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한 사람들

▲ 수난받아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는 신인 디오니소스를 형상화한 석고 작품
(AD 300년경 발견)

● 예수는 인류의 구원자이며 인간이 된 신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며 아버지와 동격인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 예수는 인간 처녀에게서 태어나고, 그의 어머니는 사후에 하늘로 올라가 신적 존재로 추앙되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 예수는 12월 25일 혹은 1월 6일에 태어나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 예수의 탄생은 한 별에 의해 예고되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 예수는 베들레햄에서 태어나는데, 그곳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에게 신성하게 여기진 작은 숲 속에감춰져 있는 곳이었다.

● 예수는 마기의 방문을 받는데, 마기는 오시리스-디오니소스를 섬긴 사제였다.

● 마기는 예수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바치는데, 그것은 BC 6세기의 이교도가 신을 숭배하는 방법이었다.

● 예수는 세례를 받는데, 세례는 미스테리아 의식에서 수세기 동안 행해져왔던 것이다.

● 예수에게 물로 세례를 준 성스러운 인간(세례 요한)은 이교도의 물의 신과 이름이 같으며, 이교도들이 물의 축제를 벌인 하지에 태어난다.

● 예수는 신도들에게 물과 공기와 불의 세례를 주는데, 이교도 미스테리아 의식에서도 그랬다.

● 예수는 장발에 수염을 기른 이방인으로 그려지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 예수는 결혼식 때에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데, 마찬가지로 결혼식 때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다.

● 예수는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의 음식을 베풀고, 어부를 도와 물고기를 잡게 하고, 사도들을 위해 물을 잔잔케 하는데, 이교도 현자들도 그 모든 기적을 행했다.

● 미스테리아 현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는 유랑을 하며 기적을 일으키고, 고향에서는 존경 받지 못했다.

● 예수는 파격적인 행동을 한다고 비난을 당하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신도들 또한 그렇다.

● 예수는 처음에 사도들에게 신격을 인정받지 못하다가 나중에 성스러운 변모를 보여 주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 예수는 12사도들에게 둘러 싸여 있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 예수는 무리들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동안 나귀를 타고 성으로 입성하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 예수는 이설과 새로운 종교를 퍼뜨린다는 부당한 비난을 받은 의로운 자인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 예수는 위선자들의 공격을 받고 폭군 앞에 불려가고 기꺼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며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거라고 예언하는데, 이교도의 성자들 또한 그랬다.

● 예수는 은 30(냥)에 배신을 당하는데, 소크라테스의 이야기에서도 그런 주제가 발견된다.

● 예수는 빵과 포도주와 동일시되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 예수의 사도들은 상징적인 빵과 포도주를 먹고 예수와 교섭하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신도들 역시 그렇다.

● 예수는 나무 혹은 십자가에 매달리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 예수는 세상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죽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 예수의 시체에 몰약을 바른 후 세마포로 싸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시체 또한 그렇다.

● 죽은 후 예수는 사흘만에 부활해서 사도들 앞에 나타나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의 옆에 서고, 다시 지상에 나타나 심판할 종말의 날을 기다리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렇다.

● 예수가 죽어서 부활했다는 날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가 죽어서 부활했다는 날과 정확히 일치한다.

● 예수의 빈 무덤에 3명의 여신도가 찾아오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3명의 여신도가 빈 무덤을 찾는다.

● 예수는 사도들에게 자신의 수난을 같이하게 함으로써 다시 태어날 기회를 주는데,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또한 그랬다.

- <예수는 신화다> '제3장 악마의 모방' 중에서

 

<예수는 신화다>의 티모시 크리프와 피터 갠디 두 저자는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예수 전기의 유사성에 대한 증거를 이렇게 모아놓았다. 그리스도교 초기의 교부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이것은 정말 완벽한 악마의 모방일까? 아니면 불가사의한 우연의 일치일까? 

이처럼 동일한 전기를 놓고 하나는 신화로, 다른 하나는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백번을 양보해 전기의 유사성은 일단 그렇다고 치고 넘어가자. 예수의 영적 가르침은 과연 얼마나 독창적인 것인가? 두 저자는 교부 클레멘스와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가장 초기의 그리스도교 지성인들은 이교도 철학을 배운 사람들이었고 그 철학이 그들 자신의 교리와 너무나 많이 닮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교부 클레멘스는 복음서들을 '완벽한 플라토니즘'으로 간주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헤라클데이토스와 소크라테스 등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을 그리스도 이전의 그리스도교인이라고 일컬었다."(위의 책,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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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육체를 가진 신이며 구세주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다.

●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며 어머니는 동정녀이다.

● 그는 3명의 양치기가 찾아오기 전인 12월 25일에, 동국이나 누추한 외양간에서 태어난다.

● 그는 신도들에게 세례 의식을 토앻 다시 태어날 기회를 준다.

● 그는 결혼식장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행한다.

● 그가 나귀를 타고 입성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찬송하며 그를 맞이한다.

● 그는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부활절 무렵에 죽는다.

●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해서 영광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 신도들은 최후의 날 심판자로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 의식으로 기념된다.

- <예수는 신화다> '제1장 생각할 수 없는 생각' 중에서

여기서 그는 누구일까? 답은 두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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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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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리스-디오니소스'이기도 하고 '예수'이기도 하다.

두 사람 모두의 이야기에 동일하게 등장하는 것들 가운데 핵심만 추린 것이기 때문이다. 

후대의 그리스도교인들은 대부분 이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이교도 신앙에 대한 로마교회의 은폐와 말살 작업이 철저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부들은 예수의 이야기와 이교도의 이야기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냈다. 이 유사성이 '악마의 모방' 탓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악마가 '예상에 의한 표절'을 했다고 비난했다. 이런 논리보다 온건한 것으로는 '앞서 울린 메아리' 론이 있다. 유사한 이교도의 신화가 예수의 도래를 예견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책의 저자인 티모시 크리프와 피터 갠디 두 사람은 이러한 유사성을 엄밀한 고증을 통해 찾아냈다. 그 결과 예수의 전기 가운데 이교도 신앙에 미리 나타나지 않은 주제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예수의 가르침조차도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이교도의 현자들이 이미 앞서 말한 것이라는 점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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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
임정 지음 / 넥스비전 미디어웍스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소설책을 읽었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가 아니라 작가 임정의 <빵과 장미>다. 근데 사서 읽은 건 아니다. 출판사에서 주소를 알려주면 그냥 준다고 쪽지가 왔길래 답장을 보냈고 며칠 후에 이 책을 소포로 받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는데, 아마도 출판사의 블로그 마케팅에 걸린 것 같다. 아무튼 지하철에서 짬짬이 재미있게 읽었다.

책날개의 작가 소개부터가 좀 유별나다. ‘유일신론자. 창조론자. 그러나 모든 교리와 창조과학회의 학설을 부정하는 회의론자.’ 언뜻 보면 모순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해가 가기도 한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예수는 기독교가 전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일단 탄생부터가 그렇다. 동정녀 마리아가 낳은 것이 아니라 로마군인의 성폭행으로 인한 사생아다. 예수가 본격적으로 뜻을 펼치기 전까지의 모습도 매우 현실적이며 인간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예수가 펼치고자 하는 뜻도 ‘신국(神國)’을 지상에 건설하는 것이지 종말과 천국을 읊조리며 형해화된 율법을 강조하고 권력에 빌붙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지리, 성서에 대한 이해 등 나름대로 탄탄한 역사적, 문헌적 지식에 기반하여 예수의 삶을 완전히 재구성했다. 예수를 신의 아들이 아니라 인간의 아들로, 그리고 혁명가로 새롭게 형상화한 점은 예수의 존재에 대한 내 생각과는 무관하게 비교적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지만, 그 나머지 설정들과 장치들은 왠지 모르게 어설프다는 느낌을 준다.

롱기누스의 창을 찾는 툴레단과 히틀러, OSS와 조선인 독립운동가, 일본 군부와 고위층을 상대로 한 조선인 영아 입양 작전, 미국 남부침례교연합과의 협상과 광복군 양성 등의 설정이 예수의 생애를 풀어나가는 것과 별개의 이야기로 전개되고 있는데, 이 두 흐름이 그리 매끄럽게 조화를 이룬다고 보긴 어렵다. 특히 마지막 장의 ‘한국 광복군 연표’는 깬다. 정말 군더더기다.

소설에서 해골 언덕을 향하는 예수는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예수의 입을 빌어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인 것 같다.

“신이시여, 당신의 피조물은 왜 이리 연약합니까? 왜 이리 어리석습니까? 저에게 무언가 이룰 수 있을 것처럼 해 보이시더니, 결국 저들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보여주시는 게 전부입니까? 그저 당신에게 빌기만 할 뿐, 아무것도 이루지 못 하는 저들을 어찌해야 합니까? 이제 누가 저들을 구원하겠습니까? 착취자들에게서 누가 저들을 깨우치겠습니까?”(4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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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크리스트 - 크리스트교에 대한 저주, 개정판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나경인 옮김 / 이너북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신약성경을 읽을 때 나는 항상 장갑을 낀다. 추잡스러워 만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107쪽)

크리스트교에 대한 이처럼 신랄한 저주의 언어가 또 있을까. 너무나 신랄하여 그것이 사실이었는지 단지 비유일 뿐인지조차 헷갈린다. 그러나 니체는 <안티크리스트>에서 단지 크리스트교를 제물로 삼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이전의 사상 모두를 받아들여 통합하고 이후의 사상적 전개에 토대와 방향을 제공한 책이자 니체 철학의 완성 단계를 보여주는 책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면, <안티크리스트>는 또 다른 방식으로 니체 사상의 핵심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도 차라투스트라가 단 한 번 등장을 하긴 한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진리’의 근거가 되지 못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하고 당연한 것을 지금까지 지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니 단 한 사람 있었다. 바로 차라투스트라였다.
“크리스트교는 자기가 걸어온 길에 핏자국을 남겼다. 머리가 나쁜 그들은 피로 진리가 증명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피는 진리에 대한 최악의 증인이다. 피는 가장 순수한 가르침을 더럽히고 망상이나 증오로 바꾸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가르침을 위해 불속에 뛰어든다 해도 그것으로 증명되는 것은 자신의 몸을 태움으로써 생겨나는 자기 자신의 가르침이지 진리는 아니다.””(129쪽)

그의 결론은 ‘맺음말 : 피고 크리스트교에 대한 최종 판결문’에 요약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생각하기를 주저할 만한 문제를 사랑하는 것. ‘그런 것을 생각하면 안 돼’라는 말을 들을 만한 생각을 하는 것. 이런 것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 혼자서 미로 속을 헤쳐나가는 것. 새로운 음악을 구별할 수 있는 귀를 갖는 것. 주변뿐 아니라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숨겨온 진정한 문제를 순수한 마음으로 마주하는 것. 나는 이런 것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8쪽)

니체는 이러한 힘들을 ‘의지의 힘’이라 부르고, 사람들이 이런 힘들을 갖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니체가 크리스트교를 저주하는 것은 그것이 크리스트교이기 때문이 아니라 크리스트교가 바로 이러한 힘들을 억압하고 분쇄해왔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니체주의자들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니체주의자'를 니체 추종주의자가 아니라 그가 이룩한 혁신을 발딛고 니체를 넘어서려는 사람으로 정의한다면, 우리 시대의 니체주의자들은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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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크리스트교에 대한 최종 판결문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안티크리스트>

 

 

이것으로 나는 결론에 이르렀으며 이제 판결을 내린다.

피고 크리스트교는 유죄이다.

나는 지금까지 고소인들이 입에 담았던 그 어떤 말보다도 더 혹독한 말로 크리스트교를 고발한다. 그 어떤 부패도 크리스트교만큼은 썩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트교는 주변의 모든 것을 썩게 한다.

모든 가치에서 무가치를, 모든 진리에서 거짓을, 모든 정직함에서 비겁한 마음을 만들어낸다.

그래도 아직 크리스트 교회의 '인도주의적'인 축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라.

크리스트 교회는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살아왔다.

그뿐 아니라 자신들의 조직을 영구화하기 위하여 불행을 만들어왔다.

이를테면 '죄악감'이 그것이다. '죄악감'을 만듦으로써 비로소 교회가 인간을 '풍요롭게' 할 수 있었다.

'신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말은 비천한 인간의 고통을 속이기 위한 구실이다.

혁명, 현대적 이념,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주문.

이러한 것들이 크리스트교의 다이너마이트였다.

흔히 '인도주의적' 축복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인간 속의 모순, 불결함, 거짓, 모든 본능에 대한 경멸을 만드는 것이 크리스트교 세계에서는 '축복'이 되기 때문이다.

크리스트교라는 기생충은 그 '신성'한 이성을 가지고 모든 피와 모든 사랑 그리고 삶에 대한 모든 희망을 빨아먹었다.

그들은 눈앞에 있는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저세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십자가는 일찍이 존재했던 것 중에서 가장 지하적인 반란의 상징이다.

이 정도로 규모가 큰 반란이 역사에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건강, 아름다움, 좋음, 용기, 정신, 훌륭한 영혼 그리고 삶 자체에 반란을 일으켰다.

십자가에 매달아서.

나는 크리스트교에 대한 이 영원한 고소문을 가는 곳마다 장소를 불문하고 걸어놓을 작정이다.

크리스트교는 저주다.

크리스트교는 퇴폐다. 해롭고 음험하며 지하적이고 거대한 복수의 본능이다.

크리스트교는 지워지지 않는 인류 최대의 오점이다.

그런데 달력은 왜 이런 비참한 일들이 시작된 불길한 날, 즉 크리스트교의 탄생일을 기점으로 삼고 있단 말인가. 왜 크리스트교의 최후의 날을 기점으로 삼지 않는단 말인가.

즉, 오늘을 기점으로, 모든 가치를 전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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