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라 씨의 친구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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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전업주부 미나코 이야기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이 책은 5년 전 정말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책으로 마스다 미리라는 작가와 그녀의 작품을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기도 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의 일들을 담백하면서도 재미나게 담아낸 이야기에 절로 공감하며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마스다 미리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꿈꿀 수 있는 용기와 응원 그리고 공감과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삶이란 있는 그대로, 흘러가는 대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미우라 씨의 친구>를 읽고 나니 미우라 씨와 친구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우라 씨의 친구>는 마스다 미리 만화 데뷔 20주년을 기념한 책으로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처럼 평범한 일상의 일들을 담백하게 그려낸 이야기입니다. 이사를 하고 하우스 셰어를 하게 된 미우라 씨의 이야기는 현재와 가까운 과거를 오가며 진행되는데요. 모르는 사람과 한집에 살아본 적이 없는 미우라 씨가 하우스 메이트에게 오래된 친구와 멀어지게 된 이야기부터 좋아하게 될 것만 같은 남자와의 만남 등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건 왜일까요? 그 누구보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으며, 미우라 씨의 표정만 보고도 감정을 읽고 공감해 주었던 하우스 메이트, 미우라 씨와 하우스 메이트는 오래도록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친구란 참 어려워. 아무리 친한 사이도 작은 균열 하나로 쉽게 갈라지고 만다. 이전에도 친구와 사이가 틀어진 적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조금도. p.17~18

 

아주 친한 친구와 문자 하나로 멀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나요?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있든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친구라면 더더욱 말이죠. 성격은 전혀 달랐지만 왠지 잘 맞았던 미우라 씨와 지카, 하지만 아주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문자 하나로 연락마저 끊고 살게 됩니다. 미우라 씨는 오래된 친구와 멀어지게 된 이야기부터 왠지 좋아하게 될 것만 같은 남자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 등등 그녀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우스 메이트에게 털어 놓습니다. 미우라 씨의 하우스 메이트는 이야기를 너무나 잘 들어주지만, "그래?", "", "괜찮아?" 정도일 뿐, 자신이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말로 다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만으로 마음이 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잖아요. 무엇보다 내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주고 공감해 준다면 더더욱요.

 


어른이 되면 친구가 줄어드는 걸까.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었다. 단 한 명이라도 내 편이 되어줄 친구가 있으면 그걸로 됐다. 라고. p.82

 

"진정한 친구가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절로 등록된 카톡 친구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정말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극강의 내향형인 꿈오리는 먼저 만나자고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싶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친구는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단 한 명이라도 내 편이 되어줄 친구가 있으면 그걸로 됐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듯합니다. 미우라 씨처럼 말이죠.

 

평범한 일상의 일들을 마스다 미리 특유의 담백함으로 그려낸 <미우라 씨의 친구>,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했을 법한 "친구란 어떤 존재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이야기이자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려워지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따스하게 담아낸 책입니다.

 


책 마지막 장에 꽂혀 있는 엽서 한 장, 그리고 책과 함께 온 엽서 한 장, 마치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에게서 온 엽서, 짧은 안부만 적혀 있을지라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질 것만 같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마스다 미리 작가의 작품에 '스포 금지'를 붙여야 할 첫 작품이 아닐까"라는 말을 왜 했을까? 했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완전 이해가 됩니다. SF적 요소에 깜짝 반전 그리고 마스다 미리만의 따스한 감성이 녹아 든 이야기, <미우라 씨의 친구>와 친구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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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달린 모자 (30주년 기념 특별판)
신형건 지음 / 끝없는이야기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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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동글 귀엽고 사랑스러운 얼굴, 모두 다 달라도 모두 다 행복하게 웃고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표지 그림이 시선을 사로잡는 시집, 1993년 출간된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시집, 출간 30주년 기념 특별판으로 독자들을 다시 만나게 된 시집, 바로 <바퀴 달린 모자>입니다. 3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의 삶은 많이 달라졌지만 시집 속에 담긴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과 무한한 상상력은 지금도 여전히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바퀴 달린 모자>'...없는' 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까지 모두 42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요. 이 시집에 수록된 시 <넌 바보다>tvN 드라마 <시를 잊은 그대에게>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에 나오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없는

 

창문이 없는 집, 답답하지?

가로수가 없는 길, 허전하지?

바람이 불지 않는 언덕, 가고 싶지 않아.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 심심하지?

열쇠를 잃은 자물쇠, 영영 잠만 잘 테지.

불이 나간 저녁, 깜깜하지.

별이 없는 밤하늘, 말도 안 돼!

그럼, 이건 어떻겠니?

-내가 없는 세상

'바퀴 달린 모자' ~

 

"창문이 없는 집,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 열쇠를 잃은 자물쇠, 불이 나간 저녁, 별이 없는 밤하늘...",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코로나 팬데믹을 겪는 동안 우리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놀이터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거리엔 오가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혹시나 하는 마음이 불신의 싹을 틔우고 서로를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는 했습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혹시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가족이 없는 세상,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없는 세상, 사랑하는 ''가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언제나 늘 곁에 있을 것이라며, 너무나 당연하다는 생각에 소중함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없는>을 읽고 나니 ''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내가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바퀴 달린 모자

 

바퀴 달린 모자, 본 적 있어?

참 우스울 테지,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모자라... 히힛!

뿔 난 축구공은? 생각해 봐

얼마나 재미있겠어, 제멋대로

튀어 오르며 야단일 테니.

(중략)

이제 그만두라구? 그게 무슨

도깨비 같은 소리냐구? 그럼

마지막으로 이건 어때?

반바지 입은 선인장! 이건

우리 집에 정말 있는 거야.

그게 바로 나야! 나라구!

엄마가 나를 그 꼴로 만들었어.

너도 나와 다름없을걸.

그렇지? 속상하지? 답답하지?

, 우리 내일부턴 절대로

엄마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학원에 가지는 말자.

그 대신, 운동장에서 만나

코피 터지도록 싸움이나 한판 하자!

어때? 너랑 나랑, 뿔 난

축구공이랑 뚜껑 달린 운동화랑,

머리핀 꽂은 우산이랑

바퀴 달린 모자랑

'바퀴 달린 모자' ~

 

절로 뾰족뾰족한 가시가 돋치게 만드는 엄마의 잔소리, 막 하고 싶던 일도 하기 싫어지게 만드는 엄마의 잔소리 잔소리..., 그래서 하지 말라는 일을 자꾸 하고 싶게 만드는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사실 엄마들은 알고 있답니다. 우리 아이들이 왜 가시 돋친 선인장이 되는지를 말이죠. 엄마들도 가시 돋친 선인장이 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이젠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상처 입은 마음을 헤아려주는, 그런 엄마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요?

 

 


넌 바보다

 

씹던 껌을 아무 데나 퉤, 뱉지 못하고

종이에 싸서 쓰레기통으로 달려가는

너는 참 바보다.

(중략)

얼굴에 검댕칠을 한 연탄장수 아저씨한테

쓸데없이 꾸벅, 인사하는

너는 참 바보다.

호랑이 선생님 전근 가신다고

아무도 흘리지 않는 눈물을 혼자 찔끔거리는

너는 참 바보다.

그까짓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민들레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 바라보는

너는 참 바보다.

내가 아무리 거짓으로 허풍을 떨어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머리를 끄덕여 주는

너는 참 바보다.

(중략)

-그럼 난 뭐냐?

그런 네가 좋아서 그림자처럼

네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나는?

'바퀴 달린 모자' ~

 

정말 착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친구, 그런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시 <넌 바보다>, 우리집 두 형제만 봐도 요즘 시대엔 너무 착하게만 살아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공감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너무 착하게 살면 무시를 당하거나 호구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또한 하게 되니까요.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이 누군가를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알고, 아주 평범한 일상의 일들에 감사할 줄 알며,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바라게 됩니다. 꿈오리 한줄평은 얼른 어른이 되고픈 아이들, 다시 어린 아이 시절로 돌아가고픈 어른들에게 들려주고픈 마음을 '시인의 말'로 대신하여 전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요? 얼른 어른이 되고 싶나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나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여러분은 무얼 하고 싶나요?

 

아주 어렸을 적에는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른이 되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어른이 될수록 행동뿐 아니라 생각조차 내 마음대로 하기가 점점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신나게 장난을 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가장 안타까웠지요.

결국 나는 이제 꾹 참고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따분해서 '다시 아이가 되고 싶은 어른'이 되었습니다. 다시 아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간절하다면 온전하지는 못해도 반쯤은 다시 아이가 될 수도 있겠지요? 내가 쓰는 시들은 그런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시인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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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보름달 밤에 만나 웅진 세계그림책 247
노무라 우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웅진주니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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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밤, 호수 위에도 밝고 환하게 빛나는 보름달이 떴습니다. 그리고 보름달을 바라보는 세 친구가 있습니다. 달님에게 소원이라도 비는 걸까요? 달님이 너~무 예뻐서 달멍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요?

 


<다음 보름달 밤에 만나>는 어느 숲속에 살고 있는 오리너구리와 쿼카(언뜻 쥐와 닮은 듯 보이는 캥거루과 포유류) 그리고 가시두더지가 보름달 밤에 만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단짝 친구인 셋은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늘 함께 나들이를 한답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셈이니 얼마나 할 이야기가 많겠어요?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음식도 나눠 먹다 보면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답니다.

 

달님을 갖고 싶어!

반짝반짝, 동글동글. 참 예쁘잖아.

'다음 보름달 밤에 만나' ~

 

반짝반짝 빛나는 예쁜 보름달을 집에 가져다 두고 매일 매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풀쩍 풀쩍 하늘 높~이 뛰어오르면 보름달을 딸 수 있을까요?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아무리 높이 뛰어 올라도 손끝 하나 닿지 않을 만큼 높은 곳에 떠 있는 보름달, 세 친구는 다음 보름달이 뜨는 밤에 만나기로 약속하며 헤어집니다.

 


달님이잖아!

저 달님이라면 손에 닿을지도 몰라.

'다음 보름달 밤에 만나' ~

 

집에 돌아온 오리너구리는 깜짝 놀라고 맙니다. 집 앞 호수 위에도 보름달이 떠 있는 게 아니겠어요? 호수 위에 떠 있는 보름달은 분명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지요. 그물로 호수에 있는 보름달을 잡으려는 오리너구리...,오리너구리는 호수에 있는 보름달을 건져낼 수 있을까요? 오리너구리가 보름달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다시 보름달이 뜨는 밤이 되었습니다. 오리너구리는 친구들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 너무 조용합니다. 부엉이 할아버지의 노랫소리, 벌레들이 나뭇잎을 갉아 먹는 소리, 동물들 발자국 소리...,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들렸던 그 소리들이 왜 들리지 않는 걸까요? 보름달이 뜨는 밤인데도 깜깜한 숲속,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요? 오리너구리와 쿼카 그리고 가시두더지는 달밤 나들이를 할 수 있을까요?

 

보름달이 갖고 싶어 그물로 건져내려한 오리너구리, 그럼 반짝반짝 빛나고 예쁜 보름달을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매일 매일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예쁜 보름달을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만의 보름달도 좋겠지만, 모두가 다 함께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운 보름달을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그럼 오리너구리와 쿼카 그리고 가시두더지는 보름달이 뜨는 밤에 달밤 나들이를 할 수 있겠지요?

 

크고 둥근 보름달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왠지 소원을 빌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가끔 폴짝 뛰어오르면 손이 닿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만큼 달이 낮게 뜨는 날도 있는데요. 혹시 달을 잡으려고 폴짝 폴짝 뛰지는 않았나요? 물속에 비친 달을 보고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나요? <다음 보름달 밤에 만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어린 아이 시절의 소망과 무한한 상상을 사랑스럽고 예쁜 이야기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첫 장을 펼치면 독자들은 오리너구리와 쿼카 그리고 가시두더지와 함께 달밤 나들이를 하고 싶은 마음이 보름달처럼 가득 차오르는데요. 환한 달빛 아래 맛있는 음식도 먹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눌 듯합니다.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말이죠. 함께 하고픈 분들이 있다면 <다음 보름달 밤에 만나>는 건 어떨까요?

 

꿈오리 한줄평 : 어린 아이 시절의 소망과 무한한 상상을 사랑스럽고 예쁜 이야기로 그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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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퓨테이션: 명예 2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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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의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레퓨테이션 : 명예> 1, 한 아이의 엄마이자 노동당 평의원이었던 엠마, '리벤지 포르노'라 불리는 범죄의 형량을 늘이는 것과 피해자들을 위해 익명성을 보장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일에 앞장섰던 그녀는 가디언 위캔드와의 인터뷰 이후 악플러들의 독설과 스토킹에 시달리게 됩니다. 자신의 집에 침입한 기자가 계단에서 추락하여 사망하게 되면서 살해 용의자로 체포되는 엠마, 그녀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인지, 가족은 물론 자신의 명예를 지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2편을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한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게 된 <레퓨테이션 : 명예> 2, 1편의 이야기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차례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면, 2편은 살해 용의자가 된 엠마가 재판을 받는 과정을 아주 세세하게 보여줍니다. 마치 법정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말이죠. 엠마와 주변 인물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과연 그날 일어난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더하는데요. 특히 피해자들이 받는 고통에 비해 짧은 형량과 피해자들을 위한 익명성 보장에 관한 것,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그 누구보다 떳떳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 그럼에도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하려 한다는 것,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 등등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사회의 모습은 어떠한지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너무나 당당한 가해자와 고통 속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피해자의 모습은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는 어쩌다가 그런 상태로 그곳에 있게 되었을까, 누군가 살해를 목적으로 그를 계단 아래로 민 것일까, 즉 그는 살해당한 것일까? 이것이 이번 재판의 핵심이 되는 질문입니다. p.20~21

 

배심원에 의한 재판을 받게 된 엠마, 그녀는 배심원들로부터 무죄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엠마가 유죄라고 배심원단을 설득하는 왕립기소청(우리나라 검찰청에 해당)의 소냐 잭슨, 사건 직후 엠마가 한 행동들과 그녀가 했던 거짓말, 증인으로 재판정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엠마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합당한 정당방위가 아니며, 살해 의도를 가진 행동이었다는 것"으로 유죄를 주장합니다.

 

플로라가 그 사진을 보낸 것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엄마가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는 일이.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죄책감에 시달리는지도 엄마에게 말할 수 없었다. 자신만 아니었다면...,일주일 뒤면 교도소에 갈지도 모르는 현실과 마주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p.139

 

엠마의 딸 플로라는 자신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지만, 그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름 최선의 방법으로 엄마에게 도움을 주려 합니다.

 


 

피고인 엠마 웹스터의 살인 혐의에 대한 평결은 유죄입니까, 무죄입니까? p.240

 

재판이 종결된 후, 엠마의 딸 플로라와 독점 기사에 혈안이 되었던 기자 마이크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통해 그날 그 사건이 왜 일어나게 된 것인지를 짐작하게 되는데요.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었던 것은 마이크의 책상을 정리하면서 발견된 무언가로 인해 엠마가 또다시 온갖 욕설과 루머에 시달릴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엠마는 유죄일까요? 무죄일까요? 가택 무단 침입에 대한 정당방위 허용은 어디까지일까요? 성범죄에 대한 형량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성범죄 피해 여성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은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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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퓨테이션: 명예 1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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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이면서도 냉철해 보이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듯한 여자, <레퓨테이션 : 명예>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 바로 표지 속 여자임을 짐작케 합니다. 표지 속 인물은 어떤 사람이며, 작가는 왜 제목을 '명예'로 했을까요?

 

! 명예를 잃고 말았구나.

내가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할 그 명예를 잃고 말았고,

이제는 짐승 같은 것만 남았구나.

-윌리엄 셰익스피어

<오셀로>, 23

 

나는 여전히 말피 공작부인이다.

-존 웹스터

<말피의 공작부인>, 42

'레퓨테이션 : 명예' ~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와 존 웹스터의 <말피의 공작부인>에 나오는 문구를 인용한 글로 시작하는 <레퓨테이션 : 명예>, 이 문구들이 바로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책을 읽지 않아서 내용을 모른다는 함정이 있기는 합니다만.

 


이야기는 누군가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의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요.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엠마와 그녀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차례대로 보여줍니다.

 

인터뷰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토요일 아침 7시였지만 트위터 앱은 벌써 알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심하지만, 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박적으로 일었다. 확인받고 싶다는 자만심일까? 내 두려움은 현실이 아니며, 도리어 엄청난 응원이 쏟아졌을 거라는 어리석고도 덧없는 희망? P.28

 

역사 강사이자 한 아이의 엄마이자 노동당 평의원이었던 엠마, '리벤지 포르노'라 불리는 범죄의 형량을 늘이는 것과 피해자들을 위해 익명성을 보장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일에 앞장섰던 엠마, 정치인으로서의 커리어를 구축해가는 동안 결혼 생활은 파탄 나고 딸과의 관계도 서먹해진 엠마, 그녀는 모든 일의 시작은 가디언 위캔드와의 인터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당 하원의원이라기 보다 오스카 수상 후보에 오른 배우처럼 보였던 엠마, 그녀는 이 인터뷰로 인해 악플러들의 독설과 스토킹에 시달리게 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 플로라의 삶이 끔찍해진 건 엄마가 점점 더 유명해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가 계속 교사였다면 아빠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평범한 엄마였다면, (중략) 그렇게 곁에서 함께했다면, 이런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p.89

 

전남편은 엠마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딸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닐까 염려했지만, 엠마는 애써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사건은 의외의 곳에서 터지게 되는데요. 딸이 리벤지 포르노의 가해자가 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딸에게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딸이 학교에서 온갖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알았더라면, 딸이 엄마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딸의 마음 속 생채기를 보듬어 줄 수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열네 살의 딸이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는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처음으로 정치에 입문하며 엠마는 잘해나가는 것 이상으로 활짝 피어났고, 그 삶에 도취되어 있었다. (중략) 엠마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은 것이다. 사람들이 귀 기울이는 목소리를, 제 아무리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그녀에게 권력의 맛을 알려준 목소리를 말이다. p.203

 

일을 중시하는 만큼 가족에게 신경을 썼더라면, 오스카상 수상 후보처럼 사진을 찍은 인터뷰를 하지 않았더라면, 독점 기사에 혈안이 된 기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의도적이었던 아니었던 일적인 관계 이상의 선을 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엠마는 자신의 가족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그랬더라면 자신의 명예를 지킬 수 있었을까요?

 

엠마 웹스터, 당신을 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신문 때 당신에게 유리한 내용을 말하지 않는다면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p.287

 

거의 사용하지도 않는 메신저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발송된 메시지, 다툼 소리를 들었다는 이웃집의 증언, 자신의 집 계단에서 추락한 남자를 발견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살인 혐의로 체포된 엠마, 그녀는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을까요? 그리하여 가족은 물론 자신의 명예를 지킬 수 있을까요? 뒤로 갈수록 더 빠져들어 읽게 되는 이야기, 그래서 2편이 더 궁금해집니다.

 

자신의 집에서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살인 혐의로 체포되기까지 있었던 일을 주요 등장인물들의 시점에서 시간 순으로 보여주는 이야기 <레퓨테이션 : 명예>, 정치인으로서의 명성은 높아졌을지라도 그로 인해 결혼 생활이 깨어졌다는 것, 무엇보다 하나뿐인 딸의 마음 속 생채기를 헤아리고 보듬어주는 엄마는 되지 못했다는 것, 그녀의 명예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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