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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크리스트 - 크리스트교에 대한 저주, 개정판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나경인 옮김 / 이너북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신약성경을 읽을 때 나는 항상 장갑을 낀다. 추잡스러워 만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107쪽)
크리스트교에 대한 이처럼 신랄한 저주의 언어가 또 있을까. 너무나 신랄하여 그것이 사실이었는지 단지 비유일 뿐인지조차 헷갈린다. 그러나 니체는 <안티크리스트>에서 단지 크리스트교를 제물로 삼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이전의 사상 모두를 받아들여 통합하고 이후의 사상적 전개에 토대와 방향을 제공한 책이자 니체 철학의 완성 단계를 보여주는 책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면, <안티크리스트>는 또 다른 방식으로 니체 사상의 핵심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도 차라투스트라가 단 한 번 등장을 하긴 한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진리’의 근거가 되지 못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하고 당연한 것을 지금까지 지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니 단 한 사람 있었다. 바로 차라투스트라였다.
“크리스트교는 자기가 걸어온 길에 핏자국을 남겼다. 머리가 나쁜 그들은 피로 진리가 증명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피는 진리에 대한 최악의 증인이다. 피는 가장 순수한 가르침을 더럽히고 망상이나 증오로 바꾸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가르침을 위해 불속에 뛰어든다 해도 그것으로 증명되는 것은 자신의 몸을 태움으로써 생겨나는 자기 자신의 가르침이지 진리는 아니다.””(129쪽)
그의 결론은 ‘맺음말 : 피고 크리스트교에 대한 최종 판결문’에 요약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생각하기를 주저할 만한 문제를 사랑하는 것. ‘그런 것을 생각하면 안 돼’라는 말을 들을 만한 생각을 하는 것. 이런 것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 혼자서 미로 속을 헤쳐나가는 것. 새로운 음악을 구별할 수 있는 귀를 갖는 것. 주변뿐 아니라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숨겨온 진정한 문제를 순수한 마음으로 마주하는 것. 나는 이런 것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8쪽)
니체는 이러한 힘들을 ‘의지의 힘’이라 부르고, 사람들이 이런 힘들을 갖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니체가 크리스트교를 저주하는 것은 그것이 크리스트교이기 때문이 아니라 크리스트교가 바로 이러한 힘들을 억압하고 분쇄해왔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니체주의자들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니체주의자'를 니체 추종주의자가 아니라 그가 이룩한 혁신을 발딛고 니체를 넘어서려는 사람으로 정의한다면, 우리 시대의 니체주의자들은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