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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내 안의 우주 - 응급의학과 의사가 들려주는 의학교양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평점 :

위급한 순간 생명을 살리는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응급실, 응급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즉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과 보호자들, 그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건 혼란과 불안 그리고 긴박함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삶과 죽음을 마주하는 응급실 의사들은 어떨까요?
<몸, 내 안의 우주>는 부제 그대로 '응급의학과 의사가 들려주는 의학교양'서로 매일 마주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몸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마치 의학 소설처럼 시작하는 이야기는 인간의 몸에 대한 명쾌한 설명과 더불어 긴박한 응급실의 풍경을 그대로 전해줍니다.
의사와 환자와의 대화는 서로 다른 우주의 조우다. 각자의 입장은 분명히 다르고 지식 체계 또한 상이하다, 사람들에게 의사는 두렵고 의학은 난해하다. 나는 문득 환자라는 은하에만 앉아 있는 사람들을 우주 반대편으로 이끌고 싶었다. 의학이란 그리 복잡하지 않고 의사의 결정에는 몇 가지의 간단한 근거가 있으며 맥락만 익힌다면 이보다 흥미로운 세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p.9~10

이 책은 우리 몸의 파이프라인 '소화'기부터 생체조직으로 만들어진 반영구 모터 '심장', 한껏 열린 통풍로 속 산소 교환 '호흡', 대사 쓰레기의 깔대기 장치 '신장',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 37조 개 세포를 조절하는 일 '내분비',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면역', 최후의 순간까지, 제 기능을 유지하는 인체의 방어막 '피부', 우리 몸의 형태와 움직임을 만드는 바탕 '근골격', 인간 종을 유지시키는 비밀 '생식', 거대한 신경조직 뭉치가 지휘하는 인간다움의 기능 '중추신경', 신경을 타고 뇌까지 이동하는 감각들 '감각'까지 우리 몸 구석구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마지막으로 응급실의 한가운데에서 일어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합니다.

위는 풍선처럼 부풀어 있지 않고, 평소에는 압력으로 오므라들어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할일도 없는데 부풀어서 우리 속을 더부룩하게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위는 비어 있을 때 용량이 200cc쯤 되는 주머니인데, 음식물을 섭취하면 그 용량은 1500cc까지 늘어난다. p.29
혹시 먹방 유튜버를 보며 "저렇게 많이 먹는데 어떻게 마른 체형을 유지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 한번쯤 하지 않았나요.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내장지방이 많으면 위가 늘어날 공간이 작지만, 마른 사람이면 오히려 위가 더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위의 1차 업무는 저장과 분쇄, 2차 업무는 소독이다. 점막은 위산으로부터 위를 보호한다.
p.29
위는 의외로 영양분 흡수 기능이 거의 없으며, 위의 1차 업무는 저장과 분쇄라고 합니다. 위의 2차 업무는 소독인데, 이는 우리가 무엇이든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합니다. "위는 pH 1.5의 위산을 분비하며, 위산 원액은 음식물과 섞였을 때도 음식물을 소독할 수 있어야 하므로 시중에 판매되는 식초보다도 훨씬 더 강한(염산이나 빙초산과 가까운)산성을 띤다."고 합니다. 만약 위산이 없다면 "우리는 즉시 설사와 발열에 시달리다가 패혈증으로 절멸할 것"이라고 하니, 인간의 몸은 본디 병에 잘 걸리지 않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병에 걸리는 것은 어쩌면 끝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릅니다.

미각은 화학적 자극으로, 독성 물질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고 영양 섭취를 돕기 위해 뇌가 제공하는 감각이다. p.440
미각은 "생존과 직결된 감각"이라고 합니다. "미각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못 먹는 음식을 걸러내고 몸에 필요한 음식을 맛있게 먹게 하는 것"으로, 모든 맛은 이미 인체 DNA에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각은 정확한 감각"은 아니며, "후각을 동반하지 않은 미각은 더욱 부정확하다."고 합니다. 코를 막고 콜라와 사이다를 마시면 둘을 구분하기 어려우며, 사과와 양파 감자도 구분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입과 코가 가까운 이유도 냄새를 확인하면서 먹기 위함이라니, 정말 인체의 신비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중략) 하지만 우리의 '죽음'이 확정되는 찰나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다. (중략) 죽음의 순간, 의사는 관례대로 사망 선고를 내린다. 죽음의 판정은 지극히 '임상적으로' 이루어진다. 삶에서 죽음으로 '비가역적으로' 넘어갔다고 임상의가 판정한 시점이 사망 시각이다. p.491
심장이 멈추면 죽은 것일까요? 임상의의 판정은 '비가역성'에 중점을 둔다고 합니다. 심장이 다시는 자발적으로 뛰지 않을 상황이라면 죽음이라고 합니다. 심폐소생술의 개발로 외부의 힘으로 심장을 뛰게 할 수도 있게 되었으므로, "심장이 비가역적인 손상으로 심정지에서 회복될 수 없어야만 죽음이 선고된다."고 합니다.
뇌사 상태라면 죽은 것일까요? "뇌사 단계의 인간은 숨을 쉬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채 다만 인공호흡기로 연명"할 수 있습니다. "자발 호흡은 멈췄지만 폐와 연결된 인공호흡기로 산소를 지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인데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뇌사는 경우에 따라 사망으로 보기도 한답니다. 이는 "뇌가 영원히 기능하지 않으면 사람은 고유함을 잃어버리고 희로애락조차 느낄 수 없는 상태이므로 타인을 위해 목숨을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반하는 것으로 일종의 사회적 합의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장기 기증으로 "다른 생명을 살리고" 있는 것이니, 그건 완벽한 죽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만약 가까운 이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사망해도 DNA는 영구히 보존될 수 있으며 보존된 DNA로 인간 복제도 가능하다는데, 만약 선택의 기회를 준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몸, 내 안의 우주>는 부제 그대로 '응급의학과 의사가 들려주는 의학교양'서로 매일 마주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몸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마치 의학 소설처럼 시작하는 이야기는 인간의 몸에 대한 명쾌한 설명과 더불어 긴박한 응급실의 풍경을 그대로 전해줍니다. 그리고 나날이 발전하는 의학 기술과 과학 기술 앞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꿈오리 한줄평 : 의학에 대해 1도 몰라도 빠져들어 읽게 되는 의학교양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