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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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열살 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우연히 길에서 지갑을 주었죠, 큰 돈이 들어있었습니다.. 어린 제가 보기에도 엄청나게 많은 지폐들이 들어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지갑을 나만 아는 집 마당 안쪽에 감춰놓고 그중 오천원을 빼서 키카라는 초콜렛을 사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잔돈을 받는데 그것조차도 엄청 많더라구요, 그때까지 제가 가져보지 못한 금액이라고해도 될겁니다.. 요즘 아이들이야 오천원이 뭔 대수겠습니까만 그때 당시에 라면 하나에 100원하던 시절인지라 키카 초콜렛 200원짜리를 사먹고 나도 엄청나게 많은 돈이 남는 것이지요, 게다가 감춰놓은 지갑속에는 그것보다 수십배는 많은 돈이 들어있으니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그렇게 며칠동안 야금야금 오천원을 썼죠, 친구들에게 떡볶이도 사주고 생라면도 사주고 문방구에서 딱지도 사주고 기분좋게 썼는데 이게 소문이 나다보니 엄마에게 들킨거죠, 자초지종을 캐묻는 엄마에게 나름 머리를 쓴답시고 오천원을 주워서 친구들이랑 나눠먹었다고 하니 다음부터는 그런 큰돈은 어른에게 이야기해야된다는 말씀과 함께 그대로 그 일은 묻혔습니다.. 있는 그대로 그냥 주운 돈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오천원일뿐이니까요, 하지만 저만 아는 사실중에는 숨겨진 지갑의 금액이 고스란히 남죠, 그리고 오천원을 주웠다는 사실에 대해 엄마가 이야기한 큰돈을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과 그런 큰돈을 주워서 그냥 써버리면 그건 도둑질이 되어 범죄가 된다는 사실이 머리속에서 맴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써버렸는걸요, 그리고 나머지 돈은 숨겨놓았는걸요, 그것도 사흘이 넘게,


    2. 자, 그리고 그 시점에서 아버지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옆집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사러가시는데 그 계약금을 지갑에 넣고 가다가 잃어버리셨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경찰에 신고하고 찾으면 사례하겠다고 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아버지가 타시는 오토바이를 며칠 빌려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하시더라구요, 그 당시 저의 귀에는 경찰에 신고! 이 말만 들렸습니다.. 경찰에 신고, 누군가 그 지갑을 가져갔다면 그게 주워서 숨겨놓았고 그 돈을 썼다면 도둑질이 되는데, 그게 저였으니까요, 그리고 전 범죄자가 되어 평생 도둑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선듯 숨겨뒀던 지갑을 내놓지도 못하죠, 그럼 제가 범인이라는게 들통날테니까요, 그럼 그 지갑을 아무도 없을때 꺼내서 아저씨집 앞에 놓아두면 되겠네요, 하지만 누군가가 그 장면을 목격이라도 한다면 영락없이 전 도둑이 되어버릴테니 그 조차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날 저녁부터 밤새 끙끙 앓고 하루죙일 힘들어했던 기억이 납니다.. 조금만 현관문이 달그락거려도 들켰나싶어 노심초사하고 어떻게하면 숨겨놓은 저 지갑을 아저씨에게 줄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했죠, 그러다가 결국 모두가 잠던 새벽에 잠시 일어나 마당 벽사이에 숨겨둔 지갑을 꺼내서 살짝 옆집으로 다가가 문 안으로 지갑을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와 엄마옆에 누웠죠,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였습니다.. 다음날 아버지의 오토바이는 돌려받았고 아저씨는 잃어버렸던 지갑이 집 마당에 있었다면서 좋아라하셨답니다.. 스스로 완전범죄라 하면서 흐뭇해하고 밥을 먹는데............ 아버지가 살며시 손을 제 머리에 얹고는 누군가가 참 멋진 일을 한 것 같다면서 엄마에게 다른 사람 이야기하듯 하시더라구요, 아버지는 어떻게 알았었을까요,


    3. 오래된 기억이지만 그당시 만 하루동안 머리속에서 고민했던 삶의 모든 미래와 인생의 부정적 측면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평생을 머리속에서 지워지질 않죠, 그래서 제가 바르게(정말?) 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죄짓고는 못사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날 우연히 살인자가 되어버린 12살의 앙투안은 어떨 지 감히 상상이 안갑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대단히 매력적인 소설가이신 피에르 르메트르 작가의 작품인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이라는 작품입니다.. 제목이 주는 의미는 작품을 읽고나서 다시 돼새겨보시면 그 자체가 주는 반전적 인식이 오랫동안 여운에 남으실겝니다.. 그렇습니다.. 프랑스의 외진 지역인 보발에서 살아가는 앙투안은 12살입니다.. 경제적으로도 힘든 지역과 그의 홀어머니의 힘겨운 삶속에서 앙투안은 외롭습니다.. 숲에 오두막을 지어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데 플레이스테이션에 열광하는 아이들은 그와 함께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데스메트씨가 자동차에 치인 자신의 강아지를 총으로 쏴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 앙투안은 숲으로 자신을 찾아온 데스메트씨의 여섯살난 아들 레미를 우연히 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앙투안은 갑자기 죽어버린 레미에 대한 혼란스러움에 자신의 어머니와 미래와 삶에 대한 부정적 예상을 떠올리며 아이를 아무도 모르는 숲속에 숨기게 되죠, 12살의 어린 앙투안은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그렇게 숨깁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앙투안의 주변에서는 벌써 실종된 레미를 찾는 아이의 부모와 앙투안의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하죠,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서 한순간도 자유로울 수 없는 앙투안은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심에 사로잡히지만 자신이 진실을 말했을때 돌아올 온갖 비난과 질책의 화살이 두려워 진실을 내비치지 못하죠, 그리고 보발에 최악의 폭풍우가 몰아쳐오기 시작합니다....


    4. 그냥 단순한 스릴러소설이라고 하면 안되겠습니다.. 그렇게 대중적인 느낌이 많진 않거덩요, 문학적인 느낌이 오히려 더 짙습니다.. 그 옛날 흘러가듯 읽었던 러시아 작가 도스트예프스키가 보여주었던 심리적 측면이 부각되는 그런 인물적 혼란이 중심이 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더 들더라구요, 그러니 도스트예프스키의 어둡고 부정적이고 비극적인 인간의 내면의 심리적 혼란스러움이 이 작품의 전반에 앙투안이라는 아이의 심리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는 뭐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 이 작품은 문학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겁니다.. 과거 도스트예프스키의 작품을 읽다가 쓰러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던 기억도 나구요, 물론 이 작품은 그렇진 않습니다.. 대단히 긴장감이 넘치는 상황들이 연이어 이어지고 앙투안의 입장과 함께 잘 연계되기 때문에 읽는동안 집중도가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짧습니다.. 이 작품은 열두살의 어린소년이 감당해야할 크나큰 범죄적 상황을 중심으로 아주 불안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독자는 숨을 죽이고 읽을 수 밖에 없습니다.. 말그대로 어린이가 살인을 저지르고 그걸 숨긴것부터 이야기가 진행되니 얼매나 불안하겠습니까, 서서히 독자들의 마음을 잠식해들어가는 앙투안과 그 주변의 인물들, 특히 앙투안의 어머니인 쿠르탱씨의 심리와 상황적 내면의 이야기는 매우 매력적입니다..


    5. 사실 스릴러작가로서 르메트르 작가에게서 가장 크게 각인되는 점이 반전의 충격입니다.. 이전 '알렉스'라는 작품과 '웨딩드레스'라는 작품을 읽고 충격에 소름이 끼쳤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알렉스'라는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그 감각은 쉬이 잊혀지지 않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아주 대단한 스릴러작가로서 떠올리는 피에르 르메트르에게 신작인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의 이야기는 조금 밋밋해보이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하나의 사건에서 벌어지는 인물적 심리에 대한 혼란적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죠, 이전 작품에서도 이러한 인물적 심리에 대한 아주 농밀한 묘사와 상황적 매력은 대단했습니다만 이번 작품은 어린소년의 입장에서 벌어진 사건의 시점을 중심으로 짧고 굵게 이어져 나갑니다.. 그리고 우린 이러한 아이의 심리와 감정에 충분히 공감하고 동조할 수 밖에 없죠, 어떠한 방식으로든 우리들은 자신들만의 감추고 싶은 범죄를 마음속에 한두가지씩은 가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결말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짐작을 하게 됩니다.. 누가 뭐래도 이 작품은 스릴러소설임을 표방하고 있으니 말이죠, 뭔가 다른 마무리가 되겠다 싶었는데 뭐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만 그 반전이 주는 여운은 상당히 오래 남습니다.. 아마도 작가 자신도 이러한 진행에 대한 나름의 고민을 했지 않을까 싶네요, 아무래도 제목이 주는 의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테니 말이죠, 여하튼 제목의 참뜻은 작품을 읽고 나면 충분히 되새겨진다는 점에 이 작품에 높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습니다..


    6. 제목만으로 언듯 작품의 의도를 생각해내기 쉽지는 않죠, 뭔지 모를 "사흘과 그리고 한 인생"을 논한다는 이야기에 웬 살인사건과 어린 아이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지 말이죠, 그리고 이 작품은 인간이 가지는 가장 원초적인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죄책감이 어떠한 삶의 영향력을 미치고 사람을 바꾸어나가는 지를 보여주려고한 의도가 짙은 작품입니다.. 단죄의 기준, 옳고 그름의 판단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것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삶의 복잡다단한 심리와 상황들을 꾸준히 드러내고 결말까지 이러한 상황적 현실에 대한 인간의 부조리적 측면을 대단히 공감가게 엮어나가는 것이죠, 그리고 마지막 앙투안에게 주어진 판단의 몫은 오롯이 독자들의 영역으로 남죠, 어쨌든 6살의 어린 아이를 살해한 살인자는 12살의 세상 물정과 삶이 뭔지 1도 모르는 어린소년에 불과했으니까요, 이러한 설정과 지역의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적절하게 섞어 이야기를 펼쳐낸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멋스럽고 재미집니다.. 여느 스릴러소설의 자극적인 감흥과 충격적 스토리는 아닐지라도 이 작품 자체가 주는 상황적 긴장감과 문학적 표현력들은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습니다.. 소설을 재미지게 읽고도 뭔가 고급진 독자가 되어버렸다는 뭐 그런 허세스러운 독서의 감흥이 남습니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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