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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
임정 지음 / 넥스비전 미디어웍스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소설책을 읽었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가 아니라 작가 임정의 <빵과 장미>다. 근데 사서 읽은 건 아니다. 출판사에서 주소를 알려주면 그냥 준다고 쪽지가 왔길래 답장을 보냈고 며칠 후에 이 책을 소포로 받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는데, 아마도 출판사의 블로그 마케팅에 걸린 것 같다. 아무튼 지하철에서 짬짬이 재미있게 읽었다.
책날개의 작가 소개부터가 좀 유별나다. ‘유일신론자. 창조론자. 그러나 모든 교리와 창조과학회의 학설을 부정하는 회의론자.’ 언뜻 보면 모순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해가 가기도 한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예수는 기독교가 전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일단 탄생부터가 그렇다. 동정녀 마리아가 낳은 것이 아니라 로마군인의 성폭행으로 인한 사생아다. 예수가 본격적으로 뜻을 펼치기 전까지의 모습도 매우 현실적이며 인간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예수가 펼치고자 하는 뜻도 ‘신국(神國)’을 지상에 건설하는 것이지 종말과 천국을 읊조리며 형해화된 율법을 강조하고 권력에 빌붙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지리, 성서에 대한 이해 등 나름대로 탄탄한 역사적, 문헌적 지식에 기반하여 예수의 삶을 완전히 재구성했다. 예수를 신의 아들이 아니라 인간의 아들로, 그리고 혁명가로 새롭게 형상화한 점은 예수의 존재에 대한 내 생각과는 무관하게 비교적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지만, 그 나머지 설정들과 장치들은 왠지 모르게 어설프다는 느낌을 준다.
롱기누스의 창을 찾는 툴레단과 히틀러, OSS와 조선인 독립운동가, 일본 군부와 고위층을 상대로 한 조선인 영아 입양 작전, 미국 남부침례교연합과의 협상과 광복군 양성 등의 설정이 예수의 생애를 풀어나가는 것과 별개의 이야기로 전개되고 있는데, 이 두 흐름이 그리 매끄럽게 조화를 이룬다고 보긴 어렵다. 특히 마지막 장의 ‘한국 광복군 연표’는 깬다. 정말 군더더기다.
소설에서 해골 언덕을 향하는 예수는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예수의 입을 빌어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인 것 같다.
“신이시여, 당신의 피조물은 왜 이리 연약합니까? 왜 이리 어리석습니까? 저에게 무언가 이룰 수 있을 것처럼 해 보이시더니, 결국 저들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보여주시는 게 전부입니까? 그저 당신에게 빌기만 할 뿐, 아무것도 이루지 못 하는 저들을 어찌해야 합니까? 이제 누가 저들을 구원하겠습니까? 착취자들에게서 누가 저들을 깨우치겠습니까?”(4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