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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 그 높고 깊고 아득한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2023년 3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3/0419/pimg_7433951413827983.jpg)
혹시 맹목적인 경쟁을 통해 달콤하고 안락한 곳만을 쫓아, '사색'하고 '사랑'할 겨를도 없이, 내 발의 물집조차 굽어볼 틈도 없이 허위허위 달려가느라, 더 드높은 가치들을 모두 내다 버리지는 않았던가. 나의 영혼과 나의 사랑, 혹은 나의 눈물, 나의 목숨에 깃들어 있는 숨은 꿈같은 것들은 지금 어디에 버려져 있는가. p.13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범신 작가, 그는 <토끼와 잠수함> <흰 소가 끄는 수레> 등의 소설집, <죽음보다 깊은 잠> <불의 나라> <은교> 등의 장편소설,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힐링>등의 산문집 등 정말 많은 책을 출간하고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입니다.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낸 작가이자, 25편 이상이 드라마나 영화, 연극으로 제작되어 다양한 징르에까지 영향을 미친 작가이기도 합니다.
나의 지향은 이를테면 두근거리는 고요, 혹은 고요한 파동이겠다. 내 목숨이 애당초 거기에서 왔을 터, 지난날 나의 순례 또한 언제나 그를 쫓아 걷는 일이었을 것이다. '글쓴이의 말'중~
2023년 등단 50주년을 맞아 두 권의 산문집 <두근거리는 고요>와 <순례>를 동시에 출간했는데요. <순례>는 오래전 펴낸 <비우니 향기롭다>와 <카일라스 가는 길>을 줄이고 수정 보완한 글에 최근에 쓴 <산티아고 가는 길>과 <폐암일기>를 '순례'라는 주제로 합한 작품으로, 1장 '비우니 향기롭다'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사색 편지, 2장 '카일라스 가는 길' 영혼의 성소를 찾아서, 3장 '그 길에서 나는 세 번 울었다' 산티아고 순례, 4장 '새로운 순례길의 황홀한 초입에서' 폐암일기까지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특히 "히말라야를 혼자 걸으며 마주쳤던, 존재의 가없는 하찮음과 존재의 가혹한 무거움에 대한 상념들을 편지글로 써 모은" 1장 '비우니까 향기롭다'의 글들이 꿈오리의 마음에 깊이 스며들어 오래도록 되새겨질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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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내가 가진 모든 것, 이를테면 좋은 옷, 기민한 휴대전화, 요술 상자 텔레비전, 재빠른 자동차로부터 벗어나도 외롭지 않은 시간의 길로 들어갑니다. 느릿느릿, 걷겠습니다. p.27~28
티베트에선 "우리의 몸을 '뤼'라고 부르는데, '뤼'는 자루, 임시 거처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합니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그들의 소망,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요? 이왕이면 더 큰 아파트, 더 큰 텔레비전, 더 빠른 자동차가 있었으면,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지는 못할지라도 남들만큼은 가지려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나'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무언가에 집착하고 욕망하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요? 히말라야의 거대한 봉우리 앞에 서면 그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요? 경험하지 않았으니 알 순 없지만, 거대한 자연 앞에선 한낱 작은 미물에 불과하다는 건 절실하게 깨달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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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로소 눈물겹게 확인합니다. 불멸의 주인은 에베레스트가 아니라는 것을, 오르고 또 올라도 허공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모든 길은 허공에서 시작되고 갈라지고 끝난다는 것을요. 살아서 무엇을 이룬다고 할지라도 근원적으로 우리가 불멸의 환희에 도달할 수 없는 건 스스로 허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p.79
죽을 둥 살 둥 올라간 그곳에서 보는 건 "겨우 빙벽의 스카이라인 너머, 가없이 투명한 허공",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그 허공을 보자고 해발 5,545미터를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자, 정상에 올랐음에도 환호성은 솟아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경험하지 않았으니 그 감정을 다 헤아릴 순 없지만, 요즘의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으며,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엄마로서 '나'는 보이지도 않는 꼭대기에 오르려고 안간힘을 쓰는 애벌레들의 무리 속으로 우리 아이들을 떠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순간 뜨끔해집니다. 히말라야, 카일라스. 산티아고 순례, 폐암일기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직접 책을 통해 만나길 바랍니다!
꿈오리 한줄평 : 인생의 순례길에서 살아온 삶을 성찰하고 살아갈 삶을 통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