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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ㅣ 수상한 서재 4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6월
평점 :
- 누군가 무덤을 파고 있다. 어둠 속에서, 묵묵히. ㅓ젖은 흙에 삽을 꽂아 한 덩이를 떼내고, 한 삽, 다시 한 삽, 지아는 눈을 떴다. 눈이 닿는 곳마다 검은 산이었다. 꾹꾹 눌러 담은 고봉처럼 높고 낮은 산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나뭇가지는 머리를 풀어 헤친 귀신처럼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1. 어린시절을 떠올려본다.. 기억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무엇이던가, 정확히 머리속에서 기억되는 이미지는 아파트의 복도에서 아버지께서 누군가와 다투는 모습이다.. 생전 처음보는 아버지의 분노와 욕성를 경험한다.. 멱살잡이가 오가고 현관문 밖 복도에서 서로 주먹다짐을 하는 모습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머니는 두려움에 거실에서 나를 부둥켜안고 있고 문 열린 현관밖에서는 심각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모습, 결코 좋은 모습은 아니다.. 생전 처음 만난 아버지의 무서운 얼굴과 욕설속에서 두려움을 느낀 것 같기도 하다.. 이후 그 사건은 동네 주정뱅이 아저씨가 아파트 복도에서 어머니를 희롱하고 집으로 들어온 어머니에게 온갖 욕설을 하면서 문을 두드리고 위협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마침 아버지가 집으로 오시면서 그 사건을 목격하시고 심각한 다툼이 벌어진 것이지, 하지만 상황의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이 내 뇌리에 각인된 모습은 아버지의 분노에 찬 행동이 잔상으로 남은 것이다.. 누구나가 그럴 것이다.. 처음으로 폭력적인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절대 잊혀지지않는 각인이 생기는 것이지.. 이후로 난 아버지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온 느낌이다.. 나에게 한번도 제대로 화를 내보신적이 없으신 분이시지만 이 또한 일종의 트라우마가 아니겠는가, 언젠가 큰 딸아이가 끝없이 고집을 피우고 뗴를 쓰던 날 아이를 방으로 데려가 심하게 화를 낸 적이 있다.. 그날 과거의 트라우마가 떠올랐고 이후로 단 한번도 아이들에게 윽박지르거나 단 둘이 있는 공간에서 분노를 터트린 적이 없다... 이젠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여전히 그날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아마 평생 떠올린 충격적 이미지일 것이다...
2. 인간은 그런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보여지는 세상의 푹력이 얼마나 큰 잔상을 남기고 평생을 기억하게 하는 지, 누구나 이러한 충격적 기억은 존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말구요,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트라우마라면 사실 큰 문제는 아니겠지만 사회적 소수로서 다수의 폭력과 위협에 처한 사람들이라면 어떨까요, 얼마전 5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아직 어린 아이가 언니와 함께 길을 가면서 목격한 엄청난 폭력의 세상의 모습을 말이죠, 그녀는 지금도 잊지못하고 죽을 때까지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길에서 만난 세상은 지옥과도 다르지 않았고 집에 도착했을떄 눈에 펼쳐진 세상은 도저히 믿기지않는 죽음의 세상이었을테니까요, 세상과 단절된 한 도시에서 세상이 모르게 벌어지는 살육의 진실은 그들만이 감내해야만될 지울 수 없는 상처였던 것이죠, 누구도 믿어지않고 이해하려들 지 않았던 그 진실을 그들만의 고통속에서 참아내며 살아온 이들에겐 그 날 이후의 삶은 분명 비현실적이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소설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은 그런 폭력의 트라우마속에서 한 여인이 겪는 고통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이 둘로 나뉘어져버린 해리성정체장애, 흔히 말하는 다중인격을 가진 여성의 이야기입죠, 염지아와 윤혜수 그들은 동일한, 하지만 극과 극의 성향을 보이는 여성으로 서로가 서로를 모른 체 19년의 세월이 지나 같지만 다른 인생의 갈림길의 삶을 되짚어 나갑니다..
3. 한 여성이 깨어납니다.. 어두운 산의 숲에서 시체를 파내고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되죠, 염지아입니다.. 그녀는 스스로 인정하는 다중인격 정신분열증상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녀가 기억하는 염지아의 삶은 19년 전입니다.. 그리고 그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죠, 19년동안 염지아는 또다른 인격인 윤혜수라는 인물로 살아왔습니다.. 과격하고 폭력적이고 직설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분노에 찬 혜수의 인격이 그동안 지아의 몸을 지배하고 살아온 것이죠, 그리고 누군지도 모를 한 여성의 죽음에 직접적인 관여를 했다는 것은 지아는 눈치챕니다.. 어딘 지 모를 곳을 벗어나 산을 내려오니 그곳은 묵진이었습니다.. 과거 들은 적이 있던 곳이지만 19년전의 지아로 돌아온 지금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 지 알질 못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존재하던 서울의 뱀이마을로 지아는 돌아오고 그런 지아를 아버지 철순은 만나게 됩니다.. 지아의 이러한 다중인격의 형성은 80년의 봄 자신의 가족에서 벌어졌던 충격적인 죽음의 현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온계리까지 계엄군이 들이닥치고 자신의 집으로 숨어들어온 재필을 숨겨진 어머니는 군화발 아래 죽음을 당합니다.. 그리고 그 장면은 또렷이 지아의 뇌리속에서 심각한 상처를 주기에 충분했죠, 이후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울떄는 연약한 성향의 지아 대신 과격하고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혜수가 등장하여 그 자리를 차지해나갑니다.. 그리고 간병인을 하던 지아의 사건 이후 지아의 자리를 혜수가 완전히 차지해버립니다.. 그리고 19년이 흘렀죠, 지아로 돌아온 이상 과거 혜수로 살아온 시절의 삶의 기억을 찾기위해 지아는 다시 묵진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조만간 자신이 깨어난 시체가 있는 산이 발각될 위기에 놓였으니까요,,, 묵진으로 가봅시다....
4. 소설은 묵진이라는 가상의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냅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일상이 존재하는 항구도시는 세상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온갖 인간군상들이 하루벌어 먹고 살기에 적합한 곳이죠, 이곳에서 윤혜수라는 또다른 인격이 자신의 삶을 살아온 이야기를 지아는 찾아나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녀가 기억하는 혜수는 악의 중심이죠, 지아는 그런 혜수를 알기에 그녀가 저지른 악의 이유를 찾아내려고 하는 듯 보입니다.. 소설은 지아의 시선과 심리로 이어집니다.. 자신이지만 자신이 아닌 자아의 삶에 대한 단서를 찾아나가는 방식이 무척 매력적입니다.. 서사속에서 단면적으로 그려내는 묵진의 모습은 전작인 '콘크리트'에서 보여주었던 쇠락하는 '안덕'이라는 도시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삶의 밑바닥의 생존의 몸부림을 그려내기에 아주 적합한 배경들이죠, 또한 인물들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하나같이 일반적이진 않습니다.. 시작점에서의 온계리의 모습에서부터 묵진까지 이어져가는 온갖 인간군상들의 이미지는 입체감이 넘칩니다.. 밑바닥의 인생과 삶에서 낙오된 소외된 인간들의 우격다짐을 대단히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지아가 찾아나가는 혜수의 삶은 추리소설의 단서찾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이지만 다른 인물의 삶의 역사를 되짚어 진실을 알아나가는 스토리의 진행은 여느 추리소설의 즐거움을 주기에 적합합니다.. 또한 이로 인해 자신의 주변에서 자신이 저지른 사건의 의도를 아는 인물들이 그녀가 다가오기만 기다리며 옥죄여오는 스릴러의 감성도 나쁘지 않습니다..
5. 이 소설은 설정이 무척이나 새롭고 창의적이죠, 해리성정체장애를 겪는 인물을 중심으로 자신이 또다른 자신의 진실을 찾아나가는 방식이니까요, 사실 정신병적 영역에서 19년이나 자신을 놓친 설정이 얼마나 신빙성있는 소재가 되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러려니하고 읽게 되면 충분히 즐거운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또한 후반부에 드러나는 진실의 넋두리는 초중반의 조금은 지리한 진행과정의 궁금증을 해소해주기는 하지만 추리소설적 방식에 따른 매력적인 반전을 선사해주지는 못하죠, 감정적 찌꺼기를 완전히 씻어내지 못하고 인간이기에 뒤끝이 남는 감성적 결말은 전작인 '콘크리트'의 느낌과 비슷할 수도 있습니다.. 독자에 따라서 이러한 결말의 이야기가 매력적이기도, 불만이기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간중간 소설이 이어짐에 있어서 각각의 인물들에게 부여된 이야기의 갈래는 조금 사족이 많았던 느낌도 듭니다.. 물론 이로 인해 인물들에게 느껴지는 상황적 입체감이 더욱 두드러지기는 하죠, 어떤 경우에는 이야기를 조금 더 늘여 즐거움을 더 주길 원하는 작품이 있는 반면, 이 작품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은 조금은 이러한 주변의 이야기를 줄여서 주인공인 지아와 혜수에 집중을 해서 속도감은 높여주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얄팍한 아쉬움은 있습니다.. 하지만 설정과 감성과 추리적 단서찾기와 같은 구성과 서사는 대단히 맬력적인 것이 분명하며 이를 그려내는 작가의 농밀하고 세밀한 심리적 묘사나 상황적 이미지는 상당히 능숙합니다.. 또한 작품의 재미와 별개로 느껴지는 사회적 악행에 대한 먹먹한 울림은 오랫동안 머리속에서 지워지진 않죠, 하승민 작가의 차갑고 외롭고 스산하지만 그속에 남겨진 인간의 몸부림들은 오히려 뜨거울 정도로 열기로 가득차있습니다.. 이러한 흔하지않은 인생의 밑바닥을 그려내기에 하승민 작가의 재능은 앞으로도 기대가 되기도 하네요, 전작인 '콘크리트'에서도 크게 다르지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해보죠,, 땡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