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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사회 -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10주년 기념 개정판
카롤린 엠케 지음, 정지인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3월
평점 :

현재 우리사회엔 세대 갈등, 젠더 갈등,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 그리고 지역 갈등 등등 다양한 갈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상대 집단 자체를 부정하거나 공격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생긴 불만이 특정 집단으로 향하고, 정치적인 프레임에 의해 갈등이 조장되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이 SNS나 커뮤니티 등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나 차별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특정 국가나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의 시선은 '우리'와 '그들'로 구분하며, '우리'를 지키기 위해 '그들'을 배격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과연 '나'는 편견과 혐오의 시선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가 개정판 서문에 예로 든 트럼프의 등장이나 푸틴의 전쟁, 코로나19 팬데믹 등등이 아니라도 '혐오'를 부추기는 원인과 현상은 우리의 일상에서 이미 넘쳐난 지 오래다. 당연하게도 혐오는 민주주의와 인본주의의 적이다. 지난 10년간, 아니 그 이전의 10년과 앞으로 올 10년 동안에도 세상은 희한하게도 더 나빠졌고 더 나빠질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가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결국 또다시 '민주주의와 인본주의'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의 서문에서 그 단어들을 보며, 나는 이번엔 뜸들이지 않고 동의한다. - 손석희
'추천의 글' 중~
<혐오사회>는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카롤린 엠케가 현대 사회에 퍼져 있는 혐오의 본질을 날카롭게 분석한 책으로 흑인, 이주민, 성소수자,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공공연한 혐오와 증오범죄의 메커니즘을 분석하며, 일상에 뿌리 깊이 박힌 혐오를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확산되는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특정집단을 향한 막연한 두려움은 실제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디어나 사회적 분위기에서 학습된 것일 수도 있으며,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특정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아 차별과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혐오사회_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는 특정국나나 특정 지역을 향한 혐오의 시선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며, 편견과 혐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듭니다. 2016년 출간 즉시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14개국에 번역된 현시대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혐오사회>, 특히 10주년 기념 개정판은 한국의 정치적 위기와 트럼프의 이민자 탄압, 푸틴의 전쟁 등등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야만적 행태를 혐오의 메커니즘으로 파헤친 특별 서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날 버스에 탄 난민들은 한편으로 개개인으로서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보편적인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각자 특유한 개인사와 경험, 특징을 지닌 인간 존재임을 부정당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타자로, '우리가 아닌 자들'로 규정됨으로써 보이는 존재가 되었다. 섬뜩하고 혐오스럽고 위험한 집단이라고 낙인찍을 수 있는 특징들이 그들에게 투사된 것이다. p.70
2016년 독일 클라우스니츠에서 반 난민 시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난민들이 탄 버스가 임시 난민 수용소로 이동하던 중, 주민들과 극우 성향 시위대가 몰려와 난민들이 탄 버스를 둘러싸고 진입을 막았습니다. 시위대는 버스를 둘러싸고 "우리가 국민이다.", "너희는 외국인이다.", "너희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시위대에게 버스에 탄 난민들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 같은 존재로 여겨졌으며, 범죄를 저지를 소지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일부 참가자들은 위협적인 행동을 보이며 난민들을 조롱하거나 공격적 태도를 보였고, 버스에 있던 난민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무슬림은 테러리스트나 미개한 '야만인'으로만 혐오스럽게 묘사하는 토론 포럼이나 출판물의 심각한 문제는 이주자들의 다른 면모를 상상하는 일 자체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시위대가 아닌 난민을 제압하면서 비판을 받았고, 그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 또한 그저 구경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혐오는 극단주의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정한 조건에선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외국인에 대한 혐오가 불러일으킨 불안과 분노, 그로 인한 적대적 행동,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은 이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흑인이 몸을 떠는 것은 언제나 분노의 표현이라고 해석하는 사회, 백인 아이(와 성인)가 흑인은 항상 기피하거나 두려워해야 마땅한 존재로 바라보도록 교육받는 사회에서 에릭 가너는 (또는 마이클 브라운이든 샌드라 블랜드든 타미르 라이스든 백인 경찰의 폭력에 희생된 다른 누구라도) 아무런 위험을 초래하지 않더라도 늘 위협적인 존재로 보인다. 몇 세대에 걸쳐 이런 시선을 학습하고 나면 굳이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때도 아무 거리낌 없이 흑인의 몸을 학대할 수 있게 된다. 두려움은 이미 오래 전에 경찰이라는 기관이 자기 이미지에 각인되었다. 모든 흑인의 육체를 뭔가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으로 인지하는 인종주의적 틀에 따라 백인 경찰들은 그러한 상상적 위험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라 여긴다. p.115~116
2014년 7월, 환한 대낮 미용실 앞에서 경찰에게 죽임을 당한 에릭 가너, 그에겐 어떤 무기도 없었으며, 경찰을 공격하지도 않았으며, 달아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경찰들이 왜 자신을 검문하고 죄인 취급을 하며 괴롭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클라우스니츠의 구경꾼들처럼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했습니다. 그들 또한 피부색이 희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똑같은 일을 당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에릭 가너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며, 에릭 가너의 주장을 뒷받침했지만, 경찰들은 에릭 가너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에릭 가너의 목에 초크를 걸어 바닥에 쓰러뜨린 경찰은 온몸의 힘을 실어 에릭 가너의 머리를 내리눌렀습니다. 천식 환자였던 에릭 가너는 숨을 쉴 수 없다며 무려 열한 번에 걸쳐 가쁜 숨으로 "I can't breathe."라고 호소했음에도 말이죠. 그 후 에릭 가너는 의식을 잃을 채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지만, 그 어떤 경찰도 에릭 가너를 소생시키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에릭 가너는 병원 이송 도중 심부전으로 사망했습니다. 카롤인 엠케는 말합니다. "흑인을 항상 기피하거나 두려워해야 마땅한 존재로 바라보도록 교육받는 사회에서 에릭 가너는 아무런 위험을 초래하지 않더라도 늘 위협적인 존재로 보이며, 몇 세대에 걸쳐 이런 시선을 학습하고 나면, 굳이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때도, 아무 거리낌 없이 흑인의 몸을 학대할 수 있게 된다."고 말이죠.
<혐오사회>는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카롤린 엠케가 현대 사회에 퍼져 있는 혐오의 본질을 날카롭게 분석한 책으로 흑인, 이주민, 성소수자,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공공연한 혐오와 증오범죄의 메커니즘을 분석하며, 일상에 뿌리 깊이 박힌 혐오를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확산되는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특정집단을 향한 막연한 두려움은 실제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디어나 사회적 분위기에서 학습된 것일 수도 있으며,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특정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아 차별과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혐오사회_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는 특정국나나 특정 지역을 향한 혐오의 시선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며, 편견과 혐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듭니다.
꿈오리 한줄평 : '나'는 편견과 혐오의 시선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