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별이다 - 나태주 대표 시선집
나태주 지음 / 더블북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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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무심히 지나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면, 평범하게 여겼던 하루에도 소중한 것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늘 곁에 있어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사랑, 계절마다 달라지는 아름다운 풍경, 익숙하게 사용하던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을 채우고 있다는 것을요. 그제야 평범했던 하루가 얼마나 아름답고 감사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p.74

 

'풀꽃'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나태주 시인의 <너는 별이다>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시선집입니다. 시인은 141편의 시를 통해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작게 여기기보다, 평범하고 서툰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빛나는 존재임을 일깨우고, 자신의 빛을 잃지 말라며 따뜻한 응원을 보냅니다. 해외에서 한글을 배우며 그의 시를 읽는 젊은 독자들과의 만남에서 출발한 이 시집에는, 그들에게 자신의 시를 한글로 선물하고 싶었던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꽃 한 송이, 익숙한 풍경, 가까운 사람처럼 쉽게 지나치는 것들에 마음을 기울이고,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아끼는 사랑을 이야기하며, 이별과 그리움, 삶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마음을 전합니다.

 

 

완성

 

집에 밥이 있어도 나는

아내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 사람

 

내가 데려다주지 않으면 아내는

서울 딸네 집에도 가지 못하는 사람

 

우리는 이렇게 함께 살면서

반편이 인간으로 완성되고 말았다.

p.27

 

어쩌면 혼자일 때도 충분히 잘 살아가던 두 사람, 어느새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며 완전해지는 존재가 된 두 사람, 이 시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가 되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밥이 있어도 아내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 사람"에서 흔히 말하는 "삼식이"를 떠올렸다면, 그와 다른 의미라는 것에서 슬쩍 미소가 지어질지도 모릅니다. 밥을 차려주는 아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오며 서로에게 너무나 익숙해진 부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는 일도, 어디를 가는 일도 자연스럽게 함께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어느새 서로가 서로의 삶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부부가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오면서 서로에게 얼마나 깊이 의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 시는 언젠가 더 나이가 들어 다시 읽게 된다면, 오래 함께한 사람의 소중함과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것을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인생 1

 

화창한 날씨만 믿고

가벼운 옷차림과 신발로 길을 나섰지요

향기로운 바람 지저귀는 새소리 따라

오솔길을 걸었지요

멀리 갔다가 돌아오는 길

막판에 그만 소낙비를 만났지 뭡니까

하지만 나는 소낙비를 나무라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어요

날씨 탓을 하며 날씨한테 속았노라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

좋았노라 그마저도 아름다운 하루였노라

말하고 싶어요

소낙비 함께 옷과 신발에 묻어온

숲 속의 바람과 새소리

그것도 소중한 나의 하루

나의 인생이었으니까요.

p.70

 

화창한 날을 기대하고 길을 나섰다가 갑자기 소낙비를 만났지만, 그 비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 비를 맞은 옷과 신발에 숲의 바람과 새소리까지 함께 묻어온 소중한 나의 하루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어쩌면 그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살다보면 계획대로 흘러가는 날도 있지만, 갑작스러운 비처럼 예상하지 못한 일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그 일을 탓하고, 좋았던 하루가 망가졌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지나고 나면 그 비마저도 그날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좋았던 날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비를 맞았던 날까지도 돌아보면 소중한 나의 하루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행복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바람을 느끼고 새소리를 듣고, 비를 맞으며 걸었던 평범한 하루였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그것도 소중한 나의 하루 나의 인생이었으니까요"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평범한 하루의 모든 순간이 나의 삶이라는 위로처럼 느껴집니다.

 

 

오직 너는

 

많은 사람 아니다

많은 사람 가운데

오직 너는 한 사람

우주 가운데서도

빛나는 하나의 별

꽃밭 가운데서도

하나뿐인 너의 꽃

너 자신을 살아라

너 자신을 빛내라.

p.183

 

자세히 보고 오래 바라볼 때 비로소 발견되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풀꽃>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오직 너는>, 이 시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 오직 하나뿐인 '' 자신이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일깨워줍니다. 누구보다 더 잘나서 특별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 가운데 오직 하나뿐인 ''이기 때문에 소중하다는 것이지요. 살다보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으려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남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지 말고, 내가 가진 모습 그대로 나만의 삶을 살아가라는 응원,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어도 ''를 대신할 사람은 없다는 것, 그러니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답게' 살아가라는 격려를 보내는 듯합니다.

 

 

아끼지 마세요

 

좋은 것 아끼지 마세요

옷장 속에 들어 있는 새로운 옷 예쁜 옷

잔칫날 간다고 결혼식장 간다고

아끼지 마세요

그러다 그러다가 철지나면 헌옷 되지요

 

마음 또한 아끼지 마세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사랑스런 마음 그리운 마음

정말로 좋은 사람 생기면 준다고

아끼지 마세요

그러다 그러다가 마음의 물기 마르면 노인이 되지요

 

좋은 옷 있으면 생각날 때 입고

좋은 음식 있으면 먹고 싶을 때 먹고

좋은 음악 있으면 듣고 싶을 때 들으세요

더구나 좋은 사람 있으면

마음속에 숨겨두지 말고

마음껏 좋아하고 마음껏 그리워하세요

 

그리하여 때로는 얼굴 붉힐 일

눈물 글썽일 일 있다한들

그게 무슨 대수겠어요!

지금도 그대 앞에 꽃이 있고

좋은 사람이 있지 않나요

그 꽃을 마음껏 좋아하고

그 사람을 마음껏 그리워하세요.

p.196~197

 

혹시 더 좋은 날을 기다리며 아껴둔 것들이, 오늘의 행복을 대신하고 있지는 않나요? 시인은 옷이나 음식처럼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사랑과 그리움 같은 마음까지도 때를 기다리며 간직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마음의 물기 마르면 노인이 된다"는 말은 시간이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그러니 시인의 말처럼 "좋은 것은 아껴두지 말고, 지금 마음껏 사랑"하며 살아야겠지요. 우리가 기다리던 특별한 날은 어쩌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바로 오늘이 아닐까요?

 

나태주 시인의 <너는 별이다>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시선집입니다. 시인은 141편의 시를 통해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작게 여기기보다, 평범하고 서툰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빛나는 존재임을 일깨우고, 자신의 빛을 잃지 말라며 따뜻한 응원을 보냅니다. 해외에서 한글을 배우며 그의 시를 읽는 젊은 독자들과의 만남에서 출발한 이 시집에는, 그들에게 자신의 시를 한글로 선물하고 싶었던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꽃 한 송이, 익숙한 풍경, 가까운 사람처럼 쉽게 지나치는 것들에 마음을 기울이고,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아끼는 사랑을 이야기하며, 이별과 그리움, 삶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마음을 전합니다.

 

꿈오리 한줄평 :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하는 삶의 아름다움 그리고 나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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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부시마니쿠스 - 문명 바깥의 슬기로운 사람들
정해종 지음 / 파람북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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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막에서 콜라병을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우리에게는 흔하고 익숙한 콜라병이지만, 부시먼에게는 낯선 문명의 물건이었을 것입니다. 이 장면은 문명이 가져온 편리함과 풍요가 과연 모든 사람에게 같은 의미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문명의 발전과 함께 더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하며, 더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좋은 삶의 기준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풍요로워진 만큼 우리의 삶도 더 행복해졌을까요? 오히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호모 부시마니쿠스>'문명 바깥의 슬기로운 사람들'이라는 부제 그대로 칼라하리의 부시먼을 단순히 '문명 이전의 원시적인 사람들'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들이 오랜 세월 자연과 함께 살아오며 쌓아온 지혜와 생활방식을 통해, 문명사회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자연과 관계 맺는 감각, 충분함을 아는 지혜, 함께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돌아보며 인간다운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부시먼의 수렵과 채집, 자연을 이해하는 지식, 공동체의 질서와 평화를 지키는 방식 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많이 소유하는 것이 반드시 풍요로운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서로 나누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경쟁과 소유를 중시하는 현대인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또한 신화와 죽음에 대한 태도, 암각화와 예술 등을 통해 부시먼의 세상과 삶을 바라보고 표현해 온 방식도 보여줍니다. 낯설게 느껴지는 부시먼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온 문명과 삶의 방식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가 번듯한 집 한 채를 소유하기 위해 수십 년짜리 대출의 사슬을 목에 걸고, 그 무게를 감당하려 원치 않는 노동에 매이며, 그 자리를 지키려 생의 눈부신 시간들을 분 단위로 쪼개어 팔 때, 그들에게 집을 잃을까 밤잠을 설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의 '없음'을 우리식으로 번역하면, '채무 없는 삶'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p.44

 

부시먼의 삶에는 냉장고, TV, 선풍기, 아니 전기 자체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것처럼 느껴지는 물건들이지만, 자연의 리듬을 따라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서는 오히려 낯선 것들일 뿐입니다.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 않는 삶은 불편해 보이지만, '없음'은 그들에게 가벼움과 자유를 줍니다. 소유해야 할 것이 적기에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자연의 작은 변화에도 귀 기울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풍요는 많이 가지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소유에 얽매이지 않으며, 적게 가지고도 삶의 즐거움과 만족을 누릴 줄 아는 것이 진정한 풍요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풍요로운 삶이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가진 것에 만족하며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느냐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풍요를 더 많이 갖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더 큰 집, 더 좋은 자동차, 더 많은 물건을 가지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고 소비합니다.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부족하다고 느끼고, 더 편리하고 더 나은 것을 찾아 계속 무언가를 채워갑니다. 어쩌면 우리는 많은 것을 가진 대신, 가진 것에 만족하는 법과 충분함을 느끼는 마음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부시먼의 삶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보다 '지금 가진 것으로 얼마나 충분히 살아가는가'를 돌아보게 합니다.

 

 


부시먼과 동물의 관계는 우리에게 한 가지 오래된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동물을 무엇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이용해야 할 자원인가, 보호해야 할 대상인가, 아니면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또 하나의 생명인가. 부시먼에게 동물은 삶을 이어가게 해주는 사냥감인 동시에, 자연의 질서를 가르쳐주는 스승이었고 자신의 위치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p.102

 

부시먼에게 동물은 단순히 먹기 위해 잡는 사냥감이 아니었습니다. 살아가기 위해 의지해야 하는 존재인 동시에 자연의 질서와 삶의 이치를 가르쳐주는 스승이었고,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거울이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동물을 사냥하면서도 자신이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그 안에 속한 존재임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시먼의 삶은 자연과 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도 돌아보게 만듭니다. 우리는 동물을 식량이나 상품으로 소비하기도 하고, 반대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만큼 인간의 필요와 기준으로 자연과 동물을 판단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편리함과 풍요를 누리는 과정에서 자연을 얼마나 이용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두었을 뿐,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부시먼의 삶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자연을 정복하고 더 많이 얻는 것이 발전이라고 믿어온 우리에게,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자연의 목소리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아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이제 생각을 조금 비틀어 보면 어떨까. '원시(原始)'라는 단어를 글자의 위치를 바꾸어 '시원(始原)'으로 읽는 것. 그렇게 글자의 순서가 바뀌는 순간, 그 의미는 뒤처진 야만의 상태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영성이 시작된 '기원'으로 장엄하게 복원된다. 그것이 본래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게 읽을 때, 부시먼의 삶은 더 이상 문명 이전의 미성숙한 단계에 머물지 않는다. p.210

 

혹시 '원시'라는 말을 들으면, 문명에 뒤처진 상태나 아직 발전하지 못한 삶을 떠올리는 건 아닌가요? 하지만 부시먼의 삶은 그 익숙한 생각에 질문을 던집니다. '원시'를 단순히 문명에 뒤처진 상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시작된 곳이라는 의미에서 바라보면 부시먼의 삶은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우리는 문명이 발전하면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편리함과 풍요를 얻는 과정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감각, 서로 나누고 의지하는 마음처럼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부시먼의 삶을 바라보는 일은 과거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문명의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는 부시먼의 삶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그들의 삶을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필요한 만큼만 가지려는 마음, 서로 나누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방식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빠르고 편리하게 살아가는 것만이 좋은 삶의 기준은 아닐 것입니다. 문명이 주는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무엇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생각하고, 가진 것을 채우는 데만 집중하기보다 지금 가진 것의 가치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생각하고,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애쓰기보다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많이 가지는 것보다 충분함을 알고, 혼자 앞서가는 것보다 함께 살아가며, 자연과 사람을 존중하는 삶, 그것이 문명사회에서 우리가 부시먼의 삶을 통해 다시 배워야 할 인간다운 삶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호모 부시마니쿠스>'문명 바깥의 슬기로운 사람들'이라는 부제 그대로 칼라하리의 부시먼을 단순히 '문명 이전의 원시적인 사람들'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들이 오랜 세월 자연과 함께 살아오며 쌓아온 지혜와 생활방식을 통해, 문명사회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자연과 관계 맺는 감각, 충분함을 아는 지혜, 함께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돌아보며 인간다운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부시먼의 수렵과 채집, 자연을 이해하는 지식, 공동체의 질서와 평화를 지키는 방식 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많이 소유하는 것이 반드시 풍요로운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서로 나누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경쟁과 소유를 중시하는 현대인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또한 신화와 죽음에 대한 태도, 암각화와 예술 등을 통해 부시먼의 세상과 삶을 바라보고 표현해 온 방식도 보여줍니다. 낯설게 느껴지는 부시먼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온 문명과 삶의 방식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꿈오리 한줄평 : 부시먼의 삶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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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분의 삶 -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에게
나태주.김정민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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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성공한 삶을 사는 것일까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도 모른 채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따라가기만 하면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잘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특별한 무언가가 되는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남과 비교하며 내 삶을 가늠하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온전히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참되게 잘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요?

 

<일인분의 삶>은 나태주 시인과 김정민 대표의 문답으로 구성된 인터뷰 산문집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다정한 질문을 건넵니다. 여기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가 드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기대와 세상의 기준에서 조금씩 벗어나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이 책은 남들보다 더 많이 이루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는 방법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나에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방식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잘 살아간다는 것'은 남보다 앞서가는 삶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일인분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나답게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일인분의 삶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결국은 제 몫을 해내는 삶입니다. 자기 인생의 길을 스스로 선택해야겠죠. 남들이 가는 길을 똑같이 좇아가는 건 자기 삶이 아니에요. (중략)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관대함을 가지고 스스로를 용서할 줄 알아야 해요.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실수하고, 그 실수들이 쌓여서 사람이 됩니다. (중략) 그 실수마저 '그것도 나였다'고 껴안아 줄 때 비로소 일인분의 삶이 시작됩니다. p.40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남들이 선택한 길을 따라가기도 합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결혼과 같은 삶의 기준을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것처럼 받아들이면서,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살아가기도 하지요.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선택을 스스로 고민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부끄러워하고 계속 후회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실수와 후회 또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말이죠.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가면서 생긴 실수와 후회까지도 감당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온전히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일일분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완벽한 삶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과 그 과정에서 생긴 실수와 과거의 모습까지도 받아들이며 온전히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행복해지는 것도, 자존감을 높이는 것도 일종의 '학습'입니다. 저절로 생겨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소중한 것을 발견하는 눈을 기르고 나를 귀하게 대하는 법을 끊임없이 공부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자존감은 남이 세워주는 게 아닙니다. 작은 일상을 정성스럽게 돌보는 학습의 과정에서 비로소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p.96

 

행복이나 자존감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일까요? 시인의 말처럼 "나를 귀하게 대하는 법을 공부"하며 스스로 노력하고 배우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거창한 변화가 아닌, 작은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귀하게 대하는 습관을 꾸준히 쌓아가는 것, 그렇게 스스로를 존중하고 돌보는 과정에서 행복과 자존감은 비로소 단단해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때로는 실패하거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에도 나를 돌보고 일으켜 세우는 것 역시 자존감을 키워가는 공부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존감이란 내가 잘하고 있을 때만 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고 흔들리는 순간의 ''까지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아닐까요?

 

피천득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상대방을 나에게 과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라." 상대방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기면 불만이 생기고 화가 납니다. 하지만 과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져요. p.235

 

가까운 사람일수록 익숙함 때문에 상대가 해주는 것보다 부족한 점을 먼저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해주기를 기대하고,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불만과 서운함으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시인은 상대방을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하거나 부족한 점만 바라보기보다, 감사와 존중의 마음으로 바라보라고 합니다. "나에게 과분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 상대의 장점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되고, 관계에서도 조금 더 여유와 감사가 생길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상대방을 바꾸려 하기보다 내가 상대를 바라보는 마음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 관계를 편안하게 만드는 방법이며, 상대의 부족함을 탓하기보다 그 사람의 소중함을 발견하려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인분의 삶>은 나태주 시인과 김정민 대표의 문답으로 구성된 인터뷰 산문집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다정한 질문을 건넵니다. 여기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가 드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기대와 세상의 기준에서 조금씩 벗어나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이 책은 남들보다 더 많이 이루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는 방법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나에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방식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잘 살아간다는 것'은 남보다 앞서가는 삶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일인분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나답게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꿈오리 한줄평 :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에게, 타인의 삶이 아닌 나의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건네는 다정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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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나의 유령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이선화.이선영 옮김 / 파람북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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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타냥과 삼총사들의 우정과 모험을 그린 역사 모험소설 <삼총사>, 억울하게 투옥된 에드몽 당테스가 탈출 후 막대한 부와 새로운 신분을 얻어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대표작입니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모험과 사랑, 복수와 음모를 흥미롭게 풀어낸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우정과 용기, 복수와 정의를 다루던 그의 작품 세계는 <천하나의 유령>에 이르러 초자연적 현상을 통해 인간의 죄와 기억, 죽음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공포와 환상의 영역으로 확장됩니다.

 

<천하나의 유령>19세기 중반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인간의 이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초자연적 현상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환상소설입니다. '육체가 죽은 뒤에도 인간의 의식은 지속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를 불러내는 액자식 구조로 전개되는데요. 뒤마가 기이한 사건을 계기로 여러 인물들과 함께 모여 밤새도록 괴이한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가운데 일곱 편의 유령담과 괴담이 연쇄적으로 펼쳐집니다. 작품 속 유령은 인간이 저지른 폭력과 죄,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과 비극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기억과 환영의 형태로 되돌아오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를 통해 초자연적 현상은 단순히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의문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의 폭력과 죄의 흔적, 그리고 인간의 기억에 대한 문제로까지 확장됩니다.

 

창백한 얼굴, 곤두선 머리카락, 눈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눈, 헝클어진 옷, 피로 물든 두 손. 남자는 내 존재를 알아채지도 못한 채 그대로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시선은 고정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초점을 잃은 듯했다. 무척 가파른 경사면을 굴러 내려오는 몸뚱이처럼 그의 걸음은 제어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내닫고 있었지만, 쉰 듯한 거친 숨소리는 피로보다 공포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p.22

 

이야기는 뒤마가 퐁트네오로즈 마을 근처에서 사냥하던 중 접하게 된 참혹한 살인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한 남자가 마을 시장을 찾아와 범행을 자백한 후 감옥에 가기를 원합니다. 그가 두려움에 떨며 살해 현장에 돌아가기를 거부한 이유는 끔찍했습니다. 자신이 아내의 목을 베어낸 순간, 바닥에 떨어진 머리가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이 기이하고 잔혹한 참수 사건을 계기로 판사, 의사, 사제 등 여러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과연 신체와 분리된 머리에 의식이나 생명이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설명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자신이 직접 겪었거나 전해들은 기이하고 서늘한 이야기들로 이어집니다.

 

<솔랑주><알베르>는 프랑스 대혁명과 공포정치의 시대를 배경으로 처형과 죽음 이후의 의식을 둘러싼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혁명의 혼란 속에서 알베르는 솔랑주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비극적인 운명에 휘말리게 됩니다. 혁명의 광기가 거세지면서 솔랑주는 체포되어 처형되지만, 알베르는 그녀가 처형된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한편 알베르는 이전부터 처형 이후에도 의식이 얼마 동안 지속될 수 있는지를 밝히기 위한 실험을 해왔습니다. 그는 처형된 이들의 시신과 잘린 머리를 대상으로 죽음 이후의 반응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묘지의 작은 예배당에서 실험을 이어가던 알베르는 자루 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자루에서 꺼낸 것은 놀랍게도 솔랑주의 잘린 머리였습니다. 알베르가 그녀의 이름을 세 번 부르자, 솔랑주의 눈이 다시 열려 그를 바라보고 두 줄기의 눈물을 흘린 뒤 다시 감깁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믿었던 순간, 죽은 자의 눈이 다시 열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이 기이한 장면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묻습니다. 동시에 육체가 죽은 뒤에도 의식이나 감정이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섬뜩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뒤흔듭니다.

 

프랑스 혁명기 단두대에서 처형된 샤를로트 코르데의 머리에 의식이 남아 있었다는 기이한 이야기 <샤를로트 코르데의 따귀>, 죽은 범죄자가 고양이와 집행관, 해골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 판사를 괴롭히는 <고양이 집행관 그리고 해골>, 프랑스 혁명 당시 생드니 왕실 묘지가 훼손되면서 벌어진 초자연적 사건을 다룬 <생드니의 무덤들>, 사형당한 도적 라르티파유와 그의 영혼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죽은 자의 영혼과 사후 세계를 보여주는 <라르티파유>, 영혼과 환생, 기억의 문제를 다룬 <머리카락 팔찌>, 그리고 카르파티아 산맥을 배경으로 두 형제와 헤드비주의 비극적인 사랑과 흡혈귀의 저주를 그린 <카르파티아 산맥>부터 <혼쿠 수도원>까지, 15장에 걸쳐 일곱 편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여기서 마지막 네 장은 각각 독립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로 이어지며, 각각의 괴담은 죽음과 영혼, 원한과 사랑이라는 서로 다른 소재를 통해 죽음 이후에도 인간의 기억과 욕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공통된 주제를 보여줍니다.

 

<천하나의 유령>19세기 중반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인간의 이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초자연적 현상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환상소설입니다. '육체가 죽은 뒤에도 인간의 의식은 지속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를 불러내는 액자식 구조로 전개되는데요. 뒤마가 기이한 사건을 계기로 여러 인물들과 함께 모여 밤새도록 괴이한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가운데 일곱 편의 유령담과 괴담이 연쇄적으로 펼쳐집니다. 작품 속 유령은 인간이 저지른 폭력과 죄,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과 비극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기억과 환영의 형태로 되돌아오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를 통해 초자연적 현상은 단순히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의문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의 폭력과 죄의 흔적, 그리고 인간의 기억에 대한 문제로까지 확장됩니다.

 

한줄평 : 삶과 죽음의 경계를 뒤흔드는 환상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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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요정 모아의 모험
심보영 지음 / 창비교육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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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집은 단순히 비바람을 피하고 잠을 자는 물리적인 건축물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집은 가장 ''다운 모습으로 온전히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이자 누군가와 함께 웃고 울며, 소중한 순간을 겹겹이 쌓아가는 기억의 저장소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에서 보듯,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이유도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나만의 공간과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소중한 존재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내가 살던 집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면 어떨까요? 그건 단순히 살 곳을 옮기는 것만이 아니라, 그곳에 쌓인 추억을 뒤로 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집요정 모아의 모험>은 오래된 집에서 살아가는 집요정 모아의 이야기입니다. 모아에게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추억을 쌓고 마음을 나누는 특별한 곳입니다. 하지만 개발로 사촌 툴툴이의 집이 사라지고, 모아가 살던 집에도 변화가 찾아오면서 모아는 툴툴이 그리고 고양이 호랑과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납니다. 세 친구는 요정들이 산다는 남쪽 나라로 떠나는 여정을 통해 이별의 아픔과 새로운 만남을 경험하고 성장해 갑니다. 모아와 친구들의 이야기는 소중한 존재들과 추억을 쌓고 따스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이라는 공간이 지닌 의미를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폐가나 흉가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요? 사람이 더 이상 살지 않는 집을 뜻하지요. 사람들이 떠나면 집요정도 떠나고, 집요정이 떠나면 집은 온기를 잃고 무너져 버려요. 집요정들은 사람들이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린 것들로 살아가요. 사람이 없다면 잊을 것도, 잃을 것도 더 이상 없으니까 집을 떠날 수밖에 없는 거예요. p.12

 

옛날부터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집요정들, 혼자 사는 할머니의 집 작은 붙박이장 안에 놓인 뻐꾸기시계에 사는 모아도 그런 집요정 중 하나입니다. 무서운 괴물 고양이 '호랑'이 있긴 하지만, 이 집 아이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뻐꾸기시계에서 살아가며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아네 집에 사촌 툴툴이가 찾아옵니다. 툴툴이가 살던 근사한 한옥집이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왜 오래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새로운 것으로 바꾸려 하는 걸까요? 멀쩡한 집마저 낡았다는 이유로 없애 버리는 모습을 보니, 정말 안타깝고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나기 마련이야. 끝에 다다랐을 땐 또 다른 시작이 있어.

p.131

 

얼마 후, 모아네 집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모아와 툴툴이는 요정들이 산다는 따뜻한 남쪽 나라 보일락말락을 찾아 집을 떠날 채비를 합니다. 집을 잃은 요정들을 초대한다는 털보영감의 편지엔 이 집 다락방으로 오라고 씌어 있는데, 다락방으로 가려면 할머니 방을 지나야 했습니다. 할머니 방에는 할머니 덕분에 길고양이 신세를 벗어난 무서운 괴물 고양이 '호랑'이 있는데, 모아와 툴툴이는 무사히 다락방에 갈 수 있을까요? 과연 다락방엔 무엇이 있는 걸까요? 요정들이 산다는 보일락말락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집요정 모아의 모험>은 오래된 집에서 살아가는 집요정 모아의 이야기입니다. 모아에게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추억을 쌓고 마음을 나누는 특별한 곳입니다. 하지만 개발로 사촌 툴툴이의 집이 사라지고, 모아가 살던 집에도 변화가 찾아오면서 모아는 툴툴이 그리고 고양이 호랑과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납니다. 세 친구는 요정들이 산다는 남쪽 나라로 떠나는 여정을 통해 이별의 아픔과 새로운 만남을 경험하고 성장해 갑니다. 모아와 친구들의 이야기는 소중한 존재들과 추억을 쌓고 따스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이라는 공간이 지닌 의미를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특히 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떠나는 모아의 모습은 도시 개발로 인해 기존 주민들이 터전을 떠나게 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를 통해 도시가 변화하고 발전하더라도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추억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기억이 쌓이는 소중한 공간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꿈오리 한줄평 :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한 추억을 품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따뜻한 연대와 성장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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