성적 공감에 매우 적합하게 독자들을 건드립니다... 기존의 작품들속에서 만난 장용민이라는 작가의 스타일과는 조금은 궤를 달리하는 장르적 소품같은 이야기지만 독자들이 원하는 대중성과 결부시켜 이러한 확장된 외연을 포괄하는 보다 매력적인 작품이 앞으로 선보여질 것 같은 기대감은 가집니다.. 모르죠, 오히려 이러한 대중성을 보여주는 작품적 구성이 장용민 작가의 대중적 명성에 도움이 될 지도, 드라마나 영화 한편 감상하는 기분으로 재미를 찾기로는 충분히 즐거운 작품이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만 총총, 떙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