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프렌즈, 그건 사랑한단 뜻이야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흔글·조성용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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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필요했던 건 온전한 내 마음.

그 무엇에도 상처받지 않고

나를 사랑하는 내 마음. (p. 143)

 

 

 

카카오프렌즈의 라이언, 어피치, 튜브, 무지, 네오, 프로도가 각자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위로를 주었던 것이 불과 얼마전인 것만 같은데,

이번에는 카카오프렌즈 모두가 지친 우리에게 위로와 위안과 용기를 주려고 살며시 다가왔다.

《카카오프렌즈, 그건 사랑한단 뜻이야》는 우리가 사랑하는 카카오프렌즈 여덟 명과 40만 SNS 독자를 위로하는 작가 흔글의 다정한 문장들로 가득했다.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

혼자서도 근사한 사람.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이 지치면 언제나 곱씹기를.

가끔은 혼자니까 괜찮기도 해. (p. 26)

 

어린 시절에는 친구가 없으면 정말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 혼자라는 것이, 그래서 외롭다는 그 사실을 참 견디기 어려워했던 시절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연애를 해도, 결혼을 해도 혼자인 시간은 반드시 존재하고, 또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혼자라는 걸 외롭고 힘들게 느낄 필요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함께여도 좋고, 혼자여도 좋은...

어쩌면 정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가끔은 혼자의 시간을 만끽하며, 혼자서도 충분히 괜찮고 근사한 시간을 보내며, 나를 조금 더 돌아보고 나를 위로하고 토닥여주는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

 

 

모든 건 어느 정도의 틈이 필요하더라.

틈이 없으면 어딘가 곪아버릴 수도 있거든. (p. 52)

 

너무도 공감갔던 문장이었다.

우리는 틈을 벌리지 않으려고, 가끔은 우리의 감정을 속이거나 참거나 견뎌낸다. 마치 사람들과의 그 자그마한 틈이 우리를 외로움과 쓸쓸함의 구덩이로 빠뜨리는 문이 되어줄까봐 걱정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말이야. 조금은 벌어져도, 거리를 유지해도 충분히 괜찮다는 걸 나이가 드니 알 것도 같다, 라는 생각...

 

 

날씨가 좋다는 핑계로

누군가를 불러내기 좋은 계절이 왔어.

언젠가 내가 바람이 참 좋다고

걷고 싶다고, 넌지시 말한다면

그건 사랑한단 뜻일지도 몰라.

바람에 마음을 담기 좋은 날이야. (p. 86)

 

내가 좋아하는 봄, 따뜻하고 환한 햇살에 살랑거리는 바람까지... 정말 누군가를 부르기 너무도 좋은 예쁜 계절.

활짝 핀 벚꽃마저 흐드러져 바람에 날린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만 같은 봄날의 오후는 소중한 사람과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며 부드러운 카페라떼를 마시고 싶다.

물론 특별한 핑계나 이유가 없어도 만날 수 있는 사이지만, 날씨가 너무 좋아서라든가, 꽃이 너무 예뻐서라든가 괜히 그런 핑계를 대며 만나자고 하고 싶은, 괜히 그런 봄.

살랑거리는 바람 안에 내 마음을 가득 담아 소중한 사람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더없이 느끼고 싶은 그런 봄날에...

"같이 걸을래?"

 

 

남들 속도에 나를 맞추기보다

그저 나의 속도대로 가는 게 더 중요하더라.

조금 느리게 걸으면 좀 어때?

어제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만으로

우리는 더 나아진거야. (p. 198)

 

가끔, 아니 자주 남들과 비교하는 스스로를 느낄 때가 있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은 그에 따라가질 못한다.

그런데, 저 문장처럼, 내가 아무리 남들보다 느려 보이고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분명 어제보다는 오늘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갔으리라.

아직 결승선은 저 멀리 있으니, 결승선까지 포기하지 않고 느리더라도 꾸준하게 나를 사랑하고 아끼며 하루하루의 소중한 일상을 사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어느순간 마음 속을 가득 채워버린 이 깜찍한 친구들은 이전에도 앞으로도 계속 웃음을 주고 행복을 느끼게 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추가로, 지갑도 열게 하겠지만.. ^^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았던 따뜻하고 반짝반짝거리는 예쁜 문장들 덕분에 잠시나마 마음에 여유와 편안함이 찾아왔다.

가볍게 읽었고, 그래서 앞으로도 더 자주 펼쳐보며 편안하게 문장들을 읽고 싶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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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나의 자서전 - 김혜진 소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4
김혜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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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동네 혹은 사는 아파트 평수로 아무렇지 않게 친구를 규정하고 배척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어요.

너는 어느 아파트에 살아? 몇 평에 살아?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나고 사귀는 친구들을 비슷한 경제력을 가진 친구들로 한정해 버린다는 이야기였어요.

참 안타깝고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야기였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 역시도 드러내놓고 구분하지는 않지만 좀 더 나은 동네로, 좀 더 큰 평수로 이사를 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소설 속 '홍이'는 어린 시절을 '남일동'에서 보냅니다. 친구들과 해가 진 후에 놀라치면, 엄마는 화를 내며 "네가 가겟집 애도 아니고, 보살피는 부모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길바닥에서 놀고 있어."라며 야단을 칩니다. 아이들이 그 말의 정확한 속뜻을 알기는 어렵더라도, 자신과 자신의 부모를 얕잡아 보고 있다라고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었겠지요.

홍이의 부모님은 자신들이 이곳 남일동에 살고 있다는 것이 싫었고, 하루빨리 이 동네를 벗어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죠.

아버지는 경매를 통해 집을 샀지만, 남일동을 벗어나지는 못했어요.

그러다 홍이가 중학교 3학년 때, 남일동이 반으로 쪼개지고 홍이가 살던 곳이 중앙동으로 편입되면서 드디어 홍이의 가족은 남일동을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홍이는 회사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직원을 돕거나 챙기다가 오히려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게 되고, 그 스트레스 때문인지 갑작스럽게 심한 두드러기가 생겨 남일동에 있는 제일약국에서 약을 사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제일약국에서 '주해'와 '수아' 모녀를 만나게 됩니다.

 

남일동 달산 밑에서도 안쪽으로 들어가는 집으로 새로 이사를 온 주해 모녀와 약국에서 몇 번 마주치게 된 홍이는 어느덧 주해의 집도 놀러가고, 주해가 바쁠 땐 수아를 돌보기도 하는 등 한층 이들과 가까운 사이가 되요.

홍이가 본 주해는 참 멋있는 사람이었어요.

구청이나 시청을 몇 번이고 찾아가는 등의 노력을 해서 어두운 골목길에 가로등을 설치하게 하고, 마을버스가 동네 안까지 들어오게도 합니다.

남일동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자 수아와 함께 아파트에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재건축위원회에 소속되어 열심히 활동도 해요.

 

그러나 주해의 과거가 문제가 되자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자신들의 일에 해가 될까 내쫓기 바쁩니다. 

 

어느날 홍이와 같이 있던 수아가 묻습니다.

"이모, 여기 길 건너면 중앙동이야? 길 안 건너면 남일동이고?"

 

수아는 학교에서 친구들이 자신을 '남민'이라고 부른다고 말합니다. '남일동에 사는 난민'.

홍이는 어린 시절 중앙동으로 편입된 후 전학을 가는데, 전학간 학교에서 친구들이 홍이를 '남토'라고 놀렸어요. '남일동 토박이'.

 

불과 길 하나 차이로 사람들이 그리 꺼려하고 무시하는 남일동과 사람들이 선호하는 중앙동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그리고 동네의 차이로 차별을 받고 무시를 받는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당했을까요...

아이들이, 청소년들이 도대체 무얼 알고서 저렇게 잔인한 말로 친구를 놀릴 수 있는 걸까요?

 

아이들의 그런 모습은 아마도 우리 어른들에게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이겠지요.

주해는 남일동에 사는 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친밀해지려 애썼지만, 과거의 일이 폭로된 후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전과 같이 대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노력했던 일들도 이젠 그들의 마음 속에서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p. 56)

친절이나 호의를 받을 줄 모르는 사람들.

선의나 진심에 찬물을 끼얹는 이들.

무례와 몰상식이 몸에 밴 인간들.

그러니까 외지 사람들이 남일도, 남일도 할 때 그 남일도의 진짜 모습을 마주한 기분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모두들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뿐인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을 경제력으로 구별하고 그런 생각을 아이들에게 주입해버린 어른들도, 결국은 자신과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였겠지요.

하지만 말이에요.

어른들의 그런 행동들이 과연 행복을 위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더 넓은 행복, 다 같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향은 없었을까요.

 

남일동과 중앙동을 벗어나도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구별하고 나누고 차별하는 곳은 많을 것이고, 이런 행동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겠죠.

주해와 수아는 이곳보다는 조금 더 행복한 곳으로 갔을까요?

부디 그 곳에서는 주해와 수아가 따뜻하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기를...

 

(p. 125)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드나들었지만 끄떡도 하지 않고 지금껏 그대로인 남일동의 진짜 얼굴을 비로소 목격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

여기 사는 그런 마음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런 것들은 저절로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고, 끝없이 누군가에게 옮아가고 번지며, 마침내 세대를 건너 대물림되고 또 대물림될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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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코를 위해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모모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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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리코가 죽었다."

소설은 사랑하는 딸 요리코를 끔찍한 범죄로 잃은 아버지 니시무라 유지의 수기로 시작한다.

니시무라는 요리코를 죽인 범인을 직접 심판하고 그를 죽이기까지 복수의 과정을 글로 남겨두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아내 모리에의 간병인 모리무라 다에코의 적절한 응급처치로 목숨을 구한다.

 

한편, 니시무라의 수기가 화제가 되자 요리코가 다니던 명문여고인 사이메이 여학원 측은 학교의 이미지 추락을 염려해 유명한 탐정인 '노리즈키 린타로'의 명성을 이용해 여론 조작을 시도한다.

린타로는 그런 여론조작의 장기말로 이용되는 것은 마뜩찮았지만, 니시무라의 수기를 읽어본 후에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린타로는 수기에서 이상한 부분을 느끼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요리코의 사건과 요리코 가족에게 닥쳤던 14년 전의 사고에 대하여 조사하기 시작한다.

 

14년 전 임신 중이었던 모리에는 요리코와 외출 중에 큰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되고, 뱃 속 아이도 잃고 만다. 그 뒤 요리코에게 애정을 쏟으며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살았던 이 가족에게 또다시 이렇게 잔혹한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린타로가 찾아 낸 진실은 무척이나 가혹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실들보다 더 악몽같고 잔혹한 진실...

요리코는 왜 죽었는가, 누가 요리코를 죽였는가...

 

린타로는 진실을 찾아냈지만, 이 진실은 어느 누구에게도 행복이나 만족을 주지는 못했다. 진실을 알아낸 린타로조차 어쩌면 이 사건의 거대하고 은밀한 조종자가 깔아놓은 판에서 움직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은 모두 어긋나고 잘못된 사랑 때문이었다. 요리코도, 니시무라도, 이 모든 것의 뒤에 선 은밀한 진짜 괴물에게도 말이다. 그래서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이렇게 개운하지 못한 느낌이 남는 거겠지. 

거의 20년 이상이 지난 소설인데도, 지금에 읽어도 전혀 위화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트릭이 아닌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런 걸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어딘가에선 소설 속 요리코처럼 사랑받고 싶은 소녀도 있겠지. 그리고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모습도 있으리라.

 

그렇다. 모든 것은 요리코를 위해, 그리고 요리코 때문이었다.

 

-----------------------------

 

 

폐허처럼 고립된 사랑.

그게 당신이 사랑이라 부르는 것의 형태란 말인가?

그런 것에 사랑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단 말인가. (p. 416)

 

 

당신은 대체 어느 편이야?

- 진실의 편이죠.

(p.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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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코를 위해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모모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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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코가 죽었다."

소설은 사랑하는 딸 요리코를 끔찍한 범죄로 잃은 아버지 니시무라 유지의 수기로 시작한다.

니시무라는 요리코를 죽인 범인을 직접 심판하고 그를 죽이기까지 복수의 과정을 글로 남겨두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아내 모리에의 간병인 모리무라 다에코의 적절한 응급처치로 목숨을 구한다.

 

한편, 니시무라의 수기가 화제가 되자 요리코가 다니던 명문여고인 사이메이 여학원 측은 학교의 이미지 추락을 염려해 유명한 탐정인 '노리즈키 린타로'의 명성을 이용해 여론 조작을 시도한다.

린타로는 그런 여론조작의 장기말로 이용되는 것은 마뜩찮았지만, 니시무라의 수기를 읽어본 후에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린타로는 수기에서 이상한 부분을 느끼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요리코의 사건과 요리코 가족에게 닥쳤던 14년 전의 사고에 대하여 조사하기 시작한다.

 

14년 전 임신 중이었던 모리에는 요리코와 외출 중에 큰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되고, 뱃 속 아이도 잃고 만다. 그 뒤 요리코에게 애정을 쏟으며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살았던 이 가족에게 또다시 이렇게 잔혹한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린타로가 찾아 낸 진실은 무척이나 가혹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실들보다 더 악몽같고 잔혹한 진실...

요리코는 왜 죽었는가, 누가 요리코를 죽였는가...

 

린타로는 진실을 찾아냈지만, 이 진실은 어느 누구에게도 행복이나 만족을 주지는 못했다. 진실을 알아낸 린타로조차 어쩌면 이 사건의 거대하고 은밀한 조종자가 깔아놓은 판에서 움직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은 모두 어긋나고 잘못된 사랑 때문이었다. 요리코도, 니시무라도, 이 모든 것의 뒤에 선 은밀한 진짜 괴물에게도 말이다. 그래서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이렇게 개운하지 못한 느낌이 남는 거겠지.

 

거의 20년 이상이 지난 소설인데도, 지금에 읽어도 전혀 위화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트릭이 아닌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런 걸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어딘가에선 소설 속 요리코처럼 사랑받고 싶은 소녀도 있겠지. 그리고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모습도 있으리라.

 

그렇다. 모든 것은 요리코를 위해, 그리고 요리코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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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처럼 고립된 사랑.

그게 당신이 사랑이라 부르는 것의 형태란 말인가?

그런 것에 사랑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단 말인가. (p. 416)

 

당신은 대체 어느 편이야?

- 진실의 편이죠.

(p.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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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몽전파사 소설Q
신해욱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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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을 많이 꾸는 편은 아니다. 가끔 꾸는 꿈 속에서는 기묘하고 신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슈퍼 히어로가 되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멋지게 구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 가슴을 덜컥 하며 꿈에서 깨기도 한다.

또 이전에 꾼 꿈에 이어 이야기가 진행되는 꿈들도 있었다.

신기한 꿈을 꾸고 일어나면, 그 일어난 잠깐은 꿈이 생각나지만 사실 시간이 지나면 명확하게 잘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그 꿈들을 내가 기록해 뒀다면, 어쩌면 말이야, 그게 멋지고 기가 막힌 이야기 한 편이 되지는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을 느낄 때도 있었다.

 

소설 <해몽전파사>에 등장하는 해몽전파사는 왕십리의 어느 자투리땅에 지어진 2층 건물이었다. 제대로 손보지 않은지 오래라 외벽의 치장 벽돌은 절반 이상 떨어져 나갔고, 간판의 '몽'자의 'ㅁ'은 한쪽으로 삐뚜름하게 기울어져 있어 묘한 느낌을 주던 곳.

불이 켜진 때도 거의 없어 철거될 건물이겠거니 했던 이 곳에, '나'는 삼년 전 망가진 헤어드라이기를 고치러 들러봤다. 가게 불은 꺼져 있었지만, 유리문에 붙어 있던 글을 보고 간밤의 꿈을 팔려고 연락을 해 본다.

 

'각종 꿈 매입

몽몽교환 프로젝트 진행 중'

 

'나'는 그 날 꿈을 팔면서 가게의 주인인 진주씨와의 인연이 시작되고, 그 뒤로 가게를 드나들면서 아르바이까지 하게 된다.

'해몽전파사'에서는 토요일에는 꿈의 영화를 상영하고, 일요일에는 꿈의 텍스트를 낭독하고, 그 밖에도 인문학이나 뇌과학 스터디, 몽유록 읽기 모임도 열린다.

이년 반이 흐른 어느 날, 진주씨는 자신이 유방암에 걸렸다며 이 가게를 맡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한다. 그리고 하나 더.

"내가 죽기 전에 천개의 꿈을 모으면 자기한테 이 가게를 줄게."라고 말한다.

그렇게 '나는' 꿈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화자인 '나', 해몽전파사의 주인인 '진주씨', 모임에서 알게 된 '설아씨', 그리고 어느날 문득 가게를 찾아온 '삼월씨'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함께 그들의 꿈 이야기가 책을 가득 채운다.

 

사실 초반에는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등장인물 간의 서사는 크지 않고, 약간은 기묘한 꿈들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니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건지 혹은 꿈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의아해질 수 밖엔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들의 꿈은 자기가 처한 현실의 어떤 것과 닿아 있고, 또 서로간에 꿈을 나누고 이야기하며 서로의 연대가 높아지고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되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1000개의 꿈에 닿기 위해서는 아직 954개의 꿈이 남았다. '나'가 어느날 꿨던 꿈처럼, 서기 2039년 11월 26일, 304번째 마지막 낭독회가 열리는 그날까지 나도, 진주씨도, 설아씨도, 삼월씨도 모두모두 건강하기를, 해몽전파사도 꿒은숲도 모두모두 잘 유지되기를... 나지막히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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