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퓨테이션: 명예 1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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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이면서도 냉철해 보이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듯한 여자, <레퓨테이션 : 명예>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 바로 표지 속 여자임을 짐작케 합니다. 표지 속 인물은 어떤 사람이며, 작가는 왜 제목을 '명예'로 했을까요?

 

! 명예를 잃고 말았구나.

내가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할 그 명예를 잃고 말았고,

이제는 짐승 같은 것만 남았구나.

-윌리엄 셰익스피어

<오셀로>, 23

 

나는 여전히 말피 공작부인이다.

-존 웹스터

<말피의 공작부인>, 42

'레퓨테이션 : 명예' ~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와 존 웹스터의 <말피의 공작부인>에 나오는 문구를 인용한 글로 시작하는 <레퓨테이션 : 명예>, 이 문구들이 바로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책을 읽지 않아서 내용을 모른다는 함정이 있기는 합니다만.

 


이야기는 누군가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의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요.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엠마와 그녀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차례대로 보여줍니다.

 

인터뷰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토요일 아침 7시였지만 트위터 앱은 벌써 알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심하지만, 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박적으로 일었다. 확인받고 싶다는 자만심일까? 내 두려움은 현실이 아니며, 도리어 엄청난 응원이 쏟아졌을 거라는 어리석고도 덧없는 희망? P.28

 

역사 강사이자 한 아이의 엄마이자 노동당 평의원이었던 엠마, '리벤지 포르노'라 불리는 범죄의 형량을 늘이는 것과 피해자들을 위해 익명성을 보장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일에 앞장섰던 엠마, 정치인으로서의 커리어를 구축해가는 동안 결혼 생활은 파탄 나고 딸과의 관계도 서먹해진 엠마, 그녀는 모든 일의 시작은 가디언 위캔드와의 인터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당 하원의원이라기 보다 오스카 수상 후보에 오른 배우처럼 보였던 엠마, 그녀는 이 인터뷰로 인해 악플러들의 독설과 스토킹에 시달리게 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 플로라의 삶이 끔찍해진 건 엄마가 점점 더 유명해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가 계속 교사였다면 아빠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평범한 엄마였다면, (중략) 그렇게 곁에서 함께했다면, 이런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p.89

 

전남편은 엠마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딸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닐까 염려했지만, 엠마는 애써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사건은 의외의 곳에서 터지게 되는데요. 딸이 리벤지 포르노의 가해자가 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딸에게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딸이 학교에서 온갖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알았더라면, 딸이 엄마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딸의 마음 속 생채기를 보듬어 줄 수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열네 살의 딸이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는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처음으로 정치에 입문하며 엠마는 잘해나가는 것 이상으로 활짝 피어났고, 그 삶에 도취되어 있었다. (중략) 엠마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은 것이다. 사람들이 귀 기울이는 목소리를, 제 아무리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그녀에게 권력의 맛을 알려준 목소리를 말이다. p.203

 

일을 중시하는 만큼 가족에게 신경을 썼더라면, 오스카상 수상 후보처럼 사진을 찍은 인터뷰를 하지 않았더라면, 독점 기사에 혈안이 된 기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의도적이었던 아니었던 일적인 관계 이상의 선을 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엠마는 자신의 가족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그랬더라면 자신의 명예를 지킬 수 있었을까요?

 

엠마 웹스터, 당신을 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신문 때 당신에게 유리한 내용을 말하지 않는다면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p.287

 

거의 사용하지도 않는 메신저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발송된 메시지, 다툼 소리를 들었다는 이웃집의 증언, 자신의 집 계단에서 추락한 남자를 발견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살인 혐의로 체포된 엠마, 그녀는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을까요? 그리하여 가족은 물론 자신의 명예를 지킬 수 있을까요? 뒤로 갈수록 더 빠져들어 읽게 되는 이야기, 그래서 2편이 더 궁금해집니다.

 

자신의 집에서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살인 혐의로 체포되기까지 있었던 일을 주요 등장인물들의 시점에서 시간 순으로 보여주는 이야기 <레퓨테이션 : 명예>, 정치인으로서의 명성은 높아졌을지라도 그로 인해 결혼 생활이 깨어졌다는 것, 무엇보다 하나뿐인 딸의 마음 속 생채기를 헤아리고 보듬어주는 엄마는 되지 못했다는 것, 그녀의 명예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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