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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로 가니 - 식민지 교실에 울려퍼지던 풍금 소리 ㅣ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8월
평점 :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를 통해 만나게 된 이어령 박사, 그가 들려주는 한국인 이야기는 한국인의 정체성,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찾아보게 만드는데요. 젓가락을 사용하는 아시아 3국의 문화를 들여다보고, 그중에서도 독특한 한국만의 젓가락 문화를 통해 한국인의 문화유전자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너 누구니?>, 생명자본주의와 디지로그 그리고 인공지능이 합쳐져야 인간과 공존이 가능한 로봇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할 수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는 것을 들려주었던 <너 어떻게 살래>, 그렇다면 '한국인 이야기' 완결편이라고 하는 <너 어디로 가니>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한국인 이야기' 네 번째 이야기인 <너 어디로 가니>는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는 그들, 결코 잊을 수 없는, 절대 잊어선 안 될 일제 강점기 아픈 역사 이야기를 통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매일같이 비상령이고 비상 경계령이었다. 폭격에 대비한다고 웬만한 문에는 모두 '비상구'(非常口)라고 표시돼 있었다. '대동아'란 말과 함께 한국인에게 늘 이 '아닐 비'(非)라는 한자가 따라다녔기에 우리는 일제에서 해방된 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상구', '비상문'이란 글씨를 썼다. 영자로는 그냥 'EXIT'다. 게다가 한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는 '태평문'(太平門)이라고 부르는데 말이다. 같은 한자, 같은 문인데 한쪽은 비상이고 한쪽은 태평이다. p.22
"국경을 넘어 더 커다란 동아시아의 권역(圈域)을 만들려는 생각으로 전쟁을 일으킨 일본, 하지만 전쟁으로 인한 고통은 이웃나라들뿐 아니라 그들 또한 고통에 빠뜨리게 되는데요. 저자는 모든 문제들이 바로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권'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입춘대길'(立春大吉)처럼 한가운데가 대칭으로 나누는 글자는 길하다면서, 대동아공영 또한 좌우대칭으로 갈라지지만 마지막 글자인 권(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인데요.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만들어진 '대동아공영권'이란 말은 아시아의 번영이 아닌 전쟁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랬기에 대동아공영권을 말하며 가장 많이 쓰인 한자는 '영화 영'(榮)이 아니라 '아닐 비'(非)자였고, 걸핏하면 '비상시'(非常時)라는 말을 내세워, 비상시국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비국민'(非國民)이라는 딱지를 붙여 비상미 배급도 어렵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 '비상구'(非常口)에 이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는 것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요?
처음엔 서로 쉽게 빼앗고 쉽게 빼앗겼지만 시간이 갈수록 '딱지 전쟁'은 힘겨워졌다. 조센고를 쓰는 애들은 차차 줄어들고 일본말이 서툰 애들은 아예 입을 다물었다. 대일본 제국이 코흘리개 애들을 상대로 펼친 상호 감시와 당근, 채찍과 잔꾀는 들어맞는 듯했다. p.91
천황숭배사상을 주입시키려 조선어 교육을 금지시킨 일제는 '고쿠고조요' 운동을 실시했다고 합니다. 도장이 찍힌 딱지를 열 장씩 나눠준 후 '조센고'(한국말)을 쓰면 무조건 '후타'(딱지) 라고 말하고 표를 빼앗게 했습니다. 표를 많이 빼앗은 아이에겐 상을 주고 잃은 아이들에겐 변소 청소를 시키는 등 딱지 전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비명을 지를 때조차도 무조건 일본말을 해야 했기에, 일부러 그런 상황을 만들어서 표를 빼앗기도 했다고 합니다. 조선인 전체를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해, 일본의 정책이 전해지기 위해선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했기에, 징병 혹은 징용을 용이하게 하려고, 입영 후 교육을 쉽게 하기 위해 일본어를 강제로 배우게 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일본의 제국주의자들은 큰 착각을 했다."며 "식민지 교실에서 배운 것은 히노마루(일장기)가 아닌,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흙으로 된 국토'와 '언어로 된 국어'의 두 '국'(國) 자 안에서 살고 있다는,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만약 틸틸과 미틸이 계속 집에만 있었다면 자기 집에 있는 새가 파랑새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파랑새가 파랑새인 줄 알아보게 되는 안목, 지혜를 얻었던 것은 모험을 마치고 나서다. (중략) 행복은 먼 데 있는 게 아니라고 모험을 지레 포기하고 주저앉고 안주하면, 파랑새가 파랑새인 줄 모르거나, 진짜 파랑새가 아닌 걸 파랑새인 양 알고 살게 된다. p.227~228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마스크를 쓰지 않는 평범한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은 것처럼 틸틸과 미틸이 집에만 있었다면 자기 집에 있는 새가 "파랑새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파랑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으니 굳이 집 밖으로 나갈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집을 떠나봐야 우리 집이 제일 편하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파랑새를 찾아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파랑새가 파랑새인 줄 알아보게 되는 안목"을 얻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들려주는 동화, 자기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려고 읽는 동화, 늙어서 자기 자신의 추억을 위해 다시 읽는 동화, 저자는 모든 삶의 이야기는 배우는 동화, 가르치는 동화, 생각하는 동화와 같은 세 가지 단계로 끝난다고 말하며, 일생 동안 세 번씩이나 듣고 읽을 만한 동화를 발견한 사람을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저자에게 그런 동화는 '파랑새'라고 말합니다. 전래 민요인 '새야 새야 파랑새야', 총독부 교과서에 실린 '아카이 도리 고토리' 그리고 마테를링크의 아동극 '파랑새'까지 세 파랑새는 어느 동화보다 강렬하게 남아있다고 하는데요. 나머지 두 '파랑새'에 대한 이야기는 책을 통해 만나길 바랍니다.
항공기의 블랙박스는 그 말 때문에 검은색인 줄 아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 색은 찾기 쉬운 오렌지색 아니면 붉은색이다. 지원병이라는 말도 그렇지 않은가. 말뜻만 따지면 자신의 의지대로 지원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위안부도 창씨개명도 다 조선인이 스스로 선택한 거라고 둘러댄다. 귤도, 다지마모리도, 리진샤쿠도, 그 많은 친일파 이야기도 역사의 블랙박스 안에 갇혀 있다. 친일을 단죄하는 것 이상으로, 그 친일의 허구를 만들어낸 일본 역사의 블랙박스를 깰 수 있는 추리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만약 한국의 젊은이가 역사추리에 흥미가 없거나 역사의 이면을 외면한다면 누가 이 블랙박스를 부숴 해독할 수 있을 것인가. p.275
저자는 "역사는 블랙박스의 블랙박스다."라며 "일본의 역사가 특히 그렇다."라고 말합니다. 일본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다지마모리의 역사 추리소설을 통해 조작극으로 가장 이득을 챙긴 이가 누구인지를 물어봅니다. "전쟁터에 한국 젊은이들을 끌어들여 누가 이득을 보았는지를 따져 보면 범인의 꼬리를 잡을 수 있다."고 말이지요. 한반도 침략을 정당화하고 천황을 위해 순사한 것을 강조한 조작된 역사를 가르쳤음에도 일제는 원하던 것을 얻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일본보다 훨씬 더 높은 문화를 가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붉은 일장기를 배운 아이들은 해를 그리라고 하면 동그라미에 빨간 칠을 한다는 것, 우리에게 익숙한 '국민'이라는 말 역시 일본인들이 근대에 들어와 만든 말이라는 것, 황국신민을 단련시키는 연성도장이었던 '국민학교', 그럼에도 1996년이 되어서야 '초등학교'로 바뀌었다는 것, 책가방으로 쓴 '란도셀'이 원래는 군인 배낭이었다는 것과 그것이 통학용 가방으로 사용된 것은 '안중근'에게 저격당한 이토 히로부미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 란도셀은 책과 학용품을 넣어 옮기는 목적 외에는 아무것도 포용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는 것, 그에 비해 무명천으로 만든 우리의 책보는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었고, 많은 것을 품을 수 있었다는 것...., 등등 '한국인 이야기' 꼬부랑 열두 고개 이야기는 직접 책을 통해 만나길 바랍니다.
천하루 밤을 지새우면 아라비아의 밤과 그 많던 이야기는 끝나지만, '한국인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나지 않는 '한국인 이야기', 대한민국이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하는 '한국인 이야기', 다음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며, 꿈오리 한줄평은 책속 문장으로 대신합니다.
세상이 골백번 변해도 한국인에게 꼬부랑 고개, 아리랑 고개 같은 이야기의 피가 가슴속에 흐르는 이유입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꼬부랑 할머니의 열두 고개는 끝이 없습니다. 밤마다 이불을 펴고 덮어주듯이 아이들의 잠자리에서 끝없이 되풀이될 것입니다. p.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