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
에느 리일 지음, 이승재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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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반적이다, 보편적이다, 평범하다가 아니면 다 이상한건가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와 같지 않으면 난 이상한게 되나요, 세상의 틀과 기준과 삶의 방식이라는게 나에게 있는 그대로 적용이 되지 않는다면 전 이상한 사람이고 심지어 괴상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는건가요, 이 세상을 살고 인간의 삶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사람의 영역에서 그들처럼 보여져야 대우를 받고 인정을 받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문득 해보게되요, 조금은 다를 수도 있고 조금은 독특할 수도 있고 조금은 동떨어질 수도 있는 수많은 나와는 다른 누군가가 나의 주변에 심지어 나조차도 그런 사람이 될 지도 모르는데 그들이 쉽게 어울리고 함께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우리와 다른 존재처럼 여겨져야하는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대중이라는 공동체에서 외면하고 몰이해를 하게 되면 자꾸만 소외되고 배제되어 자신만의 세상속으로 숨어들게 되는 인간의 속성에 대한 고민이 생깁니다..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고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과연 나는 나라는 존재가 보여줄 수 있는 나의 가치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수 있는가하는 뭐 그런 고민거리죠,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넌 왜 다른 아이들처럼 하지 못해라는 말을 자주합니다..  넌 왜그러니, 남들처럼 인사도 잘하고, 하고싶은 말도 똑똑하게 제시하고, 원하는 것도 편안하게 말하지, 왜 맨날 혼자만 있니, 만날 친구가 없니.. 허구헌 날 집에만 있으면 뭘하려고 해도 주변에 사람이 다가올 일이 없겠다야, 그러지말고 나가서 놀아, 그러지말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아, 그러지말고 어디 모임이나 그런데 좀 나가고 그래, 답답하고 짜증스럽고 내 저럴까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우리 조금만 아이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시선을 바라봐줍시다..


    2. 인간 사회의 대다수의 문제는 함께하고 공동체로서 서로 부딪히면서 벌어지는 일들 때문에 발생하죠, 수없이 떠들어댄 독후감의 내용속에서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늘 관계의 마찰속에서 벌어지는 일때문에 수많은 고민거리가 생긴다고 했습니다. 제가 읽고 즐기는 소설속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죠, 인간은 그런 존재입니다.. (헉, 다음 이어쓴 독후감 전체가 다 날라가따, ㅠㅠ) 함께 살아가야되는 존재들인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혼자이고 싶은 욕망 또한 있습니다.. TV 프로그램중에서도 '나는 자연인이다'같은 프로그램이 그렇죠, 많은 사라들과 세상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지치고 고통스러워서 자신만의 세상속으로 고립되어 사는 인생을 우린 나름의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곤 합니다.. 세상의 최소한의 문명적 이기만 주어진다면 홀로 고립되어 자신들만의 세상속에서 자유롭게 편안하게 자신의 가족들만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그렇게만 살 수 있다면요, 하지만 언제나 인간은 스스로 조차도 혼란스러운 내면을 보유한 특이한 존재이기에 늘 문제가 생깁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각자의 생각과 성향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지요, 나 혼자 산다라는 개념이라면 뭐,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 혼자이길 바라지만 내 가족들마저 고립된 삶에 묶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도 원하고 택한 삶일테지만 그 삶의 끝이 항상 행복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럼 그렇게 부럽게 바라보는 고립된 생활이 막상 하려니 두렵지는 않을텐데 말이죠, 스칸디나비아 최고의 글래스키상을 수상한 서스펜스 스릴러소설 덴마크의 작가 에느 리일의 "송진'입니다..


    3. 대단히 극악스러운 상황을 천진무구한 아이의 시선으로 드러냅니다.. 리우라는 어린 여자아이는 자신의 할머니가 죽음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죠, 그것도 자신의 아빠로 인해 벌어진 상황이라는 점이 이 작품의 광기적 상황과 아주 암울한 내면을 시작점부터 그려낸다는 것이지요, 서스펜스 스릴러소설의 수상작다운 시작점이라고해도 무방하겠습니다.. 그렇게 할머니의 죽음으로 시작된 작품은 크리스마스를 며칠 남긴 시점에서 시작하여 할머니의 죽음 이후 이 가족의 과거로 돌아갑니다.. 할머니 엘세와 아빠 옌스가 살던 어린시절이죠, 옌스는 실라스 호더의 둘째 아들입니다.. 본도와 떨어져 홀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호더 가족은 본도에서 필요한 가구나 목재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죠.. 형인 모웬스와 옌스는 목수인 아버지 실라스를 도와 조촐한 호더 가족의 행복한 삶이 이어집니다.. 본도에서도 실라스의 목수일을 좋게 바라보고 항상 일거리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목수에게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관도 만들게 되죠, 아버지 실라슨 죽음이라는 것에 매혹된 사람입니다.. 형인 모웬스는 그것과 무관하게 외향적이고 사회적 심성을 가졌지만 옌스는 아버지의 그런 암울한 내면의 심성을 닮은 것이죠, 아버지와 옌스는 그런 자신들의 공유로 서로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하는 죽음에 대한 생각적 공유를 가집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영원한 삶의 모습처럼 보여지는 개미가 갇힌 호박을 옌스에게 선물하죠.. 많은 송진이 굳어 오랜시간 지나 만들어진 호박은 과거 미리를 만들때 사용되곤 했죠, 실라스와 옌스는 그런 죽음에 대한 그들만의 생각을 공유하지만 어느날 아버지 실라스가 번개를 맞고 갑작스런 죽음을 당합니다.. 그리고 옌스에겐 그를 이해해주고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형인 모웬스는 고립된 섬에서 가출을 하고 사라지고 엄마인 엘세는 자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죠, 조금씩 옌스는 자신만의 세상속으로 문을 닫아걸기 시작하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한 여인이 있었으니 엘세가 들인 가정부인 마리아만 그의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엄마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고 쌍둥이를 낳게 되죠, 카알과 함께 할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리우를 말입니다.. 이 가족에게 어떤 일이 생긴 것일까요,


    4. 전반적인 연결이나 구성이 상당히 쫀득쫀득하다는 표현을 해도 될 지 모르겠습니다.. 서사가 아주 잘 연결되어 상황이 주는 소설적 이미자와 재미가 상당히 뛰어납니다.. 특히 리우라는 어린 여자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과 그들의 부모의 삶과 자신의 주변의 이야기는 아이의 단순하면서도 긍정적이고 생기 넘치는 또래의 시선과는 대단히 반치되는 이미지입니다.. 아이가 이해하는 세상은 그 눈높이의 세상인게죠, 하지만 독자들의 대다수가 성인인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다릅니다.. 아이가 아닌 어른의 삶이 보이죠, 작가는 이러한 시점과 시선의 변화를 챕터와 상황과 배경속에서 조금씩 달리 합니다.. 이들의 가정에게 주어진 삶의 이면과 진실을 그릴때에는 전지적 작가의 시선이 주효하고 현재의 삶의 모습과 공감을 위해서는 아이인 리우가 바라보는 그들의 세상이 중요하죠, 하지만 중심은 리우입니다.. 과거의 호더가족의 삶과 이야기로 이어져온 홀데트섬의 고립된 세상은 리우가 또다른 아이만의 세상으로 변화되어 나아갑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는 아이인거고 그 중심에는 자신의 아빠 옌스가 만들어가는 그만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이 지켜야만하는 가족에 대한 집착과 광기가 우선입니다.. 이들은 고립되고 사회에서 멀어져 외떨어진 곳에서 자신들만의 삶을 구축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완전히 세상속에서 떨어져나갈 수는 없죠, 어떻게해서든 그들은 세상과 사람들과 통할 수 밖에 없고 그러한 세상과의 연결은 옌스가 가지는 가장 큰 두려움입니다.. 과거 자신과 아버지가 느꼈던 아주 작은 그들만의 틀속에서 편안함을 찾던 그 감성이 끊임없이 그를 가두는 강박과 집착으로 변질되어버린 것이죠,


    5. 시작점부터 나타난 소설의 어두움을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옌스가 보여주는 암울함과 고립된 자아의 은둔적 감성은 독자들로 하여금 답답함과 함께 일반적이지 않음으로 비이성적이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듭니다.. 하지만 리우라는 아이가 있죠, 아이는 독자들이 이 작품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대단히 현실적이면서 우리네 인생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비이성적으로 보이더라도 이것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일반적이진 않지만 이들의 가족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으로 이해를 시킵니다.. 만일 리우라는 아이가 바라보는 그들의 세상속 시선이 없었다면 독자인 우리들은 흔한 주변의 삶이지만 이들은 이상하고 괴기스럽고 비이성적이고 문제가 있는 삶이라고 치부해버릴 지도 모를 일입니다.. 흔하지만 가까이 다가가기 싫은 그런 삶의 모습, 사실 이 작품속의 옌스 호더와 그 가족의 모습은 가까이 다가설 수가 없습니다.. 어느순간 사람들은 그들과 동떨어져 살아가는 호더 가족을 잊어버리죠, 그리고 옌스는 자신만의 세상속에 갇혀버립니다.. 자신의 엄마, 자신의 형마저 자신의 삶과 생각과 심리를 외면해버린 것이죠,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을 알아준 마리아와 자신의 아이들에게만 자신과 동일해야한다고, 그래야만 버림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고립과 은둔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였던 셈이죠, 그리고 그 울타리를 아무도 넘어오지 못하게 그는 방어벽을 칩니다.. 사실 이러한 옌스의 반복되는 모습과 암울한 이야기 진행은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일정부분 지리한 상황으로 보여집니다.. 리우에게 자신의 성향과 상황과 의도를 강요하면서 어린 아이가 세상에서 단절되게끔 해버리는 부모로서의 행위는 감정적인 거부감까지 들게 되죠, 하지만 엄마의 편지와 세상과의 가느다란 끈을 이어나가고 아직 세상을 모르고 자신만의 영역속에서 살아가는 리우의 하얀 백지의 빈 공간은 후반부의 반전과 함께 또다른 세상의 올바른 판단을 이끌어나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6. 서사가 좋습니다.. 이중적 시선이 느껴지는 관점이 주는 매력도 다분하지요, 어리고 세상을 아직 모르는 천진한 여자아이의 세상속의 눈높이가 주는 또래의 생기넘치는 세상의 이야기와 이제는 자신과 주변을 닫아걸고 고립시키고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어두움과 고독과 고립적 두려움으로 강박과 집착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갇혀버린 성인 부모의 눈높이가 독자들로 하여금 객관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공감을 불러주는 역할을 합니다.. 소설은 이들의 삶과 주변의 이야기로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게 얽혀 이어져가지만 독자들은 그들의 삶과 리우의 이야기에 매혹적으로 집중하게 됩니다.. 홀로 떨어진 아름다운 섬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북유럽의 차디찬 자연적 이미지가 주는 입체감이 아주 두드러진 작품이기 때문에 독자로서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우린 압니다.. 이러한 세상속에 갇혀서 살아가는 주변의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말이죠, 수백수천만의 인간의 도시속에서도 홀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가정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하기에 저는 리우가 바라보는 세상의 눈높이를 공감하게 됩니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에게 둘러싸인 울타리속에서 세상을 바라보지만 조금씩 그 자신의 부모만 바라보던 눈은 성장함에 따라 주변으로 돌리게 되죠, 옳고 그름은 그렇게 조금씩 아이를 세상속에서 제대로 살아가게끔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또다른 측면에서 부모라는 존재들은 어린시절 새하얀 백지의 아이의 공간속에 그들이 겪고 살아온 세상을 대입하려합니다.. 아이가 바라보는 부모의 눈은 세상의 모든 것입니다.. 부모가 바라보는 아이의 눈속에 자신이 아는 세상만 담아두고 아이의 눈을 묶어두면 아이는 자신의 공간속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나와 같은 인간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의 생각, 나의 사상, 나의 삶은 나의 것이죠,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만 유일한 것이기에 강요하거나 요구하거나 묶어두려해서는 안되는 것이죠, 뭔말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우린 부모로서 아이를 잘 키울 책임이 있습니다.. 모든 부모가 그렇죠, 옌스 부부도 그러길 바랬습니다.. 옌스의 부모들도 그러길 바랬죠, 하지만 인간은 다 다릅니다.. 그것만 명심하면 됩니다.. 안되면 말고,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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