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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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오리 20대 시절에 정말 좋아했던 작가,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을 읽고 난 후 신경숙 작가님의 책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콕콕 와 닿는 문장에 형광팬으로 표시해 두고 가끔씩 책을 꺼내 그 문장들을 다시 읽어보고는 했더랬죠. 지금은 이메일로도 안부를 전할 일이 없지만, 그때는 손글씨로 쓴 편지를 보내면서 좋아하는 문장을 적어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때 친구가 답장을 보내면서 '깊은 슬픔'을 보내 주었는데, 그 책은 아직도 우리 집 책장에 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꽤 오래전에 읽은 '엄마를 부탁해' 이후에 작가님의 신간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읽게 되었습니다.

 

'엄마를 부탁해'가 지하철 서울역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후에 내가 아닌 ''의 시점으로 엄마의 삶을 이야기했다면, 이번에 나온 신간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집을 떠난 엄마 대신 아버지 곁에 있게 된 딸이 아버지를 돌보면서 그동안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아버지의 삶을, 그리고 아버지의 삶을 관통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날이 딸의 생일이란 걸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굳이 그날 차를 몰고 가 학원 앞에서 기다리지 않았다면, 딸을 발견하고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딸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육남매의 넷째이자 장녀였던 ''는 그 후 그녀가 살던 집이었고 지금도 부모님이 살고 계신 그 집에 한 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딸을 잃은 슬픔을 온전히 견뎌내기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겠죠.

 

몇 년 만에 내려가 마주한 아버지는 예전의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기억 저편 언젠가, 다리 위에서 만난 너무나 작아 보이던 그 아버지처럼..., 잠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는 아버지는 몽유병 환자처럼 엉뚱한 곳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때로는 울고 있기도 했으며, 때로는 돌아가신 분을 찾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느날의 바람 소리, 어느날의 전쟁, 어느날의 날아가는 새, 어느날의 폭설, 어느날의 살아봐야겠다는 의지, 로 겨우 메워져 덩어리진 익명의 존재. 아버지 내면에 억눌려 있는 표현되지 못하고 문드러져 있는 말해지지 않은 것들. 본문 중~”

 

전염병으로 부모를 잃고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어야 했던 소년은 너무나 잔인했던,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을 6.25 전쟁을 겪었으며, 돈을 벌러 간 서울에선 의도치 않게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최루탄이 터지고 총소리가 들리는 현장 속에 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 한 편에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고 헤어진 그녀도 있었고 늘 자신의 편이 되어 주었고 늘 지켜봐주던 누나도 있었습니다.

 

자식들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랐던 아버지, 자식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를 바랐던 아버지, 자식들 결혼사진이나 손주들 사진이 아닌 학사모를 쓰고 찍은 자식들의 사진을 방에 걸어두었던 아버지, 그 아버지는 자신이 겪었던 끔찍하고 잔인했던 일들, 너무나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일들은 가슴 속에만 묻고 사셨습니다.

 

내가 평소에 나의 아버지에게서, 보통 아버지라고 할 때 으레 따라붙는 가부장적인 억압을 느끼지 않고 엄마보다 아버지를 더 다정히 여기며 살아온 것은 아버지의 내면에 도사린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것을. 무섭고 두려운 게 많은 아버지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과 대적해왔다는 것도. 아버지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말할 것이 없제, 였다.

(중략)

아버지는 말수가 점점 더 줄어들다가 언젠가부터 말할 것 없제, 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본문 중~“

 

그렇게 평생을 표현하지 살아오신 아버지는 끝내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라는 병명을 가진 마음의 병을 앓게 되고 주무시는 중에도 그 고통 속을 헤매고 계셨습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는 둘째 오빠, 엄마 그리고 끔찍했던 전쟁을 함께 겪었던 박무릉 아저씨, 조카에게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너는 집으로 돌아가서 너의 일을 해. 그게 아버지가 원하는 일일 것이니. 본문 중~”

 

아버지는 박무릉 아저씨에게 마지막 연하장을 쓰고, 자식들과 자신의 아내에게 주고 싶은 것을 불러주며 ''에게 글로 적어 달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삶이 언제 어떻게 될지 기약할 수 없었던 탓일까요?

 

부모가 가장 기대하는 아들이자 동생들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어야만 했던 큰오빠, 장남에게 치우친 사랑이 자신에게도 오기를 바랐을 둘째 오빠, 가장 반항했지만 오히려 가장 속이 깊었을 수도 있는 셋째 오빠, 자신의 아픔을 부모에게까지 보이고 싶지 않았던 '', 늘 부모님을 살뜰하게 챙겼던 여동생, 잘 챙겨주지 못해 아버지에게 너무 안쓰러웠던 막내까지, 여섯 남매의 이야기는 책을 읽는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입니다. 표현은 서툴렀지만 언제나 자식들을 향한 사랑은 늘 한결같았던, 언제나 그 자리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엄마와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 엄마의 모습이고 우리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살아냈어야, 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 라고. 본문 중~”

 

400페이지가 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빠져 읽게 되었던, 우리 아버지의 이야기이자 우리 가족의 이야기였던, 그래서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던 '아버지에게 갔었어', 지금 우리 아버지와 통화를 할 수는 없지만 그때 아버지와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이 정말 행복했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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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통 2021-03-04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쟎다. 당신에게 문학은 무엇인가. 진심...묻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