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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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바티유는 소설가가 되길 원하는 젊은이이다. 《산마루의 수줍음》이라는 소설을 써서 10여 개의 출판사에 보냈지만 모든 곳에서 출간을 거절당했다.3 그는 자신이 존경하는 소설가인 네이선 파울스가 칩거한 보몽 섬의 유일한 서점 '라 로즈 에카르라트'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게 되고 아르바이트에 지원해 섬으로 향한다.

유명한 소설가 네이선 파울스는 20년 전에 절필을 선언하고 보몽 섬에 칩거중이다.

라파엘은 보몽 섬에 있는 동안 네이선을 만나려고 그의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그의 총알세례를 받게 되지만 그래도 얼마간 대화는 할 수 있었다. 자신의 소설을 한번 읽고 조언을 들려달라는 라파엘의 말을 거절하며 네이선은 말한다.

- p. 53

작가로 산다는 건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 없는 삶이니까.

작가는 허구한 날 좀비처럼 살아야 하거든. 다른 사람들로부터 유리된 삶이지. 고독한 삶.

하루 종일 잠옷 바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식어빠진 피자 조각이나 씹으며 살길 바라나?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전자파에 눈이 상하고, 대화 상대라야 기껏 머릿속으로 상상해낸 가공인물들 뿐이야. 그 가공인물들이 자네를 미치게 만들지. 게다가 몇 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머리를 쥐어짜낸 끝에 겨우 한두 문장을 써냈는데 독자들은 단 일초도 거들떠보지 않고 시큰둥해하지. 작가의 삶이란 바로 그런 거야.

- p. 55

그런 그가 왜 저토록 돌변하게 되었을까?

그는 왜 영예의 정점에 있던 작가의 삶을 청산하고 하루아침에 갑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일, 그간 쌓아올린 업적, 생의 자양분이 되어 준 소설을 버리고 고독 속으로 침잠하게 되었을까? 도대체 그의 생에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그 모든 걸 포기하고 섬에서의 칩거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그러던 중 범죄청정지역이던 이 보몽 섬의 남서부에 위치한 유일한 해수욕장인 트리스타나 비치에서 여성의 시체 한 구가 발견된다. 시신의 상태는 매우 참혹했는데, 얼굴이 심각하게 훼손되었고 거대한 나무에 석궁으로 고정된 채 발견되었다.

피해자는 와인 관련 마케팅 전문가인 '아폴린 샤퓨이'로 알려졌고, 시간이 흐르자 피해자의 과거 범죄전력이 드러난다.

한편, 네이선은 키우던 개 브롱코를 찾아준 계기로 알게 된 마틸드 몽네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2000년 대 초반에 하와이에서 분실된 카메라가 타이완의 어느 비치에서 발견되었지만 발견한 사람이 다시 비행기에 카메라를 놓고 내리는 바람에 분실문센터에서 보관되다 스코츠보로의 수화물센터로 옮겨지고 후에 어떤 부녀가 카메라를 구입하게 되고, 그들은 카메라 안의 사진을 살펴보다 심상치 않은 사진을 발견하고 이런 사실들을 스위스 일간지 기자인 '마틸드 몽네'에게 알린다.

카메라 안에 든 사진 중 생일파티를 즐기는 아이의 사진이 있었는데, 그 아이는 사진이 찍힌 세 시간 후에 총을 맞고 사망한다. 아이와 아이의 부모가 모두 사망한 이 사건은 베르뇌유 일가족 살인사건으로 알려졌지만 범인은 결국 잡히지 않고 미제로 남는다.

마틸드는 네이선에게 아폴린이 이 사건의 범인으로 보인다며 아폴린 사망을 계기로 베르뇌유 일가족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사건의 전모를 글로 써주기를 요청한다.

네이선은 마틸드의 숨겨진 진의를 알기 위해 라파엘을 불러 마틸드에 대한 조사를 부탁한다. 그리고 라파엘은 마틸드의 방을 조사하던 중 네이선 관련 자료뿐 아니라 아폴린과 과거 함께 범죄를 저질렀던 카림 암라니에 관한 자료들도 발견하게 된다.

마틸다의 이야기는 네이선 파울스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또 과거 미제로 남겨진 베르뇌유 사건은 또 무슨 관련이 있을까?

유명하고 절필 선언을 한 지 20년이 지난 후까지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기 작가 네이선이 갑자기 글쓰기를 멈춘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제일 컸다. 그리고 조용하던 섬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20년 전 발생했지만 미제로 남아 있는 베르뇌유 사건까지 관련이 있는 듯 언급되자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했다.

마치 예상가능한듯이 이야기가 흘러갔지만, 역시나 내가 추측하던 것들은 모두 틀렸다.

예상하지 못하던 진실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긴장감이 흐르고 흥미진진해졌다.

그런데... 사실 마지막의 의미를 모르겠다. 그것도 반전인 건지...

책을 읽은 몇몇 분들이 마지막이 허무했다라고 하시는데, 내 느낌은 허무함 더하기 당황스러움이었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

그럼에도 책을 읽는 내내 재미있게, 시간가는 줄 모르게 읽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또 유명 작가들의 명언들과 작가가 말하는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문장들도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기욤 뮈소의 스릴러 미스터리 소설은 <아가씨와 밤>에 이어 두번째로 읽었는데, 다음 작품이 나와도 믿고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 272)

삶은 실제로 살 때와 살아본 다음 하나씩 껍질을 벗겨볼 때 얼마나 다른가? - 조르주 심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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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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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야기에서 해리 홀레는 태국 방콕으로 떠난다.

해리 홀레는 이번에도 무사히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잃거나하는 슬픈 일을 겪고 마음의 상처를 더하게 되지는 않을까,를 걱정하며 책을 펼쳤다.

주태국 노르웨이 대사 '아틀레 몰네스'가 방콕의 사창가에서 등에 칼이 꽂힌 채 발견된다.

'아틀레 몰네스'는 현 총리와 친밀한 사이였으므로 이 사건이 공개될 경우 현 총리가 타격을 입게 될까 우려한 정부 관료들은 사건을 비밀로 부치고 눈에 띄지 않게 수사할 경찰 1명을 방콕으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해리 홀레는 방콕으로 떠나게 된다.

- p. 26

현재 우리한테 필요한 사람은 이 사건을 수사하되... 불행한 사태를 초래하지 않을 사람이오. 당연히 우리도 살인범이 한 명이든 여럿이든 잡아들이고 싶지만 살인을 둘러싼 정황은 추후 통보가 있을 때까지 비밀에 부쳐야 해요. 국가의 안녕을 위해. 아시겠소?

방콕에서 해리의 파트너는 해리만큼 큰 키에 딱 벌어진 어깨를 가진, 빡빡머리의 리즈 크럼위 경위였다.

해리는 리즈 경위와 함께 사건 현장 및 피해자의 당일 행적, 피해자 주변 인물에 대한 조사를 하기 시작한다.

사건 현장인 모텔방에서 시신을 본 해리는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지만 정확히 짚어내지는 못하고, 모텔 내에 있는 피해자의 차량 내 가방에서 아동성착취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또 해리는 피해자의 사건 당일 휴대전화 착신목록에 있는 노르웨이 대사관, 오베 클리프라, 옌스 브레케에 대하여 조사한다.

방콕 내 거물급 건설업자인 오베 클리프라, 통화중개인 옌스 브레케는 조사를 할수록 피해자와 긴밀한 관계가 있어 보였다. 연락이 되지 않는 오베 클리프라, 피해자의 부인과 내연 관계에 있던 옌스 브레케... 그들은 피해자의 사망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 p. 199

진짜 미친놈은 사람을 찔러 죽이고 범죄 현장에서 유용한 증거를 완전히 없애지 않아요. 수수께끼 같은 걸 잇달아 남겨서 추후에 경찰과 강도 놀이를 하려고 하죠. 이번 사건에는 장식이 있는 칼 한 자루가 나왔고, 그게 다예요.

제가 장담하는데, 이번 사건은 장난칠 마음이 전혀 없으며 일을 해치우고 증거불충분으로 사건을 덮어버리려는 누군가에 의해 용의주도하게 계획된 살인입니다.

그래도 또 모르죠. 어쩌면 그냥 미친놈이기만 해도 이런 식으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지도.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제가 지금까지 만난 미친놈들은 노르웨이인밖에 없었습니다.

'방콕'하면 떠오르는 건 밤새 시끄럽고 흥겹고 사람들이 가득찬 카오산로드였다. 낮보다 밤이 더 시끄럽고 더 사람들이 많은 그런 곳.

<바퀴벌레> 속 방콕은 그런 관광적 요소도 물론 있지만, 더 음침하고 어두운 느낌이다. 찌는 듯한 더위는 끈적하고 불쾌한 기분마저 느끼게 한다. 피해자의 가방에서 발견된 아동성착취 사진에서도 알 수 있지만, 리즈 경위의 말에 의하면 태국에는 1제곱인치당 변태성욕자 수가 전 세계 평균보다 많다. 온갖 성산업들이 활개를 치고 그런 것들을 따라 온갖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 그런 곳이 태국이고 방콕이다.

바퀴벌레처럼 변태성욕자들은 한 놈이 보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열 놈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어디에나 있다.

일반 관광객들에겐 보이지 않는 '여행자들의 도시'라 불리는 방콕의 잔혹한 이면이다.

- p. 113

바퀴벌레는 누가 다가오는 진동을 듣고 숨어버려서 바퀴벌레 한 마리가 눈에 띄면 적어도 열 마리가 숨어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어디에나 있다는 뜻이었다.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위험을 동반한다. 또한 진실에 아주 가까이 다가갔을 땐 그 위험이 배가 되어 자신과 주변을 위협할 수도 있다.

이번 이야기 역시 해리가 범인을 찾고 진실을 밝히는데 많은 희생과 어려움이 뒤따른다. 그리고 해리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안타까운 죽음도 발생했다.

젊은 해리가 겪는 일들이 너무 가혹해서 어떨 땐 해리를 그만 괴롭히라고 말하고 싶기도 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해리가 조금 덜 아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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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악몽과 계단실의 여왕
마스다 타다노리 지음, 김은모 옮김 / 한겨레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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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신의 과오가 부메랑이 되어 다시 자신에게 돌아와 끔찍한 악몽같은 일들을 선사하는 이야기 네 편을 만났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이지만, 읽는 동안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몸이 흠칫 떨렸다.

- 매그놀리아 거리, 흐림

우연히 어떤 사람의 투신자살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 사이키는, 투신을 머뭇거리는 사람에게 악의에 가득찬 말들을 하는 사람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도 "후딱 뛰어내려"라는 말을 내뱉게 된다. 그 후 그 사람은 결국 투신하고 구경하던 대다수의 구경꾼은 그제서야 상황의 중대함과 심각성을 깨닫고 자리를 급하게 뜬다. 이 사건으로 누군가가 사이키의 딸을 유괴하고, 사이키에게 이상한 제안을 한다.

(p. 29)

저는 그저 사이키 씨에게 알려드리고 싶을 뿐이에요. 궁지에 몰린 인간이 맛보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공포를요.

- 밤에 깨어나

묻지마 습격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처음에는 날붙이로 여성의 상의와 치마를 잘랐지만 이내 피해자가 부상을 입었고, 그 후로는 매번 피해자에게 부상을 입힌다.

다카하시는 밤낮이 바뀐 생활, 범인과 유사한 외모 때문에 범인으로 의심받고, 설상가상으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여성에게도 의심받는 상황이 발생한다. 자경단은 다카하시를 밤낮으로 감시하고 억울하고 화가 난 다카하시는 그들을 골려주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은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밝혀지는 묻지마 사건의 범인의 정체는 놀라웠다.

- 복수의 꽃은 시들지 않는다

사와이 주변에 최근에 이상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자신의 가족을 노리는 듯한 일련의 사건을 보며 사와이는 과거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떠올린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왕따를 당했던 하야카와를 사와이를 포함한 몇 명이 누명을 씌웠고, 하야카와는 자살했다. 그리고 하야카와의 장례식에서 하야카와의 외삼촌은 그들에게 대갚음을 하겠다고 경고했던 것이다.

(p. 170)

기다려라. 내게 지켜야 할 것이 없어졌을 때, 그리고 너희에게 지켜야 할 것이 생겼을 때, 반드시 빼앗으러 가겠어. 몇년 후가 될지는 몰라. 하지만 잊지 마라. 내가 너희 앞에서 한 맹세를.                           

 

- 계단실의 여왕

마사미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가다 쓰러진 여자를 발견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119를 부르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고 이런 상황을 맞닥뜨린 것에 대해 귀찮아하고 짜증나한다. 거기다 모르는 여자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평소에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외면하던 같은 층의 여자라는 걸 알고는 더더욱 구해주지 않겠다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머뭇거리는 동안 누군가 계단을 이용해 아래층으로 조금씩 내려오고, 마사미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건물 밖으로 나왔지만 금방 어떤 남자에게 붙잡히고, 어쩔 수 없이 다시 아파트의 계단으로 돌아간다. 일이 꼬이고 남자는 쓰러진 여자를 민 것이 마사미라며 그녀를 의심한다. 그녀의 선택은?

(p. 220)

요컨대 나는 남에게 떠넘기고 싶은 것이다. 전화 한 통이면 끝나지만 누가 대신해준다면 그게 최고다. 무엇보다 생판 처음 보는 남을 위해 왜 내가 고생해야 한단 말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귀찮다.

절망적이었다. 불운하게도 여자를 발견한 것이 몹시 짜증났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죽이거나 때리거나 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것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완전히 잘못이 없다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사이키는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분위기에 휩쓸려 자살을 부추기는 말을 잠깐이지만 악의적으로 내뱉었고, 다카하시는 어떤 실수나 부주의로 오해받은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고 위해를 가할 듯한 행동을 하고, 계획적으로 누군가를 골탕먹였다. 사와이는 하야카와를 죽음으로 몬 원인을 제공했지만, 스스로는 크게 잘못했다라고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마사미는 위험에 빠진 사람을 바로 구조하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다. 그저 귀찮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들은 어쩌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야기를 다 읽어 본 우리라면 그 반문은 변명일 뿐이라고 분명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자업자득이고, 마땅한 인과응보라고 말이다.

작가는 첫번째 이야기인 <매그놀리아 거리, 흐림>으로 소설추리신인상을 수상하고, 수상작이 수록된 이번 책으로 데뷔했다라고 한다. 신인작가의 이야기임에도 그 안에 깃든 의미가 결코 작지 않았고, 일상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라 서늘한 느낌마저 들었다.

작가의 다음 이야기도 이만큼 의미있고 인상적인 이야기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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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비틀 킬러 시리즈 2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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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 열차 신칸센 '하야테'에서 벌어지는 킬러들의 추격전, <마리아비틀>을 읽었다.

예전에 <마리아비틀>을 처음 접했을 때는, 책은 두껍고 열차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하여 조금 지루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드랬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사카 고타로님의 이 무시무시한 걸작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지만 말이다.

열차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임에도 긴장과 재미는 최고였다. 이 두꺼운 책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기무라 유이치'는 모리오카행 신칸센 '하야테' 7호차로 간다. 자신의 여섯 살 난 어린 아들 '와타루'를 백화점 옥상에서 밀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게 한 장본인 '오우지 사토시(일명 '왕자')'를 처단하기 위해서. 그러나 그는 '오우지 사토시'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에게 잡혀 버리고 만다. 왕자는 와타루의 목숨을 빌미로 유이치를 자신의 마음대로 이용하려고 한다.

'왕자'는 겉으로는 열네 살의 모범적이고 예의바른 중학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학생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만큼 똑똑하고 사람을 조종하는 데 능한 악의 화신이자 악의 결정체이다.

- p. 357

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큰 힘에 조종당하는 게 재밌어. 자기변호나 정당화의 덫에 걸려들고, 타인의 영향을 받으면서, 인간은 자연스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지.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게 즐거워.

내가 그걸 조종할 수 있다면 최고지. 안 그래? 르완다 학살이든 정체로 인한 교통사로든, 나도 잘만 하면 만들어낼 수 있다니까.

한편, 이 열차에는 잔인한 고리대금업자 '미네시기 요시오'의 아들을 구해 데려가는 킬러 '밀감'과 '레몬'도 타고 있었다. 진지하고 소설을 즐겨 읽는 밀감과 엉성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레몬은 미네시기 요시오의 아들 도련님과 그의 몸값으로 가져간 트렁크를 다시 전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레몬이 돈이 든 트렁크를 열차 칸 사이의 짐 넣는 선반에 두었고 그걸 둘이 가지러 간 사이에 도련님이 죽고 만다. 트렁크도 잃어버리고 도련님도 죽어버린 이 난감한 상황...

소심하고 착하게 생긴, 그러나 위급상황에서의 판단이 누구보다 빠른 킬러 '무당벌레' 나나오도 이 열차에 올라탄다. 나나오의 임무는, 밀감과 레몬이 가진 트렁크를 들고 우에노역에서 내리는 것. 무척이나 간단한 임무같지만 불운의 아이콘, 불운의 여신에게 사랑받는 지독하게 운이 없는 사나이 '나나오'는 그걸 못하고 만다. 우에노 역에서 내리려던 때에 문 앞 플랫폼에 자신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킬러 '늑대'를 마주치게 되고 그와 몸싸움을 하는 도중 의도치 않게 늑대를 죽이고 만다.

- p. 193

내가 항상 머뭇거리는 이유는 소심하거나 생각이 많아서가 아니야. 경험상 알아서 그래. 내 인생은 지독히도 운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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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의도치 않게 초고속으로 달리는 열차 안에서 각자 위기상황을 맞이한다. 위 중심 킬러(?)들의 시선에서 각자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들의 대화 속에 등장한 전설의 킬러(?)인 듯한 이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이 열차 진짜 이상하다!!! 무서운 킬러들이 가득 타고 있다!!!

각각의 캐릭터는 무척 개성이 넘친다. 기무라 유이치는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알콜중독증세에 허덕이지만,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아들이 몹쓸 일을 당하자 그는 그 좋아하는 술을 끊고 복수에 나선다. 물론 너무 단순한 계획이라 똑똑하고 교활한 왕자에게 간파당하고 오히려 잡혀 버렸지만 말이다.

소심한 나나오는 너무 하는 일마다 꼬여버려 안타깝기도 했지만, 책의 뒷부분에선 그를 사랑하는 불운의 여신 덕분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말할 때마다 꼬마 기관차 토머스와 관련된 말을 쏟아내는 조금은 특이해 보이는 레몬도, 그의 파트너이자 진지하게 문학 소설을 인용하는 밀감도 무서운 킬러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그리고 무시무시하고 믿고 싶지 않은 캐릭터 '왕자'가 있다.

하얗고 말간 얼굴로 우등생의 가면을 쓴 왕자는 자신의 의도대로 사람들을 조종하고 죽음으로 몰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면에 속고, 기무라 유이치 역시 중학생일 뿐이라고 그를 저평가했기에 복수는 단 1도 하지 못하고 붙잡혔다.

하는 말은 또 시시콜콜 얼마나 똑똑한지... 중학생인데 이 정도라고...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 역시도 왕자가 본다면 속이기 쉬운 상대라고 비웃음을 당할지도 모르겠다.

- p. 253

물건을 훔치거나 남을 때리거나 하는 인간에게는 법률이 가능하다. 법조문에 적용해 벌을 주면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훨씬 애매모호한 악의는 간단치가 않다. 법률은 효력이 없다.

중학생인 왕자의 마음 안에 깃든 어머어마한 악의와 잔인함이 놀라우면서도 무섭고 끔찍했다. 정말 끔찍하고 대단한 캐릭터였다. 킬러들조차 그의 가면에 속거나 혹은 가면이라는 걸 알면서도 중학생이라는 것에 현혹되어 그에게 기회를 줬다. 행운이 늘 자신에게 깃든다고 믿는 왕자는 그렇게 위기의 순간을 몇 번이고 넘긴다.

그러나 역시, 노익장의 연륜있는 그분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분들의 정체는 책으로 확인해 보시길... ^^

킬러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긴장감과 재미를 듬뿍 안겨줬다. 그리고 재미뿐만 아니라 왕자로 대변되는 '악'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역시 이사카 고타로!! 역시 엄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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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하빌리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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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자주 출간되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었지만, 요즘에는 예전 작품들이 개정되어 많이 출간되고 있다. 분명 예전에 읽고 접했던 책들이지만, 그럼에도 그의 소설은 큰 재미와 치밀한 트릭과 생각할 여지까지 줘서 여전히 많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는다.

이번 <교통경찰의 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미스터리 소설로 그가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문예지에 연재한 것을 1992년에 한 권으로 묶어 출간한 것이라고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사고라고 하면 아마 교통사고일 것이다. 내가 안전운전을 하고 교통 법규를 잘 지킨다고 해서 교통사고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보통의 사람은 언제나 교통사고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책에는 교통사고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자주 보고 접할 수 있는 사고들이지만, 그낭 지나칠 수가 없는 건 그 안에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천사의 귀]

사거리에서 승용차끼리 충돌한 사건이 발생했고, 외제차의 운전자 및 동승자는 거의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경차의 운전자는 병원으로 호송되었으나 결국 사망하고 경상을 입은 동승자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서로 상대방이 신호위반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시각장애인인 소녀는 놀랄 만한 청력으로 상대방이 신호위반을 한 것임을 증명해 낸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 '천사의 귀'는 진실이었을까?

[중앙분리대]

트럭이 중앙분리대를 넘는 사고가 발생하고 운전자는 사망한다. 운전자의 부인은 운전자가 평소 조심성이 많고 그동안 무사고였다고 사고의 원인을 밝혀 달라고 한다.

교통법규의 허점으로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을 처벌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부인의 선택은?

[위험한 초보운전]

초보운전 차량에 대해 위협운전을 하던 남자, 그는 상대방이 자신의 위협운전으로 사고가 났지만 도와주지 않고 도망쳐 버린다. 그런데 그 후 그는 위협운전이 아닌 전혀 다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건너가세요]

애인의 집 근처에 무단주차해 둔 차량을 누군가 박고 지나갔다. 얼마 후 연락해 온 남자는 자신이 차량을 박았고 그것이 미안하니 자신의 별장에서 연휴를 보내라고 말한다. 이 남자의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무단주차하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이야기였다. (무단주차는 나빠요...!!!)

[버리지 말아 줘]

고속도로를 달리던 커플의 차 안으로 앞차에서 버린 커피 캔이 날아들고, 여자는 날아오는 캔에 눈을 맞아 결국 한 쪽 눈을 실명하게 된다. 경찰에서는 앞차 사람들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남자는 그들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결국 찾지 못하고 포기하게 되는 듯 했지만... 마지막 나쁜 놈들은 결국 벌을 받는다는 걸 눈으로 확인해서 시원+통쾌했던 이야기였다.

[거울 속에서]

승용차와 스쿠터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운전자는 유명 회사에 소속된 마라톤 선수 출신 코치였다. 경찰은 사고 경위 및 상황에 대하여 듣지만 사고 현장에 남겨진 증거들은 그의 설명과는 달랐다. 이 사고에 얽힌 비밀은 무엇일까?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였다. 짧은 단편들이었지만, 그 안에 트릭과 반전,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의미들이 다 들어 있었다.

거의 27년 전의 이야기이므로 세세하게 따지면 오늘날과 다른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 이야기 속 사람들의 행태는 현재에도 비슷할 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죄의식 없이 무단횡단, 무단주차, 위협운전 등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놓고 위험이 너무 큰 교통사고를 유발하는원인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한다. 이 정도는 누구나 해... 정도로 가볍게 치부해 버리고 만다.

무단횡단쯤이야... 무단주차쯤이야... 저 차가 내 진로를 방해했으니 위협운전쯤이야... 이런 식으로 자기중심적으로 가볍게 생각한다.

하지만 <교통경찰의 밤>에 나오는 이 이야기들을 보면 그런 가벼운 생각과 대처가 누군가에게는 죽음으로 이어져 상처를 남긴다.   

 

아마 과거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차를 이용하고 있으니 교통사고는 결코 줄지는 않으리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금요일 퇴근시간이다. 어쩌면 오늘도 교통경찰의 밤은 길고 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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